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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항제철소 조기 전면가동은 그야말로 기적

지난해 9월 6일 새벽 추석 연휴를 3일 앞두고 경북 동해안을 할퀸 태풍 ‘힌남노’로 인해 참혹한 피해를 본 포항제철소가 복구를 모두 완료하고 설연휴 하루전인 지난 20일부터 정상 조업체제에 들어갔다. 침수 피해 발생 이후 135일 만이다. 포항제철소 직원들은 설연휴에도 야간 조명을 밝힌 채 교대근무를 하며 조업을 했다. 포항제철소는 용광로 가동을 위해 365일 24시간 4조 2교대 조업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수해직후 포항제철소가 정상가동되려면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었다. 정부도 포스코 경영진이 4~5개월내 17개 공장을 모두 정상가동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공개적으로 핀잔을 주면서 민관합동 조사단까지 파견했다. 사실 수해직후에는 냉천이 범람하면서, 모든 공장 안 설비가 진흙과 기름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복구를 위해서는 제철소를 새로 짓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완전 정상화까지 최소한 1년은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135일만에 포항제철소가 완전복구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같은 일이다.포항제철소 조기 정상화는 포항·광양제철소 직원, 포항지역 협력업체 임직원 등 연인원 140만명가량이 주말까지 반납하며 복구 작업에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포항제철소 기술진은 물과 진흙에 잠긴 설비 하나하나를 분해한 뒤 세척·조립해야 했다. 경북도와 포항시민들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복구 과정 중 2열연 공장의 전기 공급 장치 15대 중 11대를 교체해야 했던 것도 난관이었다. 포스코는 인도 철강 회사로부터 모터 드라이브를 지원받아 복구 일정을 앞당겼다. 일본제철, 현대제철에서도 장비 및 고객사 제품 공급 등을 지원받았다.복구작업은 완료됐지만, 포스코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2021년에 비해 반토막이 난 상태다. 포항제철소 태풍피해에다 글로벌 경기침체, 화물연대 파업 등 복합적인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이제 포항제철소 17개 공장이 완전 정상조업에 들어갔고, 철강가격도 상승세를 보이는 만큼 포스코가 새해에는 전례 없는 좋은 실적을 내길 기대한다.

2023-01-24

설날 풍속의 변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해마다 맞이하는 설날은 가슴 설레기만 하다. 어디든 찾아갈 곳이 있고 맞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가슴 넉넉한 일이다. 가고는 싶어도 반겨 맞는 사람이 없다거나, 산천이 가로막혀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울까? 더욱이 민족의 설명절을 맞이해서는 그지없이 서럽고 가슴 아릴 것이다. 어쩌면 설날은 비로소 새해가 열리는 날에 온 가족이 고향에 모여 조상을 기리며 부모와 형제자매, 친척의 유대감과 정을 나누는 시간이지만, 세월의 흐름과 여건의 변화에 따라 요즘은 서로 한번 만나고 모이는 일도 쉽질 않아 보인다. 그만큼 세월의 갈퀴질에 시달리거나 코로나19 같은 희대의 역병에 발목 잡혀 쉽사리 어딜 가거나 움직이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그러나 지난 설 연휴 때의 귀성이나 나들이 차량의 이동은 작년에 비해 36% 늘어날 정도로 많은 움직임을 보였다. 4년째 코로나가 만연해도, 최근의 확연한 확진자 감소세와 정부의 방역대응 완화책 등으로 억눌린 가슴을 떨치기라도 하듯이 대다수의 국민들이 귀향길에 오르거나 여행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귀성, 성묘차량으로 전국 주요도로에 정체구간이 늘어나고, 겨울 축제장이나 재래시장에도 모처럼 북적이며 인파가 몰리는 등 코로나 이후 3년만의 ‘대면명절’에 활기를 띠는 모습들이다. 설 연휴 해외여행도 동남아와 일본 등으로 떠나는 패키지상품이 대부분 예약 마감되는 등 2020년 설 연휴 때의 52%를 회복할 정도로 활성화되고 여행심리가 되살아난 것으로 드러났다. 모바일과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명절의 풍속도가 다소 변화하고 있다. 귀성 교통정체를 피한 이른바 ‘역귀성’ 행렬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이고, 명절연휴에 가족단위의 해외여행이나 휴양시설 이용객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화상회의 앱 켜고 차례·세배·덕담을 나눈다거나 온라인 추모·모바일 성묘·모바일 세뱃돈으로 대신하는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활용추세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편리와 효율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삶의 양태가 전통의 가치와 고유한 풍습마저 조금씩 변모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시대의 변천 속에 풍습과 문화의 점진적인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은 어린이처럼/티없이 순한 눈빛으로/이웃의 복을 빌어 주는 새해 아침//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대하듯/언제 보아도 새롭고 정다운/고향 산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새해//새해엔 우리 모두 산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리/언제나 서로를 마주 보며 변함없이 사랑하고/인내하는 또 하나의 산이 되어야 하리’-이해인 시 ‘새해엔 산같은 마음으로’ 중설날에 즈음해 손수 만들어 으레 주고받던 연하장도 대부분 모바일 콘텐츠로 간편하게 나눈다지만, 필자는 수십년째 고집스레 화선지에 수묵을 곁들인 붓글씨로 새해 덕담을 써서 친척과 지인들에게 전하곤 한다. 작은 것 하나라도 산 같은 마음으로 소중히 지키고 오랫동안 이어가는 노력은, 산 같은 믿음과 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2023-01-24

불완전한 시선

전재영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데이터의 시선’이라는 제목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잠시 헷갈렸다. 데이터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인지? 아니면 나를 바라보는 데이터의 시선인지? 예전에는 후자의 경우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겠지만, 지금은 데이터가 나보다 나를 더 잘안다고 말하는 시대이기에 어쩌면 후자가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더이상 원유가 아니라 데이터”라고 말했다.“알고리즘에 낚여서”라는 말을 우리는 이제 너무 쉽게 하지만, 그 알고리즘은 사람의 행동과 말과 글을 관찰하고 모은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데이터 없는 알고리즘은 기름 없는 자동차와 같은 것이다.지금 빅테크 기업들은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언어모델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GPT, BERT, 그리고 최근 ChatGPT까지. 그리고 그 성능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처럼 시를 쓰고 심지어는 코딩까지 해준다.언어모델개발을 초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사람들이 작성한 온라인상의 수많은 글들을 Wikipedia, Fox News, CNN News 같은 사이트로부터 수집한 후, 이것을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훈련데이터로 사용하게 된다. 대표적인 훈련 방식은 주어진 문장에서 한 단어를 고의로 제거하고 그 제거된 단어를 예측하도록 컴퓨터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예측되어진 여러 개의 단어들 중 확률이 제일 높은 단어를 답으로 제시하게끔 하는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인공지능 언어 모델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훈련 데이터, 즉 우리 인간이 온라인상에서 생성한 글들이 항상 온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부족함과 불완전함, 우리의 선입관과 차별주의적인 편견 및 정치적인 색깔까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것이 우리 사람들의 글이기 때문이다.그런 불완전하고 편견을 가진 글을 훈련 데이터로 사용해서 학습된 인공지능 모델은 어쩔 수 없이 편견을 가진 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인간이 가진 시선이 인공지능의 시선이 되는 것이다. 데이터는 우리 인간의 시선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범죄자 재범률을 예측해서 보석 석방을 승낙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아프리카 미국계인에게 인종차별주의적 결정을 내려 한 때 큰 기사거리가 되었었다. 우리의 잘못된 선입관이 그대로 인공지능에 반영된 하나의 사례이다. 인종차별 기계를 만든 셈이다.우리의 불완전한 시선은 불완전한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불완전한 데이터는 불완전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며, 그런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우리를 불완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데이터의 시선이다. 그리고 때로는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도래하기도 한다. 완벽한 것을 창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고 신을 믿는 이유이다.우리의 디지털 행동이 데이터이고, 그 데이터가 인공지능을 만든다. 우리 모두가 인공지능 개발자라는 것을 잊지 말자.

2023-01-24

미래 동구 조성 영감 얻은 책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미래 도시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까.대구광역시라는 도시에 살고, 좁게는 대구광역시 동구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나는 늘 도시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특히 지난해 7월 대구 동구청장에 취임하면서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동구청장으로 동구라는 도시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동구를 어떤 도시로 만들어야 할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펼쳤다.저자는 최근 방송 등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유현준 교수로 방송에서 본 그의 말에 빠져 책을 읽게 됐다.책은 전체적으로 우리가 사는 공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집, 회사, 학교, 상업시설, 공원 등 우리가 생활하고 있거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공간의 미래를 살펴본다. 건축가이기도 한 저자는 앞으로 우리 공간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을 하기도 한다.인상 깊게 읽은 지점은 서울 한강의 전망과 뉴욕 허드슨강의 전망을 다룬 부분이다.저자는 서울강북에서 강남을 바라본 강변 풍경이 모두 똑같다고 말한다. 똑같은 모습의 20여 층짜리 아파트가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풍경.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울 강남의 모습이다.저자는 강남과 대비되는 장면으로 뉴욕을 말한다. 뉴저지에서 허드슨강 건너편에 있는 뉴욕은 각기 다른 높이와 모양의 빌딩들이 조화를 이루며 제각각 서 있는 모습이다.이런 뉴욕의 풍경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온다. 맨해튼의 강변 풍경이 멋있는 이유는 다양성이 만드는 적절한 불규칙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이 지점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다양성이다.도시 개발을 앞둔 동구에 큰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낙후된 도시 이미지가 강했던 우리 동구는 지금 도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신천, 신암, 효목 등에 재개발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고, 도시재생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공항후적지 개발을 앞두고 있다.공항후적지로 한정 지어 생각하면, 210만 평에 달하는 이 땅은 과연 어떻게 개발이 되어야 할까. 이 문제의 답도 책에서 조금 찾을 수 있었다. 분당보다 강남에 더 가까운 IT 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 하지만 이곳에 일하는 직원들은 판교를 떠나 성수동 같은 구도심으로 이사를 가기 바란다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빽빽한 건물, 건물 안에 들어오면 나올 일이 없는 구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을 봐야하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 섞여 쉬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지난해 10월 동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항후적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38.9%가 ‘테마가 있는 도심 숲, 수변 공간 조성’을 원했다. 주민들 역시 자연과의 조화, 쉼터를 바라는 것이다.공항후적지 개발을 앞둔 지금은 개발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시기다. 설문조사에서도 첨단산업 유치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자연친화적 개발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복합 상업 시설 조성을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210만 평은 매우 큰 면적이다. 다양성 있는 도시, 볼거리가 풍부한 도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도시가 되려면 지금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두 반영되었으면 한다.첨단산업 단지로 출근하는 직장인, 수변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는 가족, 복합 상업 시설에서 쇼핑을 즐기는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즐기는 공항후적지를 꿈꿔본다./김재욱기자

