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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래된 처음처럼 울었다

저 나정 우물가 빛을 불러온 날 이후포박된 어둠 속의 아름다운 목청들은천리 밖 꿈결에까지 말굽 치며 울었을까돌아오지 않는 것은 밤하늘로 날아가수억 광년 전에 죽은 빛을 품고 있었을까무성한 노여움들은 뗏장으로 덮이고혼령 같은 초승달 선문을 열고 나와어둠을 품고 빛나는 푸른 알의 눈물들을은장도 벼린 칼날로 곱게 깎아 놓는다―박권숙, ‘홀씨들의 먼 길(고요아침, 2005)’에서 ‘천마총·5’ 전문.신라 향가에는 “천지 귀신을 감동케 하는 힘”이 있다. 이 천지를 움직이는 서정의 힘을 박권숙 시인의 시조를 숙독하며 만난다. 시조의 발생 연원을 따질 때 한시, 고려 속요와 더불어 10구체 향가를 들고 있는 점에 주목해 감상해 보자. 노래로 불렸으니 그 곡을 알지 못하는 오늘이지만 향가의 가장 정교한 형태인 10구체 향가 사뇌가(詞腦歌) 중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노래인 ‘제망매가(祭亡妹歌)’로 그 감응을 유추한다. “그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홀연히 바람이 일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과장이 아니었음을 시인의 작품을 통해 실감할 수 있으리라.박권숙(1962~2021) 시인의 작품집에는 연작 시조가 많다. 연작작품만 모아도 100편에 이른다. 특히 ‘아버지의 밭, 천마총, 청사포’는 15편씩으로 방대하고 유장하다. 현실적 대상에 대한 주관적 체험을 운율에 담아내는 서정 양식에서, 한 편의 작품만으로는 그 내적 체험을 다 읽어낼 수 없는 경우에 집중적으로 그 심층을 파헤쳐 보고자 하는 노력이 연작으로 표현된다. 천마총 연작은 죽음과 구원이라는 테마로 건너온 천년의 신화와 맞닥뜨린 순간이라고, 아니 찰나와 영원, 삶과 죽음, 어둠과 빛이라는 한계를 넘어선 초월의 공간에서 느끼는 전율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단 한 편의 시조로만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던 시인을 우리는 기억한다.시인은 “포박된 어둠 속”에서도 “아름다운 목청”을 잃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것은 밤하늘로 날아가” “수억 광년 전에 죽은 빛을 품고” 있다. 하여 시인은 의연하게도 “침엽의 정신들“로 그 푸른 가시를 세워 우리를 슬픔에서 몰아내려 한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연속되더라도 이를 초연하게 극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듯 “빛나는 푸른 알의 눈물들”을 “은장도 벼린 칼날”로 곱게 깎아 내고 있다. 오늘도 저 청고한 하늘 위에서 견고한 서정의 광휘를 뿜어내며. 이희정 시인 1991년 등단 시기부터 죽음과 삶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던 당시 시인이 그려낸 고독한 자화상, 첫 시집 ‘겨울 묵시록’부터 마지막 시집 ‘뜨거운 묘비’까지 투병과 창작을 병행하며 붙들어낸 치열한 삶과의 분투였음을 감히 짐작한다. “난삽하지 않고 격정적이고 또 명징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박권숙 시인을 생각할 때마다 척박한 90년대의 시조 들판을 객토하기 위해 태어난 시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라고 이우걸 시인은 추억했다. 더하여 이지엽 시인의 바람처럼 가없이 푸르른 초록 “침엽의 정신”이 “깨끗한 눈물”로 빛나는 절정이 후대에까지 이어지리란 염원을 뜨겁게 품어본다.삶과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 여전히 모를 일이다. 다만 선인들의 삶에 비추어 볼 따름이다. 올해로 천마총 발굴 50년을 맞은 경주 대릉원의 밤은 찬란하다. 저 먼 신라인들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성한 동물로 여긴 천마(天馬)가 국립경주박물관 한복판에서 우리를 맞고 있다. 예술과 뉴미디어의 협업으로 황남대총 두 봉우리에 신라의 혼이 신령스러운 기운을 뿜어내며 마침내 하늘로 비상하는 하얀 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국보 천마도가 다시 수장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전시회장 ‘장니(障泥 : 말다래)’에 부기 된 감상문과 더불어 시인의 노래 한 줄이 심금을 울린다.“방금 막 화공이 붓을 놓은 듯, 천리 밖 꿈결에까지 말굽 치며 울었을까”

2023-06-18

소금이 무슨 죄?

우정구 논설위원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시중의 소금값이 폭등을 하고 일부서는 사재기 현상도 일어난다고 한다. 일본서 방류하는 오염수가 한국 해역에 도달하면 국내 수산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야당은 일본 원전 방류수와 관련 야외 반대집회에 나섰고, 여당은 야당이 과학적 논쟁은 거부하고 괴담과 선동정치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한다.지금은 흔한 식품이지만 20세기 이전만하더라도 소금은 ‘백색의 황금’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귀중한 자원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생선과 올리브, 치즈, 고기 등을 저장하는데 소금을 사용했고, 군인의 보수를 소금으로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세시대는 소금을 둘러싸고 100년 넘도록 소금전쟁을 벌인 곳도 있다.짠맛을 내는 무취의 흰색 결정체인 소금은 단순히 음식 정도가 아니고 음식 이상으로 인류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물질이다.재화로서 가치가 높은 소금의 유통을 통해 도시 간의 문화와 경제교류가 촉진됐고 소금 교역으로 ‘솔트로드’도 생겼다. 소금은 한때 지금의 석유처럼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뿐만 아니라 소금은 모든 생물체에 있어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성분이 있어 물만큼이나 생리기능에 꼭 필요한 요소다. 소금의 주요 성분인 나트륨은 소화를 촉진해 식욕을 끌어 올린다. 사람의 체온 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땀의 배출을 도와 체온을 식히기도 하고 반대로 체온을 유지하도록 돕는다.데이터를 내놓고 과학적으로 풀어야 할 오염수 문제를 정치적 선동으로 떠들어봐야 국민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적 공방의 결과가 소금값 폭등이라면 소금을 사먹을 국민만 피해자가 된 꼴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6-18

결혼식 풍경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아주 오랜만에 결혼식에 참석했다. 나는 장례식에는 자주 가는 편이지만, 결혼식에는 부조(扶助)만 하고 대개는 아니 간다. 쓸쓸하고 슬픈 장소에는 사람이 많이 갈수록 좋지만, 환하고 행복한 자리는 조금 허전해도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결혼식에 간 이유는 나의 둘째 아들이 혼인(婚姻)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혼주(婚主) 자격으로 신랑과 신부를 위한 덕담(德談)을 하기로 했기에, 더욱 결혼식에 가야 했다. 붐비는 토요일 오후 서울 내부순환도로와 강변북로를 거쳐 강동(江東)의 결혼식장에 도달한 시각은 오후 2시 15분 무렵. 예식은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한다. 여유 있게 도착한 나와 동생 둘, 그리고 조카 둘이 호기롭게 35층 예식장으로 들어선다.어린 시절부터 나는 고소 공포증에 시달렸다. 어디든 높은 곳에 올라가면 간담이 서늘해져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35층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풍광(風光)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필시 내 아들의 결혼식이 진행될 고층 건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며칠 전부터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재삼재사 생각하곤 했는데, 첫머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두고 수많은 하객(賀客)이 찾아들고,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덕담 걱정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래, 닥쳐서 생각하면 되겠지, 하고 자신의 내면을 추스른다.활달한 성격의 신부와 씩씩한 거동의 신랑이 잘 어울린다. 젊음의 약동(躍動)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아름답고 유쾌한 노릇이다. 36년 전에 나도 저런 모습이었던가, 잠시 상념에 잠긴다. 그때 내 지도교수께서 주례하셨는데, 머리털 나고 그렇게 넘치는 칭찬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얼마 전에 세상을 버리신 선생님의 명복을 새삼 빈다.이윽고 내가 말할 차례가 온다. 높은 단상에 올라가 신랑과 신부의 얼굴을 보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린 시절 작은아들이 보여준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내게 경험한 낯설고 아픈 추억을 잠시 더듬는다. 고집스럽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삶을 향한 애착이 많지 않았던 아들이 어느새 장성하여 일가(一家)를 이룰 태세라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다.며느리 되겠다고 자청한 젊은 신부 역시 환한 얼굴로 내 덕담에 귀를 기울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4~5분 정도 말하겠다고 해놓고, 7분 넘게 너스레를 떨었나 보다. 필시 제 이야기에 홀로 도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장남(長男)을 미뤄두고 차남이 먼저 혼인하게 되었기로 적잖은 인사를 받는다. 큰아이 결혼식에서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생각한다.멀리 울산과 대구, 청주에서 올라온 벗들이 고마웠다. 이렇게 인생의 중요한 장면 하나가 스르륵 지나간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작은아들 내외가 오늘을 돌이켜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 궁금하다. ‘얘들아,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가렴! 뒤돌아보지 말고, 당당하게!’

