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물 위에 줄지어 앉아 있는 수많은 요트와 어선이 차가운 지중해 바람을 따라 출렁거렸다. 마르세유는 그리스인이 세운 도시로 그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로의 관문이었다고 한다. 나는 새 지평을 열고자 희망에 부풀었을 누군가를 상상하며 마르세유 구 항구(Vieux-Port)를 걸었다.
부두를 걷다 보니, 마르세유의 대표적 상징 조형물인 파빌리온이 나왔다. 거대한 거울 지붕 구조로, 도시의 하늘을 반사하고 사람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움직이는 풍경화’로 유명한 공간이었다. 나는 주변 풍경이 빛과 어우러져 거울에 아름답게 반사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건너편 마르세유 광장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음악 소리가 흘러와 눈송이처럼 내 어깨 위로 내려앉고 사람들의 노래가 축복처럼 광장을 맴돌았다. 나는 화려한 조명 불빛이 도시를 감싸 안은 그 순간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했다. 해마다 겨울이 돌아오면 마르세유 광장에서의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언덕 위로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이 보였다. 어부들의 수호성인에게 바치는 기도처였다. 거센 파도 앞에서 두 손 모아 기원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같았으리라. 뱃사람들은 고깃배의 안전과 만선의 꿈, 무사히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한다. 그것은 바다를 향한 간절한 기도이자, 가족과의 약속이다.
내가 살고 있는 포항을 떠올렸다. 동빈내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과 갈매기 울음, 생선 비린내에 묻은 소금기, 죽도시장 상인들의 입담이 들려오는 듯해 마르세유 구 항구가 낯설지 않았다. 나는 분명 처음으로 프랑스 땅을 걷고 있는데, 동빈내항의 시간과 냄새가 뒤따라오고 있어 정겨웠다.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들을 받아들였다. 북아프리카 지역과 유럽의 피난민들이 건너와 발자국을 겹겹이 남겼다. 그래서인지 골목길에 머무르고 있으니, 어디선가 북아프리카 사람들이 즐겨먹는 쿠스쿠스 냄새가 풍기고 아랍어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항구는 이방인들에게 처음은 낯선 곳이었지만, 결국에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생활의 뿌리를 내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세월이 흐르고 언어가 섞이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마르세유는 하나의 얼굴이 아닌 다채로운 얼굴로 살아가는 도시가 되었다.
포항과 마르세유는 닮은 듯했다. 동빈내항은 한국전쟁 직후 바다를 의지해 살아야 했던 이들의 출발점이었다. 그때는 항구가 곧 생존이었다. 마르세유처럼 동빈내항도 고단한 삶의 이주자들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흘러 포항종합제철을 중심으로 생계를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이들이 정착했다. 용광로는 노동자를 불러 모았고 그의 가족들은 동빈내항 주변에서 생활했다. 고향 사람과 타 도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억양과 습관이 모여 지금의 포항이 형성되었다. 본토박이들은 타지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모두 끌어안으며 제 몸처럼 품었다.
사물의 이치는 한결같으리라. 바다는 경계를 가르지 않고 흘러들어온 강물과 뒤섞여 움직인다. 이처럼 항구 도시는 항해자들을 수용하고 포용하며 마음을 연다. 마르세유와 포항이 외지인들과의 상생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것처럼, 앞으로도 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삶의 결을 어루만지는 노력이 끊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공동체란 벽을 두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함께 살아갈 집의 새로운 지붕을 같이 짓는 일이다. 지역에서 오래 뿌리내린 현지인과 이주민이 각자 개성이 넘치는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어우렁더우렁 공존하는 길을 모색한다면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성싶다. 그것이 항구를 품은 도시의 진정한 삶일 것이다.
바다는 항해하는 자들을 데려가고 다시 데려온다. 마르세유의 짙푸른 바닷바람을 느끼며 동빈내항으로 돌아올 날을 생각했다. 두 항구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 둘 사이를 걸었다. 내 발걸음마다 그리움의 흔적을 남겼다.
/정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