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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페미니즘

등록일 2023-08-29 18:35 게재일 2023-08-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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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학기 ‘젠더문화론’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의 목적은 ‘페미니즘’을 남성·여성의 이항 대립에서 해석하지 않고, 일상에 퍼져 있는 혐오와 위계의 시선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이론으로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전장연)’시위에 대한 발표를 맡은 학생은 시위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비판적 태도를 보였으며, 수업 중간에 수업의 내용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자체 휴강을 한 학생도 있었다. 익숙한 인식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이다. 다수 학생은 끝까지 수업을 들으며 ‘일상의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은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후에 학생들이 실제로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적용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지난 대선의 쟁점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었다. 당시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며 반페미니즘 정서를 정면에 내세웠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반페미니즘은 2021년 ‘국민의 힘’ 당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후보의 당선에서 시작되었다. 공정한 경쟁을 기치로 내건 이준석 후보의 반페미니즘 전략에 이른바 ‘이대남’이 결집하며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나 공유되던 시각이 공론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022년 이준석 전 대표는 ‘전장연’의 시위를 비판하며 다시 한 번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런 시각은 우리 사회는 여성 혹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이 특권(?)을 갖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을 전제한다.

정치권의 반페미니즘 기조를 환기한 이유는 최근 서울 시내에서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범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가지 맥락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로 좁히고 인권 보호를 단지 법의 권위에 기대게 만든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은 법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피해자가 발생한 이후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일벌백계’하는 것이 인권 보호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신림동 성폭행 사건과 같은 범죄를 반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 2023년 신림역 성폭행 사건은 대표적인 ‘페미사이드’ 범죄이다. 언론에서는 가해자의 정신병을 문제 삼지만 문제의 핵심은 여성을 특정해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쯤 되면 ‘잠재적 가해자’로 남성을 지목하는 것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겸허히 인정하고 반성부터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앞선 칼럼에도 썼듯 장갑차를 시내에 배치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공권력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20∼30대 남성 청년들이 가해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켜야 한다. 청년들이 타인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하는 이웃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페미니즘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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