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버린 자식새끼를 바라보는 눈으로나는 이 세상을 바라보겠다지금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밑줄 그어진 외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벼랑 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허리가 끊긴 채 온몸으로 바닥을 치는지렁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나 없어도나 앉았던 자리에서 꽃이 피고 눈이 내리는 쓸쓸함에 대해서아니, 그 아무렇지도 않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부조리와 모순이 겹겹이 걸쳐져 있는 사회를 향한 시인의 치열한 대결의지, 강단진 시 정신 혹은 절망감을 읽을 수 있는 시이다. 얼핏 보면 절망과 위기에 대해 비켜서는 듯하지만 치열한 시인정신이 바탕에 깔려있다.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구조적인 모순과 불구의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우리들이지만 시인이 건내주는 이러한 대결, 저항의 정신만은 잃지 않고 살아야하지 않을까.시인
2014-08-11
모순투성이의 날들이 내게 오지 않았다면내 삶은 심심하였으리그물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지 않았다면내 젊은 날은 개울 옆을 지날 때처럼밋밋하였으리 무료하였으리갯바닥 다 드러나도록 모조리 빼앗기고 나면안간힘 다해 당기고 끌어와다시 출렁이게 하는 날들이 없었다면내 영혼은 늪처럼 서서히 부패해갔으리고마운 모순의 날들이여싸움과 번뇌의 시간이여시인에게 삶은 모순투성이의 날들이었고, 그물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던 날들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불구와 모순의 시대를 뜨겁게 살아온 시인의 지난 시간에 대한 성찰이 감동적이다. 누구나에게 그런 힘들고 어려웠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들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리라. 그런 번뇌의 시간들에 대해 고마워하는 역설이 이 시에 깔려있다.시인
2014-08-08
나, 나는 흔들리고 흔들린다. 도화망둑 지느러미에 흔들리고 흔들림은 뱃사람인 내가 멈추는 삶이고 돌아가신 어머니 울음이다. 흰고래를 만나 흔들리고 황혼에 흔들리고 흔들림으로 뱃사람을 확인한다. 에스파냐 해적 되어 죽음 가득 찬 지브롤티 해협으로 애인마저 끌어들일 것이다. 허리케인이 무지개가 될 때까지 온몸이 블루다이아가 될 때까지 바람에 흔들리고 물결에 흔들리고 좌 우현 홍 녹등과 나는 흔들리고 흔들린다원양어선의 선장이면서 시를 쓰는 이윤길의 시에는 뱃사람만이 쓸 수 있는 특별한 풍경과 시적 경험이 나타난다. 흔들린다는 건 뱃사람들의 일상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흔들림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울음소릴 찾아내고 있다. 시인은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모든 것과 관계하면서 흔들림의 대물림, 그 지속성에 대해, 그 끈질긴 끈을 가족사 속에서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4-08-07
산 너머 먼 마을에오래된 우물 하나 있었지밤이면 별무리 몰래 잠기던지금은 잊혀진 그 우물천둥 소나기 물러가고, 문득하늘의 뿌리 그리운 날나, 무지개 따라서그 우물 찾아가리먼 훗날 누군가그 우물 풀 제놋수저 은가락지 더불어내 촉루도 함께 거두리고향 마을 어귀나 혹은 고향집 뒤란의 깊은 곳에는 우물이 있다.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 늘 달콤하고 시원한 생명의 물을 우리에게 주는 우물이다. 고향을 떠나와 멀리서 나이먹고 늙어 가지만 가슴속에는 잊혀지지 않는 고향의 우물 물이 끝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젖줄 같은 것이고 영원에서 흘러와 영원으로 흘러가는 생명의 원천인 것이다.시인
2014-08-06
