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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책을 볼 때, 책은 우리를 본다

등록일 2023-04-24 20:01 게재일 2023-04-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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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

우리 세대에서 가장 통찰력 있는 이미지 비평가 중 하나인 존 버거는 “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하는 질문을 통해, 동물원에서 인간이 동물을 관찰하는 것에 담겨 있는 의미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인간은 동물원 안에 갇힌 동물들을 보러가지만, 정작 그곳에 진정한 동물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원에서 우리는 인간과 친밀한 동물의 모습을 보러가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동물원 속의 동물과 인간의 구별된 모습에 불과하다. 인간의 시선을 통해 만들어낸 구경이라는 행위의 가치는 제도의 한계를 벗어나 그 근원을 바라보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동물원의 쇠창살 너머로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의 이미지를 발견하지만, 그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는 동물의 시선은 그야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그대로의 것일 뿐이다.

우리가 책을 통해 세상을,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것 역시 어쩌면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한때 인간의 문학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미니어처로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다시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여겨지기까지 했지만, 정작 그 문학 속에 진정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이미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세상이 들어 있는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내 손이 닿는 영역 저 바깥에 존재하는 타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 가끔 진정한 타인을 만난다고 생각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고 친밀한 타인만 존재한다.

우리가 동물원을 벗어나서야 동물의 진짜 동물성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진정한 세상이나 낯선 타인이란 책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의 눈에 들어올 수 있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동물원이 아니고서야 동물을 보기 어려운 것처럼, 문학이나 책이 아니고서야 세계나 타인의 모습을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 속에 진정한 그것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유리동물원’은 과연 인간이 ‘나’를 벗어나 진정한 세계를 발견하고, 저 바깥의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보여준 가장 고전적인 우화이다. 이 희곡은 오래 전 가족을 떠난 톰이 자기를 소개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톰의 어머니인 아만다 윙필드는 먼 나라를 동경하여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꾸려가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빛났던 과거를 동경한다. 하지만 아만다는 과거와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아들인 톰과 로라의 삶에 끊임없이 간섭한다. 아만다에게 있어 현실이란 그저 부정의 대상일 뿐이고, 그 시선은 현실 너머의 빛나는 과거를 향해 있을 뿐이다.

이 가족 드라마 속에서 ‘유리동물원’이라는 제목은 로라가 집착하듯 모으고 있는 유리로 된 동물들을 가리키는 것이면서, 또 아만다가 가족을 바라보는 방식으로서 그녀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다. 로라는 자기가 모으던 ‘유리동물원’을 깨뜨리고 만 짐과의 사랑을 통해 현실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지만, 정작 로라가 마주친 현실은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차 있었다. 유리동물원 속 모든 가족들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며, 환상에서 벗어나 실제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가족의 환상을 떠나는 방법밖엔 없었던 것이다. 세계대전이 아직 한창이던 1944년 극작가인 테네시 윌리엄스는 당시 미국인들이 갖고 있던 가족에 대한 환상과 실제 사이를 폭로하는 작품을 썼던 것이다.

우리는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고, 책을 통해 세상을 본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의 시선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난 뒤 저기 있는 비어있는 실제의 현실을 만나는 것까지가 독서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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