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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산책하면서 보는 것

강아지와 산책하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이를테면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얼마나 많은지. 씹다 뱉은 껌이나 음식물 쓰레기가 잔디와 얽히면 얼마만큼 끔찍한 일을 야기하는지. 죽은 새나 몸통이 훼손된 쥐 같은 것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나의 반려견 보리는 목적지까지 우아하게 걸어가는 법을 모르고, 흥미로운 냄새가 나는 온갖 곳을 향해 코를 킁킁댄다. 덕분에 나도 거리의 무수한 주변부를 탐색 중이다.그렇게 걷다 보면 산책하는 다른 강아지와도 자주 만나게 된다. 요즘처럼 좋은 날씨엔 더욱 그렇다. 시간과 동선이 겹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만나는 강아지도 있다. 그러면 강아지의 이름이나 나이, 취향까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저 멀리서 아는 강아지가 다가오면 묘한 내적 친밀감이 든다. 강아지들이 인사할 동안 반려인들은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 새로운 형태의 우정이 새록새록 싹트는 것만 같다.최근 새롭게 알게 된 강아지가 있다. 이름은 초코. 갈색 털을 가진 푸들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강아지였다. 초코는 너무나 순하고 사람을 잘 따랐다. 초코야, 안녕? 인사하면 벌러덩 누워 배를 보여주기도 했다. 다른 강아지와도 사이좋게 잘 지내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고 동네 아이들도 초코야, 초코야,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 애교를 부렸다.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보리와 산책하던 중이었다. 초코의 견주인 할머니가 혼자 벤치에 앉아 계셨다. 초코가 안 보이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 할머니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그리고선 초코가 죽었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초코가요? 갑자기요?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냐고 묻자, 차에 치였다고 했다. 아, 그때의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순식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마음이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할머니는 오프리쉬, 그러니까 강아지의 목줄을 차지 않고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최근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강아지의 리드줄 미착용에 관한 규제가 생겨났다. 줄을 차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그러나 동네를 산책하면 여전히 줄을 착용하지 않고 산책하는 강아지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할머니와 초코 역시 그랬다.초코의 죽음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에게 “그러게, 목줄을 하셨어야죠.” 하면서 쏘아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할머니의 무책임함으로 목숨을 잃은 강아지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러나 사랑하는 반려견의 죽음 앞에서 누구보다 슬픈 것은 그녀라는 것을 알기에 어떤 말도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내게는 책임이 없는가? 나는 반려견의 리드줄 착용이 의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줄 없이 돌아다니는 강아지가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할머니에게 리드줄 착용의 중요성에 관해 알리고 당장 내 것이라도 건넸어야 했다.이럴 때 나는 완전히 비겁해진다. 이를테면 개집에 묶여있는 강아지들을 볼 때. 행동반경이 이미터도 되지 않는 그곳에서 먹고, 자고, 배변하는 생명과 내 품에 안긴 반려견을 번갈아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눈을 꾹 감는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있다고 고개를 저으면서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다른 세상을 살았다. 할머니와 나도. 초코와 보리도. 나는 다른 국가처럼 모든 반려인이 반려견에 관한 의무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개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입양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면 동시에 할머니의 외롭고 쓸쓸한 어깨가 떠오른다. 할머니와 초코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을 것이다. 초코는 할머니에게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그 어떤 강아지 못지않게 행복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주었던 사랑과 서로의 유대감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이니까.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면서도 주변부에 놓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섣부른 감정만으로 세상은 작동되지 않고 법의 잣대만으로 모든 이를 판단할 순 없다. 이것이 힘들다는 걸 알지만 한 번이라도 더 살피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오늘도 나의 반려견 보리는 자기만의 보폭으로 산책한다. 전봇대 앞에 멈춰 냄새를 맡고 잔디밭에서 마음껏 구른다. 보리의 배변을 치우려고 하니 개똥들이 보인다. 무책임한 개 주인을 원망하다가 한숨을 쉬고 눈에 보이는 것을 치운다. 고개를 드니 다른 분이 자발적으로 공원을 청소하는 것이 보인다. 그래,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천천히, 차근차근.

2023-06-13

여성은 약하지 않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세이렌(Sire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상반신은 인간 여성,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는 이 괴물은 여성을 숭배하면서 동시에 혐오했던 남성 중심 문화의 상상물이다. 오늘날 ‘위험을 경고하는 장치 또는 소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사이렌(siren)이라는 단어 또한 여기서 유래했다.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 : 불의 섬’은 이 괴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따왔다. 이 프로그램은 경찰, 소방관, 군인, 경호원, 스턴트맨, 운동선수 등 높은 신체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외딴 섬에 모여 펼치는 생존 경쟁을 다룬다. 각 직업군들은 네 명씩 팀을 이뤄 다른 팀의 기지를 점령해야 한다.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전략전술과 연합과 적대의 구도가 무척 흥미로우며, 일일 소비 칼로리를 화폐로 사용하여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한다는 설정도 참신했다. 무엇보다도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뛰어난 신체능력과 정신력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그리스 신화의 세이렌과는 달리 ‘사이렌’의 참가자들은 유혹할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스스로의 성취를 위해 생존하고 경쟁한다. 이 프로그램은 세이렌이 갖는 ‘위험한 여성’의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남성에게 숭배 받을 이유도 필요도 없는 여성들 사이의 대결과 우정이라는 취지를 잘 부각시켰다.참가자들이 고통을 무릅쓰며 승리를 갈구하는 모습에는 특별한 감동이 있다. ‘무한걸스’, ‘언니들의 슬램덩크’처럼 여성이 활약하는 예능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이처럼 ‘강인한 여성의 몸’, 그리고 ‘여성들 사이의 신체적 대결’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은 없었다. 기존 여성 예능이 여성 멤버들의 화합을 강조했다면, ‘사이렌’은 화합과 경쟁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함께 보여준다. 팀원 간의 협력과 단합이 매력의 한 축이라면, 다른 팀을 상대할 때 드러나는 경쟁의식과 승부욕은 또 다른 측면의 매력이다. 승리에 대한 참가자들의 집념은 ‘남성 못지 않다’라는 표현이 실례가 될 정도로 강렬하다.연출자인 이은경PD는 ‘우정’, ‘무력’, ‘승리’라는 스포츠 만화의 매력을 여성이 활약하는 프로그램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기획의도를 밝힌 바 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경기가 끝나면 친구가 된다’는 스포츠 만화의 가치관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대학 진학, 취업과 창업, 경제적 우월감 획득을 위해 무한히 경쟁해야 하는 우리의 삶은 경기가 끝나지 않는 스포츠 만화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상대와 우정을 쌓을 여유가 필요하다. 후회 없이 경쟁하고 뒤끝 없이 서로를 인정한 ‘사이렌’의 참가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여성은 약하지 않다. 진짜 약한 것은 여성에게 ‘여성다움’을 요구하고, 거기 기대지 않으면 존속되지 못하는 사회구조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세이렌으로 낙인찍으며 그들의 가능성과 능력을 억압해 왔는가. ‘사이렌’이 보여준 강하고 멋진 여성들의 모습을 스크린 밖, 일상 세계에서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23-06-12

K-양심을 보면서

김규인수필가 러시아 관광객의 300만 원이 든 지갑을 시민과 러시아어 특채 경찰관에 의하여, 500만 원이 든 중국 관광객의 샤넬 가방이 시민의 도움으로 주인을 되찾았다. 어쩌면 한류 문화의 진앙인 대한민국을 보고자 찾았다가 어려움을 겪을 뻔했는데, 그들의 여행에 한국인들의 마음을 함께 담을 수 있어서 기쁘다.외국인 여행객이 두고 내린 최신 맥북, 아이패드와 돈이 든 가방이 지하철 안에서 18시간을 실려 다니다가 지하철역에 보관됐다는 소식도 인터넷에 떠돈다. SNS를 통해 더 많은 한국인의 양심과 정직함을 경험한 외국인들의 이야기가 K-양심으로 세계로 퍼져나간다.K-양심은 외국인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여러 날을 집 앞에 둔 택배물이 안전하고 1천만 원의 돈을 찾아준 택시 기사 이야기를 본다. 택시에 두고 내린 2억이 넘는 아파트 판매 대금이 든 가방을 찾아준 시민의 미담은 우리 사회가 믿을 만하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양심은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몇 년간 우리 사회를 관통한 공정 탓인지 아니면 어디를 가나 만나는 CCTV의 학습효과 탓인지 일상생활에 정착한 느낌이다.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를 들으면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사회 지도층이나 공직자들의 성추행, 음주운전, 금품수수는 지금 한창 떠오르는 이슈다. 단기로 입국하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우리 사회의 일부만 보다가 전체를 보아도 K-양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머무르는 외국인 유학생이나 노동자들, 이민자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정직하지 못하고 앞과 뒤가 다르거나, 도덕으로 무장한 진보라 말하면서 양심을 저버린 일부 정치인들, 끝이 없는 지도층의 성추행, 음주운전은 K-양심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양심을 지키는 사회 지도층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운 것인지. 일그러진 모습 뒤에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 바쁜 그들이 ‘K-양심’을 듣기나 한 것인지.‘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헌법은 말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양심이 중요하다는 대한민국의 기본 생각이다. 그러하기에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양심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공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지금 SNS에 떠도는 K-양심과 공직사회의 사익을 추구하는 비양심은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그들이 비난받는 것도 양심 사회로 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더구나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이 인정하는 K-양심의 나라가 아닌가. 공직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점점 양심 국가로 가고 있지 않은가. 일부 사익에 빠진 사람들이 있지만.살기 좋은 나라의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항상 순위가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뒤처진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 총합의 결과이지만 외국인들이 찾고 싶은 나라, 찾아와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은 나라가 되면 우리 삶도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누구나 오고 싶고 살고 싶은 K-양심의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2023-06-12