남은 보리밥과 누룩이 자박자박 눌려진 독이 부뚜막에 올려져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밥풀이 녹아내려 식은밥단술 되었다하릴없이 얼굴 그을리다 몰려온 아이들은 식은밥단술에 사카린을 탔다한모금만 마셔도 밍밍한 여름방학이 달큼해져왔다니 뺨이 더 뻘겋다 니 뺨이 더 뻘겋다 뒷마당 장독대에는 분홍 주홍 빨강봉숭아꽃들이 시끌벅적하니 피어 올랐다먹다 남은 보리밥과 누룩으로 단술을 만들어 먹었던 유년시절의 서사가 재밌게 그려진 정겨운 시다. 시인의 어린 시절은 지독한 가난과 궁핍함으로 점철됐을 것이고 그 가난 속에서도 봉숭아꽃들처럼 구김살 없이 잘 자라서 분홍 주홍 빨강 꽃을 피우듯 한 생의 꽃을 피우며 살아가고 있을 어릴 적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도 깔려있어 참 정겹다.시인
2014-08-05
메주를 왜 네모나게 만드는지 아냐?굴러떨어지면 데굴데굴 흙먼지 묻을 것 아니냐묶어 매달기 편해서도 그러겄지만각지게 만든 게 장맛이 더 좋아야각진 놈은 둥그러지고 싶고둥근 놈은 각 잡고 싶지 않겄냐?맛이 무슨 군인이라고 혓바늘 세워각 잡고 군기 세우고 그러겄냐?맛은 두루뭉술 넘어가는 목넘이가 좋아야지그래서 둥근 노깡 샘보다네모난 대동샘 물맛이 더 좋은 거여메주와 샘은 왜 제가 네모난 것으로 멈춰 있는지를 기억한다. 그것이 어머니의 기억이다. 조각난 네모와 정지된 직선에 길든 습관은 제가 크고 둥글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끝내 권력이 된다는 것을 어머니는 알기 때문이다. 네모와 직선은 저를 비우고 최초의 의도를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만 거기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자신을 작은 네모로 자각하는 네모를 축하하는 깊은 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혜안을 다시 본다.시인
2014-08-04
베란다 난간응달을 타고 오른 나팔꽃이손가락 없는덩굴손을 허공에 얹는다높은 곳으로 외가닥 줄을 대는 중이다V자 그리며 지상으로 왔으나파리하게입술이 타들어 오그라졌으므로나도 그랬다위급하니까어쩔 수 없었다베란다 난간 응달을 타고 오르는 나팔꽃 넝쿨에서 시인은 지난 시간 속에서의 한 순간을 생각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절박한 시간과 형편에 봉착됐을 때 느꼈을 것 같은 그 위급함을 나팔꽃 넝쿨손에서 보고 있다. 시인의 섬세한 시안이 포착해 낸 한 그림에서 아슬아슬하게 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본다.시인
2014-08-01
백두 들쭉이 내 피를 들뜨게 했고백두 칼바람이 나를 후려쳐 깨웠네열여섯 영봉 천지엔 휘영청 달빛,시뻘건 햇덩이 구름 위로 불끈 치솟던 새벽그는 내게 속삭였네, 아직도 멀었느니내려가 저 아래서부터 다시 올라오라고절어서 삼천리 길 땀 펄펄 쏟으며 올라오라고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오른 시인의 역사의식이 오롯이 드러난 시다. 오랫동안 금기의 땅이었던 백두산은 이제야 비로소 몸을 열어 시인을 받아들인다. 들뜸과 깨우침, 권면과 함께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분단의 극복을 절감케 해주는 작품이다. 민족이 하나되는 통일의 그날을 염원하는 시인정신이 시 전편에 깔려있다.시인
2014-07-31
어쩐지 분주한 내가방 안의 모자가 다 사라져버릴 때까지마지막 모자를 들어올리면아침이 온다는 것은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긴 모자의 산이새로이 하나 생긴다는 것일 뿐커다란 모자 지붕이둥실 한번 굴러가는 것일 뿐모자로 만들어진 방은 실제로 없다. 시인은 모자가 무엇으로 해석되던 간에 모자는 공간과 공간 속에 무한히 반복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모자들을 들어올리고 들어올려도 끝없이 밀려오는 이 끝없는 반복성이 주는 막막함을 우리에게 건네주고 있다. 이것은 폐쇄된 공간에서 무한히 같은 일을 반복하는 여자들에 대한 언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시인
2014-07-29
