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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물길 틔운 낙동강변 녹색옷 갈아 입힌다

고령 시작으로 도내곳곳 `희망의 숲` 조성지역별 차별화된 `강변 생태관광` 활성화 경북도가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수변 생태 경관사업을 추진하는 등 낙동강 주변 정비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낙동강 사업은 하천준설 등 본류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강 연안 지역의 수변 생태 경관사업에 대한 보완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경북도는 낙동강 희망의 숲 조성을 위해 강변 주요구간 중 수목 식재가 반영되지 않은 구간에 추가 수목식재를 통해 강변에 녹색 친수 공간을 조성한다. 편집자주■ 낙동강 희망의 숲 조성 행사경북도는 지난 2월 고령 사문진교에서 낙동강 희망의 숲 식수행사를 시작으로 낙동강 주변에 생명과 희망의 싹을 키워가기로 했다. 낙동강권역 18개 시·군 중 가정 먼저 시작한 낙동강 고령 숲 조성행사에서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지역민들이 자신의 나무에 표찰을 달았다. 또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성공과 개인별 소망을 담은 편지 등을 타임캡슐에 담아 매설했다. 타임캡슐은 20년 후에 변화된 낙동강과 함께 개봉하기로 했다.고령 희망의 숲 행사를 시작으로 안동시, 성주군, 의성군, 구미시, 칠곡군, 예천군, 상주시에서도 잇달아 낙동강 희망의 숲 식수행사를 했다. 이와함께 경북도는 낙동강 수변 생태경관 사업을 일부 조정해 도로변, 철도변, 교량지역 등을 중심으로 낙동강 희망의 숲 조성지역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낙동강 희망의 숲 조성 사업은 낙동강을 친환경적이고 생태보전 면에서 세계적인 강으로 꾸며 대한민국을 녹색 선진 일류국가로 만드는 사업이다.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강을 사랑하고 고향을 아끼는 마음으로 참여해 생명과 희망의 싹을 직접 키워나가는 것이라고 경북도는 설명했다.■ 경북도의 수변 생태경관사업경북도는 낙동강 연안 지역을 `명품 강변길 및 테마숲`으로 조성하고 강 주변지역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경관정비, 자연과 환경이 조화된 친수 생태공간 조성으로 `4대강 사업의 모범지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명품 강변길 조성도는 10억원을 들여 낙동강 9개 시·군, 20공구 100개 제방 211km를 대상으로 우선 지구인 주요 국도변, 철로변, 보 주변 24km에 교목 2천 주를 심는다. 또 주변 지구인 자전거 길, 산책로, 고수부지 등 14km에 교목 1천 주를 심는다.△강 주변지역 경관정비도는 낙동강 주변 9개 지역에 5천만 원을 들여 불법경작지, 골재적치장, 불량건축물, 노후 양·배수장, 골재선별기, 전봇대 등을 정비한다.우선 시설물 정비로 농업용 양수장과 불량건축물을 정비하고 주변 환경정비를 위해 생활쓰레기 처리, 산림 내 쓰레기 처리, 고사목을 정비한다.△테마 숲 조성낙동강 경북구간에 7경, 20공구별로 기념공원을 조성한다. 이곳에는 교목을 이용한 대규모 군락지를 조성하고, 교목과 관목이 어우러진 소규모 공원과 지역별로 주민들이 참여하는 녹색공원을 조성키로 했다. 또 강 연안 지역의 경관을 정비하고 민관이 참여하는 `경관개선협의체`를 구성해 자발적으로 경관을 저해하는 시설물과 주변환경을 우선 정비키로 했다.따라서 경북도는 낙동강 살리기 사업으로 다시 태어난 강과 잘 정비된 주변환경으로 사업효과를 극대화하고 낙동강이 4대강의 모범지구로 재탄생, 품격 제고를 통한 강변 생태관광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경북도는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지역별로 차별화된 녹색숲을 조성해 주민, 기관, 단체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해 공동체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녹색공간을 조성키로 했다. 특히 주민 스스로 참여해 만들어 낸 친수공간을 통해 범도민 자긍심을 부여키로 했다.이삼걸 경북도 행정부지사는 “국립 낙동강 생물자원관이 건립되면 경북 지역의 대표적인 생태자원인 江(낙동강), 山(백두대간), 海(동해)를 아우르는 생태관련 국립 기관과 네트워크화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경북도의 지역개발 전략인 `백두대간 프로젝트`, `낙동강 프로젝트`, `동해안 프로젝트` 상의 핵심 거점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봉화의 `국립 백두대간 고산 수목원`, 울진의 `국립해양과학교육관`, 울릉의 `국립 울릉도·독도 생태체험관` 등을 연계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이 부지사는 덧붙였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1-05-20

문화게시판

□공연△대안교육운동 후원을 위한 김희동 음악회 (010-3517-1262):21일 오후 4시 대구교육대 1강의동△이승진 첼로독주회 (010-2741-1140):22일 오후 7시30분 수성아트피아 무학홀△알라바마합창단 내한공연 (053-580-6602):20일 오후 7시30분 계명아트센터△대구시립교향악단 청소년 협주곡의 밤 (053-606-6314):20일 오후 7시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대구시립오페라단 신인음악회 (053-666-6134):20일 오후 7시30분 대구오페라하우스△케니G 대구공연 (053-623-0864):20일 오후 8시.21일 오후 7시 대구엑스코컨벤션홀△필그림 미션에스콰이어 제32회 정기연주회 (053-655-2540):21일 오후 7시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연극△미용명가 (053-290-9507):29일까지 뉴컴퍼니극장△행복한 가족 (053-422-7679):20일~6월19일까지 아트플러스 씨어터□전시△내셔널 지오그래픽전 (053-422-4224):29일까지 국립대구박물관△이콘전 (053-794-3217):6월30일까지 주노아트갤러리△알란 챨톤전 (053-422-1628):31일까지 갤러리신라△2011 유리상자 아트스타-장미전 (053-661-3081):22일까지 봉산문화회관△이태현전 (053-768-4799):28일까지 AA갤러리△장자크 상페 특별전 (053-606-6136):6월4일까지 대구문호예술회관△2011 메트로 봄맞이 미술제 (053-556-9708):29일까지 메트로갤러리△제7회 블루 비전전 (053-422-5560):6월20일까지 한기숙갤러리△물빛회 회원전 (053-813-0053):20일까지 자연갤러리△TEXT as ART (053-424-2203):28일까지 리안갤러리△우리 그림 민화전 (053-5509-7121):31일까지 대구학생문화센터△고(故) 정일 특별회고전 (053-668-1566):22일까지 수성아트피아△김성수전 (053-661-3081):6월5일까지 봉산문화회관△임영균 사진전 (053-246-4688):6월3일까지 시오갤러리△추억의 음악다방전 (053-810-1523):6월12일까지 천마아트센터갤러리△그륵과 그릇-김미희, 안정윤 도예전 (054-371-2111):22일까지 아트갤러리청담△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제3기 입주작가전 (053-602-7312):25일까지 인터불고갤러리△이용학전 (053-426-3080):25일까지 아트지앤지△성백주전 (053-252-0614):28일까지 갤러리제이원△조백리전 (053-951-3300):22일까지 대구 동구문화체육회관△제55회 영남한국화회전 (053-253-3673):26일까지 KBS대구방송총국 전시실

2011-05-20

상그릴라를 찾아서 1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의 소재가 된 곳 `상그릴라`. 하재영 시인의 중국 운남 기행문 `상그릴라를 찾아서`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상향의 도시를 찾은 시인의 발길 앞에 진정 평화와 아름다움이 존재하는지.삶의 한 길목에서 낯선 곳을 찾는다는 일은 용기며 축복이다.반복되는 시간의 한 폭을 가로 세로로 길게 찢고 그 구멍으로 떠난 여행.2011년 2월 하순 어느 날 난 넓은 중국 땅 운남성에 있었다. 우리에게 보이차로 널리 알려진 운남. 구름의 남쪽 운남(雲南).난 운남의 중심 도시 곤명(昆明)에서도 한참 북동쪽 상그릴라로 향하고 있었다.해발 3천459m의 도시 상그릴라는 티벳어로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98년부터 중띠엔(中甸)을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의 소재가 된 곳이라 해 향격리납(香格里)으로 바꾸고 상그릴라라 쓰기 시작했다.상그릴라에 다가갈수록 무엇이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 했을까?그것에 대한 인식이 깨달음처럼 조금씩 다가온다.“중국의 운남을 통과하는 세 개의 강이 장강, 란창강, 로강입니다. 장강 상류를 진샤(金沙)강, 하류는 양쯔(陽子)강이라 부르는데 무려 6천300km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입니다. 장강이 직선으로 흘렀다면 베트남으로 흘러 남지나해로 빠졌을텐데, 석고진 `장강제일만`에서 U자로 돌기 때문에 중국 국경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장강을 어머니의 강이라고 하는데 상그릴라로 가기 전 꼭 들러봐야 할 곳이 호도협입니다.”상그릴라로 가는 도중 동행한 조선족 가이드 오 군의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 화남과 화중으로 나누는 강이 양쯔강이라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장강의 흐름 중 첫 번째로 꺾이는 곳이라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 `장강제일만`이다.그곳에서 동북쪽으로 방향을 바꾼 장강(金沙江)은 5천m 이상의 하파설산(哈巴雪山:5천396m)과 옥룡설산(玉龍雪山:5천596m) 협곡 사이로 들어가 `호도협(虎跳峽)`이란 절경을 만든다. 아마도 장강이 U자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중국 5천년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여강을 출발한지 한 시간 반 지나서야 우린 장강제일만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 얽힌 인물들, 제갈공명, 칭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칸, 홍군의 하룡 장군에 대해 들으면서 말이다.장강제일만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을 이야기하며 잠시 쉬었다가 호도협으로 향했다.옥룡설산쪽 호도협 관광을 위해서는 진장로(곤명에서 상그릴라 가는 길)에서 벗어나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계홍교를 건너야 한다. 계홍교는 진샤(金沙)강에 놓인 낡은 다리로 차에서 내려 차량은 차량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건너야 한다. 건넌 다음 다시 차를 타고 호도협 주차장까지 가야 했다.호도협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가 옥룡설산 쪽 강변을 걷기 시작한 때는 오후 1시 조금 넘어서였다. 호도협은 그 길이가 20km로 협곡 입구의 해발이 1천800m나 된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의 낙차는 213m나 되고, 좁은 강폭은 30m 정도다. 세계에서 가장 험한 협곡 중의 한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상그릴라 쪽 상호도협에서 중호도협, 하호도협으로 이삼일의 트레킹을 즐기는 곳이다.길 위쪽으로 옛날 마방들이 운남에서 생산된 차(茶)를 싣고 걸었던 차마고도가 보인다. 깎아지른 바위는 그야말로 천길 낭떠러지다. 갈수록 좌측 강폭이 조금씩 협소해진다.얼마쯤 갔을까? 호거용반(虎踞龍盤(蟠)이란 글이 보인다. 범이 걸터앉고 용이 서리는 듯한 웅장한 산세를 일컫는 말로 매우 위세 있는 모양을 뜻한다. 강변 위험한 곳은 산 속으로 터널을 뚫어 그곳을 지나도록 해 놓았다. 강 건너 상그릴라쪽 높은 지대로 새롭게 뚫은 길도 보인다. 차량으로 `호도석`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다.호도협의 잔잔한 옥빛 수면이 거칠어진다. 옥빛은 석회암에서 분출된 성질 때문이다. 호구잔도(虎口棧道)란 글자가 앞에 나타난다. 호랑이 입 속 같은, 천장에서 낙석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위험한 길이다. 그렇기에 호랑이 호(虎)자를 썼을 것이다. 여행객들은 걸으면서 `내게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야`란 생각을 하는지 무심하게 걷는다.위험스런 그곳을 걸으면서 생각한다. 여행이란 것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끊임없이 걸으며 보고, 듣고, 맛보고, 생각하며 느끼는 것이란 것을….오리 남짓한 짧은 거리지만 길은 흙 하나 밟을 수 없다. 아름드리나무에 톱질 한번 해 놓고, 톱이 지나간 좁은 공간을 걷은 것 같은 산 속 바윗길이다. 옛 차마고도는 우리가 걷는 위쪽으로 뚫려 있다. 얼마쯤 걸어가자 호도석이 보이고 옥룡설산 쪽으로 한 마리의 호랑이상(像)이 보인다.호랑이가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때 호도석을 디디고 넘어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스토리텔링의 대표적인 곳이 호도협이다.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의 소재로 형상물을 만들고,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꾸며놓는 중국인들의 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협곡이 좁아진다. 호도석 양옆으로 거친 물살이 흐른다. 흐르는 물에서 포말이 날리며 카메라 렌즈를 적신다. 물은 낮은 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다. 낮은 자리만 있으면 그곳이 자기 자리라고 움직이는 물. 물의 본성을 그곳의 물들은 잘 보여준다. 하지만 호도협의 거친 물줄기와 물소리는 그런 물의 본성을 보여준다기보다 두려움까지 갖게 한다. 마치 낮은 자리로 향하는 것이 권력의 암투요, 싸움이요, 경쟁을 의미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다리 아래로 호도석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울타리를 쳐 놓았다. 그 한쪽에 호도협(虎跳峽)이란 글씨도 있다. 기념촬영 장소다. 10여 분간 그곳에 머물러 호도석을 본 다음 걸었던 길을 다시 밟는다.여행은 걷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다.여행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피곤하다고 차에 머물기도 한다.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은 발로 디뎌야 한다. 그것이 여행의 핵심이면서 발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계속

2011-05-20

성주 한개마을 북비고택(北扉古宅)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 개마을은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입향하여 560여년을 내려오면서 성산이씨가 집성촌을 이룬 전통 마을이다. 2007년 12월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5호로 지정된 이곳은 마을 뒤 영취산(331.7m)이 좌청룡 우백호로 마을을 감싸고 있고, 마을 앞에는 서남쪽으로 백천이 흐르고 있다. 옛날에는 그 누구도 함부로 마을 앞에서는 말을 타고 지나가지 못하고 반드시 내려서 말을 끌고 지나야만 했다는 마을이기도 하다. 그 영향으로 근대에 와서 이 마을 앞으로 철길을 내려하자 극구 반대해 결국 철길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고 한다.1980년대 초부터 전통마을 고건축 조사를 위하여 뻔질나게 드나들던 이 마을에 이제는 교리댁, 북비고택, 한주종택, 월곡댁, 진사댁, 도동댁, 하회댁, 극와고택, 첨경재 등 11곳이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3㎞에 달하는 마을 토석담장길 또한 국가등록 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마을 전체가 조선시대 생활상과 주거상을 엿볼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필자가 방송국 작가와 피디에게 소개한 집만 해도 한주종택의 한주정사와 교리댁, 북비고택 그리고 마을 토석담장길까지 여럿이었다. 이처럼 오랜 인연으로 TV 다큐프로 `그곳에 살고싶다` 녹화를 위해 북비고택을 찾았을 때다. 소담한 사랑채 사랑마루에 올라 주산을 바라보며 안채에서 정성껏 차려 내주신 다과상을 앞에 놓고 주인과 마주앉아 `북비고택`에 대한 내력과 건축적 특징에 대하여 다담을 나누었다.북비고택은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口`자형 반가와는 달리 남측이 개방적인 건축배치 구성을 하고 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좌측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ㄱ`자형과 `一`자형으로 각각 남향을 하고 있는데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l`자 형으로 아래채를 동향으로 배치해 사랑채와 안채 사이를 차폐하고 있다. `口`자형 민가에서처럼 사랑채가 안채 앞을 가리지 않으면서 중문없이 내외공간을 분리해 놓았다. 이렇게 하여 사랑마당 측에서는 안채가 조금도 보이지 않도록 꾸민 것이 이채롭다. 안채에 들기 위한 중문을 설치하지 않고도 대문채에서 사랑마당 앞을 지나 안채에 들도록 하여 하였다. 자연환경에 순응해 소박하면서도 은근히 아래채로 안채와 안마당을 차폐시킨 것은 건축당시 유교사상의 숨은 배려까지 엿볼 수 있는 독특한 평면구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대문채 우측 토석담장의 행랑채로 드는 협문 상부에 `북비`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다. 조선 영조50년(1774)에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었던 이석문(李碩文)이 사도세자 참사 후 그를 사모하여 북향으로 사립문을 내고 평생을 은거한 충절이 깃든 곳으로 후일 그를 북비공(北扉公)이라고 칭했고 지금도 북비고택의 행랑채로 남아 있다./영남이공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2011-05-19