문경 도자기, 흙으로 빚어온 시간

오래전부터 도자기는 사랑받아왔다. 도자기에는 역사·예술·삶이 어우러져 녹아있다.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과 맑고 투명한 빛깔과 그 위를 수놓은 그림과 이를 완성 시키려는 전문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나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한국의 도자기는 예술품으로서 그 가치가 일품으로 인정받는다.그러나 현재 도자 제작 기술은 옛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부족하기만 하다.일제강점기에 왜사기가 대량 생산되고 개인 공방이 금지되면서 백자 전승의 맥이 많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1960년 중반 일본과 교류하면서 문경에 남아있던 도자 제작 기술이 현재까지 잊히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태토와 소성용 목재를 구하기 쉬운 문경은 예로부터 관요가 아님에도 도자기로 생업을 잇는 경우가 많았다. 16~19세기 문경읍의 옛 가마터에서는 주로 서민들이 애용하던 백자나 청화백자 식기류가 발굴되었다.한때는 ‘막사발’로 불리던 그 도자기를 사려고 밤새 줄을 서는 등짐장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백색도가 낮고 두꺼워서 관요에서 생산된 도자기에 비할 수는 없지만 서민들의 식탁에서는 유용하게 애용되었다.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소비자의 취향이 변하면서 도자기의 인기는 급속도로 하락하게 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로는 도자기를 대체할 편리한 그릇이 인기를 끌면서 문경의 가마터에서도 식기류보다 요강과 화분·칠기를 주로 생산한다. 수요가 없는 만큼 도자 제작을 생업으로 삼기에 힘들었다.가마터를 떠나 탄광으로 간 사람들도 많았는데, 1960년대 이후 문경에서 성황을 이루던 석탄산업의 역사는 ‘문경석탄박물관’에 가면 그 흔적을 확인해 볼 수 있다.거의 명맥만을 이어가던 문경 도자 제작 기술은 1960년대 중반 일본의 애호가들과 미술상들이 찾아오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다기의 수요가 높았던 일본에서는 고려다완(찻사발)을 최고라 여겼고, 최대한 똑같은 찻사발을 갖고 싶어 했다. 찻사발은 식기용 대접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대접보다 굽이 높고 좁아 말차가루를 녹진하게 풀어낼 때 사용하기에 적당하다.일본 다도에서는 자주 활용되는 편이나 찻잎을 우려 마시는 한국 다도에서는 생소한 물품이기도 하다. ‘막사발’이라 불렸던 문경 도자기는 찻사발을 만들면서 예술품으로 인정받는다.찻사발의 다채로운 색조는 예술적 가치로 여겨졌고, 백색만을 추구하던 시선도 점점 사라져 갔다.현재 문경은 전통적인 백자가 아니라 일본에 수출한 ‘찻사발’을 문경 도자기의 대표 아이콘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문경 도자기 역사에 있어서 일본과의 교류는 중요했고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1990년대에 들어 전통 기술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1996년 김정옥이 최초로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그의 가문은 7대째 도자 제작 기술을 이어왔고, 간결하고 절제된 포도 넝쿨 문양을 고유의 문양으로 삼고 있었다. 그를 기점으로 4명의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를 발굴하고, 1999년 ‘문경찻사발축제’를 열어 널리 문경 도자기 문화를 알린다.매년 문경새재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명장들의 뛰어난 작품뿐만 아니라 신예들의 창조적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모든 작품은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망댕이 가마’에서 제작된 것만 출품할 수 있다고 한다.망댕이 가마는 문경 도자 제작 문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가마로, 약 20~25cm 정도 높이의 원통 모양 흙덩어리(망댕이)를 돔 형태로 쌓아 올려 만든다. 관음리에 남아있는 옛 가마터에서 최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망댕이 가마는 만드는 시간이 짧고 저렴하며, 내구성이 높고, 단열효과가 좋아서 적은 장작으로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다.문경도자기협동조합에서는 망댕이 가마로 도자 제작하려는 노력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잊혀져 가는 전통 기술의 보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노력이기도 하다.그러나 망댕이 가마는 현대의 전기 가마나 가스 가마처럼 아주 정확한 온도의 불꽃을 유지하기 어려워 일정한 품질의 도자 제작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도자 제작의 다양한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흙으로 빚어온 시간’을 슬기롭게 이어가는 방법일 것이다.문경의 도자기는 서민과 함께 성장하고, 쇠퇴하며, 변화하였고, 현재는 예술품이 되었다. 시대적 취향이나 기호와 같은 문화가 녹아있으며, 오랫동안 이어온 시간이 깃들어 있으며, 대대로 이어온 도공의 삶도 숨겨져 있다.도자기를 빚어온 시간 안에는 역사와 예술과 삶이 녹아있다. 다도와 차에 관심이 있다면 문경에 들러, 푸르른 말차가루를 녹진하게 풀어낸 찻사발에 담긴 시간의 온기를 음미하는 것도 좋겠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6-12

작은 섬에서 펼쳐진 관계의 비유와 상징

아일랜드의 가상의 섬 이니셰린에서 막역했던 두 사람이 갈등을 빚는다. 절교를 선언한 사람과 느닷없이 절교를 당한 사람. 농담이거나, 알지 못하는 말실수이거나, 기분 탓이려니 이유를 찾아 보지만 알 수 없고 그 사실이 와닿지 않는다. 이제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이 펼쳐진다. 추측이 난무하고 어정쩡한 주변의 조언이 이어지지만 관계는 더욱 더 악화되어 간다.갈등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대수롭지 않은 이유는 첨예한 가치관의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유는 없어. 그냥 자네가 싫어진 것뿐이야”라고 시작했던 절교. 남은 삶을 사색하고, 작곡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절교를 당한 사람에게 와닿지 않는다. 지루한 이야기들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절교를 당한 상대는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왔던 사이에 그러한 결심이 무슨 의미를 지니며 왜 그러해야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절교를 당한 쪽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문제없었던 ‘현재’를 이야기하고, 절교를 선언한 쪽은 지금까지 변화없었던 삶이 싫다며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 ‘미래’를 이야기 한다.‘현재와 미래’라는 갈등에 “다정함은 역사적으로 기억되지 않지만 예술(음악)은 오랫동안 역사에 기록된다”는 ‘다정함과 예술’이라는 전선이 펼쳐진다. 아일랜드 본토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고 아름다운 섬 이니셰린에서 발생한 두 사람의 갈등은 일상을 흔들고 물러설 수 없는 각오와 결기로 치닫는다.영화 속 이 사건이 시작된 것은 1923년 4월 1일이다. 80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여러 차례에 걸친 독립운동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좌절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16년 4월 부활절을 맞아 봉기한 아일랜드의 독립전쟁은 1921년까지 이어졌고, 그해 12월 영국 런던에서 ‘대영 제국의 지배하에서 아일랜드의 자치’를 인정하는 휴전조약이 체결되게 된다.이 조약으로 아일랜드는 남북으로 갈리게 되고,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굳어지게 된다. 영국이라는 공통된 적과 싸웠던 아일랜드는 조약을 찬성하는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된다. 이것이 1922년 6월부터 시작해 1923년 5월까지 이어진 ‘아일랜드 내전’이다.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아일랜드 내전이 끝나갈 무렵으로 본토와 가까웠던 이니셰린에서는 간간히 전쟁의 포성이 들려온다. ‘다정함’을 무기로 친했던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예술’과 ‘미래(남은 여생)’의 방향성을 달리하면서 본토에서 일어나는 내전과 이니셰린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간의 가치관의 전쟁이 점점 수위를 더해간다.우리는 절교의 이유가 궁금하지만 영화는 절교의 이유를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서운함과 분노, 거부와 결기가 팽팽하게 맞부딪치며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자와 그를 쫓는 자와의 일상이 강도를 더해간다. ‘다정함’과 ‘예술’이 각자의 신념이 되고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전쟁의 양태와 닮았으며, 역사적 사실이며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 내전의 은유가 된다.아일랜드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졌던 친구가 이해를 달리하면서 서로를 적대시하며 한쪽을 파멸로 몰고가는 내전에 이르러서는 서로에게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씩 잃어 갔듯이, 절교를 선언한 두 사람 사이에 남은 것은 소중한 것들을 잃고 다시는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이른다.신념은 상대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해와 양보를 구하지 않으며 결기로 대처한다. 결기는 비극을 부르고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같은 신탁이 내려진다. 모호한 신탁은 갈등이 강도를 더해가면서 구체화되고, 역사적 은유와 흥미로운 상징들이 작고 아름다운 섬에 가득 펼쳐진다. 1923년 4월 1일. 이 모든 것들이 만우절 농담처럼 시작된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6-12

혼돈의 시대 지식인의 책무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오웰(G. Orwell)은 1949년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출현을 우려했지만, 우리는 지금 ‘탈진실(post-truth)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판치고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혼탁한 세상이다. 노회(老獪)한 권력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거짓을 일삼고, 진리와 가치의 객관성을 포기한 정치적 광신자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나라의 사정이 이러한데 ‘진리의 최후보루인 지식인’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의 고민과 대안을 담은 지적 담론을 주도해야 할 지식인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물론 민주화시대의 ‘지사적 지식인’과 지식정보시대의 ‘전문적 지식인’은 그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그래서 사르트르(J. P. Chartres)는 ‘지식인’과 ‘지식전문가’를 구별하고, 후자는 전자를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지식인은 지식전문가에 더해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고 그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정의와 진리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촘스키(N. Chomsky)의 지적처럼 “지식인은 진실을 밝히고 대중이 늘 깨어있도록 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생명인 ‘합리적 비판정신’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며, 공정성·균형감·자기성찰은 지식인의 필요조건이다. 지식인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특정 이념과 진영에 구속되지 않는 ‘경계인(境界人)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아가 지식인은 반드시 ‘권력과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권력과 야합한 지식인들, 즉 어용교수·어용언론인·어용법조인 등은 권력의 주구(走狗)가 된 위선자들이다.지식인이 사익(私益)을 위해 정의와 진리를 배반하면 위선자가 된다. 그 위선과 배반은 인격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뱅다(J. Benda)는 “지식인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영원불변의 진리와 이상을 추구하는 성직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이익에 따라 합리적 이성을 포기하고 현실과 야합하는 배신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지식인의 배반은 탈진실사회의 주범이다. 권력과 야합하여 ‘정치적 기생충’으로 전락하고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식인들의 위선과 배반은 비판받아 마땅하다.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지식인들의 양심과 인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의 부패는 곧 지식인의 부패를 의미하며, 지식인이 병든 나라는 망국의 길을 가게 된다.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하여 매국행위를 한 이완용, 망국의 소식을 접하고 “난세에 지식인 노릇하기 정말로 어렵구나”라는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한 황현(黃玹)은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오직 양심과 인격의 차이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게 했을 뿐이다.우리사회의 혼돈은 ‘지식전문가’는 많지만 ‘참 지식인’이 적기 때문이다.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직시하고 불의와 거짓에 맞서는 것은 지식인의 책무다. 지금 우리사회는 지식인들에게 엄중히 묻고 있다. 돈과 권력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설 것인지를.

2023-06-12

경북도, 수소환원제철사업에 행정력 집중

경북도가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총대를 멨다. 포항제철소 앞바다 132만2천300여㎡를 매립해 조성할 계획인 수소환원제철소가 인허가절차 첫 단계인 주민설명회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환경문제와 수산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힌데다, 인허가 과정이 복잡한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를 포항시와 포스코만의 인력으로 감당하기에는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경북도는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기 위한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와 연관산업이 향후 포항뿐 아니라 경북전체의 주요 경제축이 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경북도는 우선 이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국장급이 팀장을 맡을 TF는 앞으로 정부 관련부처(15~16개)와 1대1 매칭을 통해 행정절차를 밟아 나간다는 계획이다. 경북도는 TF가 관련부처와의 협의나 주민공람 콘텐츠 보강 등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할 경우, 주민설명회를 8월중에 다시 개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에 대해 포항지역 여론은 찬반으로 갈라진 상태다. 찬성하는 측은 포항제철소가 철강생산을 하루빨리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탄소중립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반면 포항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해 송도상가번영회, 영일대해수욕장상가번영회, 경북사회연대포럼 등은 ‘포항제철소 5투기장(수소환원제철소 예정용지의 옛이름) 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조직적인 반대 활동을 하고 있다. 바다매립이 영일만 환경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포스코로선 수소환원제철사업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제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면 사실상 미국과 유럽의 수출시장이 막힌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도 지난 9일 철의 날 기념식에서 “철강산업에서 탄소 중립 도전은 매우 빠르고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밝혔다. 경북도가 조만간 가동할 수소환원제철 관련 TF가 정부부처, 포항시, 포스코와 긴밀히 협조해서 인허가 절차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2023-06-12

