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마침표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신도림역은 죽어가고 있다.사람들은 바다로 가는 길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철로에 담배 꽁초로눕고 싶어한다.신도림역은 세상의 중간에 있지만 끝에 서 있고, 쉼표이지만마침표들의 아우성에 짓눌려 있다. 신도림역 위와 아래에서 사람들은다각형 인생을 짜며 바다를 그리워하며 또 하나의 철조망에 갇혀 있다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 갈아타야하는 중간지점에서 현대인들의 어떤 한계를, 그 슬픈 실존적 아픔을 묘파해내고 있다. 힘겹게 목적지에 이르기보다는 편안하게 중간에서 내려 쉬고 싶은 것이 현대인들의 솔직한 심리인지 모른다. 그 곳이 신도림역으로 표현된 공간이다. 중간이면서 끝이라는 표현의 의미가 깊이 가슴에 새겨진다.시인
2014-06-12
발갛게 익은 앵두는 앵두로서 한철 겪고 간다그 빛 밝은 그리움 속을 걸어왔으니유월이 다시 펼쳐놓는 이 길목앵두여, 어제의 풋풋함을 말 태운옛 생각은 분홍빛 속에서 더디고 더딘 것믿을 것이 못 되는 기억 두어 그루울타리 이쪽에 붙박여 예전의 향기 뿜고 있다앵두는 앵두로서 뜨겁게 한철을 겪고간다. 유월이 되자 옛생각만으로 분홍빛 열매를 소보록하게 맺는다. 두어 그루 앵두는 두어 그루의 기억이고 추억이다. 기억의 형식으로 과거를 보존하고 무로 수렴되면서 미래를 연장하고 몸과 분리되면서 현재를 둘로 나눈다. 그것은 순간 속에서 무한한 존재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붉은 앵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길이, 아니 우리네 살아온 길이 기억과 추억을 물고 뻗어온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시인
2014-06-11
햇살 꽂힌다잠든 척 엎드린 강아지 머리에퍼붓는 화살깼나 안 깼나쿡쿡 찔러본다비 온다저기 산비탈잔돌 무성한 다랑이논죽었나 살았나쿡쿡 찔러본다바람 분다이제 다 영글었다고앞다퉈 꼭지에 매달린 것들익었나 안 익었나쿡쿡 찔러본다햇살 비치고 비 오고 바람부는 평범한 자연현상도 자연물끼리 관계를 맺는 다감한 양상에 초점을 맞춰 새롭고 깊게 관찰하는 시인의 눈이 참 세밀하고 밝다. 여기에는 우주의 비밀, 자연의 신묘한 섭리에 대한 관심이 담겨 있다. 강아지 머리에 떨어지는 햇살은 강아지를 편안히 잠들게도 하지만 강아지를 일으켜 새로운 역동과 성장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작용도 하게 하는 것이다.시인
2014-06-10
적막한 귓속에도푸른 하늘이 있습니다그 푸른 고요 속을한 마리 나비가 요요히 날아갑니다오늘도내일도시인이 그려내는 담백한 한 폭의 풍경 속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 푸르른 고요 속으로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를 따라가다 보면 번잡하고 괴로운 이 땅의 소리들이 다 사라져버린 절대 고요와 평화의 경지에 이르게 되리라. 번잡한 생각과 고민과 어지러운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와 평화를 맛볼 수 있으리라. 오늘 하루도 저만치 날아올 나비 한 마리를 기다려본다.시인
2014-06-09
한 번도 가까워진 적 없는 사랑이 있다매일 한 번씩 캄캄해지는사랑이 있다이 시는 사랑의 대상에 이르지 못하는 좌절이나 슬픔에 관한 것으로 읽힐 수 있으나 시인은 그것을 초월하고 있다. 이 시에는 자기 파괴와 소멸을 향한 가능성으로서의 삶의 염원이 나타나 있다. 긍극적인 사랑의 목적은 태양에 의해 자기 자신을 한순간에 태워 사라지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태양과 같이 강렬한 이미지로 처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의 이면에는 파괴의 기원이 숨어져 있다는 것이다.시인
2014-06-06
산을 횡단하는 도로에서삵이 죽고 금방 뭉개지면서 희미해졌다길 위의 죽음, 로드킬이다주검 일부는어떤 비명도 듣지 못했던 자동차 바퀴에 묻혀봄의 자오선을 통과하는 살쾡이좌 아래까지 갔다유조선 트럭 하나가제 죽음을 들여다볼 틈도 주지 않고식육목의 대가리만 재빨리 낚아채어갔다단풍나무 그림자도 함께 찢어졌다가겨우 머리 일부만 찾았다팔십 센티미터 삵의 길이 만큼숲의 어둠도 줄었다로드킬의 길은환기되지 못하는 길에 갇혀 있다이 시에서는 짐승들이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는 소위 로드킬의 비극이나 생태주의에 대한 언급에만 머물 수 없는 깊은 시인의 장치를 발견할 수 있다. 삵이 죽은 후에 주검의 일부가 `살쾡이좌 아래`까지 간다. 저 별자리는 삵이 죽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별자리다. 기념할 만한 죽음은 별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무의미해 보였을 한 짐승이 죽음을 별자리가 보상해 줬다는 것이다. 시인의 따스한 시정신이 잔잔히 물결쳐 오는 아침이다.시인