단점보다 장점을 보는 안목을 키우자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사이의 사귐이란 말로서 시세(時勢)에 따라서도 변치않는 두터운 우정을 일컫는다.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 열자 역명 편 등에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관중과 포숙아는 춘추시대 제(劑)나라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렸을 때 같은 고장에서 자랐는데 포숙아는 관중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가난했던 관중을 늘 도와주곤 했다고 한다. 당시 제나라는 양공 (襄公)이 형인 노()의 환공(桓公)을 죽이고 그의 부인을 차지한 후 정사를 돌보지 않아 매우 혼란스러웠다. 차츰 조야의 기미가 어지러워지자 관중은 공자(公子)규를 모시고 이웃 나라로 포숙아는 규의 이복동생인 소백(少白)과 함께 거나라로 망명했다(BC.686). 예상한 대로 그해 양공은 사촌동생 공손무지에게 암살당하고 왕위를 찬탈한 무지는 또 이듬해 다시 살해당해 제나라에는 국왕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두 공자는 왕의 자리를 노리고 귀국을 서둘렀고 이런 사정으로 관중과 포숙아는 뜻하지 않게 정적이 되었다 관중은 이때 거에서 돌아오는 소백을 암살하려고 했으나 용케 모면한 소백이 먼저 귀국해 환공(桓功)이라 칭하고 노나라에 공자 규의 처형과 관중의 압송을 요구했다. 고자 규는 자결하였으나 관중은 태연히 나아가 포박을 받았다. 제나라로 압송된 관중은 환공 앞에 릅릎을 끓고 처분을 기다렸다. 이때 환공이 그를 죽이려 하자 포숙아가 나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마 단지 제나라만의 군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하지만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시려면 이오(夷吾:관중의 이름) 외에는 달리 쓸 인재가 없습니다”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에게 요직을 주었다. 이리하여 제나라의 재상이 된 관중은 우선 고아나 병든 사람을 비롯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휼정책을 시행해 민심을 얻은 후 이를 기초로 부국강병책을 추진, 제나라를 일거에 천하의 부국으로 만들었다. 그후 관중은 제후들을 규합해 제나라를 중심으로 동맹을 체결토록 함으로써 환공을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는 구호는 관중의 정치철학을 드러내는 유명한 구절이다.관중의 이같은 성공은 무엇보다 관중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이지만 그 능력을 알아보고 중용될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은 역시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따뜻한 우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인간은 상대를 알고 자기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손자 병법에 나오는 글이다. 잘 활용하여 뜨거운 인간애로 살아가는 지혜를 찾자. 단점 보다 장점을 보는 안목을 키우자./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5-18

성장통 겪는 청춘에게 전하는 희망메시지

베스트셀러의 자리에까지 오른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학생들 지도를 위해 읽고 싶었던 책 중의 한 권이었다. 이번에 다 읽고 나서 수업시간 마다 이 책을 학생들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절망 속에서 20대를 보낸 것 같다. 당시 정치, 사회 문제를 내 문제인양 고민하고 아파했다. 이에 해답을 찾으려고 문학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20대에 문학에 인생을 걸었다.그런데 난, 여전히 아파하고 있다. 아직도 청춘인가 보다. 뛰어난 실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해 취업을 못한 후배들,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방황하는 제자들, 부모와 다투고 집을 나와 친구 집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A군, 간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시어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마음이 아프다.`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대학 교수가 특히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필자도 언급했듯이 책상머리에 앉아 손끝으로 쓴 글이 아니라, 직접 만나 상담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파악하려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함께 아파한 내용들이어서, 설득력 있게 내 가슴에 와 닿는다./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2011-05-18

검둥이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무의식의 나

그림 그린다는 것, 그래 나에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의식의 나, 나를 표출하는 작업이다.해서 그림을 그리면서 고단한 마음 쉬어가고 상처받은 마음도 치유하고 지우고 싶지않은 아름다운 기억들을 담아본다.삶의 굴레에서 자의든 타의든 열심히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잠시 돌아보고 쉬어간다.모든 것을 놓고 그저 평안히, 작게 흔들리는 풀잎들, 그사이에 곱게 피어나는 꽃들이 주는 즐거움, 행복감.커다란 나무아래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싣고 자연이 주는 휴식과 향취에 흠뻑 젖어 본다.이 순간 마음은 가장 깨끗하고 순수하며 흔들림이 없는 세상으로부터 살짝 벗어난 가장 처연한 상태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할 따름이다.나의 그림에 가끔 등장하는 검둥이는 홀로아닌 함께이고 싶음이다.머리쓰지 않아도 되고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나를 보고 따르는 검둥개, 이 또한 함께하는 외롭지 않는 친구인 것이다.홀로보단 함께이기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그저 그것들을 담고싶은 것이다.인간이 가질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그래서 행복함과 감사함이 가득한 그 순간, 해서 자신도 쉬어가고 보는 이도 나의 그림을 통해 잠시나마 쉬어갈수 있다면, 더불어 아름다운 마음도 함께 낼수 있다면….♠ 서양화가 한주옥-개인전 2회, 2인전 2회-서울아트페스티벌, 프리즘전, 누드7인7색전, 경산미협창립전, 경산미협전, 경주동학예술제초대전, 일송갤러리개관기념전, 여류작가초대전, 불우이웃돕기바자회전, 행복나눔전, MBC아트울산, 작은작품미술제 등 단체전 다수-현재 한국미술협회, 프리즘회원

2011-05-18

대구국제육상대회로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 점검

관람객·성숙한 시민의식 풀어야 할 숙제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전초전 성격으로 대회를 100여일 앞두고 열린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가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이번 대회는 단순 국제육상경기가 아니라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점검할 마지막 기회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이번대회는 처음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던 관중동원과 국내선수가 없는 `그들`만의 잔치, 시민의식 부족 등 여전히 숙제를 남겼다. 그러나 트랙과 조명 등 경기장시설은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를 되돌아보고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공 가능성을 진단해본다.□ 관중동원 여전히 실패이날 입장한 관중은 약 2만명 정도로 추산됐다.대회 조직위측이 파악한 관중수는 3만여명이고, 판매된 입장권수도 3만장 정도로 이론상으로는 엇비슷하다. 하지만 오후 6시30분 개회식때까지만 해도 관중석은 반도 채 차지않아 썰렁함을 더했다.자발적으로 경기를 관람하러 온 관중수는 눈에 띄게 적었고 거의 시민서포터스, 대학생 홍보단, 초중고학생 초청석으로 채워져 여전히 개선돼야 할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다만 어린아이 등 가족을 동반한 입장객이 간간히 눈에 띄어 그나마 과거 대회보다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 드는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특히 조직위는 6만석이나 되는 대구스타디움의 큰 관중석을 줄이기 위해 본부석 위쪽과 맞은편 3층 38개섹트를 플래카드로 장식해 만석을 4만2천석으로 줄이는 작전을 펼쳤다.하지만 그래도 개회식까지 본부석을 중심으로 한 좌우양편 등은 거의 빈자리로 남아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국제대회인데도 외국인 관중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도 곱씹어 볼 부분으로 지적됐다.조직위측은 8월 본대회 입장권 예매율은 현재 50%를 넘어섰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대회 결과 3만여중의 표 중 약 30%이상은 스타디움을 찾지 않아 사표 방지도 신경써야 할 것으로 꼽힌다. 조직위 관계자는 “무리한 관중동원은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므로 가능한 자발적 관중유치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8월 본대회는 세계대회이니 만큼 많은 관중이 찾아 대회를 빛낼 것으로 생각한다”며 여전히 자신감을 보였다.□ 아직도 미성숙한 관전 시민문화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만큼 국내 선수에게 큰 박수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날 관중은 외국선수에 비해 우리 선수에게 지나치게 큰 호응도를 보였다. 외국 선수중에서도 딕스나 펠릭스 등 유명 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인반면, 별로 이름없는 선수에게는 냉담한 면도 드러냈다.술 반입이 엄격히 금지되나 관중석 곳곳에서 막걸리나 소주, 맥주, 통닭 등을 갖고 와 술판을 벌이는 장면이 목격됐다.또 남자 100m 경기가 끝난 오후 8시40분쯤 마지막 남자 3,000m 경기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관중들은 자리를 떴다. 좀 쌀쌀한 날씨탓도 있었지만 경기를 남겨 둔 선수들에 대한 매너가 아쉬운 부분이다.김미영(42·수성구 시지동)씨는 “가족과 대회를 관람하러 왔으나 일부 관중이 야유회에서 하는 술판을 벌여, 시민의 한사람으로 기분이 상했다”며 “8월 본대회때는 좀 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그들만의 잔치국내육상수준은 세계와 엄청난 격차가 있다. 하지만 이날 경기 결과는 실망만 안겨줬다.맨 처음 실시된 여자 1천500m경기에서 김미진 선수가 거의 한바퀴나 뒤지는 실력으로 꼴찌로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매 종목마다 국내선수들은 거의 최하위 수준이었다. 8월 본대회때는 더욱 기량이 있는 선수들이 출전하므로 아예 그들만의 잔치가 될 공산이 불보듯 뻔하다. 박수를 칠 국내선수가 없는 실정에서 관중들이 흥미를 느끼기는 어려운 게 사실.그나마 국내 팬들을 조금이나마 위안케 한 것은 남자 세단뛰기 김덕현(광주시청)의 깜짝 금메달 소식. 김덕현은 16m99를 뛰어 리반 샌즈(바하마.16m97)를 0.02m차이로 제치고 우승, 주최측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세웠다.하루 이틀만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이번 대회를 계기로 육상꿈나무의 발굴이 시급한 실정이다.□운영능력은 아직도 의문선수소개시 전광판과 안내방송이 서로 맞지 않거나 안내방송 타이밍을 놓치는 등 대회운영의 미숙함도 보완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 또 종목소개 순서도 뒤바뀌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남자 세단뛰기의 김덕현은 경기후 “믹스트존을 통과하면서 여자멀리뛰기가 지연돼 30분이상 대기해 컨디션을 조절하는게 어려웠다”며 대회운영의 미숙함을 지적하기도 했다.조직위 실무진의 전문성도 도마위에 올랐다. 경기진행중 조직위 직원 몇 명이 기록지 보는 법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 경기 당일날에서야 이러한 강의가 이루어져 아직 체계적인 교육이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곧바로 기록지가 미디어본부에 도착해야 되나, 한참이 지나도록 도착하지 않았는데 시급히 개선돼야 할 문제다.□ 시설은 합격점18억원을 들여 만든 몬도트랙은 반응이 좋았다. 펠릭스 등 이번 대회 우승자들은 한결같이 몬도트랙은 기록단축에 도움이 된다며 만족스런 모습을 보였다. 관중들도 기존의 붉은색 우레탄 대신 파란색의 트랙이 시각적으로 집중도를 높였다고 말했다.울림현상이 적은 음향장비, 대낮보다 밝은 조도를 자랑하는 조명시설 등 시설에 있어서만은 어느 대회보다도 좋았다는 평가다. 스타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볼 수 있는 대형 HID 스크린도 눈여겨 볼 만했다. 게다가 최첨단 계측 시스템에 수집된 선수의 기록과 순위는 실시간으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전달돼 경기장에서도 TV중계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조직위는 국내에서 열린 육상대회 사상 처음으로 일본 세이코의 전자계측장치를 들여와 이번대회에서 테스트했다.IT전문업체인 모나코테크놀로지는 이 계측장치에 입력된 선수의 기록을 실시간으로 전광판과 TV화면에 전달해 호평을 받았다. 이외 선수촌 조성 등 시설준비는 일단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이창훈기자

2011-05-16

<11> 바다를 걷다. 영덕 고래불 명사이십리길

영덕군 병곡면 병곡리에서 영해면 대진리에 이르는 바닷가 길을 걷는다. 고운 모래밭의 길이가 무려 8km에 다달아 명사이십리라는 이름을 얻은 곳, 이곳은 2010년 국토해양부에서 아름다운 해안 도보여행 구간으로 선정한 `해안누리길`의 하나다. 대한민국 서해, 남해, 동해에 이르는 52개 구간 중 솔숲사이로 난 길과 모래밭에 뿌리를 내린 풀들이 내어 준 길, 그리고 고운 모랫길의 감촉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하여 `삼색의 길`이라 불리는 고래불 명사이십리길은 어떤 풍경과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영덕 영해에서 태어난 고려후기 대학자 목은 이색 선생이 유년시절에 상대산(183m)에 올라가 앞바다의 고래가 하얀 분수를 뿜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고래뿔`이라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고래불은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몇 년째 전국 최우수 해수욕장으로 선정된 곳이다. 해수욕장 오른편 둔덕 자그마한 용머리공원에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오르면 거대한 반원을 그리며 휘어진 명사이십리 전체 구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출발지인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영리해수욕장까지 약 3km 구간은 솔숲길을 택한다. 빽빽하게 자라 하늘을 가린 소나무 사이로 약 1m 남짓한 폭의 산책길이 고불고불하게 이어져 있다. 쌓인 솔갈비 위로 떨어진 솔방울들과 바람이 불 때마다 스치는 솔향에 몸과 마음이 청정하다. 얼마쯤 걸었을까? 오른쪽으로 하얀 돌의 길이 나타난다. 갖가지 굵기의 맑은 돌이 박힌 지압로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 본다. 이내 도톨도톨한 돌길에 발이 익숙해진다. 지압로가 끝나는 곳에 자그마한 쉼터가 있다. 고래가 바다 위로 몸을 드러낸 형상과 물방울이 튀는 조각이 마치 솔숲 사이에 바다를 옮겨 놓은 듯 싱그럽다. 고래의 등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는 솔숲을 벗어나 다시 걷는다.영리해수욕장부터는 척박한 모래밭에서 자라는 샛푸른 식물들의 향연이 끝없이 펼쳐진다. 염분기 많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뜨거운 햇살 아래 온 몸을 밀며 악착같이 바다로 가는 갯메꽃 무리와 방풍의 질긴 생명력이 눈물겹다. 풀밭길을 걸으며 문득 내가 걸어 나온 솔숲을 바라본다. 바다쪽 소나무는 해풍을 견딘 탓에 거의 눕다시피 자란다. 모래밭에 닿을 듯 말 듯 한 키 작은 해송들이 결국 숲 속에 죽죽 뻗은 나무를 키우는 것이리라. 이 길은 오래전 해안 초소가 있었던 탓에 초병들이 낸 길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보이는 참호의 흔적은 새삼 분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무너진 참호엔 모래만이 가득한데 제법 고급스런 의자 두 개가 하얗게 바랜 채 놓여있다. 대부분 타이어를 걸쳐 놓은 것에 비하면 그 자태가 매우 이색적이다. 아마도 꾀가 많은 초병이 어디선가 끙끙 날라다 놓은 모양이다. 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밤새 나누던 긴 이야기는 어디로 갔을까? 군데군데 끊어진 철조망이 발갛게 녹이 슬어 뒹군다.조그만 경고 팻말 앞에서 풀밭길과는 작별이다. 그곳은 해안 식물에 관한 연구를 하기 위한 환경부 조사구역이기 때문이다. 바다 가까이로 나가 모래길을 걷는다. 조개껍질 하나 없는 깨끗한 모래밭에는 새들의 발자국이 단풍잎 모양으로 수없이 찍혀 있다. 작고 가냘픈 발자국을 지우고 돌아가는 얇은 파도 위로 내 그림자가 선명하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면 아직 걸어가야 할 아득한 길이 보이고, 뒤를 돌아보면 악착스레 걸어 온 길이 보인다. 그 가운데 온점처럼 서 있는 내가 보인다. 삶의 어느 자리가 이토록 선명하게 생을 생각하게 하였던가.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온다. 몇 마리에서 몇 십 마리로 순식간에 불어난 새떼가 시끄럽게 지저귄다. 영리해수욕장을 지나 덕천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1.9km 구간은 새들의 세상이다. 조개껍데기와 자갈이 깔린 오목한 곳마다 점박이 알들이 지천이다. 두 개 혹은 세 개씩 낳아 놓고 근처를 떠나지 않았던 새들에게 이방인의 등장은 비상사태일 터, 알들을 보호하려는 모습이 감동스럽다. 지붕도 없는 저 둥지에 어찌 햇볕만이 내리 쬐었겠는가. 분명 비도 다녀갔으리라. 그런 날 어미는 알을 품고 앉아 하염없이 제 날개를 적셨을 생각에 뭉클하다. 걸음을 재촉하자 새들은 조금 더 선회하다 긴장을 풀고 이내 흩어진다.덕천해수욕장에서 솔밭길은 다시 시작된다. 고래불에서 만난 길과 비슷하지만 긴 모래밭을 걸은 후라 그런지 느낌이 다르다. 바다 쪽으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음수대가 있고 솔숲에는 고즈넉한 산책로가 있다. 금방이라도 물을 튕기며 헤엄쳐 오를 것 같은 고래 모형 앞, 쉼터를 만들기 위해 베어낸 소나무의 밑동이 그대로 의자가 되어 있다. 걸터앉아 땀을 식히며 자리를 내어 준 나무의 한 생에 대해 생각한다. 이곳에는 쉼터 뿐 아니라 운동기구, 전화놀이 벤치, 풀장 등 계층을 막론하고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좀 더 오랜 시간 머물고 싶어진다. 머리카락 하얀 할아버지 한 분이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그 소리에 숲이 술렁인다. 나뭇가지들이 두리번거린다. 새와 풀과 길의 귀도 쫑긋 선다.덕천해수욕장에서 대진해수욕장에 이르는 길은 약 송천을 만나 잠시 끊어진다. 송천은 서읍령, 독경산 등에서 발원하여 심산계곡을 지나 약 40여 km를 흐르다 대진해수욕장에 이르는 맑은 하천이다. 바람이 불때마다 잔잔한 물결이 피는 송천은 마치 호수 같다. 폭이 그리 넓지는 않으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으니 잠시 도로를 이용해 송천교를 지나 도착지인 대진해수욕장으로 간다. 바라보는 어느 곳이든 푸른 바다가 푸른 하늘의 팔을 베고 있다. 파도를 벗 삼아 느리게 행복하게 걸어 온 명사이십리길, 삶의 조급한 짐들을 다 내려놓은 나는 자유다.