2023-01-24

방이라는 관

“요즘 관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시내에 있는 고시원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 이렇게 작은 관에서라도 마음 편히 지내자 마음먹었죠. 믿을지 모르시겠지만 사실 4년 전 제가 지금 가진 돈으로 아파트도 살 수 있었답니다.” (황수아 희곡, ‘가로묘지 주식회사’ 부분)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인 황수아의 ‘가로묘지 주식회사’는 집값 폭등으로 고시원 임대료마저 감당 못하게 된 무주택자들이 관에 세 들어 산다는 내용의 세태 풍자극이다. 미친 주거난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은 관마저 구하기가 어렵다.‘관(棺)’은 육체의 노화, 질병, 불의의 사고, 절망감에 의해 삶에서 죽음으로 떠밀린 인간의 최후 거처다.황수아는 관을 더 이상 밀려날 곳 없는 이들의 마지막 ‘방’으로 묘사하며 고시원의 하위 주거 형태로 두는 핍진한 상상력을 펼치지만, 사실 그 관의 이미지는 현실에서 원룸, 옥탑, 반지하, 고시원, 달방에 뚜렷하게 나타난다.그곳들에서 발생한 무수한 고독사들을 떠올리면 1인가구의 좁고 습하고 냄새나는 방은 확실히 관이다.지난해 여름, 폭우에 침수된 서울 신림동 반지하방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방이 관이 된 것이다.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김성규,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던 2004년의 시는 18년 지나 시참(詩讖)이 됐다. 한국사회의 외피는 화려해졌지만, 찬란한 빛은 더 짙은 그늘을 키웠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쓰러졌다. 집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반지하동굴’에 산다. 관 속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는다.침실과 거실과 부엌과 현관의 구별이 없는 방, 좁은 공간에 억지로 문 하나 끼워 넣어 화장실을 겨우 둔 방, 그마저도 없어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는 방, 집이라고 하기엔 거기 사는 그 자신도 민망해서 ‘방’이라고 부르는 방, 여기 계속 살다간 죽을 것 같은 방, 이미 내가 죽은 방, 사람이 죽어도 사람이 모르는 방, 닦아내고 긁어내고 집게로 건져서 사람이었던 주검을 수습해야 하는 방, 관인지 방인지 모르겠는 방, 아니 관. 그곳이 바로 한국사회의 원룸이다.원룸은 집을 포기하고, 집 비슷한 것을 포기하고, 그나마 집 같은 것을 또 포기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 사는 곳이다. “삼백에 삼십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동네 옥상으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이것은 연탄창고 아닌가/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아요/ (…) 삼백에 삼십으로 녹번동에 가보니/ 동네 지하실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이것은 방공호가 아닌가/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것 같아요”(씨 없는 수박 김대중, ‘300/30’)라는 노래에서 무주택자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으로 방을 구하러 다닌다.신월동에서는 옥탑 투어를 하고, 녹번동에서는 지하실 탐사를 한다.고작 “삼백에 삼십”으로는 옥상 연탄창고나 지하 방공호 같은 방 밖에 빌릴 수 없다.“삼백”은 사회초년생이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지닌 전재산이고, “삼십”은 한 달에 지불할 수 있는 최대치의 거주비용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공간은 계급이 된다. 이제는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에게 ‘임거’(임대아파트 거지)라고 부르는 세상이다.이 계급사회에서 원룸은 가장 비천한 세계다. 브랜드 아파트, 단독주택, 고급 빌라, 역세권 오피스텔이 카스트를 이룬다면, 계급 바깥의 원룸에 사는 장애인, 독거노인, 미혼모, 청년 예술가, 취업 준비생은 불가촉천민들이다.모두 다 소중한 생명이자 존엄 있는 인간, 하나의 개별적 우주이지만,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입장권인 ‘지상의 방 한 칸’이 없어 소외된 자들이다.심리적 문제, 취업 실패 등 여러 이유로 사회 진출을 포기한 채 외출 없이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은둔 청년’이 서울에서만 13만명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는 6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설 연휴에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러 집으로 가지만, 이들에게는 돌아갈 집도 떠나갈 집도 없다.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의 틈입을 차단한 그 방들이 부디 관이 되지 않도록, 사회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때다. 복지는 늘 사각지대를 향해야 한다.

2023-01-24

연두가 주는 믿음

기나긴 겨울이다. 겨울의 낮은 짧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되면 일부러 짬을 내어 산책을 한다. 귀한 겨울 볕을 맞으며 몸을 움직여보지만 급하게 밀어 넣은 점심 식사 때문인지 속은 더부룩하고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다.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모를 안양천 주변을 따라가며 이런저런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갈 때 쯤, 어느덧 시계는 12시 50분을 가리킨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10분 전, 커피 한 잔을 사서 다시금 자리로 돌아갈 때엔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를 불현듯 검사 받는 듯한 시큰둥한 기분이 더해진다. 그럴 때엔 자연스레 손바닥에 말랑하게 잡히는 책 한권을 떠올린다. 연두색 표지 속 콜리플라워와 와인잔 그리고 아티초크가 그려진, 소설가 한은형 작가님의 ‘오늘도 초록’이란 책이다.‘오늘도 초록’은 한 손으로 들고 읽기 좋은 작은 판형과 자유자재로 잘 구부러지는 부드러운 표지, 모난 곳 없는 둥그런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무광 재질의 얇은 종이는 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에 부드럽게 감겨 종이를 펄럭일 떄마다 기분 좋은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인 만듦새가 마음에 들어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책이지만, 물론 가장 좋은 건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맛있는 글의 내용이다. ‘이 모든 것은 완두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식물의 연두색에 꼼짝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완두콩 때문에 알게 되었다. 슈퍼에서 완두콩을 보면 늘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에. 어쩌자고 망사 주머니도 연두색인지… 연두색 망사 틈으로 보이는 완두콩의 꼬투리… 색과 형태가 완벽하다. 이 꼬투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가르고, 벌려, 콩알들이 얼굴이 내미는 순간을 보는 건 도무지 지루하지가 않은 것이다.’ (본문 중에서)‘그리너리 푸드’의 주제로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다보면 금새 배고파진다. 맛의 묘사와 음식의 생김새가 생생하게 묘사되고 전개되어 희미하던 입맛을 깨우고 눈빛을 반짝이게 한다.‘연한 낙지와 함께 먹는 은은한 미나리의 맛’, ‘달고 시큼한 장아찌의 냄새’, ‘말랑하고 순수한 아보카도의 맛’, ‘입 안을 자극하는 포도잎 쌈의 쌉쌀함’이나 ‘입맛을 돋우는 민트와 쿠민의 색’ 등 책에 등장하는 식재료들은 얼핏 보아도 비슷한 연두와 초록색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자신을 초록주의자라 칭하며 값나가는 필레미뇽의 소고기 스테이크보다 함께 곁들어 나오는 구운 야채를 더 좋아하고, 몸과 마음이 초록의 기운에 반응하는 사람이라 설명한다. 초록을 먹지 않고 두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초록과 연두를 대하는 열렬한 예찬은 깊고 풍요로워 단숨에 연두의 세계로 몰입되게 한다.또한 저자는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연두빛의 서양호박인 주키니를 맛있게 먹고 나선 다음날 주키니를 사서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이후 때에 따라 주키니에 버터를 넣거나 오일을 넣거나 새우를 넣어 자신의 입맛에 가장 맛있는 레시피를 만들어낸다. 재료의 조화와 조합에 신경을 쏟는 것은 물론, 먹는 시간에 따라 재료를 다르게 넣어 새로운 요리를 구상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낯선 식재료를 더 맛있게 연구하고 요리해 결국 내 입맛에 꼭 맞는 레시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우연히 마주한 이끌림을 끌어와 나의 것으로 누리어 삶의 애정을 더하는 자세가 무척 근사해 보였다. 저자가 정성스레 내어 놓고 이야기하는 모든 연두와 초록으로 이루어진 음식 외에도 살아있는 모든 것의 생생한 숨이 방울방울 매달려 부지런히 반짝이는 것 같달까. 봄을 알리는 색이라 불리는 연두는 메마른 겨울을 뚫고 새로운 생명을 틔워 자라난다는 점에서 싱그럽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지녔다. 또한 노랑과 초록의 중간색에 자리한 연두는 일상 속에서 새싹, 어린이, 자연 등의 색채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심리적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정신의 평화를 갖게 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책에서 연두를 발견한 이후로는 이제 막 고개를 드는 연두를 느긋이 바라보게 되었다. 연두가 품은 조용한 평화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다가오는 계절을 기대하게 되는 기분 좋은 믿음을 갖게 한다.회사 옆에 자리한 안양천의 산책로는 물길을 따라 고르게 깔려 있다. 퇴근 시간 이후 러닝을 할 때에 주로 택하는 장소기도 하다. 걷고 달리는 이 땅은 머지않아 새로운 연두의 세계가 펼쳐질 테니, 겨울 내내 쌓아 왔던 습관과 생활에 대한 애정을 착실히 들고선 새로운 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본다.

