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울진 응봉산

등록일 2015-07-10 02:01 게재일 2015-07-10 12면
스크랩버튼
천년 금강송을 키운 건 팔할이 하늘이었나
▲ 낙동정맥의 한 지류에 있는 울진 응봉산은 태고적 신비가 숨쉬는 명산이다. 금강송 향기가 묻어나는 길을 걷고 산자락 아래 덕구온천에서 피로를 푸는 등산코스는 산행길로 안성맞춤이다.
▲ 낙동정맥의 한 지류에 있는 울진 응봉산은 태고적 신비가 숨쉬는 명산이다. 금강송 향기가 묻어나는 길을 걷고 산자락 아래 덕구온천에서 피로를 푸는 등산코스는 산행길로 안성맞춤이다.

울진 쪽서 바라보면 매의 형상

매봉산으로도 많이 불려

수백년 수령 금강송 숲길 `장관`

백암산·일월산·태백산도 조망

전국서도 명성 자자한 덕구온천

원탕 족욕탕, 피로 풀기엔 그만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절이 있고, 또 어려운 시기도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행복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필자에게서 어린 시절은 힘든 세월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나이가 어려 `어렵고 힘들다`고 표현조차 못할 정도였다. 그 곤궁의 시기를 지금 생각해보면 한스러운 한편 그리운 추억이다.

그 추억은 대개가 고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향을 떠올릴 때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한(恨) 같은 것이 가슴에 울컥 치받곤 한다. 그래서 그리운 정을 노래하는 고향찬가를 수시로 불러대곤 한다.

“짐승은 모르나니 고향이나마/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 하던 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조상님 뼈가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아 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김소월 시인의 `고향` 부분)

필자가 지금까지 쓴 여러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 채 자랐다고 토로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뿌리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고향 영덕이나 필자의 본관인 울진(蔚珍)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이 두 곳을 지나고, 머무르게 되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이야기는 울진 응봉산 등산기를 쓰는 전제 글이다.

사실 울진 응봉산은 필자가 2012년 8월 이미 올랐던 산이다. 하지만 그때는 문화진흥에 힘써온 경북매일이 자연 속에서 국민의 휴양공간을 확대하기 위한 일환으로 기획한 등산기 연재를 시작하기 이전이었고, 마음에 둔 여러 산들을 소개하지 못해 안타깝기도 했다.

이번에 드림산악회를 따라 다시 응봉산에 오르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2013년 3월부터 경북매일에 등산기 연재를 하고 나서 110회 넘게 전국 산을 소개했지만 울진 응봉산을 빠트릴 수 없다는 개인적 욕심에서다.

울진이 경북 북부지역으로 영덕과 붙어있는 지역으로 울진에 소재한 산을 갈 경우에 필히 필자가 태어나서 자란 영해와 병곡지역을 지나가게 되니, 한번이라도 더 고향땅을 지나며 추억을 일깨워 현재의 사회생활에서 활력소를 찾자는 의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주말 다시 울진 응봉산을 다녀왔는데, 그 산자락 밑에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덕구온천이 자리하고 있으니, 사실 응봉산의 자연 그대로의 풍광도 멋있지만 덕구온천의 명성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며 여가를 선용하는 것도 유쾌한 일이리라.

드림산악회 회원들과 차를 타고 동해안의 7번 국도를 달리면서 내 고향 땅을 바라본다. 그냥 지나치고 있지만 영해 상대산이나 고래불 해수욕장, 백석 해변이 마음에 그리울 뿐이다.

차가 덕구온천 주차장에 도착하고야 이런저런 생각을 멈춘 필자는 등산장비를 꺼내들고 차에서 내려 잠시 준비운동을 한다. 온천관광지라 전국에서 온 관광차량들이 보이지만 등산객들은 그리 많아보이진 않는다.

응봉산 등산길은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오르는 길이라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산행을 시작해 산비탈을 지나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원탕으로 가는 코스인데, 일행들은 직진해서 응봉산 정상에 올랐다가 원탕으로 해서 내려올 계획이다.

여기 등산코스는 역 U자형으로 단순하다. 오른편으로 해서 정상을 오르고나서 왼편으로 오든지, 아니면 왼편을 돌아 응봉산 정상에 오른 뒤 오른편으로 오는 코스다.

갈림길에서 직진하니 다소 넓은 평지인 모랫재를 만난다. 산행을 시작하고 1.3km 지점이다. 소나무 숲길을 거쳐 계속 등성이를 타고 올라 제1헬기장에 도착해도 소나무가 숲으로 싸여 조망이 나타나지 않는다. 숲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제1헬기장을 지나서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면서 고사목이 서 있는데, 어느 산에 가든지 오래된 소나무나 주목 고사목은 멋이 있다. 정상을 향해 계속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서서히 앞쪽으로 전경이 나타나고 조망되기 시작하는데 전면으로 산 능선 아래 온정골이 보인다.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넓은 평지가 나타나고 헬기장이 정비돼 있다. 제2헬기장이다. `정상 820m`라는 안내 표지석이 있으니 우리 일행들은 들머리가 있는 덕구온천으로부터 5km 가량 산행했다. 응봉산 정상이 저 앞에 서서 일행들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울진은 금강송이 유명하다. 금강송은 기상이 웅장하고 모습이 미려한 소나무로써 전국 지역에서 자라나는 수많은 소나무 종류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특히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산에는 1천여년 수령을 가진 금강송들이 군락지를 이뤄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응봉산 금강송 숲길
▲ 응봉산 금강송 숲길
울진 금강송 군락지는 조선 숙종 때부터 황장봉산제도로 잘 관리돼 지금도 수령 200년이 넘은 금강송 8만그루 이상이 군락을 이뤄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울진 전역에서 금강송이 분포돼 있는것 처럼 응봉산 일대의 금강송도 마찬가지로 정말 장관이다.