연내 대구 미래 밑그림 완성, 대구굴기 보여야

홍준표 대구시장은 “올 연말까지 대구경북 신공항건설과 달빛내륙철도 특별법 제정, 3대 특구 지정 등 대구 미래 50년을 향한 핵심정책에 대한 준비를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시장·구청장·군수회의에 참석한 홍 시장은 이같이 밝히고 일선 시군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30년 가까이 GRDP 전국 꼴찌 등 대구의 초라한 경제성적표를 거머쥔 홍 시장은 일찌감치 대구굴기(大邱5D1B起)를 선언한 바 있다. 올 신년 인사로 “올해를 250만 대구시민이 힘차게 일어서는 대구굴기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고, 대구시 청사에 그의 의지를 담은 ‘대구굴기’ 현판을 달기도 했다.“굴기란 벌떡 일어선다”는 뜻이다. 중국이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가장 많이 쓴 표현이다. 홍 시장 출범 후 대구굴기는 이제 대구의 혁명적 변화를 알리는 키워드가 됐다. 대구시민도 홍 시장이 밝힌 대구굴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 등 화려한 정치적 경력을 보유한 홍 시장의 안목과 추진력이 대구굴기를 이끌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이날 회의에서 그가 밝힌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은 공구별 동시 착공을 통해 당초 계획보다 빠른 2028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하겠다는 것. 그리고 K-2 후적지는 금호강을 활용해 싱가로포르 마리나베이와 같은 글로벌 수변도시로 개발해 금융·관광·산업 중심도시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또 경북도청 후적지 일대를 도심융합특구로 만들고 대구와 광주를 1시간대로 연결하는 달빛내륙철도는 신공항 개항에 맞춰 개통하기 위해 특별법도 연내 제정할 것이라 했다.대구굴기를 위한 핵심 사업들이 대략적인 방향을 잡았으나 실제 목표대로 추진하는 데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협조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부분도 있다.홍 시장의 대구굴기에 대한 의지와 더불어 지역 정치권의 협조와 지역사회의 일치단결된 힘은 정책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홍 시장이 내건 대구굴기 정책이 대구가 일어서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지역사회의 모든 역량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2023-06-12

바가지 상술

홍석봉 대구지사장 ‘바가지 쓰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요금이나 물건 값을 치르는 데 있어서 억울하게 손해를 보다’는 뜻과 ‘어떤 일에 대해 억울하게 책임을 지게 되다’는 뜻이다.‘바가지 쓰다’는 말은 개화기 시절, 일본의 화투와 함께 유행한 도박 중 하나인 중국의 ‘십인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노름은 패를 돌리는 사람이 1부터 10까지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이리저리 돌리다 엎어놓은 후 숫자를 호명하면, 도박꾼들은 숫자에 해당된다고 믿는 바가지에 돈을 거는 것이다. 도박꾼들은 대개 돈을 잃었다. 당시 노름에서 돈이 털린 것을 ‘바가지 썼다’고 했다. 이후 ‘터무니없이 손해 보는 경우’를 빗댄 말이 됐다. ‘바가지요금’도 여기서 비롯됐다.최근 경북 영양군 산나물축제장에서 옛날과자 1봉지를 7만 원이라고 한 뒤 3봉지를 14만 원에 파는 장면이 TV에 방영됐다. 방송 후 비난이 쏟아졌다. 급기야 영양군이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다.경북 안동과 경주 축제에서도 바가지요금 논란이 이는 등 지역축제와 전통시장의 바가지 상술로 지자체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축제음식의 바가지 원인은 ‘자릿값’이다. 짧은 기간 본전을 뽑으려다보니 상인들이 엉터리로 비싼 음식을 제공, 말썽을 빚는 것이다. ‘장터’ 운영권을 입찰로 외부 업체에 맡기면서 벌어지는 일이다.축제 장터의 음식 차별화와 함께 지자체의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 관광은 굴뚝 없는 산업으로 그 부가가치가 높다. 지자체마다 축제 홍보에 안간힘을 쓴다. 잔칫집에 재를 뿌려서야 되겠는가. 모처럼 떠난 여행에서 상처받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야 한다. 외국에도 없진 않지만 바가지 악덕 상혼은 경제대국 10위 국격에도 맞지 않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12

적의 적은 무조건 동지가 아니다

김진국 고문 자유가 서로 충돌할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를 수정헌법 제1조에 천명해놓은 미국도 이런 경우에는 일정한 범위에서 자유를 제한한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있는 때다.전형적인 예로 ‘극장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누군가 ‘불이야’ 하고 외친다면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아수라장이 된다. 심각한 재난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거짓으로 ‘불이야’를 외친 행동을 장난으로 넘길 수 있을까. 언론의 자유가 기본권이란 이유로 용납해야 할까. 1차대전 당시 전쟁과 징병을 반대하는 문서 배포가 문제가 됐다. 언론과 출판이 국가 기밀을 누설하거나 타인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려고 하면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대법원의 판례다.복잡한 법리 논쟁은 전문가에게 맡겨놓자. 상식적으로 말하면 공동체와 이웃을 위험하게 만드는 행동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살고 있다. 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동의하는 조건으로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 우리 손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구성한 법질서이고, 정부다.기존의 질서를 무조건 고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잘못된 부분은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야 한다. 일을 잘하지 못하는 정부는 교체해야 한다. 그렇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 외부에 있는 세력, 우리 공동체를 집어삼키려는 집단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이적행위다. 낙랑공주가 같은 민족이라도 자명고를 찢도록 묵인할 수 없다.민주노총과 소속 산별노조 간부 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구속기소됐다.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그의 지령에 따라 노조 활동을 빙자해 간첩으로 활약한 혐의다. 공소장을 보면 어마어마하다. 주요 국가기관의 송전선망을 차단할 수 있는 자료, 경기도 화성·평택 2함대 사령부와 평택 화력발전소·LNG 저장탱크 배치도 등 비밀 자료를 수집하라는 지령도 받았다. 민주노총 내부 통신망 ID 및 비밀번호 등도 북한에 보고했다고 한다.이런 간첩 사건은 이전에도 보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특히 걱정인 것은 국내 정치와 시민단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민주노총을 북한이 의도대로 움직이려 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민주노총의 핵심 간부인 이들은 북한 지령에 따라 반정부 투쟁, 반미·반일 감정 등을 조장하며 민주노총을 정치투쟁으로 치닫게 했다고 적시했다.더구나 이들이 북한에 보냈다는 충성 맹세문은 기가 막힌다. 북한 선전 자료에서나 보던 유치한 표현이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받들어 대를 이어 충성”하겠다니. 진실은 재판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어떻게 이런 사람이 민주노총의 핵심 간부가 될 수 있는지 불안하다.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아무런 공식 입장 발표가 없다. ‘개인적 일탈’로 정리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그것도 개인 의견인지, 지도부의 의견인지, 아리송하다. 법원의 영장을 받아 압수 수색할 때 완강하게 저항한 것을 봐도, 이들을 민주노총과 떼어서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때 민주노총은 자신들에 대한 탄압, 공안정국 조성이라고 주장했다.간첩 몇 사람 적발한 것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민주노총이란 거대한 조직에 북한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민주노총과 관계없는 개인적 일탈이라도, 간첩 혐의자가 이 조직을 이용하고자 침투해 핵심 간부로 활동했다면, 그것만으로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일부 정치인’의 일탈에 대해 자신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돌아보면 알 일이다.민주노총이 스스로 이들의 혐의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행위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진영으로 갈라지면서 ‘적의 적은 무조건 동지’라는 잘못된 생각이 퍼져 있다. 그렇더라도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과는 함께 하지 않는다는 선은 지켜야 한다. 그 정도의 자정 능력은 보여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11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와 공리주의

유성찬(협동조합) 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 공동대표 6월은 보훈의 달이다. 민족의 독립과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된 선열들을 추모하고 배우며, 희생을 제대로 보은해야 한다는 뜻이다. 포항고 재학 중 6·25한국전쟁에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상이용사로 돌아온 외숙부님이 계셨기에 필자에게는 보훈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느끼고 있다.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는 마음가짐과 그 혼이 이 나라를 지탱해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가족과 이웃이 확장되는 공동체라는 말이 그렇게 인간에게는 중요하다.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그런 생활양식을 가진 친구들이나 이웃들, 직장동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높이 사게 된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사물과 업무를 파악하고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갖게 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이다.포스코가 탄소중립사회를 실현하고자 수소환원제철소를 만들기 위해 부지 확보에 나섰다.포스코는 포항시 송정동과 송내동, 동촌동, 제철동에 걸쳐있는 공유수면 일원에 약 40만평의 용지를 조성해 수소환원제철소를 건립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포스코의 계획은 시작부터가 순조롭지 않다지난 1일 남구 호동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민설명회를 열기로 하였으나 포스코의 자료제공이 미흡하다고 항의하는 주민들로 인해 설명회는 정상적으로 시작도 못하고 파행을 겪었다.이날 설명회는 수소환원제철소 용지조성사업에 대한 산업단지 계획변경과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등에 대한 주민 등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포스코홀딩스는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본사를 서울에서 포항으로 변경,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수소환원제철소를 건립하기에는 포항제철소 내 부지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시민 정서 극복이 쉽잖다며 부지가 그런대로 2배인 광양제철소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수소문하는 등 부산을 떨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포스코는 포항에 수소환원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수소에너지산업과 관련하여서는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울산지역과 무관할 수 없다. 울산은 국가산업지도에서 수소에너지특구다. ‘수소’라는 가스를 만들기에 위해서는 석유화학공정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NH3), 메탄(CH4) 등에서 수소(H2)를 분리해내어야 한다.탄소제로사회, 탄소중립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포스코가 현재의 코크스제철법에서 수소환원제철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환경분야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수소환원제철법은 석탄이 소비되지 않는 방식으로 철강을 생산하는 친환경적인 방식이다. 또 그래야만 포스코의 철강제품을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다. 2026년부터는 이산화탄소(C02)가 대량발생하는 철강제품은 탄소국경세가 붙어서 수출할 수 없게 된다.세계에서 으뜸가는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법을 현실에서 성공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지구상의 지도적 국가로 우뚝선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은 그렇게도 중요하다. 이제까지 코크스 제철소가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도록 했다면, 앞으로는 수소환원제철소가 그 선진국을 밀고 갈 것이다.수소환원제철소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이미 포항지역공동체가 소란스럽다. 포스코와 포항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가 뿜어 낼 분진과 미세먼지, 환경오염물질 등으로 고통받을 피해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존재한다. 희생에는 보은이 있어야 하듯이 피해에는 합리적이고도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이는 지역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처사이다.주민설명회에서 보다시피 환경시민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은 포스코가 환경영향평가업무에 있어서 불확실성을 보여줬다고 수소환원제철소 부지확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필자는 여기서 공리주의를 떠올린다. 공리주의는 19세기중반 영국에서 나타난 사회사상이지만, 현대에서 공리주의는 공직사회에서부터 시민사회에까지 업무와 목표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도덕철학이 되었다고 본다.인간은 살아생전에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그 행복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하는 것이 법과 제도이다. 또 그 법과 제도는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 특별히 재난과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모토는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진리에 가깝다.필자는 탄소중립사회를 선도하고자 하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찬동하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도덕철학이 포항지역공동체와 시민사회에서 우리의 일상생활, 경제생활에 근본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물론 공동체를 위해 희생된 피해자들을 합리적이고도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함은 필수이다.