2011-05-16

650만 시·도민 `형제愛`로 뭉쳤다

`과학벨트` 경북·울산·대구 유치 16일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최종 입지 선정을 앞둔 경북·울산·대구는 지역유치를 위해 일찌감치 3개 시도 공동 유치추진위원회를 출범하는 등 결속을 다져왔다. 또 3개 지역 600여 시민단체로 구성된 범시·도민 유치본부 출범, 과학자, 상공인, 대학, 대학생 등 총망라한 650만 시도민이 나서 과학벨트 지역유치를 염원했다.이제 3개 시도는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최종 결정을 지켜보고 결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없는 결정은 강력 대응키로 했다.일찌감치 공동유치추진위 출범 결속 다져와국토균형발전 도외시하는 평가 개선 촉구■ 경북·울산·대구의 과학벨트 유치 노력은경북도는 과학벨트를 지역에 반드시 유치하고자 2008년부터 과학비즈니스 벨트 조성계획을 마련해 교육과학기술부 등 관련 부처를 방문하고, 유치를 건의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2009년 3월에는 경북도, 대구시, 대경 연구원, 대경과기원, 경북도내 시군 등 10개 기관이 참여한 공동 유치를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지난 1월11일에는 3개 시·도지사의 공동유치 MOU 체결과 전문가 포럼을 개최해 과학벨트를 유치하고자 굳건한 공동 협조와 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따라서 경북도는 정부의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사업 도내 유치를 위해 지난 1월 경주에서 경북(G)·울산(U)·대구(D) 3개 시·도지사가 공동위원장을 맡은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영남권 3개 시·도 유치추진위원회` 개최로 건의문을 채택하는 등 모든 역량을 모아 반드시 유치하기로 했다.유치위는 건의문을 통해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곳에 조성해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역 ◆국가균형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곳에 조속히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유치위는 “우리 지역은 2년여 전부터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조성 계획을 수립해 관계기관에 건의하는 등 과학벨트 조성에 남다른 열의를 보여왔으며, 이제 그 결실을 볼 시기”라고 했다.■ 경북·울산·대구가 왜 최적지인가?경북·울산·대구지역은 세계 유일의 3대 가속기 집적은 기초과학연구에 가장 유리한 조건이며 세계 최고의 노벨상 수상 연구기관인 막스플랑크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 등 기초과학을 연구할 수 있는 국제적 여건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포항 한동대의 국제법률대학원은 미국 변호사 시험에도 다수 합격자를 배출하는 등 국제적 조건이 우수하다고 강조했다.또 기초과학을 실현할 수 있는 산업이 잘 발달돼 있어 과학벨트의 목적 실현과 시너지 효과 창출에 최적의 입지조건으로 과학벨트 조성은 동해안의 원자력 산업육성을 위한 원자력 클러스터 조성에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또한, 3개 시·도에 걸친 국가주력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는 기초과학연구원이 포함된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유치가 반드시 필요하며 기초과학 연구기반, 산업기반, 접근성, 교육·문화 등 정주 여건에서 최적의 입지여건을 지니고 있다. 특히 과학벨트가 국가경쟁력 강화를 도모한다는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취지에 맞고 입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에 의해 공정하게 지정돼야 하며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4분의 3이 수도권과 충청권에 투자되는 현실을 개선해 국가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되도록 추진돼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경북(G)·울산(U)·대구(D) 3개 시도 지역은 포스텍, 울산과기대, 대경과기원 등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의 우수 인력과 연구개발 인프라는 세계적인 인재들이 모일 수 있는 최고의 기초과학 연구개발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실제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수성학군, 포항 지곡지구 등의 교육여건을 비롯해 해외 석학들이 사는 포항 지곡지구 등의 정주 기반, 기초과학을 산업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IT, 신소재, 의료, 생명공학, 나노, 로봇, 자동차, 조선, 철강 등 3개 시·도의 산업기반 등은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가 들어설 가장 좋은 지역으로 입증되고 있다.또 KTX 대구·경주·울산역, 대구국제공항, 울산·포항 공항, 2014년 개통예정인 KTX 포항역과 영남권 신공항 추진 등으로 접근성도 우수하다.또한, 과학벨트 거점지구에 들어설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 입지는 3, 4세대 방사광가속기, 양성자가속기와 함께, 원자력 기반(경주·울진 10기/전국 20기 중)을 활용해 동해안의 `원자력산업클러스터 조성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이에 유치추진위원들은 과학벨트는 산학연이 고루 모인 곳에 입지해 연구개발과 산업화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함으로써 국가경쟁력 제고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며 경북도가 거점지구로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과학벨트 입지선정은 이렇게과학벨트 입지 평가는 국토균형발전을 도외시하고 수도권의 비대화를 조장하는 접근성 지표와 광역시와 일반시를 비교하는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터무니 없는 평가방식은 과학계와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반드시 개선을 촉구했다.또 과학벨트는 SOC 사업과 같이 나눠먹기식으론 성공할 수 없는 만큼 삼각 벨트 구상과 함께 과학계가 경고한 정치논리와 지역이기주의가 야합한 최악의 입지결정은 결단코 반대하고 특별법에 정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선정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다.경북도는 과학벨트가 삼각 벨트라는 정치 벨트로 전환할지 예의주시하고 만일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한 입지선정이 이뤄지지 않고 삼각 벨트라는 정치 벨트로 부상하면 3개 시도가 함께 단호한 대응에 돌입기로 했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1-05-13

포항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효율성 높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민간주도 연구단지인 포항이 정부주도 대덕단지보다 효율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최근 대구은행 대은경제연구소의 DGB 2011년 봄호에 게재된 포항테크노파크 정책연구소장 임원용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정부주도에 의해 조성된 대덕연구단지 보다 민간중심의 협력을 통해 자생적으로 과학 역량을 키워온 포항이 투자 효율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특허청이 지난 1998~2000년까지 지역별 특허동향(1998~2000) 조사자료를 기준으로 특허등록 및 연구개발투자비 현황을 보면 포항의 연구개발투자비는 대전의 19%에 불과하지만, 성과면에서 10만명 당 특허수는 대전의 2배 이상으로 투자효율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특히 포항은 세계 28위 대학(2010년 더타임즈)인 포스텍, 국내 최대의 소재분야 민간종합연구소인 포항산업과학연구원, 국내유일의 포항가속기연구소, 생명공학연구센터, 포항지능로봇연구소,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아태이론물리센터, 포스코기술연구소 등 50여개 이상의 전문연구소와 3천여명의 우수한 연구인력이 포진해 있는 연구개발 거점도시이다.한국과학기술원(KAIST) 러플린 전 총장은 “포항은 작은 도시지만 과학기술 및 인적 인프라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도시이다”고 밝혔고, 피터 풀데 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도 “포항은 산업기반, 정주여건, 연구시설 등이 뛰어나 기초과학연구소 입지로는 최적”이라고 강조했다.또 그는 “무엇보다도 포항은 정부주도에 의한 대덕지역과는 달리 민간중심의 협력을 통해 자생적으로 과학역량을 키워 온 지역으로 내생적 발전의 모범적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또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중요한 성공요인인 `창조성`은 해안지역이 도시 창조성 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포항이 충청권과 비교해 탁월한 지리적 이점이 있다”고 밝혔다. /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5-13

석주 이상룡과 임청각

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지 채 반년이 지나지 않은 1911년 정월 초닷새. 안동의 고성이씨 임청각 종가의 17대 종손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858~1932)은 집안 누정인 군자정(君子亭)의 차디찬 마루바닥에 꼿꼿이 앉아 새벽을 맞았다. 이윽고 동녘으로 한 줄기 여명이 칠흑의 하늘을 가르자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몸을 일으켜 사당으로 향했다. 사당에 오른 석주는 조상의 신위 앞에 엎드려 마지막 인사를 올린 후, 위패를 감실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사당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삽을 들어 땅을 파고 위패를 묻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며 주위 사람들이 만류하였지만, 나라가 망했는데 조상의 위패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내쳤다. 석주가 독립투쟁을 위해 만주로 망명길에 오르던 날 아침을 그려본 삽화이다. 1455년 세조의 찬탈에 분노하여 영산현감(靈山縣監) 자리를 내 던지고 경기도 광주로부터 안동으로 낙향한 고성이씨 12세손 이증(李增: 1419~1480)이 안동 읍성 남문밖에 주거를 마련하고, 뒤이어 그의 셋째 아들 임청각(臨淸閣) 이명에 의해 낙동강변에 처음으로 터가 닦인 고성이씨 임청각 종가의 450여년 역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17대 종손의 손에 의해 그렇게 땅에 묻혔다.일제하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애는 몇 개의 변곡점들로 구성된다. 우선은 위정척사의 보수적인 세계관에 안주해 있던 주자학자로서의 삶이다.구한말 대부분의 유학자들처럼, 젊은 시절 석주 역시 신실한 한 사람의 주자학자로서 당시의 혼란은 유교적 가치가 쇠퇴한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각각 을미사변과 을사늑약으로 촉발된 1895년과 1905년 의병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1907년에는 가야산에 의병기지를 건설하는 일에 아예 발 벗고 나선 것은 그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이었다.그러나 의병기지 건설 활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석주는 명분론에 입각한 주자학적 현실대응 방식의 한계를 절감하고 자강운동이라는 새로운 활동방식에 눈을 떠 계몽운동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일본의 강제병합 야욕이 현실화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주자학적 대응방식의 실패를 인정하고 서양 서적들을 탐독하며 이른바 `신학(新學)`을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나갔다. 이 때 이루어진 신학 연구의 성과는 석주로 하여금 주자학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뒤에 계몽운동의 한계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무장투쟁에 돌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마지막은 1911년 만주로 망명한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매진한 무장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이다. 경술국치로 계몽운동의 한계를 절감한 석주는 대안으로 무장투쟁을 통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선택하고 이를 위해 만주로 망명하였다.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일종의 군사정부에 해당하는 군정서(軍政曙)가 상해임시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여전히 만주에 존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장투쟁을 중시한 석주의 그런 선택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시기 석주는 또한 러시아 혁명을 통해 구체화된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주목하고, 그것을 유학의 대동사회론과 접목시킴으로써 유교적 역사철학에 진보적인 역동성을 부여하기도 하였다.석주의 이와 같은 삶의 변곡점들을 관통하고 있는 정신은 한 마디로 유교를 기본토대로 하되, 만약 시대적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동서와 고금을 불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혁신유림의 자세였다. 그리고 그 혁신이 지향하는 과녁은 나라의 독립이었다. 사당의 위패를 묻고 만주로 떠나기 닷새 전 신정(新正)에 친족들을 불러 송별하는 자리에서 쓴 `나라를 떠나며(去國吟)`라는 제목의 한시 속에도 이 점은 잘 드러나 있다.소중한 산하 삼천리 우리 강토유학의 예법 오백년을 지켜왔네문명이 무엇이길래 노회한 적 끌어 들였나까닭없는 꿈결에 온전한 나라 내동댕이쳐졌네온 대지에 그물 펼쳐진 것 이미 보았거늘어찌 영웅 남아가 죽음을 두려워하랴고향 동산에서 잘 살고 슬퍼하지들 말게나태평성세 훗날 다시 돌아와 함께 살지니그러나 이 시는 허언이 되고 말았다. 나라가 독립한 태평성세 훗날 다시 돌아와 함께 살겠다던 약속은 석주가 1932년 5월12일 중국 길림성 서란현(舒蘭縣)에서 “나라를 다시 찾기 전에는 내 유해를 고국에 싣고 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며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침으로써 지켜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석주가 그렇게 바랐던 조국의 광복은 그로부터도 13년 뒤에야 이루어졌고, 그의 유해가 환국한 것은 그로부터도 또 45년이 더 지난 1990년이었다.석주에게는 외아들 준형(濬衡: 1875~1942)이 있었다. 준형은 부친 사후에 일제의 탄압이 만주국까지 뻗쳐오자 노모를 모시고 고향 안동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도 잠시 1942년 9월2일 67세 되던 생일 아침 일본이 동남아를 함락했다는 소식을 듣자 동맥을 끊어 자결했다. “하루를 사는 것은 하루의 수치를 더하는 것”이라는 유서를 남기고.이후 석주의 집안은 석주 자신을 비롯하여 두 동생과 외아들 그리고 사위, 조카 등 모두 9명이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생을 마쳤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석주의 증손자는 후손을 남기지 못하였다. 그 결과 21대 종손은 부득불 입후(立後: 대를 이을 종손을 양자로 들이는 일)를 통해 대를 이을 수밖에 없었다.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인 일이 없었고 글 동냥을 하지 않았으며 재물이 없어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는 이른바 `삼불차(三不借)`의 유서깊은 고성이씨 임청각 종가의 450여년의 전통이 문중 전체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과정에서 끊기고 만 것이다. 일신과 집안의 화복 이전에 나라와 공동체의 안위를 더 중시했던, 경북 종가문화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보여주는 전범이 아닐 수 없다. 끝/박원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2011-05-13