2023-01-24

아빠, 해고야

강길수 수필가 “아빠, 해고야!”지난 늦가을 오후, 냇가에서 다섯 살 맏손자가 제 아빠에게 불쑥 던진 말이다. 순간, 무슨 말인지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이는 이어 말했다.“아빠! 오늘 메뚜기 못 잡으면 해고란 말이야.”그제야 나도, 제 아빠도 녀석의 말을 알아들었다. 녀석은 같은 말을 서너 번 반복하며 아빠의 대답을 재촉했다. 아들의 당돌한 말에, 아빠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하긴 제 아빠가 낚시할 때, 여기서 메뚜기를 보았다고 녀석에게 자랑하며 잡으러 가자고 했다니 그럴 법도 하다. 내가 말했다.“그래. 우리 함께 메뚜기 부지런히 잡아보자!”우리 집 3대 남자 셋은, 이렇게 메뚜기를 찾아 나섰다. 벼를 베고 논이 텅 빈 지 한참 지났다. 냇가와 냇둑에 만발한 억새꽃이 소슬바람에 윤슬처럼 출렁인다. 풀들이 말라버려 메뚜기의 먹이가 될 만한 것은 드물다. 메뚜기는 잘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냇가를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나는 거의 손자와 함께 다니고, 녀석 아비는 조금 떨어져 다녔다.눈은 열심히 메뚜기를 찾으면서도, “이 녀석이 ‘해고’란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혹시, 제집에서 가족들 간에 썼나. 아니면, 유치원에서 배웠나.” 하는 의문들이 마음속에 오갔다. 냇가 억새 사이로 난 오솔길 좌우, 냇바닥 컬러포장 길 양옆, 마른 풀밭, 냇둑 등을 훑으며 메뚜기를 찾았다. 한편, 큰아이의 늦은 결혼으로 늦게 태어난 녀석이 어느새 커서 어른 같은 말도 쓸 줄 아나 싶어 대견하기도 했다.이윽고, 메뚜기 한 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메뚜기를 잡았다. 손자가 든 빈 생수병에 메뚜기를 함께 넣었다. 녀석은 메뚜기를 보며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생김은 벼메뚜기 같은데, 몸은 팥중이 색이다. 벼메뚜기가 냇가로 와 보호색 옷으로 갈아입었나 싶기도 했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손자 녀석이 말했다.“아빠, 이젠 해고 안 해도 돼. 메뚜기 잡았으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손자 녀석의 또렷한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녀석은 해고와 그 취소의 개념을 다 알고 있었던 게다. 후일 녀석 엄마에게 이 일을 물어보니, 어린이 만화 방송이나 동영상에서 배운 듯하다고 했다. 두세 시간 이어진 메뚜기잡이에서 우리는 서너 마리를 더 잡았다. 페트병 안에서 폴짝거리는 메뚜기들을 쳐다보는 손자 녀석의 얼굴에, 숫저운 ‘어린이 마음’이 하얀 꽃으로 활짝 피어났다.손자의 꾸밈없는 ‘어린이 마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불러왔다.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 설파하는 그는, ‘어린이 마음’을 어른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우리 사회는 분명, ‘어린이 마음’을 잃고 있다. 입은 ‘국민·민생·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속은 국민을 깔보며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인들…. 그들이 과연 ‘어린이 마음’을 알기나 할까. 꼭 밝혀내야 할 부정선거 이슈는 외면하고, 혐의자 방탄 국회만 일삼는 자들. 일말의 양심이 남았다면 부디, ‘어린이 마음’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3-01-19

까치 까치 설날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아이들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부르는 동요가 귓전에 맴도는 설날이 다가왔다.올해는 일요일이라 작은 설이라는 ‘까치설’과 대체공휴일을 더해서 4일 연휴이기에, 10여 년 만의 설날 한파가 예상된다고 하지만 가족 모두 한데 모여 한해의 건강과 풍요를 바라는 덕담을 나누는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음력 정월 초하루는 일제 강점기 때 구정(舊正)이라 했고, 국민 모두 땀 흘리며 일했던 박정희 시절에는 신정·구정 2중 과세(過歲)를 하지 말라고 공휴일에서 제외시켰고 전두환 때인 1985년에 ‘민속의 날’로 지정되었다가 4년 후 ‘설날’ 명절 이름을 되찾아 고향의 부모님 뵙고 가족과 친척의 만남으로 정을 나누는 4대 명절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그러나 세대의 변화로 고유한 민속 명절로서의 가치와 풍습을 이어나가려는 기운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설’이라는 어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새해가 되니 ‘낯설다’, 묵은해를 보내니 ‘서럽다, 섧다’, 한 해의 시작이니 몸과 마음을 ‘사리다’, 새로운 기운이 ‘서다’ 등이 있지만, 새해를 맞아 마음을 곧게 가지고 몸에 새로운 기운을 서게 한다는 뜻에 설날의 의미를 찾고 싶다.정월 초하루이기에 원일(元日) 원단(元旦) 등 처음이라는 뜻을 많이 쓰지만, 신일(愼日) 달도(601B5FC9) 등 삼가고 조심하자는 것도 있으니 마음가짐을 평온하게 하고 매사에 신중하는 삶의 자세로 설날을 맞이하자.올해는 코로나 방역 조치 해제 후 첫 설 연휴이니만큼 교통 정체가 심할 것이 예상되지만, 버스·철도·항공기·연안여객선 등 교통수단을 증편 운행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4일간 면제한다고 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고향을 찾아 가족의 안위를 묻고 사랑을 전했으면 좋겠다.설날 아침, 고운 설빔으로 갈아입고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차례(茶禮)를 지낸 후 웃어른께 세배드리고 세뱃돈과 함께 안녕과 건강을 바라는 덕담(德談)을 주시면 그 속에 가족의 훈훈한 정과 따뜻한 마음을 담아보는 것도 설날의 행복이다.그리고 둘러앉아 떡국을 먹으며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긴 가래떡 맛있게 먹고 구들목에 둘러앉아 윷놀이도 하다가 밖으로 나가 남자애들은 제기차기 딱지치기하고 아가씨들은 널뛰기하며 담장 너머를 살피기도 했었다.어른들은 들판에서 하늘 높이 연을 띄워 액운을 날려 보내기도 했지만 이제 사라져가는 우리 민족의 자취일 뿐, 요즘은 보기 어렵다.설날 새벽에 복조리 장수의 외침에 일어나 대나무로 만든 복조리를 몇 개 사서 부엌 기둥에 묶어두었던 추억이 있다. 지금 그 풍경은 사라졌지만 예쁜 끈으로 묶은 장식용 복조리를 사서 문간에 걸어두어야겠다.새해 첫날 새벽에 처음 듣는 짐승의 울음소리로 한해의 길흉을 점치는 청참(聽讖) 풍습에는 까치 소리를 들으면 길하고 까마귀 소리는 흉조라 하니, 고운 댕기 들이고 예쁜 설빔 차려입은 손자 손녀에게 세뱃돈 던져주면 할배 할매 부르며 깔깔대고 안겨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족의 행복을 가져오는 까치 소리가 아닐까….

2023-01-19

제2의 바라카 기적

우정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으로 유명해진 바라카 원전을 우리는 ‘기적의 원전’ ‘사막의 기적’이라 부른다. 한번도 원전 수출을 해본 적이 없는 한국이 세계 최강 원전기술을 자랑하는 프랑스를 제치고 UAE 원전 수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막의 모래 폭풍과 50도가 넘는 열사의 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는 원전을 온전히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4년동안 한국측은 약속한 기일과 예산 범위 내에서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 외부 환경에 민감하고 고도의 안정성이 요구돼 툭하면 늦어지기 일쑤인 원전 준공일을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한국은 이를 지켜낸 것이다.UAE 모하메드 대통령이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대한민국”이라 치켜세웠고 “바라카 원전을 통해 쌓은 양국의 신뢰”라 언급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폴란드 원전 수주전이 벌어졌을 때도 우리나라가 제일 강조한 장점은 예산과 공기를 정확히 지킨다는 사실이었다. 폴란드 일부 언론은 “한국이 덤핑하기 때문에 불리한 조건을 수용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으나 UAE가 보여준 한국에 대한 신뢰는 한국 원전의 대외 신인도를 올리는 데도 한 몫할 전망이다.바라카 원전은 한국전력이 주계약자로 사업을 총괄하고 한국수력원자력, 두산, 현대, 삼성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공정 전과정에 참여하는 팀코리아 형태로 일하고 있다.한국기업들의 팀워크와 끈질긴 근성, 땀 등이 모여 국가의 신뢰를 높인 것이나 다름없다. 열사의 사막에서 선전한 우리기업의 투지가 제2의 바라카 기적을 다시 만들지 국민적 기대가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1-19

포항시가 꿈꾸는 ‘영일만밸리’ 꼭 실현되길

새해들어 2주간(3~17일) 미국 최대 IT박람회인 ‘CES 2023’을 참관한 후 신산업 핵심도시들을 견학하고 귀국한 이강덕 포항시장이 포항을 ‘영일만밸리’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지난 18일 포항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한 이 시장은 “포항에 수도권 판교밸리와 미국 실리콘밸리를 능가하는 신산업·스타트업 거점인 영일만밸리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신산업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미국의 피츠버그, 샌디에이고 같은 도시와 네트워킹을 강화해 포항경제의 방향과 비전을 명확하게 설정한 후, 반드시 경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포항은 이번 ‘CES 2023’에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용 부스인 ‘포항관’을 설치했다. 포항관에는 ‘CES 혁신상’을 수상한 기업을 비롯해 포항지역 30개사가 참가해 세계와 경쟁할 혁신기술력을 전시했다. 이 시장은 CES 참관과정에서 미래형 교통시스템인 ‘테슬라 베가스 루프’를 시승하고, 테슬라 기술 책임자와 투자조건 등에 대해 논의하면서 ‘테슬라 기가팩토리 유치’ 의지를 다시한번 확인했다.이 시장 일행이 CES 참관 후 미국 내에서도 미래신산업 핵심도시로 평가받는 피츠버그시와 샌디에이고시를 방문해 교류를 논의한 것은 잘한 일이다. 피츠버그시는 포항과 유사한 성장 배경을 가진 도시다. 특히 이 시장 일행이 피츠버그시에서도 ‘한국의 판교밸리’와 같은 엘러게니 카운티의 단체장을 비롯해 피츠버그대학, 카네기멜론대학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만나 창업생태계 혁신 전략을 공유하고, 스타트업 교류 플랫폼 등에 대해 논의한 것은 큰 성과다.이 시장이 이번에 CES 참관단을 이끌고 글로벌 혁신제품과 기술을 견학한 후, 신산업 핵심도시와 연구소를 방문한 것은 포항의 미래를 위해 둘도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포항시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미래산업이 성공하려면 국제 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시장이 구상하고 있는 신산업이 포항에서 뿌리를 내려 영일만밸리가 ‘제2의 실리콘밸리’라는 소리를 듣기를 기대한다.