2023-06-11

화진포 대통령 별장들의 유감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지난달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사실 50주년은 이미 지났지만.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연기됐고, 그래서 뒤늦게 친구들과 함께 기념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100여 명이 참여한 2박3일의 여행은 남해안으로 그리고 해외에서 온 동문 부부들이 함께한 부부여행은 1박2일 동해안으로, 그렇게 여행은 두 번에 나누어져 이뤄졌다.“고등학교 친구는 평생 친구”라는 말이 서양에도 있듯이 틴에이저 시절 사귀고 같이 공부한 고교친구는 가장 친밀감을 느끼고 평생을 가는 친구인 것 같다. 여행은 지난 50여 년의 진한 우정을 다시 음미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부부여행 첫날은 월정사 숲길 산책과 길가의 여러 박물관 관람 등이 주문진으로 이동하면서 이뤄졌다.문제는 둘째날 일어났다. 고성 통일전망대를 관람한 후 화진포로 이동하면서 한국 건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별장을 관람하고, 그리고 김일성 별장이라는 곳을 관람하게 되면서 일어났다.이승만 별장을 구경 하면서 생각보다 낡은 모습의 별장이 유지되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구현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 관리 자체가 부실해 보였다. 옛 역사를 구현하려면 어쩔 수 없나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김일성 별장을 관람하면서 이상하게 바뀌어 갔다. 그곳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남북한 교류의 사진들과 홍보로 가득하고 이승만 별장보다는 훨씬 최신식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과거 역사의 건물이라기보다는 홍보관 같은 느낌이었다.왜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하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옛날 모습이 구현되지도 않았고 구현할 필요도 없는 건물이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돼 있었다. 누구에 의해서 어떤 정부에 의해서 이런 건물이 세워지고 이렇게 명명 됐을까?원래 그곳은 셔우드 홀의 예배당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1890년경 ‘로제타 홀의 일기’를 남긴 로제타 여사의 아들 셔우드 홀은 서울 출생이며 우리 나라에 대한결핵협회를 설립시킨 주인공이다.당시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결핵을 퇴치시키 위해 크리스마스실을 판매하기 시작한 2대에 걸친 캐나다 선교사 가족이었다. 이 예배당은 1938년 선교사 셔우드 홀의 의뢰로 독일 건축가 베버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본래 셔우드 홀의 예배당으로 지어졌는데 공산치하에서 잠시 김일성 일가가 휴가를 보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김일성 별장이라 명명했다고 한다.참으로 그러한 명명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캐나다 선교사들의 예배당으로 명명하는 게 맞지 어떻게 김일성 별장으로 이름을 지었을까? 김일성이 잠시 머물렀다고 하여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하는건 정치적 상업적인 냄새가 너무 나는듯했다. 실제로 당시 모습도 구현되지 않았고 남북교류의 홍보물로 가득한 건물이었다.진보정권 시절인 2005년 새단장을 하고 그 예배당을 김일성의 별장이라고 명명했다고 하는데 전쟁의 원흉인 김일성을 기념할 아무런 이유도 없어 보였다.6세 꼬마 김정일이 계단에 앉은 사진이 뭐가 중요하다고 전시까지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참으로 희한한 나라에 현재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이승만 별장은 호흡이 곤란한 정도로 습한 냄새 나는 건물로 남겨두고, 김일성 별장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설로, 두 별장은 운영조차 차별이 뚜렷하게 느껴졌다.김진태 강원지사가 2022년 취임하면서 이제 그러한 잘못된 개념을 청산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곳곳에는 그러한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다.6·25전쟁으로 수 백만명의 사상자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김일성을 기념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보였다.같이 간 친구 한 명은 공산당의 흔적조차 보기도 싫다고 건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화진포 해변으로 혼자 내려가 바닷물에 발을 담구는 모습을 보았다. 오죽 속상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도 대강 훑어 보았지만, 자세히 본 아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시설과 운영은 먼저 찾았던 이승만 별장과는 확연히 달라서 해외에서 30여 년 살다가 귀국한 동기생 부부들에게 공연히 미안한 마음만 앞섰다. 대통령실이든 강원도지사든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든 누군가 이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김일성 이름을 지우는 게 좋겠다. 그곳은 김일성의 별장이 아닌 선교사 셔우드 홀로 명명되고 다만 김일성이 잠시 지냈다는 역사만 기록하면 될 것 같다.일반인들이 별칭으로 김일성 별장이라고 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공식 명칭을 그렇게 부르는 건 역사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전쟁의 원흉 김일성을 그렇게 대접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이의 상황을 알기 전에는 독일 건축가가 지었다니 동독의 공산주의 건축가가 김일성에게 아부하며 지어진 건물로 오인까지 했었다.지금도 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누워있는 셔우드 홀 가족 6명의 영혼들이 평안히 잠들 수 있도록 기도해 본다. 또한 모든 곳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반하는 흔적들을 말끔히 없애버린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2023-06-11

영양군 양수발전소 유치에 온 군민이 발 벗고 나서다!

오도창 영양군수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지방소멸위기에 직면한 영양군이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해결 대안으로 양수발전소가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지난 4월 말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영양군을 후보지로 선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숨죽이던 군민들은 유치활동에 본격 뛰어들었다.영양군은 86%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적정한 고저차와 지역 균형발전 기여도 등 모든 면에서 양수발전소 건립의 최적지이다. 발전소 건립 이후에도 주변 여건의 불확실성이 적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그리고 주민수용성이 탁월하다는 점이 양수발전소 건립의 최적지임을 증명해준다. 양수발전소 유치에 따르는 지역갈등에 의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군민들이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발전소를 유치를 원하고 있다. 사업 준비 단계부터 주민수용성을 적극 고려해 사회적 비용도 최소화했다는 점도 발전소 유치의 최적지임을 뒷받침한다.또한 영양군은 전국 최대의 풍력발전단지를 가지고 있고 인근지역인 울진에 한울원전, 청송, 예천의 양수발전소가 있어 관련 산업에 따른 에너지단지 구축으로 신재생에너지 시너지효과에도 유리한 지역이다.영양군이 유치하고자 하는 양수발전소는 1천MW규모에 총사업비 2조원, 건립기간 14년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군은 2020년 7월에 양수발전소 유치계획을 수립했고 2023년 1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해 3월부터 읍면, 관내 기관단체 등을 대상으로 각종 행사 개최 시 홍보활동을 실시했다. 관련 부서인 경제일자리과에서는 무주 양수발전소를 견학하기도 하였으며 4월에는 양수발전소 유치 건의를 위한 경북도지사와의 면담을 가졌다.또 양수발전소 유치 자문간담회 개최하고 국회 방문, 범군민 유치위원회 사전모임, 영양양수발전소 유치추진단 구성 등 적극적으로 발전소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영양군민들도 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해 뜻을 함께하고 있다. 이미 국도 31호선 선형개량 예비타당성 통과 때 ‘통곡위원회’를 구성해 영양군민들의 단합된 마음으로 성공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번 양수발전소 유치에도 군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유치에 노력할 계획이다.먼저, 지역의 대표성을 가진 각계각층의 대표자 250여명으로 구성된 ‘양수발전소 영양군 유치를 위한 범군민 유치위원회’를 구성했다.범군민 유치위원회는 유치 홍보활동, 서명운동, 지역 여론형성, 대정부 건의 등의 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며 읍면 및 범군민 결의대회 또한 추진하고 있다. 양수발전소 유치 신청서 제출까지 군민의 75%인 1만2천명 이상을 목표로 대대적인 범군민 서명운동도 전개할 계획이다.영양군에 양수발전소가 유치되면 특별지원사업비, 기본지원사업비, 사업자지원사업비 등을 포함한 약 936억원 이상의 지역발전 지원금을 확보할 수 있고 연간 14억원의 재산세, 지방소득세 등 세원을 장기적으로 확보가 가능하다.또 양수발전소 건설 이후에는 한수원 및 협력사 관계자 이주, 그리고 시설 운영 과정에서의 지역민 채용으로 150여명의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지역맞춤형 관광자원 확보로 동해권 방문객을 유인 지역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실제로 양양, 무주, 청평 등 발전소 홍보관의 방문객은 약 10만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수변공원, 카페, 전망대 조성 등의 연계 관광자원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가장 큰 기대효과로는 발전소 유치로 인해 영양군의 생활인구 유입으로 지역 소멸위기 극복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특히 발전소 건립으로 도로망 확충, 지역 커뮤니티 센터 등 지역발전 기반 구축, 주민 복지 및 문화생활, 마을기업 설립지원, 발전소 주변 주민숙원사업의 지속적인 실시로 지역과 상생 협력하는 체계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지역 소멸위기 극복을 위해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양수발전소 유치에 전 행정력을 집중하고 양수발전소 유치는 그야말로 친환경 성장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인구 증가, 인프라 확장, 관광객 증가의 1석 4조의 기회이기 때문에 영양최대 국책사업인 만큼 영양군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반드시 성사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

2023-06-11

꿈을 쏘다

달그락달그락, 콩콩거리는 소리가 난다. 숨소리를 낮추며 소리 나는 쪽으로 깨금발로 걷는다. 까치였다. 사람이 있는 줄 모르는지, 까치는 연통을 계속 쪼아댄다. 까치, 참 오랜만에 본다. 반가운 소식을 물고 왔나, 잔뜩 기대하며 까치의 몸놀림에 눈을 떼지 않는다. 숨까지 참고 지켜보는데 까치는 푸드덕거리며 하늘로 날아갔다.지난달 25일, 첫 한국형 독자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로 향해 날아갔다. 누리호의 3차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우리 힘으로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을 발사해 서비스할 수 있는 ‘스페이스 클럽’에 11번째로 가입하게 되었다. 18시 24분, 굉음을 내며 누리호가 우주로 날아갈 때, 많은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 태극기를 흔드는 아이 어른 모두 환한 표정이다.이 기쁨을 같이 나눌까 싶어, 하루 늦은 다음 날 전남 고흥으로 향했다. 고흥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길에서 만난 노랗게 핀 금계국은 삼백 킬로가 넘는 길을 환하게 이끌어 주었다. 고속도로 옆에서 노란 꽃물결을 펼쳐주며 ‘어여’ 가보라고 꽃등으로 길 밝혔다. 확 지나가는 꽃등을 오래 담고 싶어 산을 향하면 거기에도 군데군데 꽃물결로 환했다. 기분 좋은 소식을 듣고 고흥으로 가는 길이라 그런가, 그 길에는 꽃마저 등 밝히고 있었다.수백 킬로를 달려왔는데, 고흥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밀려온 물이 썰물이 되어 빠져나간 듯하다. 우주센터 주변은 우주로 가는 길목이라 아직도 들썩일 줄 알았다. 그런데 학부모 서너 팀, 젊은 연인 한 쌍, 그리고 나뿐이었다. 다행히 한 사람이 열 명 몫을 하느라 분주했다. 매표소 앞에서 큰소리로 친구들을 불러 주민등록증은 준비하라고, 그래야만 할인받을 수 있다고 소리 지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모이는 열 명 남짓한 사람이 전부였다. 광장을 휘돌아 보아도 손으로 꼽을 만한 사람뿐이었다.나로우주센터는 우리나라에 한 곳밖에 없는 우주센터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인공위성 발사장이기도 하다. 우주로 향한 꿈과 희망이 시작된 곳이다. 나도 예매하고 우주과학관에 들어갔다.우선, 애니메이션 상영하는 시간에 맞춰 관람했다. 유치원,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이 아이 손을 잡고 영화를 봤다. 10분 정도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우주로 향하는 꿈과 희망이 여운으로 남았다. 이 아이들이 우주로 향하는 길에서 꿈을 키우게 해 달라는 소망을 빌었다. 우주과학전시관에는 인공위성과 우주공간이 테마로 구분되어 쉽게 즐길 수 있다. 기본원리를 파악할 수 있는 곳, 로켓 존, 인공위성 존, 우주탐사 존이 있어 관심 있는 곳이 있다면 시간을 넉넉히 두고 구경하는 게 좋다. 우주탐사 존이 발길을 붙잡았다. 우주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할까, 무엇을 먹을까,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 평소에 궁금했는데 이곳에는 알기 쉬운 설명과 실제 물건들이 놓여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순혜 수필가 차를 돌려 우주 발사전망대로 향했다. 도착하니 5시다. 한 시간 남짓 관람할 수 있다. 안내데스크에서 매표하고 7층 전망대에 올라갔다. 전망대는 인기가 가장 많은 곳이다. 360도 회전하는 전망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다도해를 바라보는 느낌은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한 바퀴 회전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그때쯤이면 찻잔이 커피를 훤하게 드러낼 때다. 풍광에 빠져 잠시 잊은 게 있다. 저 멀리 형제섬이 보이고 나로우주센터가 보인다. 이곳에서 해상으로 17km 직선거리다. 망원경으로 발사대를 조명했다. 보슬비가 내려 망원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루어 짐작한 곳에 눈을 고정했다. 어제 저곳에서 누리호가 우주로 날아갔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춘 그 언저리에 보슬비인지 눈물인지 눈가가 촉촉하다.다도해 섬들과 나로우주센터에도 어둠이 막 내려앉는다. 못다 이룬 내 꿈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사이, 하늘에 하나 둘 별이 떠오른다.

