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
대단지 아파트로 이사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며칠 전에 주차 해둔 차를 찾지 못하고 있다. 차를 찾아 돌다보니 방향 감각마저 잃었다. 지하1층이 아니었나? 2층이었던가? 마지막으로 차를 세워둔 게 어디 갔다 왔을 때였지? 가끔 차를 몰고 나가는 나는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보았다.
양손에 나눠 든 종이가방과 비닐봉지를 벽에 붙여 세웠다. 짐의 무게가 손바닥을 파고든다. 세워둔 비닐봉지가 맥없이 쓰러진다. 비닐봉지를 단단히 묶었다. 무게중심을 잡아 종이가방에 기대 놓고 주위를 살폈다. 줄이 난 손바닥을 부비며 휴대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찾아본다. 매번 대는 곳보다 먼 곳에 주차할 때면 벽에 새겨진 번호를 찍어두는데 오늘은 그마저 없다.
짐은 놔두고 다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차 키의 버튼을 눌러본다. 삑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잠잠하다. 내 차가 근처에 없는 게 분명하다. 다시 소리를 찾아 빠른 걸음을 걷는다. 지하가 이렇게도 넓었던가. 이젠 나가는 길도 보이지 않는다. 멈춰진 시간 앞에 섰다. 나는 길 잃은 개미가 되었다. 콘크리트 더미가 옥죄어 온다.
다시 한 층을 올라오다보니 차가 오르내리는 출입구가 보인다. 한 낮의 햇살이 입구를 막고 있다. 나는 지하 전등 불빛 아래 서서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경사도를 따라 금방이라도 햇살너머에서 물이 흘러들어올 것만 같다. 주전자로 개미굴에 물을 붓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덮쳤다. 어지럽다.
어릴 적, 동네 가운데 배꼽마당이 있었다. 우리는 여느 날처럼 치마를 폴싹이며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야 할 사내아이들이 웬일인지 조용했다. 그들은 담벼락 아래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고무줄을 끊는 훼방꾼이 없어서인지 우리는 놀이가 시들해졌다. 막대기로 숭숭 솟아난 구멍을 헤집고 있는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디밀었다.
개미들이 튀밥 터져 나오듯이 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날벼락을 맞은 그들은 하얀 알을 안고 나왔다. 신이 난 아이들은 막대기로 개미굴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가고 우리의 눈도 따라 들어갔다. 땅 속에 있는 사거리가 부서지고 내리막길이 무너졌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개미들이 허겁지겁 현장을 떠나고 있었다.
한 아이가 물주전자를 들고 왔다. 도망가는 개미들의 머리 위로 폭포수를 퍼부었다. 허우적거리는 개미의 모습에 아이들은 더 신이 났다. 굴속으로 빠르게 물길이 쏠렸다. 물은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 어느 순간 고이기 시작했다. 물은 우리의 발아래를 향해 질펀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도망가는 개미를 주시했다. 한쪽 방향으로 계속 도망가면 될 텐데 여느 개미와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했다. 이쪽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가는가 싶더니 또 저쪽으로 헤매고 있었다. 나라면 물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멀리 달아날 텐데, 주변에서 뱅뱅 돌고 있는 개미의 아둔함에 친구들과 함께 웃었다.
나는 나무막대를 금방이라도 물에 휩쓸려 갈 것 같은 그 개미 가까이에 댔다. 개미가 황급히 나무막대를 타고 올라갔다. 뒤따라 또 한 마리가 올라갔다. 나무막대를 조심스레 풀숲으로 옮겨주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목숨을 손아귀에 쥔 위대한 조물주와 같았다. 우리가 신의 존재를 보지 못하듯이 개미 또한 우리를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아이들이 주전자로 물을 부어 홍수가 났던 개미굴처럼 지난해 장마에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난리가 난 일이 있다. 개미가 허우적거렸던 것처럼 나는 시멘트벽으로 된 지하에 갇힌 이들을 기억한다. 물이 출렁거리는 지하주차장의 뉴스를 우리는 자연재난에 이어 인재라며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은 철부지 아이들처럼 장난을 칠 리가 없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그 일이 자연에 대한 경고는 아니었을까. 콘크리트 굴을 벗어나 햇살 아래로 나온 나는 깊은 숨을 토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