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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디지털 리터러시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챗 GPT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뜨겁다. 2022년 11월 처음 공개된 챗 GPT는 5일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넘길 만큼 세계인들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반년 정도 지난 지금 챗 GPT가 상징하는 생성 AI의 연구와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AI가 열어젖힐 새로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지금은 잊힌 감이 있지만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당시에도 ‘인류의 위기’까지 거론될 만큼 시끄러웠다. 많은 대학에서 ‘코딩’을 교양필수로 지정하며 컴퓨터 언어를 익히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일로 홍보했다. 그러자 초등학생까지 코딩 과외가 유행하는 웃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AI가 뒤바꿀 인간의 미래를 질문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 것이다.‘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 y)’ 개념이 있다. 리터러시(Literacy), 즉 읽고 쓰는 능력의 디지털 버전으로 디지털 시대의 정보를 이해하고 디지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도 2022년 신입생부터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 강화를 목표로 파이썬 프로그램 등을 가르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코딩을 할 수 있는 문과생이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좀 더 경쟁력이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나의 스펙으로서 말이다.하지만 생성 AI의 등장은 프로그램 언어를 모르는 프로그래머를 만들 수 있다. 2016년 알파고 이후 AI의 진화는 계속되어서, 지금 이런 형태의 AI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일론 머스크, 유발 하라리 등이 AI 개발을 6개월 중단하자는 서한에 서명했다는 뉴스는 속도전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갖는 위험성을 반증한다. 비록 AI의 진화 속도를 인간의 힘으로 누르더라도 큰 물줄기를 바꿀 수는 없다. AI가 인간과 똑같은 로봇 속에 들어가는 시대가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미래를 질문하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디지털 리터러시란 단순히 컴퓨터의 언어를 학습하는 것을 넘어서 기술의 빠른 진화로 변화하는 현실문화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으로 좀 더 명확히 정의될 필요가 있다. 기술의 속도, 그 자체를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문학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의 리터러시 능력 향상에 있었다. 물론 당시는 활자 문화 시대의 읽고 쓰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텍스트를 읽고 비가시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힘들을 인식하고 교직하며 글로 쓰는 행위는 디지털 시대에도 똑같이 이루어진다.챗 GPT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할지는 고도의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단순히 이공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디지털 세계의 복잡성을 연결하여 근본을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단순하게는 챗 GPT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2023-06-07

TV 수신료의 운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TV수신료는 1963년 처음 징수됐다. 당시 돈 100원을 냈다. 그 때만해도 TV보급률이 낮아 일부 부유층만 TV를 보유하고 있었다. KBS 징수요원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TV를 확인, 징수했다.생활 수준 향상과 함께 TV보급률이 높아졌다. 일일이 방문 확인이 어려웠다. KBS는 1994년 한전에 징수업무를 위탁, 전기요금과 합산 청구했다. 이 때부터 전국민은 TV 시청료를 강제 징수당했다.TV수신료는 1981년부터 2천500원으로 정해져 전기요금 고지서에 포함돼 청구된다. KBS2가 광고를 받고 있기 때문에 수신료 비중은 45% 정도라고 한다. KBS는 그동안 정권의 나팔수로 비난받았다. 적자 누적으로 재정위기에 부딪히자 공영방송 존립을 위해 필요하다며 시청료 인상을 꾀했다. 국민 반응은 냉랭했다.대통령실이 나섰다. 방송통신위와 산자부에 KBS 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권고했다. 방통위는 조만간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할 전망이다. 수신료와 전기요금의 통합 징수 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불편 호소와 변화 요구를 반영했다.대통령실이 TV 수신료 징수 방식을 국민참여토론에 부치자 방송의 공정성 및 경쟁력, 방만 경영 등 문제가 지적됐고 수신료 폐지 의견이 제기됐다. 사실상 세금과 다름 없다는 의견이었다. 국민 기대에 못 미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면 상당수 시청자들이 수신료 납부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KBS의 수익구조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KBS노조가 사장과 이사진의 전원사퇴를 촉구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편향 방송의 자업자득이다. TV수신료 분리 징수 결정을 보면서 30년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07

스무살 정신으로 돌아가자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일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갓 스무살 축구선수들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나라 안 소식은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그들이 보내오는 소식에 가슴이 다 시원하다. 어른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아이들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국내뉴스로 국격이 내려가는데 해외뉴스가 나라체면을 붙들고 있다. 정치와 경제와 외교와 국방에 날마다 낙제점수가 쌓여가는데 스포츠 한 방에 백점 기분이 되어 하루가 즐겁다.이겨놓고도 태도가 놀랍다.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고 모두가 서로를 칭찬할 뿐이다. 천금같은 골을 넣고도 잘 올려준 코너킥 덕분이라고 했다. 승리를 따낸 감독은 끊임없이 선수들을 다독이고 선수들은 하염없이 동료들을 챙긴다. 나라야 어찌 되든 내 자리만 지키는 이 나라 정치판과 얼마나 다른가. 국민이 어찌 살든 내 욕심만 채우려는 어른들과 얼마나 다른가. 뻔히 보이는 실수에도 남들만 탓하는 그네들과 참으로 다르다. 어쩌다 좋은 일에는 자기자랑으로 침이 마르는 당신들과 너무나 다르다. 힘들고 어려워도 욕심없이 서로 부추기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무살 정신이 부럽고 자랑스럽다. 어디까지 이길 것인지 묻는 기자에게 감독은 바로 앞 경기에 집중할 뿐이라고 했다.스무살 그들이 나라 안 어른들보다 백 배는 멋지다. 이기고도 한없이 소박한 청년에게 배워야 한다. 끝없는 탐욕을 날마다 들키는 나라 안 어른들이 창피할 일이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달리고 달리는 너희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정치판 악다구니에 식상한 국민들이 새벽잠과 싸워가며 축구경기에 몰두하는 까닭이 있다. 빈껍데기 약속들과 거짓말 스테레오에 지칠대로 지친 시민들이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경기에 집중하여 열심히 달리고 욕심없이 함께 땀흘리는 팀스피리트를 청년들의 축구경기에서 드디어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나라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구하지 못한다. 겸손하고 소박한 보통사람이 힘을 모아 지킬 뿐이다. 어려운 경제도 허장성세 한 방에 풀어지지 않는다. 성실한 국민이 티끌모아 쌓아올릴 때 나아질 터이다. 무엇을 해도 욕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길러온 실력으로 오늘의 최선을 던지는 젊은 선수들이 고맙고 고맙다. 자신이 힘든 만큼 함께 달린 동료들도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고개숙일 줄 아는 청년들이 너무나 귀하다.다음 경기에 기대가 높이 걸린다. 이기든 지든 온 힘을 다해 달려줄 선수들에게 높은 기대를 건다. 화려한 정치 술수보다 그네들의 축구실력이 훨씬 정직하고 순수하다. 경기 내내 보여줄 거짓없는 열심과 욕심없는 협력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내일의 경기에도 혼신의 열정을 다하여 이겨주길 간절히 원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을 젊은 기백에 박수를 보낸다.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멋지게 싸워 줄 것으로 기대한다. 쉬운 경기가 없고 쉬운 정치가 없다. 나라를 책임진 당신들도 스무살 정신을 다시 찾았으면 한다.

2023-06-07

포항 영일만에서 크루즈 관광 시대 열자

크루즈 관광은 배를 타고 여러 유명 관광도시를 순회하는 여행의 한 패턴이다. 비행기로 여행하는 것 보다 경비가 적게 들고 배 안에서 숙박과 식사, 엔터테인먼트 등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 새로운 관광산업으로 주목을 받는다.매년 수 백만명의 관광객이 크루즈여행으로 세계 유명관광지를 돌고 있다. 국제도시들도 이런 추세에 맞춰 크루즈 관광객 유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국내서도 부산과 인천, 강원도 등지에서 크루즈관광의 모항내지 기항을 자처하며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부산은 한해동안 100척 이상 크루즈선이 부산항을 찾아오는 도시로 크루즈관광이 매우 활성화된 곳이다. 코로나19로 중단했던 부산시의 크루즈관광이 최근 재개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경북 포항의 영일만항도 2019년 12월 국제크루즈선을 처음으로 띄웠다. 영일만항을 출발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연결하는 크루즈 시범사업은 코로나19로 한 번하고는 중단됐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지난 5일 포항시는 11만t급 국제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를 유치하고 일본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대만 기륭 등을 6박 7일 다녀오는 크루즈 시범사업을 재개했다. 탑승객 3천명 모집도 성공했다.포항시는 이번 운항으로 영일만항이 크루즈 관광의 모항내지 기항으로서 가능성을 점검하고 제반 문제점도 살펴볼 예정이라 한다. 포항 영일만항은 경북도내 유일의 국제선사를 갖춘 항만이다. 내년 8월이면 국제여객터미널 기능을 확장 준공도 한다. 환동해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으로서는 크루즈관광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세계 최고 철강업체인 포스코가 있는 포항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죽도시장을 비롯 경북도내 각 관광지를 잘 연결하면 포항은 크루즈선의 기항지로서 부족함이 없다.다만 국제 선사로서 필요한 인프라를 보완하고 크루즈 관광 전문인력 양성 등의 숙제는 앞으로 풀어가야할 일이다. 경북도가 목표하는 외국인 관광객 300만명 유치도 크루즈 관광 활성화로 활로를 찾을 수 있다. 경북의 크루즈 관광 시대를 포항에서 열어가자.