2023-01-19

실내마스크 해제 초읽기… 긴장감 유지해야

정부가 설연휴 직후와 다음달 초 사이에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할 것으로 보인다. 방역당국은 “국가감염병대응자문위원회로부터 실내마스크 착용의무 조정평가 지표 4가지 중 3가지 정도가 달성됐고, 유행상황이 정점을 지났다는 의견을 받았다”고 밝히고 20일 “중앙재난본부에서 조정 시기를 밝힐 것”이라 했다.평가지표 4가지는 △주간환자 발생 2주이상 연속 감소 △주간 신규위중증환자 전주대비 감소와 주간 치명률 0.10%이하 △4주내 동원가능 중환자병상 가용능력 50% 이상 △동절기 추가 접종률 50∼60% 이상 등이다. 당국은 이 가운데 추가 접종률을 빼곤 모두 달성된 것으로 밝혔다. 코로나19 최근 상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주간 일평균 신규환자수는 지난 8∼14일 4만2천938명으로 전주보다 27.5%가 줄었다. 위중증환자와 일평균 사망자도 10% 이상 감소했고, 환자 1명이 주변사람 몇 명을 감염시킬 수 있는지를 수치화한 감염재생산지수도 0.85로 2주연속 1미만을 기록했다.대한상의가 국민 1천6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4.8%가 실내마스크 착용 해제를 원했다. 코로나19 환자 발생 정도나 국민 여론까지 실내마스크 해제로 향하고 있어 당국도 실내마스크 해제를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발생 3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6억7천여만명이 감염됐고 이로 인해 600만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국내서도 10명 중 7명이 감염되고 3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전대미문의 질병으로 경계심을 풀기엔 아직도 찜찜한 부분이 남아 있다.중국발 감염세가 여전히 불안하고 변이 발생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당국이 실내마스크 해제를 단행하더라도 국민 각자는 질병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마스크를 쓰는 자율적 방역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또 당국도 코로나 이후 일어날 일상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에 얼마나 많은 충격과 희생을 요구했는지를 되돌아보고 고단위 방역망을 갖추는 데 한층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23-01-19

여당의 폭주

홍석봉 대구지사장 ‘진박감별사’가 정치권에 재소환됐다. 국민의힘 내홍이 여당의 아픈 상처인 ‘진박감별사’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현재의 여당 상황은 2016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의힘이 전당 대회를 앞두고 내홍이 깊어지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친윤세력으로부터 불출마 압박을 받아온 나경원 전 의원이 코너에 몰리자 친윤계를 공격하며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나경원 전 의원은 “제2의 진박 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됐다”고 했다. 장 의원을 2016년 총선 당시 공천 칼자루를 휘둘렀던 친박계 중진에 비유한 것이다. 당시 ‘공천 파동’과 ‘옥새 파동’이 터지면서 압승이 유력했던 새누리당은 패하고 만다.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판세가 급격히 불리해지자 대구 지역 새누리당 후보들이 두류공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 퍼포먼스까지 벌였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회초리를 들어주시라”며 지역 정서를 자극하는 극약처방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는 결국 탄핵과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친윤계 초선 의원들이 나 전 의원 비판 성명서를 발표하며 나 전 의원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상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급기야 친윤, 비윤, 반윤, 진윤, 멀윤으로 분화됐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 당시와 흡사하다. 배경엔 차기 총선 공천권이 자리하고 있다. 차기 총선을 위한 ‘줄서기’다. 이 줄을 놓치면 공천은 물건너가기 십상이다. 현역 의원들이 동아줄을 잡기 위해 줄 서는 모습이 역력하다.대통령 바라기는 점입가경이다. 거대야당의 횡포를 나무라던 여당이었다. 그런 여당이 한 솥밥 전 동료 의원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고 있다. 초선들까지 집단 가세, 마구 핥퀴고 있다.나 전 의원의 발언이 정부 기조와 다르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다. 대표 출마를 막기위해 벌떼같이 덤벼들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 징계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경선 룰을 ‘당원 투표 100%’로 바꿔 반윤인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 논란이 됐다. 다시 나경원 솎아내기로 눈총받고 있다. 여당의 잇단 비상식적인 폭주에 국민은 머리를 젓고 있다.당 분열을 우려하는 내부 위기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자해정치’라는 비판까지 나온다.친윤계의 대응에는 나 전 의원 간판으로는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나 전 의원이 대표가 될 경우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공천권을 쥐고 당을 장악해야 다음 총선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이다. 당내 기반이 약한 윤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할 우군 확보도 절실하다. 하지만 유승민과 나경원 등 비주류의 대표 출마를 저지하기 위한 당의 일사분란한 모습이 국민에게는 온당치않다는 느낌을 준다.현재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다한 사람들이다. 국민의힘의 내분은 정치 불신을 더할 뿐이다.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국민의힘의 분열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2023-01-19

나목(裸木)을 읽다

배문경수필가 팔다리가 앙상하다. 바람 한 점 붙들 힘조차 없다. 겨울바람이 팔과 다리 사이로 쌩쌩 지나간다.남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양옆으로 서있는 나무들이 한결같다. 하나같이 헐벗은 노인의 몸피 그 자체다. 예수나 석가모니가 저런 모습이었을까. 탁발승의 모습이다. 아! 모두 다 내려놓고 서있는 나무가 고행하는 성자 같다.나무가 서 있는 길가를 벗어나면 들판은 바람소리로 가득하다. 날아온 까마귀 떼들이 낟알을 주워 먹는지 전선위에 앉았다가 떼로 몰려와 논을 새까맣게 수놓는다. 저들도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해 가벼운 몸피로 수십 킬로를 날아다닌다. 겨울의 풍경이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다.다 버리지 않고 어찌 가벼워 질까. 허공을 날아야하는 새들의 숙명이다. 저 가벼움을 위해 부리로 씨앗을 쪼아 먹고 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더 빨리 나는 생존을 몸속 깊이 유전(遺傳) 받았을 새. 새들도 나목처럼 뼛속을 비워 겨울을 난다. 지나가는 구름 한 조각은 새 위에 얹힌 그림자로 상상의 새처럼 크다. 그것 또한 가볍기만 하다.새는 자유를 찾아 난다지만 서있는 겨울나무는 제 뿌리로 단 한 보를 옮기지 못한다. 그래도 살아남아 내일로의 순환으로 이어져 갈 것이다. 바람이 사지를 흔들며 멱살을 잡고 비가 온몸을 적셔도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다. 그 무엇이 자신을 훑고 지나가도 변함없는 것으로는 나무만 한 것이 있을까.장기유배지를 다녀왔다.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포항 장기 유배지인 장기숲(장기임수)을 보았다. 한양에서 천리나 떨어진 외진 곳이다. 그 곳에는 송시열이 심은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다산이 머물던 곳에는 유림(儒林)인 느릅나무 숲이 있었다. 우암은 가정과 향당과 조정에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실천한 참 선비였다. 큰 눈으로 보면 그가 추구한 세상은 의리가 존중되고 예의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문명의 세상이었다.“….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옥이 깎고 가는 바람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는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의 부분이다. 두 거장이 내 몰린 곳에서 나무는 귀향 살이 하던 그들의 마음처럼 세상의 고뇌로 메말라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메마른 삶을 산다는 것은 힘들다. 정년을 앞둔 직장생활은 편치 않다. 활기차고 진취적인 젊은 날과는 달리 경기의 후반을 뛰는 선수처럼 승부에 마지막 온 힘을 부어 스스로를 태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수강했던 인생 재설계 과정이 생각난다. 백세시대, 즐거움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삶의 욕망과 집착을 접어 몸과 정신을 가볍게 비워내야 오늘과 내일을 살 수 있다.내일을 채울 또 다른 준비는 젊은 날과는 다른 생각과 대책이다. 좀 더 깊어진 인생의 연륜을 이용해서 지혜롭게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 주위에 서서히 정년을 맞아 자신의 의자를 뒷사람에게 물려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늘어나는 노인의 숫자와 더불어 실버가 실버를 간호하는 세상이 왔다. 젊은 노인세대가 세상의 빈 곳을 채울지도 모른다.어느 날부터 꽃과 잎을 다 털어낸 겨울나무가 좋아졌다. 자신을 향해 깊게 파고들어 기도하는 저 나무가 나의 저변에 깔린 손톱크기 밖에 안 되는 자존심과 깜냥을 비웃는 듯하다. 단단함과 고요함으로 나를 일깨운다. 수묵화처럼 배경과 나무색만으로도 그 깊이를 짐작할 명작(名作)이다.추사의 세한도는 귀양길에서 만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낸 그림이다. 그 당시 제주도에 유배를 간 그에게 제주도라고 덜 추웠으랴.이번 겨울은 조금 더 춥다. 나이가 주는 사회적 한계를 체감한다. 나이만큼 무거워지는 여건은 저 겨울나무가 묵언처럼 제시하는 침묵(沈黙)과 구도(求道)만이 답이 아닐까.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나무가 오늘 아침, 안부를 묻는다.“그대, 오늘도 안녕하신가?”

2023-01-18

<1> 당나무의 예언으로 공매에 참여하다

경북매일은 계묘년 새해를 맞아 서진국 작가의 단편소설 ‘당나무의 약속, 부동산 신화’를 연재합니다. 소설 ‘당나무의 약속, 부동산 신화’ 는 1950년대 삶의 각오를 1980∼1990년대 부동산 투자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기업체 사장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격주 목요일 6회에 걸쳐 소개될 예정입니다.1. 껄껄껄,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다고, 허참! 동네 입구에 목 좋은 요지 땅에 서 있는 당나무가 말했다. 귀신도 빌딩은 쳐다봐야 한다고 또 깔깔댄다. 옛날 같으면 빙의가 된 당나무 앞에서 감히 여자들이 깔깔 되다니, ‘세월 이긴 장사 없다더니….’ 하면서 당나무가 혀를 찼다. 선돌가 마을 입구에는 수백 년 된 수령을 알 수 없는 당나무가 있다. 주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는 위치에 따라 당나무가 될 수 있는데, 마을입구나 신당 곁에 서 있으면 당나무가 되어 마을을 지킨다. 당나무는 그 나무에 신령이 나무를 통로로 하여 강림하거나 그 곳에 머물러 있다고 믿어지는 나무를 말한다.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은 태백산맥 꼭대기에 있는 나무 신단수 밑에 강림하였다. 신목 신앙이 한민족의 태초부터 시작하였음을 알려준다. 고조선 이래 신목에 대한 신앙은 무와 더불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내려온다. 옛날부터 땅의 정기가 하늘과 통하는 곳에 신당을 지어 놓고 제사를 지냈다. 마을을 수호하고, 마을 주민들의 긴 삶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당나무도 결국 그가 서 있는 토지 위치에 따라 그 신분이 결정된다.태백산맥이 동해바다에 다다라 다시 불끈 솟은 선돌가, 마을 입구 최고 요지에 서 있는 신목이 된 당나무는 마을은 물론 국가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꿰뚫고 있다. 소박맞은 여자가 이 동네를 떠날 때도 잠시나마 당나무 앞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떠났고, 나무 위에 모여 있던 학들을 총으로 쏘려 던 포수를 벼락 맞게 한 것도 그랬다. 남남쪽 월남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맹호부대를 따라 떠났던 박씨도 여기서 애인과 포옹하다 끝내 떠나고, 슬프게도 전사했다는 통지만 돌아왔다. 가난해서 목숨을 담보로 한 머구리의 슬픈 애환의 사연도 서글프다. 선돌가 당나무에는 또 다른 큰 비밀이 있었다.선돌가에서 친구같이 자란 당나무는 김 사장과 반드시 지켜야 할 운명의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당나무가 지금처럼 자라 신목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김 사장의 역할이었다고 당나무는 생각하고 있다. 날씨가 가물어 목이 말라 갈기갈기 말라 죽어 갈 때도 그렇고, 도로가 새로 나게 되어 당나무가 대형 포크레인에 베어 쇠톱으로 동강동강 잘릴뻔 한 것 모두가 김 사장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여 우회 도로가 나게 한 것이다. 당나무는 김 사장에게 신목의 주술을 걸어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태수의 빙의를 씌워준다. “태수 태수 비게 태수 용마람에 대장” 지붕 위에 있는 용마람 최고 태수 대장에게 도술을 부려 달라고 맡겼다.김 사장은 용마람 태수 대장의 신령으로, ‘당나무의 약속, 부동산 신화’라는 한편의 신의 계시를 서술한다. ‘부동산 신화’는 부동산으로, 인생역전을 이룩한 생생한 실제 체험 사례를 바탕으로 기술 한 것이다. 김 사장은 지난 밤에 당나무의 신령스러운 꿈을 꿨다. 당나무가 자기 자리를 내놓으면서 거기에 앉으라고 한 것이다. 평소에도 김 사장은 마을의 수호신인 그 당나무를 믿고 있었다. 김 사장이 A토지구획정리조합으로 아내와 함께 승용차로 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조합이 마련한 회의실에는 수백 명의 인파가 웅성대고 있었다. 민간 조합에서 체비지를 공개 추첨을 통하여 매각하고 있었다. 남자들보다도 여자들이 더 많아 보였다. 여기저기서 몇 명씩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으나 대부분 초조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김 사장도 이번에 조합에서 매각하는 체비지 공매에 참여하기 위해 5일 전에 미리 입찰보증금을 입금하고 오늘 공개 추첨을 통한 매각 절차에 참여하고 있었다. 입찰방법이 감정가로 해서 입찰 통에 넣고 입찰표를 공개적으로 뽑는 방법이었다. 복불복이었다. 김 사장은 조합이 매각하는 토지 중 가장 요지 중의 요지의 두 필지에 참여했다. 먼저 한 필지에 87명이나 투찰한 토지부터 공매 절차를 진행했다. 조합에서 입찰에 참여한 사람이 너무 많아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참여한 필지부터 개찰했다. 서진국 작가 민간이 하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은 행정기관에서 도시계획으로 지구단위계획구역을 지정한 곳에 토지소유자들이 민간조합을 만들어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원칙적인 측면에서 보면 토지소유자들이 일정한 동의 형식으로 구성한 조합이 시행사이고, 조합이 직접 택지개발을 할 능력이 없으므로, 그러한 능력을 가진 건설업체 등과 계약을 체결하는데, 이를 시공사라 한다. 일반인들이 토지구획정리지구에 부동산을 투자하면, 대체로 안전하면서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투자의 방법 중 하나이다.구획정리 방식의 토지의 변화는 당초 자연녹지 상태에서 도시계획으로 지구단위 계획이 지정될 때 가장 가격이 폭발적으로 뛴다. 그 후 조합이 구성되어 개발 계획이 승인되어 큰 도로망이 나오면 다시 한 번 가격 상승 요인이 생긴다. 산을 깎는 등 본격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실시계획이 승인되면 필지별 감정을 하여 환지예정지를 지정하는데 이때가 되면 자기 토지의 위치를 알 수 있어 또 한 번 토지의 신분이 변한다. 마지막으로 사업이 완료되어 환지처분이 되면 모두 건축이 가능하고 신번지가 나와 등기가 된다.