가볼만한 곳-안동 임청각

일제, 항일의 맥 끊으려 앞마당에 철로 가설 안동시 법흥동 안동댐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임청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년·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선생의 고택이다.이곳은 독립운동을 철저히 탄압한 일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용(用)자 형태의 임청각은 1515년 조선 양반들이 살았던 목조건물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건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성 이씨 집안의 종택이기도 한 이 집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법흥사라는 절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1500년대 초에 99칸의 대저택으로 조성됐으나 일본강점기인 1930년 후반에 중앙선 철도가 집 마당을 가로지르면서 50여칸으로 줄어드는 아픔을 겪었다.안채·사랑채·행랑채와 크고 작은 마당의 배치가 이채롭다. 임청각 현판 글씨는 퇴계 선생의 것이다.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 안엔 이현보·이항복 등의 시 편액이 걸려 있다. 이 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국가원수)을 지낸 석주 이상룡 등 아홉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됐다고 한다. 사당 건물이 있는데 위패를 모시진 않는다임청각 주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벽돌탑인 국보16호 안동 신세동 7층 전탑이 있으며 안동댐과 보조댐 사이의 아름다운 호수를 가로지르는 월영교가 볼만하다.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안동 신세동 7층 전탑은 1천년 넘게 풍상을 견디며 꿋꿋한 자태를 뽐내 왔지만, 일제가 불과 몇 미터 옆에 철길을 내는 바람에 70년 가까이 밤낮으로 소음과 진동에 시달리면서 급격한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벽돌로 된 탑을 전탑이라고 하는데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 전탑을 두고 우리나라 전탑의 시원과 조형미를 보려면 안동으로 가야한다”고 극찬하고 있다.전탑은 석탑과 달리 흙을 구워 벽돌로 만들어서 쌓은 탑을 말하는데, 탑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전탑이 석탑에 비해 그 수가 적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다리중간 팔각정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안동호 속의 조명과 형형색색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대는 물안개 피어오르는 밤의 환상적인 데이트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고택체험과 함께 유교와 전통문화의 고장답게 안동은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관리하고 전시하는 21개의 박물관과 전시관이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특히 유물 없는 박물관으로 국내 첫 디지털박물관인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은 안동문화권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고 문화유산과 전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또 바로 옆에 조성된 웅부공원은 옛 안동대도호부의 수문장 교대의식이 재연돼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안동민속박물관은 유교문화 중에서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인 평생의례와 생활문화인 의식주 생활, 학술과 제도, 수공업, 민간신앙 그리고 안동문화권의 다양한 민속놀이 등을 연출하고 있다.이외에도 안동댐과 해상촬영장, 월영공원, 물박물관, 공예문화전시관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1-05-13

“자연이 살아 숨쉬는 영양으로 놀러 오세요”

`제7회 영양산채한마당` 오는 19~22일 열려 봄이 절정에 오른 5월엔 자연도 사람도 기지개를 켠다.나른해지기 쉬운 봄날, 일상을 탈출하고 싶다면 싱그러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영양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자연이 키워낸 산나물을 뜯고 맛보고 배우는 `제7회 영양산채한마당`이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영양군청 일원 및 영양재래시장과 일월산 등지에서 펼쳐진다.축제 참가 관광버스 임차보조금 지급… 해마다 방문자 수 늘어국가 산채클러스터 산업으로 발전 일자리창출·소득증대 기여할 것◇영양산채한마당 축제매년 5월 열리는 영양산채한마당 기간에는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 30만여명이 영양을 찾는다.지난 2008년부터 영양군축제추진위원회는 전국에서 가장 오지인 지역의 접근성을 극복하기 위해 축제 참가 관광버스에 대한 임차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해마다 축제기간 동안 영양군을 방문하는 방문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올해는 틈새상품으로 관광버스에 대한 임차보조금 신청이 이미 150대를 넘었다. 유교문화대축전과 자율적으로 오는 관광버스를 합하면 500여대가 넘을 것으로 예상돼 축제추진위원회는 각종 산나물확보와 식당친절 및 청결교육 등 손님맞이 준비에 소매를 걷어 붙였다.영양군축제추진위원회 오종태 위원장은 “차량보조금 지급에 6천여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영양홍보 효과와 영양산나물 및 특산품 구입, 식사비용 등을 합산하면 군으로는 몇 십배의 소득을 올릴 뿐만 아니라 각종 경제유발효과로 인해 지역경제도 큰 보탬이 된다”고 설명했다.권영택 영양군수는 “영양산채한마당축제는 백두대간, 낙동정맥에 식생하는 풍부한 산채자원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한식재료의 개발 및 86%가 산림인 영양군 산채를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국가 산채클러스터 산업으로 발전시켜 농촌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주민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역에 맞는 문화력이 지역 경제와 주민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지역 문화를 중심으로 영양군의 모든 것을 브랜드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영양 산채는 옛날 보릿고개 구황식량으로 주린배를 채우고 약용으로 대용했다. 현재는 웰빙 건강식품으로 고기보다 귀한 식 재료로 이용되는 동시에 현대 의약품 개발연구로도 각광받고 있다.영양군은 경북도 지정축제인 `영양산채한마당축제`를 우리나라의 대표축제로 육성해 살맛나는 영양을 만들기 위한 희망에너지로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특히 이번 `제7회 영양산채한마당`에서는 청정지역인 영양군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기 위해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산나물 채취체험과 산채를 이용해 만든 다양한 시식과 메인무대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영양의 문화·예술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또 조지훈 시인, 이문열 작가를 배출한 문인의 고장답게 영양의 전통과 현대문화가 고루 갖춰진 문화,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문학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문향의 고장 영양을 선보일 계획이다.또 축제장의 형태를 기존 1자형에서 아담한 ㅁ자형 형태로 변화를 줘 즐기면서 관람하는 집중형 공간으로 조성, 자칫 분산되기 쉬운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의처 054-683-7300, www. yyg.go.kr)◇미리가보는 영양산채한마당 축제 현장△일월산 산나물해발 1천219m의 경북 최고봉인 일월산은 산 높이만큼이나 많은 산나물이 있다. 참나물, 고사리, 곰취, 개미취, 단풍취, 병풍대, 수리취, 어수리, 두릅, 박쥐나물 등 그 종류를 헤아리기에도 숨이 찰 정도다. 일월산의 산나물은 미네랄과 비타민, 섬유소 등 영양소가 많이 함유돼 있어 자연의 보양식인 웰빙음식으로 지친 현대인들의 기를 북돋워 주는데 더없이 좋은 음식이다.△일월산에서 웰빙 산나물을 뜯고, 맛보고, 배우자영산 일원산에서 전문가들의 안내를 받으며 산나물을 채취한다. 산나물에 대한 정보도 얻고, 봄나들이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또 축제장내에 있는 영양 명품장터 한마당에서 산채와 고추, 사과 등 지역특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덤으로 청정 산채를 이용해 만든 다양한 산채요리도 마음껏 시식할 수 있다.△조선시대 양반가 음식을 복원한 전통한식 전시 및 시식정부인 장씨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요리서의 전통음식 조리법을 담은 `음식디미방`의 요리를 재현한 웰빙식단을 선보인다. 음식디미방의 요리는 전통요리 기법인 삶거나 오랜 시간 중탕을 하는 등 몸에 좋은 조리법이 많아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며 개운한 맛이 특징이다.△문화 예술공연행사개막 축하공연에는 배일호, 송대관, 한혜진 등 가수 10여명이 영양의 저녁 밤을 잠시나마 밝혀준다. 경북도립국악단과 퓨전현악, 향민 가수, 웃찾사 3MC가 진행하는 `웃음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음악이 있는 밤`, 서커스 공연 등이 마련된다. 영양군민으로 구성돼 있는 영양의 특성을 살린 원놀음 공연, 영양고유가락 연구회의 고유가락 공연, 해달뫼 풍물패 공연도 마련돼 있다.△막걸리 양조장 체험100년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양양조장에서 직접 막걸리를 시음하는 기회도 특별하다. 양조장 한쪽에는 추억의 교실을 재현해 옛 향수를 느낄 수 있고 양조장 견학 코스도 마련된다.△1천219 일월산 산나물 비빔밥 만들기와 연예인 축구단 초청경기경북 최고봉인 일월산(해발 1천219m)을 상징하는 1천219인분의 산나물 비빔밥을 만들어 관람객들과 나눠 먹는 이벤트를 실시한다. 밝고 재미있는 축제 분위기를 선사하기 위해 조영구, 윤택, 김명덕 등으로 구성된 연예인 축구단 초청경기 및 사인회가 열린다.△다함께 즐기자개그맨 현병수·김용현·황영조 등이 진행하는 영양 산나물 깜짝 경매, 영양산 나물 OX퀴즈와 도전 영양 산나물 올림픽 등 참여행사가 마련돼 축제장내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산채 떡메치기, 거리의 화가 분필아트 캔버스, 천연 염색체험, 산나물 향첩·포토머그컵·산채비누 만들기, 문학탁본 체험 등 다양하고 색다른 체험마당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영양/장유수기자 jang7775@kbmaeil.com

2011-05-13

IT 개발 인력인프라 확보로 100억대 매출 노린다

포항테크노파크 입주기업 탐방10(주)유누스 국내 모바일 시장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등장한 ㈜유누스(대표이사 황성욱)가 포항테크노파크에 기술연구소를 개설하고 신 성장동력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유누스는 IT 전반적인 양질의 개발 인력인프라 확보를 통해 올 매출 100억원대의 급성장을 노리는 중견 IT기업이다. 유누스를 찾아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2010년 설립… 직원 90명 스마트 모바일 시대 열기 `안간힘`첫해 23종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개발로 26억 매출 올려◇설립 배경기존 통신사 주도의 시장 환경에서 새로운 모바일 시장의 패러다임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 국내 스마트 모바일 개발사업의 전문회사인 유누스는 2010년 3월6일 서울 역삼동에서 `㈜티젠`이란 사명으로 설립됐다. 이후 1년간의 성장과 동종 전문기업인 `유비즈컴`의 합병 과정을 거쳐 올 3월 사명을 유누스로 변경해 새롭게 시작했다. 현재 정규 직원 90여명이 밤낮으로 일하며 스마트 모바일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성장 과정통신사와 함께 해온 지난 10년 이상의 경험과 자원을 바탕으로 설립된 ㈜유누스는 스마트폰 빅뱅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모바일 서비스 기획력과 우수한 개발력을 갖추고 있으며, △모바일 단말 어플리케이션(스마트폰 앱) 개발 △모바일웹 서비스 개발 △모바일 인프라솔루션 구축 등 고객의 커뮤니케이션 수요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양질의 리소스를 갖추고 있다. 작년 3월 설립 후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보급에 힘입어 회사의 주력을 스마트폰앱 개발 분야로 정한 전략이 주요해 2010년에만 23종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등 설립 첫해 매출 26억이란 의미있는 성과를 올렸다. 회사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이외에도 모바일 싸이월드, Nate 모바일 판, KT의 모바일 Olleh 사이트 구축 등 모바일 웹사이트 구축에도 탁월한 기술력을 보유, KT Smart Working Center, K-WAC(Korea Wholesale Application Community)의 기반 인프라 플랫폼 개발에 참여하는 등 모바일 서비스 플랫폼 구축력도 갖고 있다.◇제품·기술△스마트폰 앱 서비스 : 유누스가 보유한 각종 서비스와 솔루션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대표작은 `대한민국 구석구석`이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서비스. iPhone 버전과 Android 버전으로 지난 2월 출시된 이 앱은 현재 130만건을 상회하는 다운로드 실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모바일 앱어워드 으뜸앱`으로 선정됐다. ㈜유누스의 핵심 기술자들이 대거 투입된 이 서비스를 기반으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대표 개발사로 자리매김했으며, 이 외 `Olleh 콕!콕!`, `Olleh 스팸 문자 차단` 등의 다운로드 100만건에 이르는 앱 서비스를 다수 출시했다. 여기서 축적된 기획력과 개발력을 바탕으로 2011년에는 다양한 분야의 독자적인 앱 서비스를 선보여 유누스의 대고객 브랜드 가치를 높힐 예정이다.△SNS 서비스 : SNS(Social Network Service) 분야의 대표작으로 Twitter와 같은 실시간 메시징 SNS인 `와글(Wagle)` 서비스와 위치 기반 SNS인 `플레이스북(Placebook)` 서비스다. 이 두 서비스는 LGU+를 통해 2011년 3월에 론칭됐으며, 현재 폭발적인 회원 가입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해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뿐만 아니라 실시간 대용량 메시지 교환과 커뮤니케이션 기능 구현을 위한 SNS 서버 플랫폼까지 개발하여 자사의 독자적인 기술로 솔루션화에 성공했다.△기업형 SNS 솔루션 : 솔루션 분야에서 이 회사의 대표작은 `기업형 커뮤니케이션 및 협업 서비스 솔루션(가칭 u-FNS: UNUS Family Network Service)`이다. 이 솔루션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인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응용 서비스로 기업과 가족, 동호회 등의 폐쇄형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필요한 조직들에 맞는 그룹형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이 가능한 솔루션이다. 이러한 솔루션 기술을 통해 기업 기술 평가에서 우수한 평점을 받았으며, 정부의 지원으로 솔루션을 상용화하는 등 2011년에 독자적인 서비스 솔루션으로 제품화를 추진한다.△앱스토어 마켓 플랫폼 : 스마트폰 돌풍의 일등 공신은 `앱`이라고 불리우는 단말용 어플리케이션. 앱들은 각 스마트폰에서 `앱스토어` 혹은 `마켓`이라는 앱 전용 오픈 마켓을 이용해 구매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통사, 단말제조사 등 다양한 벤더에서 자체적인 앱스토어 마켓을 구축해 고객에게 선보이는 추세이다. ㈜유누스는 KT의 오픈 앱스토어인 `Olleh 마켓` 구축에 참여해 핵심 인프라 시스템을 개발했다. 또한 K-WAC 플랫폼 구축에도 참여해 앱스토어 구축에 대한 기술력을 확보해 이통사 이외에도 자체 스토어를 갖고 싶어하는 여러 고객들에게 관련 플랫폼 구축 기술력을 제공하고 있다.◇ITM 연구소2011년 4월14일, 포항테크노파크 본부동 3층에 ㈜유누스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ITM 연구소가 설립됐다. 연구소는 향후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후 IT기술을 예측 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아이템 및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서비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직원들의 역량강화를 하기 위해 내부 RD 서비스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향후 계획유누스는 ITM 연구소를 통해 현재의 사업역량을 강화하고 미래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모바일 IT를 적용한 의료서비스, 그린IT, 비즈니스솔루션 등 응용소프트웨어 솔루션개발에 역량을 집중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본사에서는 중장기 비전 및 로드맵을 갖고 RD부분에 지속적 투자를 할 것이며, 연구소는 IT분야에 열정을 가진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육성해 RD과제개발 및 실행형 연구개발을 통해 성과를 창출 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대학생·대학원생들의 기업가 정신을 장려해 사업화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사업화를 지원할 계획도 갖고 있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5-13

황성욱 대표이사 인터뷰

“포항연구소를 포항지사로 운영”“자체 사업 가능 구조 개편계획” - 유누스란 의미는.△`유누스(UNUS)`는 라틴어로 숫자 `1`, `One`을 뜻한다. 유일한·`Original`이란 뜻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 듯 창조적이고 혼신을 다해 우리의 것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의 정성을 담아 훌륭하고 유일한 것을 만들겠다`란 의미로 기본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해 고객들을 위해 노력하자는 경영 철학을 담고 있다.- 회사의 경영 방침은.△유누스의 슬로건은 `The Invisible Communications`. 일반적 커뮤니케이션은 찾고 누르고 주고받는 복잡한 기술 등 수단만 제공하는 것이지만, 회사 구성원들이 만든 커뮤니케이션을 통하면 수단 뿐만 아니라 그 과정들 속에서 의미까지 전달되고 느껴지는 것들을 포함해 만든다는 뜻이다. 기술은 항상 새로워지고 첨단 소프트웨어는 곧 구식이 되지만 이것들을 통해 전달되는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회사 구성원들은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도 신경써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도를 선사하는 것을 경영 방침으로 하고 있다.- 포항에 연구소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포항 출신인 손현곤 부사장과 회사의 향후 성장 동력에 대해 고민하던 중 포항의 우수한 인적·물적 인프라를 활용한 방법을 모색했다. 손 부사장의 포항고 동기인 포스텍 출신의 이대호 이사를 영입해 유누스 ITM 연구소의 근간을 마련하게 됐다.- 지역 사회 공헌 계획은.△유누스는 과거 중앙의 통신사와 서비스 및 솔루션 사업을 함께 한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경북과 포항에 특화된 여러 스마트 모바일 사업을 계획 중에 있다. 포항연구소는 향후 유누스 포항 지사로 운영함으로써 자체 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로 확대·개편할 계획이다. 특히 회사가 그동안 쌓아놓은 노하우와 기술력을 지역사회에 특화된 서비스 및 솔루션으로 공급해 지역의 스마트 모바일 분야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 할 생각이다. 한편 본사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전체 사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를 하는 모습을 타 사업자들에게 보임으로써 지역 연구소 활용이 사업 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되는지를 널리 알리고 싶다.- 유누스를 지원하고 싶은 인재들에게 한마디.△지금은 지역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꿈과 목표를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는 시대다. 반드시 중앙의 업무 및 사업경험 만이 IT분야의 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 창의적인 생각과 성실한 태도를 가진 젊은 도전자들은 유누스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회사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 유누스는 야망을 꿈꾸는 도전자들에겐 새로운 기회의 땅이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5-13

