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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 생가 앞에 선 여행자

등록일 2025-07-16 18:23 게재일 2025-07-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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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 수필가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의 도시를 걸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알칼라 데 에나레스의 조용한 거리 한복판이었다. 과거의 숨결이 배어 있는 건물 앞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붉은 벽돌과 마당에는 아담한 정원이 있는 가정집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16세기 중산층 집이었다. 하지만 소설 ‘돈키호테’의 저자인 세르반테스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세르반테스가 여기에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틔웠고, 허구 속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의 여정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이 벅찼다. 문학의 세계가 물리적 공간이 되어 나를 맞이할 것만 같은 이곳은 다른 어떤 박물관보다도 정적이 깊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세르반테스의 고된 삶의 무게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레판토 해전에 참가해서 부상을 입었고, 해적에게 붙들려 5년 동안 알제리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그였다. 숱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돈키호테’를 출간해 인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생활이 힘들었다. 병으로 사망한 뒤, 트리니티 탁발 수녀원에 묻혀 있던 그의 유해를 약 400년이 지난 2014년에 스페인 정부에서 찾았다고 한다.

생가 앞 도로에는 길게 뻗은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는 익숙한 두 동상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단정하게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로 팔을 벌려 정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고, 다른 이는 팔짱을 낀 채 푸근한 인상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것 같은 사내였다. 그들은 바로 세르반테스와 산초 판사였.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아서 가만히 대화를 들었다. 내 따스한 눈길에 차가운 청동의 어깨 위로 문학이 스미는 듯했다.

기념사진을 찍었다. 웃음은 머금었지만, 마음속에는 웃음보다 더 오래 머문 질문이 있었다. ‘왜 그는 돈키호테를 써야만 했을까?’ 내가 갖고 있는 책 속의 서문을 보면 ‘기사도 이야기들이 세상과 대중 사이에서 떨치고 있는 세력과 권위를 부수어버리는 것이 목적’이라는 문구가 있다. 현실을 보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힌 기사를 통해 무분별한 이상주의와 현실도피를 비판했다.

그러나 단지 풍자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세르반테스는 스스로도 가난했고, 투옥되었으며, 군인으로서 전쟁의 상처를 입었다. 그는 돈키호테를 통해 자신의 좌절과 꿈을 투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단지 회한으로 쓰지 않았다. 현실은 고달프지만 인간은 꿈을 꾸고 웃음을 잃지 않기에 아름답다. 그러니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사람도 어쩌면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리라. 그는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었고, 웃음 속에 눈물과 철학을 스며들게 했다.

돈키호테는 꿈을 좇고, 산초 판사는 땅을 딛는다. 이상과 현실, 허구와 사실을 표현한다. 이상은 허무가 아니다. 비록 이룰 수 없더라도, 꿈을 향해 걸어가는 행위 자체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든다. 세르반테스는 그것을 알았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세르반테스는 둘 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이 둘이 함께 길을 떠나야 비로소 이야기가 완성되고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박물관 앞의 동상도 서로 등을 맞대거나 외면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펜을 들었다. 너무 늦었다는 사람들의 말도, 삶의 거센 풍랑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는 결국 이야기를 끝까지 써냈다. ‘돈키호테’ 1부는 58세였을 때, 2부는 68세가 되던 해에 세상에 나왔다. 그의 생가 박물관 앞에 선 여행자, 나는 문득 한 가지 바람을 품었다. 세르반테스로부터 실패를 견디는 자만이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배웠으니, 나만의 돈키호테와 나만의 산초, 그리고 나만의 풍차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담히 써내려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었다. 진심이 깃든 수필집 한 귀퉁이에 쓰인 내 문장이 세르반테스처럼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정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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