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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김천에 개소한 `세계기후변화종합상황실` 박세훈 실장

“세계적인 기후변화 최신 정보 실시간 파악 가능”기업·연구소 합작 `신재생에너지연구소` 등 설립 김천, 세계에너지기술 종합정보센터로 성장 기대 세계의 기후 변화와 관련한 최신정보와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신기술 정보를 총괄해 종합적으로 관리 운영할 `세계기후변화 종합 상황실(Global Climate Change Situation Room)`이 19일 김천시 덕곡동 제이엠(JM) 빌딩에 개소됐다.유엔협회 세계연맹의 미래싱크탱크이자 세계 갈등과 문제 해결 방안을 연구 목적으로 하는 유엔미래포럼의 사무총장이면서 세계기후변화종합상황실 책임자인 박세훈 실장을 만나 종합상황실 운영 등에 대해 들어봤다.-세계기후변화종합상황실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세계기후상황실에는 지구촌의 기후 변화를 다스리기 위한 GENIS(Global Energy Network Information System)를 구축한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집단지성 에너지 포털로 세계적인 기후 변화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데 최신· 최고급·신기술 정보가 모이게 된다.-이 자료는 어떻게 활용되나.▲이 자료는 김천시와 경북도에 제공하기 때문에 사업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최신형으로 개발되거나 아이디어로 나오는 값싼 에너지기술을 점검하고, 그 기술을 제3국으로 확산시키게 된다.상황실 산하에는 미래예측연구소와 신재생에너지연구소 등이 설립되는데 국내의 연구소와 기업이 함께 만들게 된다. 이 곳에서 연구하고, 기술개발을 하고 산업화하기 때문에 지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이것이 핵심이다.-김천에는 이 외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나.▲김천에 세계기후변화종합상황실이 세워지게 됨으로써 김천은 세계에서 가장 값싼 에너지기술을 가장 빨리 접하게 된다.또 세계 에너지 전문가들이 인트라넷으로 설정된 포털에 자신이 아는 기술을 집단지성으로 올리게 되는데 김천이 이것을 가장 먼저 활용할 수 있게 된다.미래 석학, 세계 에너지 전문가들이 이 사이트에 들어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남기면서 포털이 커질 경우 김천은 세계에너지기술 종합정보센터가 된다.이를 겨냥해 국내 유수 대학과 굴지 기업이 이미 김천의 세계기후변화종합상황실 부근에 연구소를 두고 김천에 연구원을 파견하려고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유엔미래에코타운은 어떻게 조성되나.▲유엔미래에코타운에는 미래국제학교(Future Leaders Int`l School)가 설립된다. 영국의 FIC 정식 중·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을 수행하는 분교를 설치해 국제적인 리더 그룹으로 성장하고 싶은 학생들을 교육할 예정이다.-유엔미래에코타운은 어디에 세워지나.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 15만3천150㎡를 사업부지로 확정했고, 오는 2012년 8월 완공된다.제니스와 국제협력본부, 기술본부, 일반사업본부 등 4개 본부가 들어서게 된다. /최준경기자 jkchoi@kbmaeil.com

2009-08-20

김 前 대통령 장례 `6일 국장` 결정

국회서 영결식… 장지는 동작동 국립묘지 국가원수묘역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 형식이 가장 높은 예우를 갖추는 국장(國葬)으로 결정됐다.정부 핵심관계자는 19일 “국장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이명박 대통령이 이에 대한 보고를 받고 대국적 견지에서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김 전 대통령의 장지는 동작동 국립묘지 국가원수묘역으로 결정됐다.정부는 이날 오후 8시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소집해 이 같은 장례 방안을 의결했다.김 전 대통령의 장례 형식과 절차를 놓고 정부는 국민장을, 김 전 대통령 측과 민주당은 국장을 각각 주장해왔으나 긴 협의 끝에 결국 `6일 국장`이라는 절충안이 채택됐다.그리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와 분향소, 영결식 장소는 국회로 결정됐다.김 전 대통령측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9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내 임시빈소에서 기자 브리핑을 갖고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영결식을 치르기로 했다”고 말했다.박 의원은 “영결식과 빈소, 분향소를 국회 광장에 차리기로 정부와 협의를 끝냈다”면서 “정부에서 빈소와 분향소 등을 준비하면 내일 오전 중 그쪽으로 모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09-08-20

자녀가 잘 하는 것에 주목하라

자녀가 음악듣기를 좋아하고 가수의 노래를 잘 따라하며, 악기를 쉽게 다룬다면 음악지능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 음악지능을 자극하려면 평소에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들려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악기를 배우도록 하면 좋다. 또 주변의 물건들 중에서 소리가 나는 것들을 모아놓고 눈을 감고 소리만으로 어떤 물건인지 알아맞히는 놀이를 하면 도움이 된다. 음악지능이 높은 자녀에게 맞는 직업으로는 성악가, 연주가, 작곡가, 지휘자, 음악 치료사, 음향 기술자, 피아노 조율사, 가수, 음악 교사, 공연 연출가 등이 있다. 자녀가 집 안에 있는 것 보다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이 다툴 때 끼어들어서 서로 화해 시켜주기를 잘 한다면 신체운동지능이 높을 가능성이 많다. 이 지능이 높은 사람은 혼자 하는 경기 보다 단체 경기를 좋아하고 연극에 관심을 보이며 실제로 연기를 잘 한다. 신체운동지능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역할연기, 목공놀이, 공기놀이나 뜨개질 등 손가락을 많이 쓰는 활동과 만지고, 느끼고, 춤추는 활동을 하게 하면 좋다. 어울리는 직업은 운동선수, 체육학자, 물리치료사, 레크레이션 지도자, 배우, 안무가, 무용가, 엔지니어, 체육 교사, 보석 세공인, 군인, 무술인, 발레리나, 등반가, 치어 리더, 경찰, 경호원, 정비사 등이 있다. 자녀가 수학 문제 풀기를 좋아하고 돈 계산할 때 암산으로 잘 하며, 왜 그런지 이유를 자주 묻는다면 논리 수학지능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논리 수학지능을 높이려면 숫자놀이, 각종 색깔이 있는 구슬을 규칙에 따라 꿰기,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기, 퍼즐 맞추기, 암산하기, 실험하고 원리 찾아내기, 어떤 생각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놓기 등의 활동을 하면 좋다. 어울리는 직업으로는 수학자, 물리학자, 과학자, 엔지니어, 은행원, 컴퓨터 프로그래머, 공인 회계사, 경리, 의사, 과학교사, 법조인 등이 있다. 자녀가 평소에 책읽기를 좋아하고, 친구와 말싸움에 자신이 있어 하고, 이야기하기와 글쓰기를 즐겨 한다면 언어지능이 높을 가능성이 많다. 언어지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녹음된 이야기 들려주기, 편지쓰기, 끝말잇기와 같은 단어게임하기, 가족회의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서슴없이 말하기, 구체적인 질문하기 등의 훈련을 하면 좋다. 적합한 직업으로는 외교관, 성우, 번역가, 통역사, 문학 평론가, 소설가, 시인, 도서관 사서, MC, 기자, 언어학자, 연설가, 변호사, 정치가, 설교자, 학원 강사, 프로듀서, 외판원, 개그맨, 아나운서, 리포터 등이 있다. 자녀가 그림으로 표현하기, 레고 블록 쌓기, 엉뚱한 상상하기, 한 번 갔던 길 찾기 등을 잘 한다면 공간지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공간지능을 높이려면 보물찾기, 미술관 견학, 미술과 관련된 작품 활동하기, 사진찍기나 캠코더로 영상물 제작하기, 생각을 마인드맵이나 색깔로 표현하기 등의 활동을 하면 도움이 된다. 적합한 직업으로는 조종사, 항해사, 디자이너, 엔지니어, 화가, 건축가, 설계사, 사진사, 조각가, 코디네이터, 공예가, 미술 교사, 택시 운전사, 네일 아티스트, 요리사, 외과 의사, 치과 의사, 서예가 등이 있다. 자녀가 친구들과 어울려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을 잘 돕는다면 대인관계지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대인관계지능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있는 놀이하기, 팀을 짜서 과제 해결하기, 봉사활동, 파티 열어주기 등의 활동을 하면 좋다. 어울리는 직업으로는 종교지도자, 교사, 정치인, 심리치료사, 사업가 등이 있다. 자녀가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생각을 많이 하며, 일을 할 때 심사숙고하고 반성을 잘 한다면 자기이해지능이 높을 가능성이 많다. 이 지능을 높이려면 일기쓰기, 계획표대로 실천하기,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해 주고 성취감을 맛보기 등의 활동을 하고 집안 분위기를 편안하게 꾸미는 것이 좋다. 알맞은 직업으로는 신학자, 심리학자, 철학자, 성직자 등이 있다. 자녀가 애완동물을 좋아하고 식물을 키우기를 좋아하며, 신체기관의 위치와 작용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자연 속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면 자연지능이 높을 가능성이 많다. 자연지능을 키우려면 애완동물 키우기, 식물 재배, 동식물 스케치, 조개나 나뭇잎 모으기, 갯벌탐사, 별자리 관찰 등을 하면 좋다. 알맞은 직업으로는 식물학자, 생물학자, 수의사, 조류학자, 천문학자, 고고학자, 한의사, 의사, 약사, 동물 조련사, 원예가, 약초연구가 등이 있다. 창의적인 부모는 자녀의 강점지능에 주목하고 그것을 계발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하면 시간과 노력이 덜 들고 자녀의 행복한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Create yourself!포항제철지곡초 이용석 교사