영양남씨 4백년 세거지 괴시마을

상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 사랑채, 하괴시마을 안길1975년 겨울, 혼자 동해안을 따라 걸어 내려오다 해질녘에 다다른 곳이 괴시마을(濠池村, 호지마을)이었다. 넓은 평야를 안고 뒤 산세가 마을을 감싼 `入`자 형국의 30여호 남짓한 고을이었다. 당시 대학원 졸업논문자료 수집 차 민가 조사를 나선 때였다. 괴시마을은 이렇게 필자와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마을을 힁허케 먼저 둘러보고 고택 담장 넘어 굴뚝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마을 중앙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口`자형 정침과 우측에 사당이 보이는 고택 사랑방 앞에 서서 하룻밤 유하기를 청해 보았다. 잠시 뒤 사랑방 띠살문이 열리면서 문지방에 허리춤을 기댄 채 곰방대를 문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 고개를 내밀면서 “추운데 얼른 안으로 들라”하셨다.해질녘의 바닷바람은 몹시 차가웠다. 얼른 쪽마루아래 큼지막한 디딤돌에 신발을 벗어놓고 사랑방에 올라 어르신께 넙죽 큰절부터 올리고 사연을 고하니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사랑방 뒷문을 열고 큰소리로 외치셨다. “아가 작은 사랑에 군불 넣고 손님 상차리거레이” 하시며 하룻밤 유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밥그릇보다 훨씬 높게 퍼 담은 대두밥으로 석식을 마치니 어르신은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슬슬 풀어놓기 시작하셨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양남씨 시조의 도래설이었다.신라 경덕왕 14년(755) 당나라 헌종의 봉명사신(奉命使臣,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외국으로 가던 사신)으로 하남성 봉양부 여남 사람 김충(忠)이 일본에 안렴사(按廉使, 지방장관)로 갔다가 소임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신라 땅 영덕 축산항 죽도(竹島)에 표착하였다고 한다. 당시 당나라는 안사의 난(755~763)으로 나라가 어수선한 상태였고 표착지 축산항은 바다와 경치가 좋고 인심이 유덕하여 신라 경덕왕에게 이곳에 살게 해주기를 청하여 이를 당나라 천자(天子, 헌종)에게 알리고 이곳에 사는 것을 허락받은 후, 신라 경덕왕이 사성(賜姓, 임금이 공신에게 성을 지어주는 일)하기를 남쪽에서 왔고 본고향이 여남이라 남씨(南氏)로 하였다고 한다. 아직도 어르신의 얘기가 귓가에 생생하다. 그 집이 바로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경북민속자료 제75호)`이었다.괴시마을은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松川) 주위에 늪이 많고 마을 북쪽에 호지(濠池 호수)가 있어 호지촌이라 부르다가 고려말 목은 이색선생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중국 구양박사방(歐陽博士坊)의 괴시마을과 자신이 태어난 호지촌의 아름다운 풍경이 비슷해 귀국 후 괴시(槐市)라 고쳐 지었다고 전한다. 마을 안을 가로지르는 토담길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口자`형 평면의 전통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어 경북 동해안에 또 하나의 가볼만한 반촌의 모습을 지닌 곳으로 생각한다./영남이공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2011-05-12

아름다운 우정은 네가 먼저 가지는 것

죽마고우(竹馬故友) 같이 대나무말을 타고 놀던 어린 시절의 벗. 곧 소꿉동무나 오랜 친구를 일컫는 말이다. `세설신어(世設新語) 품조(品藻)`편 `진서(晉書)은호전(殷浩傳)`등에 전한다.진(晉)나라 간문제(簡文帝) 때 환온(桓溫)과 은호(殷浩)라는 인물이 있었다. 환온은 일찍이 세상에 나아가 이름을 내고 있었고, 은호는 은사(隱士)로서 자처하고 있었다. 당시 촉(蜀)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은호를 양주자사(楊州刺史)에 임명했다. 은호는 마침 환온의 어릴 때 친구로서 학식과 재능을 겸비한 인재였기 때문이었다.그러나 환온을 견제하기 위한 간문제의 포석으로 은호가 벼슬길에 오르자 당장에 두 사람은 정적(政敵)이 돼 서로 질시하기 시작했다. 왕희지가 안타깝게 여겨 둘을 화해시키려고 했지만 오히려 은호가 듣지 않았다.그러던 차에,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인 후조에서 왕이 죽자 내분이 일어났다. 진나라에서는 중원 땅을 회복할 기회라고 여겨 은호를 중원 장군에 임명해 군사를 출동시켰는데, 은호는 출발지에서부터 말에서 떨어지는 일을 겪고는 결국 싸움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참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즉시 은호를 규탄하는 소를 올려 그를 서인으로 떨어뜨리고는 변방으로 귀양보내고 말았다.은호가 귀양간 후,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은호는 어려서 나와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였는데, 내가 싫증이 나서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지고 가곤 했다. 그러니 그가 내 밑에 앉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오늘날 죽마고우라 하면 어렸을 적부터의 친근한 벗을 말하지만, 여기에는 뜻밖에는 이같이 우정을 배신하는 서글픈 이야기가 관련되어 전하는 것이다.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치게 되는데, 그의 사람됨을 단편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전한다.귀양지에서 은호는 절대은 푸념이나 원망을 하지 않은 채 온종일 하늘을 바라보며 `돌돌괴사`라고 손가락으로 쓰곤 했다. 후에 환온이 은호를 상서령으로 삼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는데, 은호는 기꺼이 승낙하는 답장을 썼다. 그리고는 틀림없이 하느라고 수십 번이나 답장을 봉투에 넣었다 뺏다 하며 보다가 급기야는 넣는 것을 잊어버리고 빈 봉투만을 환온에게 보냈다. 빈 봉투를 받은 환온은 화가 나서 다시는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으며, 이로써 결국 은호는 배소에서 죽고 만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많다.상대를 원망하지 않는 은호의 우정이 가슴에 새기고 싶다 아름다운 우정은 네가 먼저 가지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5-11

꽃을 그리는 화가, 그리고 꽃의 일생

어느덧 완연한 봄이다.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너무 반가워 내 작업실 창가에 둘 꽃화분 몇 개를 샀다. 작업실 창문을 열고 꽃에 물을 주다 보니 환한 햇살이 나를 반긴다. 나는 `꽃`을 그리는 화가다. 그 아름다움이 내 마음을 끌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꽃의 일생이라 생각된다. 봄 한 철 꽃을 피우기 위해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날씨가 따뜻해지자마자 온 생을 걸어 꽃을 피워 올리는 그 짧지만 아름다운 생. 나의 삶 역시 꽃을 닮아가려는 과정의 연속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올 봄에 나는 개인전을 열어 캔버스 위에 꽃을 피워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내 그림을 감상하며 행복해했다. 돌이켜보면 거의 봄에 개인전을 열었는 것 같다. 봄은 내가 꽃을 피우는 계절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겨울은 개인전 준비를 위해 어느 때보다 치열한 날들이었다. 유화물감이 잘 마르지 않아 바닥에 그림을 늘어놓고 하루 종일 작업하던 날들이 떠오른다. 봄에 싹을 틔우기 위해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나무처럼 나는 새로운 작품을 내놓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것이다. 엄살 부리듯 썼지만 이는 모든 화가들이 겪는 인고(忍苦)의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의 그림, 그리고 나의 그림에서 꽃향기만큼이나 향기로운 삶의 향기를 느낀다. 꽃을 그리건 그리지 않건, 하나하나의 작품 모두가 그들이 피워올린 꽃으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다시 캔버스 앞에 앉아 새로운 계절을 위한 씨앗을 뿌릴 준비를 한다. 봄꽃은 한철 피고 지지만 아직 내 꽃은 지지 않았다. 문득 불어온 봄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를 맡으며, 내 작품의 향기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영원히 보는 이의 마음에 가 닿기를 소망해본다.♠ 서양화가 김외란- 계명대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8회 개최- 신라미술대전 우수상, 구상전, 미술세계, 목우회 등 공모전 20여회 특·입선- 오만가지 미술상상전(문예회관), 구상회화제, 영호남 교류전, 한미교류전- 한국미술협회, 구상전(具象展), 청백여류화가회, 대구구상작가회, 대구수성미술가협회 회원 및 신라미술대전 추천작가

2011-05-10

경북 해양문화 속 人·生·길 <10> 낡은 국수들이 부르는 노래 ②

국수를 널면서 할머니는 바람을 살핀다. 반죽 보다 바람에 더 민감한 것이 국수다. 바람이 많이 불면 촘촘하게 널고 바람이 잔잔하면 간격을 조금 넓혀 넌다. 반죽 실패는 드물지만 바람에 의한 실패는 지금도 간혹 생긴다. 갈바람이 불면 국수는 이내 바삭바삭해져 버린다. 너무 빨리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갈바람과 하늬바람이 섞여 오면 눈으로는 차이가 없어 보여도 삶았을 때 동강이 많이 난다. 햇볕에 말리는 국수는 뭐니 뭐니 해도 샛바람이 최고다. 할머니는 대보에서 구룡포쪽으로 불어오는 샛바람, 바다에서 불어오는 갈바람, 산에서 내려오는 하늬바람을 몸과 마음으로 감지한다. 국수 가락이 바람에 살짝 말라 빠닥빠닥해 지면 일단 걷어야 한다. 창고에 보관 했다가 다음날 오전에 한 번 더 말린 뒤 재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단에 필요한 도구는 간단하다. 약 25cm 간격으로 다섯 개의 쇠기둥이 양쪽에 선 재단틀과 손잡이가 양쪽에 달린 큰 칼, 그리고 매무새를 정리하기 위한 사각 나무판이 전부다. 건조장 바닥을 깨끗하게 쓸고 닦은 뒤 풀 먹인 듯 잘 마른 국수를 한 줄씩 걷어 틀에다 올리고 먼저 양끝을 자른다. 그리고는 쇠기둥을 기점 삼아 다시 세 등분으로 자른다. 큰 다발이 흩어지지 않도록 질긴 종이로 띠를 둘러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부러져 바닥에 떨어진 국수 가락은 하나하나 주워 따로 담는다. 세 종류의 국수를 모두 걷어 재단 작업을 하다보면 하루는 참으로 급히 저문다. 아들들이 제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는 다시 주말이 올 때까지 탁자에 앉아 큰 다발을 풀어 작은 다발을 만들고 상자에 차곡차곡 담으며 간간이 장사를 한다.제일국수공장 오래된 국수틀은 롤러가 세 개인데 요즘 나오는 기계는 큰 롤러가 여섯 개다. 손을 안 써도 자동으로 감기고 순서대로 알아서 척척 옮겨간다. 게다가 한 시간에 서른 포대나 국수를 빼는 기가 막힌 실력을 가졌다. 손도 모자라고 힘도 들어 그것으로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가격이 엄청나다. 게다가 기계의 크기도 제일국수공장 규모로는 감당할 수 없다. 아들들은 고생하지 말고 땅을 좀 사서 조립식 창고를 지어 인부도 좀 고용하고 건조도 열풍으로 쉽게 하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그럴 생각이 없다. 돈도 돈이지만 큰 공장에서 만드는 국수가 하나도 부럽지 않기 때문이다. 큰 공장에서는 거대한 롤러로 밀기 때문에 색깔은 희고 매끈해 보인다. 그러나 선풍기나 열풍으로 건조를 시키므로 한 번 삶아 건져 놓았다가 다시 손님들에게 데워 낼 때는 떡떡 붙어서 잘 풀리지 않는다. 비가 다녀가고 눈이 다녀가 까다롭긴 해도 하늘이 베푸는 자연풍만큼 국수 맛을 옳게 내는 것은 없다는 걸 할머니는 잘 안다.“오래 전 우동집들은 손으로 쳐서 면을 만들었어. 고등학교 중학교 졸업식날 짜장면 손님이 몰려오면 감당할 수 없어 우리 공장에 우동 국수를 주문하기도 했지. 물 한 양동이 달라해서 주면 그 물에 하얀 것을 넣어주며 그걸로 반죽을 해달라고 하데. 그 물을 손으로 만지면 매끈매끈 했어. 그게 뭔지 모르지만 우동 국수를 빼면 색깔이 노르스름하고 삶아 놓으면 유난스레 쫄깃쫄깃 했지.”예전에는 날마다 국수를 만들었다. 하루에 40포대나 되는 밀가루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주말에만 약 30포대 정도로 국수를 만든다. 일손이 없는 이유도 있지만 국수 소비 역시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예식장이고 장례식장이고 쉽고 편하게 음식을 주문하는데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에 궁색하지 않은 시절이다. 슈퍼에 가면 갖가지 국수가 다 있는데도 아직 국수 삶아 파는 집에서는 제일국수공장 국수를 찾는다. 구룡포초등학교 앞 찐빵과 단팥죽으로 유명한 철규분식도 황외과 앞 할매국수집도 수십 년 단골이다. 장사하는 이들에겐 이윤을 남기라고 일반 국수보다 양을 조금 더 담는다. 요즘은 장기면에서 산딸기축제를 할 때 특산품 홍보를 위해 산딸기 즙을 가져와서 국수를 빼달라고도 하고, 또 콩이 몸에 좋으니 콩가루를 섞어서 콩국수를 해달라고 주문하는 식당도 있다.장터에 세집이 나란히 앉아 국수를 만들던 시절도 옛말이다. 대보국수공장은 아저씨가 돌아가시자 일을 접고 포항 시내로 이사 나갔고 오천국수공장은 떡집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연일에도 셋이 합동으로 차린 국수공장이 있었는데 오래 전 큰 비에 그만 문을 닫았고, 오천에도 포항에도 이젠 가내 수공업으로 국수를 만드는 공장이 없다. 국수공장을 지나면서 봄 햇빛에 국수 마르는 냄새를 킁킁 맡던 기억도, 고운 국수 가락 몰래 끊어 똑똑 분질러 먹던 추억도 사라졌다.“지금 걸린 간판 나이가 마흔한 살이야. 개업할 때 우체국장이 직접 나무판에 써서 걸어주었지. 그 양반은 혼자서도 국수를 자주 끓여 먹곤 했어. 글쎄 포르르 끓어오를 때 찬물을 솔솔 뿌리고 또 끓으면 찬물을 뿌려가며 잘도 끓였지. 우리집 국수를 유난히 좋아하던 그 양반도 돌아가셨다.”할머니는 국수가 한없이 기특하다. 이 가느다란 것에 묶여 세상 구경 한 번 옳게 못하고 살았지만, 아이들을 다 가르치고 시집 장가보내고 집도 사주게 했다. 국수를 만들며 시름을 건너왔고 국수를 주고받으며 이웃과 정분을 쌓았다. 그러나 이렇게 국수 가락 쥐고 노는 재미도 언젠가 힘이 달리면 그만 둬야 한다. 거친 손끝에서 뽀얗게 묶이는 국수 다발이 서서히 저무는 장터를 보고 있다. 탈칵탈칵 제일국수공장 국수틀 돌아가는 소리, 샛바람이 불면 좋아라 국수 가락 마르는 소리, 언제까지 그 노래 들을 수 있을까?