2023-06-18

대구시·경찰 충돌, ‘무늬만 자치경찰’이 원인

그저께(17일) 대구 동성로 일대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장에서 대구시 공무원과 경찰이 정면충돌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대구시는 이날 행사를 ‘불법 도로 점거 시위’로 보고 반월당네거리에서 동성로로 진입하는 행사준비 차량을 차단했지만, 경찰은 ‘적법한 집회’라며 오히려 차량진입을 위한 길을 터주다가 공권력끼리 충돌한 것이다. 퀴어문화축제는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는 성소수자 집회이며, 지난 2000년 서울을 시작으로 지금은 전국 9개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대구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매년 열려왔으며, 집회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와 충돌을 빚어왔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이번에도 법원에 집회금지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당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 중심상권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성문화를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동성로를 막는 집회를 반대해왔다. 그는 이날도 직접 현장에 나와 “대구경찰청장의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홍 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대구경찰청장에게 대구시 치안을 맡기기 어렵다. 완전한 지방자치 경찰 시대라면 내가 즉각 파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경찰청은 법원판례(공공의 안녕을 위협한다고 볼 수 없는 경우 행정대집행은 위법)를 근거로 이날 동성로 무대·부스설치를 막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지난 2021년 7월 1일 시행된 자치경찰제는 ‘지역주민을 위한 치안 서비스’에 한해 지방자치단체에 경찰권을 부여했지만, 통제권한은 별도의 조직인 시·도 자치경찰위원회에 맡겼다. 자치경찰이 정당 소속 단체장의 통제를 받을 경우 선거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행정안전부 산하에 경찰국이 있긴 하지만 치안 상황 지휘·감독권은 국가경찰위원회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선단체장 시대 개막 이후 일선 행정기관과 경찰과의 갈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지만, 이번처럼 ‘공권력 충돌’로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이 사태를 계기로 시·도자치경찰위 권한 강화를 비롯한 자치경찰제도 개선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2023-06-18

경북연구원, 전국 최고 싱크탱크로 성장하길

경북연구원이 지난주 공식적인 출범식을 가졌다. 대구경북연구원에서 경북연구원으로 독자체제 출범을 알리는 행사다. 1993년 대구권 경제사회발전연구원으로 출발해 1992년 대구경북개발연구원, 2004년 대구경북연구원으로 활동했으나 올 1월 대구와는 분리를 선언한 이후 경북연구원으로 독자적인 출범을 시작한 것이다. 이날 출범식에서 경북연구원은 미래가치 창조의 중심 ‘Highest 경북 실현’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30여 년 동안 연구원은 혁신도시 건설과 경북도청 이전 등 대구시와 경북도의 굵직한 정책의 싱크탱크 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제는 경북을 중심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경북발전에 초점을 둔 연구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대구와의 역사지리적 관계를 고려한다면 상생의 관계를 버릴 수는 없다. 유철균 원장도 “대구시와의 분리를 발전적 분리로 보고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유 신임원장은 전 이화여대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잘 알려져 임명 때부터 그의 역할에 건 기대가 컸다. 아이디어가 중요한 4차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인문학적 역량을 갖춘 인물로 평가됐다.경북은 산업과 농촌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또 동해안을 끼고 있으며 뛰어난 자연환경을 가진 관광지와 원전이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웅도라 부르며 인구와 면적이 전국에서 가장 컸다.신라 천년의 문화와 선비정신과 호국충절의 고장, 그리고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경북의 찬란한 명성을 회복하고 경북의 특화된 정책을 발굴하는데 연구원은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특히 군위·의성에 들어설 신공항을 중심으로 지역산업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게 각종 아이디어도 많이 생산해야 한다. 싱크탱크가 얼마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느냐에 따라 경북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본격적인 지방시대에 대한 연구원의 준비도 남달라야 한다.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지방자치가 이곳에서 뿌리내릴 수 있게 미래지향적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유 원장의 말대로 세계 최고의 지방정부 싱크탱크로 성장하길 바란다.

2023-06-18

사람의 실수와 안전 확보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안전사고는 불안전한 행동과 불안전한 상태가 만났을 때 에너지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며 현장에 불안전한 상태가 있더라도 사람의 불안전한 행동과 만나지 않으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 P사의 지난 약 50년간의 안전사고 원인 별 분석결과를 보면 불안전한 행동이 82, 불안전한 상태가 5%, 기타가 13%로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이 절대적임을 알 수 있다.특히 불안전한 행동 중 실수는 인간 행동의 일부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누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이 실수를 하는 이유는 오감에 의해 인지 판단 행동하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주로 경험부족 피로나 감정적인 상태 주의력 부족과 집중력 분산 등에 기인하며 이러한 상태에서 행동해도 사고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보면 학습후 20분이 지나면 58%만 기억을 하며 1시간이 지나면 44%로 떨어진다고 한다. 반복 학습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로 하루가 지나면 초기 학습 내용의 약 33%를 한 달이 경과하면 약 21% 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즉 인지 판단의 에러를 줄이기 위해서는 학습 후 망각 속도를 늦추어 장기 기억으로 되기 위한 반복학습이 필요하다. 또 사람이 잊어버리거나 인지하지 못해도 모니터링 수단이나 알람 등을 통해 인지 하도록 하는 체크 기능이 있어야 한다.인지 판단을 제대로 했더라도 최종 행동시 조치를 생략하거나 착각 착오로 인해 오조작을 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아예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거나 사람이 임의로 작동을 해도 안전하지 않으면 조작이 되지 않도록 하거나 최종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안전이 확보되도록 작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템퍼 푸르프(Temper Proof) 풀 프루프(Fool Proof) 페일 세이프(Fail Safe)라고 한다.템퍼 푸르프는 안전장치나 기능을 제거할 경우 아예 동작을 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며 풀 프루프는 ‘어리석은 사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의미로 작업자가 실수 할 수 없도록 만들거나 만약 실수를 하여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장치를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휴대폰 충전 코드의 잭이 일치하지 않으면 아예 체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페일 세이프는 설비가 고장이나 오조작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경우 피해가 확대되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안전한 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일 예로 중요한 제어기의 경우 제어 유닛이 듀얼로 설치되어 상시 동일 Data를 공유하고 있다가 한 쪽이 이상시 즉시 전환하여 운전되도록 한 것이다.이렇듯 인간의 실수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설계시 불안전한 행동 자체를 원천 차단하거나 작업자가 모르고 불안전 행동을 해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거나 만약 사고가 발생해도 안전이 확보되도록 개선 하는 것이다.

2023-06-18

나의 사정을 다 말해야 하는 이유

유영희 작가 지난 6월 14일, 4년 만에 서울국제도서전에 방문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못 갔고, 작년에는 내 사정으로 못 갔다. 이 행사는 해마다 주제가 있는데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고 하여,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강조했다고 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취지문을 읽어 보니, 비인간은 인간이 아닌 자연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예년에는 남녀 섞어서 세 명이던 홍보대사 인원을 일곱 명으로 늘리면서 모두 여성 문인만 내세운 것을 보니 아무래도 비인간이란 남자가 아닌 존재, 여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이런 주제 때문인지 발걸음이 멈추는 곳마다 여성이 있었다. 에밀리 디킨슨 시를 전문으로 내는 파시클 출판사의 박혜란 대표의 북토크에도 참가하여 디킨슨 이야기도 들었고, 여성들의 자기 이야기가 담긴 책도 몇 권 샀다.출판사 핌의 ‘어쩌면 너의 이야기’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만난 주부들의 동화 에세이 모음집인데, 동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말하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직접 글과 그림을 다 작업한 참여자도 있고, 딸이나 남편이 삽화를 그린 글도 있었다. 자상한 시간에서 펴낸 ‘감정愛쓰다’는 그보다는 직접적으로 자기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글을 올린 참여자들 역시 모임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썼다. 담다 출판사의 ‘3923일의 생존 기록’은, 저자 김지수가 불안, 공황, 우울장애와 더불어 생존해온 기록이다. 최근 암 생존자 여성의 투병기 ‘엉망인 채로 완전한 축제’도 읽었는데, 사회 통념상 암보다 더 말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의 병이라서 김지수의 고백은 더 인상 깊었다.‘파레시아’라는 희랍어는 ‘세상을 향해 다 말하다’라는 뜻이다. 본래 파레시아는 정치적 의미가 강하여,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까지 이끈 파레시아를 ‘대담한 저항’이라고 요약했는데, 플라톤은 여기에 행복의 의미를 덧붙였다고 한다. 당시 독재자였던 디오니소스 1세가 플라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했을 때 소크라테스라고 대답하여 독재자에게 추방당했다고 전해진다. 플라톤의 대답에서 우리는 ‘다 말하는 것’이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파레시아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억압받는 사람이거나 사회적 약자일 것이니, 이들의 말하기는 민주주의와도 통한다.황현산은 ‘밤이 선생이다’에서 내 사정은 나만 알고 있는 것이라서 사소해보이지만, 글을 쓰다 보면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고 결국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여성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면서 글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는 연결을 체험하고 있다.여성 문인만 홍보대사가 된 것에 대해 어느 남자 시인은 책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런 목소리를 잠재우는 방법은 여성들이 용감하게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 움츠리지 말고, 나의 사정을 사정없이 써보자.

2023-06-18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으면 중독되나요?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일반인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중독(中毒)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평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인해 건강을 잃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회적 폐인(廢人)이 되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그러나 당뇨병 환자나 고혈압 환자가 약을 복용함으로써 혈당과 혈압이 조절되어 정상화되고 생활을 잘할 수 있다면 치료되고 있다고 해야 할 일이지 결코 중독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또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다시 혈당이 올라가고 혈압이 올라간다고 해서 그것이 약에 중독됐다고 할 수 없다.공황장애 환자나 우울장애 환자가 그에 맞는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함으로써 평안을 찾고 부정적 관점에서 벗어나고 자살로부터 자신의 가치와 생명을 지켜내고 행복을 찾는다면, 치료되고 있다고 해야 할 일이지 결코 중독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다시 공황 증상이 나타나고 우울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약에 중독됐다고 할 수 없다.알코올이나 마약이 뇌를 손상하는 것과는 달리 현재 사용되는 항공황제제, 항우울제제는 오히려 뇌신경 세포의 신생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약으로 어떻게 당뇨 또는 고혈압을 치료하느냐”, “당뇨나 고혈압은 의지나 정신력으로만 고쳐야지”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에 대해서만 달리 생각하는 태도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나로서는 몹시 안타깝다.당뇨병과 고혈압은 하나의 신체 질환이다. 공황장애와 우울장애 등 정신건강의학과 질환도 하나의 뇌의 질환이다. 뇌도 신체 일부이다. 지금 공황장애, 우울장애뿐만 아니라 많은 정신과적 질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이 중독된다는 편견으로 인한 불충분한 치료(under treatment)이다.왜 사람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으면 중독된다고 생각할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치료를 하면 약물중독이 되어 약을 끊지 못하고 평생 먹어야 한다는 두려움의 표현일 수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물치료로 인해 중독되어 약을 끊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분은 오랜 기간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몸에서 혈당, 혈압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돼 약물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다. 그래야 합병증을 예방하고 건강수명을 늘일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질환들은 우리 뇌에서 불안, 우울 등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돼 약물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다.또 정신건강의학과 질환들은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비교한다면 완치돼 약을 끊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다만,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계 약물들은 약리학적으로 내성과 신체적 의존성이 있을 수 있어 약물 사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으나, 올바른 처방 가이드라인을 지킨다면 문제되지 않는다.세계 최고 권위의 임상의학 학술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임상에서 그 효과를 얻기 위해 약을 계속 늘려가야만 하는 내성의 증거가 없다”고 했다. 또 미국정신건강의학과학회 특별위원회의 보고서에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 올바른 처방 가이드라인이 지켜졌을 때 중독되는 약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결국,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치료를 받는 경우 약물중독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가끔 공황장애 환자와 우울장애 환자의 적절하고 충분한 치료를 도와야할 가족과 지인이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중독이 되어 약을 끊을 수 없다”라는 등의 무책임한 말들로 환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공황장애 환자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불안하고 우울장애 환자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약에 대해 겁이 나는 말을 들으면 치료를 시작하지 않거나 먹던 약도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따라서 별생각 없이 뱉은 무책임한 말들은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있는 기회를 막거나 재발하게 하는 결과적으로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다.정신과적 질환의 치료를 신체 다른 부위의 질환에 대한 치료와 동일선상에서 생각해주면 좋겠다.정신과적 질환이 다른 신체적 질환과 다르다는 편견(偏見), 정신과적 약물치료가 다른 신체적 질환의 약물치료와 다르다는 편견이 치료를 어렵게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질환들은 당뇨병, 고혈압 등 다른 신체 질환과 마찬가지로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해야 하는 질환이다.오늘 필자가 드리고 싶은 말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만을 맹신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약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지나친 거부감도 문제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편견(偏見)으로 보지 말고 정견(正見)으로 보자”는 것이다.