2023-06-07

음식물가 상승, ‘상대적 박탈감’ 심화시킨다

삼겹살이 서민음식이란 말은 옛말이 됐다. 1인분(100g)이 보통 1만2~3천원가량 해 3~4인 가족이 삼겹살로 외식을 하려면 10만원 가까이 든다. 5월 기준, 외식 삼겹살 가격은 2년 전보다 16.1% 뛰었다. 지난달에는 서민 음식의 대표격인 라면 값도 올랐다. 라면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1년 전보다 13.1%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월 이후 14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통계상으로는 최근 우리나라 물가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서민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먹거리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치즈, 피자, 빵, 김밥 등 먹거리 지표인 가공식품과 외식 부문 세부 품목 112개 중 31개의 상승률이 10%를 웃돌았다. 통계물가와 체감물가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유독 먹거리 물가가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음식물가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원유가격 인상이 예고되면서 우유가 들어가는 아이스크림, 빵 등의 가격상승으로 이어질까 봐 소비자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다.물가당국도 먹거리 물가 상승세가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설상가상 전기요금을 비롯해 공공요금 인상도 이미 예고된 상태다. 통계를 내세워 소비자물가 안정세를 강조하더라도 체감물가가 실질적으로 꺾이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이 수긍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액 연봉자가 급증하면서 국민 모두가 느낄 정도로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 동향조사’에서는 전국가구 중 적자가구(한계가구) 비중이 26.7%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소득양극화는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과 불안의 최대 요인이 된다. 특히 먹거리 물가의 급격한 상승은 서민들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정부가 시장경제를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물가상승 요인을 철저히 분석해서 서민들이 먹거리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끼도록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2023-06-07

낯설고 새로운 곳으로

곧 일본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한동안 잠들기 전에 유튜브 속 일본 여행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도톤보리에서 꼭 먹어봐야 할 초밥집이나 타코야끼집, 우메다의 쇼핑센터나 각종 오사카 관광 스팟을 체크하며 구글 지도를 하트 마크로 점찍어 두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처음 가는 해외 자유여행이라 더욱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늘 여행은 즉흥적으로 떠나는 타입이라 잠은 아무데서나, 먹는 것도 아무거나 먹으며 하루 온종일 정처 없이 걸어 다니곤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다르다. 얼마나 들떠있는지 여행 일정을 스스로 난생 처음으로 계획해서 모든 일정을 문서로 정리했을 정도다.‘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대학 졸업 이후 홀로 자유 기차여행을 떠났을 때다. 당시 만나던 연인과 헤어진 이후 이별의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당시 코레일에서 내일로 티켓을 끊으면 무궁화호에 한해서 기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에, 수중에 있던 아주 적은 금액의 돈과 배낭만 챙겨 들고선 서둘러 기차에 올랐던 여행이었다.처음으로 향한 곳은 포항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이면서 푸른 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다 싶어 택한 곳이었다. 포항역에서 내리자마자 역에 배치된 관광지 팸플릿을 보았고 별 다른 고민 없이 호미곶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당시 불안으로 휩싸인 적막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가까웠기에, 재빨리 파도와 갈매기 그리고 밝고 활기찬 관광객의 소란스러운 목소리로 적막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급해져선 간단히 숙소에 들려 배낭을 내려놓고 휴대폰과 카드만 챙긴 채 호미곶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분명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지도대로 따라가 버스 환승을 하려 했지만 어느 작고 외진 마을에 내리고 말았고 환승할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점점 해는 지고 있었고, 마을은 조용했으며 마을회관조차 인기척을 찾을 수 없어서 계속 초조한 마음이 더해졌었다. 정처 없이 걷던 와중 다행히 나와 비슷한 처지의 관광객을 만나 정신을 차리고 택시를 불러 겨우 호미곶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겨우 도착해서 해가 지는 것을 멍하니 앉아 보고 있는데 그때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이 여행은 아무래도 도망에 가까운 것이구나. 아무리 낯선 곳으로 멀리 도망친다 한들 뜨겁고 눅눅한 후회의 감정은 떨어트릴 수 없는 거로구나, 하며 물거품이 되어버린 모든 것들을 바라만 보았던 여름날의 습한 기억이 잔잔히 남아 있었다.당시의 무력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루 온종일 낯선 거리를 걸어 다니며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더 물 수 없도록 몸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포항 다음은 부산, 그리고 경주 그 다음은 진주를 오가며 낯선 이들을 만나 새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고 또 헤어지며, 수많은 거리를 정처 없이 쏘다녔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시큼하게 파랗던 하늘, 묵묵히 우거진 초록과 그늘을 내어주던 커다란 나무들, 깊은 골목에서 묵묵히 머무르고 있는 오래된 집과 사람의 흔적들은 쓸쓸함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와중에 자꾸만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게끔 했다.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들은 이토록 묵묵하고도 견고한데, 나는 왜 작은 이유로 흔들리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아리송한 의문은 더욱 외로운 도피로 느껴지게끔 했다.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가라앉는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이번 여행을 위한 짐을 싸다 불쑥 그날의 기차 여행이 떠오르고 말았지만 이젠 과거의 기억 위로 새로운 짐을 챙겨 넣을 수 있게 됐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도 하고, 사랑과 존중의 깊이를 다시금 헤아리면서 더는 과거 어린 날의 나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끼지도, 필요 이상으로 애틋해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6월의 일본은 덥고 습하므로 얇고 가벼운 옷 위주로 잘 개어 넣고 다음으론 편한 잠옷과 슬리퍼를 담는다. 기초 화장품과 약, 액세서리류는 작은 통에 소분해서 투명 파우치에 챙겨 넣는다. 그렇게 새로운 여행의 기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이번 여행은 과거의 후회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아닌, 좋음을 가득 채워 올 여행을 할 것이다. 더없이 소중한 이와 나란히 낯선 길을 걸을 것이고, 그 지역의 유명한 음식을 먹고, 그 나라의 언어를 쓰고, 역사적인 곳도 방문하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을 오랫동안 누리며 가득 담아올 것이다.

2023-06-06

향기로운 봄날의 금강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정지용, ‘향수’)아까시 꽃냄새가 흐르고, 청보리밭이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면 충북 옥천 안남면 지수리, 금강 청동여울의 봄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금강의 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나는 봄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굽이쳐 흐르는 금강에서 루어 낚시를 즐긴다. 루어 낚시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길, 금강휴게소에서 라바댐 지나 금강4교, 보청천 합수부 원당교 앞 엘도라도 펜션, 청마교, 합금교, 가덕교 콧구멍다리 또 지나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길을 달리다 멀리 지수리 취수탑이 보이면 마음의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게 된다.언제 와도 고향집 같은 ‘등나무가든’에 짐을 푼다.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집이다. 주인 어르신 내외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낚시에 미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집을 찾았는데, 그렇게 드나든 지 벌써 10년쯤 됐다.할아버지 할머니와 여기 함께 살던 손자는 자기가 키우는 햄스터를 내게 자랑하던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느새 대학생이 돼 타지로 나갔다고 한다.아저씨는 숙원사업이던 마당 연못을 만들어 5짜 쏘가리 두 마리, 4짜 붕어 몇 마리, 잉어, 마자 등등을 넣어두셨다.내가 마당에 주차하고 내리자마자 이것 좀 보라며 얼마나 자랑을 하시는지.아주머니는 대뜸 “더 훌륭해졌네” 하신다. 나는 뭐가 훌륭한지 모르면서, 어떡해야 훌륭해질 수 있는지 모르면서 어떻게든 훌륭해지기로 마음먹는다.낚시 준비를 해서 청마대교 밑 여울로 들어갔다. 쏘가리가 나오면 제일 좋고, 끄리 손맛만 봐도 좋다. 역시나 막무가내 우당탕탕 끄리가 루어에 달려든다.힘이 제대로 붙은 끄리들을 연신 낚아내며 손맛을 즐기고, 잡자마자 사진만 찍고 다시 놓아주는 걸 반복하는데, 저쪽 다리 건너편에 한 백발 어르신이 앉아 낡고 엉성한 낚싯대로 낚시 중이다. 물고기는 못 잡고 강물 위로 흐르는 구름과 바람과 봄볕만 빈 바늘로 건져내고 있다. 그러다 겨우 끄리 한 마리를 잡아내셨다. 하지만 그 한 마리 낚은 게 전부다.한 시간쯤 지났을까, 어르신이 낚싯대를 접더니 겨우 잡은 그 한 마리 맛없는 끄리를, 기생충 감염의 위험을 아는지 모르는지 녹슨 칼로 회 떠 초장 찍어 잡수는 게 아닌가. 나는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어르신이 좀 측은했다. 어르신은 내가 팔뚝만 한 끄리 수십 마리를 잡았다가 다시 놔주는 걸 다 봤을 테고, 낡고 망가진 낚싯대와 빈 그물이 꼭 자신의 나이든 처지처럼 여겨져 쓸쓸했을지도 모른다.끄리 몇 마리를 잡아 어르신께로 갔다. 도마에 묻은 핏물과 마구 썰어 뭉개진 회가 비위생적으로 보였지만 괘념치 않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끄리회 한 점을 정말 맛있게 씹으며 소주를 들고 계신 어르신께 “끄리회 맛있죠. 회 뜨기 좋은 놈으로만 몇 마리 챙겼는데 혼자 먹기엔 많네요.” 큰놈 세 마리를 드리고는 말없이 다시 내 낚시 자리로 왔다. 보리밭에는 초록 바람이 불고, 강물냄새가 머리칼에 배여 마음까지 향기로운 봄날의 금강……오후 다섯 시, 맑은 강물과 해거름이 뒤섞여 금강이 그야말로 금빛 비단처럼 미끄러진다. 낮 동안 잠잠했던 아까시 향기가 노란 송홧가루와 함께 강물에 실려 오는데, 아아 그 달콤하고 아찔한 들숨!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나는 석양에 취해 꽃내음에 취해 그리고 여기저기서 퍽퍽 루어를 때리는 끄리의 손맛에 취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황홀하다. 아까시 향기와 노을이 강과 나를 삼킬 때, 그 오감의 충만함에 내 영혼도 삼켜진다.늦은 저녁, 등나무가든 마당 평상 위에 아주머니께서 닭도리탕 술상을 봐두셨다. 이 집은 백숙, 닭도리탕, 민물매운탕 등을 하는데, 아주머니 솜씨가 끝내준다. 매콤한 닭도리탕에 술잔을 비우는 사이 다리 밑을 흐르는 여울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화음을 이룬다.맑고 향기로운 평화가 감도는, “밤하늘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금강 지수리, 세월이 아무리 지난다 한들 이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2023-06-06

“전기 많이 쓰는 기업 경북도로 오세요”