2011-05-09

인터뷰-강대일 에이펙셀(주) 상무

“신기술로 제조혁명 이끌어 나노 강국 도약 선도할 것” 천연 건식나노 분쇄장비 기술개발로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에이펙셀㈜ 강대일 상무를 만나봤다.- 천연 건식나노 분쇄 장비를 쉽게 설명한다면.◆미국, 중국, 한국발명특허를 획득해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으로부터 EM마크(우수품질인정)를 획득한 장치가 천연 건식나노 분쇄 장비다. 전 세계에서 에이펙셀만이 개발해 여러 대를 보유하고 있는 기계장치로 각종 소재가 지닌 특성을 파괴하거나 손상시키지 않고 원하는 범위의 나노입자로 제조할 수 있는 장치로 설명할 수도 있다. 특히 의약품, 화장품, 녹차, 인삼, 누에, 딸기 등 천연재료 고유의 맛과 향, 색상 등 각종 영양소 등을 손상시키지 않고 나노입자로 만들 수 있다.- 나노기술의 향후 전망은.◆나노는 모든 산업분야에 제조혁명을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분야에서 기존 제품의 품질향상은 물론 신소재창출, 고기능성 효율 극대화가 이뤄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선진국들이 나노에 대한 관심을 갖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나노 산업시장은 미국이 전 세계시장의 50%, 일본이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은 일본의 절반 수준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 나노산업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에이펙셀㈜ 나노기술이 국내에 미칠 영향은.◆에이펙셀은 세계 각국의 기술보다 앞선 10여년 전 이미 나노의 가능성을 연구·투자해 왔으며, 세계 최초로 건식나노분쇄기술이라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나노 강국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는 수준이며, 지금까지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30~1천 나노의 영역을 무너뜨려 제조입자의 범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제조입자 범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식물, 곡물, 세라믹, 금, 은, 구리 등 모든 소재의 나노화가 가능해진다. 이는 획기적인 신제품 개발과 연결돼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윤경보기자 kbyoon@kbmaeil.com

2011-05-09

천연나노 소재 전문생산기업-에이펙셀(주)

포항의 한 중소기업이 천연 건식 나노분쇄, 복·융합기술을 개발해 관심을 끌고 있다.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리에 위치한 에이펙셀㈜은 천연 건식 나노 분쇄 기술과 복·융합기술 개발로 국내 관련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나노를 이용한 각종 제품 생산과 신기술 장비를 개발, 업계에 `스타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에이펙셀㈜을 찾아 신기술 개발의 노하우를 조명했다.△21세기는 나노의 시대21세기 들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나노기술. 나노란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로, 난쟁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따온 말이다.1나노미터(nm)는 머리카락 굵기의 8만분의 1 크기이며, 나노기술은 보통 100만분의 1 크기인 마이크로 수준을 넘어선 초미세 극한 기술을 말한다.에이펙셀㈜가 개발한 천연건식나노기술은 세계최고 기술로 객관적(과학기술재판)으로 인정받은 기술로 향후 이 기술로 인해 전자, 반도체, 항공우주산업, 철강, 의약품, 농수축산, 식품, 에너지 산업 등 다양한 산업 전반에 걸쳐 또 다른 원천기술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특히 킬러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은 아스팔트, 라이트형제의 비행기, 증기기관, 휴대폰, TV 등 기존 제조기술을 뛰어 넘는 것으로 에이펙셀이 지난 15년 동안 축적한 기술로 킬러애플리케이션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에이펙셀의 기술력에이펙셀이 천연건식나노분쇄기술을 토대로 그동안 치료가 어려웠던 골다공증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 건강기능식품으로 시판하고 있다. 또 난소를 제거해 인위적으로 골다공증을 발병하게 한 암컷 흰쥐를 통한 동물실험에서 비교군들은 개선이 되지 않고 있지만 에이펙셀의 칼슘을 먹인 군은 정상으로 골밀도가 복구돼 Sci급 국제논문에 게재되기도 했으며, 임상실험을 위해 한국에서 수십명, 미국병원에서 100여명의 골다공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골밀도 시험을 실시한 결과 크게 골밀도가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이 밖에도 누에, 인삼, 쌀 등 한국토종농수산자원에 대해서도 부가가치를 극대화해 부자 농어촌 만들기에 앞장설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오는 17일께 도비도 간척지(당진 인근) 쌀 과학화 시범단지에 한국 쌀 생산의 38%를 상당을 차지하고 있는 ㈔쌀전업농중앙연합회와 한국농어촌공사가 주최·주관하고 농림부 한국음식업 중앙연합회 미주식품주류 등이 후원해 모심기 행사를 할 예정이다.에이펙셀 첨단 나노기술은 벼(왕겨, 쌀겨, 현미)와 접목해 가공 부가가치를 기존 쌀의 10배에서 400만배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자체 전망하고 있다.△나노 신소재 가치창조에이펙셀은 각종 소재에 대해 수탁나노임가공을 하고 있다. 세라믹류를 포함한 농수산물, 비철금속, 화합물, 의약품, 화장품 등을 비롯해 칼리토너, 잉크재료, 필러 등 각종 산업용 소재 나노화를 실현하고 있다.이밖에도 전자, 반도체, 생명공학, 에너지, 환경 등 모근 산업분야에서 천연나노소재의 활용은 기존 제조기술의 한계를 극복한 신산업혁명의 원동력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은 기업의 국제 경쟁력 우위권 확보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에이펙셀은 또한 철강슬래그를 이용한 모레제조방법 및 장치, 고 미분말 분쇄기(나노분쇄기), 인화성이 높은 기체 디젤연료를 사용하는 디젤엔진, 규산질비료제조 특허 등 나노와 관련한 다수의 발명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대한민국 특허 기술대전 국무총리 금상, 대한민국 특허기술대전 은상, 장영실과학기술대상, 세계여성기업발명대회 금상 수상 등과 함께 경상북도 특허 스타기업으로 지정되는 등 그 기술력은 이미 검증이 된 상태다./윤경보기자 kbyoon@kbmaeil.com■ 에이펙셀㈜ 연혁 및 보유특허◇연혁2009. 07. ISO 9001 인증획득2009. 04. 경상북도 특허 스타기업 지정(특허청, 경상북도, 포항상공회의소)2009. 01. 나노테크월드㈜를 에이펙셀㈜로법인명 변경2008. 06. 수출유망중소기업 지정2008. 05. 제1회 세계여성기업발명대회금상수상.2006. 12. ISO 14001 인증획득2006. 11.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선정2006. 04. 장영실 과학기술大賞수상2005. 05. 발명의날 한국 발명진흥회장상 수상2005. 04. 포항공대 창업보육센터 졸업 및서울사무소 개설2005. 02. 나노테크월드㈜로 법인명 변경2004. 12. 대한민국 특허 기술대전 은상수상.2004. 07. 수출유망 중소기업 지정2003. 09. 건식나노분쇄기 우수품질인증EM마크 획득(산자부 기술표준원)2001. 08. 슬래그 첨단 신소재 및건식나노분쇄 플랜트 완공2001. 03. ㈜테크월드로 법인명 변경1998. 03. ㈜천유엔지니어링 설립◇보유특허1. 발명특허 - 철강슬래그를 이용한모래제조 방법 및 그 장치2. 발명특허 - 고 미분말 분쇄기(나노분쇄기)[미국, 중국, 한국]3. 발명특허 - 인화성이 높은 기체디젤연료를 사용하는 디젤엔진4. 기타 발명특허 다수

2011-05-09

대구 재발견- 비슬산

오는 2014년 달성군이 출범 100주년을 맞는다.1914년 3월1일 출범 당시 달성군은 군청사를 현재 대구백화점 자리에 두고 대구부를 제외한 현재 대구광역시 대부분을 차지하는 16개면을 관할했을 만큼 대구시의 전신이다.대구테크노폴리스와 디지스트, 비슬산 참꽃축제, 도동서원, 유가사, 현풍 석빙고, 교항리 이팝나무 등으로 잘 알려진 달성군에는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명승지도 많다.그 대표적인 것이 달성 비슬산 암괴류 (達城 琵瑟山 岩塊流)와 옛 공군 영화인 `빨간마후라`의 주인공 고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 4명의 효자를 배출한 사효자굴 등이 바로 그것이다.암괴류는 1만년전~10만년전, 고 유치곤 장군은 1950년 6.25전쟁, 사효자굴은 조선 선조 임진왜란이라는 시차를 두고 각각의 역사를 지녔지만 비슬산을 중심으로 삼각편대를 이루는 곳이다.김문오 달성군수는 “달성군은 전국에서 보기 드물게 유교문화와 함께 충효문화와 불교문화 등이 다양하게 분포된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지역”이라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아 보존에 기초한 개발을 통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지역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천연기념물 비슬산 암괴류비슬산을 등반하면 바윗덩어리들이 마치 물처럼 흘러내린 듯한 특이한 지형을 군데군데 볼 수 있다.이것을 암괴류라고 부르고 보통 직경 256mm 이상의 커다란 자갈이나 암석 덩어리가 경사 40도 이하의 산비탈이나 골짜기에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길게 쌓인 것을 말한다.하지만 비슬산 암괴류는 매우 특이한 지형, 지질로 분석되면서 전세계 지질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지난 2003년 12월13일 천연기념물 제435호로 지정됐다.비슬산 암괴류는 무려 99만2천979㎡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는데다 해발 약 1천m 부근에 위치하는 대견사지 부근에서 시작해 여러개의 암괴류가 각각 다른 산비탈을 따라 내려오다가 해발 750m 지점에서 합류한 후 450m 지점까지 이어지면서 길이는 약 2km, 최대폭은 80여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암괴류 표본으로 불린다.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10만년 전인 주빙하기 후기에 형성된 비슬산 암괴류는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의 거석들로 구성돼 특이한 경관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발달 규모가 대단히 큰 것은 물론이고 화강암 지형에서는 이같은 광경은 보기 드물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각진 모양을 보이는 곳은 지형 특성상 `바위 너덜겅` 지형 또는 `애추`로 분류되고 둥근 모양을 보이는 곳은 `암괴류`지형으로 분류된다.비슬산 암괴류는 지난 최종 빙하기 동안 우리나라의 기후 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학술적, 자연학습적 가치가 매우 높은 지형이다.또 토르가 발달한 대견사지 부근에는 부처바위, 형제바위, 스님바위 등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어 환경생태교육장이나 관광자원으로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로 시작하는 노래 `빨간 마후라`는 40대 이상 세대들에서 잘 아는 유행가다. (90년대 철없는 10대들의 딴 영화와 착각하지 마시길)이 노래는 지난 1964년 개봉된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제곡으로서 당시 유명배우인 신영균씨가 주연을 맡아 대한의 공군과 피끓는 파일럿의 애국혼을 그린 우리나라의 대표적 호국영화다.그 시절에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공군 파일럿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이 바로 달성군 유가면 출신인 고 유치곤 장군(1927~1965)이다.지난 1944년 일본 육군비행학교를 졸업하고 광복 후 1949년 12월에 공군에 입대해 1951년 4월10일 공군 소위로 현지 임관하고 나서 같은 해 10월11일 강릉기지에서 F-51 전투기 조종사로 첫 출격을 시작한 이래 1953년 5월30일까지 한국 공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203차례 비행하는 최다 출격기록을 돌파했다.특히 유 장군은 6.25전쟁 당시 1952년 1월15일 평양 동쪽 16km에 있는 대동강을 횡단하는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에서 유엔군이 500여차례 공격으로도 파괴하지 못한 것을 유치곤 장군은 죽음을 무릅쓰고 1천500피트라는 초저공 비행으로 폭탄을 떨어뜨려 다리를 세 동강 내는 임무를 완수했다.이후 평양 대폭격작전을 비롯한 강원 고성지역의 351고지 탈환작전, 송림제철소 폭파작전 등 한국 공군이 출격한 주요 작전에 참전해 빛나는 전공을 세움으로써 6·25전쟁 중에 을지무공 훈장과 충무무공 훈장을 각 3회, 미 공군 비행훈장 등을 받았다.이런 유치곤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나라사랑과 호국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05년 6월에 유 장군의 고향인 달성군 유가면 양리 비슬산 순환도로 옆 1천327평의 부지에 14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호국기념관을 준공 개관했다.주요시설로는 유치곤 장군 동상(청동입상) 1기와 전시실, 영상실, 휴식공간이 함께 갖추어진 비행기 모양의 기념관으로 구성된 소공원 규모다.또 공군부대에서 사용했던 F-86전투기와 T-37훈련기, 추모비와 빨간 마후라 노래비 등이 야외에 전시돼 있고 비슬산 자연휴양림의 하단부에 있어 이곳을 산행한 후 하산하는 관광객들이 꼭 한번은 둘러보는 호국보훈의 현장이기도 하며 매년 유치곤 장군 모형항공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유치곤 장군은 6·25 전쟁 이후에는 전후방의 각급 공군부대 전투지휘관을 수행하면서 공군의 전력증강과 발전에 이바지했으나 안타깝게도 공군 제107기지 단장으로 재직중인 1965년 1월1일 과로로 순직했다.유 장군의 장남 유용석 군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종사의 꿈을 안고 공사 26기로 임관해 비행임무를 수행하던 중 1982년 2월5일 추락사고로 순직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왜장도 감동한 현풍곽씨 네명의 효자달성군을 명실상부한 충효의 고장으로 입증할 만한 대표적 유적지가 있다. 충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근대에는 유치곤 장군이 있고 임진왜란 땐 경남 의령 출신의 현풍곽씨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있고 효에는 사효자굴이다.유가면 양리에 위치한 사효자굴은 임진왜란 당시 망우당 곽재우의 사촌형인 곽재훈의 네 아들인 결, 청, 형, 호의 애환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임진왜란 때 이 네 이들은 왜구를 피하고자 병환중인 부친을 모시고 비슬산 중턱에 있는 동굴에 숨어 피난생활을 했다. 천식이 심한 부친의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다가 어느 날 굴 주변을 지나던 왜구들이 이 소리를 듣고, 이 굴속에 사람이 있음을 알고 동굴 주위를 에워싸고 나오기를 종용했다.이때 효성이 지극한 큰아들이 부친을 대신해 나갔다가 왜구들에게 맨 먼저 죽임을 당했고,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세 아들 또한 차례로 왜구의 손에 죽게 됐다.결국 마지막에는 부친인 곽씨가 기침을 하며 굴 밖으로 나가자 그간의 정황을 알게 된 왜장도 네 형제의 효성에 감동한 나머지 죽은 4형제의 시신을 수습하고 아버지인 곽씨의 등에는 `네 효자의 아버지(四孝子之父)`이니 절대 참하지 말라는 글을 써 붙여 석방했다.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사효자굴이라 이름해 네 형제의 효성을 추모했고 나라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정려를 내렸다 한다.과거 이곳은 언덕과 암벽으로 둘러싸여 동굴로 들어가기가 어려웠으나 최근 이곳에 목책 계단을 완성해 많은 사람이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들어 아버지를 대신한 네 아들의 지극한 효심을 가슴에 담아 가도록 이끌고 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5-09