2023-06-18

VDT 증후군, 몸이 펼쳐지도록 하는 게 답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VDT(Visual Display Terminal) 증후군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와 같은 영상 기기를 장시간 사용하여 생기는 목, 어깨 통증 등의 후유증을 아우르는 말이다. VDT 증후군은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앓는 질환 중 하나인데, 초기에 증상을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악화될 경우 다른 질환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장을 줄 만큼 불편함을 느끼는 질환이기에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초기증상에는 치료 시간이 짧고 스트레칭과 자세 교정 같은 운동치료로도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VDT 증후군의 증상으로는 근골격계의 이상으로 흔히 담이라고 얘기하는 근육의 뭉치는 느낌과 통증이 있는 근막통증증후군이나 요통이 있다. 또는 손목의 신경이 눌러져 손가락이 저리게 되는 손목터널증후군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근육이나 말초신경의 이상으로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및 손가락에 통증이 생기고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눈의 이물감, 충혈, 눈부심 등 안구건조증이나 근시 혹은 굴절 이상의 안과 질환이 생긴다.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VDT 증후군 관련 질병 수진자 수는 근막통증증후군이 233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안구건조증 226만 명, 일자목증후군 220만 명, 손목터널증후군 17만 명 순으로 나타났으며, 연령대별로는 50대 수진자수가 가장 많았다.근막통증증후군은 근육 또는 근육을 싸고 있는 근막에 장시간 스트레스가 가해져 뭉치면서 근육에 통증 유발점을 생성하는 질환이다. 잘못된 자세로 인해 목과 어깨 근육이 오랜 시간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여 경직되거나 통증이 발생한다. 아픈 쪽으로 움직이려 할 때 통증이 생겨서 쉽게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근막통증증후군 예방을 위해서는 작업환경과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바라볼 때는 눈높이를 맞춰주고, 앉는 자세를 올바르게 유지하는 게 우선이다. 또 근육이 경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시간에 10분씩 휴식이 필요한데, 이때 정적 스트레칭으로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스트레칭의 원리는 근육의 길이를 확장하여 늘려주는 것인데, 한번 늘리는 시간은 근육의 긴장 지점에서 들숨과 날숨을 길게 5~6회 반복하거나 20~30초 정도가 적절하다.일자목증후군은 거북이처럼 목이 앞으로 구부러지면서 목과 어깨, 근육의 인대가 늘어나 신체 변형 및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기는데, 척추의 윗부분이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아 인대가 늘어나면서 증상이 발생한다. 목에 과하게 하중이 발생하고 뒤통수 아래 신경이 압박되어 두통을 비롯해 현기증이나 어지럼증이 동반되기도 한다.일자목증후군 예방을 위해서는 머리를 위로 올리듯 바로 세우고 허리를 요추전만자세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항중력근을 자극해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목의 C커브를 만들어주는 심부경추굴곡근이 활성화 된다. 따라서 일자목증후군은 흉추 후만증, 다시 말해 심한 둥근 어깨로 인해서 목이 전방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자세만 바로 잡아도 어느 정도 개선이 될 수 있다.현대인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이 움직이는 신체 부위가 바로 손이다. 손과 손목은 스마트폰이나 키보드, 마우스의 잦은 사용으로 부담이 증가해 통증이 생기더라도 방치하기 쉬운 부위다. 과거에는 집안일로 손을 많이 쓰는 40대나 50대 주부 환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전자기기 사용이 많은 10대와 20대 환자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손목터널증후군은 손목을 과다하게 사용하여 손목의 신경과 힘줄이 지나가는 통로인 수근관의 내부 압력이 증가하거나 좁아지면서 신경이 눌려 통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엄지와 둘째나 셋째 손가락이 저리면서 무감각해지기도 하고, 손목이 시큰하고 손가락이 저리거나 손목과 손바닥에 뻐근함이 느껴지고 심할 경우 손이 타는 듯한 통증이 생겨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따른다.손목터널증후군 예방은 우선적으로 손을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고 휴식하는 것이다. 30분이나 1시간마다 5~10분씩 휴식을 취하면서 틈틈이 손가락과 손목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이 효과적이다. 특히 손목을 아래로 심하게 꺾으면 증상이 악화되므로 손목이 꺾인 자세로 작업할 때는 중간중간 휴식 시간을 갖고 손목 스트레칭을 해주는 게 좋다. 장시간 컴퓨터 작업으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계속해서 사용하여 손목 통증이 생기는 경우에는 손목 보호를 위해 패드를 깔아주면 증상 예방에 도움이 된다.현대인의 자세는 늘 굴곡져 있다. 식사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자세를 보면 목, 어깨, 등, 고관절, 무릎 그리고 팔까지 굴곡진 자세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늘을 볼 시간이 없다. 이처럼 굴곡진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우리 몸이 펼쳐진 삶을 살도록 유도하면 된다. 틈틈이 서 있거나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스트레칭을 통해 신전 동작을 꾸준히 해주는 게 답이다.

2023-06-18

접시꽃 피는 유월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유월의 골목에 접시꽃이 피었다. 소박한 이름과는 달리 무척 화사하고 탐스러운 꽃이다. 중국이 원산이라고 하나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기르거나 자생해서 토종식물이나 다름이 없다. 야생화로 불리지도 않지만 흔하게 볼 수 있어서 귀한 대접을 받는 화초도 아니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좋아했다는 매(梅), 난(蘭), 국(菊)이나 연꽃, 모란 같은 품격(?) 있는 꽃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서민적인 꽃으로 보기에는 너무 화려하다. 그러면서도 마치 무슨 파수꾼인 양 담이 낮은 골목을 지키고 서 있는 꽃이다.촉규화, 덕두화, 접중화, 일일화, 단오금 등의 이름을 두고 언제부터 접시꽃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려운 한자어와 친하지 않은 백성들이 붙인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알록달록 고운 색깔의 그 접시는 사발과 대접, 보시기, 종지 따위가 고작인 서민들의 밥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청자나 백자와 같이 사대부들의 밥상에 올리기에도 격이 맞을 것 같지가 않다. 사대부들은 체면 때문에 감추고 백성들은 고된 삶에 억눌렸던 원초적인 정념 같은 꽃에다 빗댄 접시이니 어디엔들 맞겠는가?키가 크고 꽃대가 튼실한 접시꽃은 울타리나 담장을 따라 많이 심었다. 한번 심으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번식을 하니 일일이 돌봐줄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관상용 꽃으로서의 역할은 더할 나위가 없다. 마을 골목에 피어 있는 접시꽃의 그 화사한 모습은 누구나 날마다 볼 수가 있어서 고달프고 팍팍한 일상에 한 줌 향기와 온기를 불어넣는다고나 할까. 이제는 뭐든지 숨기거나 억눌러 감추는 세상이 아니다. 취향에 따라 누구든 형형색색의 접시를 일상의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세상이다. 고매한 품격이나 야한 것을 따지는 세상도 아니다.시골마을 곳곳에 쌓인 저리도 고운 접시들이 뭉클한 감회로 다가온다. 보리밥 한 덩이에 된장 한 종지, 상추나 풋고추가 고작이었던 우리네 일상의 밥상 말고, 저 고운 접시의 용도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접시꽃 보면 사무치는 그리움 같은 것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이 유월에는 저 알록달록한 접시에다 온갖 것을 담아보자. 잊혀 진 것들, 잃어버린 것들, 외면하고 하찮게 여긴 것들, 세월의 먼지를 털고 편견과 망집의 더께를 떼어내고 알뜰하게, 소꿉놀이처럼 담아보자. 그러라고 접시꽃이 피었다.오랜 세월 우리는 밥그릇 하나 챙기기에도 너무 벅찬 삶이었다. 생활에 꼭 필요한 집기들도 뚫어지고 깨어지면 때우고 붙여 쓰는 형편에 곱고 예쁜 접시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생활이 각박하다고 마음까지 삭막한 것은 아니었다. 장독대 둘레에 채송화나 봉선화를 심을 줄 알았고 울타리나 사립문 옆에 접시꽃을 심기도 했다. 그래서 들며나며 한 번씩 눈길을 주는 것으로 마음 한 편에 작으나마 마르지 않는 정서의 샘을 간직할 수 있었다.먹고 살 만해진 지금도 밥그릇 때문에 울고 웃고 걸핏하면 부모형제도 저버리는 패륜의 시절에, 접시꽃이 피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고. 인생을 담을 그릇이 어찌 밥그릇뿐이겠느냐고.