2014-06-05
삼동(三冬)의 남쪽 섬 하나는붉은 표지의 한 권 시집이다바다가 그 시집 펼쳐 읽는데사방 백 리가 높다붉어서 스스로 밝다바다가 시를 읽는다고 표현한 시인의 발상이 재미있고 흥미롭다. 붉은 동백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던 아름다운 섬 동백섬, 지금은 온산공단의 공해로 섬은 폐쇄되고 버려졌다. 섬에서 사람도 떠나고 새들도 떠났으며 그 상처가 깊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섬에 동백꽃은 피어나 붉은 표지를 가진 시집과 같다. 그 아름다운 시집을 바다만 그 시집을 펼쳐 읽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 시집은 피의 상처가 있어 더욱 붉게 아름답고 깊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리라.시인
2014-06-04
보세요 당신그 거친 손에서 달구어진 아이롱처럼이밤사 순결하게 달아오른 별들을따버린 실밥들이 하나둘 쌓여갈 때마다활발해지는 이 어둠의 풍화작용을보세요, 땀방울 하나 헛되이 쓰지 않는 당신누구의 땀과 폐활량으로 오늘밤하늘의 사막에 별이 뜨는지저 하늘에 뜨는 별을 순전히 노동자들이 땀과 폐활량에 의한 것이라는 표현에서 얼마나 시인이 노동의 가치를 높이 생각하는 지 알 수 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수많은 경자언니가 있어 그 땀과 폐활량으로 이 세상은 이렇게 환하게 별이 빛나는 것은 아닐까. 그 별은 다름아닌 희망이라는 별일 것이다.시인
2014-06-03
비굴하게 굴다정신차릴 때옷깃을 여민다인파에 휩쓸려하늘을 잊을 때옷깃을 여민다마음이 헐한 몸에헛것이 덤빌 때옷깃을 여민다옷깃을 여미고도우리는별에 갈 수 없다비굴하게 살아가는 것을 무엇보다 꺼리며 세상살이에 휘말리면서도 진정한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하는 시인 정신이 또렷하게 드러난 시이다. 마음의 경계가 느슨해져서 세상과 타협하기도 하고, 그 틈으로 부정한 요소가 끼여들지 않도록 철저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여미고 챙겨나가는 시인정신이 단호하게 나타나 있다. 우리가 아무리 철저하게 자신에게 엄격하고 경건하고 엄정한 생의 자세를 견지해 가더라도 별에 갈 수 없다는 표현에서 시인은 자신의 삶의 자세에 가멸찬 각오를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시인
2014-06-02
내 안에 시내 이루고 강 만들고 마침내 바다 되는, 수수만년 가뭄에도마르지 않는 샘 같은 원천 있다 참혹한 겨울, 봄 햇살로 밀어내고 싹붕붕 틔워, 한 줄기 두 줄기 산지사방 휘늘어져 늘 푸른 숲 되는 내 원천낳고 싶다 고달픈 자 병든 자여 수수만생 살아 숨쉬는 자궁에 들 듯 내원천숲 오시라. 그대 숨 끊어놓는 거친 바람 내 원천숲 줄기로 갈아 끼워순한 잠 재우리라. 내 안에 맑은 물 시원하게 쏟아내는 폭포같은 원천 있다허망한.원천숲, 폭포같은 원천…. 이것은 시인의 심미안을 뜨게 하는 생명의 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이러한 원천의 힘 혹은 생명력이 농축된 어떤 강력한 힘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 시인의 인식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힘이 있어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한계를 한탄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 자신 속에 시원하게 쏟아내는 생명의 폭포같은 원천이 있다. 가만히 마음의 귀 기울여보자.시인
2014-05-30