심충택 논설위원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해 재선 직후, 민선8기 경북도 준비위원회와 국민의힘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임기 중에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을 하겠다고 강조했을 때 대부분 반신반의했다. 이 지사는 당시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도 “KTX 요금을 거리에 따라 부과하듯이 전기요금도 발전소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발전소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요금을 책정하면 원자력발전소와 거리가 가장 먼 수도권이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인 미국, 영국, 호주 등은 이미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시행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 지역구 의석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는 수도권 국회의원들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다들 생각했다.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지난달 25일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의 근거를 담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이 지사의 요구가 현실화됐다. 특별법 제45조에는 ‘전기 판매사업자는 국가균형발전 등을 위하여 기본 공급약관을 작성할 때에 송전·배전 비용 등을 고려하여 전기요금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법안 공동 발의자는 국민의힘 박수영(부산 남구갑), 민주당 김성환(서울 노원구병)·양이원영(비례대표) 의원이다. 경기도 행정부지사를 역임하며, 수도권 소재 전력소비가 많은 기업을 꿰뚫고 있는 박 의원은 이미 대규모 데이터센터들을 PK(부산경남) 쪽으로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현재 전력효율화와 지역균형 발전차원에서 데이터센터의 지방 분산을 유도하고 있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몰리는 경우 그만큼 전력 공급을 위한 고압송배전 설비가 필요한 것도 정부로선 부담이기 때문이다.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분산법 국회통과의 후속조치로 시행령 및 시행규칙, 고시안 마련에 착수했다. 경북도가 최근 전기료 할인 폭이나 감면 방안 등이 담길 후속조치 마련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응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경북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원자력 산업의 중심지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25기의 원자력발전소 가운데 12기(경주 5기·울진 7기)가 경북에 있다. 12기 원전 설비용량은 총 11.4GW에 이른다. 원전부담을 안고 사는 경북 동해안 지역 주민과 기업들에게 저렴한 전기요금 등의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도 밝혔듯이, ‘분산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 균형 발전이다. 현재는 원전이 집중된 영남권 지자체나 원전이 하나도 없는 수도권 지자체의 전기요금이 똑같다. 이로인해 전력소비가 엄청난 분야(데이터센터나 반도체, 2차전지 등)의 기업들도 원가부담 없이 수도권에 공장입지를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분산법에 의해 전력생산지역과 소비지역의 요금 차이가 많이 날 경우 관련 기업들은 우선적으로 원전주변 산업단지를 물색할 수밖에 없다.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국가 전체로는 송전비용 절감을, 발전지역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업에는 생산비용 절감을 이끌어내는 일석삼조 효과가 있다.

2023-06-06

NGO 정신

우정구 논설위원 NGO는 비정부기구, 비정부단체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순수 민간단체다. 영어로 Non-Governmental Organization으로 표기한다. 대개 그 출발점은 1863년 스위스에서 시작한 국제적십자사 운동을 손꼽는다. 국제적십자사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인도주의적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네트워크 중 하나다.NGO란 용어가 국제사회에 널리 사용된 것은 UN이 주관하는 국제회의에 민간단체들이 본격 참여한 1970년대부터다.NGO는 입법, 사법, 행정, 언론에 이어 제5부(제5권력)라 불린다. 정부와 기업에 대응하는 제3섹터라고도 한다.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시민사회가 직접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등장한 단체여서 시민운동의 중심에 선 단체다. 때론 정부가 추진하기 어려운 분야의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직접 나서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시민단체가 이러한 NGO 정신에 입각해 등장해 경제, 환경 등 각 분야별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시민단체는 어떠한 정치적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비정부기구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 각 나라 안에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가 이미 100만개를 넘어선 것은 민간단체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NGO가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한 청렴이 전제돼야 한다. NGO의 부정 비리는 정부와 기업을 견제할 능력을 상실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정부가 비영리 민간단체의 대규모 부정 비리를 적발했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의 건전성이 위험에 빠졌다는 경고다. NGO 정신을 다시 생각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6

보조금 비리, 철저히 책임 묻고 환수조치를

정부가 지난 1월부터 29개 부처별로 최근 3년간 민간단체에 지원된 국고보조금 사업을 전면 감사한 결과, 곳곳에서 비리행위가 밝혀져 충격적이다. 공익성을 내세운 일부 비영리 민간단체의 국고보조금 횡령 수법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그저께(5일) “이런 도둑에게 빨대 꽂은 기회를 준 문재인 정권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조금 사용과 관련한 정부부처 조사결과는 빙산의 일각이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비리행위가 더 심각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직 조사결과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국 243개 지자체도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한 보조금 사용내용을 전수조사했었다. 아마 이번 정부부처 조사 결과와 비슷한 유형의 비리행위가 만연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021년 9월 “고(故) 박원순 전 시장 시절 10년 동안 서울시가 시민단체에 지원한 보조금과 민간위탁금 등이 1조원에 달했다. 서울시의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NGO지원법’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지난 2000년 만들어졌다. 정부가 직접 하지 못하는 공익 활동을 시민사회가 해결한다는 명분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일부 민간단체들은 그동안 정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그들만의 성역을 구축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묻힌 민족영웅발굴’ 사업을 한다며 보조금을 받아 현 정권 퇴진운동 강의를 편성하는가 하면, 통일지원사업 보조금을 수령해 유흥업소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해외출장비를 받아 개인여행을 가는 파렴치한 비리행위도 있었다.정부가 보조금 관리 체계를 전산화해 불법행위를 차단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기회에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세금 낭비를 막아야 한다. 우선 전국적인 비영리 민간단체의 현황부터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일일이 보조금 지급내용의 공익성·타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도 밝혔듯이, 일벌백계 차원에서 이번에 밝혀진 보조금사용 비리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을 묻고 환수조치도 해야 한다.

2023-06-06

호국과 충렬의 정신을 배우는 보훈의 달

6월은 6·25 전쟁일과 현충일이 있어 호국보훈의 달이라 한다. 6·25전쟁이 끝나고 정전상태로 70년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안보의 위협을 느끼며 산다. 중국과 러시아의 보호 아래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강대강 대립은 국제사회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 경제가 전쟁의 영향을 받아 오일쇼크와 공급망 위기, 스태그플레이션 등으로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특히 강대국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를 보고 한반도의 우리 처지가 남달라 보이지 않는다. 70여 년 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한 6·25 전쟁을 통해 우리는 전쟁의 참혹상을 경험한 바 있다.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적 상황에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런 동병상련의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 백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국토의 30% 이상이 황폐화된 우크라 전쟁의 상흔은 6·25전쟁의 아픔을 반추케 하는 것이다.힘의 논리가 통하는 냉엄한 국제사회에 우리는 어떻게 국가를 지킬지가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미일의 군사동맹 강화 등 국제사회의 공조를 통해 북한 핵에 대응하고 한편으로는 자주적 안보 능력 확보에도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올해 보훈의 달은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하면서 그 의미가 더 뜻깊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라는 선진국일 수 없다. 선진국일수록 순국선열에 대한 예우를 경건히 하고 그들의 정신을 널리 전한다. 국가 유공자를 예우하고 그들의 희생 정신을 기리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안보를 더 공고하게 하는 길이다.보훈의 달을 맞아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넋을 기리는 동시에 안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가는 노력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북한의 위협을 대수롭지 않은 듯 여기는 사회 풍조가 불식되도록 올바른 안보교육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일반 가정서는 현충원이나 전쟁기념관 등을 찾아 호국과 충렬의 정신을 느껴보는 것도 보훈의 달을 뜻깊게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2023-06-06

인공지능 규제와 데이터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심상치 않게 들린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을 지금부터 통제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SF영화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유럽연합(EU)은 생성형 AI가 학습에 이용된 데이터의 출처와 저작권 등의 공개를 의무화하는 인공지능법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데이터의 위험도에 따라 인공지능 기술을 금지, 고위험, 제한된 위험, 최소 위험으로 분류하는데, 그 중 금지된 인공지능에 해당될 경우에는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을 금지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규제들이 오히려 인공지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사실 기술 규제는 비단 인공지능만의 이슈가 아니다. 기술에 대한 규제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다. 아무리 완벽한 기술이라 할지라도 그 파급효과까지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술 규제는 기술이 조금은 제한된 환경에서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의 인공지능 규제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어야 할까? 유럽연합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유럽연합의 인공지능 규제 법안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결국 요지는 인공지능 기술 그 자체보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있어 활용되는 데이터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의 활용, 시장에서의 경쟁, 기술 그 자체의 진보에 있어서 데이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인공지능 경쟁은 사실상 데이터 경쟁임을 의미하며, 좋은 양질의 데이터를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다른 시사점은 인공지능 시대에서 완전한 지식의 공유는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보편적 지식 확산에 기여하더라도 여전히 학습한 데이터의 가치에 따라 지식의 불균형이 발생하게 될 것이며 이는 지금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 뿐만 아니라 여러 구성원들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기술규제의 설계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앞선 사례들을 통해 파악한 것처럼, 인공지능 규제는 우리나라가 보유한 양질의 데이터를 보호하고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동시에 우리 사회 안의 지식 불균형 혹은 인공지능으로 인한 정보 차별을 방지 또는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규제가 단순히 기술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데이터에 대한 규제인 것을 기억하자.우리가 결국 지금 더 보호해야하는 것은 최첨단의 기술이 아니라 남들이 갖지 못한 우리만의 고유한 데이터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기업과 젊은 청년들이 인공지능 시대에서 자유롭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인공지능 규제가 마련되길 바란다.