2009-08-19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대구·경북 각계 반응

“생전에 숱한 고초 잊고 편히 쉬셨으면…”시·도민 “대한민국 위대한 지도자 한분 잃었다”정치권 “국민화합·남북평화 승화되는 계기 되길”18일 오후 서거 소식을 접한 지역 정치권과 학계를 비롯한 시·도민들은 서거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한 분을 잃었다”며 “생전에 수감생활, 해외 망명 등 숱한 고초를 겪었셨던 만큼 이제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셨으면 한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한나라당 대구시·경북도당=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한 분을 잃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누구보다도 민주화, 인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헌신해오셨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생전에 이루고자 했던 숭고한 뜻이 국민화합과 남북 평화로 승화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민주당 대구시·경북도당=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 평화통일, 중산층의 권익 보호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위대한 지도자다. 고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먼저 가시니 어버이를 잃은 것처럼 황망하고 허전하다. 민주당은 고인의 뜻을 계승해 민주주의, 남북통일,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자유선진당 대구시당=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한평생을 바치신 큰 별이 안타깝게 서거하셨다. 김 전 대통령은 한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하셨으며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었고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권도 분열과 갈등에서 벗어난 지역갈등을 없애고 화합하는 계기가 되어 우리 정치가 한층 성숙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창조한국당 대구시당=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통일, 그리고 경제발전을 위해 온몸을 던지신 한국현대사의 진정한 지도자였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그리고 애민애족의 정신은 후세에도 영원히 빛날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대립과 대결보다 화해와 협력으로 상생하는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를 꿈꾸었던 그의 꿈은 남은 자들에 의해 반드시 이룩될 것이다.◇이종용씨(57·교사·대구시 동구 신암4동)=“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깜짝 놀랐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민주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한국 현대사의 거목(巨木)이셨는데 이렇게 가셔서 너무 안타깝다”며 “부디 하늘나라에 가셔서도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애써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김미주씨(여·27·대학생)=“아직까지 김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났던 그 감격스런 장면이 눈에 선하다. 김 전 대통령이 남북화해를 위해 노력한 숭고한 뜻을 후손들인 우리가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면서 “생전 독재정권에 맞서 투옥, 수감생활, 해외 망명 등 숱한 고초를 겪어셨던 만큼 이제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셨으면 한다”고 했다.◇이용환씨(남·45·공무원)=“우리나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이룩하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 전 대통령의 업적과 뜻을 남아있는 우리들이 잘 이어나갔으면 한다”면서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이 바라셨던 남북 화해가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한다”고 전했다./사회1·2부

2009-08-19

DJ 입원부터 서거까지 투병 3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37일 동안 위험한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쾌유를 기원하는 가족과 지지자 등에게 희망을 줬지만 18일 끝내 병환을 이기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다.고인의 병세가 세인에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달 13일. 가벼운 열이 나는 등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입원했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85세의 고령임에도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직접 찾아 조문하는 등 최근까지 비교적 정정한 모습을 보였기에 김 전 대통령이 입원했다는 소식에도 많은 사람은 곧 회복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건강상태는 병원 바깥의 기대와 달리 매우 심각하게 악화했다.김 전 대통령은 입원 사흘 만인 지난달 15일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다음날에는 산소포화도가 처음으로 정상치를 밑도는 86%까지 떨어져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했다.다행히 며칠이 지나자 스스로 호흡할 수 있게 됐고, 7월 22일 인공호흡기를 떼고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회복 가능성을 보여줬다.안도와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반병실로 옮긴 바로 다음날 폐동맥이 막히는 폐색전증이 갑작스럽게 나타났고 김 전 대통령은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져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이때부터 심각한 고비가 잇따라 찾아왔다.상태는 날로 악화해 김 전 대통령은 7월29일 기관절개 수술을 했고 갑자기 혈압이 떨어질 때마다 의료진은 강심제 같은 약물을 투여해야만 했다. 이때부터 가족과 측근들은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김 전 대통령의 투병이 길어지자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물론, 과거 경쟁 또는 반목 관계에 있던 이들도 병상을 찾아와 극적인 `화해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다.8월 10일에는 평생의 맞수로 최근까지도 불화를 빚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문병와 화해의 손을 내밀었고, 14일에는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을 1980년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찾아와 쾌유를 기원했다.고인이 병실에서 투병하는 동안 여야 정치권 인사들은 물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시린 에바디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 세계 곳곳에서 800명이 문병하기도 했다.많은 사람의 간절한 바람에도 18일 오전부터 다발성 장기부전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의 혈압과 산소포화도는 크게 떨어졌고 오후 1시43분 한국 현대 정치사의 거인이던 고인은 끝내 운명했다./연합뉴스

2009-08-19

혈액투석 등 병고와 싸웠던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차례 사선을 넘나들면서 육체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말년에는 정기적으로 신장 혈액 투석을 받고 입원을 반복하는 등 고통을 겪었지만 꾸준히 대외 활동을 벌이는 등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강한 `인동초`였다.그가 처음 육신의 고통을 짊어지게 된 사건은 1971년 5월24일 벌어진 의문의 교통사고였다. 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전남 무안에서 지원유세를 하던 중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살해 기도 의혹이 일었던 이 사고로 그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왼쪽 다리에 고관절 장애를 입고 여생을 불편한 다리로 지내야 했다.유신 이래 5년반의 투옥, 3년여의 망명, 6년반의 가택연금으로 신체의 자유마저 온전히 누릴 수 없었던 그는 80년 5.17사태를 주도한 신군부에 의해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이처럼 수차례 생사의 문턱을 오르내렸던 김 전 대통령은 고문 후유증 탓인지 찬바람을 극도로 싫어해 한여름에도 경호원들이 에어컨의 찬바람을 막아야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네번째 도전만에 대선에 승리, 98년 2월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2년 4월 과로와 위장장애 등으로 국군 서울지구병원에 입원해 국민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2003년엔 관상동맥 확장시술을 받았고 이후 주기적으로 매주 세차례씩 신장 혈액 투석을 받아 왔다.또 국정원 도청사건으로 떠들썩하던 2005년에는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 증세 등으로 2차례 입원하는 등 건강 상태가 극도로 나빠지기도 했으나, 이후 잦은 병원 신세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외부 활동을 통해 여전히 자신의 건재를 알려 왔다.그러다 지난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충격으로 건강이 악화돼 영결식장에는 휠체어를 탄 채 등장했다. 당시 주변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구급차도 대기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김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특별강연회에서 현 정부를 비판하며 건강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듯 했으나 최근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결국 반평생을 괴롭혀 온 육신의 고통을 조용히 내려놓고 영면했다./연합뉴스