인간의 작은 탑 하나 세우기 위해평생 동안 다시 산을 오른다발도 없이 손도 없이 산을 오른다(----)오늘밤에는 산정에 고요히 눈이 내린다인간의 얼굴을 한 작은 새 한 마리눈 속에 파묻힌다삶의 바닥에서 수미산의 꼭대기에 오르는 길은 번잡하고 괴로움이 산적한 번뇌의 인간세상에서 새들이 사는 깨끗하고 순수한 자연에 이르는 길이다. 시인은 인간을 버리고 새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내생(生)이 될 작은 새는 너무도 또렷하게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바닥과 산정, 인간과 새는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인식이 깊다.시인
2014-05-29
시골 서점 책꽂이에 아주 오랜 시간 꽂혀 있는 시집이 있다출간된 지 몇해째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시집이다시인이 죽은 뒤에도 꼿꼿이 그 자리에 꽂혀 살아 있다나는 그 시인의 고독한 애독자를 안다본문은 펼쳐 읽지 못하고 제목만 뚫어지게 바라보던날마다 시집 귀퉁이만 밟아보다가 돌아서던 그를 안다햇볕의 발자국을 가진 사람을 안다날마다 산에 가듯 시골의 한적한 서점에 들러 그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꺼내본다. 그러나 애써 펼쳐보지 않는 마음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 시인의 정신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죽은 뒤에도 책꽂이에 꽂혀 꼿꼿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애독자는 굳이 펼쳐서 읽지 않아도 가만히 바라보기만해도 그의 정신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4-05-27
저녁 수평선을 열치면달의 누드밤, 무시로 떨어지는 별똥별의 길놀이향수는 불치병새벽문 앞 까마득히 몰려든파도의 핏발 선 눈시방 세계는일제히 한 칸, 앞으로 약진!선상 체험을 해본 시인은 바다를 물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수평선이나 그 위로 떠오르는 달, 쏟아지는 별똥별은 다분히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시인의 바다에 대한 인식은 농부의 일상처럼 고단한 노동이 전제되어 있어 힘들고 무거운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다. 새벽 찬란한 일출의 장엄함을 즐길 틈도 없이 항해와 투망의 힘든 일들이 앞에 바짝 다가서는 것이다.시인
2014-05-26
미안하다나는 언제 옷 벗어부치고 시 써본 일 없었으니나탈리 망세, 스무 살의 그 여자가, 벗은 몸으로, 눈부신 대낮 같은 겁 없는육체의 순간으로, 흠씬 껴안아선, 힘주어선, 사람들 앞에서 악기를 연주할 때,그녀에게 첼로가 단지 첼로뿐이었으랴, 사랑한다고 감히 주절거려본 적 있었는가그 앞에서 제대로 너를 벗어준 적 있었는가.미안하다시야벗은 몸으로 첼로를 안고 연주하는 스위스 출신의 누드 첼리스트 나탈리 망세의 온몸을 던진 연주를 보고 치열하게 시를 쓰지 않은 자괴감, 느슨한 시인으로서의 자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절절하다. 사랑의 힘은 위대해서 첼로가 단지 첼로가 아닌 순간, 시가 단지 시가 아닌 순간을 열어준다. 나탈리 망세가 그랬듯이 시인도 치열한 정신으로 화려한 수사에 의존하지 않는 맨몸의 연주 같은 순수한 열정으로 시를 쓰겠다는 결의에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시인
2014-05-23
사람들이 흰 국화를 꽂는다 피워놓은 향의 연기가 염불소리 더불어 산 자와망자의 기억 사이를 떠돈다 낯설다 그가 떠났다 가슴의 칼금, 오랫동안 만져본다화들짝 국화꽃이 피어난다 무엇인가 뭉클 빠져나와 허공을 떠돈다친구여! 미어지게 정처 없다망자 앞에 꽂아 놓은 국화꽃, 피워 올리는 향연은 망자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가 떠나자 가슴에 칼금이 그어졌다. 누군가의 소멸은 이렇듯 남은 자들의 가슴에 흔적을 남긴다. 그 향기는 아쉽고 그리운 망자의 모습으로 오랫동안 이승에 남은 자들의 가슴 속에 남아 가만히 피어오르기도 잔잔히 흐르기도 하는 것이다.시인
2014-05-22
슬픔과 짝을 이루려고 선보러 갔나사나흘 네 빈 아궁이로 거친 어둠이 몰아치고네 대문가에 수취인 부재로 나뒹구는 우편물가도 가도 여전히 너라는 먼 집가서는 내 목숨 훌훌 벗어벽에 걸어두고 싶은 너라는 먼 집그 곳에서 불륜에 빠진 달빛과 강물뒤란으로 드나드는 푸른 바람과 몸 섞으러 갔나가도 가도 언제나 텅 빈 너라는 멀고 먼 집사랑은 그 대상에게 다가가 그에게 스며들어, 흔적없이 스며들어 내가 없어져 버리는 것인지 모른다. 가서는 내 목숨 훌훌 벗어 너에게 함몰되어버리는 것이라고 시인은 강변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그리 수월히 다가갈 수 없고 다가가더라도 온전히 스며들 수 없는 것이리라. 그래서 사랑에 목숨 거는 인생들이 동서고금 허다한 것이리라. 비록 자기 파멸과 죽음이 전제되어 있더라도 자신을 던져넣는 것. 그게 사랑이다.시인