2023-06-06

한흑구 문학의 자취를 찾아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주말, 가벼운 차림으로 버스에 올랐다. 바람을 타고 두둥실 하늘을 떠가는 구름처럼, 버스에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차창으로 어리는 초여름의 풍경 속을 누비니 가뿐하기만 하다. 실로 얼마만의 여유와 쉼표 같은 떠남이던가. 큰길에서 벗어나 군데군데 샛노란 금계국이 반겨 맞는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지나 다다른 곳은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 위치한 이육사문학관이다.포항의 시인묵객들과 화가, 예인, 가인 등이 안동으로 문학기행을 떠난 것이다. ‘내 고장 칠월은’으로 시작되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의 배경지가 포항(도구리)이고, 일제강점기 이후 포항에 살면서 주옥같은 수필 명작을 남긴 한흑구 선생의 ‘이육사의 청포도’ 수필 등과의 연관성이 있기에, ‘한흑구 문학, 그 자취를 찾아서’란 명목으로 포항시민과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이 이뤄진 것이다. 이는 곧 2022년 3월에 출범한 한흑구문학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기념사업을 단계적,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육사(陸史) 이원록의 삶과 문학작품, 편지 등을 정리, 비치, 조명하고 있는 이육사문학관은 그의 작품과 짧은 생애만큼이나 단출하고 정갈하다. 육사선생의 고향마을 원촌리 북미골 어귀에 자리잡아 시인의 작품을 닮아선지 화려하지 않고 검박하다. 2004년 개관한 이육사문학관은 차분한 회백색톤의 전시관과 생활관, 생가를 옮겨와 복원한 육우당(六友堂), 사색마당, 수경시설 등으로 조성돼 있으며, 2017년 올해의 최우수 문학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곳이기에 국가보훈시설로 지정돼 있고 안동시내와의 원거리 등으로 접근성에 다소 불편함이 있지만, 인근에 시비공원과 수필에 등장하는 지명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취 등으로 고향이라는 테마와 스토리가 많은 문학관이기도 하다.전시관 실내외 곳곳을 둘러본 후 문학관장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문학관 운영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대부분의 문학관 건립과 초기운영은 지자체의 몫이다가 민간위탁운영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예산부족 등 운영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운영업체 자구책으로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한 스토리 체험형 문학테마 발굴이나 청포도 와이너리, 청포도빵 등의 브랜드화로 별도의 수익사업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가칭 ‘한흑구문학관’ 건립, 운영 시 눈여겨볼만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구름꽃 피는 하오의 원촌마을을 뒤로 하고 일행은 한흑구문학비가 있는 내연산 계곡으로 향했다. 등산로 초입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문학비를 둘러보며 한흑구문학비의 건립 내력을 더듬어 보고, 선생의 보경사 앞 회화나무를 소재로 쓴 수필 ‘노목을 우러러보며’를 낭독하기도 했다. ‘1987년에 이곳엘 처음 찾았던 필자로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외진 곳에서 외롭게 서있는 시비가 아쉽게 여겨졌음은 나만의 기우였을까? 안동과 보경사를 두루 거친 문학기행의 취지와 성과가 올곧게 반영되어 흑구선생의 문학적인 업적이 재조명되기를 사뭇 기대해본다.

2023-06-06

자식을 범죄자로 만들지 마라

김진국 고문 “느그 아부지 머 하시노?”배우 김광규는 이 대사로 떴다. 부산 조폭들을 그린 영화 ‘친구’에서 고교 교사로 나와 이 대사를 날리며 학생들을 구타했다. 옛날에는 학교에서 학생 신상을 탈탈 털었다. 아버지 직업은 물론 말하자면 숟가락 개수까지 조사했다.유오성이 (우리 아버지는) “건달”이라고 대답한 뒤, 선생님의 매질에 발끈해 뛰쳐나가자 김 씨가 당황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다 똑같았다. 학부모는 달랐다. 직업이 다르고, 재산이 달랐다. 부모를 살피면 학생은 뒷전이 된다.가계도에서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엿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본데없다’라는 말이 큰 욕인 것도 그런 맥락이다. 책보다는 경험으로 배우던 시절 가족과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했다. 그러나 편견이 더 많다. 한 배에 난 동기 간에도 다른 구석이 많다. 부모 직업이라는 안경으로 학생을 보면, 공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소설 ‘빨치산의 딸’을 쓴 정지아 씨는 같은 반 친구로부터 “느그 아부지가 빨갱이람서?”라는 말을 들은 뒤로 ‘천형(天刑)’처럼 외톨이로 살았다고 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부모가 ‘빨갱이’ 노릇한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나면서부터 낙인이 찍혔다. 혈통을 무시할 건 아니지만, 개인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절이다.고려와 조선에는 음서(蔭敍)제도가 있었다. 5품 이상 고위 관리 자제는 시험을 보지 않고도 하급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고관이면 ‘빽’으로 관직을 얻었다는 말이다. ‘뼈대’가 있다느니, ‘씨’가 훌륭하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시험을 쳐서 합격하지, 왜 몰래 뒷구멍으로 들어가나.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건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을 업은 덕분이다. 야당 내에도 정권 교체의 1등 공신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많다. 조 전 장관이 한 일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핏대를 올리는 통에 그 부담을 몽땅 민주당이 떠안았다.조 전 장관 말마따나 모두 개천의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가 행복한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그렇지만 내 자식은 부모 힘으로 용을 만들려고 하면서, ‘너희들은 가붕개로 살아라’라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겠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결정적 방아쇠도 정유라 씨의 ‘엄마 찬스’다. 정 씨가 페이스북에 “능력이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올리면서 민심이 폭발했다.자녀 문제는 영원한 약점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필부야 그 본능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공직을 맡은 사람도 자식 문제에는 눈이 멀어버리는 모양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두들겨 맞는 문제 대부분이 자녀 욕심이다. 정권이 뒤집히는 일을 두 번씩이나 겪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2022년 교육부가 조사한 결과 대학 교원과 미성년 자녀가 공동 저자로 등재된 논문이 1천33편이나 된다. 새 정부가 발탁한 사람도 줄줄이 ‘아빠 찬스’ 의혹으로 물러났다.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 의대 편입,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 장학금 수령에 발목이 잡혔다. 부모야 자기가 지은 죄니까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식은 왜 죄인을 만드나.선관위 고위직들이 자녀 채용과 승진에 ‘아빠 찬스’를 썼다는 의심을 받았다. 지난해 김세환 전 사무총장에 이어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지난달 말 자녀 채용 부정 의혹으로 퇴진했다. 채용 6개월, 1년 만에 승진도 했다. 사무와 감사를 총괄하는 사람들이 모두 연루됐다.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 드러난 의심 사례만 10건이다. 아빠 찬스, 세습 채용이란 말까지 나온다. 외부조사를 하면 얼마나 더 많을지 알 수 없다. 감시받지 않은 조직인 탓이다.어디 선관위뿐이겠나. ‘아빠 찬스’는 이념과 여야,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자동차 노조는 고용세습 단체협약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일부가 특혜를 받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고용 기회를 박탈당한다.사회 전반을 뒤져 불공정 채용과 승진은 뿌리 뽑아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04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 이미 도를 넘었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여야 의원들의 탈선(deviant behavior)이 심상치 않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의원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탈당, 사퇴, 구속되는 사태까지 전개되고 있다.이러한 비리와 비행이 터질 때마다 여야는 상대만을 극렬하게 비판 비난한다.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엄청나지만 의원들의 진정한 반성이나 자각은 찾아 볼 수 없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다.그러나 최근 진보를 자처한 민주당의 탈선은 보수정당에 못지않게 빈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념이나 무늬만 진보이지 비리와 탈선은 보수 정당에 못지않다. 정치권은 비리가 노출될 때마다 부패 척결이나 정치 개혁을 외치지만 의원들의 탈선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 와중에서도 양대 정당 지지율이 30%대를 유지하니 지극히 한심한 작태이다.최근 민주당의 돈 봉투 관련 스캔들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과거 배고픈 야당 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패스캔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그들이 과거 야당일 때는 진보와 개혁을 외치면서 도덕성면에서는 집권 보수당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부패 척결, 약자와의 동행, 사회정의 실현을 당의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그것이 당시에는 상당히 먹혀 들었다.김대중 대통령 이후 세 번이나 집권한 민주당은 보수 기득권 정당이 될 정도로 변질되었다. 지난 집권당 시절 서울, 부산, 충남지사의 성 스캔들은 성추문 정당으로 낙인 찍혀 지방 선거의 패배로 이어졌다. 지난 송영길 당대표 선출과정의 돈 봉투 배포 의혹은 당의 이미지를 또 다시 추락시켰다. 현금을 돌렸다고 의심받던 두 의원은 탈당하였다. 연이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는 그 개인뿐 아니라 당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 가뜩이나 당대표 사법 리스크로 휘청거리던 판에 의원들의 비리는 당을 더욱 위기로 몰고 있다.집권 정당 국민의 힘에도 탈선과 비행의 전통은 민주당에 못지않다.해방 후 장기 집권 보수당은 부패의 상징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의 국고 환수액은 각기 2천억 원을 훨씬 넘었다. 전두환은 추징금 922여억 원이 아직 미납 상태다.이회창 당 대표 시절의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변호사비 대납 등 금전 문제로 구속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측근비리와 부정으로 탄핵까지 선고받았다. 최근 곽상도 의원은 50억 뇌물 수뢰 혐의는 재판에 계류 중이다. 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겸직 금지된 12건의 변론을 재임 중 수임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최근 경실련조사에서 임대업을 겸직한 국회의원이 수두룩하고 재산증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전체 의원들의 주식이나 가상자산을 정밀 조사한다면 여당의원 역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이 같은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행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의 근원이 된다. 의원들의 이러한 탈선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뿐 아니라 정치적 냉소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야 모두 정치인들의 탈선이나 비행을 질타하지만 소나기만 지나면 모두 잠잠해진다.정치인들의 비행과 탈선 바탕에는 거대한 여야의 공존구도가 버티고 있다. 양대 정당은 상호 묵인과 야합이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회의원들은 특권부여 등 기득권 보장에는 여야가 구분 없이 잘 협조하였다. 국회의원의 세비인상과 연금, 겸직, 특권 부여에는 여야가 협력해 왔기 때문이다.지방의회에도 의원 세비 심의위원회가 조직되어 그들의 세비 인상을 통제하는데 국회에는 그런 장치마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의원 정수 조정이나 의원 선출 방식마저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공천이나 기득권 포기하는 의원은 없기 때문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항상 부패의 온상이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여야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는 더욱 지능화되고 증가된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를 근원적으로 막을 장치는 마련할 수 없을까.우선 국회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 장치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회 자율적 정화 장치인 윤리위원회만으로 의원들의 탈선까지 막을 수 없다. 언론의 국회에 대한 감시 비판 기능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문제는 언론, 시민 단체, 유권자 단체마저 진영정치로 인해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공정한 감시나 비판을 원천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양극화된 한국 정치 구도 하에서 여야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내년 총선은 또 다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정치 문화에서 깨끗한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양식 있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이 정치판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2023-06-04