2023-06-15

노인 학대를 예방하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6월 15일은 ‘노인 학대 예방의 날’, 노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노인 학대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인복지법에 따라 2017년에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을 ‘노인’이라 하며 올해 2월 기준으로 900만 명 이상인 ‘고령화 사회’가 되었고, 2025년에는 20% 이상 즉,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83세, 건강 수명은 66세라고 한다.20세기 후반 인구 고령화의 세계적 추세에 따라 노인 복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UN은 2006년부터 그 인식에 대한 활동을 추진하게 되었고, 노인을 위한 원칙으로 자립, 참여, 돌봄, 자아실현 및 존엄성을 제안했다. 즉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고 지식과 기술 등을 활용할 수 있게 하며 건강 보호와 관련 시설 등의 확충으로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고 또 교육, 문화, 여가 프로그램 참여로 잠재능력을 키울 기회를 줌으로써 학대로부터의 자유와 공정한 대우를 받게 하여 노인의 삶의 질 향상과 노인 보호 네트워크 확충 및 사회인식의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노인복지법에 ‘노인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여 온 자로서 존경받으며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노인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경제발전을 이루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 왔다. 그런데 최근 자료를 보면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최고이고, 노인 자살률도 1위라는 슬픈 사실에 놀란다. 통계청 자료에는 10만 명당 노인자살률은 60대가 30.1명 70대 38.8명 80대 이상은 62.8명으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노년기 자살은 사회적 지위 상실과 실업에 따른 경제적 결핍과 건강 악화, 배우자 사망 등 가족 문제의 우울감이 주된 이유이다.이러한 이면에는 노인학대라는 사회적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노인학대는 ‘노인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 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을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인학대 실태를 보면 노인 10명 중 1명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1주일 1회 이상이 36.5%, 매일 23.1%로 정서적 학대가 가장 많고, 가정 폭력이 88%이다. 여기서 학대 행위자는 배우자가 46%, 아들-딸이 49%라는 통계도 있는데 이는 대가족 문화가 붕괴하고 있는 일면이다. 학대 사실이 인지되면 노인보호 전문기관 1577-1389로 신고하거나 ‘나비새김 앱’을 통해 알리면 된다. 2022년도 전국 노인보호 전문기관에 신고된 것은 1만4천여 건이며 이 중 3분의 1이 학대로 판정되었다. 그러나 자식들의 학대 아픔보다 신고할 경우 자녀의 피해를 우려한 부모의 마음으로 하지 않은 경우도 많겠지만 최근 5년간 노인학대 건수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경찰청 발표도 있다.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이제 국가와 사회는 존엄하고 안전한 노년을 위하여 경제적 어려움에 편견과 차별, 건강 돌봄 문제 등 노인 복지에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23-06-15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사업, 정부현안 됐다

철강생산의 고로(용광로) 공정을 수소환원제철 공법으로 전환하는 포스코의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포스코가 추진하는 수소환원제철 공법은 ‘탄소제로(0)’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철강생산과정에서 코크스(탄소 덩어리) 대신 수소를 이용하는 기술이다. 포스코 등 세계 주요 제철사가 지금 쓰고 있는 전통적 고로 공정은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포스코는 그저께(14일) 산자부 황수성 산업기반실장이 포항제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2025년까지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 설계 기술을 확보하고, 2030년까지 100만t급 실증 생산 설비 개발을 완료하겠다”고 말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도 이날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 총회에서 “수소환원제철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2035년 이후 상용화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한국의 2050년 산업 부문 탄소배출 감축 목표는 2018년 대비 2억1천만t인데, 이 중 약 40%가 수소환원제철 도입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산업부는 다음 달 중 ‘탄소중립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 연구 수행 기관을 선정해 포스코를 본격 지원한다. 해당사업에는 2030년까지 국비 6천947억원이 투입되며, 이 중 1천204억원이 철강업계에 지원된다.얼마 전 일부 시민·환경단체의 반대로 주민설명회가 무산되긴 했지만, 포스코는 포항제철소에 남은 용지가 거의 없어 바다를 메워 수소환원제철소 용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사실상 제철소를 새로 짓는 작업이어서 인·허가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부담이 크다. 전체 매립지 면적은 135만㎡(약 41만평) 규모이며, 총사업비만 최소 20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인·허가 과정도 그렇지만 기술설계와 공장건립에는 정부지원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철강업계가 지금과 같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반도체나 이차전지처럼 관련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를 비롯해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2023-06-15

홍준표의 국량(局量)

홍석봉 대구지사장 홍준표 대구시장의 광폭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꼭 필요한 사람만 만나고 찾던 홍 시장의 보폭이 크게 넓어졌다. 가급적 외부 행보를 자제하던 그였기에 변화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대구시장 취임 1년을 앞두고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는 것이 지역 정치권과 관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치 훈수도 크게, 멀리 보고 있다. 관심사는 노동, 국제 문제까지 확대됐다. 종교와 성소수자 문제까지 들여다본다. 폭 넓어진 그의 관심사와 시각이다.홍준표 시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지도부가 하는걸 보니 내년 총선이 걱정된다”며 여당에 선대위 조기 구성을 촉구했다.그는 보수정당이 지역별 맞춤형 인재 발탁으로 해방 후 처음 수도권에서 승리한 1996년 총선의 기억을 소환했다. 10개월이 채 남지 않은 내년 총선의 여권 인재난을 지적하며 무능한 당 지도부를 질타했다. 진영논리에 갇힌 채 논쟁만 일삼는 정치권의 무기력을 비판했다. 지지율 바닥인 윤석열 대통령에겐 힘을 실어주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정 없이 비판한다. 후배 정치인들의 힐난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까뭉갠다.최근 관심사가 일본과 중국 문제로 확대됐다. 때마침 중국대사가 주제넘은 발언으로 지탄받는 상황이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내정간섭’ 발언에 “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며 “꼭 하는 짓이 문재인 정권때 한국 정부 대하듯이 한다”고 매섭게 쏘아붙였다.같은 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문제를 놓고서는 ‘세계인들의 건강권 문제’라며 “일본의 자해행위”라고 경고했다.방류를 용인하는 대통령실 및 여권과는 결이 달랐다. 주위에서 걱정하자 “다양한 의견이 여당 내에서도 있어야 한다”며 일축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속이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다.종교와 문화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소신을 밝힌다. 홍 시장은 지역의 이슬람사원 건립을 반대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종교 폄훼와 배척은 안 된다며 특정 종교 세력이 주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론적인 입장 표명이지만 한쪽을 두둔한다는 인상이 짙다. 자칫 갈등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대구에서 열리는 퀴어 문화축제와 관련, ‘성다수자의 권익도 중요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통 협조도 않겠다고 했다. 호불호가 분명하다.그간 거리를 두던 한국노총과도 정책간담회를 갖고 노정 갈등의 중재자를 자처했다. 민감한 사회문제에는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얼마 전에는 불편한 관계에 있던 대구상공회의소의 행사에도 참석했다. 이처럼 최근들어 그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다. 홍 시장의 광폭행보에 TK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홍 시장의 업무 추진력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에 비판은 용납않는 모습을 보여 반대론자를 끌어안는 아량과 포용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강과 바다는 개울물도 마다하지 않는다(江海不擇細流)’고 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홍준표 시장의 국량을 대구시민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2023-06-15

靑松의 매력

우정구 논설위원 푸른 소나무란 뜻의 청송군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은 그 지역의 생태계가 가진 과학적 중요성, 희귀성, 시각적인 아름다움, 교육적 가치 등을 종합 평가해 결정된다. 청송군이 보유한 자연생태가 고고학으로나 역사학적으로 가치가 매우 훌륭하다는 뜻이다.청송군은 2017년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두 번째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고 올해는 유네스코로부터 재인증도 받았다. 청송군은 경북의 오지지만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뛰어난 자연환경 등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백악기 시대 형성된 주왕산과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주산지,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 등이 있고, 청송사과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전국에서 산소포화도가 가장 좋아 ‘산소카페’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공해에 찌들린 대도시와 대비되는 자연주의를 도시 컨셉으로 삼은 것은 청송의 자랑이다.이곳에서는 나이와 주소와 상관없이 누구나 시내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다. 관광객 유치 효과를 기대하나 그보다 군이 직접 무료버스를 운영함으로써 자동차로 인한 공해를 줄일 수 있다니 청정도시다운 발상이다.2011년 청송은 국제슬로시티에 가입했다. 공해없는 자연으로 돌아가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슬로시티운동은 자연주의를 표방한 국제사회 운동이다. 세계적으로 많은 도시가 슬로시티에 가입했으나 청송은 유일하게 바다를 끼지 않은 산촌형 슬로시티라는 게 특징이다.청송은 유네스코가 인증한 지질학적 가치를 잘 보존해 글로컬 관광도시를 지향하겠다고 한다. 경북의 오지 청송이 추구하는 순수자연도시로의 성공을 기원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15

D-15 맞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시대’

앞으로 15일후면 경북도 군위군이 대구시 군위군으로 바뀐다. 대구시가 달성군을 편입한 이래 28년 만에 행정구역이 확대되는 것으로 시민의 기대 또한 크다.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으로 대구시는 전국 특별·광역시 중 가장 넓은 면적(1천499㎢)을 보유하게 된다. 서울시 면적의 2.5배다. 행정구역은 군위군 1읍 7면이 더해져 7구 2군 10면 133동 체제로 개편되고 인구도 238만251명으로 2만3천여명이 더 는다.군위군은 대구시 편입으로 행정, 복지,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대구시와 똑같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7월부터는 75세 이상 노인은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칠곡경북대병원역에서 군위읍과 우보면을 오가는 급행버스가 신설되고, 학교 급별로 학군도 조정된다.대구시는 내달 1일 군위군의 대구 편입에 앞서 최종 보고회를 겸한 점검회의를 가졌다. 기관마다 군위군의 대구 편입에 따른 준비가 속속 마무리되는 단계다.대구경북 신공항 건설에 따라 이뤄지는 군위군의 대구 편입은 대구시 발전에 획기적 전기가 될 전망이다. 대구시 계획대로 중남부권 중추공항이 군위에 들어서고 인근에 첨단산업단지 등이 조성되면 대구는 국제공항도시이자 성장경제 도시로서 훌륭한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특히 신공항을 중심으로 이뤄질 경제적 변화는 대구의 미래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요인으로 모두가 기대한다.대구로 편입되는 군위군의 대규모 땅(614㎢)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은 앞으로 대구시가 풀어갈 과제다. 대구의 성장과 변화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신공항을 중심으로 대구의 미래 50년을 견인하겠다고 밝힌 것은 군위군의 광활한 토지 자원을 잘 활용하겠다는 뜻도 있다. 군위군의 대구 편입이 행정 통합 의미보다 대구 경제발전과 미래를 기약한다는 것을 시민이면 누구나 잘 안다. 7월부터 시작하는 대구시 군위군 시대는 대구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생각으로 대구시가 마지막까지 빈틈없는 준비에 나서야 한다. 대구 미래 50년을 이끌 ‘대구광역시 군위군 시대’를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자.