2009-08-19

`투자의 전설` 존 템플턴

존 템플턴(1912~2008)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투자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미국 남동부에 있는 테네시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하비 템플턴은 변호사 일 외에도 목화씨를 골라내는 공장을 운영하는 등 여러 사업을 했다. 덕분에 집안 형편은 비교적 넉넉했다. 존의 부모는 아이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자랄 수 있게 도와줬다. 먼저 아이들에게 충고를 한 적도 없었다. 행동이나 태도, 시간관념, 심지어 숙제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랬다. 물론 아이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대해서는 성의껏 대답해줬고, 검소한 생활, 아낌없는 기부 등으로 솔선수범을 보여줬다.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어린 형제를 데리고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 나서기도 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존은 형 하비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존은 이미 11세 때 전기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원 가꾸기, 천체 관측, 나비 채집, 사냥, 낚시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주 싼값에 물건을 사는 재주가 있었다. 12세 때의 일이다. 존은 마을 외진 곳에 고장 난 채 방치된 아주 오래된 자동차를 발견하고는 10달러에 산다. 그리고 똑같은 모델의 자동차를 한 대 더 구입한다. 차 한 대를 분해해 필요한 부품을 다른 자동차에 교체하기 위해서였다. 존과 친구는 반 년 가까이 자동차수리 지침서를 읽고, 기계정비공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한 끝에 마침내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차는 무려 4년이나 더 달렸다. 존은 성적이 매우 좋았다. 초등 1학년 때 존은 우쭐해져서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보여줬다. 모두 A였다. 아버지는 내기를 제안했다. 한 해 두 차례 받아오는 학기말 성적표가 전부 A라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면화 한 베일(bale· 한 꾸러미)씩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과목이라도 A 아래 점수를 받게 되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면화를 내놓아야 했다. 11년 뒤, 아버지는 아들에게 22베일의 면화를 빚지게 된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전과목에서 A를 받은 것이다. 1930년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템플턴은 예일대 경제학과도 수석 졸업하고 로즈 장학생에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간다. 다시 미국에 돌아온 그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만 달러를 빌려 당시 1달러 밑으로 폭락한 104개 주식을 100주씩 샀다. 이 중 34개는 부도가 난 상태였다. 그러나 꼭 4년 뒤 그의 투자액은 4배로 불어났다. 망한 회사는 단 4개였다. 1954년 그는 최초로 세계 주식에 분산 투자하는 `템플턴 그로스 펀드`를 만들었다. 1980년대 그의 주식 중 일부는 매입가보다 68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그의 투자원칙은 단순했다. `남들이 사면 팔고, 남들이 팔면 사는 것`이다. 이 역발상의 투자 철학은 그를 `투자의 전설`로 만들었다.생각 생각 ▶초등 1. 존 템플턴이 창안한 것으로 최초로 세계 주식에 분산 투자하는 펀드는 무엇인가요? 2. 존 템플턴의 투자원칙은 무엇인가요? 3.위 기사에 맞는 부제를 붙여 보세요.

2009-08-19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50년 정치인생을 마감하고 서거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궤적에는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이 수놓아져 있다.김 전 대통령은 때로는 치밀한 논리로, 현안의 핵심을 찌르는 표현으로, 때로는 화려한 수사로 좌중을 압도한 달변가이자 뛰어난 대중연설가였다.군사정권 시절 그가 남긴 말들은 쉽사리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채 `옥중서신` 등을 통해 재야 및 운동권 인사들 사이에서 `조용히` 퍼져갔다.이후 사면·복권으로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온 87년 이후 쏟아진 거침없는 발언들은 그를 지탱해준 최대의 정치적 무기였다.“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현미경처럼 치밀하게 보고 망원경처럼 멀리 봐야 한다” 등은 그가 생전에 즐겨 쓰던 문구들이다.“정치는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과도 같다”는 표현은 그가 몸담았던 한국 현대 정치사의 역동성을 대변하며 지금까지도 정치권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92년 대선운동 과정에서는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이라는 감성적 수사로 표심을 자극했다.97년 `준비된 경제대통령`이라는 구호로 대권 도전 4수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햇볕정책`, `제2의 건국` 등으로 자신의 통치철학을 드러내기도 했다.김 전 대통령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언급해가며 강조하고자 하는 새로운 주제를 하나씩 추가해 나가는 `얼레(reel) 화법`을 구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연합뉴스

2009-08-19

반세기 정치역정… 한국 현대사 질곡 투영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삶후광(後廣)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통일운동과 민주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목(巨木)이었다.“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그가 헤쳐나간 반세기 정치역정에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오롯이 투영돼 있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향한 의지는 투옥과 연금, 망명의 고통을 딛고 마침내 인동초(人冬草)처럼 피어올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이란 열매를 맺었다.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가 놓지 못했던 남북화해라는 화두는 미완의 유업으로 남았다.■섬소년에서 정치인의 길로김 전 대통령은 목포 앞바다에 솟아있는 섬, 하의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가 전답을 팔아 뒷바라지해 준 덕분으로 목포로 유학,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합격했다.졸업 후 강제징집을 피해 일본인이 운영하던 해운회사에 취직했다 해방 후 이 회사 관리인으로 사업수완을 발휘, 목포일보까지 경영하는 등 청년실업가로 성장했다.그는 해방공간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이 좌우익을 망라해 구성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 좌익계열이 주도권을 잡자 환멸을 느껴 탈퇴했다. 그러나 건준에 몸을 담은 이력은 그를 평생 `색깔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 멍에였다.54년 실시된 제3대 민의원 선거 때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쓴 잔을 마신 그는 56년 장 면 박사가 이끌던 민주당에 입당, 본격적인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64년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 때에는 본회의장에서 5시간19분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연설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해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40대 기수론에서 6월 항쟁까지71년 첫 대선 도전에서 97년 4수 끝에 최고 통치권자에 오르기까지 36년간의 대권 도전사는 좌절과 재기의 반복이었다.67년 7대 총선에 당선된 뒤 그해 5월 한평생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원내총무 경선에서 첫 대결을 펼치지만 고배를 마셨다.그러나 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철승 의원의 막판 지원으로 YS를 누르고 이듬해 대선에 나섰으나 박정희 대통령에게 95만표차로 석패했다.그의 대권 도전은 야당의 대표 정치인으로 도약한 계기가 됐지만 긴 가시밭길에 들어서게 만든 원인이 됐다. 박정희 정권이 정적으로 지목, 탄압을 본격화한 것이다.유신이 선포된 72년부터 87년 6.29 선언까지 17년의 시간은 납치와 망명, 투옥, 연금으로 점철된 암울했던 시기였다. 73년 일본 도쿄에서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납치돼 수장당할 뻔했으나 미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74년에는 명동성당에서 `3.1 민주 구국선언`을 주도했다가 3년간 복역한 뒤 가택연금을 당했다.79년 10.26 사태로 복권, 정치일선에 컴백했지만 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다시 민주화의 꽃을 피우려던 그의 꿈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무산됐고,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이후 군사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사형에서 무기, 무기에서 20년형으로 감형돼 죽음의 그림자에서 또 한 번 벗어났지만 82년말 미국으로 쓸쓸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양김 분열 후 정권교체까지그는 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YS와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평민당을 창당해 출마했다. 당시 YS로 단일화될 경우 민주진영의 정권교체가 보다 유력시되는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끝내 권력욕 앞에서 갈라졌다.대선에서 노태우, 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치면서 민주진영으로부터 지역주의에 기댄 야권 분열의 책임자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김 전 대통령 스스로도 훗날 “당시 내가 후보직을 사퇴하는 게 옳았다”고 회고했다.92년 12월 대선에서 YS에게 패해 대권 3수에 실패하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홀연히 영국 유학을 떠났다. 곡절 많은 정치인생에 마침표가 찍히는 듯한 순간이었다.93년 7월 귀국한 김 전 대통령은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통일운동에 전념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다 95년 7월18일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호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정치전면에 복귀했다. 우여곡절 끝에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 정권의 최대 실세였던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와 손잡았고, `DJP 공조`는 외환위기를 맞아 `준비된 대통령` 탄생을 갈망하는 국민 여론을 타고 정권교체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DJ정부 출범… 불운했던 말년국민의 정부 5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선 승리의 감격을 누릴 여유도 없이 당선 다음날부터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김대중 정부는 5년 동안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분단의 벽을 허물어 남북화해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집권세력 내부의 갈등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견제,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측근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YS처럼 조기 레임덕에 빠지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퇴임후 그는 외부활동과 정치적 발언을 통해 건재를 과시했다.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사태가 터지자 “북미관계가 안 돼서 진전을 하지 못한 것”이라며 햇볕정책 책임론을 반박했고, 2007년 대선 전에는 여당의 대통합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그의 `한마디`는 퇴임 후에도 민주당과 전통적 지지층에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관계가 위기에 빠졌다고 비판하면서 민주개혁세력의 연대를 주문하는 등 왕성한 정치활동 때문에 현실 정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는 등 대정부 투쟁의 선봉에서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연합뉴스