한국, 3차산업혁명 문턱서 좌절위기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1차 산업혁명은 1760년대 영국에서 일어났다. 이에 비해 미국은 1800년대 후반에 1차 산업혁명이, 1900년대 전반기에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탄소중립의 세계적 구루 제레미 리프킨에 의하면, 경제적 변혁이 발생하려면 기본적으로 3가지 요소에 전반적인 변화가 상호작용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첫째 동력원으로써 에너지, 둘째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 셋째는 운송·이동 수단의 변화다. 이들이 상호작용해서 경제적 변화와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19세기 후반에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미국은 유럽보다 100년 늦게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20세기에는 저렴한 석유를 바탕으로 한 중앙제어식 전력과 전화, 라디오, TV, 그리고 전국 도로망을 달리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상호작용하며 2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현재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3차 산업혁명의 동력원인 에너지는 재생에너지 바탕의 에너지원으로 바뀌고 있으며, 디지털화한 재생에너지 기반의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과 재생에너지로 구동되는 전기 및 연료전지, 그리고 디지털화한 운송·물류망이 상호작용해 3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고 있다. 미국의 1차 산업혁명 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말기로 산업혁명이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갔다. 2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 있었다. 해방 후에는 6·25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보다 100년 늦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군사정부에 의해 1차 산업혁명, 70년대와 80년대에 2차 산업혁명이 뒤늦게 일어났다. 그후 21세기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와 각종 디지털 산업, 제조업이 가장 발전된 나라가 된 상태에서 선진국과 동시에 맞았다.그러나 지금 3차 산업혁명 와중에도 대한민국은 없는 것 같다. 아직 전반적인 국민 의식은 1차 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고, 정치인과 관료들도 2차 산업혁명 시대에 안주하고 있다. 최첨단 기업들 또한 2차 산업혁명기 ‘제조업 시대’의 유혹에 빠져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외면하고 있다.3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각종 디지털 기기, 반도체, 전기 배터리, 전기자동차 등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인데도 의식과 가치관은 과거에 안주하고 있다.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아직도 개발도상국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다. 전 세계는 유럽 선진국을 필두로 해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뒤처지고 있다.지난해 독일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49%를 넘어섰고, 미국도 30%를 향해가고 있다. 심지어 중국조차 28~29%에 달하고 일본도 25%를 넘어섰다. 반면 우리나라는 7.2%다. 재생에너지 시범지구인 제주도가 재생에너지 18%를 달성했지만, 송배전 선로 부족으로 지난해 103차례 셧다운 사고가 났다.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발생할까. 탄소중립 실천에 국가들이 미적거리자 글로벌기업들이 나서서 RE100(제품생산에 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을 주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부까지 나서서 CF100(원자력까지 포함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면 안 되느냐며 글로벌 조류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공산품은 수출과 무역에 연관되어 있는데도 산업현장에서는 공장 지붕에 만이라도 태양광을 설치하자고 해도 “나라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며 딴전을 피운다.쌀이 남아돌자 ‘콩 심으라, 팥 심으라’하면서도 농지 태양광 설비는 법으로 규제해 놓고 ‘땅이 좁아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타령만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분산에너지여서 수많은 마이크로 송배전망이 필요한데도 그간 이를 대비하지 못해 제주도는 재생에너지 18%에 셧다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총체적인 부실 상황인데 우리나라는 탈원전을 폐기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정책도 함께 폐기해버린 듯하다. 선진국 문턱에서 맥을 놓아버린 모양새다. 탄소중립 정책은 에너지 자립,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충분히 이 땅에 내리쬐는 햇볕과 바람을 이용해서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는데도 딴전을 피우고 있다.송배전망을 촘촘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간 참여 등 한전 단일 판매망 변화가 필요한데 오히려 한전 국유화를 외치는 이들도 있다. 수백·수천 년간 관리되어온 농촌의 전답을 이용하여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하면 농촌도 회생하고 국토 균형 발전도 이루고 에너지 자립도 가능한데 땅 없다는 타령만 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행위는 마을에서, 도로에서 500m 이격거리를 두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데 시·군 당국과 시·군 의회가 경쟁적으로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대한민국은 3차 산업혁명 요소들이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국가다. 세계에서 휴대폰과 TV, 자동차 배터리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세계 각국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들의 의식 부족으로 3차 산업혁명 문턱에서 무너질 위험에 처해있다. 지금 우리는 글로벌 선도국으로 가느냐, 후진국으로 퇴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2023-06-04

중고 거래의 딜레마

유영희 작가 옳고 그름을 무 자르듯이 딱 자르기 어려운 경우는 많지만, 절약이나 친환경 같은 이슈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옳음의 범위에 속한다. 제리 스피넬리의 ‘돌격대장 쿠간’은 초등 고학년이 읽을 만한 동화책인데도, 그 안에 담긴 주제는 비폭력, 친환경, 성 평등 등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옳음이 무엇인지 편안하게 보여주어서 재미있게 읽고 주변에 많이 추천하기도 했다.주인공 존 쿠간은 언제나 새 옷을 입고 고기를 즐겨 먹으며 특유의 적극적 성격으로 학교에서 ‘핵인싸’다. 그런데 전학 온 펜 웹은 중고 옷만 입고 온 가족이 채식주의자인데 남다른 친화력으로 금세 여자아이들한테도 인기 많은 ‘핵인싸’가 된다. 쿠간은 그런 웹을 싫어하지만 웹이 쿠간의 할아버지를 위해 자기가 너무나 아끼는 흙을 기꺼이 내어주자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그토록 혐오하던 중고 물건을 사며, 백화점 건립 반대 운동에 참여한다. 이 책에는 소비를 반대하는 메시지가 듬뿍 담겨있다.나 역시 당근마켓이라는 중고 거래 사이트를 자주 이용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당연히 가장 먼저 들어가 보는 곳이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슬그머니 들어가 본다. 작은집으로 이사하면서 많은 물건을 판매한 곳이기도 하다. 새 것을 살만큼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착한 소비를 한다는 자부심도 조금은 있다. 옷만 가지고 보면, 2019년 기준 생산량은 대략 1천300억 개, 이중에 버려지는 옷이 최소 920만 톤 이상이라고 한다. 그 중 일부는 소각되는 과정에서 대기가 오염되고, 소각하지 못한 옷은 쓰레기 산을 이룬다고 하니, 나 한 사람이라도 중고 옷을 이용하면 옷 생산량이 줄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요즘 들어 현실에서는 중고 물품 이용이 정말 옳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나처럼 중고 마켓 물건이 싸다고 쉽게 사다가 물건이 쌓이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고 마켓을 믿고 소비를 많이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경제 유튜버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중고 마켓에 내다 팔 생각에 옷이나 물건을 많이 산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중고 물품을 이용하는 것이 친환경적이거나 절약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필요한 것도 없는데 괜히 검색하느라 시간 버리는 것도 문제다.중고 물건 이용의 또 다른 문제는, 분명히 자기 물건을 샀는데도 중고 마켓에 팔기 위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책도 마찬가지다. 새 책을 사도 나중에 팔 생각에 마치 빌린 책처럼 밑줄도 못 긋고 메모도 못한다. 이러다 보니, 내 책인데도 읽기가 불편하고 읽은 것 같지 않다. 중고 거래를 위해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기이한 소비 현상이 벌어지니, 중고 물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질문하게 된다.옛사람들이 만든 오래된 그릇이나 가구를 보면, 은근한 감동이 밀려온다. 그 정도의 품질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오래 쓰는 것이 환경도 보호하고 삶의 질도 높인다는 오래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2023-06-04

미래를 향한 삶과 기업혁신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삶을 살아가면서 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대체로 어렵다고 말하지만 의외로 간단히 알 수 있다. 지금 자신의 생각과 습관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꿈과 비전으로 정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충족 요건을 목표로 설정해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면 그 결과만큼 내 미래는 그려진다.‘계획한 만큼 남는다’라는 말이 있다. 계획이 수립되려면 꿈이 있어야 하고 시간 개념이 들어간 꿈과 목표가 설정되어야 하루를 가치 있게 보내는 것이다.이를테면, ‘20년 내 회사에서 기술명장이 되겠다’라고 하면, 기술명장의 요건을 목표로 세우고 매년 계획을 실행하면 20년 내에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기업의 미래 예측은 여러 대내외 변화와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현재에 직면한 경영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모습의 밑그림을 그려서 그 실현한 결과가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스마트팩토리로 성공한 독일의 지맨스도 99%의 생산자동화시스템을 완성했지만 미래를 계획하고 실행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모습은 기대 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를 향한 혁신은 대체로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디지털화와 인공지능이다. 기업은 디지털화와 인공지능기술을 채택하여 생산과정을 혁신해야 한다. 센서, 빅데이터, 머신러닝, 자연어 처리 등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로봇 공학과 자동화이다. 미래는 로봇이 일하고 사람이 행복한 유토피아 세상을 열어간다고 한다. 일은 적게, 쉽게 하고 충분한 휴식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세번째, 친환경에너지이다. 지구촌 온난화 현상으로 이상 기온과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전기, 수소차 등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산업이 발전해나가야 한다. 네번째, 혁신적인 조직문화 구축이다. 기업의 습관화는 조직문화의 근간이며 혁신은 조직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아야 한다. 실패를 용납하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야 한다. 미래는 창의성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지원하고 있는 P사는 스마트 제철소 비전을 갖고 단계적 전략과 목표를 수립하여 로봇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 제철소가 되면 정비의 기능이 커지며, 최근 협력 정비사는 미래 전문성과 정비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그룹사 격으로 출범한다. 농경시대 손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화, 자동화 하며 일하는 방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은 지구촌 과학기술 문명이 어떻게 변화하여 우리 앞에 다가올 지 상상하기 어려운 스피드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될 것이다. 인간의 복지와 행복을 중시하는 사회구조, 일과 삶의 균형을 고려한 일자리 형태, 정신 건강과 행복을 위한 프로그램 등이 더욱 중요시 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미래의 혁신은 자율주행자동차처럼 삶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고, 기업에서는 지속 가능한 경영과 최적 생산시스템화를 통해 생존 경쟁력을 높여 기업복지는 물론 시민과 함께 인류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일을 하게 된다. 개인과 기업의 미래는 계획하고 실행한 만큼 그려진다.

