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거리면서 ‘동동팔월’이 지나가고 있다. 역대급 폭우와 폭염에 태풍까지 들이닥치면서 많은 피해와 상처를 남겼었는데, 가을의 초입에 적잖은 비와 노염이 이어지니 여전히 동동거리는 가슴을 재울 수 없는 듯하다. 거기에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로 여야의 대립과 업계의 불안이 가중되어 갈수록 긴장과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 언제까지 답답하고 동동거리는 가슴으로 8월을 보내고 가을 마중을 해야 하는 걸까.
복잡한 곡절의 세상사와는 아랑곳없이 이 맘 때가 되면 풀숲이나 수풀에는 가을의 전령사들이 앞다투어 목청을 돋우고 있다. 해뜨기 전부터 이른 아침의 고요를 깨우는 풀벌레들의 합창은 한낮의 들판을 지나 저녁답의 들길과 밤중의 산기슭 언저리에까지, 단조롭거나 오묘한 화음으로 소리의 여울처첨 쩌렁쩌렁 흐르고 있다. 필설로 표현하기도 음계를 분간하기조차도 쉽질 않지만, 풀벌레 특유의 투명한 발성으로 자분자분 스며드는 음조는 어쩌면 지난 여름날의 습기를 말려내고 우수를 떨쳐내는 소리로 들려오는 듯하다.
‘처서 무렵 풀숲에는/왁자한 소리잔치//찌르륵 찌륵찌륵 또르르 또륵또륵 철썩 처얼썩 쪼르륵 쪼륵쪼륵 돌돌돌 도르르륵 차랑차랑 낭창낭창 괄괄하고 걸걸하니, 귀뚜리인가 여치인가 철써기인가 방울벌레인가 풀종다리인가 질라래비인가, 풀피리 소리 같고 양금을 두드리는 듯 만도린을 켜는 듯 파람을 부는 듯 풀벌레들의 세레나데가 일제히 울리고 퍼지고 튀어나고 번뜩이고 스쳐가고 파고들고 젖어 들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햇볕을 머금고 바람이 쓰다듬어 달빛과 주고받고 별빛이 내려앉은 맑고 또렷하고 구슬프고 처량한 듯 흐느끼다가 와글와글 자지러지는 풀벌레들의 목청~//악보도 지휘자도 없는/귀맛 좋은 합주곡’ -拙시조 ‘자연의 합주곡’전문
이처럼 자연의 선율은 보이고 들리는 그대로 꾸밈없이 투박한 듯 순수하며 느닷없이 들쑥날쑥하기고 하지만, 불협화음으로 들리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자연의 질서와 조화는 대부분 별 것 아닌 것 같은 온갖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조차 특유의 가락과 소리가 어울림조의 안단테 멜로디로 울림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치유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하고 즐겨 찾게 되는 걸까?
최근 공중파 TV프로그램에 풀잎, 나뭇잎이 악기가 되는 ‘풀피리’를 평생의 악기로 여기며 연주와 보급활동을 펼치는 ‘풀깨비’ 선생이 방송돼 화제가 됐다. 일명 ‘풀피리 부는 도깨비-풀깨비’로 알려진 그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요즘, 풀피리로 자연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12년 전 연습을 시작하여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풀피리를 가르친 적이 있는 그는, 풀피리를 통해 자연에게 배우는 인생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고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악기이기도 한 풀피리(草笛)는 풀벌레 울음소리와 흡사하다. 수풀이나 언덕에서 풀피리를 불고 들으면서 풀벌레들의 합창과 하모니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완벽하고도 환상적인 ‘자연의 합주’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