제2헬기장에서 잠시 쉬고서는 산행길을 이어가 응봉산 능선길 양편 소나무 숲을 지나 옛재능선을 올라서서 30분정도 걸어가니 바로 정상이다.

일행들은 정상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 사이에 필자는 정상 표지석 뒤에 새겨진 응봉산 소개 글을 사진 찍고는 단숨에 읽어 내려간다.

“이 산은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구리 온정마을과 강원도 삼척시 원덕면 사곡리의 경계에 위치하며 해발 998.5m로 일명 매봉산이라 불리며 산세는 매우 험난하고 서쪽에는 삿갓재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울진에 어느 조씨(趙氏)가 사냥 중 놓친 매를 이곳에서 찾아 응봉(應峰)이라 하였고, 고려말경 여러 사냥꾼이 사냥하던 중 산의 동쪽 기슭에서 자연용출되는 온천을 발견하였다고 하며….”라는 글인데, 울진군수가 세웠다고 적혀 있다.

낙동정맥의 한 지류에 있는 응봉산은 울진 쪽에서 보면 비상하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어 일명 매봉산으로 불리어지고 있다는 소개가 있듯이 어떤 산명에서는 매봉산으로 나오기도 한다.

정상에서 멀리 산들을 바라본다. 산등성이와 계곡들이 반복해 나타나는 가운데 남쪽으로 울진 온정면에 있는 백암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영양의 일월산, 그리고 북쪽으로 태백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눈을 돌려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하산할 길도 내려다본다.

산을 올라오면서 잘 생긴 소나무들의 모습을 보고 또 금강송의 짙은 향기를 맡으니 자연의 아름다움을 끝없이 생각하게 된다. 잠시 그 생각을 끄집어내서 재음미해보는 이 순간이 신선하다.

“응봉산에 다시 올라/ 아름다운 계곡/ 골짜기를 따라/ 옛재능선을 오르면서/ 숲속에서 만나는/ 곧게 자라난 소나무들/ 쭉쭉 뻗은 모습들이/ 알알이 가슴에 새겨는 곳.// 산자락 아래/ 덕구온천이 있어/ 유명해진 곳이지만/ 언제나 조용히 서서/ 태초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때 묻지 않은 산,/ 응봉산에 다시 오른다”(자작시 `응봉산에 다시 올라`전문)

응봉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코스는 올라왔던 반대편으로 내려가는데 계곡의 형태는 비슷하다. 계곡능선을 따라 급경사 내리막길과 계곡에 세워진 세계에서 유명한 다리를 본 따서 만든 13개의 다리를 건너고 금강송 향기를 맡으며 자연온천수 원탕을 보는 재미로 내려가면 된다.

하산하면서 계곡길로 내려가다가 제일 먼저 만나는 다리가 포스교이다. 포스교는 영국에서 1890년 완공된 다리로 이 다리의 모형을 작게 만들어 계곡 위에 세워놓았는데 그 옆에 일일이 다리에 관한 설명이 붙어져 있다.

계곡 왼쪽은 낭떠러지라 조심해서 계곡을 따라 하산하니 물소리는 크지 않지만 그 소리가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포스교를 지나 10분정도 아래로 가니 산행객들이 쉬고 있다.

원탕이 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탐방객을 위한 노천족욕탕이 있어 먼저 온 등산객들이 발을 담그고 기분 좋게 피로를 풀면서 서로가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기에 좋다. 필자는 원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서는 배낭을 풀고서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다시 하산길을 이어서 12교량 장제이교를 지나고 많은 다리들을 지나서 효자샘에 이르른다. 옛날 모친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던 총각 돌이가 마침내 응봉산 중턱에서 고여 있는 물을 떠다가 어머니 병을 완치케 했다는 전설 이야기도 읽어보고,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얽혀서 몸통이 하나가 된 연리지를 보고 용소폭포에 다다랐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계곡의 기암괴석 사이로 폭포수가 용트림하며 낙수하고 아래는 거울같이 맑은 물이 고이게 되었는데 위를 용소폭포, 아래를 마당소라고 불리고 있다. 이곳 응봉산에 첫 등산을 왔던 2012년 8월 그 때는 물이 많아서 좋았는데, 가뭄기라 물이 많이 저수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면서 계속 내려서서 제1교량인 금문교를 지나고 덕구계곡을 빠져나왔다.

계곡길에서 내려서는 내내, 3년 전 한여름 무더웠던 날에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 응봉산 용소골과 정상 너머의 재랑박골을 등산하면서 힘들었던 그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용소골과 재랑박골의 아름다운 골짜기와 금강송길을 걸으면서 흩뿌렸던 이야기들은 내게 추억의 꿈밭이 되었다. 워낙 땀을 많이 흘렸고 힘들었는지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한 여름 낮의 응봉산 등산이었으니…. 다시 응봉산을 등산하면서도 그 시절이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관련기사

기획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