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산과 계곡이 전설에 물드다
재구화림산악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7월 정례 등산지는 울진 백암산과 그 아래에 펼쳐지는 온정 신선계곡이라고 한다. 매월 첫 주 일요일 등산하는 고향사람들 모임이지만 올해 들어 1월에 부산 회동수원지 트레킹에 참여하고서는 그동안 동참하지 못했다.선지골로도 불리는 신선골
`신선이 놀다 간 곳` 얘기서 유래
의병 신돌석 장군 피신하기도
비경 자랑 용소는 `신선탕` 불려
곳곳마다 관광객들 피서 즐겨
물때가 안 맞는다고 해야 할지 여하간 필자가 가는 산과 화림산악회에서 가는 산이 다소 틀리기도 하려니와 다녀온 산도 있고 그래서 다섯 번이나 빠졌던 것이다. 이번 달에는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울진 백암산으로 간다고 한다.
코스를 알아보니 백암온천지구에서 출발해 백암사터, 백암산 능선을 타고 가다가 선시골 입구 삼거리에서 정상 쪽으로 가지 않고 우회전해서 합수곡으로 해서 신선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필자는 백암산을 이미 세 번이나 다녀왔고, 경북매일신문에 `멋진 산, 아름다운 계곡이 만나 절경을 이루다`(2014년 7월 25일 자)는 부제로 산행기도 올렸지만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필자는 고향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고향이나 고향 쪽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자리잡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출발당일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법원 앞으로 나가니 회원들이 많이 나와 있다. 인사를 나눈 뒤 조금 기다려 차량에 올랐고, 맨 뒤 좌석으로 가면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언제나 등산을 가는 여느 때의 일요일 아침보다 마음이 포근하면서 무언가 기대되는 설렘이 있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와촌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회원들이 주차장 풀밭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대구의 여러 산악회에서 동해안으로 가는 차량들이 식사장소로는 명당으로 자리잡았다. 식사를 끝내고서 차는 다시 7번국도로 타고 잘도 달린다.
차가 영덕읍 터미널에 잠시 멈추어 회원을 태우고서 영해 휴게소에서 등산 마치고 난후 뒷풀이할 때 먹을 회를 싣고는 온정으로 가는 사이 필자는 동해안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잔잔한 바다와는 달리 바다기슭에서 바위에 부딪혀 희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고향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하고 반문해본다.
10시 40분경 우리 일행들은 울진군 온정면 백암온천지구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두 코스로 팀을 나눴다. 백암산 능선과 신선계곡을 완주하는 팀과 신선계곡으로 가는 팀인데 반반이다. 오후 4시 30분까지 신선계곡 주차장에 모인다는 산행대장의 말을 듣고 먼저 산행길에 오른다.
산행코스는 백암사터를 거쳐 갈림길로 해서 천냥묘를 통과한다. 백암산 800m 고지가 바로 선시골 입구 쪽으로 가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을 하게 되면 백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고, 우회전하면 합수곡으로 해서 신선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선시골 입구 삼거리에서 합수곡으로 내려서서 계곡길을 걷고, 용소를 거쳐 내선미에서 백암산 계곡산행을 모두 마치게 되는데, 여름날 산행이고 그 거리가 자그마치 14km다.
날이 무더운 여름에는 굳이 산 정상까지 오를 것까지는 없는데, 피서를 오는 정도라면 울진 왕피천계곡이나 백암산 아래 신선계곡이 안성맞춤인데, 주차장에서 용소를 거쳐 합수곡까지 올라갔다가 원점회귀하는 왕복 12km의 트레킹도 좋겠고, 힘이 든다면 용소나 신선계곡의 적당한 계곡에서 물놀이하면서 여가를 보내는 것도 좋으므로 추천하고 싶다.
산행을 이어가 갈림길에서 직진해서 천냥묘 쪽으로 향한다. 여기서 왼쪽 방향으로 가면 백암폭포로 해서 산성과 백암산으로 오르는 코스인데 작년 여름 올랐던 등산길이다. 산등성이를 올라타면서 가끔씩 뒤를 돌아 지나온 길과 동해바다를 보면서 가는 길이 그리 힘들지가 않다.
천냥묘를 지나 조금 오르니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백암폭포를 만나는 길이다. 쉬엄쉬엄 오르지만 산 고도가 높아지니 서서히 힘이 들어간다. 일행들 중에는 등산 초행길에 나선 고향 선·후배들이 있으니 종전의 산행스타일과는 다르게 완급을 조절해가며 걷는다.
선시골 입구까지 올랐다. 오르는 내내 8부능선 까지만 오르면 합수곡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니 하산길에서는 조심만 하면 힘이 덜 드니 천천히 걷고 또 힘들면 쉬어가자고 하면서 몇 번을 쉬고 800봉까지 올랐다. 정상이 빤히 보이는데, 직진해서 30분 정도만 가면 백암산이다.
백암산 정상을 눈으로 확인하고서 저 멀리에 있는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서 방향을 틀어 합수곡 골짜기로 하산한다. 금강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산등성이 길을 따라 줄곧 내려서서 합수곡까지 내려서는데 4km거리를 한 시간이 소요됐다.
하산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계곡물소리가 들린다.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물이 이곳에 모여 신선계곡으로 흘러가니, 물이 모인다고 해서 합수곡(合水谷)으로 이름 붙여진 곳이다.