2023-06-04

첫발부터 제지당한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

포스코가 포항제철소 앞바다 135만㎡(약 41만평)를 메워 건설할 계획인 수소환원제철소 용지 조성사업이 첫 단계인 주민설명회부터 브레이크가 걸렸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달성을 위해 반드시 현재의 포항제철소 고로를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해야 하는 포스코로서는 비상이 걸렸다.지난 1일 포항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국토부 주관으로 열릴 예정이었던 주민설명회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시작도 못하고 취소됐다. 주민설명회는 지난달 24일부터 공람이 시작된 ‘포항국가산업단지(수소환원제철 용지조성사업)변경안’의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교통영향평가서, 재해영향평가서에 대한 주민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포항환경운동연합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포항제철소 5투기장반대대책위는 이미 설명회 하루전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바다를 메워 부지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었다.주민설명회가 시작단계에서 무산된 것은 포스코와 포항시의 준비미흡도 한몫했다. 포스코 측이 수소환원제철소 건설과 관련된 자료를 인터넷에 올려놓긴 했지만, 설명회 자리에서는 관련자료를 배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포항제철소 소재지가 지역구인 조영원 포항시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설명회 장소에 포항시와 사업 승인권을 가진 국토부 담당자들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포스코측이 설명회 일정을 다시 잡기로 한 만큼, 철저한 준비를 해서 이해관계 주민 모두가 사업내용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포스코가 포항제철소를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실상 새로운 제철소를 건설하는 작업이어서 수십조원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철강기업의 탄소중립은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어, 유럽연합 등은 천문학적인 지원을 통해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포항시민들이 끝까지 수소환원제철소를 건설하려는 포스코의 계획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포스코로서는 여유부지가 있는 광양제철소 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포항시민들의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2023-06-04

춘앵각

우정구 논설위원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평양, 개성, 진주 등과 함께 대구도 기생이 많은 도시로 유명했다. 지금의 대구시 중구 종로 일대는 기생들이 자주 나들이하는 장소였고 변두리에 사는 서민들은 기생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일부러 종로 거리를 찾아나서기도 했다고 한다.당시 기생 세계도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고급기생은 붉은색 양산(紅傘)을, 그보다 낮은 기생은 푸른색 양산(靑傘)을 썼다. 푸른색 양산을 쓴 기생이 붉은색 양산을 쓴 기생을 만나면 길을 양보하는 등 깍듯한 예의를 차렸다.어느 기생 열전에 나온 이야기의 한 토막인데, 실제 대구 종로 가구골목 일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기생을 둔 요정이 50군데나 됐다. 요정(料亭)이란 기생을 두고 술과 요리를 파는 고급 요리집이다. 지금은 사찰로 바뀐 서울의 대원각이나 삼청각은 서울서 유명한 요정이다.춘앵각은 1970년대 대구 대표 요정이다. 옛 만경관극장 인근에 자리한 춘앵각은 당시 대구에서 행세 꽤 한 정, 재계 인사라면 한번쯤은 들른 곳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도 대구 방문 때면 이곳서 식사를 했다. 정치적으로 많은 에피소드를 간직한 장소다.6·25때 남하한 나순경이 1969년 요정으로 문을 열었고, 온갖 일화를 남기고 2003년 문을 닫았다. 최근 영화관 업체가 춘앵각을 매입하면서 곧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는 소식이다.비록 요정이지만 대구 사회의 숱한 일화를 간직한 장소란 점에서 철거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가 적지 않다. 대구 근대역사 골목길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니 대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역사 뒤안길로 사라질 춘앵각이 화제를 뿌리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4

어떤 경험

김규종 경북대 교수 개인의 경험과 지식은 그가 지상에 머문 시간의 길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오래 살았다 해서 개인이 도달하는 지적·정신적 성취가 그 시간만큼 깊고 너르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어떤 이는 짧은 생을 열렬하게 불태움으로써 경이로운 높이에 이르기도 한다. 식민지 조선의 시인 소월과 동주, 소설가 김해경과 김유정 같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어떤 교수는 100살이 넘도록 살았다지만, 그가 도달하는 지평은 어느 지점에 멈춰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개인에게 허여된 사유와 인식의 근저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평판이 좋으며 어딜 가나 중간 정도 수준에 머무는 대중의 취향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는 인생이기 때문이다.세상은 넓고 고수는 도처(到處)에 있다는 명제를 수용한다면, 우리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 먹은 인간들은 종종 이런 명제를 망각한다. 노인을 떠받드는 오랜 전통과 그것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철부지 노인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인을 경시한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노인도 적잖다. 과연 그런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논어 ‘계씨 편’에는 공자가 인간을 네 부류로 나누는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공부해서 아는 사람, 곤경을 당한 끝에 배워서 아는 사람, 곤경을 당해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백성 나부랭이들.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공자는 자신을 공부해서 아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평생 학인을 자처했던 공자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단한 자부심이다. ‘불치하문’ 네 글자에는 학문의 정점을 향해 치달려가는 학인 공자의 모습이 온전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그가 도달한 기막힌 경지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朝聞道 夕死可矣.)얼마 전에 두피를 콕콕 찌르는 통증이 찾아왔다. 누구에게 물어도 뾰족한 대답은 없었다. 뭐 이런 걸로 병원에 가나, 하고 하루를 넘긴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른쪽 눈썹에 상처가 나 있고, 두피 통증은 사라졌다. 아하, 염증이 눈썹 부위로 터져나가면서 통증도 사라졌네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 번째 날 아침에 통증이 불청객처럼 조용히 찾아왔다.통증의학과의 자상한 의사는 대상포진이라고 잘라 말한다. 어이쿠, 이런 일이?! 토요일 오전에 급히 처방을 받고 투약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병원에 입원하여 닷새 만에 퇴원한다. 은퇴를 앞두고 장거리 운전과 강연, 방송과 강의, 논문 발표. 학과 행사 참가 같은 강행군을 한 달 넘도록 이어왔다. 평소에도 하지 않던 일을 몰아서 해치운 것이다.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는데, 길 서두는 나그네처럼 허둥지둥 살아온 게다. 그것의 결과가 대상포진이었다. 허망한 노릇이다. 하지만 하나 배웠다. 마음과 몸의 나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뻐꾸기가 보름달 환한 저녁에 구슬피 운다.

2023-06-04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화, 기업유치 청신호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분산에너지 특별법은 전기 등 국내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차등화시키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특별법은 전력을 사용하는 지역이나 그 인근에서 만들어 쓰는 일정규모 이하의 에너지를 자유롭게 생산·소비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중소규모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와 소형 모듈원자로 등을 분산에너지 개념에 포함시킴으로써 국가적으로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이와함께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이 법안에 넣음으로써 원전이 많은 경북으로선 기업유치 등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는 비수도권 지자체의 오랜 숙제 중 하나다. 경북과 부산, 대전 등 대규모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가진 지역에서는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지역이 동일한 요금을 내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지역마다 다른 전력자립도와 송·배전 비용. 발전소 건립에 따른 보상 등을 충분히 고려해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차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특히 전기요금의 차등화를 통해 수도권에 있는 전기 다량소비 기업의 지방이전을 유도해 지역균형발전에도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지역별 전력 자립도를 보면 서울 4%, 경기도 60% 정도인데 반해 경북은 200%에 육박한다.경북도는 최근 분산에너지 특별법 통과와 함께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화가 실시될 것에 대비해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기업유치를 위한 대응 전략 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특별법 통과에 따라 부산, 울산 등 타 도시도 비슷한 움직임에 나설 것으로 보여 경북도의 발빠른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전기료 차등제가 실시되면 전기사용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값싼 지역으로 공장 이전을 고려할 기업도 생겨날 것이다. 전기료 차등제에 맞춰 경북도는 지역민이 실감할 수 있는 정책과 원전인근 산단 등 도내 각 지역에 기업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2023-06-04

경주 도심 곳곳은 관광객 물결로 넘실

주낙영 경주시장 경주 도심 곳곳과 지역 대표 관광지 등에 관광객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지난달 대릉원, 불국사, 동궁과 월지 등 3곳을 찾은 관광객 수는 58만7천945명으로 전년 동기(43만5천61명) 대비 35% 증가했다.또 지난 1월부터 정식 집계가 가능한 지난달 황리단길 방문객 143만2천331명을 합치면 총 202만276명으로 5월 경주는 관광객들로 초만원을 이뤘다.지난달 26일 금리단길 ‘불금예찬’ 야시장이 개장하면서 8천명의 인파가 몰려 첫날부터 준비된 먹거리 재료가 소진되는 등 문전성시를 이뤘다.대릉원 무료 개방과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해 ‘2023 경주 대릉원 미디어아트’가 4일까지 한 달 간 운영됐다. 이번 행사는 대릉원에서 출토된 유물의 고고학적 가치를 현시점에서 재고하는 동시에 이를 첨단 ICT와 예술적 가치를 결합한 새로운 시각적 콘텐츠로 연출함으로 관람객들에게 신개념 역사교육의 현장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대릉원 전체를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연출하기 위해 인공적인 구조물을 추가하지 않고 대릉원 고분군의 구조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방향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구성했다.또 미추왕릉 설화를 토대로 제작한 키네틱 그림자 연극, 천마총 내·외부 미디어 파사드, 발굴 유물로 제작한 바닥 조명, 신라의 별자리 라이팅 아트 등 다양한 영역의 미디어 아트는 흥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또한 구도심 중심 상권인 금리단길에서 열리고 있는 골목야시장 ‘불금예찬’이 원도심 활성화를 견인하고 있다.지난달 26, 27일 이틀간 열린 경주 중심 상권 골목야시장 불금예찬에 약 8천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다녀가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특히 올해 야시장은 지난해 아쉬웠던 부분들이 대폭 보완됐다. 방문객들이 편하게 앉아 생맥주와 먹거리 등을 먹을 수 있는 공간 외에도 셀러와 판매품목도 다양화했다.또 먹거리와 프리마켓 부스를 대폭을 늘려 가리비치즈구이, 오코노미야끼, 육전, 닭꼬치 등 풍성한 메뉴와 함께 다양한 소품을 판매하고 타로카페도 입점 시켜 색다른 재미를 선보였다.야시장은 10월 28일까지 6개월 동안 열린다. 6월과 9월은 매주 금요일, 8월과 10월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야시장이 열린다. 운영시간은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다.경주 동부사적지 ‘첨성대’ 일원 3만9천584㎡ 규모의 단지에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붉은 양귀비꽃과 노란 금영화가 만개해 관광객들을 눈길을 사롭잡고 있다.만개한 꽃양귀비와 금영화는 지난해 가을 파종 후 생육한 꽃으로 더욱 풍성한 꽃을 자랑하고 있다. 또 라넌큘러스, 루피너스, 마가렛 등이 함께 만개해 다채로운 색을 느낄 수 있다.경주 형산강 금장대와 시내 일원을 희망의 연등 불빛으로 수놓았던 ‘2023 형산강 연등문화축제’가 27일일간 대장정을 마치고 29일 화려한 막을 내렸다.개막식의 하이라이트인 제등행렬은 개막식 무대에서 영마을 삼거리를 지나 봉황대로 이어지는 3.1㎞ 구간으로 취타대를 앞세워 연등을 손에 들고 불빛으로 경주 일원을 가득 채웠다.경주에서만 즐길 수 있는 수준 높은 국악여행도 경주의 새로운 볼거리이다. 공연은 지역 관광명소인 교촌마을, 월정교 광장, 첨성대 광장, 보문호반 광장 등에서 지난 달 20일부터 10월 28일까지 총 20회 펼쳐진다. 지역의 대표 야간관광인 프로그램인 ‘신라달빛기행’도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월정교 안내부스에서 백등을 받은 뒤 백등에 손수 그림을 그리고 소원을 적어 나만의 백등을 만든다. 이후 백등을 들고 달빛을 따라 계림과 월성해자, 첨성대를 차례로 둘러보는 일정이다.옛 경주역이 ‘경주문화관 1918’로 탈바꿈하는 등 복합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활기를 띠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엔 1918 콘서트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지난달 20일은 ‘소란’, 이달 10일은 ‘KCM원슈타인’ 등 8월까지 총 5회의 미니 콘서트가 펼쳐져 토요일 경주 밤을 들썩인다.매주 열리는 세계 유일의 고분 콘서트인 ‘봉황대 뮤직스퀘어’ 관광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경주는 이제 스마트 관광도시조성, 사계절 축제 운영, 보문관광단지 리모델링 등의 관광산업 혁신을 통해 글로컬 관광도시 조성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2023-06-04