2023-01-18

건강하고 오래 사는 법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예전엔 노인이 하는 ‘어휴, 죽어야지’라는 말이 삼대 거짓말 중 하나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너무 아파서 힘들다 하는 하소연이지만 그럼에도 내심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일 것이다.옛 원전에도 이러한 장수와 관계된 구절들이 있다.‘상고시대에는 도를 알았기 때문에 음식에는 절도가 있었고 생활에는 법도가 있어 함부로 힘을 쓰지 않아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이야기이다.스트레스를 받으면 심박수가 늘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동공은 확장되며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이는 위급한 상황에 소화기로 도는 혈액을 근육으로 보내어 빠른 판단으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몸의 반응이다.문제는 요즘 우리가 겪는 생활에서 이러한 상황이 너무 잦다는 것이다. 업무에 대한 부담, 가족들과의 불화 등 생활 전반에 걸쳐서 신경 쓸 일은 자꾸만 늘어간다. 스트레스에 과다 노출되면 자주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해지며 불안감도 심해지고 불면증도 생긴다. 소화기의 기능이 떨어져 만성 위염 등이 생길 수 있고 이런 건강 악화는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만성적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코르티졸이 분비되는데 이는 일종의 면역 억제 상태를 유지시켜 감염성 질환이나 암 등의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으로 지목받는 것이다.‘황제내경’에서는 ‘뜻을 가라앉혀 욕심을 적게 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수고롭게 하여 게으르지 않게 하면 기가 순조로워져서 각기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 모두 원하는 바를 얻었다’라 하여 스트레스의 원인을 멀리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대해 욕심을 가진다는 것은 어떠한 일을 해내기 위한 추진력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마음이 편안할 정도의 욕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행동하면 만성적 스트레스 상태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동의보감’에는 장수하는 섭생법으로 고치법(叩齒法·치아를 부딪히는 것)과 호흡법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이는 일종의 명상법으로 편향 집중된 생각을 환기시키고 고치, 호흡 등의 부담없는 동작들로 주의를 돌림으로써 만성 스트레스의 상태를 빠져나오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신경을 쓰지 말아야지’를 실천하는 것보다는 스트레스 받지 않는 다른 작은 일에 신경을 쓰는 편이 훨씬 쉬운 것이다.수천년 동안 많은 사람의 관심사였던 오래 사는 법에 관한 이야기가 과거나 현재나 비슷하다는 것은 묘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우리는 진시황이 찾아 헤매던 불로초를 곁에 두고도 먹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해를 맞아 그간 너무 오래 달리기만 하여 내 마음이 지친 것은 아닌지 올해는 다른 무엇보다 나를 좀 더 아껴주는 한해를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23-01-18

예정된 미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방대학에서 근무하다보니 출산율에 민감한 편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국가거점국립대학으로 주변의 사립대학에 비해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조금씩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올해부터 우리 대학은 ‘탄력정원제’라는, 경쟁력이 없는 학과의 정원을 인기 있는 학과에 배분하는 제도를 시행한다. 인문대학에 정원 미달인 학과가 있는 까닭에, 입시철이면 경쟁률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났다.1인 가구는 세계적 추세이지만 출산율이 1이 안 되는 나라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출산율 감소는 한국 고유의 문화인 셈이다. 통계에 의하면 2005년 이후 43만 명 이상을 유지하던 연도별 출생아 수는 2016년 4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지고 이후 급감하여 2022년 25만 명 수준이 되었다. 출생아 수가 43만 명 이상을 유지하던 시절 태어난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는 현재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2016년 출생아가 대학에 입학하는 2035년 이후의 상황은 상상조차 두렵다.출산율의 급격한 감소라는 한국적 문화 현상에 대한 치밀한 분석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때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가 정당 내부의 역학관계에 따라 사직하면서 널리 알려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2005년 출범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5년은 40만대 후반을 유지하던 출생아 수가 43만으로 급격히 떨어지며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점이다. 이후 현재까지 단체는 유지되었지만, 출생아 수는 20만대로 진입했다. 이 정도면 진작 해체해야 마땅한 조직이다.2023년에 출생아 수는 어디까지 또 떨어질까? 어쩌면 출생아 수를 늘릴 고민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준비를 하는 편이 현명한 것일 수 있다. 사람과 로봇이 함께 어울릴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점점 심각해지는 ‘고독사’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뭐 하나 쉽게 답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우리는 이런 물음에 답을 찾을 준비가 되어있나.입학정원 감소라는 정해진 미래를 앞두고 대학개혁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산업 동향과 취업률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현재의 방향성이다. 그런데 한국 대학은 20년 전부터 비슷한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인문학은 20년 전에도 지금 현재도 위기다. 산업과 자본의 시각에서 인문학은 언제나 불필요한 지식이었기 때문이다.‘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정치의 수단으로 저출산 문제를 다루어서는 지금까지 그랬듯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개혁은 눈앞의 산업 동향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의 변화 방향에 대한 협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가령 앞서 제기한 미래 사회 로봇과 인간의 공존이나 고독사 문제에 대한 질문과 그 해법을 찾는 곳이 대학이 되어야 한다. 시각을 바꿔야 예정된 미래를 조금이라도 웃으며 맞을 수 있을 것이다.

2023-01-18

한달만에 성과나온 ‘대구시 태양광 프로젝트’

대구도심 산업단지 지붕에 민간자본 3조원이 투입돼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그저께(17일) 첫 스타트를 끊었다. 프로젝트 1호사업의 주인공은 북구 제3산업단지에 있는 대아건재다. 대구시는 이날 홍준표 시장과 한화자산운용(주)·5개 협력사·7개 산업단지관리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아건재에서 프로젝트 첫 사업을 자축하는 착공식을 가졌다. 지난해 12월 12일 업무협약(MOU)을 체결한지 약 한달만에 이뤄진 성과다. 대아건재는 새로 신축한 건축물에 태양광 271㎾를 설치하며, 앞으로 25년 동안 연간 최대 약 1천200만원의 임대료와 앞으로 제안사가 제시한 각종 혜택을 추가로 받게 된다.태양광 프로젝트 첫 사업이 이처럼 빠르게 진행된 것은 홍 시장이 지난해 취임한 직후 가동한 원스톱기업투자센터가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 센터는 기업이 대구시에 투자를 약속할 경우 1~2개월내 공장까지 지을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신설된 기구다. 얼마전 2차전지 양극재 생산기업인 엘앤에프가 대구시와 대구국가산업단지 내 공장 건립 MOU를 체결한지 한달만에 건축허가를 받은 사례가 있다. 대구시는 원스톱기업투자센터의 업무를 효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 연말 관계전문가 20명을 ‘원스톱 투자지원 자문단’으로 위촉하기도 했다.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각) 순방에 동행한 기업인들에게 “저는 대한민국 영업사원”이라면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제라는 각오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이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한다. 특히 비수도권 공직자들은 새해들어 지역경제의 위기를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있을 것이다.공직자 개개인이 기업 영업부서나 기획부서의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홍 시장이 원스톱기업투자센터와 자문단을 운영하면서 공직사회의 관료주의적 타성을 깨기 시작한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2023-01-18