2023-06-11

변화는 지속 성장의 힘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변화가 끝나면 인생도 끝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변화를 꿈꾸는 동안은 성장 동력이 멈추지 않으나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순간 개인은 기억의 뒤편으로 기업은 사양길로 접어든다는 뜻이다. 네티즌 사이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귀멸의 칼날’ 도공 마을 편에서 무잔은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변화는 원칙을 벗어난다는 것이고, 그건 본성을 어긴다는 것이지”라며 변화의 속성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본성은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것을 원칙으로 삼아 꾸준히 합리화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얻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다.변화는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속도로 스며드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인력거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19세기 미국인이었다. 그러나 마차라는 동물을 이용하는 수송수단이 자리잡고 있던 서양에는 보편화되지 못했지만 일본, 한국, 중국에서는 굉장히 빠르게 보편화 되었는데 가마라는 인력을 이용하는 수단이 이전부터 존재했기에 정착하는데 거부감이 덜했던 탓이다. 더구나 가마는 웬만하면 4명, 아무리 적어도 2명이 필요했는데 인력거는 혼자서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흔들림까지 적어 승차감까지 탁월했으니 빠른 대체가 가능했다. 이제는 인력거를 넘어 디지털 혁신이 밀려들고 있다. 아직은 택시업계가 피해를 보니 타다도 우버도 안된다고 하지만 피해가 없는 혁신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창조적 파괴를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영영 아무런 혁신도 할 수 없을 것이다.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며 침공을 감행하여 양국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전쟁의 양상이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전쟁의 게임 체인저는 탱크도 백병전도 아니고 미사일과 드론 전쟁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500km 영토 깊숙하게 드론으로 공군기지를 공습하는 시대인데 군인이 행군하고 유격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군대도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마치 백병전에 뛰어들 것처럼 모두 체력 훈련을 다 함께 하는 대신에 드론을 조작하는 군인, 탱크를 조작하는 군인 등 아주 세분화된 전문성으로 나누고 군인들도 자신에게만 필요한 훈련을 받고, 온라인과 메타버스 속에서 게임하듯 Digital Twin으로 사전에 시뮬레이션 하에서 훈련을 받는다면 인구 소멸과 복무 기간이 짧아지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기업이든 군대든 변화를 하려면 기존의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변화는 기존의 선입견을 버리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존 조직의 이해가 아니라 전투력을 유지하고 향상하는 일이 무엇인가가 본질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다.기업의 수명은 짧아지고 인간은 백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길어진 인간의 수명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속 가능 성장에 관심을 주어야 한다. 기업이 한 백 년은 끄떡없겠다는 믿음을 줘야 직원들의 충성심을 견인할 것이다. 그 충성심은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고 기업은 성장으로 보답할 것이다.

2023-06-11

ChatGPT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유영희 작가 두어 달 전 어느 모임에 참여했다. 모임 구성원은 다섯 명이었는데, 명상 안내자와 상담 전문가도 있고, 책을 한두 권 이상 출간한 작가도 두세 명이다. 그런데 그중 작가 두 사람이 ChatGPT를 활용한다면서, 한 사람은 아예 유료로 결재해서 이용한다고 한다. 그동안 ChatGPT 관련 뉴스를 많이 보았어도 인문 분야에서 활용하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고, 게다가 인문학의 최첨단이라고 할 만한 명상 전문가들이 글을 쓰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고 하니 낯설었다.마침 6월3일 한국사고와표현학회의 춘계 정기 학술대회 주제가 ‘인공지능 시대, 사고와 표현 교육의 방향과 과제’여서 참여했다. 인문학 교수와 게임학 교수의 입장 차이가 아주 볼만했다. 인문학 교수는 인공지능이 학습하거나 사고하거나 추론하거나 성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코딩도 배우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뒤이어 발표자로 나선 게임학 교수는 국가의 정책 목표가 전 국민이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장했다. 학술대회가 종료될 때까지 참여하지 못해서 어느 쪽이 우세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인공지능을 둘러싼 이런 논쟁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사실 인문학자뿐 아니라 일론 머스크 역시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액, 미국의 정치인 앤드류 양 등과 함께 미래생명연구소 명의로 AI 시스템 개발을 멈추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인공지능 열풍을 보면서 정말 이런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던 터라 인공지능에 반대하는 입장이 솔깃해진다.그러나 AI판 러다이트 운동이라고도 하는 일론 머스크의 이런 주장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영국의 기계 파괴 운동이었던 러다이트 운동도 실패로 끝났으니 말이다. 1876년 영국이 중국에 놓은 오송 철도를 철거했던 청나라도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하자 철도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유럽 각국도 앞다퉈 철도를 깔았으니,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 고대의 노자는 철기 문명의 문제를 비판하며 문자 없던 시대로 돌아가자 외쳤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컴퓨터를 쓰지 않겠다는 미국 시인 웬델 베리의 선택은 개인의 삶의 방식으로 존중할 가치가 있지만, 그것을 사회 전반에 적용하기는 어렵다.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신중한 입장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기술 발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역사를 보아도 실현 불가능하다.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도 우려가 많았고 부작용도 해결되기 어렵지만,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AI 사용 능력 격차와 그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다. 인문 정신의 존재 이유는 기술 발전 속에서 어떻게 사회 통합을 이루고 인간성을 보호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데 있다. 두어 달 전 모임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ChatGPT를 잘 활용하여 명상을 보급하고 저술 활동 하는 데 도움 받기를 바란다.

2023-06-11

마지막 수업

김규종 경북대 교수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존재한다. 이것에는 예외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과 마지막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첫사랑이나 첫인상 혹은 마지막 잎새나 마지막 수업 같은 말이 생겨난다. 1871년 알퐁스 도데가 남긴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과 1907년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기억에 남아있다.내게도 그런 일이 있다. 지난 목요일 오전 9시, 10시 반 그리고 오후 3시에 마지막 수업을 한 것이다. ‘동서 고전의 만남’, ‘러시아 어문학의 세계’, ‘명저 읽기와 토론’ 세 과목을 종강한다. 대상포진으로 인해 한 주일을 순연(順延)한 결과다. 시간이 여유 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대단한 안타까움 같은 건 없었다.사람들의 질문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온다. “정년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그들이 기대하는 대답은 한결같이 “시원섭섭하시죠!”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시원합니다!”. 섭섭한 것은 전연 없다. 섭섭할 것이 조금도 없는 종강이기 때문이다. 내가 냉정한 인간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수업을 향한 학생들의 자세가 뜨뜻미지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9년 전 선배 교수가 마지막 수업을 한다길래, 교수 휴게실에서 오후 6시 무렵 만나기로 했다. 그분은 오후 6시 반이 다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왜 이리 늦었냐?!”는 나의 지청구에 “마지막 수업이잖아!”하고 응수한다. 하지만 그것은 수업 이후 학생들의 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교수의 일방적인 판단이다. 정년을 앞둔 교수의 마지막 열정을 이해하는 학생은 완전히 소멸했다. 그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45분을 넘겨 진행한 종강이 어떤 인상을 불러왔을지, 모를 일이다.지난 세기 86년 가을 학기에 ‘19세기 러시아 소설’ 강의가 나의 첫 번째 수업이었다. 강의를 주면서 학과장 교수는 “자네 선배들은 전부 교양 수업을 했는데, 전공 수업은 자네가 처음이야!”하는 말씀을 하셨다. 박사과정생으로 처음 맡은 강의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단편소설 ‘이발사’를 통독한 기억이 생생하다.1987년 봄 학기에는 학부 4학년 전공과목인 ‘러시아 희곡’을 맡아서 열강했다. 그런 세월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대학과 인연을 마감할 시기가 온 것이다. 누구나 크고 작은 인연과 관계 속에서 생애를 이어가지만,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사람의 보살핌과 조바심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릴 것인지 궁금하다.한 가지 저어되는 사실이 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현저하게 드러나는 사회적 수동성이다. 강의실에 들어갈라치면 군데군데 어둡다. 세 군데의 조명 가운데 두 군데의 조명이 꺼져 있기 일쑤다. 그런 어둠 속에서 학생들은 스마트폰 삼매경에 푹 빠져 있다. 강의가 끝난 강의실이 환하고 에어컨이 돌아간다. 요즘 학생들은 자기 이익과 관심 대상이 아니면, 눈감고 지나간다.학생들의 사회적 수동성을 지적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대학은 지금 마구 흔들리고 있다. 지적-정신적 수준보다 중요한 사회적-윤리적 책무가 사라진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23-06-11

“포항과 포스코, 한마음 돼 현안 극복하자”

지난 9일은 포스코가 첫 쇳물을 뽑아낸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철강협회는 이날을 ‘철의 날’로 지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포스코는 이날 포항에서 포항제철소 역대소장과 퇴직 직원들을 초청해 다양한 행사를 했다. 포스텍 체육관에서 열린 홈커밍데이 행사에는 포스코 성장 신화의 주역인 퇴직 직원과 가족 등 2천700여명이 모여 달라진 제철소 모습을 둘러보면서 회포를 풀었다. 포항제철소 창립멤버인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1994년 포항제철소장 재임)은 이날 “첫 쇳물이 나왔을 때 저절로 만세가 외쳐지고 눈물이 났다”고 회고하면서, 포스코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1970년 4월 1일 공사를 시작한 포항제철소는 1973년 6월 9일 1고로(용광로)에서 처음 쇳물을 생산했다.포스코가 출선(出銑) 50년을 맞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최대 현안은 ‘탄소배출 제로(0)’ 시대를 열기 위해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활용해 철강을 생산하는 일이다. 포스코는 자체 개발한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2030년까지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의 로드맵 실천을 위해서는 정부와 포항시민의 전폭적인 협조가 전제돼야 하는데, 수소환원제철소 부지 조성을 위해 지난 1일 개최한 주민설명회부터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제동이 걸린 상태다.오는 15일 포스코 범시민대책위원회가 포항에서 열 계획인 ‘포스코홀딩스 및 미래기술연구원의 실질적인 포항 이전과 최정우 회장 퇴진요구’ 집회도 포항지역사회를 극도로 분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포항상공회의소는 지난주 “포항의 미래가 달린 이차전지 특화단지 선정을 앞두고 지역사회가 분열돼 안타깝다”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포항상의도 밝혔듯이, 포항은 지금 현안 극복을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할 때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지역사회가 첨예한 갈등을 겪는 모습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북도와 포항시, 포스코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민사회가 미래동력 확보를 위해 한마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23-06-11

대구 최초 시집전문 독립서점

우정구 논설위원 독립영화나 독립음악 등 특정 장르에 독립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의 대표적 특징의 하나가 외부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독립영화가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 상업영화와의 차이점은 자금과 배급망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를 살린 영화를 만들어 가는 창작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독립서적도 대형화 추세를 보이는 서점가의 흐름 속에 외부자본의 간섭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형문고의 100의 1도 안 되는 작은 면적과 책을 보유하지만 책방 주인의 취향과 안목으로 채워진 책들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특히 접근성이 용이한 동네 한가운데 자리를 잡으면서 수익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주목받으면서 그 숫자가 점차 늘어간다.한 조사에 의하면 작년 기준으로 전국에 운영되는 독립서점은 모두 815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년보다 70곳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국내 독서인구가 매년 줄어드는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온갖 것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독립서점도 전체 수의 약 60%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나머지가 전국지방 곳곳에 분산돼 있어 실제로 대구에서는 아주 드물게 독립서점을 만날 수 있다.최근 대구 앞산 카페골목 입구에 시집전문 독립서점이 생겨 화제다. ‘산아래 詩’(대구시 남구 현충로 7길 6)는 대구경북 시인들의 시집만 판매하는 서점이다. 시집을 출간하더라도 판로가 없어 애를 태우던 지역작가의 작품을 독자와 연결해 주는 역할에 기대가 모아진다. 대구시인협회도 시집전문 서점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 독서 인구가 줄고 있는 지금, 독립서점이 많이 나와 독서 진작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11