2023-06-15

커피, 아침을 열다

정미영 수필가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가져다 드릴게요.”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나오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대사다. 내 나이 20대 초반에 주인공 마리아가 로버트 조던에게 이 말을 속삭이며, 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한동안 눈에 선했다.커피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집집마다 인스턴트커피, 프림, 설탕을 티스푼으로 덜어서 아껴 먹던 때였다. 그런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이 건네주는 커피 한 잔으로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였다.요즈음은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이 어렵지 않다. 1999년 스타벅스 1호점이 문을 연 이후 원두커피가 본격적으로 퍼졌기에, 드립커피를 직접 내리는 집도 늘었다. 편의점이나 아침에 문을 여는 카페도 있어 부지런히 움직이면 모닝커피는 손쉽게 마실 수 있다.그러나 나는 이제 누군가가 건네는 모닝커피의 여유를 기대하지 않는다.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강퍅한 드라마일 때가 많다는 것을 자각해 버렸다. 그렇다고 커피 마시는 일을 생활에서 지울 수는 없기에, 스스로 커피를 챙겨 마시며 새맑은 하루를 기대한다.커피를 음미하는 것은 삶에 여백을 만드는 일이다. 아로마가 풍부한 최상급의 커피가 아니어도 괜찮다. 그동안 시간의 눈금에 편승해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온 나였다. 방향을 잃은 채 속도에만 치중했던 일도 부려놓고, 마음에 쉼표를 찍으며 잠시나마 위안을 받는다. 마음을 채우기보다 비워서 여백을 만드는 시간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이다.그렇지만 비우고 싶다고 마음이 어디 내 뜻대로 비워진 적이 있던가. 오늘도 베토벤을 따라해 본다. 그는 아침마다 60알의 원두를 분쇄해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나는 글감이 막막할 때면 그의 예술적 영감이 시공간을 초월해 나에게 전해지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그를 흉내 내어 종종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공한 적이 없어 애석할 따름이다.알맞은 굵기로 커피를 갈기 위해 그라인더 버튼을 조절한다. 그라인딩 정도와 추출 도구에 따라 같은 커피콩이라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추출 시간이 길수록 커피를 거칠게 갈아야 하고, 추출 시간이 짧을수록 곱게 갈아야 한다.분쇄된 가루를 추출한 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쓴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모든 커피가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니므로, 커피 봉지에 적힌 블렌딩 비율을 훑어본다. 복숭아의 달콤새콤한 맛과 은은한 꽃향기가 어우러진 화려한 커피, 라는 문구와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번갈아 눈에 담는다. 커피원두는 품종마다 서로 다른 맛과 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 가지만으로는 종합적인 맛을 즐길 수 없다. 원두가 지닌 특성을 균형 있게 배합하여 깊은 향미와 풍미를 지닐 수 있게 섞는 과정을 블렌딩이라고 하는데, 내가 마시는 커피는 배합 공정이 잘된 것 같다.문득, 우리네 사람살이와 닮은 듯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질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려면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야 할 때도 있지만,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순간도 필요하다.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가끔은 부족한 부분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줄 수 있어야 한다. 블렌딩이 잘된 커피가 부담이 없듯이.커피에 취하면 마주앉은 상대도 다정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실제로 미국에서 부부 1만 쌍을 대상으로 “처음 두 사람을 사랑에 빠뜨린 때는 언제인가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커피 한잔 하실래요?”라고 말한 순간이었다고 한다.나는 내 주변이 정(情)으로 가득 넘치기를 바란다. 애정이든, 우정이든. 오늘 아침, 가까운 이와 새뜻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커피 한잔 하실래요?’

2023-06-14

을사일주

육십갑자 중 마흔두 번째는 을사(乙巳)다. 천간(天干)의 을목(乙木)은 아름다운 꽃이나 유연한 나무다. 지지(地支)의 사화(巳火)는 계절적으로 여름의 시작이다. 어린나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동물로는 푸른 뱀이다.을사일주는 뜨거운 태양 아래 화려한 꽃밭처럼 밝고 명랑하다.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동산처럼 사고에 부드러움과 유연함이 있다. 외모는 화초같이 밝고 아름답고, 성격은 세심하고 상대를 배려하므로 주변으로부터 인기가 많다. 때론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성향으로 인하여 가벼워 보일 수가 있다.기본적으로 유쾌하고 명랑한 성격을 갖추고 있다. 말하는 능력이 뛰어나 자기표현에 능하다. 사회적 교섭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많다. 말싸움 해서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감정도 풍부하지만 희로애락의 표현이 분명하다. 상상력이 탁월하고 이성적이며, 멋을 잘 부리며, 기분파 기질이 있다. 사치심이 있는 것이 흠이다. 남녀 모두에게 인기와 매력이 있는 사람들이다.특히 순발력과 임기응변이 뛰어나며, 기존의 틀을 깨는 기획을 잘한다. 하지만 지구력이 다소 떨어지고, 상대를 은근히 무시하며 자기주장이 강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항상 바쁘게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시작은 잘하지만 마무리가 부족하여 항상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을사일주는 순수한 아이처럼 보여도 내면적으로 냉정하며 현실에 잘 적응한다. 그렇지만 흔들리는 꽃이라 감정의 변화가 심하며, 인내와 지구력이 약한 단점이 있다. 하지만 표현능력이 좋고 끼와 화려함이 겸비되어 있어 이성과 동성에게 호감을 주는 장점이 있다. 옷도 센스 있게 잘 차려입는다.중국 전국시대 양주가 송나라에 가서 어느 여관에 묵게 되었다. 여관 주인에게는 첩이 두 명 있었다. 한 여인은 얼굴이 예쁘고, 다른 여인은 못 생겼다. 그러나 못 생긴 여인이 오히려 총애를 받고 있었다.양주가 그 까닭을 묻자 여관의 젊은 주인은 “아름답게 생긴 여인은 자기가 예쁘다고 뽐내고 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못 생긴 여인은 자기 스스로 못 생겼다고 겸손하게 낮추고 행동하여 나는 그녀가 보기 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양주는 제자들에게 “자네들도 이 일을 잘 기억해 두어라. 스스로 잘났다고 내세우는 태도를 떨쳐버리고 품행이 훌륭하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지 않겠는가?”라고 당부하였다. ‘장자’ 외편 산목에 나오는 이야기다.양주의 당부는 지금도 강한 생명력이 있다. 물건에는 명품이 있듯이 말과 행동에도 품격이 있다. 언행이 일치할 때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호소력과 감동을 준다. 품격 있는 말과 행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자기개발이 필요하다.을사일주의 사화(巳火)는 뱀이기에 따뜻한 인정과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뱀은 따스함과 차가움을 함께 가졌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오묘한 동물이다. 거기에다 뜨겁고 큰 불이 더하니, 자신을 공격하거나 해를 입히는 사람은 냉정하게 잘라내는 성향이 있다.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이기에 혼자서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물상으로는 ‘풀밭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뱀’이다.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을 휘감아 큰 먹잇감도 그대로 삼켜버린다. 어떠한 곤란에도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는 능력의 소유자다. 자기방어 이외에는 사람을 잘 공격하지 않는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은 생존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여 살아간다.남녀 모두 이성에게 인기가 많아서 이성문제가 잘 발생하는 일주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의 경우는 외모가 뛰어나며, 예술적인 감각과 매혹적인 목소리로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낼만한 매력의 소유자다.화려하고 향기 나는 꽃에는 항상 벌과 나비가 있다. 19세기 미국 작가 나다니엘 호손(1804∼1864)의 소설 ‘주홍 글씨’를 읽어보자. 17세기 엄격한 청교도들이 지배하는 미국 뉴잉글랜드지방(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죄를 다루었다. 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키가 크고 젊은데다 아름다운 용모를 겸비한 상류사회 여자였다. 헤스터는 나이 많은 남편을 영국에 두고 홀로 미국으로 이주한다.그녀는 보스턴에서 유능하고 촉망받는 젊은 목사와 사랑에 빠져 임신하게 된다. 청교도 사회에서는 여자의 행실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있었다. 간음은 그 사회에서는 죄에 해당한다. 헤스터는 생후 3개월 된 딸을 안고 처형대에서 간통을 뜻하는 주홍 글씨 A를 가슴에 달고 야유를 당하는 벌을 받는다.헤스터는 자신의 주홍글씨를 당당히 내보이며 죄를 극복하려는 진취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외곽에 머물며 탁월한 뜨개질 솜씨로 동네에 힘들게 사는 여자들에게 접근한다. 그녀는 타고난 의연함과 봉사정신으로 가난한 이웃과 병든 사람을 돌보게 된다. 죄를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히 드러내고 속죄를 통해 타인을 보듬고 위안을 준다. 아기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그녀의 사심 없는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전해져 가슴에 찍힌 주홍글씨 A는 Adultery(간음)이란 의미에서 차츰 Able(능력 있는 여자)로 인식되었고, 결국에는 Angel(천사)로 받아들여진다. 죄를 숨기고 거룩한 목사로 행세하는 젊은 딤스테일 목사는 점점 병들어가고 쇠약해져 간다. 목사는 설교를 통해 도덕과 사랑을 강조하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는 신임 총독 취임식장에서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죽는다.주홍 글씨는 세상의 멸시와 조소를 받는 죄의 낙인으로 쓰였다. 헤스터는 이를 존경과 극복의 상징으로 바꾸어 버린다. 죄는 목사이건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극복했을 때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인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머리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랑은 머리가 아닌 마음의 일이다. 그렇기에 사랑을 선악의 범주에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사랑은 선악의 판단 이전에 인간 본연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의 행위는 선악의 피안에 있다.