인터뷰-김문오 달성군수

“사계절 테마관광지 조성 新 낙동강시대 이끌겠다” 김문오 달성군수는 “달성군은 대구테크노폴리스, 디지스트 등 낙동강 시대를 이끌어가는 영남의 허브 도시이자 최근 가장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는 대구의 모태 도시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관광 콘텐츠를 적극 개발·발굴해 나가겠다”고 청사진을 펼친다.특히 김 군수는 “강정보와 달성보가 완공돼 큰 담수호가 2개 생기면 유람선을 포함하는 다양한 수변 생태·레포츠 공간을 확충하겠다”면서 “여기에다 공무원연금공단의 휴양시설까지 갖춰지면 전국에서 가장 다양한 시설이 갖춰진 지자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달성군 유가면 등 6개 읍·면지역의 비슬산 2~3부 능선을 환상으로 연결하는 모두 108km에 이르는 비슬산 둘레길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김 군수는 “도심에 찌든 이들에게 느림의 미학이 있는 둘레길이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이어 김 군수는 “둘레길의 중심거점인 비슬산에는 천연기념물인 암괴류 분포지 일대 12.5㎞를 자연학습 탐방로로 개발하는 등 관광상품의 격을 높이게 된다”며 “여기에다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인 고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 사효자굴 등도 이야기와 즐길 거리가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의욕에 찬 모습을 보였다.“핵심 탐방 지역인 암괴류를 중심으로 3D입체 콘텐츠를 개발해 OSMU(One Source Multi Use)로 활용하고 영상체험이 가능하도록 탐방안내센터 건립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한 김 군수는 “장기적으로 비슬산 권역을 다양한 볼거리와 전통 먹거리를 연계한 사계절 테마 관광지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자랑이 끊이지 않는 김 군수는 “구지면의 대니산 권역에 테마 관광 체험코스로 개발하고 구지면 오설리에 `낙동강 레저 스포츠 밸리`를 조성함은 물론 옛 영화`임자없는 나룻배`의 주무대인 화원유원지를 `사문진 영상파크`로 조성을 검토 중에 있다”며 비슬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달성군의 발전 모습을 그려 보인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5-09

대기업·협력업체 동반이주 촉발 `공동화` 불 보듯

과학벨트 등 산업 인프라 구축입주기업에 각종 세제 혜택 등대대적 지방지원정책 이뤄져야 국내 최대 수출전진기지인 구미산업단지가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수도권규제 완화 조치는 현재는 잠시 수면 아래 잠복했지만 시민들은 언제 또다시 물 위로 떠올라 핵폭탄 역할을 할 지 불안해하고 있다.현재 수도권완화 정책은 정부의 입법예고나 관보 게재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시행규칙으로 돼 있어 정부나 수도권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지방과 상관없이 수도권규제완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오는 11월 말께 또다시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이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구미, 대구 등 첨단업종 유치에 심혈을 기울여온 지방 산업단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의 허구성과 구미시의 대응방안, 지역국회의원들의 입장, 구미상공회의소의 대책 등에 대해 짚어본다.지방재정 감소·수도권 난개발 등지역 균형발전에 악순환만 초래양 지역 모두에게 `毒`으로 작용◇수도권 규제완화의 허구성현재 수도권은 전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하면서도 인구는 2천474만6천명으로 전국 인구의 49.1 %를 차지하고 있다.또 중앙행정기관 84.4%, 공기업 본사 85%, 100대 기업 본사 92%, 조세수입 71%, 제조업집중률 57%, 은행예금 68%, 외투기업 73%, 벤처기업 77%, 연구개발비 63%, 지난 3년간 수도권 순유입인구 51만7천명, 일자리 증가 98만개 등 우리나라의 행정과 경제교육, 문화, 의료 등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수도권은 매년 증가하는 인구 등 교통혼잡비용으로 12조원, 대기오염개선비용 10조원, 환경개선비용 4조원의 과밀비용을 내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수도권 규제완화를 주장하고 있다.수도권 권역별 공장분포도를 보면 개별입지(59.2%), 산업단지(21.6%) 공업지역(19.2%)이며 성장관리지역 내 산업입지도 산업단지(37.8%), 개별입지(70%)로 되어 있다. 과밀억제권역에도 개별입지(50%), 공업지역(45%)이다. 특히 자연보호권역에도 공장허가를 해줘 개별입지가 96.8%나 될 정도로 수도권에는 무차별적으로 공장이 들어섰다.특히, 수도권규제 완화 때는 경기도는 5천754개에 달하는 대기업 첨단업종이 들어서고 기존 공장도 현재 200%에서 300%까지 증설이 허용된다. 대기업 첨단업종 유치에 공을 들여온 대구, 포항, 구미 등이 대기업들의 신규투자 기피로 앞으로 지역 경제의 산업 공동화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 이유다.이는 지난 2000년도의 46.3%, 지역균형 발전을 핵심 국정으로 내세웠던 2005년의 48.2%와 비교하면 집중도가 더욱 심화해 현재 국가 균형발전도는 수도권 82.7%에 비해 비수도권은 45.7% 에 불과한 실정이다.하지만 수도권 단체장들은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은 국토 균형 발전 정책으로 심장을 묶어 놓을 때 피가 돌지 않는다며 틈만 나면 수도권 규제완화를 입버릇처럼 말한다.이에 지역 국회의원들은 현재 수도권은 피가 너무 많이 돌아 심장이 터질 지경이라며 수도권규제완화는 수도권과 지방 모두에 쓸모없는 정책이라고 반박한다. 특히, 한국과 달리 선진국의 수도권 인구 집중현상은 일본(31.9%) 영국(31.2%), 프랑스(18.9%), 한국(49.6%)로 유독 한국만 수도권집중 현상을 보여 수도권규제완화를 외치는 수도권단체장들의 허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 법률 제정 필요현재 수도권완화 정책은 법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정부의 입법예고나 관보 게재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시행규칙으로 돼 있다.구미지역 국회의원과 행정기관, 경제단체는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은 지방공단 말살정책으로 현재 시행규칙 개정 반대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수도권완화 정책을 개정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성조 의원을 비롯해 국가균형발전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13명(한나라당 8명, 민주당 4명, 자유선진당 1명)은 지난달 4일 국회에서 긴급모임을 갖고 국가균형발전에 반하는 `산집법 시행규칙개정`을 즉각 중단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이들은 성명서에서 산집법은 국가 균형발전차원에서 지난 200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한시적으로 시행한 법인데도 정부가 이 법을 멋대로 해석해 수도권 내의 공장 신·증설과 첨단업종을 확대하는 것은 법의 권한을 넘어선 월권적 행위라며 규탄했다. 또 정부는 지난 2008년 10월 수도권규제 합리화라는 명목하에 세종시 백지화 시도, 수도권 RD 센터 설립규제 완화, 영남권 신공항백지화 등 지방 고사정책을 추진한 데 이어 수도권 규제 완화 시행 규칙 개정안까지 거론하며 지방을 더욱 옥죄고 있다고 비난했다.특히 수도권규제완화 조치는 지방 공단 인재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지방인력 공동화, 세수 감소로 지방재정 악화, 중앙정부의 지방발전 예산 부담 가중 등 지역균형 발전 악순환 등의 결과를 초래해 수도권과 지방 모두 독이 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정부는 헌법이나 수도권정비법 등으로 수도권의 집중을 규제, 억제하고 있음에도 하위 법령인 시행규칙으로 첨단업종 범위를 99개 업종·156품목에서 94개 업종·277품목으로 대폭 확대 조정했다.또 주한미군공여지원특별법에 의한 지원도시 사업구역 내 대기업증설허용, 정비 발전지구 및 과밀억제권역 내 노후공단용도전환 및 행위규제완화, 수도권 노후 공업지역 주거용지 상업용지 전환요건완화, 성장관리지역 대기업 첨단업종 25개 신증설허용 및 10개 첨단업종 신증설확대 등이 시행되면 지방 산업단지는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김성조 국회의원은 “수도권 규제완화 시 수도권은 환경, 교통, 주택, 새로운 신도시 개발 등 난개발로 향후 10~20년안에 큰 재앙이 될 것”이라며 “수도권 규제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40년 동안 지속된 경제정책으로 당장 경제가 어렵다고 지역 균형발전을 깬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미시 수도권규제 완화 대책현재 구미 산업단지에는 입주 업체 수는 1천350개사이지만 일정매출이상 발생하는 구미상의 회원사 수는 650개 정도로 7만365명의 근로자들이 생산활동에 전념하고 있다.특히 이중 첨단업종 신규편입 기업 중 100인 이상 근로자 채용 업체 수는 70개사에 달해 수도권규제완화 조치로 대기업의 수도권 이주시 협력업체 동반 이주로 구미 공단은 공동화 현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앞으로 구미시는 구미 제5 산업단지 9.9㎢ 신설, 경제자유구역 6.25㎢ 조성, 구미 4공단 배후단지 2.44㎢ 개발 등 기업유치와 관련된 각종 개발사업이 계획돼 있어 수도권 규제와 시행령개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구미시는 자체적으로 대책을 수립하는 동시에 지난 3월4일 국회, 지식경제부, 지역 국회의원을 차례로 방문해 수도권규제완화 대응방안 협의하고 지식경제부를 항의 방문했다.또 3월7일에는 구미상의 관계자 9명이 수도권 규제완화 긴급TF회의를 개최하고 포항시 등 도내 11개 기초자치 단체와 공동대응방안을 모색했다. 또 3월말에는 구미상공회의소 목요조찬회에 시민 200여명이 참석, 수도권규제완화 규탄 결의대회를 했다. 구미상공인들은 수도권 규탄 결의문을 정부에 전달한 후 전국 지방 자치단체와 연계한 반대투쟁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남유진 구미시장은 “구미시는 수도권규제완화시 기업유출 방지를 위한 각종 지원활동 강화와 과학벨트 유치 등 산업 인프라 구축과 지방 입주 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지방 산업단지 활성화 대책 등에 대한 대대적인 지방 지원 정책 수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용창 구미상의 회장은 “수도권 규제완화 이후 구미 공단 내 100여 협력업체가 수도권 규제정책에 묶여 수도권 이전을 관망하고 있으나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가 현실화 될 경우 구미공단 내 업체들의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며 “지방을 홀대하는 정부의 각종 조치에 모든 지역은 힘을 합쳐 수도권규제 완화 조치에 심혈을 기울여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남보수기자 nbs@kbmaeil.com

2011-05-06

爐火純靑,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죠

사회간접자본 첫 외국선사 개방업무 `보람`“고향 의성 생각하며 지원 노력 다 하겠다” 경북 의성출신의 김희국 국토해양부 제2차관은 의성군 금성면 청로동에서 출생했다. 청로초등학교와 의성중학교를 거쳐 경북고교와 경북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1981년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부산지방해양항만청 항만물류과장, 건교부 고속철도과장,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기획국장,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4대강살리기 기획단장, 4대강 살리기추진본부 부본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토해양부 제2차관으로 일하고 있다. 얼마전 공직생활 만 30년을 맞은 김 차관을 만나 고향인 의성 이야기를 비롯, 친구들, 공직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편집자주사회 발전 시키고 싶어… 공무원 꿈키워시대마다 중요한 SOC사업 맡아 `자부심`-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부모님들은 상고에 진학해 은행원이나 교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공무원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부모가 농사지으면서 너무 힘들게 사는 것이 가슴아팠고, 대부분이 그렇게 살지만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때 대구시민회관에서 당시 서울대 한완상 교수의 강연을 들었는 데, 주제가 소외였다. 사회가 발전해나가면서 농민이나 어민, 근로자가 계속 소외된다. 그래서 사회의 통합발전을 위해서는 정치나 행정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강연을 계기로 공무원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부모님들은 내무부나 농림부에 가기를 바랬으나, 일본의 메이지유신사를 읽고, 봉건국가에서 산업국가로 갈 때 해운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걸 알게됐다. 그래서 해운항만쪽을 택했으며, 그 이후 1998년도 초대 고속철도 과장을 했고, 노무현정부에서는 혁신도시 초대국장을 했고, MB정부 들어와서는 4대강 사업을 진두지휘해왔다. 시대마다 중요한 SOC사업분야를 맡아 일해와 자부심을 느낀다.-고향인 의성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분교를 다녔기 때문에 6년 내내 1개반에 다녔는 데, 중학교에 가니 5개반이 돼 신기하게 생각했다. 당시에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야 했는 데, 고향 마을에는 전기가 안 들어왔다. 그래서 밤에 공부할 때는 초를 하나씩 들고가서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또 서울에 가면 집집마다 탑을 세워 텔레비전을 본다는 얘기를 전해듣고는 `집집마다 어떻게 돌로 탑을 세우나`하고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새벽에 기차타고 서울 청량리역으로 들어서는 데, 온 시가지가 전기불로 환하게 밝혀져 있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골소년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웃음)-학창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나 선후배가 있다면.▲중학교 동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친구는 씨름선수로 유명한 이준희 감독이다. 현재 도리원으로도 불리는 의성군 봉양면은 씨름선수가 많이 나는 고장이었는 데, 초기 씨름계에서 많은 역할을 했던 김태성씨가 당시 체육선생님이었고, 정해걸 국회의원이 당시 사회선생님이었다. 의성중학교 졸업후 재수해서 경북고에 들어갔다. 700여명을 뽑았는 데, 서울·부산이 평준화되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몰려왔다. 그래서 동문들이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으로 많이 진출했다. 현직에 있는 선후배들을 꼽아보면 56회로는 이현동 국세청장, 김명식 청와대 인사비서관, 57회는 류성걸 기획재정부 차관, 58회에 제가 있고, 59회에 농림수산부 김재수 차관 등이 고위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국토해양부 제2차관이 맡은 소관업무는.▲도로, 철도, 해운항만, 공항 등 네개의 사회간접자본분야와 교통정책·물류정책·해양정책 등 7개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1차관은 토지, 주택, 수자원, 그리고 일반적 기획관리업무를 맡게 된다.-얼마전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됐는 데 어떻게 생각하나.▲우답이 될지 모르지만 대구·경북지역을 위해서 중요한 요소는 포항·울산의 예를 들고싶다. 대구가 성장이나 발전을 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생산기반시설이 취약하고, 한마디로 돈이 없는 도시다. 그것이 우선돼야 한다. 많은 분들이 그럴듯한 국제공항이 있어야 외국인 투자유치도 되고, 산업화 촉진이 된다고 하는 데, 그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선돼야 하는 것이 대구지역 SOC확충이다. 산업공단이나 기지 등 제조업체들이 들어와서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이 창출되는 일이 중요하다.-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이다.▲공항을 결정하기 어려웠던 이유로 기본적으로 공항 수요, 공사비, 환경적 문제 같은 팩트들이 필요하다. 인천공항의 경우 수요는 걱정할 필요없었다. 환경적 문제도 영종도가 수심 1~5미터 정도밖에 안된다. 백지화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고속도로, 산업단지의 원활한 조성, 기타 제조업들이 들어갈 수 있는 대구·경북지역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대구·경북지역에서 해운항만청의 역할은 어떤 것이 있나.▲경북도와 관련된 해운항만은 포항이 가장 중요하다. 포항항만의 최우선 목적은 포항제철소라는 산업단지를 지원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 요즘에는 신항만을 건설해 컨테이너도 처리하고, 러시아 극동항로에 중요한 역할을 하려는 노력, 그리고 울릉도와 독도를 연결하는 베이스기지로 만드는 것이다. 강구항이나 울진항도 어항으로서 지역산업화의 기반시설이 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게 많다. 최근에도 임광원 울진군수가 다녀갔는 데, 산과 바다·온천을 엮어서 관광산업을 촉진하는 게 유일한 울진의 성장전략이라고 강조했다.-해운항만청에 근무하면서 보람있었던 일이 있다면.▲1992년까지 한국의 컨테이너 항만계획을 수립하고, 운영체제 정비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외국 선사에 대해서는 독점적인 전용 터미널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왔으나 그때 개방했다. 개방화시대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국제기준을 이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국제화 추세를 거역하고는 잘 살 수 없고, 살기가 어렵다. 이같은 자연법칙에 가까운 논리를 더이상 애국심으로 커버하기는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우리나라 사회간접자본중 가장 먼저 외국선사에 대해 개방업무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좌우명이 있다면.▲(사무실에 걸린 액자를 가리키면서)저기에 노화순청(火純靑·지극함이 다해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지)이라고 쓰여 있는데, 공무원 생활을 하며 전문성을 확보해서 정책적 실수를 줄여야 한다는 뜻으로 저 말을 늘 가슴에 새긴다. 10년 20년 경험을 축적하면서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행착오 주체도 불분명하고, 국민세금 낭비가 너무 많았다고 생각했다. 노화순청이란 말은 등소평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중국을 시장자본주의로 전환시키면서 최고의 삶의 지표를 저걸로 삼고 살았다고 해서 유명한 말이다. 국가가 아주 유능한 리더들에 의해 이끌어져야 한다는 뜻으로 알고, 약 한달전 공무원 생활 30주년을 맞아 기념으로 저 액자를 걸었다.-국토해양부의 최근 현안은 무엇인가.▲가장 고심에 싸인 문제는 KTX 사고가 자꾸 나서 원인조사중에 있다. 국민들에게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 송구스러운데, 차량 유지보수문제인 지, 공단조직 문제인 지, 아니면 전기문제인지 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조치를 해서 안전한 철도가 되도록 애쓰겠다. 그 다음 현안은 투자배분문제다. 도로분야의 경우 각 지역별로 발달이 안되는 것은 비용편익분석(B/C)이 낮기 때문인 데, 그러면 언제까지나 안 해줄 것이냐가 의문이다. SOC투자를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최선이냐를 고민하고 있다. 각 지역에 비슷비슷하게 균형있게 놔주는 것이 옳은 지, 그렇게 하면 획일적이니까 산업단지는 특정지역에 넣되 결과는 비슷하게 공유하는 다른 시스템으로 가야될 지를 고민하고 있다.-고향 분들에게 인사말을 한다면.▲대구·경북지역이 인구도 줄고,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고, 특히 경북북부지방은 낙후돼 있어 각 의원들이나 지자체 장들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고향을 생각하며 중앙에서 지원을 최대한 열심히 하겠다./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2011-05-06