대구경북도 전세사기·깡통전세 위험성 높다

정부가 지난 열달간 전세사기에 대한 특별단속을 벌여 전국적으로 3천명 가까운 전세 사기범을 검거하고 그중 280여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대구와 경북에서도 183명을 붙잡아 이 가운데 15명(대구 8명, 경북 7명)을 구속했다. 수사과정에서 확인된 피해규모가 4천억원을 넘어섰다. 연령별로는 사회초년생인 20대와 30대 피해가 가장 많았고, 주택 유형별로는 다세대주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범죄 유형별로는 금융기관 전세자금 대출 등 공적자금을 소진하는 허위 보증·보험, 조직적으로 보증금 또는 리베이트를 편취한 무자본 갭투자, 불법 중개행위 등으로 다양했다.특히 이번 수사 과정에서 전세 사기 가담의심자 중 43%가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라 관련자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정부는 특별법을 만들어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LH가 매입, 피해자에게 임대해 주도록 했으나 피해에 대한 근본적 해결은 될 수가 없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부동산경기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많은 데다 하반기 신규 입주물량까지 몰려 역전세난 등 전세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 야기가 우려된다. 주택금융연구원은 올 하반기 경북은 공동주택의 40%, 대구는 30% 이상이 역전세 현상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집값과 전셋값 하락으로 나타난 역전세는 세입자가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대책이 꼭 필요하다.지난 8일 대구서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에 대한 피해가 사회적으로 미칠 여파가 심각함을 알리는 신호다. 정부차원의 특별한 대책이 당연히 나와야겠지만 지역단위 행정도 사회문제 될 부분을 먼저 살피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전세사기나 깡통전세 문제는 정부의 집값 안정대책이 실패한 때문으로 나타난 것으로 현 정부는 전 정부의 실패 정책을 탓하기 전 실패한 정책을 회복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특히 대구경북은 전세사기나 깡통전세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된 만큼 대구시와 경북도의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2023-06-11

포항의 위기

김유복 포항사회네트워크 대표 세월이 참 빠르다. 봄꽃 향기가 가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6월이다. 세계적 기후변화로 한여름 같은 더위가 일찍 찾아오고 지난해 태풍으로 파괴된 피해복구가 아직도 절반을 넘지 못했다는데 올해는 폭우가 더 극성을 부릴 예상이라니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연초 필자는 ‘위기를 기회로 삼자’라는 글로, 지난해 ‘힌남노 태풍’으로 엄청난 재난을 겪은 우리지역의 위기를 관(官)과 민(民) 그리고 기업(企業)이 총망라한 지역 공동체가 하나 되는 ‘원팀’으로 뭉쳐서 극복 해 나가자고 주장한 바가 있다.당시, 남구 곳곳이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포스코만 하더라도 1조3천여억 원이란 천문학적 손실을 입어 지역민들의 간담을 쓸어내렸었다. 포스코는 그러나 특유의 내재된 정신력과 지역 민·관·군의 적극 지원에 힘입어 135일 만에 복구를 완료해 냈다. 포스코의 복구 과정들은 지역민들과 하나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시민 응원 속에 ‘제2의 영일만 기적’을 현실화 할 이차전지 소재부분 육성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지역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앵커기업인 포스코퓨처엠(전 포스코케미칼)이 삼성SDI와 역대 최대 규모인 총액 40조 원에 달하는 전기자동차 배터리(이차전지) 소재(양극재)를 10년간 공급하기로 한 계약을 맺은 것부터 이차전지 양극재 생산 세계 1위를 다투는 에코프로그룹의 6개사가 영일만산단에 ‘포항캠퍼스’를 조성하고 대규모 투자를 통한 본격적인 생산 활동에 들어가면서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이런 동력들은 포항이 또 한 번 도약 할 수 있는 희망과 함께 6월중 결정 될 국가첨단산업법 시행에 따른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에 포항시가 가장 유력하게 부각하게 만든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실제 이차전지 업계에선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에서 포항이 타 도시를 월등히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있다. 지난 2월말부터 지금까지 4개월 가까이 이강덕 시장이 와병으로 부재(不在)하면서 컨트롤 타워 공백으로 인한 시정 난맥상 등 후유증이 들려오고 있다. 에코프로그룹을 진두지휘하던 총수도 최근 사법처리 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런 가운데 오는 15일 ‘포스코홀딩스 본사이전 포항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포스코회장 퇴진 범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이차전지특화단지 선정 평가에서 지역 주요 산업과의 연계 발전 가능성과 특화단지를 대상으로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 생태계 구축이란 항목이 있다. 포항은 누가 뭐래도 기업도시다. 50만 도시의 위상을 위태롭게 하는 인구절벽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업유치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 상황에서 포항은 우선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에 사활을 걸어 반드시 결실을 거두어야 한다. 당연히 시민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총력전을 펼칠 필요가 있다.필자는 포스코홀딩스대책위의 포스코 회장 퇴진 궐기대회 소식을 듣고 이차전지특화단지 선정 평가단은 과연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 포항시는 과연 포항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고 홍보해도 될까, 앞으로 관과 시민이 기업 운영에 관여하는 포항에 대기업들이 내려올까 등 여럿 상념들이 스쳐갔다.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는 법으로 보장받는다. 그러니 포스코 회장 퇴진 집회는 추진하는 이들의 자유다. 다만, 포스코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는 범대위가 포항시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인지는 묻고 싶고, 꼭 집회를 해야 한다면 이차전지특화단지 선정 이후에 할 것을 권하고 싶다.포항은 현재 50만 도시가 붕괴됐다. 수도권 경제 집중으로 미래도 불투명하다. 기로(岐路)에 서 있다 할 수 있다. 총체적 위기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많다. 평생 포항서 살아왔고, 앞으로 뼈를 묻을 필자도 기우는 고향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는 않다. 이차전지특화단지 선정을 앞두고 있는 지금, 적어도 포항사회는 자그마한 지혜가 필요하다. 기회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2023-06-08

반려동물 시집살이

홍석봉 대구지사장 한 모임에서 반려동물이 화두가 됐다. 한 친구가 애견 세 마리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개를 돌보느라 꼼짝 못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한 마리는 열 여덟살이다. 인간 나이로 백 살이 넘는다. 요즘 다리가 아파 잘 걷지도 못해, 똥오줌을 받아내고 식사 때마다 챙겨줘야 한다. 치매나 거동이 불편한 어른 돌보듯 한다. 은퇴 후 집에서 소일하는 친구지만,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하루 종일 반려견 뒷바라지에 매달린다.애견을 챙기는 일이 힘들면서도 18년 동안 가족같이 함께 생활해 온 터다. 정리를 생각하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가족들만 바라보며 외출하고 돌아오면 반기는 강아지를 보면 재롱부리는 손주들 못잖다.그동안 반려견 두 마리를 저 세상으로 보냈다. 애견장례식장을 이용해 장례비용만 한 번에 50만 원이 들었다. 병 들어 동물병원에라도 가면 20~30만 원 씩은 보통이다. 요즘엔 반려동물 보험 상품도 나오고 있지만 적잖은 금액이 부담이다. 반려견을 떼어놓고 멀리 휴가나 며칠씩 묵는 나들이는 생각지도 못한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숙박지나 숙소를 찾아야하고 호텔을 이용하면 그만큼 경비가 많이 든다. 한 친구는 반려동물 때문에 최근 20년 동안 해외여행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휴일 날 동네 공원에는 반려동물과 산책을 나선 이들이 많다. 곳곳에 영역 표시를 하는 모습에 낯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이젠 일상이 됐다. 애호가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반려동물 시집살이가 녹록치 않다.반려견이 죽으면 애견동호회에서 부고도 돌리고 부조도 하며 이별을 함께 슬퍼해 준다. 바야흐로 반려동물 천국인 세상이 됐다.펫코노미 시장도 덩달아 진화하고 있다. 그 끝을 모를 정도다. 반려동물이 거의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 1천400만 명 시대다. 항공업계는 멍멍이 기내식을 검토하고 있다. 가구와 치킨업계 등 펫 산업 진출이 잇따른다. 전용 소파에 펫 마루까지 등장했다. 보험사들은 보장을 강화한 반려동물 보험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주인이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정신질환진단비까지 준다. 털날림 등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까지 챙긴다. 반려견의 사고까지 보장해 준다. 반려인 사망 때 반려동물을 돌볼 수 있는 보험도 있다. 경북 봉화엔 펫고교까지 생겼다.반려동물을 키우는 데는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어린아이 키우는 것과 같다. 각종 예방접종은 필수다. 배변, 산책 훈련도 시켜야 한다. 훈련이 안 된 반려동물은 주변에 민폐를 끼친다. 자칫 반려동물 혐오와 분쟁 소지가 없잖다. 소음은 가장 고민거리다. 반려동물 유기와 학대행위도 늘어난다. 인명을 해치는 사고도 적지 않다.반려동물은 인간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주지만 불편과 예기치 않은 사고는 감수해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는 책임과 의무가 필수적이다. 단단히 시집살이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한다.

2023-06-08

포항과 포스코, 윈윈할 수 있는 지혜 모을 때다

포스코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다음주 열 예정인 ‘최정우 포스코 회장 퇴진 요구’ 집회를 앞두고 포항지역사회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범대위는 오는 15일 포스코 본사 앞에서 포스코홀딩스 및 미래기술연구원의 실질적인 포항 이전과 최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질 계획이다. 특히 이날 집회에서 최 회장의 화형식을 비롯한 극단적인 시위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포스코측이 긴장하고 있다. 포항지역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범대위는 포스코홀딩스의 실질적인 포항이전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부터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범대위 시위가 과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포항청년회의소 등 포항지역 3개 청년단체는 그저께(7일) ‘포스코 지주사와 미래기술연구원 직원들의 포항근무 문제로 지역사회 갈등이 장기화하는 것이 우려스럽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년단체들은 성명서에서 “일년여를 끌었던 포스코 지주사 소재지 포항이전 논란이 일단락된 상황인데도, 범대위가 200명도 채 안 되는 포스코홀딩스 서울 근무 인원 모두가 포항에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역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청년단체들이 성명서에서 밝혔듯이, 포항지역사회가 포스코그룹 본사직원들의 근무지 문제로 또다시 홍역을 치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포항과 포스코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현안이 쌓여 있다. 포항시는 당장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와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위해 포스코의 지원을 받아야 하고, 탄소중립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인 포스코도 수소환원제철소 부지 조성을 위해 포항시민들의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 이러한 현안은 양측 모두 생존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포항지역 시민단체와 포스코의 갈등은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포항시와 포스코는 지난해 포스코홀딩스 본사 서울이전 문제로 만들어진 상생협력TF를 아직도 가동하고 있다. TF회의에 시민단체의 요구를 공식안건으로 올려 대화를 통해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3-06-08