다짐으로 채웠던 밀물 바다가어느새 썰물 되어협애에서 쓸린다, 그 울돌목에 걸리는나를 아주 놓아버리기 전누군가에게서 용서받아야 한다는 생각물살 따라영영 돌아서지 못할 지점까지 밀려가면떠돌 더 넓은 바다가 있을 거라고그 바닷가에서 나, 물고기 낚는 어부일까?한 마리 물고기일까?형형색색의 물고기 떼에 섞여 거스르는길고 비좁은 어도(魚道)등지느러미가 지고 나르는물살인 듯 물빛인 듯전신마취의 경험은 의식을 꺼버리는 경험이다. 죽음을 경험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자신의 의식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경험해보는 일일지 모른다. 시인은 전신마취의 경험 속에서 다른 시간, 다른 생의 시간들에 대해 상상해내고 있다. 시간에 대한 깊은 사유가 나타난 시이다.시인
2014-07-28
열무밭에 김을 매는데꽃인 줄 알았나 보다어깨 위에 문득 나비의 숨결날개를 접고가슴께를 더듬어보고오래 내 눈을 들여다보기도 하더니이제 그만 돌아서 간다등 돌린 그녀의 날개가 젖어 있다오래전에 날려 보낸그때 그흰나비 한 마리모든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스치는 바람 한 점도 오랜 시간 준비된 필연이며 휘몰아치는 폭풍우도 억겁의 인연을 거쳐 여기에 온 것이다. 하물며 예쁜 날개를 가진 나비 한 마리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며 그 설렘은 대단한 것이다. 그렇게 애절하게 왔다가 날아가 버린 그 때 그 흰나비 한 마리는 그가 보내버린 사랑이었다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아련한 그리움에 젖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시인
2014-07-25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자에게선흙냄새가 난다통통한 힘살에 불거진 힘줄을 통해씨앗들이 무시로 넘나들기 때문이다아이는 어미의 심장이 생산해내는씨앗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젖 빠는 일에 열중이다깊은 심장에서 자라난 씨앗들은뿌리를 뻗고, 뿌리는 샘물을 긷는다그러므로 여자의 몸속에는 깊은 우물이 있다아이의 우물, 내력의 우물심지어는 제 몸을 부풀려젖을 길어 대를 이어 물리는 일이다조물주가 잘 빚어 세상에 내려준촉촉한 농부,여자의 몸빛이 젖빛인 까닭도거기에 있지 않을까여자(아내)를 촉촉한 농부라 칭한 시인의 인식에는 어머니와 아내가 지니고 있는 생명의 산실이라는 숭엄한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여자의 몸속에 자리잡고 있는 깊은 우물이 씨앗들을 길러내는 힘이라는 것이다. 씨앗들은 이러한 우물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우물은 퍼내도 퍼내도 끝없이 고이는 생명의 젖줄인 것이다.시인
2014-07-24
더는 뜻 세우지 못하리 더는 어리석어지지 못하리 더는 천박해지지 못하리 더는 사랑에 빠지지 못하리더는 술 취해 길바닥에 나뒹굴지 못 하리더는 비 맞은 초상집 강아지 노릇 못하리가을이 오면 호박잎 죄 마르는 거지 늙어빠진 알몸 절로 불거지는 거지담장 위 누런 호박덩어리 따위 되는 거지그렇게 가부좌 틀고 앉아 유유히 세상 내려다보는 거지가난한 마음 더욱 가난해지는 거지가수 최백호의 노래 중에 `쉰이 되면`이라는 노래가 있다. 한생의 중턱을 넘어서는 중년의 힘겨움과 허탈함과 서러움 같은 것이 녹아난 노랫말이 감동적이다. 이 시 또한 그러한 상실과 허망함과 소외감 같은 비감한 정서가 시 전체를 뚫고 흐른다. 열심히 앞만보고 살아온 지난 세월, 돌아보면 해놓은 것 별로 없고 현실의 나는 이 모양으로 나이만 먹었다는 자기 성찰의 정서가 깔려있는 시편이다.시인
2014-07-23
며칠째 목에 걸려 있는 가시가만있으면아무렇지 않다가도침을 삼킬 때마다 찔러대는 가시손가락을 넣으면닿을 듯 말 듯더 깊이 숨어버리는잊는다 잊는다 하면선명하게 되살아나는견딜 만큼 아픈당신시인은 아픔과 비극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이르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아픔과 비극이 거느리고 있는 미학적인 성질을 시인은 간결한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비극적 세계에 대한 깨달음만이 새로운 세계,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그 어떤 아름다움에 당도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시인