2009-08-19

“큰별 졌다”… 전국 애도 물결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서거하자 전국 각지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3김 정치`를 직접 경험했던 노·장년층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는 물론 영·호남 등 지역을 막론하고 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부산공동어시장에서 일하는 박수만(60)씨는 “우리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고 민주화에 헌신했던 분이 갑자기 서거했다고 하니 무척 울적하다”고 슬퍼했다.소상공인 이형진(56·경기 안양)씨는 “이 시대의 국가원로를 잃어 너무 슬프다. 노 전대통령에 이어 이번에도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을 계획”이라며 “기업을 하면서 `김대중 정권`의 정책에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대화와 민족공존의 정신을 높이 산다”고 평가했다.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취약지`였던 영남 지역도 안타까움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울산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최성길(47)씨는 “여러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지면서도 매번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 결국 대통령이 된 분”이라며 “이런 강한 의지는 국가원수로서 큰 귀감”이라고 말했다.부산에서 지난 20여년간 `영원한 DJ맨`의 길을 걸어온 정오규(48) 전 통합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도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빛을 밝혔다”면서 “정치적 아버지와 같은 분이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김태일 영남대 정치행정대학장은 “김 전 대통령은 지역발전을 위해 밀라노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대구·경북 지역에 대해 끊임없이 애정을 표현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지역간 편견이 없어지고 국민이 진정으로 손잡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희망했다.민주화와 남북대화 등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을 평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이광호(56) 부산 민주공원 관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냄으로써 남북의 화해와 협력,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말했다.경기 안산 탈북청소년 생활공동체 `우리집`의 최경숙(45·여) 총무는 “`우리집`은 김 전 대통령 재임 때인 2001년 남북을 잇자는 의미에서 `다리공동체`란 이름으로 시작됐다”면서 “남북화합과 평화통일에 애쓴 거목이 쓰러져 안타깝다”고 슬퍼했다.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전남 지역의 슬픔은 남달랐다.광주 지역 대표적 재야 원로인 조비오(71) 신부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더 해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면서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발전, 남북교류와 통일의 기틀을 닦은 `평화 지도자`였다”고 회고했다.김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창인 박홍수(87)씨는 “고난의 세월을 이겨온 강한 친구라 병마를 떨치고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다니 허망하기 그지없다”고 흐느꼈다.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전까지 1년 남짓 살았던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동 3통 권영숙(56·여) 통장은 “대통령과 한동네에서 살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면서 “좀 더 오래 사시길 바랐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남기헌(50) 충청대 행정학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으로 인해 한국이 세계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고 평가했다./연합뉴스

2009-08-19

양동 민속마을을 다녀와서

어느덧 봄이 가고 여름을 알리는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햇살을 시원스레 적셔주는 단비였다. 커다란 두 개의 산이 앞뒤로 지켜주는 양동마을은 현대문명의 손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우리의 멋을 한껏 살린 마을이다. 양동마을은 초가집과 기와집의 단조로움이 어우러져 마을을 아늑하게 느껴지게 했다. 아름다운 이 마을이 오늘 우리가 봉사하게 될 장소이다. 사무장님께서 양동마을에 대한 깊은 역사를 말씀해 주셨다. 내가 고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무장님의 말씀은 나의 관심을 끌었다. 내가 양동마을의 매력 속으로 깊게 스며들어갈 때 쯤 어느덧 비는 그쳤다. 우리는 각 조마다 쓰레기 봉지를 들고 마을의 정화를 위해 양동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께서 이 마을에 처음 오시는 거라서 길을 많이 잃기도 했지만 덕분에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 까지 청소 할 수 있었다. 청소를 하면서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조상들의 자취와 전통이 깃들어진 우리고유의 문화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다. 봉사를 하면서 바라본 양동 민속마을은 옛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고유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줄줄이 늘어선 초가집과 기와집, 그리고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논과 밭이 마을의 정겨움을 연출해 냈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마을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한 손 씨 집안의 종가집이다. 양동민속마을의 꽃이라고 할 만큼 대표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종가집의 수백 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토담은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전통적 운율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건물구조는 복잡했고 구경거리도 많이 있었다. 특히나 부엌이 인상 깊었는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공간이 따로 있었고 너무 폐쇄적인 구조였던 것 같았다. 음식저장 공간도 마치 감옥 같았다. 매일 교과서에서만 보던 내용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많이 신기했다. 곳곳마다 사진을 찍고 구경을 했다. 또한 쓰레기를 줍는 환경미화활동도 잊지 않고 열심히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다행히도 쓰레기가 많이 없어서 봉사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잘 보존 되어있는 마을 덕분에 봉사를 하면서 많은 역사를 탐험 할 수 있어서 봉사하는 마음 뿐만 아니라 역사지식도 많이 얻은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의 보수적인 면에서 많이 놀라기도 했지만 조상들의 지혜에 감동받았다. 조상의 얼에 한껏 빠지기도 했고, 아름다운 마을의 정경에 적셔 들기도 했다. 두 번째로 오는 양동마을, 아침부터 촉촉한 단비가 내려 봉사활동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양동마을에서 느껴지는 고묘한 한국미에 심취 한 것 같다.