경북 사과 수출촉진 현지 홍보 행사

경북 농산품, 말레이시아 시장 뚫고 동남아 전역 공략 경북 농산품의 동남아 시장 진출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이전부터 동남아 현지 소자본 바이어들에 의한 국제거래는 있어왔으나 본격적인 경북 농산품 수출 판로 개척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 사과를 중심으로 경북지역 농산품의 최대 수요처는 바로 대만이었다. 그러나 1992년 중국과의 수교 체결로 대만 국교 단절이 이뤄지면서 경북 농산품의 수출시장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통계청에 따르면 1989년 한때 연간 9천t에 이르던 경북 사과의 대 대만 수출량은 국교 단절 이듬해인 1993년 3천428t까지 떨어졌다.이후 IMF까지 겹치면서 경북 사과의 대만 수출량은 1998년 880t이란 최저점을 찍었다.1989년 대만 내 시장점유율 11.6%를 기록했던 경북 사과는 1993년 0.1%까지 하락해 최고 1.6%(1997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대만 내 수입량이 너무 적어, 시장점유율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해도 1998년과 1999년, 2000년 등 3년이나 된다.◇경북 농산품. 생존을 위해 동남아로 눈을 돌리다대만이란 주요 시장을 잃고 경북 농산품 수출은 한동안 표류하기 시작한다.대만 국교 단절 이후 새로 얻은 중국 시장은 한국 농산품이 진입하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 존재했다.먼저 대만과 달리 중국 내에는 값싼 농산품이 즐비했다. 게다가 고가의 한국 농산품을 소비하기에는 국민의 경제요건도 열악했다.실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 농산품의 중국 내 수출량은 그 양이 너무 적어 통계 결과조차 존재하지 않는다.이때 새로운 구세주로 떠오른 곳이 바로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 시장이다.동남아에는 열대 과일이 즐비하지만, 사과처럼 한랭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농산품은 찾아보기 어렵다.물자자원이 풍부한 동남아 지역은 한국과 기후 자체가 너무 달라 농산품이 상호 보완적인 구조를 이루는 셈이다.말레이시아에서 본격적인 동남아 판로 개척에 나선 경북 농산품은 첫해 고무적인 성과를 거뒀다.2008년 경북 농산품의 말레이시아 수출량은 총 1천94t·124만5천달러에 이른다. 2009년에도 1천130t·122만달러를 기록했다.◇천연자원의 보고 동남아. 무한 시장을 개척하라말레이시아의 경우 공업화 등 경제 수준이 우리보다 조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전체면적 32만9천758㎢의 말레이시아에는 총 2천831만명(2009년 기준)이 거주하고 있다.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대지에, 우리나라 절반도 안 되는 인구가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이들의 1인당 소득(GDP)도 우리나라의 약 40% 정도인 7천59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하지만, 말레이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고무, 주석, 목재 등 세계적인 자원 보유국 중 하나다.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고무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팜유는 전 세계 생산량의 거의 60%가 말레이시아에서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말레이시아의 무역은 수출입 모두 동남아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활발하다.주요 수출품은 전기제품,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팜유, 천연고무, 목재이며 수입품은 제조기기, 수송기기, 식료품이다.그러나 말레이시아의 무역은 지금까지 대부분 미국, 싱가포르, 일본, 중국 등이 주로 장악하고 있다.이미 주요 선진국들의 시장 진입이 이뤄진 상황에서 한국의 농산품을 팔기 위한 새로운 방안이 필요한 부분이다.◇경북 농산품. 말레이시아의 입맛을 사로잡다열악한 수출시장 요건에도 불구하고 최근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한국제품은 상당한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다.아시아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서서히 한국제품의 우수성이 현지에 알려지기 시작한 까닭이다.말레이시아 한인회 이강성 회장은 “최근 드라마 등 한류분위기에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한국 제품을 소비하는 풍토가 유행하고 있다”면서 “한국제품 수입액이 지난해 61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매년 15~20%가량 신장하고 있다. 한국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부유층을 상징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특히, 경북지역 농산품은 우수한 품질로 인해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서서히 입지도를 쌓아가고 있다.앞서 밝혔듯이 경북 농산품의 말레이시아 수출은 2008년 이후 매년 상승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전년 동기 대비 53.5%란 경이적인 신장률까지 기록했다.말레이시아-한국 간 무역회사인 `KMT무역`의 이마태오 사장은 “현지에서 한국의 이미지 상승은 놀라울 정도다. `한국 경북 프리미엄 상품`이란 상표만으로도 엄청난 판매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면서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다른 곳보다 고급시장이며, 주위 국가의 테스트마켓(Test Market)이다. 경북 농산품이 말레이시아 진출을 통해 동남아는 물론 이슬람 국가까지의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말레이시아서 신동우기자 beat082@kbmaeil.com

2011-05-06

⒂ 회헌 안향과 소수서원

영주 시내에서 순흥쪽으로 한적한 길을 달리다보면 맑은 시냇가에 울창한 소나무숲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개울 너머 일련의 고건물을 볼 수 있다.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사액서원(賜額書院)인 소수서원이다.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은 1543년(중종 38) 이 지역 출신이자 고려말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처음 도입하여 한국 사상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회헌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아울러 유생교육을 겸할 목적으로 백운동서원을 설립하였다.이곳은 안향이 어린 시절 공부를 했던 숙수사(宿水寺) 터이기도 했다.이후 1548년(명종 3) 당시 풍기군수였던 퇴계 이황이 참된 선비를 양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서원을 널리 보급해야 한다고 하여, 백운동서원에 사액(賜額)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이에 1550년 `소수서원`이라는 현판과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서적을 하사받았다.이는 서원이 국가의 공인하에 발전하고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최초의 서원에 배향된 이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도입한 안향이라는 사실은 참 절묘한 인연인 것 같다. 또 이황이 서원을 널리 보급하고자 했던 것은 을사사화로 고초를 겪은 다음 관료로서 군주를 보필하고 경륜을 펴기보다는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통해 후일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안향의 살았던 시기를 생각하면 이 역시 절묘하다. 올바른 정치를 행할 수 없을 때는 후진 양성에 힘써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안향은 그 삶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700년 전 안향의 삶을 통해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보자.안향은 1234년(고려 고종30) 흥주 평리촌 학교(鶴橋·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 옆의 본가에서 태어나 1305년(충렬왕31)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회헌(晦軒),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초명은 유(裕)였고, 훗날 향(珦)으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조선 문종의 휘가 그의 이름과 같았으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 조선시대에는 안유로 불리웠다.그가 태어났던 시기는 무신정권이 전성을 구가하던 때이며, 그가 과거에 급제했던 해는 몽골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몽골의 본격적인 간섭을 받기 시작했던 1260년(원종1)이었다. 또 그의 관로는 매우 화려했고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지만, 몽골인 출신 권력자의 미움을 받아 한때 관직에서 물러나야만 했었다. 그리고 재상이 된 뒤에는 `행동을 조심하여 감히 다투지 않았다`고 평가받았다. 원나라의 지나친 압박과 견제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고려가 몽골의 간섭을 받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그대로 수긍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안향이 무사안일주의였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재상에 오르기 전 그는 매우 적극적인 관료였다. 1271년(원종12) 서도(西道)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청렴하다는 평을 받았고, 다시 내시원의 관료가 돼서는 내시원의 오래된 폐단을 혁파하였다. 또 1275년 상주판관에 임명되어 3년간 재직하면서 요신(妖神)을 받들고 군현을 횡행하며 관민(官民)을 현혹시키던 여자 무당 3명을 치죄하기도 하였고, 일본 원정을 위한 전함 건조·군량 저축, 가혹한 세금 징수 등으로 곤경에 처한 백성들을 소생시키기 위해 노력을 다하였다. 이를 보면 청렴을 바탕으로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열전을 보면, `안향은 장중(莊重)하면서도 인자하니 사람들이 모두 경외하였다. 재상이 되었을 때 일을 도모하는 것과 판단력이 뛰어나 동료들이 순응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그런데 몽골 출신 관료나 그와 결탁한 관료들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원나라의 제후국으로 격하한 고려의 관료로서는, 몽골 출신 관료를 억제할 힘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아마도 섣부른, 혹은 감정적인 대응은 화만 미칠뿐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현실에서 안향이 기대를 걸었던 것은 교육이었다.사실 안향 자신이 뛰어난 학자였다. 안향은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였다고 하며, 과거 급제 후 비서성이나 한림원과 같은 문한 기관에 주로 임명되었다. 중견 관료되는 국자 사업으로 국학의 생도를 교육하는 위치에 있었다. 재상이 되어서는 집현전대학사나 감수국사와 같은 문한직을 겸직할 정도로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리고 만년에는 항상 주희의 진영을 걸어두고 경모하였으며 마침내 호를 회헌이라고 할 정도로 주희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려고 하였다.그렇지만 그가 자신의 학문 연마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후진 양성이었다. 그가 `국학을 발전시키고 현량한 후진을 양성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아 비록 일을 사직하고 집에 있어도 늘 교육하는 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평가받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안향은 상당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제력을 아낌없이 교육에 투자하였다. 1301년(충렬왕27) 국학(성균관)을 중건할 때 안향은 자신의 저택을 국가에 바치고 토지 30결과 남녀 노비 각 100인을 국학에 귀속시켰다. 조선 전기에 안향의 후손들이 성균관에 입학하였을 때 성균관 노비들이 `우리의 상전이다`라고 했다고 하며, 성균관 관원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후하게 대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안향이 국학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상당한 재산을 기부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가 지공거, 즉 과거 시관이었을 때 급제자 30여 인 모두에게 돈피이불을 선물하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성리학을 도입하였다. 1290년(충렬왕16) 3월 24일 충렬왕, 왕비, 세자가 원에서 돌아올 때 함께 귀국한 안향이 원의 대도(大都)에서 주자서를 필사하고 공자와 주자의 초상화를 모사하여 돌아왔다. 1304년(충렬왕30)에는 국학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섬학전을 확보하고, 그 돈의 일부로 중국에서 육경, 제자(諸子), 사서(史書)를 사와 국학에 비치하게 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개혁적인 후진들이 양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에 의해 원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또 고려의 묵은 폐단을 개혁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나타날 수 있었다.이황이 을사사화를 겪으면서 훗날을 기약하며 후진양성에 힘썼던 것이나 안향이 현실 정치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후진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은 같은 맥락이었던 것이다. 원나라에 비해 열세일 수 밖에 없는 고려의 현실을 직시하고 안정된 내치를 도모하고 문풍을 진작시킴으로써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를 700년 전 안향 선생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배우게 된다./이욱(한국국학진흥원 고전국역실장)

2011-05-06

가볼만한 곳 - 부석사

우리나라 最古의 목조건물 `무량수전` 있는 고찰 부석사로 유명한 영주는 둘러볼 곳과 먹을거리가 많아 풍성한 여행이 기대되는 곳이다. 순흥면 일대의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선비촌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부석사영주의 부석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고찰이다. 부석사 가는 길은 단상에 빠져들기 좋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구간이 짧아 아이들도 별 어려움 없이 일주문까지 걸을 수 있다.신라 문무왕 16년, 서기 676년 의상조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무량수전 외에도 국보급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정겹게 느껴진다.부석사 외에도 영주에서 볼 만한 명소는 소수서원과 선비촌이 있다.소수서원은 조선시대 최초의 사액서원이며 선비촌은 경북의 유교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아이들에게 교과서 밖 학습장으로 손색없는 목적지다.주세붕 선생이 세운 조선시대 최초의 사액서원◆소수서원소수서원은 조선시대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국가 공인 사립대학쯤으로 생각하면 된다.고려 말 유학자 안향을 제향하고 그의 정신을 잇기 위해 주세붕이 세운 사원이다. 퇴계 이황이 군수로 부임하면서 사액서원이 됐다.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인 회헌영정(국보 111호)은 소수서원의 자랑거리이다.조선 중종 37년(1542)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제사 지내기 위해 사묘를 세우고 그 이듬해 안향 선생을 봉안, 학사를 이건해 백운동서원이라 칭했고, 중종 39년에는 안축, 안보를 배향하고 명종 3년에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명종 5년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의 시초가 됐다. 이후 인조 11년(1633년) 주세붕을 추향해 향사를 지내고 있다.소수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원 건물로는 명종의 친필로 된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린 강당과 그 뒤로 직방재와 일신재, 동북쪽에는 학구재, 동쪽에는 지락재가 있다. 또 서쪽에는 서고와 고려 말에 그려진 안향 영정과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가 안치된 문성공묘가 있다.우리나라의 대학자이자 선비로 이름이 높은 퇴계 이황(1501~1570)은 회헌 안향을 사모했다. 두 사람은 동방 성리학의 성현이다. 고려의 안향이 최초로 원나라에서 주자학을 들여왔다면, 그 학문은 퇴계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25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안향의 선학에 대한 퇴계의 외경심과 사랑은 소수서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건물 배치의 자유스러움과 자연스러움에서 당시 학자들의 기품을 느끼게 한다. 서원 입구에는 숙수사 당간지주(보물 제59호)가 우뚝 서 있다. 유생의 터에 보존돼 있는 불교의 상징에서 당시 학자들의 너른 마음을 읽을 수 있다.모든 건물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원 옆으로 낙동강의 작은 젖줄인 죽계수가 흐르고 개울 건너편 아담한 바위에는 주세붕이 직접 쓴 경(敬)자가 붉게 새겨져 있다. `경이직내 의이방외`(敬以直內 義以方外)의 첫 글자로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반듯하게 한다`는 뜻이다. 소수서원의 교훈이자 학문의 목표이며 안향이 우리나라에 주자를 들여오고 전파한 의미이기도 하다.소수서원으로 들어가면 선비촌과 박물관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옛날 가옥에서 전통생활 체험할 수 있는 민속촌◆선비촌선비촌은 전통가옥에서 숙박을 겸해 전통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민속촌.1만8천평 부지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과 아담한 초가 등 12채의 가옥을 비롯해 강학당, 물레방앗간, 대장간, 정자 등 모두 40채의 건물이 조선시대의 자연부락을 원형 그대로 재현했다. 선비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가옥은 넓은 대청 공간이 돋보이는 해우당 고택. 툇마루로 통하는 문을 열면 소백산의 국망봉과 연봉들이 풍경화처럼 한눈에 들어온다.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이 정원처럼 보이는 두암고택과 인동 장씨 종가, 소박한 멋과 절제미가 뛰어난 중류층 가옥인 김상진 고택도 하룻밤 묵어가기에 좋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