백암산 자락 북동쪽 사면 골짜기 좁고 긴 계곡이 바로 신선계곡이다. 대부분이 암반인 선지골은 계곡 사이에 용소, 매미소 등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소와 폭포가 나 있고,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원시적인 비경을 빚어내는 아름다운 곳으로 여름에 인기가 있는 곳이다.
이제부터 백암산 아래의 진수, 명품 계곡 길을 맛볼 차례다. 계곡을 따라 이리구불 저리구불 흐르며 기암괴석 사이로 흘러가면서 멋진 소나무와 풍경들과 어우러지는 6km 거리의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니 걷는 발걸음이 가볍고 물소리를 듣는 마음도 청량할지니 신선이 따로 없다.
신선골은 선지골로도 불리어지는데, 옛날 이 진사라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보니 `사방에 있는 계곡의 아름다움이 신선이 놀던 곳과 같다`하여 신선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대한제국 말기 독립군 의병장 신돌석 장군은 의병을 모집해 영해를 비롯해 영덕, 울진, 영양 등 경상도와 삼척, 강릉의 강원도 등지에서 그 영향력을 확대해 지형지물을 이용한 게릴라 전법으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줬다. 고향이 영덕군 축산면인 신 장군은 일본군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기기도 했는데, 백암산 아래 신선계곡이 워낙 외진 곳이어서 이곳에 잠시 피해 있었다고 한다.
계곡 길을 걸어가면서 보니 울퉁불퉁한 화강암 바위 위에 쉴 데가 마땅치 않지만 계곡수가 화강암 바위 위로 흐르는 물이어서 깨끗하기 그지없다. 조금 더 걸어가니 출렁다리가 보이는데 여기가 용소 지점이다.
출렁다리 아래로 자연적인 풍경이 멋지게 펼쳐진다. 역시 최고의 비경은 용소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국의 용소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신선계곡 용소도 마찬가지다. 옛날 가뭄이 심할 때 돼지나 양의 머리를 잘라 그 피를 소 주변에 뿌리면 비가 온다고 했다.
용소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에서 사진을 찍고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감상한다. 계곡 화강암 바위가 반석처럼 넓게 깔려 있는 곳 군데군데에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즐긴다고 해 `다락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사람들은 `신선이 목욕하고 놀았다`해 신선탕으로 불린다.
이 계곡의 지세가 워낙 험준해 하늘을 나는 참새도 눈물을 흘렸다는 `참새눈물나기`도 있고, 암석이 수십 개 층계를 이루고 있어 다람쥐도 한달음에 뛰어오르지 못하고 숨을 돌려야 오를 수 있다고 해서 `다람쥐한숨재기`라는 이름도 있는 등 붙인 이름들이 재미가 있고, 내려설 수 없지만 저 아래 계곡에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소`도 멋있기는 마찬가지인데, 산행이 즐겁다.
산을 다 내려와 잠시 쉬면서 계곡 밑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깨끗하다. 주변에 녹음이 짙은 나무들이 여름 햇볕을 받아 반사되고 가끔씩 바람이 불어 일렁이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한들거리는 서경들을 보며 시심을 고른다.
“7월의 산행은/ 녹음 우거진 산과/ 계곡 옆길을 따라 걷는/ 백암산 코스가 으뜸이라,/ 여러 갈래 물길이/ 한곳으로 합쳐지는/ 합수곡은 더욱 유명하여라.// `천사(1004m)의 산`/ 그 아래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신선계곡으로/ 흘러드는 군데군데의/ 청량수들도 멋이 있구나./ 전설 속 이야기들이/ 무더기로 피어나서 좋구나.”( 자작시 `신선계곡 길 걸으며` 전문)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백암산 길을 걷고. 선지골에서 빼어난 풍경을 싫도록 보고나서 계곡 길을 빠져나온다. 계곡 초입의 길이 넓고 평탄한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계곡을 찾아 들어서고 있다. 그만큼 울진 백암산 아래 신선계곡의 풍광이 특별함을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신선계곡 중간 지점의 물 흐르는 소리가 맑은 암반 평평한 곳에 자리잡고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등산바지를 벗고 반바지로 갈아입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흐르는 계곡수에 발 담그고 있으니 정말 마음까지 시원해져 와서 신선놀음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시간정도 계곡 암반에 머무르면서 포항에서 친구 셋이서 왔다는 팀과 이야기 도중에 알아보니 그도 영덕 사람인데, 포항 포스코에 다니면서 글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필자는 이곳 풍경들을 마음으로 스케치해 본다.
“가뭄이 들어 예년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신선계곡을 타고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흘러가는 물줄기는 옛 전설을 알려주는 듯 정답게 속삭이며 가는구나. 포항, 대구와 울산, 멀리 부산에서 끼리끼리 많이도 몰려와서는 자연을 벗 삼아 여유를 즐기는 하루, 계곡수에 발담구고 있는 사람들마다 신선이구나”그 생각들이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난다.
산행을 마치고 나서도 푸른 들판이 보이는 곳에 자리해서 웃음꽃 잔득 피어나는 뒷풀이 행사를 가졌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린`신선이 머물던 터` 신선계곡에서 화림산악회 선·후배님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분명 그 시간들은 세월이 흘러가도 기억 속에 애향심과 더불어 아름답게 남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