2009-08-19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18일 오후 1시43분 다발성 장기부전으로제15대 대통령이면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께 향년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연세세브란스병원 측은 이날 폐렴 증세로 37일째 입원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밝혔다.병원 측은 김 전 대통령이 1시35분경 심장이 정지했고,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40분께 다시 심장이 뛰었으나 3분후인 43분께 서거했다고 전했다.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 증세가 호전되면서 같은달 22일 일반병실로 옮기기도 했었다.그러나 바로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해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로 치료를 받아왔다.유족으로는 부인 이희호 여사와 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씨 등이 있다.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박창일 연세대학교 의료원장은 2시 35분께 기자회견을 열고 김 전 대통령 서거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박지원 의원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서거했다”고 밝혔다.이어 박 의원은 “쾌유를 빈 국민과 의료진에 감사한다”면서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특1호실에 임시 빈소를 마련해 이희호 여사 등 가족과 정부와 잘 조율해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모시겠다”고 말했다.박 의원은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이 있었냐는 질문을 받자 “여사님께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이어 박창일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오늘 오후 1시43분 서거하셨다”면서 “7월13일 폐렴으로 입원하셨지만 마지막에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서 심장이 멎으셨고 급성호흡곤란 증후군과 폐색전증 등을 이겨내지 못하셨다”고 말했다.박 원장은 김 전 대통령 서거 원인은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 폐색전증, 다발성 장기부전증 등의 증세”라고 밝힌 뒤 임종 직전 “사실상 심폐소생술이 의미없는 단계였기 때문에 심폐소생술 등의 조치는 실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09-08-19

“우주강국 코리아” 발사준비 끝

나로호 발사대로 이동·19일 오후 카운트다운… 성공 기대감 고조 “우주강국 코리아! 힘찬 발걸음을 떼다.” 우리 땅에서 우리 힘으로 쏘아올릴 `나로호(KSLV-1)`의 힘찬 발걸음이 시작됐다. 17일 오전 8시15분 약한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 조립동 문이 활짝 열리자 나로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흰색 바탕에 자랑스러운 태극 마크와 `대한민국 나로`를 몸에 새긴 나로호는 느리지만 힘차게 첫 걸음마를 했다. 진동을 방지하는 특수이동차량 2대에 실린 나로호는 무인 조종으로 조립동에서 1.5km 떨어진 발사대로 이동했다. 조립동을 나와 1시간30여분만에 발사대에 도착한 나로호는 연료공급선 및 시스템 운용을 위한 최종 점검을 거쳐 19일 오후 4시40분부터 역사적인 발사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게 된다. 이날 나로우주센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안개가 낀 가운데 약한 안개비가 내려 연구진들을 긴장시키기도 했지만 나로호가 이동할 때에는 성공적인 발사를 예고하듯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살이 비치기도 했다. 나로호가 발사대로 이동해 사실상 발사 준비에 들어간 가운데 나로우주센터 주변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나로우주센터 앞 봉래면 진입도로에는 경찰 차량이 나와 검문 준비에 들어갔으며 나로우주센터 입구는 군·경 통제선이 설치돼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육상은 물론, 나로우주센터 앞 해상과 상공도 일반 선박과 항공기의 출입이 제한되는 등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나로호 발사가 임박해옴에 따라 발사 성공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나로우주센터 인근 봉래면과 고흥읍내 곳곳에는 `성공발사`를 기원하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으며 휴가철을 맞아 우주센터를 찾는 관람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부산에서 가족들과 함께 나로우주센터를 찾은 문선옥(37·여)씨는 “아이들과 우주과학관을 보러 왔는데 구경을 못해서 아쉽다”며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돼 우리나라가 우주강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리나(10)양은 “TV에서만 보던 나로호를 모형이지만 직접 보니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며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로호는 19일 오후 4시40분에서 6시20분 사이에 발사되며 지상과의 첫 교신은 발사된 지 12~13시간 지나 이뤄질 전망이다./연합뉴스

2009-08-18

이환진 포항시 경제통상과장

“포항, 글로벌 도시 새롭게 자리매김 기대”18~21일 한·중·일·러 `환동해 거점 도시회의`영일만항 홍보·도시야경 관광 해상투어 마케팅 18일부터 21일까지 포항에서 한·중·일·러 4개국 11개 도시가 참가한 가운데 열리는`제15회 환동해거점도시회의`는 극동 아시아 역내에서 포항을 글로벌 도시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는 8일 개항한 포항영일만항 홍보 및 마케팅에도 매우 시의적절한 호재로 꼽히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10월 월드옥타 한국대회 개최에 이어 중요한 국제행사를 잇달아 치르고 있는 이환진사진과장 등 포항시 경제통상과 실무진의 활동이 돋보이고 있다. -이번 행사의 의의는?▲포항이 그 동안 지향해온 글로벌 도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국제적인 위상이 먼저 구비돼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환동해는 물론 세계로 열려 있는 국제 교역항인 영일만항의 개항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도시에 눈을 그려넣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국내에서 자축하는 데서 나아가 이번 행사는 극동 아시아 국가들에 영일만항과 포항을 홍보하고 항만 세일즈를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대회를 준비하며 어려웠던 점은?▲참가국 섭외 면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시가 경제 위기로 인해 대회 직전까지 참가 여부가 불투명했던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에도 러시아는 일본 개최 도시인 요나고시에서 참가 경비 전액을 부담한 바 있다. 블라디보스톡은 특히 지난해 부터 포항시가 영일만항 정기항로 개설을 위해 공을 들인 곳인 만큼 포항시의 실무진이 참가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핫산 등 러시아 내 대체 참가도시도 물색했다. 다행히 국제행사에 반드시 필요한 컨벤션 문제는 필로스호텔이 개관해 무난히 해결됐다. 지난해 10월 개최한 월드옥타대회 당시 호텔이 없어 북부해수욕장의 모텔을 모두 동원했던 상황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번 대회 일정과 맞추기 위해 호텔 측과 보수 및 재개관 일정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협의를 진행해 왔다.-외국인 행사이므로 문화적 차이도 고려해야 할 텐데.▲중요한 문제이다. 다행히 조선족들이 다수 거주하는 훈춘, 도문, 연길 등 중국의 도시와는 언어적 어려움이 별로 없다. 음식문화도 마찬가지인데 일본도 이점에서 수월한 편이다. 행사 일정 중 오찬에 포항물회도 내놓을 계획이다. -역대 대회와 비교해 포항시가 이번에 내놓을 행사 기획 포인트는 무엇인지.▲국제 정상회의처럼 공식만찬 자리에서 단체장들에게 전통한복을 착용케 할 계획이다. 포항야경을 즐길 수 있도록 행정선 2대를 이용해 형산강에서 두호동에 이르는 해상투어도 준비하고 있다.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09-08-18

일흔네번째 안부 - 우리는 한 배를 탔다

집을 떠나온 지 아흐레째, 한국해양대학교 실습선 한바다 호를 타고 울릉도로 가고 있습니다. 물결에 조금씩 기우뚱거리는 책상에 앉아 그대에게 편지를 쓰는 지금, 스탠드 불빛 아래 작은 시간은 자정을 조금 지나고 있네요. 오후 10시25분 마산 항을 출발, 오색 불빛 찬란한 마창대교 아래를 유유히 지나 두 시간 남짓 만에 멀리 부산 동두말등대를 만났습니다. 바다에서 보는 부산의 밤 풍경에 괜스레 마음 벅차고 물결에 환하게 길을 낸 달이 너무나 고운 탓에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의 고단함이 스르르 지워지네요. 그간의 일정을 돌아보니 참 다난했습니다. 1박이 예정되었던 백령도에선 다행히 해병대 극기 훈련은 마쳤지만 태풍의 기운이 몰고 오는 파고 때문에 장병들과의 시간을 뒤로하고 부랴부랴 다시 배에 올라야 했지요. 다시 긴 시간 흘러 평택항으로 돌아와 장대비 쏟아지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목포에 닿았구요. 목포해양대학교 새누리호에서 잠을 자고는 다음날은 해남으로 여수로 발걸음 옮기며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뜨겁게 스며들었지요. 손을 잡고 일을 돕고 특산물을 찾아다니며 영상에 담아 섬을 지나면 또 섬인 시간을 흘렀네요. 제주에서는 애광원을 찾아 지체장애 원생들과 삼성중공업을 찾았을 때는 우리나라 조선업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푸릇푸릇한 청년들의 지치지 않는 열정 속에서 아, 저에게도 새로운 힘이 솟아 나는 걸 느꼈습니다. 함께 가고 싶었지요. 함께 흐르고 싶었지요. 당당하게 모든 보폭을 맞추며 뜨겁고 아득한 여름을 지나고 싶었습니다. 104명의 대학생과 보도진 그리고 도중에 합류하였다 내리는 응원자들. 왼쪽 가슴에 새겨진 `우리는 한 배를 탔다`는 로고를 새기고 또 새기며 지칠수록 손을 내밀고 잡으며 함께 가는 해양영토대장정. 이제 내일 오후엔 울릉도에 닿아 해안 순례를 하고 모레는 성인봉에 올랐다가 독도로 들어 갈 일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내 나라 바다를 느끼고 해양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그에 대한 방책을 논의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배를 타고 희망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2009-08-18