2023-06-14

여름철 숙면 중심체온 관리에 달려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올해는 유난히 여름이 빨리 다가오는 느낌이다. 여름에 열대야가 시작되면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확 늘어난다. 날씨가 더운데 왜 잠을 못 자는 걸까?사람의 수면은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생리활동이다. 바이오리듬과 비슷한 ‘일주기 리듬’에 따라 잠이 들고 잠이 깨는데, 대체적으로 지구의 낮과 밤 주기와 비슷하게 움직인다. 수면 뿐 아니라 혈당 조절, 각종 호르몬 합성 조절 등 수많은 생리 기능이 일주기 리듬과 연관되어 있다.사람의 체온도 일주기 리듬을 따라서 움직인다. 항상 36~37.5도 사이를 유지하는 중심체온(몸 속 중심부의 온도)은 저녁 7시경 가장 높고, 새벽 5시경 가장 낮다. 일주기 리듬을 따라서 체온과 수면의 패턴을 관찰해보면, 밤 10시를 전후해서 중심체온이 높은 상태에서 낮은 온도로 떨어질 때 졸음이 오고, 수면중에는 조금씩 떨어지면서 낮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새벽 5시경 가장 낮은 온도에 도달하고, 이후 서서히 중심체온이 오르면서 잠이 조금씩 깨게 된다.심장, 간 등의 내장이 활동하느라 생긴 열은 중심체온을 높이는데, 이것이 사람마다 달라서 중심체온이 높은 사람도 있고 낮은 사람도 있다. 중심체온이 높아지면 이 열을 밖으로 빼내려고 혈액이 피부쪽으로 많이 이동한다. 그런데 여름이 되어 바깥이 더워지면 피부 쪽으로 이동한 혈액이 열을 많이 내보내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중심체온이 잘 낮아지지를 못하게 되고, 중심체온이 낮아지지 못하면 잠을 잘 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속이 더우면 잘 잘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여름이 아닌데도 중심체온의 발산이 잘 되지 않아서 불면증이 오는 경우에는 심장의 열을 줄여주는 황련, 치자 등의 약재와 간의 열을 줄여주는 황금 등의 약재가 배합된 황련아교탕, 갈근황금황련탕, 치자시탕 등의 처방이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반면에 한방에서 양허라고 부르는 저체온자나 고령의 노인들, 체력 허약자가 깊은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애초에 중심체온이 상승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중심체온이 떨어지는 현상도 없어서 잠을 들기도 어렵고 깊은 잠도 못 자게 된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중심체온을 높여주는 인삼, 건강, 부자 등이 배합된 처방을 사용해야 몸이 따뜻해지면서 잠을 더 잘 자게 된다. 이런 이유로 열체질과 냉체질인 부부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은 때로는 곤혹일 수도 있다.위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 기침이나 복통, 심장병 등의 질환으로 인해 체온의 변화와 상관없이 못 자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는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노력과 기저 질환에 대한 치료가 병행 되어야 불면증이 없어지게 된다.불면증이 심하고 장기화 된 경우 한방의 불면증 치료는 중심체온을 조절하고 신경의 화를 식혀 주어 자연스레 수면패턴이 안정되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회복력을 키우기 전까지는 불면 증세가 금방 좋아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 회복하면 재발의 확률이 적고, 수면 뿐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 상태도 좋아지니 인내심을 가지고 한방 치료를 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23-06-14

‘영화 WITH’ 프로젝트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년 전 4월쯤으로 기억한다. 동네 행정복지센터에 갔다가 지산종합복지관에서 ‘영화 WITH’의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팸플릿을 얻었다. 은퇴 후 온갖 문화강좌 수강을 별렸으나 코로나19 탓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하던 차였다. 신청서를 정성껏 써서 인터넷으로 제출했다. 면접 후 대상자 선정을 한다길래 떨리는 맘으로 연락을 기다렸다. 며칠 후 면접 전화가 왔다.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나, 왜 신청하였나 등등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무엇보다 수강의 간절함을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영화 덕후라고 했더니 무슨 장르를 주로 보냐, 왜 좋아하느냐는 등 꽤 긴 시간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하여튼 며칠 후 선정되었다고 연락이 왔고, 5월부터 20주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강생은 20대부터 60대까지 나잇대도 다양한 남녀 20명 정도였다. 이번이 세 번째 수업인 분도 몇 있었으나 대부분은 나처럼 영화 공부인 줄 알고 오신 분들이었다. 그러나 강좌명과 같이 실제 영화감독이신 강사의 지도로 수강자들이‘함께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다. 2019년부터 시작된 ‘영화 WITH’는 첫해에는 2편, 2회째는 한 편의 영화를 이미 만든 저력이 있었다.첫 수업 때, 영화 끝의 엔딩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짜릿할 건가를 기대한다며 내 소개를 했다. 20주 후 영화시사회에서 그 바람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매주 수업은 영화제작 실습이었다. 첫날부터 컷촬영 실습, 두 번째 수업엔 휴대폰으로 5컷짜리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기획, 촬영, 편집 등의 영화 실무 공부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단 한 번의 수업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이크, 카메라, 오디오 장비들을 다루는 법을 모든 수강생들이 실습해 보면서 15분 내외의 단편영화 제작 준비를 했다.다양한 단편영화들을 감상하는 동시에 우리가 만들 영화 주제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고 상의했다. 대강 정해지자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배우, 연출, 촬영, 스크립트, 오디오, 붐마이크, 슬레이트, 메이킹필름, 소품 등의 영화 스태프는 수강생들이 자원하거나 타천으로 결정했다. 나는 소품 담당을 자원했는데 감독님의 요청으로 시나리오 작성에도 다소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시나리오가 거의 완성된 후 몇 주간은 배우들의 시나리오 읽기와 연기 연습이 이어졌다.촬영일자와 로케이션 장소도 상의했다. 촬영은 하루만 하기로 정했으나 실제 배우들은 보충 촬영을 할 정도로 쉽잖은 작업이었다. 촬영 내내 촬영장의 현장 분위기를 맛보고, 영화 한 편이 얼마나 어렵게 탄생되는가를 체험하였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단편영화 ‘선물’의 시사회는 흥분과 보람의 시간이었다. 영화 상영 후, 엔딩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의 감동은 전율감 그 자체였다. 그 감동을 잊지 못해 작년에도 참여하여, ‘엄마 찾아 칠십 리’라는 단편영화제작에 붐마이크를 들었다. 아, 우리집 강아지 베리도 특별출연하는 기쁨도 있었다. 올해도 절반의 수업이 지났다. 영화 주제는 만남, 내 역할은 시나리오 정리로 이미 정해졌다. 완성도 높은 작품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2023-06-14

아직도 어른을 찾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다.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 공동체에서 발생한 폭력은 일반 사회에서 벌어진 폭력과 다르기는 하다. 가장 중요한 가닥은 아마도 가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가 많으므로,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까닭이 있겠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해도 피의자가 미성년인 경우에는 특별하게 다룬다. 학교에 교육이라는 명제가 있다지만, 사회에도 교정과 회복이라는 까닭이 있다. 학교폭력이라 하여 과도하게 다르게 바라보고 특별하게 다루어야 할 까닭이 그리 분명하지 않다.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공식적인 수사, 기소와 재판이라는 정교하고 치밀한 제도적 접근방법이 정비되어 있는 반면, 학교폭력이 절차에 있어 시스템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지는 오히려 미지수다. 학교폭력도 당연히 폭력이다.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맞서는 우리의 태도는 어찌해야 할까. 일본이 바다에 버린다는 물을 사람이 마셔도 괜찮을 것인지를 묻는다. 물에 오염되었을 방사능으로 인간이 건강을 해칠까 하여 불안하다. 방류의 결과가 안전하다면 일본은 왜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바다에 버린다는 것인지, 가장 중요한 질문에 속시원한 답이 아직껏 없다. 실은, 한 가지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오염수로부터 인간이 안전할 것인지를 묻기 전에 방류가 바다와 자연을 혹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다. 물고기와 바다는 어찌 되는 것인가. 하나뿐인 지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국제사회는 일본에 물어야 한다. 환경을 보호하고 바다를 보전하기 위하여 일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방류가 자연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관하여 일본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방사능에 아무런 까닭없이 피폭을 당해야 하는 물고기들과 저 멋진 바다는 어찌할 것인지.다가오는 여름이 엄청 무덥겠다는 예측이 있다. 정부가 보다 분명하게 사안을 짚어내어 국민을 안심하게 하고 환경훼손을 최소로 하도록 접근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있다. 경륜이 깊고 덕망도 높은 인사들이 왜 침묵을 지키는지 안타깝기도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적에 그런 분들이 논란의 매듭을 풀어내는 데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나라 안에 그런 분들이 사라졌다기 보다 오히려 생각깊은 사람들이 오히려 많아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다. 교육과 지식수준이 한층 높아졌으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이해도 우리 안에 편만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건너온 사회적 집단 경험치도 대단히 높다. 예전에 역사와 민족 앞에 깃발을 들었던 소수의 지도자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열어가는 수많은 어른들이 나라 안에 가득하다. 당시에 대결과 타도로 난제를 돌파했다면 이제는 토론과 협상으로 논리적인 해결을 이어가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앞에 설 어른을 찾지 말아야 한다. 겪을만큼 겪었고 배울만큼 배운 당신이 이제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건강한 집단지성으로 가득한 사회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2023-06-14

“세계가 주목하는 로봇기업이 대구에 온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베어로보틱스가 대구테크노폴리스에 입주하기로 하면서, 대구가 로봇산업 중심도시임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최근 소프트뱅크 투자유치와 함께 차세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으로 주목받는 이 기업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주행 서빙로봇을 개발한 업체다. 베어로보틱스는 올 하반기 테크노폴리스 내 2만2천424㎡(6천783평) 부지에 글로벌 거점 역할을 할 ‘테크센터(연구·제조시설)’를 착공해 내년말부터 본격 가동한다. 테크센터에서는 제품 개발과 품질 테스트, 플랫폼 기술개발 등의 업무를 한다. 베어로보틱스의 대표적 상품인 서빙로봇은 지금 일본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구글 엔지니어 출신인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유럽, 동남아로 사업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실리콘밸리 한인 스타트업 가운데 유니콘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기업으로 손꼽힌다. 하 대표가 지난 12일 대구시와 투자협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대구지역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한 말이 든든하게 들린다.지금 세계 로봇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외식업계를 중심으로 자영업자들이 구인난을 겪으면서 유행처럼 서빙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국내에서 시판된 서빙로봇 수는 2019년 50대 수준에서 지난해엔 5천대 규모로 늘었다. 대구시는 이런 추세에 맞춰 로봇산업을 5대 신산업으로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베어로보틱스의 투자를 계기로 대구는 명실상부한 로봇산업 기지가 됐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대구에는 현재 200곳이 훨씬 넘는 로봇제조 기업이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HD현대 계열의 현대로보틱스다. 현대로보틱스는 지난 2017년 달성군 유가읍에 공장을 지으면서 대구의 로봇 간판기업이 됐다. 삼익THK와 아진엑스텍도 대구를 대표하는 로봇기업군에 속한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밝혔지만, 대구경북 신공항 개항과 함께 대구가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연결된 로봇제조산업 허브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2023-06-14