서민음식 라면

우정구 논설위원 전세계에서 1천억개가 넘는 라면이 매년 소비되고 있다고 하니 라면은 지구촌의 주요 식량인 셈이다. 각종 재난이 발생하면 먹거리 대용품으로 가장 먼저 라면부터 전달된다. 국가별로는 중국에서 소비량이 가장 많지만 1인당 소비량은 한국이 단연 1등이다. 라면 덕에 한국인의 1인당 면소비도 세계 1위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 9월 등장한 삼양라면이 효시다. 이때 가격은 100g당 10원이다. 소맥분과 우지가격 인상을 이유로 7년 후인 1970년 20원으로 올랐다. 내용량도 120g으로 올랐다.1978년 50원으로 인상되고, 1981년에는 100원으로 인상된다. 당시 자장면 500원, 곰탕 1천200원, 냉면 1천300원 정도 했으니 라면은 상대적으로 싼 음식이라 할만 했다. 지금 라면 한봉지가 1천원 정도 하니 60년만에 100배가 오른 셈이다.그렇지만 오랜 세월동안 라면은 김밥 한 줄과 함께 한끼 식사로서 충분해 가성비면에서 서민층에게는 최고의 음식으로 인정을 받아왔다.일본도 라멘이란 이름으로 라면을 팔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즉석요리를 하는 인스턴트 식품 개념이나 일본은 국수처럼 정식 면요리의 하나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라면의 소비자 물가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서민음식의 자리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달 라면의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13.1%, 2년전보다 24.1%가 올랐다. 라면과 김밥 한줄이 1만원하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민들이 비교적 부담없이 찾을 수 있었던 서민음식인 라면값 인상 소식에 서민들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8

대구시 올해는 청렴도 하위 불명예 벗어야

대구시가 전국 광역단체 중 최하위권 수준에 머물고 있는 청렴도를 높이기 위해 총력을 쏟는다고 한다. 그저께 대구시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2023년 자체 청렴도 측정 결과 및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 홍 시장은 “부서별 청렴취약 요인을 분석, 개선 대책을 마련하고 올해는 반드시 청렴도 최상위권으로 도약할 것”을 당부했다. 대구시는 지난 1월 권익위가 발표한 2022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종합청렴도 4등급을 받아 전년에 이어 연속 하위등급 판정을 받았다. 특히 청렴체감도는 최하위 등급인 5등급으로 밝혀져 공직사회의 기강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게 했다.평소 공직자의 청렴을 자주 강조한 홍 시장이 이번만큼은 대구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아 청렴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보여 2023년 권익위 발표의 공공기관 청렴도 결과에 관심 쏠린다.대구시는 청렴도 개선이 지지부진함에 따라 고질적인 비리를 저지르는 공무원에 대해서 무관용 원칙을 적용,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청렴정책 제도기반 확립과 반부패제도의 생활규범화 등 4대 전략 20개 세부과제를 계획해 현재 추진 중이다. 지난 4월과 5월 대구시 자체조사에 나서 내부청렴도와 외부청렴도 평가결과가 비교양호한 것도 확인했다. 시는 그동안의 청렴도 개선 노력이 성과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하지만 청렴도는 한사람 혹은 한 부서의 잘못으로 전체가 나쁜 평가를 받을 수 있기에 긴장감을 늦추면 안 된다. 공직사회가 시민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은 공직사회의 정직성과 청렴도 때문이다. 대구시의 청렴도가 전국 꼴찌에 머물고 있으면 대구 공직에 대한 시민 불신이 커지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대구시민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어서 청렴도 개선은 매우 중요한 일의 하나다.특히 대구시는 지역의 공공기관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 대구시의 깨끗한 청렴문화는 곧 지역사회의 표상이 된다. 대구시 공직사회는 분골쇄신의 각오로 대구시 청렴도를 끌어올리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3-06-08

화산불 위령제를 보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현충일 아침, 베란다에 조기(弔旗)를 달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영일만 건너 포스코가 조용하고 아파트엔 태극기의 일렁임도 없다. 또 그냥 놀아버리는 국가추념일이 된 듯하다. ‘화산불 위령제’에 가는 길,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은 보지 못해 허탈한 마음으로 화진해수욕장으로 내려갔다.예전에는 50사단 해안훈련장이 있었던 곳, 지금은 모든 건물이 철거되어 모래밭이 적막하다. ‘썩은 숭이네 고랑’이라는 이곳에서 매년 현충일에 임진왜란 때 왜구들과 싸웠던 병사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임란 화산불 전몰호국영령 위령제’가 열린다. 2005년부터 향토 애림(愛林)단체인 노거수회(老巨樹會)가 정성껏 모셔오고 있는데 올해는 김인술 회장을 비롯한 15명의 회원들만 모여 조촐하게 제상을 차렸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지방 국회의원, 시장과 교육장, 군 장병 등 많은 인사가 모여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살풀이춤 등 고전무용과 헌다례(獻茶禮)가 풍성하게 치러졌었다.초대 회장이었던 이삼우 기청산식물원장의 해설을 들어보면 80년대 초부터 몰두해온 향토사 발굴과정에서 이곳 모래더미에 묻혀있는 기록에 남겨지지 않은 전쟁사를 알게 되었단다. 임진왜란 무렵 이곳 대진항에 진을 친 왜군이 노략질을 일삼자 송라찰방(옛 역참관원)이 월포 수군만호군과 의병 등 300여 명을 이끌고 화산불 남쪽의 큰 숲인 대동수(大東藪)에 모였다가 야간에 기습 공격하여 싸운 결과 양쪽 모두 전멸 상태가 됐고 지휘관들은 도망가버려 역사의 기록 없이 잊혀진 전투가 되어 구전으로만 전해온다는 것이다. 수차례 유적지로 만들려고 했지만 ‘기록에 없다’란 이유로 아직도 연초록 갯방풍의 줄기가 기어 다니는 모래밭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화살촉도 발견되고 바람이 모래를 날려버리면 유골도 곳곳에 노출되어 골곡포(骨谷浦)라 했고, 일제시대 때 송라초등학교의 일본인 교장이 고요한 달밤에 이곳을 찾아와 제물을 바치고 통곡을 했다는 주민들의 말도 전해진다.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사라져버려 수백 년 거들떠보지도 않던 무명용사들의 원혼을 기리기 위하여 노거수회는 매년 해당화를 심고 동해안 최남단 자생지로 복원하여 전몰장병들의 혼령이 붉은 해당화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해변 풍경을 꿈꾸면서 가꾸어 왔다. 간단히 음복하고 소나무 숲 사잇길을 걸으면 드문드문 붉은 해당화가 낮게 피어있고 주황색 열매가 곱다. 매년 캠핑카들이 진을 치던 이곳을 철조망으로 막아두었으니 그나마 숲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푸른 동해의 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지키고 있다. 모래밭에서 새끼를 돌보고 있는 멸종위기 2급의 쇠제비갈매기 부부를 찍고 있는 사진작가들도 보인다. 화진해수욕장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한다. 언젠가 이곳에 위령비를 세우고 소담한 생태공원으로 꾸민다면 일본인들도 오지않을까?7번 국도로 오다가 보경사 입구 광천리에 있는 한미해병충혼탑에 올라갔다. 84, 89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 헬기 추락으로 사망한 한미 해병 52명의 영혼을 지키려 89년에 건립한 탑 앞에 서서 동해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현충일 호국의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2023-06-08

장미 아가씨들

강길수 수필가 장미 아가씨들이, 펜스 담장 바깥으로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웃기 시작했다. 방송국 주물 펜스형 담장이다. 오월 중순이 되자, 해맑은 장미 웃음이 절정이다.출근 때 보다, 퇴근 때가 장미 웃음이 더 예쁘고 많다. 왠지, 동남쪽으로 더 많이 얼굴을 내밀고 웃기 때문이다. 며칠간은 풋풋한 고운 장미 얼굴에 취해 오갔다. 어느 날 퇴근길에, ‘꼭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북한 응원단 아가씨들 같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마, 부산 아시안게임 때였지 싶다.담장 바깥으로 하나같이 얼굴을 내밀고, 활짝 웃는 장미꽃들과 북한 여자응원단의 어디가 닮아 그런 생각이 났을까. 아름다워서? 여럿이 몰려 있어서? 전체 모습이 닮아서? 일사불란해서? 요정처럼 나타나서? 대체 무엇 때문일까? 당시 북한 응원단은, ‘미녀 응원단’이란 별명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여, 마음에 남았다가 장미 웃음에 되살아났으리라.따져본다. 사람과 차량이 많이 다니는 정문 앞 큰 도로는 방송국의 북쪽이다. 장미가 저절로 북쪽으로 꽃이 더 많이 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식물은 햇빛 쪽으로 더 자라지 않는가. 하면, 인위적 무엇이 작용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연구자처럼 장미꽃과 가지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역시 그랬어. 내 예상은 맞은 거야. 장미 가지들을 누가 일부러 담장 대공 사이 밖으로 끌어내고, 어떤 것은 철사로 대공에 묶기까지 한 게 아닌가. 장미꽃들은 사람에 의해서 억지로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웃었던 게다. 장미들의 고통이 가슴에 전류로 흐르는 듯했다. 장미를 아프게 한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했던가. 식물은 사람과 동물이 자기를 어떻게 처분하든, 묵묵히 당하며 자신을 내어줄 뿐이다. 가꾸는 대로 자라나고 열매 맺는다. 미생물에서 인간에게 이르기까지 식물을 먹지 않고 사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저 장미 나무들은 사람이 몸을 옥죄는 폭압을 가해도 열심히 꽃 피워 봄을 아름답게 비췄다.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린 지 올해로 21년째다. 그때 배를 타고 부산에 와서 해맑게 웃는 얼굴로 남녘 동포들을 설레게 했던 북한 응원단…. 꼭 장미 아가씨들 같았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행동과 유니폼도 관심거리였다. 반면, 어딘가 조금은 불안해 보이고, 부자유스럽게 느껴지던 기억도 있다. 우리 사회의 자유분방함과 북한 응원단의 기계 같은 움직임이 대비된 게 아닐까.그랬다. 담장의 장미 아가씨들과 북한 여자응원단은 인위적 통제를 받는 점이 닮았던 거다. 하지만, 북한 응원단의 젊음은 그들 체제의 일사불란을 뛰어넘었기에, 우리 국민의 가슴엔 오월의 장미 웃음 같았으리라. 담장의 장미 웃음도 오월 속으로 가고, 유월이 왔다. 우리 사회는 북한과 같은 인위적 일사불란 사회를 추구하는 세력도 있다고 본다. 겉으론 그럴싸해도, 그 안엔 자유와 민주가 없다.호국의 달 유월을 맞아 드는 생각은 바로, 자유와 민주다. 국민과 우방이 피로써 지켜낸 자유, 민주의 가치는 목숨만큼이나 고귀한 것이니까.

