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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한 칸의 고독

등록일 2023-08-29 18:26 게재일 2023-08-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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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청년들은 고독한 방 속에 갇힌 게 아닐까. /언스플래쉬

월급날 오전, 월급 명세서가 이메일로 날아오면 곧장 계산기를 두드린다. 월급에서 가장 큰 부분은 월세로 나가고 다음은 고정 생활비와 지난달의 각종 경조사비 또는 기타 비용이 빠져 나간다. 마지막으론 월에 정해둔 일정 금액을 저축에 넣는다. 이 모든 게 단 이십 분 만에 빠르게 이어진다. 남은 금액으로 또 한 달을 살아가야 한다니, 조금 허무하다.

전에 살던 방의 계약이 만료되고 나는 모아둔 돈으로 조금 더 큰 집이나 조금 더 깨끗한 집으로 이사를 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까지도 7평 남짓한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달라지는 것이라곤 방의 컨디션이 깨끗한지 또는 창문이 있는지 없는지, 햇빛은 얼마만큼 드는지 정도의 차이일 뿐. 아직까지도 머나먼 미래를 위해 현재의 많은 부분을 타협하며 생활해야 한다.

최근 유튜브에서 청년 고독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통계청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청년 고독사는 약 1100명, 한 해 평균 200명 정도다. 계속 되는 취업난과 경제적 빈곤이 원인으로 관계 단절과 사회적인 죄책감이 고립감으로 이어져 고독사를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독사를 택한 청년들은 노력해도 희망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고 어떠한 기대도 없이 현실을 포기하고 만다. 도와줄 곳도 도움을 요청할 방법도, 도움을 청해도 되는 건지 헷갈렸다는 한 청년의 말은 머리를 멍하게 했다.

희망조차 꿈꿀 수 없게 포기해버리게 만드는 현실적인 벽은 분명히 존재한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0원으로 하루를 사는 ‘무지출 챌린지’ 또는 오픈 채팅방을 통해 서로의 절약을 독촉하는 ‘거지방’의 유행이 돌고 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소비자 물가 탓에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대학생들의 생활이 급격히 위태로워진 탓이다.

졸업 이후에도 미취업 상태인 청년 백수는 126만명.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임금근로 일자리동향’의 자료를 보면, 전체 임금근로 일자리는 2020만7000개로 1년 전보다 45만7000개 증가했으나 20대 연령층의 일자리는 6만1000개가 감소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이 제시한 20대 고용률 또한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취업을 하면 금전적인 고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 온 지 어느덧 5년 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5년 동안 약 9개월 정도 일을 쉬었을 뿐 아르바이트, 취업사관학교, 인턴 등 여러 군데를 거치며 현재 작은 중소기업에서 원하던 직무의 정직원이 되었다. 젊은 날의 노력과 시간을 담아 지금의 내가 되었건만 나는 아직도 방 한 칸을 못 벗어나고 있다. 미래를 위해 현실에서 타협해야 하는 게 아직까지도 많기 때문이다. 넓고 큰 집, 여유롭게 갖추고 사는 살림살이, 여러 값진 경험과 물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이후의 삶 등을 위해 청춘의 시절에서 계속 희생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곧 원룸의 문을 열어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방 한 칸짜리의 크기에서 강요되는 고립과 고독의 벽은 너무나 높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기에 괴로운데 아무도 그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오늘도 출근 버스를 급히 오른다.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어 30분이 넘는 거리를 서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속함과 운이 따라 의자에 앉아갈 수 있다면 모자란 잠을 자거나 보기만 해도 기운이 빠지는 만원 버스의 광경을 모른 척 눈감을 수도 있다. 그날 하루의 컨디션이 달라질 정도로 출근길 버스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면서도, 또 꽤나 무의미한 일이라 쉽게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원하는 직종의 업무를 시작 하게 되어 좋은 성과가 나면 기쁘고 뿌듯하지만, 때론 집에 들어와 방 한 칸에 앉아 있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외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밤이 저물고 또다시 아침, 입을 앙다물고 힘없이 버스에 실려 가는 이 사람들은 모두 미래를 위해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이 버스 안에서 나만 이렇게 고립된 것일까? 생각하며 창가에 비친 나를 마주해 본다. 불투명한 유리창 탓에 이목구비가 잘 보이진 않아 나의 눈은 젊음으로 빛나고 있는지 생각하다보면 정말이지 더 미궁에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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