경북대, 반도체 인재양성 요람으로 거듭나길

경북대가 교육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추진하는 반도체 특성화대학 지원사업 대상에 최종 선정됐다. 2023학년도 반도체 특성화대학 지원사업에서 비수도권으로서는 경북대와 부산대. 고려대(세종) 등이 선정됐다.경북대는 이번 선정으로 앞으로 4년간 국비 271억원과 지방비 25억원, 대응자금 14억원을 포함하면 총 31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게 된다.경북대는 앞으로 전자공학부 주관으로 신소재공학부 및 물리학과가 참여하는 반도체 특성화사업단을 구성, 이를 운영해 나가며 반도체 특성화융합전공을 신설해 반도체 인재를 본격 양성해 나갈 계획이다.지금 지방의 대학들은 사활을 건 생존경쟁에 나서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으로 몰리는 학생들로 지방의 대학들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학과가 수두룩하다. 교육부도 지방대학의 이런 문제점을 풀기 위해 올해 중 10개의 지방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 1천억원의 예산을 지원해 육성하겠다고 밝혔다.지자체와 지방대학이 상호 협력해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경쟁력 있는 대학만이 살아남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방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이 사실상 시작된 셈이다. 올 대학 정시모집에서 정원미달 대학의 86%가 지방 소재 대학이었던 것만으로 지방대학의 경쟁력은 이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경북대의 특성화대학 선정은 이런 위기 속에 맞은 호재다. 특히 경북대는 권역별 반도체공동연구소 사업에 이어 특성화대학까지 선정됨으로써 학교 발전의 중대 고비가 됐다. 반도체 관련학과를 중심으로 대학의 위상을 끌어올려야 한다.한때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학으로 알려진 경북대가 많은 지방대학 중 하나로 전락한 위상을 다시 찾아야 한다.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시대적 흐름 때문에 불가항력적 측면도 있었으나 이제 이를 전기로 삼아 지역거점대학으로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반도체 인력 양성은 국가적 과제다. 경북대는 특성화대학 선정을 계기로 전국 최고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는 등 K-반도체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지역사회의 활로를 열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2023-06-14

세계 최고, 울릉도 리조트 코스모스

홍석봉 대구지사장 울릉군 추산리에 있는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개장 당시부터 화제를 뿌렸다. 호화 시설과 빼어난 건축미 때문이다. 2021년, 2022년 연속 ‘월드럭셔리 호텔 어워즈 럭셔리 허니문 리조트’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2017년 10월 문을 연 후 4년 만에 세계 최고의 호텔로 등극한 것이다. 세계의 아름다운 건물 20개 중 7위에 오르기도 했다. 코스모스는 코오롱 그룹이 김찬중 건축가에게 맡겨 설계했다. 건축가는 버킷리스트를 꿈꾸며 현실로 만들었다.코스모스는 울릉도를 단숨에 세계적 여행 명소 반열에 올려놓았다. 오직 이 건축물을 보기 위해 울릉도를 찾는 사람이 적잖다고 한다. 콘크리트 건물로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유려한 곡선미와 인근 송곳 산의 경치가 어우러져 신비감마저 자아낸다.숙박비는 엄청나다. 특급 풀빌라(객실 5개)는 1박 숙박비가 1천만 원을 넘는다. 식사와 교통편, 관광 등 여행경비 일체가 포함돼 있다. 펜션 형태의 숙소(객실 8개)도 1박에 40만~70만 원대로 가격대가 만만찮다. 이마저 객실 수가 적어 예약이 쉽지 않다. 예약돼도 섬의 특성상 풍랑으로 이용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식사 때는 울릉도 특산물인 명이나물과 부지깽이 나물을 활용한 파스타, 호박 아이스크림 등 특선 메뉴들을 맛볼 수 있다. 코스모스는 울릉도 고릴라 캐릭터를 만들고, 야간 레이저 쇼를 선보이는 등 울릉도 관광 면모를 확 바꿔놓았다.리조트 코스모스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외교결례와 내정간섭 논란의 주인공인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코오롱 그룹으로부터 리조트 코스모스 이용 편의를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고급 호텔 이용권이 접대 수단이 되는 시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14

‘~답게’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지인의 어린 딸아이가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애국’을 주제로 글쓰기 과제를 학교에서 받아 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해마다 쓰는 내용이 식상하기도 하고 도무지 쓸 거리도 없는데 매년 학교에서 그런 과제를 형식적으로 내니 애국은커녕 반감이 생겨 오히려 매국하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웃픈 이야기를 듣고서,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사실 6월은 현충일을 비롯해 한국 전쟁, 제2연평해전 등이 모두 일어난 달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곳곳에서 온갖 행사가 행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지극히도 무심히 6월을 보내는 일상 풍경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는 호국보훈의 달이라 하여 각종 행사에 형식적으로 물적, 인적 투자를 해 온 그간의 관례 탓도 있고, 또, 일반 범부(凡夫)로서는 국가를 위해 한 몸 바쳐 충성하고 희생한 이들의 삶이 너무도 고결하여 감히 근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심적 거리감 때문이기도 하다.그러나 국가를 위해 무언가 큰 희생을 하는 것이 꼭 호국보훈이요, 충(忠)은 아니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이 합쳐진 글자로, 중심이 바로 잡힌 마음 상태, 지극하고 진심을 다하는 마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 즉, 국민의 국가를 향한 일방적인 희생, 의무를 강요하는 복종 개념이 아니라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바로 잡고 선 상태, 하려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논어에서도 충(忠)을 ‘진기(盡己)’라고 표현하였다.진기(盡己)는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다른 말로, ‘~답게’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모두 각자 처한 위치에서 이러한 ‘~답게’를 진정으로 잘 실천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君君臣臣 父父子子).‘~답게’가 잘 실천되는 사회, 곧 충(忠)이 제대로 실현된 사회일수록 ‘나’를 넘어 ‘너’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법이다.나폴레옹 점령 당시 총칼 대신 독일의 민족정신을 살리고자 독일어 사전 편찬 작업과 각지에 흩어져 있는 민담을 수집해 책으로 엮어내 세계 문학사의 한 획을 그어 놓은 그림 형제나 풍전등화 같은 국가적 위기 속 조선의 운명을 짊어지고 왜적과 고군분투하다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 장군, 독립투쟁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고 대전 교도소를 나오며 이제 뭘 하겠느냐는 일본 경찰의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한 도산 안창호 등은 모두 학자, 장수, 독립투사로서 주어진 자리에서 ‘~답게’를 실천하다 간 인물들이었다.이처럼 충(忠)은, 호국(護國)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답게’를 진실된 마음으로 올바르게 실천하다 보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라에 미치게 되어 마침내 충(忠)을 실현하고 애국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6월은, 다들 스스로를 돌아보며, 진정 ‘~답게’ 살며 나만의 애국을 실천하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싶다.

2023-06-13

마당극으로 조명한 해녀의 삶과 미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스름이 내리는 도심 속의 정원에서 한바탕 놀이판이 열렸다. 꽹과리와 장구 등의 장단에 바람소리 같은 파도소리가 간간이 철썩이고, 갈매기 날갯짓따라 흰구름이 떠가는 구룡포 바닷가를 배경으로 조곤조곤 해녀이야기와 몸동작이 사뿐사뿐 이어졌다. 때로는 느긋하고 다급하다가도 때로는 긴장되고 애절하기까지한 연희(演戱)가 시종 재담과 해학으로 흥미롭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진 것이다. 이 같은 공연은 전통연희컴퍼니예심 단원들이 포항철길숲 오크정원에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지역의 향토역사 구룡포 해녀이야기 ‘명랑바다-숨비소리’ 마당극이다.해녀라는 고단하면서도 숙명적인 물질을 통해 여인의 삶, 어머니의 삶, 고령화돼 가는 위기의 해녀를 오롯이 지켜가는 사람들의 질박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마당극 특유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다양한 춤사위, 폭소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대사와 노랫말에 곡을 붙여 간절한 듯 신명나게 부르거나 연주하고, 출연한 배우들의 열연과 사물(四物)의 장단, 관객의 추임새까지 더해진 흥겨운 한마당이었다고나 할까? 거기에 즉석에서 샌드아트로 그려지는 평온한 바닷가의 풍경과 물질의 미래 이야기 등이 영상으로 비쳐지니 한결 이채롭기까지 했다.일찌감치 공연장 주위에 둘러 앉은 관객들은 이색적인 마당극에 젖어 들어 저절로 감흥이 일고, 철길숲을 오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춰 서서 삼삼오오 넌지시 마당극에 빠져드는 분위기였다. 연극 같으면서 창극(唱劇) 같고, 뮤지컬 같으면서도 독창적인 마당극으로 펼쳐지는 해녀의 레퍼토리가 궁금해선지 지나가던 바람도 주변에 맴돌고 별빛마저 서둘러 내려앉는 듯했다.시민들의 쉼터이자 만남과 소통의 공간인 포항철길숲에서 펼쳐진 ‘구룡포 해녀이야기’ 마당극이 작게나마 해녀들의 실태와 척박한 해녀 환경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경북은 제주도 다음으로 해녀가 많아 1천300여 명이 동해안 중심으로 나잠(裸潛) 어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경북 최다의 해녀도시인 포항은 타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해녀문화의 정체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해녀는 연안어업의 주요한 생산자이자 해양생태계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종사자의 64%가 40년 이상 나잠어업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나 고령화, 소득감소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갈수록 심각해지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의 위기에 어촌의 소멸위험은 어촌 주민들의 삶을 크게 위축시키기에 해녀들의 복지환경 개선과 실질적인 대안제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공연 시작 전 35년 동안 바닷속을 텃밭 삼아 온 구룡포리 어촌계장의 화두처럼 해녀의 존재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젊은 해녀, 해남을 위한 ‘해녀 비즈니스타운’ 건립추진 등으로 보다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이 결코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구룡포 해녀의 역사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해녀들의 애환을 대중적인 문화콘텐츠로 담아낸 걸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재조명된 해녀들의 실상과 처우가 보다 전향적으로 개선되어 포항의 해녀문화가 차츰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3-06-13