`나로호` 카운트다운… `우주 강국` 희망 쏜다

드디어,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가 오는 19일 전남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다. 이번 나로호 발사는 `우리 땅에서 우리 위성을 우리 발사체`로 쏘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나로호 발사를 사흘 앞둔 16일 “현재 나로호는 1, 2단 로켓이 완전 조립되고 과학기술위성 2호도 탑재된 상태”라며 “나로호는 발사 54시간 전인 17일 발사대로 이동해 이렉터를 이용해 수직으로 세워져 발사대에 고정된 뒤 발사 하루 전인 18일 최종 리허설이 실시된다”고 밝혔다. 나로호의 발사시간은 19일 오후 4시40분부터 약 2시간 이내로 잡혀 있다고 교과부는 전했다. 교과부는 발사를 위한 최종 준비 상황과 발사 당일의 기상조건에 따라 발사가 연기될 수 있음을 고려해 오는 26일까지를 발사예비일로 설정했다.`이제는 우주기술 자립`한국형발사체 KSLV-II 개발 시동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가 오는 19일 발사되고 나면 같은 모델로 내년 4월 나로우주센터에서 두번째 시험발사된다. 이후 정부는 항공우주 기술자립에 초점을 맞춘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본격화한다. 먼저, 우주기술 개발의 자립화를 위해 핵심기술 확보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우주개발 사업을 통해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기술을 자립화할 수 있도록 위성체와 발사체 추진 일정 및 전략을 재조정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또한 대학의 기초기술연구 지원을 확대해 원천기초 연구능력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오는 2016년까지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기간에 총 3조6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특히 나로호에 이어 한국형발사체(KSLV-II) 개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다. 이는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저궤도에 발사할 수 있는 발사체 개발 및 발사를 말하며 오는 2018년까지 10년간 진행될 예정이다./연합뉴스

2009-08-17

운명의 19일 16시 40분… 미리보는 발사 순간

온 국민이 기대감에 부풀어 숨죽이며 지켜볼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의 실제 발사진행 과정을 미리 보면 어떨까. 일단 나로호의 발사 시점은 오는 19일 오후 4시40분부터 2시간 이내로 잡혀 있으며 당일 기상조건 등을 감안해 구체적 발사 시점이 정해질 예정이다. 발사를 위해서는 먼저 발사 예정일로부터 최소한 사흘 전(D-3)에는 발사체 조립과 관련한 모든 작업이 완료된다. 1단 액체 엔진과 2단 킥모터(고체모터)로 구성된 2단형 발사체인 나로호는 이때까지 고체모터동에서 상단부조립, 위성시험동에서 위성조립, 발사체 종합조립동에서 1, 2단 발사체 조립 등의 과정을 각각 거치게 된다. 모든 조립이 완료된 발사체는 발사 54시간 전에 트랜스포터를 이용해 발사대까지 이송된다. 이동은 수평으로 실시하며 이후 이렉터를 이용해 나로호를 수직으로 세워 발사대에 고정시키게 된다. 나로호가 발사대에 설치되고 나면 발사를 위해 나로호의 연료와 전기 계통을 중점적으로 점검하는 등 모든 부분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발사 하루전(D-1) 나로호가 장착된 상태에서 최종 리허설을 실시하게 된다. 이어 발사 약 4시간 전부터는 발사대 기계와 공급장비를 연결시켜 1단 발사체에 쓰일 연료(등유)와 산화제(액체산소) 주입, 고압가스 충전을 위한 절차가 시작되는데, 주입과 충전 개시가 결정되면 모든 발사준비는 사실상 끝나게 된다. 이어 발사 예정 시간 18분전 실제 발사를 할 것인지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 이후 발사 예정시간까지 모든 기기가 정상 상태를 유지하고 기상 상태와 주변 환경 역시 발사에 이상이 없을 경우, 발사 15분 전부터 자동 발사기능이 작동하면서 최종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이륙과 음속돌파, 페어링 분리, 1단 분리, 위성 분리까지 자동화 시스템하에서 `비행 시퀀스`가 진행된다. 발사 준비 및 발사는 발사지휘센터(MDC)와 발사체 통제센터(LCC)가 있는 발사통제동(MCC)에 모든 상황을 총괄 지휘한다. 발사 후 200여초 뒤 위성을 감싸고 있던 페어링이 떨어져 나가고 발사체 1단이 분리된다. 이후 고도 200㎞쯤에서 2단 킥모터(고체연료 엔진)가 연료를 다 태우고 난 뒤 100여초 후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가 분리된다. 이 시점에서 나로호 발사의 성공 여부는 확인된다. 과학기술위성와 지상국(대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과의 첫 교신은 발사 후 약 13시간 뒤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연합뉴스

2009-08-17

공원식 경북도 낙동강 살리기 사업추진본부장

“홍수·가뭄·물부족·물오염 한꺼번에 해결” 영주댐·보현댐·안동~임하댐 연결 용수 10억t 확보9월중 보상 착수·10월 부지매입 완료후 12월 착공생명이 깨어나는 강, 낙동강 등 4대강이 살면 새로운 대한민국시대가 열린다.고 박정희 대통령이 녹화사업으로 대한민국을 일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치수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경북도는 전국 최초로 낙동강 살리기 사업 추진본부를 출범시키는 등 발빠른 대처를 하고 있다.공원식(경북도 정무부지사)사업추진본부장을 만났다.-4대강 살리기, 특히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주요내용은?▲4대강 살리기의 한 축인 낙동강 살리기 사업을 `경제와 환경을 모두 살리는 한국형 녹색뉴딜사업`으로 즉, 낙동강 살리기는 홍수와 가뭄, 물 부족, 물 오염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하천복원 프로젝트`,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고 생태환경을 조성하는 `환경복원 프로젝트`,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를 만드는 `경제발전 프로젝트`, 새로운 여가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발전 프로젝트`의 4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먼저 보 설치(8개소), 중소규모댐(영주댐, 보현댐, 안동~임하댐 연결) 건설, 농업용 저수지 증고(19개소)로 용수 10억t 가량을 확보할 수 있는 물 확보사업입니다.둘째 하도·환경정비(259㎞), 배수문·양배수장(77개소), 도류제(2개소) 설치, 교량보호공(29개소) 설치 등으로 홍수조절용량을 6억t을 증대하는 사업입니다.마지막으로 제방 등을 활용한 상하류를 연결하는 자전거도로(315㎞) 건설 등 강중심의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복합공간창출사업입니다. -사업은 어떻게 추진하고 기대효과는?▲하천부지 보상, 준설토 처리 등과 관련한 민원에 적절히 대응하고 이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환경평가, 문화재 조사 등 사업추진 과정 역시 법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마지막으로 사업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수질 오염, 사고 발생, 취수 및 정수대책, 생태계 훼손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관리해 나가겠습니다. 지난 10년간 홍수 등으로 발생한 재해 피해액이 6조8천억원, 복구비가 11조원 투자됐습니다. 이번 낙동강 살리기 사업으로 홍수와 재해를 근원적으로 막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낙동강 살리기는 경북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획기적 전기(轉機)가 될 것입니다. 현실적인 경제측면에서 보면 위기에 처한 지역건설업을 구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낙동강 살리기의 전체 사업비는 9조 8천억으로 이 가운데 경북지역 사업비는 5조 4천억원 정도입니다.-사업기간과 예산규모 등은?▲사업기간은 낙동강살리기 본사업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며, 댐과 저수지는 2012년까지 완료합니다. 예산규모는 4대강 살리기 사업비중 본사업비는 16조 9천억원으로 낙동강 살리기사업비는 9조 8천억원이며, 그 중 경북도가 차지하는 사업비는 5조 4천억원입니다. 그리고 지류하천, 수질개선사업 등 직접연계사업 5조3천억원과 부처별 연계사업은 별도입니다.-하천공사, 보상 등 분야별 향후계획은?▲하천공사는 두가지로 나누어 국가발주 턴키공사는 현재 설계용역중으로 10월초 발주하고 경북도가 추진하는 일반공사는 9월말 설계를 완료. 10월 입찰공고를 하고 11월중 착공합니다.보상은 1단계 물건기본조사가 완료하고 8월 공람공고를 거쳐 9월중으로 보상에 착수하겠다. 농경지 리모델링은 8월중으로 리모델링 대상지를 조사완료하고, 10월 실시설계 및 부지매입을 완료, 12월 착공할 계획입니다. /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09-08-17