고교평준화제도의 명과 암

홍석봉 대구지사장 중학교 교육이 고교입시 위주로 과열되자 교육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학교별로 선택 지원하는 고교입시를 폐지했다. 고교평준화제도다. 교육격차를 줄이고 교육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일반계 고교는 학생을 선발하지 못하고 학생들은 지역별로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받는다.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첫 시작됐다. 1975년에는 대구·인천·광주가 1979년에는 대전·수원·마산·전주·제주·청주에서 시행된 후 중소 도시까지 확대됐다.하지만 학력 저하, 교육여건 미비 등 문제가 발생했다. 학부모 등이 반발하자 일부 지역에서 평준화를 해제했다. 2000년대 이후 다시 적용지역을 확대했다. 2008년에는 포항에서 고교평준화제도가 시행됐다. 이 제도는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렸다. 고교 진학을 위한 입시 과열을 막고 학력 격차를 줄이며 학생 간 위화감을 없앨 수 있었다. 반면 교육의 하향평준화, 학생의 학교선택권 제한, 교육의 획일화, 사립고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2023학년도 대입수시합격자 발표 결과 비평준화 때 한해 30여 명을 서울대에 합격시켰던 지역 명문 포항고가 고교평준화 이후 쇠락을 거듭, 올해는 단 한 명의 서울대 합격자도 내지 못했다. 대신 포항영신고와 동성고는 각각 4명씩 합격했다. 평준화의 명암이다.기대됐던 사교육비 감소와 과열 교육 해소의 효과는 별로 없었다. 학습 부담을 줄이지도 못했다. 보완책으로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율학교, 자립형 사립고 등이 도입됐지만 또 다른 1류고를 낳았다.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평준화제도다. 교육의 기회균등과 경쟁을 통한 수월성 추구라는 상반된 이념을 조화시킬 방안은 없을까./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1-18

경북, 이제 K-원전 중심지로 나아갈 때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으로 국내 원전산업의 정상화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UAE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안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300억 달러(약 37조원) 투자를 약속받았다. UAE는 원전과 방위산업, 금융, 문화교류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원전선 소형모듈원전(SMR) 등 미래 원전기술개발에 양국이 협력하고, 원전 수출시장을 공동개척 한다는 것이 골자다. 윤 대통령은 한국형 원전 수출 현장인 UAE 바라카 원전도 방문했다. 바라카 원전은 우리나라 최초 수출원전이다. 경북 울진 신한울 1호기와 동일한 기종이다. 작년 12월 가동을 시작한 신한울 1호기는 대한민국 27번째 원전으로 원자로 냉각재펌프 등 핵심설비를 국산화한 차세대 한국형 원전(APR 1400)이다.경북은 국내 원전의 절반을 보유한 원전시설 중심지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기술, 원자력환경공단 등 원전관련 기업 등도 집중돼 있는 곳이다. 또 경북도는 SMR 산업단지와 혁신원자력연구단지 조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원전시설과 기업, 연구소 등이 집중된 경북이 원전산업의 중심지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구슬 서말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많은 원전시설을 잘 엮어 경북을 K-원전 중심으로 키우는 일은 경북도와 지역 정치권의 역할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원전 르네상스를 향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주춤했던 원전이 최근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 등과 맞물려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 새 정부의 원전 생태계 복원 노력도 본격화되고 있다.국내적으로는 신한울 3·4호기가 내년에 공사를 시작하고 원전생태계 복원을 위한 예산도 대폭 늘어난다. 대외적으로는 원전 수출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윤 정부는 2030년까지 10기 원전을 수출한다는 것이 목표다. 원전관련 시설이 집중된 경북으로서는 K-원전의 중심에 설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신한울 1호기 하나만으로 울진지역 경제가 호전되듯 경북이 국내원전 중심지로 자리를 잡는다면 소멸위기 경북의 회생도 가능하다. 당장 준비에 나서야 한다.

2023-01-18

일자리만큼 문화가 급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지역의 인구 위기가 전국뉴스에까지 다루어졌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누구도 신통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가히 대학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역에서도 졸업과 함께 젊은이들이 사라진다. 뉴스에 등장한 청년들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발견하지 못한 걸 첫째 이유로 꼽는다. 혹 두 번째 까닭을 물어는 보았는지.필자가 대학에서 발견한 또 하나 중요한 까닭은, ‘지역에는 재미가 없다’였다. 문화적 토양이 척박하고 삶을 풍성하게 할 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혹 수도권과 비슷한 무엇이 있다고 해도 규모나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같은 값이면 지역이 아닌 큰 도시에서 즐기고 싶다고 한다.무엇이 있어봤자 수도권에는 이미 있었던 게 뒤늦게 펼쳐진 정도라고 평한다. 4년 이상 머물러 공부했던 지역에 대하여 그들은 이처럼 부정적이다. 대학이 지역에 있어도 ‘지역의 대학’은 아닌 셈이다. 짧지않는 시간이었음에도 지역은 대학생들에게 비전과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 터이다. 대학생들이 재학 중에 지역에서 재미와 보람을 찾고 졸업 후에도 머물러 삶을 이어가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문화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역에 문화가 있다는 말은 타지와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뜻이어야 한다. 타지에도 있는 걸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면 모방 또는 추격이면 몰라도 지역의 문화라 부르기엔 부족한 게 아닐까. 다른 곳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 만나보지 못한 볼거리, 맛보지 못한 먹거리와 찾을 수 없는 놀거리가 우리 지역에 있어야 한다. 문화가 힘이 되려면 차별성과 독립성이 느껴져야 한다. 달라야 하고 여기에만 있어야 한다. 놀라워야 하고 타지에는 없어야 한다. 비슷한가 싶어도 다르게 만들어야 하고 이곳이 아니면 찾을 수 없어야 한다. 희소성이 있어야 문화가 되고 독창성이 보여야 사람이 모인다. 지역의 분위기에 문화의 상상력이 넘실거리면 재미를 느낄 발길이 머물게 된다.문화에 젊은 감각을 실어야 한다. 대학생 청년층과 다음 세대에 주목해야 한다. 문화를 ‘옛 모습을 복원하는 정도’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름다운 전통을 살리고 멋진 이야기를 재현하는 일이 소중하지만 젊은이들이 즐기고 누릴 만한 재미를 싣지 못하면 구태를 찾아낸 이상의 의미를 건질 수 없다. 멋진 옛이야기와 오랜 전통에 오늘의 감각을 실어 쉽고 재미있게 나눌만한 문화상품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어린 세대가 반기는 문화가 만들어질 때 문화에도 비전이 실리고 미래가 열린다. 멈춰선 느낌을 가져야 문화라 여기는 생각을 벗어야 한다. 문화를 청년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일자리를 찾는다 해도 재미가 없으면 지역은 또다시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고 만다. 문화의 마당에 젊은 감각이 흐르고 청년문화가 깃들며 다음 세대가 호흡해야 한다. 굳이 붙들지 않아도 찾아와 머무는 지역이 되려면 문화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다른 지역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문화콘텐츠에 젊은 감각을 입혀야 한다. 문화가 지역의 내일을 당기도록 이끌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2023-01-18

포항 고교생 학력저하, 한숨만 쉴 때가 아니다

지난 2008년 전면적인 고교 평준화제도 시행 이후 포항지역 고교생의 학력수준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본지가 올해 포항지역 고교의 서울대 수시합격자 수를 집계한 결과, 일반계 14개 학교 중 포항영신고(4명)와 대동고(1명)만이 합격자를 배출했다. 반면 자립형사립고인 포항제철고(13명)와 경북과학고(2명), 농어촌특별전형을 적용받는 동성고(4명)와 오천고(1명) 등 4개 학교는 20명을 합격시켜 일반계 고교와 대비됐다. 과거 명문고였던 포항고는 한해 30명 이상 서울대에 진학했지만, 고교평준화 이후 계속 학력이 떨어져 올해는 1명의 합격자도 내지 못했다. 포항여고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성적우수 중학생들이 포항고와 포항여고에 줄지어 유학을 온 것은 옛날 얘기가 돼 버렸다. 평준화 제도 시행 이후 학력수준이 떨어지면서 우수 학생들이 굳이 포항까지 올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서울대 합격자 수가 그 지역의 학력수준을 100% 반영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올해 대학수시합격자 명단을 받아든 포항지역 교사들은 “포항교육의 미래가 암담하다”며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한다. 자사고나 특수목적고로 우수학생들이 빠져나가다 보니 일반계 고교의 학력 저하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서다.‘뺑뺑이’로 불려진 고교평준화 제도는 전국 대도시의 경우 1974년 먼저 시행됐지만, 포항지역은 다른 중소도시와 함께 지난 2008년에 도입됐다. 이 제도 도입 당시 포항지역 명문고 출신 동문과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그러나 정부는 중학생들의 입시부담을 줄이고 고교서열화 부작용을 해소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면적인 고교평준화 제도를 강행했다.고교평준화 이후의 학력저하 현상은 비수도권 도시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다. 포항 교육계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제도의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려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한 다양한 맞춤형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인재 배출은 공동체 미래와 직결되는 만큼 자녀들의 학력향상을 위해 포항시민 모두가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2023-01-17

블랙아이스(Black Ice)

우정구 논설위원 2019년 12월 14일 새벽 상주~영천간 고속도로에서는 43중 충돌사고로 차량 40여 대가 부서지고 7명이 숨지고 32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이 사고의 원인을 블랙아이스로 지목했다.블랙아이스는 겨울철 도로 표면에 얇은 얼음막이 생기는 결빙 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 도로 위에 녹았던 눈이 다시 얇은 빙판으로 얼어붙게 되는데, 이때 자동차가 급제동을 하면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얼음막이 아스팔트와 비슷한 색깔을 띠고 있어 운전자도 빙판 여부를 잘 구별할 수 없어 겨울철이면 자주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 블랙아이스 사고는 일어났다면 대형이어서 운전자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지난 15일 밤 경기도 포천시 구리포천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차량 40여 대의 추돌사고도 당국은 블랙아이스를 유력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도 오전부터 포천에 내린 눈으로 도로가 얼어붙어 사고수습에 애를 먹었다고 전하고 있다.언론이 고속도로상에서 발생한 빙판길 사고를 블랙아이스로 부른 것은 불과 10년 전부터다. 살얼음이나 빙판길 같은 우리말을 두고 굳이 블랙아이스라 표현한 데 대해 일부 학자는 외래어 남용이란 지적도 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살얼음이나 빙판길이란 표현보다 블랙아이스란 표현을 씀으로써 일반인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주었다는 주장이다. 국립국어원이 블랙아이스 대신 살얼음으로 다듬어 쓸 것을 제안한 적도 있지만 여전히 블랙아이스가 통용어다.블랙아이스를 겨울철 침묵의 암살자로 부른다. 그만큼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다. 겨울철만 되면 발생하는 블랙아이스 사고 근본적 대책은 없을까./우정구(논설위원)