포항과 포스코 갈등, TK의 위기일 수 있다

심충택 논설위원 포스코그룹이 포항에 본사를 둔 것은 한국 근대화를 견인한 TK(대구경북)의 자존심이다. 대기업 중 본사 소재지가 비수도권에 있는 기업은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중공업(울산), 카카오(제주), 대우조선해양(경남) 등 한손으로 꼽을 정도다. 실질적인 본사기능이 서울에 있다고는 하지만, 포스코가 포항을 산실로 해서 다국적 기업으로 커 나가는 것은 TK로선 큰 자랑이다.포스코가 요즘 포항시민들과 현안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겪는 모습은 안타깝고 위험한 일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중소기업 하나라도 더 유치하려는 타 도시가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일 것이다. 갈등의 주요 요인인 포항제철소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의 경우 포스코로선 생존이 걸린 현안이다. 이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첫 단계인 주민설명회부터 일부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사업 인·허가 절차가 마무리돼야 수소기반의 생산체계 기술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포스코는 현재 고로 8기(포항제철소 3기, 광양제철소 5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고로를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유럽연합(EU)과 미국에서는 탄소배출 규제안을 강화하고 있어 포스코가 고로를 탈피하지 못하면 결국은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지금 포스코의 라이벌인 해외 철강기업들은 정부지원을 받아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스웨덴의 사브(SSAB)와 독일의 잘츠기터(Salzgitter)는 천문학적인 재정지원을 받고 있으며, 일본은 최근 철강 분야 탄소중립을 위해 10년간 3조엔(약 28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포항이 위기감을 느껴야 할 부분은 전남도가 현재 ‘광양홀대론’을 제기하며 포스코 미래기술연구원내 수소저탄소 에너지연구소를 광양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여유부지가 있는 광양에 수소환원제철소를 지어야 한다는 소리로도 해석된다.포항은 지금 내일(15일)로 예정된 포스코 범시민대책위의 집회를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포스코 지주사와 미래기술연구원의 실질적인 포항 이전, 최정우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다. 이들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본사기능의 포항이전 문제는 쉽게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최근들어 주요 대기업들은 수소·인공지능(AI)·이차전지 등 미래 신산업 주도권 선점을 위해 박사급 우수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RD 연구소를 수도권에 경쟁적으로 설립하고 있다. 포스코라고 예외일 수 없지 않은가.경북도가 서둘러 대규모 TF를 구성해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사업 인·허가를 돕기로 한 것은 아마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만약 포스코가 일부 포항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수소환원제철 사업부지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여유부지가 있는 광양제철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고로를 통해 철강을 생산하는 시대는 곧 마감되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시간에 쫓겨 광양에 수소환원제철소를 건설하면 포항은 물론 TK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게 된다.

2023-06-13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울진군의 경사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공사가 곧 재개됨으로써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복구’가 피부로 느껴진다. 신한울 3·4호기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이 백지화됐었다. 그 후 현 정부는 출범직후인 지난해 7월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 정책방향’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결정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1천400㎿급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이며, 여기서 생산하는 전기로 4인가족 500만가구가 사용할 수 있다.정부는 그저께(12일) 세종시에서 전원개발사업추진위를 열고 ‘신한울원자력 3·4호기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안’을 의결했다.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은 대규모 전력공급원개발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각종 인·허가 사항을 일괄 승인받기 위한 제도다.이날 의결로 사업자인 한수원은 도로점용, 하천점용, 공유수면 사용, 농지전용, 산지전용 허가 등 관계 법령에 따른 20개 인·허가를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효과를 얻었다. 또 같은 법에 따라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수용·사용과 이주대책 수립 등의 근거도 확보됐다. 현 정부가 원전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한수원은 우선 발전소 부지부터 다지기 시작하고, 마지막 관문인 원자력안전법상의 건설허가가 완료되면 원자로 시설공사에 들어간다. 원전 부지 공사와 별도로 원자로, 발전기 등 원전의 핵심 기기인 ‘주기기’는 이미 수주사인 두산에너빌리티 공장에서 제작하고 있다.문재인 정부 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20년 3월 완공된 신한울 1호기에 대해 11차례 회의를 열며 무려 15개월간 가동을 막아 울진지역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다행스럽게도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조기에 이루어져 경제활성화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신한울 3·4호기가 울진 지역에 2조3천600억원의 경제적 효과와 2천200여 명의 고용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에는 약 11조7천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다. 울진군이 다시 한국원전의 메카로 자리잡게 된 것을 실감한다.

2023-06-13

다부동전적기념관 호국 성지화, 바람직하다

경북도가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 주변을 국가적인 호국 및 보훈 성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3년간 450억원을 들여 6·25전쟁 영웅인 고 백선엽 장군의 기념관을 증축하고 다부동전투 스포츠센터, 피난 땅굴, 휴게광장 등이 구비된 호국 메모리얼파크를 조성한다는 것이다.또 민간단체가 만들어 설치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주역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만 미국 전 대통령의 동상도 다음달 27일 다부동전적기념관으로 옮겨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라 한다.그리고 칠곡군과 칠곡군 한미친선위원회가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8군 사령관 월턴 해리스 워커장군의 흉상도 제작해 이곳에 세울 것으로 알려져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명실상부한 6·25전쟁을 기념하는 국내 최대 호국 성지가 될 전망이다.특히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 당시 칠곡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 3개 사단을 물리치는 전과를 올린 전쟁영웅으로 다부동전적기념관의 가치를 더 높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경북 구미시 해평면과 의성군 단밀면,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걸쳐 벌어진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다. 대구에 이어 부산 점령으로 6·25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낙동강 전선에서 막아낸 전투다. 또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전투로도 유명하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은 2만여명, 국군은 1만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경북도의 다부동전적기념관 일대에 대한 호국 성지화 계획은 6·25전쟁 발발 73주년을 맞는 호국보훈의 달을 더욱 뜻깊게 한다. 북한의 핵개발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등으로 국가 안위에 대한 비상한 관심이 필요한 시기여서 더 바람직하다.6·25 전쟁의 수많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도리로서 교육적으로 의미가 크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의 폐해를 알리기도 하지만 국가를 수호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다부동전쟁기념관이 세계적인 호국 성지로 거듭나 많은 이가 찾는 명소가 되길 바란다.

2023-06-13

경찰도 극한직업?

우정구 논설위원 영화 ‘극한직업’은 마약단속반 형사들이 수사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터치한 수사물이다. 불철주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범인 검거실적이 오르지 않아 애태우는 모습이나 잠복근무 모습 등 비록 영화 속이지만 경찰관의 고된 업무를 잘 묘사하고 있다.경찰은 국민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회의 공공질서와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 옛날부터 이름은 달라도 국가에서 관장하는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는 상존해왔다. 조선시대는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를 포도청이라 불렀다. 포도청 산하의 포졸들은 육모방망이를 휘두르며 도둑을 잡는 등 서민의 보호자였다.그러나 말이 좋아 ‘민중의 지팡이’지 하는 일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사건이 터지는 현장마다 쫓아 나가지만 위험 부담도 적지 않다. 범인을 잡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칼에 찔리거나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주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동료 경찰관도 많다”고 전한다.멕시코의 한 NGO단체가 밝힌 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에선 하루 1.65명꼴로 순직하는 경찰이 발생한다고 한다. 대부분 근무 중 피살된 경우로 멕시코 경찰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군으로 손꼽힌다.멕시코 경찰처럼 목숨을 잃는 경우는 아니지만 국내서도 해마다 퇴직하는 경찰관이 크게 늘고 있다. 경찰청이 국회 행안위에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한해동안 3천500여명의 경찰이 옷을 벗었다. 4년 전 2천421명보다 46.3%가 증가한 숫자다.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열악한 처우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한다.민중의 지팡이는 온데간데없고 극한직업에 시달리는 경찰 이미지만 남은 것 같아 안타깝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13

오보(誤報)의 사회적 비용

5월 31일 아침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비명 같은 위급 재난 문자 알림음과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이라는 섬뜩한 문자 내용, 그리고 사방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 습관처럼 네이버에 접속하려는 데 접속이 되질 않자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마치, 재난 영화 속 한 장면에 내가 던져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고, 나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헌데, 무엇을?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같은 생각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패닉에 빠져 있었다.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는 행정안전부의 문자가 올 때까지.비록 20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순간에 느낀 공포를 말로 형용하긴 어려울 것 같다. 공포라는 말도 왠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아마 무력감에 더 가까웠지 싶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무력감 말이다. 그렇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엉킨 채로 아침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인사처럼 참 특별한 아침인 것 같다고, ‘수령님의 모닝콜’ 덕분에 지각생이 없는 것 같다는 비틀린 농담을 던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이 모든 감정의 폭풍이 ‘오보’로 인해 초래되었다는 건 꽤 의미심장한 일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 문자는 허술한 점이 참 많았다. ‘대피하라’라는 술어에도 불구하고, 문자는 무엇으로 인해 대피해야 하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말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무작정 쓰인 ‘대피하라’는 말은 꼭 영화 ‘미스트’ 같았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고, 우리에게는 최소한의 답이나 혹은 습관이라도 있어야만 했다. 수없이 많은 참사와 재난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재난에 취약하다. 그게 전쟁이든, 혹은 자연재해든, 우리는 어떤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더불어 문자에서는 어떤 상황인지조차 명확히 말해주지 않았고.사실 많은 사람들이 느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 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단지 대피하라는 말 뿐, ‘왜’와 ‘어떻게’를 생략해버린 문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을 부추길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더불어 그런 상황에서 네이버와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가 접속자 초과로 인해 먹통이 되어버린 건 의미하는 바가 큰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습관적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사태를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고, 그건 우리의 삶에 있어서 특정 사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문제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정부를 불신하고, 그와 같은 불신을 사기업의 정보망을 통해 보충하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비슷한 일은 얼마 전에도 있었다. 4월 28일 종로에서 있었던 지진 경보 오발송이다. 그때 나는 종로3가의 한 술집에 있었는데, 그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4월 28일 21:05 지진발생/추가 지진 발생상황에 유의 바람-종로구’라는 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부터 찾기 시작했다.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나는 그 광경이 꼭 만화 ‘일본 침몰’의 한 장면 같아 소름이 돋았다. 눈앞에 닥친 위기가 현실임을 인지하지 못해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재난에 휘말리는 사람들. 그런데 그게 정말 그 사람들만의 탓일까?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오보’가 갖는 위험성이 바로 이것이다. ‘오보’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에 치명적인 효과를 미친다.‘오보’는 우리가 가진 위험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실제 상황이 터졌을 때 잘못된 대처를 하도록 만든다. 그때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잘못된 낙관주의가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잘못된 정보가 초래하는 효과가 정정문자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까닭이다.더불어 이번의 경계경보 오발령 사건은 북한과 엮여 있다는 점에서 사태가 더 복잡하다. 북한의 위성 발사실험이 사전 고지된 사항이었음에도 이것을 이례적인 것처럼 이슈화시키고, 정보를 왜곡하여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고전적인 북풍 공작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건 지레짐작에 불과할 것이다. 오보는 오보여야만 한다. 그럼에도 오보가 단지 오보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어쩌면 이런 잘못된 정치적 상상도 오보에 대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인 것일까? 여전히 많은 의문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2023-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