지구 저궤도 진입하는 `나로호` 어떻게 구성됐나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는 100㎏급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를 지구 저궤도(지상 300~1천500㎞)에 진입시키는 발사체다. 1단 액체 엔진과 2단 킥모터(고체모터)로 구성된 2단형 발사체로 1단은 러시아와 공동으로 개발했으며, 2단은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했다. 나로호의 총중량은 140t 규모이며, 총길이와 직경은 각각 33m와 2.9m다. 나로호 발사체 1단부(하단) 액체추진기관은 연료로 등유(케로신)를, 산화제로 액체산소(LOX)를 각각 사용한다. 터보펌프 방식의 추진제 공급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추력은 170t급이다. 액체산소 산화제를 싣고가는 이유는 우주발사체가 공기가 희박한 대기권 밖을 비행해 나가면서 등유를 태우는 데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액체산소는 130t의 무게가 나가는 추진제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전체 로켓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액체 엔진 로켓은 액체상태의 연료 및 산화제를 연소실로 각각 분사한 후 혼합시켜 연소시키며 추력을 얻는다. 구조가 비교적 복잡하며 소요되는 구성 부품이 많으나 추진력이 크기 때문에 대형 발사체의 주엔진으로 많이 사용한다. 추력 8t급의 발사체 2단부(상단) 고체추진기관은 고체 킥모터 1기를 사용하고 있다. 고체 연료 로켓은 연료와 산화제가 혼합된 고체 형태의 추진제를 사용하고 부품 수가 적고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제작성이 좋아 대형 발사체의 보조추력 장치로 사용된다. 발사작업이 비교적 간단하고 신속성을 갖춰 군사용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공기 저항이 심한 지구 상공 40~70㎞까지는 추진력이 강한 액체로켓을 사용하고, 이어 고체로켓을 점화시켜 소형 과학기술위성 2호를 타원 궤도에 올리게 되는 것이다. 나로호에 실려 발사되는 과학기술위성 2호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광주과학기술원 등이 공동 개발했다. 2년 동안 경사각 80도로 지구 저궤도를 돌게 될 과학기술위성 2호는 프레임 타입의 위성구조체다. 이 위성의 크기는 615x673x898㎜이고 무게는 99.4kg급 소형위성이다. 또 이 위성은 복합소재 태양전지판, 이중머리 별추적기, 디지털 태양센서, 펄스형 플라즈마 추력기, 소형위성용 탑재컴퓨터, X-밴드 송신기 등 다양한 핵심 위성기술과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 주탑재체와 레이저반사경 부탑재체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는 물체에서 방사되는 마이크로파 대역의 자연 에너지(잡음신호)를 초광대역, 저잡음, 고감도 수신기를 이용해 물체의 밝기온도를 검출하는 주 시스템이다. 이는 우주용 2개 주파수를 통해 마이크로파 대역에서의 지구의 밝기온도를 측정, 지구의 수증기 양, 구름 속의 물 함유량 등을 산출함으로써 기상관측을 수행한다./연합뉴스

2009-08-17

한국 첫 우주발사체 성공 확률은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 발사가 오는 19일로 확정되면서 이제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50년대 이래 1990년대까지 세계 곳곳에서 이뤄진 우주발사체 발사의 통계를 보면 전체 4천379건의 발사 시도가 있었으며 발사 성공률은 91.1%로 집계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처음으로 과학기술위성 2호를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키는 나로호 발사와 마찬가지로 해당국에서 첫번째로 위성을 발사했을 때의 성공률은 27.2%에 불과한 실정이다. 역대 자국 땅에서 자력으로 위성을 쏘아 올린 우주클럽(Space Club) 9개국 가운데서도 첫 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옛 소련), 프랑스, 이스라엘 3개국 정도다. 이번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나로호는 러시아 측이 1단 로켓, 우리가 2단 로켓 개발을 맡는 등 한국-러시아 공동으로 개발, 완료됐으며 이번에 첫 시험발사 단계에 와있다. 이와 관련해 나로호의 핵심적인 기술인 1단 로켓을 개발한 러시아의 발사 성공률은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는 195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 통계치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우주발사체 발사 시도(2천770건) 및 가장 높은 발사 성공률(93.5%)을 자랑한다. 같은 기간 미국의 경우 러시아의 절반 정도인 1천316건의 우주발사체 발사 시도가 있었고 성공률은 87.5%다. 나라호 개발 및 발사 수행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조광래 발사체연구본부장은 16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나로호 발사 성공확률과 관련해 “발사 시스템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발사를 위한 최종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며 “여러 시험을 거쳤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09-08-17

“실패는 없다” 나로호 막바지 준비

“우주강국 코리아를 향한 힘찬 발걸음...실패는 없다!”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1)` 발사를 사흘 앞둔 16일 한국 우주 역사를 새로 쓸 전남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나로우주센터는 발사를 위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 기술로 만든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를 우주로 쏘아 올릴 발사체의 조립은 이달 초 이미 마쳤고 현재는 조립동에서 최종 점검을 진행 중이다. `나로호`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발사 성공에 대한 기대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패는 없다”..최종 점검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는 `나로호` 상단부와 위성에 전력을 공급할 배터리를 충전 중이며 17일 발사체 이동을 위한 막바지 점검이 한창이다. 150여명의 연구원들은 휴일도 잊은 채 막바지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나로호` 발사일이 지난달 30일에서 이달 11일로 연기됐다가 다시 19일로 조정되면서 발사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연구원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발사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는 발사체를 발사대로 옮기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으며 날씨 등 큰 변수가 없으면 17일 발사대로 이동할 계획이다. 발사체는 17일 오전 조립동을 나와 1.5km 떨어진 발사대까지 진동을 방지하는 특수 이동차량 2대에 실려 옮겨진다. 나로우주센터 관계자는 “발사체 조립 등 사실상 발사를 위한 준비는 완료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연구원 모두 만반의 준비를 마친 만큼 성공적으로 발사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발사 성공` 기대에 부푼 나로도광복절이자 휴일인 15일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에는 관람객 5천여명이 다녀갔다. 7월부터 휴가철을 맞아 우주과학관에는 평일에도 평균 1천여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가족단위로 우주과학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나로호` 모형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가 하면 우주과학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발사 성공을 기원했다./연합뉴스