2014-05-21
뒤 숲에서 새알을 하나 주웠다산성비에 껍질이 얇은 알이었다몇 날을 또 몇 날을 품어 주었다감감무소식이었다. 속이 엉킨 실 뭉텅이 같았다어느 날 아침이다밤새 시를 지우다가 날이 밝아왔다내가 남겨 둔 한 줄 끄트머리에서노란 새가 한 마리 지저귀고 있었다인간의 말이 아니라새의 말로 지저귀고 있었다나는 저 말을 잘 기르고 싶다하지만 내겐 그 한 줄만으로도 족한 것 같다어디다 발표할 게 아니고 잘 묻어 줄 시니까숲에서 주운 새알은 하나의 생명일 수 있다. 인간이 그 새알을 품어보지만 새는 부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인이 늦은 시간까지 시를 쓰다가 그가 남겨 둔 한 줄 끄트머리에서 노란 새 한 마리의 지저귐을 발견한다. 물론 실제의 새가 아니다. 시인의 상상력 속에 살아있는 고운 생명의 촉을 가진 새이다. 인간의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힘들고, 한 줄 시로 발표하기에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한 줄 시가 바로 시인이 만들어낸 노란 새인 것이다.시인
2014-05-20
찬 길바닥이 밥자리다별처럼 밥알들이 흩어져 있다 비둘기들 내려와 쫀다어제도 여기서 먹었고 그제도 여기서 먹었다밥 고봉은 높고 뜨겁고 희다청국장 묽은 내음이 길바닥 낭자하게 물들이는데열무김치와 김장 김치 그릇 옆에 곤쟁이젓 반 종지얇게 저민 더덕무침과 콩나물무침이 각각 한 접시씩흙과 자갈 들 위에 놓여 빛나는전화 주문에 제꺽 실어와선 길바닥에 부려 놓은 밥 쟁반덮었던 신문지 걷어내 깔고 앉으면여윈 몸 떨게 하던 추위조차 길 내며 그녀 에워싸고노점 펴놓은 대지엔 봄꽃처럼 꽃핀 밥상이또 한 상 가득 펼쳐지는 것이다시인이 그려내는 풍경 속으로 따라 들어가다보면 세상에 대한 공허한 생각, 허무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지극히 냉정함으로 도시 문명의 비정함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그려내고 있다. 도시 문명의 냉정함과 무심함에 대한 담담한 묘사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비정성과 추악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추악하고 비정한 풍경들이 도처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시인
2014-05-19
아웃, 나는 이 호각소리에더이상 놀라거나 실망할 이유가 없어십이월의 섬에서 고독하게 저녁을 맞는다식사 시간에도 새벽안개를 긁어모았고담화문을 향해 돌을 던지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고일기장마다 건조한 지도를 그려온 나의 그림자도조용히 앉아 풀어지고 있다우리는 어쩌면 발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논리에 적응하기에 이미 너무 많이 살아버렸는지 모른다. 지난 시대를 한편으로는 원망하고 한편으로는 기억하면서 낡은 길을 고독하게 가고있는 시인의 모습에서 우리를 본다. 아직은 한창 일할 나이인데도 우리는 이미 세상에서 밀려났다고 규정된 `사십대`가 돼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쏜살같이 가버리는 세월의 뒷꼭지를 본다.시인
2014-05-16
낣??긴 지평선을 여러 개 만났다적적한 날씨여서인지모두들 이마를 맞대고사이좋게 살고 있었다나도 안락한 삶을 살고 싶었다비 오는 날에는 하늘이 녹아지평선의 살결을 지워버린다가지 않는 시간이 소문에 젖는다구겨진 살벌한 여정은어차피 시야보다 멀리 지나가버리고내 종점을 찾지 못할까 두려워한다반쯤 허물어진 집에황량한 나라에서 몰려오는 안개숲과 땅은 지평선을 다시 만드느라계획했던 낙향을 미루고 있다이 시에서 지평선은 두 가지 의미로 읽혀진다. 그 하나는 넓고 길고 평평한 이미지를 가지고 안락한 삶에 대한 열망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계의 바깥과의 접선, 혹은 경계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까 정주와 유동의 의미를 함께 가지며 공유돼있기도 하다. 안온한 대상이기도 하고 항상 그 너머에 대한 그리움이나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시인
2014-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