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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등록일 2025-07-23 19:42 게재일 2025-07-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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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경 수필가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20여 년 전 FM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재생해서 그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해 여름, 텐트 안은 찜통 그 자체였다. 아스팔트가 진득진득하니 녹아내릴 무더위, 폭염이었다. 군용 텐트는 어디에서 났는지 노조위원장이 그곳에 누워있었다. 열흘을 넘기는 시점이 되자 그는 음료수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팔에 링거가 꽂히고 그는 쓰러진 채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누워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정오, 나뭇잎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매미 소리가 도심의 가로수에서 울어댔다. 노조 사무실에서는 위원장의 목숨이 위험하다. 싸움을 여기서 중단할 것인지 힘들더라도 버틸 것인지 노조 집행부가 머리를 맞대며 갑론을박을 펼쳤다. 하지만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노조 탄압과 임금동결이라는 큰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노조의 대항이었다.

답 없는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위원장을 제외한 집행부는 하루에 밥 한 끼만을 먹으며 일을 하며 버티고 있었다. 일을 하니 그 정도라도 먹어야 한다는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환자의 식사를 하루 세끼 챙기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일하다 보면 현기증으로 간혹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 것을.

응급실 앞에서 관리직원을 만났다. 그는 곁 눈질을 하며 노조위원장 때문에 병원 상황이 안 좋다며 노조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어설프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날려 그를 넘어뜨리고 주먹다짐을 했다. “노조위원장이 죽게 생겼는데 그 따위 소리를 하느냐, 노조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고 함부로 말하느냐” 라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조합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병원과 노조의 대립구조가 눈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끝장을 보아야했다. 여기서 지면 노조위원장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결론으로 나는 제대로 한 판 싸움을 시작했다. 열흘이 넘도록 병원 관리자가 나타나지 않다가 흥분한 노조원들의 상황을 보고받은 경영진에서 임금 테이블이 다시 만들어졌다.

다행히 노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동결은 풀렸고 노조는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리고 노조위원장의 단식투쟁도 당연히 끝으로 가고 있었다. 열이틀의 단식을 푸는 날, 부드러운 죽이라도 끓여주었어야 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다. 그 빠짝 마른 창자에 들어간 것은 김치찌개와 밥이었다. 배가 고픈 그가 밥 한 그릇을 마저 비우지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후 그는 건강 상태가 나빠져서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래서 밥이라도 물을 넣고 끓여서 죽으로 먹었더라면 위장병으로 평생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을. 이후 그는 병원을 관두었고 본향인 대구로 가서 일자리를 옮겨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누구나 똑같은 경우의 수는 없다. 나는 그가 되어보지 못했기에 그의 힘듦을 다 이해할 수도 없었다. 40도가 넘는 좁은 텐트 속에서 링거를 맞고 있던 그가 간혹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올 여름 폭염에 가로수는 축 쳐져있고 매미는 절규하듯이 목청을 높이고 있는데.

이미 고인이 된 그녀 정은임을 AI 기술로 재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20여 년을 뛰어넘은 지금의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잠시 눈을 감는다.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그녀를 그때는 몰랐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든 시간이었던 그리고 서슬이 퍼렇던 그 시대 그 시절에도 자기의 목소리를 냈던 용기 있는 프로그램의 제작자와 DJ에게 박수를 보낸다.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배문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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