2023-01-17

‘친윤계’만의 리그전, 민심은 뒷전인가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정치권 뉴스의 블랙홀이 돼 버렸다. 3·8전당대회 당권레이스 출마여부를 저울질하면서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거론했다가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들로부터 매일 실황중계를 하는 것처럼 공개망신을 당하고 있다.지난주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과 기후환경대사 자리까지 ‘해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파면’ 다음으로 센 중징계 처분이다. 대통령실은 “다양한 해임 사유를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불쾌감이 액면 그대로 노출된 인사다.이러한 노골적인 인사조치는 나 전 의원이 지난 9일 올린 페이스북 글이 촉매가 됐다고 한다.나 전 의원은 이날 저출산위 부위원장직 사표를 낸 후, 윤 대통령 측근들을 겨냥해 “나는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공격성 글을 올렸다. 이 글을 읽고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들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면서 ‘제2의 유승민’이라는 죄목을 붙여 해임조치를 했다는 소문이다.나 전 의원 해임에는 장제원 의원이 총대를 멘 것 같다. 장 의원은 지난 주말 나 전 의원을 향해 “마치 박해를 받아 직에서 쫓겨나는 것처럼 전형적인 약자 코스프레 하고 있다.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反尹)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직격하면서, 연속해서 그를 공격하고 있다.나 전 의원은 그동안 당권레이스에서 가장 앞서왔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장 의원과 ‘김장 연대’를 맺은 김기현 의원에게 2등으로 밀려났다. 친윤계 의원들의 당 장악력이 그만큼 세다는 의미다. 특히 대표적 ‘윤핵관’으로 통하는 장 의원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정치권에선 만약 김기현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될 경우 장 의원이 차기 총선의 공천을 주도할 것이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지금도 장 의원은 여러 현안에 대해 ‘대통령 의중’을 대변하는 메시지들을 내놓으면서 권력자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전형적인 예를 한 개 들자면, 얼마 전 ‘한동훈 당대표 차출론’이 나왔을 때 그는 “우리 대통령께서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장 의원의 여권내 위치는 그가 주도하고 있는 ‘국민공감’에 당 소속 의원 115명 중 절반이 넘는 65명이 정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윤 대통령도 지난해 11월말 당 지도부 회동을 며칠 앞두고 대통령 관저에 장 의원을 비롯한 측근 4인방(윤핵관) 멤버들을 가장 먼저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만찬을 하면서 힘을 실어줬다.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장 의원이 전면에 나섬으로써 ‘윤심(尹心)’을 둘러싸고 당권레이스가 과열되는 것은 내년 총선민심을 고려하면 지극히 좋지 않은 모양새다.만약 전당대회가 현 판세대로 진행돼 친윤계가 당권을 장악한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인 정당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들만의 리그전을 하기 위해 울타리를 쳐놓고 내년 총선에서 국민에게 어떤 명분으로 ‘다양한 표’를 달라고 할 것인가.

2023-01-17

새해도 이어지는 물가 불안 정부가 잡아야

수입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크게 올라 쓸 게 없다는 서민들의 푸념이다. 작년부터 이어져 온 고물가 분위기가 올 들어서도 꺾이지 않는다. 봉급 생활자와 서민계층은 물론 소상공인까지 고물가로 연초부터 걱정이다. 작년 국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5.1%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4년만에 최고치다. 정부는 올해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8% 정도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보다 물가 상승세는 꺾일 것으로 보나 올해도 상당기간 상승 기조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통화정책의 기조를 물가안정에 두겠다는 것은 아직 우리 경제에 물가상승 압박이 여전히 높다는 얘기다.정부는 연초 들어 경제부총리 주재로 설 명절물가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16대 설 성수품 가격을 작년 설보다 낮은 수준이 되도록 집중 관리하며, 이를 위해 평소보다 최고 두배 이상인 20만8천t의 설 성수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통상 연초부터 농축수산물 등 각종 물가가 오르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 조치가 물가안정을 위한 선제적 조치란 점에서 적절하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 지속되는 고물가 기조 흐름에 정부가 얼마나 잘 대응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환율과 국제유가 등 물가상승을 압박할 대외변수가 여전하고 국내적으로 고물가 기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민입장에서는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에 대해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많은 이가 물가불안을 느끼는 것은 문제다. 서민들의 물가 고통을 덜어줄 정부의 특단 조치가 필요하다.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작년 소비자 물가 구성품목 458개 중 가격이 오른 품목이 무려 395개에 달했다. 10개 품목 중 9개가 가격이 올랐다는 것이다. 서민층과 밀접한 생활품목이 대부분이라 서민층 부담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설 명절을 앞두고 생필품 등의 가격이 또 들먹인다. 정부나 지자체는 물가안정에 즉시 대응해 서민가계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에는 물가안정과 경제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가안정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민생을 책임지는 일이다.

2023-01-17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ChatGPT의 출현

김정현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2022년 11월 3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인공지능 연구조직 오픈에이아이(OpenAI) 가 인공지능 기반의 언어 생성 모델인 챗지피티(ChatGPT) 서비스를 무료로 출시하였다. 해당 서비스는 출시 5일만에 100만명의 사용자를 달성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혹자들은 “구글과 같은 전통적인 검색 서비스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주장과 함께 검색 엔진의 새로운 미래기술로 챗지피티를 지목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챗지피티가 기존의 검색 서비스를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과연 챗지피티는 어떠한 서비스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필자는 202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소프트웨어개발팀과 지피티-2(GPT-2) 언어 모델을 활용하여 펌웨어(Firmware) 제품에 적합한 코드 자동 완성 기능을 개발하는 공동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당시에도 지피티-2 언어 모델의 성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지만, 불과 3년이 지나 출시된 이번 챗지피티의 서비스를 필자가 직접 실험해보니 현재 많은 외신들이 해당 서비스에 대하여 대서특필하고 있는 이유가 쉽게 납득이 되었다. 실제로 필자와 같이 많은 이용자들이 해당 서비스를 실험해보고 다양한 후기들을 남기고 있다.가령, 사용자가 특정 질문을 했을 때 완성된 형태의 글로 답을 내놓는 경우, 컴퓨터공학 관련 종사자가 작성한 코드를 입력했을 때 해당 코드의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된 코드를 제공하는 경우, 대학생들의 작문 숙제를 대신 수행해주는 경우 등 사용자가 입력한 정보의 여러 가지 맥락과 조건을 고려해 맞춤형 대답을 어느 정도 적절하게 제공하고 있다.이제 인류는 기존의 검색 엔진을 통해 무엇인가를 탐색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능력보다는 챗지피티와의 소통을 통해 적절한 질문을 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챗지피티의 성공적인 데뷔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챗지피티의 악용에 대하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미국 학교의 몇몇 학생들이 챗지피티를 활용하여 컴퓨터 관련 과제물을 해결하거나 작문과 관련된 과제물을 챗지피티를 활용하여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많은 기자들을 통해 보도되고 있으며, 챗지피티가 한국어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대한민국에서도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1956년 다트머스 학회를 통해 처음으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소개된 이후로 인공지능 관련 기술들은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인공지능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칼럼을 작성하는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르겠다.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을 막을 수 없다면, 인공지능 기술이 인류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들을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칼럼을 수정하고 있는 필자를 그려본다.

2023-01-17

44년 時調의 보법, 맥시조문학회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무슨 일이든지 마음먹기는 쉬워도 이루기는 어렵다. 시작의 첫 마음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꾸준히 지키고 지탱하며 실천해 나가기는 더더욱 만만찮다. 누구나가 마음먹은 바를 무난하고 순조롭게 이루고 싶어도, 현실의 여건이 녹록찮고 의지와 상황의 변화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 뜻한 바들이 잘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니, ‘창업보다 수성(守城)이 어렵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그러나 요새는 작심삼일을, 마음먹는데 3일씩이나 걸린 것으로 보고 최소한 30일 정도는 해봐야 일의 지속여부가 판가름 난다고 여기기에, 일단 무슨 일이든지 부딪치며 시작하려는 결단과 시도가 대세인 것 같다.어떤 일을 계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처음 시작의 결심 못지않은 확고하고 결연한 의지와 자세가 있어야 된다고 본다. 마음만 먹고 이어가지 못한다면 시작하지 않음만 못하다고들 한다. 이른바 ‘중도포기’란 물 속에서 수영을 하다가 자맥질을 멈춘다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페달링을 못하는 것과 비슷하여, 멈추는 순간 그대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거나 길바닥에 쓰러짐을 의미한다. 그만큼 어떤 일이나 목표를 향한 계속적인 몸놀림과 실행력이 중요하고 지속가능한 추동력이 관건임을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똑같이 시작하고 출발해도 낙오되거나 주저앉는 것은 결국 과정에서 비롯되는 자신의 의지와 신념의 차이가 아닐듯 싶다.그런 측면에서 한 문학단체의 동인지를 40년 이상 해마다 발간, 작품활동을 하며 문학적인 교감과 소통으로 문학의 저변확대를 꾀하는 노력은 가상한 일이 아닐까 싶다. 강산이 네 번씩이나 바뀌는 동안 몇몇의 동인들이 오고 가거나 활동의 부침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44년째 명맥을 유지하며 시조창작과 작품발표의 소신을 이어오고 있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율격이나 음보, 자수 등의 제한이 엄격하게 요구되는 우리나라의 전통 정형시인 시조(時調)를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문학활동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복잡한 세상에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대에 애써 전통을 고수하며 시조의 튼튼한 맥이 되기 위해 시를 향한 외로운 보법(步法)을 꺾지 않고 유장하게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포항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맥(脈)시조문학회 동인들이다.맥시조문학회는 1979년 창립 이래 회원 모두가 시조와 문학을 사랑하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문학적 소신으로 현재까지 끈끈한 결속력과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시조문학 단체다. 치열한 시정신을 바탕으로 정갈한 언어의 형상을 단아하고 팽팽한 율과 격이 흐르는 시조 3장에 담아내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시조문학 진흥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한 맥시조에서 최근 동인지 42집을 발간하고, 동인 중 한 명이 빼어난 작품으로 한국시조시인협회이사장 본상까지 받게 돼 한층 고무적이다. 시조의 굳건한 맥이 줄기차게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2023-01-17