산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란다

이희정시인 산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란다.그 자줏빛 모습은시도도, 피로도 없이,도움도, 또한 박수갈채도 없이 일어선다.그 영원한 얼굴 속에서태양은 크나큰 기쁨으로바라본다―오래―오래―금빛에 물들 때까지,밤의 친교를 위해.The Mountains grow Unnoticed,Their purple Figures riseWithout attempt, exhaustion,Assistance or applause.In their eternal facesThe sun ―with broad delightLooks long ―and last ―and golden,For fellowship―at night.―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강은교 옮김,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에서 ‘산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란다(The Mountains grow Unnoticed)’ 전문.1830년은 영문학 시사(詩史)에서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별을 탄생시킨 해이다. 지성과 영원의 시인으로 평가되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나는 그녀를 영화 ‘조용한 열정’으로 먼저 만났다. 벨기에와 영국에서 제작된 영화는 실은 영상시집에 가깝다. 롱테이크 화면 가득 디킨슨의 시편으로 흐르는 절제된 대사는 예술의 슬픈 미학을 느리지만 뜨겁게 담아내고 있다.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시인”이라고 했다. 사랑에 실패한 후 디킨슨은 현실에 대한 문을 완전히 닫았다. 결혼도 물론 거부되었다. 디킨슨의 은둔은 피투성(내던져있음)의 은둔이 아닌 기투성(스스로내던짐)의 은둔이다. “영혼은 선택해서 사귀지, 그리고 닫아버리지” 그녀에게 있어 남성은 성스러운 세계,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영원한 세계 속의 우주’로 대체되었다. 디킨슨은 매일 흰옷을 차려입고 6년 동안 일천여 편의 시를 지었다. 그녀가 평생 쓴 작품 수의 반 이상을 넘는 숫자였고, 1862년 한 해에만 366편의 시를 썼다. 그 비극의 기간은 신생 미국의 역사를 결정짓는 한 격동기였던 남북전쟁(1861~1865)의 시기와도 일치한다. 또한 프래그머티즘과 경이적인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에밀리 디킨슨의 내부에서도 단단한 과거가 부서지고 위대한 미래가 태어나려는 과도기가 충돌하고 있었다. 그러나 디킨슨은 휩쓸리지 않았다. 새로운 미를 추구했으며, 그 어느 것에도 자기를 예속시키지 않고 독자성을 지켰다. 시인 강은교의 해설처럼 “그의 시는 완전히, 홀로, 어떤 ‘이즘(ism)’의 감염도 없이 순수하게, 그만의 양식으로 순화되었다.”생전에 그녀는 단 7편의 시만 발표했다. 당시 여성은 사회 속에서 기능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시(dash)와 대문자의 사용, 행과 연의 특이한 구분 등의 디킨슨의 독특한 작법 스타일이 문제시되어 출판은 어려웠다. 하여 그녀의 고결한 시는 산처럼 “눈치채지 못하게 자랐다” 완전히 가려진 채 시인의 고독 속에서 은밀히 창조되었다. 세상을 향한 그 어떤 “시도도, 박수갈채도 없이 일어선다” 사후 69년이 되는 해 평생을 은둔했던 그녀의 방에선 파시클(fasicle, 손제본) 형태의 1800편에 가까운 시가 발견되었다. 그해 비로소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발간되어 세상에 나왔다. 디킨슨의 시는 사랑과 불멸, 자연과 신 등 여러 주제로 분류될 수 있으나, 무엇보다 동양의 죽음에 가까운 ‘고독’과 ‘자연에 대한 이해’는 내면의 깊은 심리를 담고 있다. 시어 “밤의 밀교”는 곧 시적인 순간과의 은밀한 친교를 말한다. 고도로 응축된 이미지로 그려진 ‘고독’은 우주로부터 화해하는 몰입의 순간이다. 그녀의 맑은 영혼은 조용하고도 폭발적인 열정의 시를 낳았다. 유월로 들어선 길은 영원의 깊고도 푸른 생명을 노래한다. 해파랑길 18코스 포항 오도(烏島)리 사방기념공원의 긴 수평선과 신록의 봉우리에 눈이 시리다. 커피향 한 올 피워물고 격자로 난 창가에 앉아 기다림을 키우는 대신 ‘고요’를 키워보기로 한다.“태양은 크나큰 기쁨으로, 바라본다―오래―오래―금빛에 물들 때까지”

2023-06-04

태풍 마와르의 교훈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달 23일 남태평양 휴양지 괌을 강타한 태풍 마와르는 20년만에 찾아온 슈퍼 태풍으로 괌섬을 단숨에 지옥처럼 만들어 버렸다. 미 정부는 주민 15만명에 대해 긴급 대피령을 내리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때마침 이곳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3천여명도 태풍에 갇혀 마실 물과 음식이 모자라 대혼란을 겪었다. 시속 240km 강풍에 자동차가 날아가고 공항 활주로 붕괴 등 각종 시설물이 파괴되면서 괌섬 자체가 난장판이 돼 버린 것이다.엘리뇨 현상은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일어나는 해수 온난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수년마다 주기적으로 수온이 평소보다 높아지는데, 0.5도 이상 높아진 상태로 5개월 이상 지속되면 엘리뇨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기상학자들은 “현재 발생 중인 엘리뇨가 슈퍼급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한다.세계기상기구(WMO)도 “5년 안에 인류 역사상 최악의 더위가 올 것”을 경고했다.특히 학자들은 내년이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지금 지구촌은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태국과 베트남, 미얀마 등지는 본격적 여름이 오기도 전에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태국 북서부 딱지역은 4월 낮기온이 45.4도를 기록했으며, 방콕과 푸켓 등은 체감온도가 50도를 웃돌아 야외활동 자제령이 내려지기도 했다.폭염과 폭우, 산불, 홍수, 가뭄 등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 변화는 지구촌의 위기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괌섬에서 벌어진 태풍 마와르의 급습이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인류가 저질러 놓은 기후 위기에 상응하는 대가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1

시민단체, 탈 벗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시민단체의 ‘감별 작업’이 시작됐다. 가뜩이나 보조금과 기부금 전용, 불투명한 회계 처리로 비판받던 터이다. 일부 시민단체의 설립취지를 벗어난 활동이 계기다.‘정의기억연대’가 단초를 제공했다. 회계 집행 투명성 의혹이 제기됐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름으로 받은 후원금과 보조금을 전 이사장이 사적으로 사용했다. 전 광복회 회장은 독립유공자 자녀들에게 써야 할 돈을 옷값 등 개인 용도로 썼다.시민단체의 부도덕성과 불법이 문제가 됐지만 시민단체들은 침묵했다. 단골로 내던 규탄 성명서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가짜 뉴스로 매도했다. 시민단체의 자질을 의심받았다. 문재인 정권아래서 친 정부 활동에 앞장섰다.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 회비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됐다. 쪼들리던 살림은 옛 얘기가 됐다. 무늬만 시민단체였다.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회계 부정, 괴담 유포, 폭력 조장’을 시민사회의 ‘3대 민폐’로 규정하고 뿌리 뽑겠다고 나섰다.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무늬만 시민단체인 곳을 골라내 선별 지원하겠다고 했다. ‘비영리 공익 활동’은 허울뿐이고 엉터리 회계, 가짜 뉴스를 생산·유포한 시민단체가 타깃이다. 참다못한 여당이 특별기구라는 메스를 든 것이다.특위는 기존 시민단체의 문제점을 샅샅이 살펴본 후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태경 특위 위원장은 “시민사회를 탄압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드 전자파와 천성산 도룡뇽 논란 등 환경괴담과 5·18 괴담 단체는 콕 집어 대응하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때 윤석열 대통령도 ‘시민단체 불법이익 전액 환수’를 공약한 바 있다.시민단체의 일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일부 민간단체들은 ‘시민단체’ 간판만 내걸고 정치활동에 주력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부 고위직 자리에 앉거나 국회의원이 됐다. 어느 새 성공의 지름길이 됐다.암울한 군사정권과 민주화 운동 시기 시민운동은 사회에 등불이었다. 시민운동가의 헌신적인 삶은 사회의 귀감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권력과 유착한 시민단체는 감시의 ‘주체’에서 감시의 ‘대상’이 됐다.노무현·문재인 정권 시절 시민단체 출신은 중앙부처는 물론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중용됐다. 관련 시민단체에는 혈세가 줄줄 흘러들어갔다. 역사의 아픔을 앞세워 개인적인 착복과 출세의 수단으로 삼았다.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여성단체 출신 의원은 민주당의 성범죄 앞에 침묵했다. 환경단체 출신 인사는 태양광을 묵인했다. 모두 본분을 잊었다. 불의와 불법에 눈감고, 귀닫았다. 어용 시민단체의 민낯이었다.시민단체인지 민주당 조직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혈세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세금을 축냈다. 이권카르텔 주장이 나왔다.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손 잡고 나라를 뒤흔들었다. 여론몰이를 했다. 시민사회를 정치집단화했다.정부 여당이 메스를 들이대자 ‘시민단체 재갈 물리기’라고 주장한다.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시민단체의 본질은 도덕성과 투명성에 있다. 시민단체가 본 모습을 찾길 바란다.