2009-08-17

김법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

“`의료메카` 첨복단지 조성 지금부터가 시작” 해외환자 유치·글로벌 협력 강화로 의료산업 선진화 주력화장품 산업·신약·국산의료기기 개발 등 RD사업 지원첨단의료복합단지 대구 선정은 `저력있는 도시` 입증한 것경북 의성출신의 김법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은 최근 몇달동안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때문에 눈코 뜰새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대구 신서혁신도시와 충북 오송의 공동 선정으로 결론난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에 심사위원 8명을 선임했을 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산하 출연연구기관장으로서 의견도 개진해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경북출신 기관장이란 이유로 애꿎은(?) 오해도 적지 않았지만, 김 원장은 “대구·경북이 지난 정부때 소외됐던 점을 부인할 수 없으며, 대구의 의료인프라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객관적으로 봐도 대구가 선정된 것은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동아일보에서 선정한 비뇨기과(비뇨기종양부문) 명의로 뽑히기도 한 김 원장을 만나 학창시절부터 최근의 보건산업진흥원 얘기까지 들어봤다.편집자주 -어릴 때 고향에서의 추억이나 별명 등 학창시절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고향은 경북 의성인데 초등학교때 대구로 이사와서 삼덕초등학교를 다녔고, 경북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학창시절 별명은 법완이란 이름이 특이해 비슷한 어감이었는지 `뽀빠이`란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그 시절에는 등산을 즐겼고, 운동으로는 태권도를 했습니다. 등산도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는 정도로 좋아해서 백두대간 산행도 여러 번 했습니다. 한국산악회 모임에도 35년째 참여하고 있죠. 태권도는 대학교 2학년때까지 했습니다. (“몇단까지 땄느냐”는 질문에 그는 “몇단이라고 밝힐 것까지 없고 3단 이상”이라고만 했다). 요즘 취미는 자전거타기와 주말농장 가꾸기인데 주말농장은 벌써 8년째 참여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길로 들어 선 계기가 있었는 지 궁금합니다. ▲4형제 가운데 제일 큰 형님만 사업을 하고, 바로 위인 보완형이 경북대 내과교수로 있고, 아래인 동생 정완은 최근까지 치대교수로 있다가 개원한다고 퇴직했습니다. 또 집안에 사촌이내에만 10명이 넘는다고 하면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형제의 아들이 모두 9명인데 그 중에 6명이 의사가 됐으니 2대에 걸쳐 의사들이 많이 난 셈입니다. 제가 비뇨기과 의사가 된 것은 집안 분위기상 자연스럽게 의사의 길로 접어들게 되면서 됐다고 해야겠죠. 누가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요. (그의 부친은 경북대에서 역사과 교수로 재직했던 김영하씨로 지난 2007년 작고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어떤 기관인지 소개하신다면.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서 RD의 70%를 관장하는 지원기관이며, 보건복지부 정책의 78%를 제공하는 보건복지부 출연 연구기관입니다. 의료나 화장품 등 국내 보건산업 육성을 위해 10년전 설립된 기구로 최근에는 해외 환자유치사업과 글로벌협력프로젝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취임한 지 이제 1년남짓인데 취임후 가장 주력한 사업이나 현안은 어떤 것입니까. ▲보건산업진흥원의 목적인 의료산업 선진화를 위한 것이니 만큼 해외환자 유치사업과 공공의료 활동, RD자금 배가 등에 주력해 왔습니다. 특히 해외환자 유치는 지난해 1만7천명에서 올해는 8만명으로 급증했고, 경제효과도 지난해 2천500억원에서 올해는 1조3천억원에 늘었습니다. 앞으로 2012년까지 20만명을 돌파해 20조원의 경제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처럼 해외환자 유치실적이 급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외국인환자 유치와 관련한 의료법이 개정된 것이 해외환자 유치의 물꼬를 텄고, 그 다음으로는 해외에 우리나라 의료수준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거점센터를 늘려나간 데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보건산업진흥원에서는 이미 미국과 싱가포르, 북경에 유치센터를 설립했고, 조만간 러시아와 몽골에도 설립할 계획입니다. -화장품 산업에 대한 지원도 보건산업진흥원에서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입니까. ▲화장품산업에 대해서 국가가 지원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프랑스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화장품산업에 대해 국가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데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보건복지부도 화장품 산업지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저도 화장품 산업 육성을 위한 세부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수출을 위해서는 수출지원센터를 통해 여러나라의 수출입 인허가 정보를 수집해 화장품업계에 제공하고 있고, RD지원을 위해서 예산지원을 크게 늘릴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예산이 많이 지원되지 않아 RD자금으로 60억원이 지원됐는데 올해는 200억원 정도로 늘리려고 합니다. 특히 대구에서는 화장품에 관심을 가진 한의사와 약사가 공동으로 한약재를 베이스로 한 화장품을 개발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런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특화된 화장품 산업에 대해 지원할 계획입니다. -보건산업진흥원이 거둔 성과를 소개한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지난 95년 128억원으로 시작된 RD지원 사업이 지난 2007년까지 13년간 모두 9천261억원이 투자됐고, 지난해에는 1천527억원이 투자됐습니다. 주요 성과로는 발기부전치료제인 자이데나, B형간염 치료제인 레보비르 등 국산신약 9건이 개발됐고, 신약기술 수출 13건, 초음파영상진단기, 셍체계측기기 등 국산의료기기 상품 출시 92건 등이 있습니다. 사업초기에는 기초연구 중심의 지원을 해서 논문중심의 성과를 거뒀으나, 지난 2002년이후에는 신약개발, 의료기기 개발 등에 지원을 집중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에서도 우리 RD사업이 2년 연속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이번에 대구와 오송이 공동 유치한 첨단의료복합단지에 대해 총평을 하신다면. ▲직접 심사위원도 선임하고, 의견을 낸 입장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다만 대구·경북이 지난 15년동안 소외돼왔는 데도 불구하고, 역시 저력있는 도시라는 것이 입증됐다고 봅니다. 의료인프라와 RD, 의료기기와 관련한 전자공학과 등의 인력도 있는데다 자동차부품산업이나 섬유계통이 의료용으로 개발되고 있는 게 점수를 더 받은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지역에 비해 100년의 전통을 가진 경북대와 계명대 병원이 있다는 점도 가점요인이 됐구요. 전체적으로 대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2등에 비해서 점수차가 상당폭 벌어졌던 게 사실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균형개발 항목이 들어가 대구가 더 많은 점수를 받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지역균형개발 항목에서는 다른 지역보다도 점수를 낮게 받았습니다. 인구 100만이상의 대도시가 인근에 없어야 하는데 대구만 해도 인구 250만명이기 때문에 지역균형개발 항목에서 점수를 더 받을 수는 없지요. 충북 오송만 해도 이 항목에서는 대구보다 점수를 더 받았죠. -공동 유치후 예산배분이나 민간투자 유치 등에서 여러가지 걱정이 많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어쨌든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한 만큼 제대로 계획을 세워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단지로 만들어내는데 총력을 다해야 겠죠. 단지 유치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대구·경북지역민들도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함께 힘을 모아야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성공적으로 조성될 것으로 봅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김법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은 김법완 원장은 1952년 1월20일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대구 삼덕초등학교와 경북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 의과대에서 3년간 조교수를 지냈으며, 지난 1986년 경북대 의대 교수로 부임해 경북대 기획부처장과 대구 경북 테크노파크 추진단장을 지냈고, 경북대 제2캠퍼스 추진단장과 경북대병원 기획조정실장, 학생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암학회 및 대한비뇨기과학회 이사로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을 맡고 있다.

2009-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