꼬리 없이 사는 사람들

‘꼬리 자르기’라는 말이 있다. 공동체가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 명에게 책임을 지울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꼬리를 자르는 대표적 동물은 도마뱀이다. 이규리의 시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 아무렇지도 않게 / 몸이 몸을 버리지요” 포식자가 나타나면 도마뱀은 별 쓸모없는 꼬리를 먹이로 내어주고 본체는 그사이에 도망간다. 꼬리는 꿈틀거리며 적을 유인한다. 마치 여전한 생명력이 있다는 듯이. 온전하게 안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일부를 내어준다는 것이 ‘꼬리 자르기’의 핵심이다.인간에겐 꼬리가 없다. 대신 꼬리가 있었다는 흔적은 있다. 꽁무니에 살랑거리는 꼬리가 있었어도 꽤 멋졌을 텐데. 왜 없어졌을까. 인간이 이족보행을 하게 되면서 꼬리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학설이다. 빨리 달리거나 앉을 때 꼬리가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이젠 쓸모가 없어져 흔적으로 남은 기관. 그런 것이 인간에겐 백 개가 넘는다고 한다. 지금 남은 신체 기관들도 모두 유의미하진 않다. 이를테면 사랑니. 뽑아버려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이빨은 유용성은커녕 고통만 안겨주는 기관이다. 맹장이야말로 없어도 되는 대표적인 장기다. 잡식성으로 주식이 변화한 인간에게 식물성 먹이를 분해하는 역할은 더 이상 필요 없다.그러니 지금 인간의 형태가 완전하다고도 할 수 없다. 손가락이 열두 개였다면 더욱 빠르게 컴퓨터 자판을 칠 수 있을 것이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다면 시야가 더욱 넓어지는 것이 아닌가. 당장 내일 새로운 신체 기관이 만들어진다고 한들 당장엔 불편할지 몰라도 금방 적응하게 될 것이다.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 발전해온 생명체는 끝끝내 완전무결한 존재가 될 순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의 인류가 어떤 모양으로 진화하게 될지는 결코 모를 일이다.동물의 꼬리, 그중에서도 강아지의 꼬리는 감정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강아지는 확실한 감정적 동요가 있을 때 꼬리를 움직인다. 기쁘거나 반갑거나 신나거나 화나거나 슬플 때. 움직이는 모양은 기분에 따라 다르다. 프로펠러처럼 빠르게 흔들 때도 있고 꼿꼿하게 세우기도 하며 축 늘어뜨리기도 한다. 이토록 선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존재라니. 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사랑스럽단 말인가.만약 인간에게도 꼬리가 남아 있다면, 그것이 의사소통하는 용도로 쓰인다면, 그러한 신체 기관으로 인해 감정을 결코 속일 수 없게 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고 진정성을 외치는 정치인의 발화가 우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상대의 꼬리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이야말로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시선이 되며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힘으로 작동했을 것이다.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언어는 얼마든지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내는 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통제할 수 없는 꼬리를 붙드는 것보다 거짓말을 내뱉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의 꼬리가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감정을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궁극적인 수단이니까. 꼬리가 없어야만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 인간에게 여전히 꼬리가 남아있다면 누군가는 진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자기 손으로 ‘꼬리 자르기’를 할지도 모른다.거침없이 자기의 신체를 자르는 도마뱀은 비정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어떤 면에서는 숭고한 지점이 있다. 자기 살을 내어주고 심장을 지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자른다. 그게 가장 쉬운 해결책이 된다. 문제는 잘려 나간 사람들, 그러니까 불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버려진 사람들이다. 포식자에게 먹히는 것이 유일한 미래인 자들. 혹은 자신이 잘린 꼬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관성적으로 꿈틀거리는 자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건 이런 것이다.단단한 꼬리뼈를 만져본다. 꼬리가 사라진 줄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당연하게 여기던 내 육체에 진실을 감추기 위한 목적이 깃들어 있음을 잊지 않는다. 우리 중 누구도 잘린 꼬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2023-01-17

어린 어른은 운전을 배운다

사람들은 스무 살이 넘으면 어른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운전을 할 줄 알아야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언어’를 배움으로써 상징계에 진입하듯이, 운전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도로에 진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심각한 소리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이제껏 어른이 아니었다는 얘기. 그런데 이렇게까지 ‘고작 운전’을 힘줘 말하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 ‘도로’ 위의 암묵법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조금의 과장이 섞였을 따름이지.조금 별개의 얘기지만, ‘올 해엔 노력하지 않겠다’고 말한지 2주도 지나지 않았는데 운전을 배우고 있다. 사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나는 주기적으로 파주와 화전에 가야 할 일이 있는데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 쯤 걸리고, 퇴근 시간에 막히기라도 했다간 3시간이 걸리는 때도 있다.가뜩이나 차가 많은 한국에서 나까지 차를 탈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거니와 갈수록 심해지는 지구 온난화 문제에 나까지 힘을 보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지금껏 차를 끌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건 학생의 치기어린 생각이었고, 막상 사회 초년생이 되어 1년을 살아보니 시간 강사에게 자가용은 필수에 가깝다. 가끔 특강이라도 할라치면 대중교통으로 2시간이 걸리기 십상이니, 하루가 그냥 슥 지나가는 경우도 많아 시간이 아까울 때도 많았고. 솔직히, 지하철에서 책 읽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도 계속 쓰고 있어야 하고, 겨울에는 롱패딩을 입은 사람이 많아 앉으나 서나 고욕이다.그렇다보니 ‘올 해엔 노력하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올 해엔 기필코 차를 사리라’로 바뀌고 말았다. 일단 마음먹은 김에 곧장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수업을 들을 때 든 생각은 ‘운전 못 하겠다’.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에 대한 설명과 도로 위에서 좌회전, 우회전 하는 법, 표지판 보는 법, 차에 대한 기초 지식 등등 온갖 것들이 쏟아지는 데 정말 하나도 이해가 안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문과-인문대로 이어지는 순수혈통 문과생인데다, 그간 차에 관심도 없었다보니 선생님들이 하는 소리가 무슨 기계공학의 정수에 대한 설명쯤으로 느껴졌다.그렇게 학과 수업을 3시간 듣고, 다행히도 필기시험은 한 번에 합격. 무슨 패기인지 오전에 필기시험을 보는 날 장내 운전 연수를 신청해놔서 바쁘게 면허학원으로 직행해 처음으로 차를 몰았다. 엑셀도 밟아보고 브레이크도 밟아보고 좌회전도 해보고 우회전도 해보고. 옆에 선생님이 앉아있어 마음은 편했지만 머리속으로는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거 못하겠다. 나 같은 놈은 도로에 풀어놓으면 절대 안 돼.’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에는 선생님의 교습 스타일 탓이 크다. 나는 이론을 배우고 그걸 적용하고 해석하는 소위 먹물형 인간인데, 선생님은 자꾸 나보고 ‘감을 익히세요. 외우려고 하지 마세요’ 따위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닌가. 참고로 나 같은 인간은 ‘감’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체계에 대한 이해 없이 무언가를 할 때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실수할까봐 벌벌 떠는 인간이라 그렇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내 질문에는 ‘감’이라는 마법의 단어만 난사했다. 그리고 그건 도로 연수 때에도 이어졌다. 나는 우회전이 ‘도로 상황에 따라, 다른 차량의 운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진입’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뭐라고? 그냥 상황 봐서 ‘감’으로 하라구요? 제 감을 어떻게 믿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제 감을 모르면 어떡해요?그렇게 어찌어찌 연수를 다 마치고, 다행히 시험에도 합격해서 2종 면허를 땄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도 어떻게 내가 시험을 통과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면허를 따는 것과 실제 자차로 운전하는 건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면허를 따면서 느낀 게 있다면, 한국 사회의 운행 방식은 도로 위의 ‘차’의 운행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 이론이나 체계를 세우기보다는 ‘감’과 ‘상황’을 중시하고, 타인의 상황에 자신을 맞춰서 움직이면서도 급할 땐 ‘빵!’ 하고 클락션 세게 눌러주고 등등. 한국 사회의 도로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국 사회의 도로 위의 관습이 사회 구석구석에 녹아있는 걸까. 어쩌면 선후 관계는 없는 걸지도. 마침 ‘태계일주’라는 프로그램에서 볼리비아의 교통상황이 나온다. 와. 저긴 더 개판이네. 한국은 양반이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한 해의 시작이다.

2023-01-17

‘박정희공항’ 네이밍, 공론화 해볼 만하다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가 ‘친윤·반윤’ 논란으로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친윤계 대표주자인 김기현 의원이 지난 14일 구미복합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당 대표 경북출정식에서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명칭을 박정희 공항으로 하자”고 제안해 주목을 받았다. 김 의원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중심세력은 우리 보수 정당이었고 보수 정당의 중심에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다”며 공항명칭 변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치권에서 통합신공항을 박정희공항으로 네이밍하자는 제안은 꾸준히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2021년 9월,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신공항 명칭을 박정희공항으로, 가덕도 신공항을 김영삼공항으로, 무안 신공항을 김대중공항으로 명명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홍 시장은 당시 박정희공항 명칭 사용과 함께 공항과 연계한 첨단 산업단지와 30만 규모의 공항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현재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도 당대표 후보 시절이던 2021년 6월, 대구·경북지역 당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저는 존 F. 케네디 공항을 보면서, 늘 생각했던 것이 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동의해주면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이름 붙여서 신속하게 추진하고 싶다”고 언급했었다. 정치권에서 박정희 공항을 거론하는 것은 일종의 득표마케팅이긴 하지만, 공감은 가는 얘기다.이미 해외에서는 주요 국제공항 명칭을 자국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름을 붙여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케네디 공항, 워싱턴 DC의 레이건 공항, 프랑스 드골 공항,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 대표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지역 출신일 뿐아니라 세계 최대 빈국(貧國)이었던 한국을 근대화시켜 경제대국으로 만든 인물이다.특히 통합신공항은 박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구미 상모동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이참에 통합신공항 명칭을 박정희 공항으로 네이밍하는 것에 대해 공론화 작업을 해볼 필요가 있겠다.

2023-01-16

재도전하는 대구 국가로봇테스트필드사업

작년 8월 과기부 예비타당성 최종 심사에서 탈락했던 대구테크노폴리스에 조성 예정이던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이 재도전에 나선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12일 열린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 총괄위원회에서 전국 6개의 사업이 예타대상사업으로 선정됐는데, 그 중 대구의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로써 대구국가로봇테스트필드 조성사업은 다시 한번 예타심사를 받아 최종 선정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타 최종 결정은 올 8월쯤이라 한다.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은 약 3천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국내 최초의 대규모 로봇기반 구축사업이다. 여기서는 로봇시장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로봇제품 개발에서 실증, 인증까지 포괄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기반시설(실험실,가상환경,실환경)이 구축된다. 대구시는 지난해 2월 대구테크노폴리스 18만1천여㎡ 부지에 국가로봇테스트필드를 조성키로 하고 산자부와 함께 사업을 추진, 예타 대상사업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냈으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이 사업이 다시 예타 대상으로 선정됨으로써 로봇도시를 지향하는 대구시로서는 다시 한번 호기를 맞은 셈이다. 지난번 예타 탈락 실패를 교훈삼아 이번에는 반드시 예타를 통과해 국가로봇테스트필드사업의 대구 유치에 성공해야 한다.대구시도 다시 맞은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로봇지원분야사업 영역확대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리나 철저한 자체 검증을 통해 예타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로봇테스트필드가 대구에 유치되면 대구는 국내 로봇산업 중심도시로서 입지를 확고히 할수 있다. 로봇테스트필드내에 로봇기업성장지원센터 등 로봇실증과 관련한 인프라가 구축되면 기업유치도 유리하다. 또 지역로봇산업계의 의욕 진작은 물론 자동차부품산업 등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클 것이다. 기업의 역내 진출과 로봇산업으로의 진출 속도가 높아지면 고용창출에도 긍정적 성과를 낼 수 있다. 국가로봇테스트필드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수도권이 아닌 대구에 유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구시의 분발을 촉구한다.

2023-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