2023-06-01

코로나격리 해제됐지만 긴장상태는 유지를

정부가 어제(1일)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조정하면서 확진자 격리 의무가 해제됐다. 앞으로는 마스크도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등 일부 시설에서만 의무적으로 착용하면 된다. 지난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천229일 만에 일상생활속 방역 규제가 모두 풀린 것이다. 다만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과 요양원 등 감염취약시설에서는 당분간 마스크를 계속 써야 한다.이제 일상생활 속에서의 방역 조치는 모두 풀렸지만, 아직 긴장의 끈을 놓기는 이르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자체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해서 분야별 대응을 계속 하기로 한 조치는 바람직하다.대구시는 8개 구·군과 함께 32개팀 191명으로 구성된 전담대응기구를 계속 가동하며 감염취약시설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할 예정이다. 중증 확진자 입원을 위한 병상 46개도 계속 가동한다. 치료제 처방 담당약국도 확대운영한다. 경북도는 권역을 6개 중진료권으로 나누고 책임의료기관(공공병원 중심)을 선정해 필수의료 협력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공공보건의료 협력강화 추진단은 경북대병원과 계명대·대구가톨릭대·영남대 의료원, 대구파티마병원, 동국대경주병원, 칠곡 경북대병원과 3개 지방의료원, 의사회 등으로 구성된다.대구·경북은 지난 2020년 2월 갑자기 닥친 코로나 펜데믹으로 의료시스템 붕괴 직전까지 가는 위급한 상황을 경험했다. 그러나 물리적인 ‘도시봉쇄’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 성숙한 주민의식과 비상대응능력 때문이었다. 대구·경북의료계와 주민들이 똘똘 뭉치고 전국의료진과 구급대원, 국민들의 아낌없는 지원과 연대 속에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세계가 놀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앞으로도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새로운 전염병 대유행 사태가 충분히 올 수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를 중심으로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어떤 전염병이 와도 극복할 수 있는 공공의료체계를 항상 갖춰두고 있어야 한다.

2023-06-01

‘이건희 컬렉션’ 문화예술 저변 확대 기회로

대구미술관이 지난 2월 21일부터 84일간 전시한 이건희 컬렉션 한국근대미술 특별전에 12만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같은 내용을 전시한 울산(10만명), 부산(7만명), 경남(6만명)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이 다녀간 것은 대구시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입증한 결과다.이번 전시회는 대구미술관 소장품과 국립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등이 소장한 44명의 작가 작품 81점이 전시됐다. 2011년 대구미술관 개관 이후 관람객 수 기준으로 역대 4위를 기록했고, 1일 관람객 수가 1천432명에 이른다.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는 유명작가의 그림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기회인데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지역의 특별한 향수가 더해져 컬렉션의 흥행을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이 된다.특히 65세 이상 노년층 관람객(7천714명)이 전년보다 12배나 많은 것은 눈에 띄는 변화다.대구는 문화예술이 강한 도시다. 특히 근대미술분야는 서동진, 이인성, 이쾌대 등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활약한 도시로 유명하다. 6·25전쟁 중에도 전국의 예술인이 모여 근대미술전을 열기도 한 곳이다. 대구시 달성군이 국립근대미술관을 대구에 유치하려는 것도 이런 시대적 배경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문화예술은 단순히 감상만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을 산업의 한 분야로 인식하는 문화산업 시대가 열리고 있다. 스페인의 북부 항구도시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로 일약 세계적 문화관광도시로 성장했다. 한해동안 1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관광수입이 1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문화예술을 한 도시의 특성으로 규정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대구는 국제뮤지컬 페스티벌과 국제오페라 축제 등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출범을 계기로 대구시민 중심의 메세나 운동도 전개하고 있어 문화예술의 저변확대가 절실하다.이건희 컬렉션을 계기로 좋은 작품 전시회를 더 많이 만드는 한편 간송미술관 개관을 계기로 지역 문화예술의 힘을 더 자극시켜나가는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2023-06-01

글로컬대학 30의 꿈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방대학들의 생존을 위해 정부가 제안한 ‘글로컬대학 30’ 신청이 마감되었다. 지난 3월 지역대학의 세계화를 위해 결성된 ‘글로컬대학위원회’가 공고한 후 대학가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된 터였다. 오늘날 저출산, 수도권 집중이라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지방의 학력 인구가 급감하고 있으니 지방대학을 살려보자는 정책이다. 글로컬(glocal)은 글로벌(global·국제)과 로컬(local·지방)의 합성어로 지역 특성을 살린 세계화, 즉 글로벌 지역주의라는 의미가 있다.현재 전국에는 336개의 대학이 있는데 서울 인천 경기 이외의 지방대는 220개이며, 올해 정시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학과가 전국 26곳으로 이 또한 모두 지방대학이며 비수도권 중 경북이 10개로 최고이고 폐교의 위험도 있다. 정부는 2월 1일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글로컬대학 30 선정 사업’을 제안하고, 지방대학 경쟁력 강화와 지역 균형발전을 이끌어 세계적 대학으로 육성하기 위해 비수도권 30개 대학을 선정하여 5년 동안 대학마다 1천억 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다.예비지정의 평가 기준은 비전과 목표의 혁신성(60), 자율적 실행의 성과관리(20), 산학협력의 지역적 특성(20)에 대해 5쪽 분량의 ‘혁신기획서’를 제출받는데 대학 안팎의 경계를 허무는 과감한 혁신성을 가장 중요한 모티브로 선정했다. 먼저 15개 대학을 선정하고 9월 말에 최종 10개 대학을 지정하면 지자체도 재정지원금을 줄 것으로 기대되어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으로 많은 대학이 통합과 교류협력을 주 과제로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는 33개 대학 중 16개 대학(일반대 13, 전문대 3)이 공모에 신청한 것으로 밝혔는데 포항공대의 실리콘밸리 육성, 한동대의 ESG, 경주대-서라벌대의 문화관광 등이 혁신안으로 선정되어 지방 소멸의 방패가 되었으면 한다.우리나라는 1970년대 산업화와 더불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학 교육이 빠르게 확대되어왔었다. 1965년에는 70개 대학이었지만 1995년 대학설립준칙주의와 정원 자율화 등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 2000년대 초반에 150개가 넘고 이후 400여 개 가까이 되었으나 근래 폐교 등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다. 90년대 후반 입시홍보 활동을 하면서 많은 대학의 신설이 걱정되어 출생아 수를 알아봤더니 1960년 100만 명을 넘어 10여 년 가까이 유지되다가 60만 명으로 떨어졌고 2000년경에는 다시 50만 이하로 줄었기에 이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0년쯤에는 입학정원 1천 명인 대학이 100개쯤 사라질까 걱정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가는 듯하다.대학의 통폐합과 연합 등으로 인재양성의 전략을 마련하고 있지만, 부산과 충남에서는 대학생들의 반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유연한 학제 운영으로 대학과 지역, 또 산업과의 벽을 허물고 담대한 혁신으로 지역의 산업, 사회 연계, 특화 분야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혁신을 시도하는 대학, 즉 ‘글로컬대학 30’에 선정되어 지역 균형발전의 허브가 되길 바란다.‘말은 나면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옛말이 어색해지도록 지방대학이 인재양성의 요람이 되길 빌어본다.

2023-06-01

국회의원 특권폐지 국민운동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特權)은 무려 18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보통사람들에게는 하나도 없는 특별한 권리가 국회의원들에게는 그렇게나 많이 필요한 까닭이 뭔가. 하물며 그 많은 특권은 누가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소위 ‘셀프특권’이라는 것에 어이가 없고 배신감마저 든다. 여야가 헐뜯고 싸우다가도 그 셀프특권을 위해서는 의기투합 한다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금전적 특혜만도 다 헤아리기에 숨이 찰 정도다. 1억5천5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비롯해서 연간 입법 활동비로 약 1억200만 원이 지원되는데다 차량 유류비 월 110만 원, 차량유지비 월 35만8천 원, 출장비 연 400만 원, 의원실 보좌직원 업무용 교통비 연 100만 원, 야근식대 연 770만여 원, 현지 출장비 연 91만여 원, 사무실 운영비 연 348만여 원, 소모품 519만여 원, 정책개발비 2천500여만 원, 정책홍보물비 연 1천200만여 원, 문자메시지 및 자료 발송료 1천230여만 원, 명절휴가비 800여만 원 등이다.지난 4월 16일에 발족한 ‘특권폐지운동본부’는 국회의원 전원에게 ‘특권폐지 질의서’를 발송하고 동의 여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질의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국회의원의 연봉이 1억5천500만 원인데, 이것을 도시근로자 평균임금(월 400만 원 정도)으로 하고,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국회사무처에 신청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2. ‘의원실 지원경비’라는 명목으로 정책개발비, 수당 등 다양한 이름의 의정활동 지원비가 1년에 1억200만 원인데, 이를 모두 폐지하고 입법활동 및 기타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필요시 국회사무처에 신청해서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데 동의하는가?3. 보좌진이 7명인데(인턴 2명 추가 채용가), 이들은 의정활동을 보좌하기보다 개인적인 비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고, 보좌진의 상당수는 사실상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의 재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선거기간에는 보좌진의 거의 전부가 선거사무원으로 등록도 하지 않은 채 선거운동을 하는데, 이것은 명백한 불법 선거운동이다. 보좌진도 국가에서 봉급을 주는 공무원이어서 선거운동을 하는 자체가 불법이다. 의정활동에 필요한 사항은 국회 입법조사처나 예산정책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좌진을 3명으로 줄이는 것이 옳다고 보는데, 동의하는가?4.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에만 후원금을 1억5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게 하고 그 밖의 후원금은 받을 수 없게 하며, 선거비용 환급은 없애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5. 국회의원에게 헌법상 부여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오늘날 시대착오적인 규정일 뿐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보는데 동의하는가?이 질의서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응과 태도가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일 터이다. 아무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나서서 정상배를 위한 정치를 끝장내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이뤄야 할 때”라는 특권폐지운동본부 장기표 상임대표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