2023-06-08

눈이 부시게

배문경 수필가 얼마 전 응급실로 할머니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쓰러진 채 삼일을 꼼짝도 못한 채 견뎠다고 했다. 대퇴부 골절이었고 딸이 집에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자 집으로 찾아가서 발견되었다. 움직이지 못한 며칠은 지옥이었으리라. 물 한 모금, 휴대폰을 할 수도, 살려달라고 해도 들리지 않을 암흑의 밤낮을 보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사월 초파일 백률사를 딸아이와 찾았다. 날이 날인만큼 사람들로 북적였고 대웅전까지 등을 달 생각으로 이름표가 없는 등만을 쫓아 가파른 길을 올랐다. 그때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고 70대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고함을 지르며 뒷걸음으로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황급히 나는 환자의 의식 상태를 체크했고 주위사람들에게 119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뇌출혈과 경추손상이 걱정되었지만 목을 조금 움직이는 상태였고 두통을 호소했다. 외출혈은 없었지만 뇌출혈은 충분히 의심스러웠다. 환자는 두부(頭部) 밑 통증을 계속 호소해서 옆 사람에게서 손수건을 얻어 밑에 깔아주고 상태를 체크하며 안정을 유도했다. 119 구급차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아, 이제 거의 다 되었다는 생각에 걱정 말라는 말로 계속 도닥였다. 구급대원이 구급차에서 내려 환자이송을 준비할 때 맥박과 호흡, 경추 손상 없음, 뇌출혈이 우려된다는 소견을 119대원에게 전했다. 신경외과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가줄 것을 요청했다. 환자는 들것에 의해 구급차에 옮겨져 사이렌소리를 내며 사라져 갔다.나는 다행이란 생각에 흙이 잔뜩 묻은 치마를 툭툭 털며 일어나 대웅전을 향해 걸었다.곁에 있던 딸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난 엄마처럼 못했을 것 같아. 119부르세요” 이 정도는 했겠지만 침착하게 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쳐다보는데 약간 기분이 좋았다. “할 수 있어. 너도, 이제 봤으니까.” 나는 웃었다. 사고를 지켜보며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비슷한 일이 생각난다. 작년 지인이 하는 세계적인 행사에 의무실을 담당했다. 이틀의 일정이었고 날이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정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부르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달려갔더니 참가자 한 사람이 빗길에 미끄러져 옆으로 쓰러져있었다. 전체적인 상황이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목이 옆으로 비틀려 있었고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의식을 확인하고 움직이지 말라는 말과 함께 119를 불러달라고 주위에 요청했다.곁에 본인이 갖고 있던 옷가지가 있어 몸을 고정시키고 맥박과 의식을 체크했다. 귀에 피가 나는 것이 걱정이었다. 병원에 이비인후과 의사가 없을 수도 있고 뇌에 문제가 심각한지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환자를 다독이며 구급차를 기다렸고 경추손상 우려가 있으니 조심히 이동시켜달라고 얘기하고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구급대원은 함께 병원에 가서 상태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근처에 있던 자가용으로 병원으로 가서 응급실 직원들에게 상황과 상태설명을 다시 진행했다.뇌CT에서 뇌출혈 소인은 없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귀에서 피가 나는 것은 알 수가 없다며 연휴기간이라 닥터가 없으니 이비인후과가 있는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집이 울산인 환자와 친구가 울산에 있는 병원을 연결했고 나는 사설 구급차를 연결해서 급하게 환자를 다시 이송시켰다.며칠이 지나고 그 환자는 고맙다며 전화로 안부를 전해왔다. 다행히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은 것 같다며 다음에 찾아뵙고 식사 대접하겠다는 말을 덤으로 주었다.작년의 사고와 올해의 사고를 통해 정말 작고 사소한 행동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119구급대가 있어 너무 감사했다.나는 늘 죽음 가까이에 선 간호사다. 오늘처럼 삶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진 역량으로 최선을 다해 삶에 더 머무르도록 돕는다. 희미해져 가던 그들의 삶이 조금 더 눈부시게 빛나도록 거든다. 내 직업의 힘이다. 딸도 눈부신 직업인이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2023-06-07

갑진일주

육십갑자 중 마흔 한 번째는 갑진(甲辰)이다. 천간(天干)의 갑목(甲木)은 기세 좋게 자란 큰 나무의 모습이다. 지지(地支)의 진토(辰土)는 비옥한 땅이다. 그곳에 뿌리내린 웅대한 나무의 형상이다. 동물로는 푸른 용이다.갑진일주는 하늘에는 천둥이 치고, 땅에는 풀이 있는 연못이다. 속이 깊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으며, 내심 비밀도 많다. 우레가 초목을 치는 형상이니 기세가 등등하다. 고집과 자존심이 강하고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한번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다. 감정이 앞서기에 언행이 거칠 수가 있지만, 뒤끝이 없는 특징이 있다.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모든 일을 혼자 맡아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또한 식복을 타고났기에 욕심이 많고 경쟁심도 상당하여 조금씩 저축하기보다는 한 방에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버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돈 때문에 망할 수가 있기에 평상시에는 남에게 베풀고, 상대방에게 피해주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원한 쌓는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경쟁을 좋아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일처리에 있어서는 속전속결이지만, 그만큼 포기도 빠른 편이다. 그래도 속마음은 따뜻하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려는 심성이 있어 주변사람을 배려한다면 그나마 굴곡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갑진은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적극적인 추진력 때문에 사회활동을 하면서 중요한 직책을 맡거나 앞에 나서기를 좋아한다. 명예심이 강하여 쉽게 만족하지 않는 까다로운 성격으로 주위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단점이 있다. 독선적인 모습으로 주변의 적을 만들어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기에 많은 위기를 겪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그리스 문학의 창시자 호메로스의 영웅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는 부하들과 함께 시칠리아 해변에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에게 붙잡히게 된다. 폴리페모스는 양을 기르면서 섬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거인 괴물이었다.오디세우스와 12명의 부하들을 동굴에 가두어 놓고 거대한 돌로 입구를 막았다. 매일 끼니로 두 명의 부하들을 잡아먹는다. ‘인육을 드셨으니 포도주를 맛보시지요. 당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라고 건네주면서 이름은 ‘우디스(아무도 아닌)’라고 알려 주었다.포도주에 취하여 잠든 사이에 불타는 장작개비로 외눈을 찔렀다. 그는 몸서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다른 키클롭스들이 도와주러 달려왔다. 동료들이 “누가 그랬냐?”고 묻자 “우디스가 나를 속였어, 나를 죽이려 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시큰둥하며 돌아가 버렸다. 그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부하와 함께 양의 배 아래에 매달려 탈출할 수 있었다.오디세우스는 지혜와 용기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도망가면서 그를 놀리듯 자신의 진짜 이름을 이야기하는 우유부단함과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외눈박이 거인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장님이 된 그는 아버지에게 복수해줄 것을 애원했다. 포세이돈의 분노로 10년 동안 죽을 고생하다가 부하들은 다 죽고 홀로 귀향한다.인간은 자기가 사는 환경에 따라 모습과 행동이 달라진다. 나와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모양과 풍습이 다르다고 무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은 그 나름 질서와 관습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환경에서 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갑진의 특징은 청룡백호라 변화무쌍하고 변덕이 심하다. 굳센 기운과 강한 성품으로 타인의 도움도 없이 일처리도 신속하고 정확하다. 의롭지 못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질도 있다. 이런 성향 때문에 대립이나 다투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갑진일주 남자는 이성을 보는 눈이 높아 매력적인 여성 또는 미인을 선호한다. 그로 인해 피곤해질 가능성도 있다. 여자도 이성에 대한 운이 있는 편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결혼을 하면 애정표현이 서툴고 무뚝뚝한 태도로 인해 갈등의 소지가 있다. 무능한 남편을 만날 확률이 높아 본인이 가정을 꾸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남녀 공히 자기주장이 강하고 지지 않으려는 속성 때문에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직접 해야만 한다. 즉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자기주장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함부로 충고해서는 안 된다.중국 한나라 때 낙양에 큰 가뭄이 들었다. 낙양의 신통력이 있는 무당들이 남산에서 행해지는 나라의 제사를 주관하는 노인에게 “남산에 있는 큰 못에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릴 수 있는 신령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불러 낼 수 있습니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그 노인은 “교룡(蛟龍)을 말하는 것이오? 그놈을 이용해서 비를 빌릴 수는 없소. 설사 그놈을 이용하면 비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큰 근심 걱정거리가 뒤따를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백성들이 저마다 “지금 지독한 가뭄으로 마치 장작불이 타는 아궁이 속에 앉아 있는 것 같고, 아침에 저녁 일을 알 수가 없는 형편인데 한가롭게 뒤탈을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겠소?”라고 말했다.그리고는 무당들과 함께 남산의 큰 못가에 모여서 교룡에게 빌기 시작했다. 세 번째 제사 술잔을 다 올리기 전에 교룡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대며 기어나왔다. 이어서 가슴이 오싹하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더니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태풍이 휘몰아쳐 나무뿌리가 뽑히고, 사흘 동안 폭포같은 비가 내렸다. 낙양 주위에 있는 모든 강이 넘쳐서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큰 홍수를 당했다. 그때서야 노인의 충고를 듣지 않는 것을 후회하였다. ‘욱리자’ 노반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인간은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때 비굴해진다. 상대 기분을 맞추기 위해 좋은 말로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때는 자기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아부로 바뀐다.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원하는 것을 가지거나 얻으면 지난 일을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욕망이 채워지면 또 다른 욕망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급한 경우에도 멀리까지 살피고 떳떳하고 정당한 방법을 써야 한다.

2023-06-07

회전근개 통증과 오십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한의원에서 볼 수 있는 환자군 중 제일 많은 게 통증이다. 목 어깨 허리 팔꿈치 무릎 등 다양한 통증 환자들이 한의원에 내원한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뭐냐고 필자에게 묻는다면 회전근개 관련 어깨 통증이라고 할 수 있다. 목과 이어지는 승모근 쪽 어깨 뭉침이 아니고 어깨 관절면을 따라서 발생하는 통증과 함께 어깨를 완전히 올리지 못하는 질환군이 가장 치료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어깨가 아파서 오면 구별해야 할 것이 목과 이어지는 승모근 날개뼈가 뻐근하고 결리는 것으로 왔는지 아니면 어깨 관절쪽이 아프고 어깨를 드는게 힘든지 구별 해야 한다. 전자는 어렵지 않게 치료가 가능하지만 후자는 어렵다. 회전근개 파열, 충돌증후군, 석회화된 건염, 오십견 등 다양한 병명으로 한의원에 내원 한다. 어깨를 과다사용해서 그런 경우가 많고 사고로 크게 꺾이거나 부딪힌 경우 등에서도 발생한다.병의 특징은 팔을 위로 올려보면 끝까지 올라가지 않고 통증이 심하다. 특히 밤에 잘 때 너무 아파서 깬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본인의 팔이 올라가지 않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 때는 양팔을 올려서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다.대부분의 원인은 회전근개의 문제로 발생하는데 파열, 굳음, 염증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 하나 결과는 어깨의 심한 통증과 거상제한으로 나타난다.간단하게 뭉쳤거나 기능적인 문제가 아니고 어깨 자체가 굳고 틀어져서 팔이 올라가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라 잘 낫지 않는다. 팔은 구조적으로 여러 근육들이 팔을 붙잡고 지지해주는 형태로 되어 있어 회전근개의 문제로 인해 어깨쪽 문제가 생기면 불안정성과 고착으로 인해 풀리지가 않는다. 오십견 같은 경우는 의학적 관찰로 보면 2~3년이 지나면 운이 좋아 자연적으로 풀린다고 할 정도니 그 심한 정도를 알 수 있다. 허리 디스크 환자보다 훨씬 어렵고 난치다.치료는 최소 3개월을 기준으로 잡고 통증의 감소를 목표로 치료를 시작한다. 어깨 움직임이 완전 정상화 되는데는 더 오랜 시일이 걸려서 우선 어깨 통증의 감소와 팔의 움직임 개선을 목표로 치료 한다. 가장 기본적인 치료는 부항과 침 치료다. 한달을 기준으로 밤에 잘 때 아파서 깨지 않는 걸 목표로 치료 한다. 처음 며칠은 치료 후 욱신거리고 아플 수 있으나 반복해서 치료를 받으면 점점 줄어 든다. 치료 효과가 극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꾸준히 치료하면 한달 정도면 밤에 잘 때 아파서 깬다는 소리는 줄어든다.팔의 움직임 개선까지 목표로 치료를 한다면 무조건 추나를 같이 해야 한다. 약침도 같이 맞아주면 좋다. 추나 비용이 좀 들지만 실비보험에 든 사람이면 침과 추나 비용은 보전이 되니 할 수 있으면 침과 부항 추나를 같이 받는 게 좋다. 때에 따라선 어깨쪽을 풀어 주는 한약을 병행 해야 할 때도 있다. 오래 걸리긴 하지만 치료를 하면 통증은 어느 정도 잡히고 추나까지 해준다면 팔의 움직임도 많이 개선될 수 있다.회전근개 관련 어깨 통증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병이라고 표현을 한다. 어디서든 치료를 한다면 몇 개월은 한다 생각하고 치료를 시작하면 일상생활 불편함은 덜 수 있을 것이다.

2023-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