2014-07-22
아버지께서 갈꽃비를 만드신다지난 가을당신처럼 하얗게 늙은갈대꽃을 한 아름 꺾어 오시더니오늘은 당신 몫의 생애를차근차근 정리하여 묶듯이갈꽃비를 만드신다나이 들어 정신도 육신도가벼워진 아버지의 갈대꽃이한데 어우러져 조용히 흔들린 끝에만들어진 갈꽃비평생 짊어진 가난을 쓸기엔 너무 탐스럽고세상 더러움을 쓸기엔 너무 고운저 갈꽃비로무엇을 쓸어야 할까서러운 세월 다 보내신아버지의 한 방울 눈물을 쓸면딱 알맞겠는데아버지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으신다늙으신 아버지가 갈꽃을 꺾어 갈꽃비를 만드시는 풍경을 그려내면서 시인은 아버지의 한 생을 들여다보고 있다. 평생 아버지가 짊어져야 했던 가난을 쓸어버릴 수 없는 빗자루를 만들고 계신 것이다. 평생 대결해야 했던 세상의 더러움과 모순들을 쓸어버릴 수 없는 갈꽃비를 만드시는 아버지의 깊은 서러움을 시인은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4-07-21
몇 발짝 옮겼는데고무딸기보다 검은 개 한 마리가도둑을 잡았다는 듯 막아섰다딸기 하나 따 먹고 도둑놈 취급을 받기에는 억울했지만송아지만 한 개을 이길 수는 없었다어느덧 날이 저물어오고 있었다나는 개에게 붙잡힌 채 고무딸기를 내뱉고 있었다지난 세월 시인은 남의 집 정원의 고무딸기 한 무더기에서 단 한 개의 딸기를 따 먹고 인생의 맛과 향기를 조금 알았다. 그러나 몇 발짝 옮기기도 전에 검은 개로 상징되는 세월이 그의 앞길을 막아선다. 시인에게 나이 오십은 바로 그 억울하고 당황스런 순간과도 같다. 지나 온 삶에서 얻은 것도 누린 것도 별로 없어 억울한데 세월은 야속하게도 그것 마저 다 뱉어놓고 가라고 막아선다. 오늘 아침 우리 앞을 막아서는 검은 개 한 마리를 본다.시인
2014-07-18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주무르고막힌 변기를 뚫고아이들과 어머니의 똥오줌을 받아내던관절염 걸린 손가락 마디이제는 굵을 대로 굵어져신혼의 금반지도 다이아몬드 반지도 맞지가 않네아니, 이건 손가락 마디가 아니고 염주알이네염주 뭉치 손이네내가 모르는 사이에아내는 손가락에 염주알을 키우고 있었네집안 일을 챙기고 자녀들을 양육하며 살림을 하느라 시인 아내의 손은 결혼반지가 맞지 않을 정도로 거칠고 미운 손가락이 돼버렸다. 아내는 생의 반려자인 동시에 밥상 차리기나 빨래를 하거나 심지어는 막힌 변기까지 뚫는 실질적 가장이다. 그렇게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헌신하는 아내에 대한 시인의 순정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어디 시인의 아내 뿐이겠는가.시인
2014-07-17
그이 꿈과 꿈 사이에 나는 나의 꿈을 놓았다. 나의 꿈과 꿈 사이에 그는 그의 꿈을 놓았다.꿈과 꿈 사이를 꿈으로 채웠다. 푸른 새벽이면 그 나란히 놓여진 꿈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꿈으로 꿈을 붙잡았다. 꿈으로 꿈을 밀어냈다. 밀다가 밀리다가 그의 꿈과 나의 꿈이 겹쳐지면서 꿈은 지워졌다. 나는 비로소 잠에 빠져들었다. 어두운 잠 속에서 꿈은 파도가 밀려간 뒤의 조개껍질처럼 드문드문 흉터가 되어 박혀 있었다.한 사람의 꿈과 다른 사람의 꿈 사이에 남은 공간이 없을 만큼 많은 꿈이 놓여있다. 꿈이 꿈을 붙잡고 꿈과 꿈이 겹쳐지지만 결코 합쳐지지는 않는다. 낱낱의 꿈들이 물결을 이루는 순간에 꿈을 만드는 자의 흥분이 있다. 그 절정에서 꿈이 겹쳐지면서 지워지는 순간 쓰라림이랄까 아픔이 남는다. 시인은 그것을 “흉터가 돼 박혀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시인
2014-07-16
눈 감으니 어둡고 눈 뜨니 환하다눈을 믿지 말아라꽃 피니 기쁘고꽃 지니 슬프다생각을 믿지 말아라마음 한번 여닫음에세상이 뒤바뀌는 이치각자 할 일이다어둡고 밝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생명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불교적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이 시는 생을 관조하는 넉넉한 마음이 시를 관통하고 있다. 연기(緣起), 인연(因緣)이라는 끈이 우리의 생에 걸쳐져 있는 것이어서 우리 각자는 지나친 욕망의 삶보다는 비우고 버리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권하는 울림이 큰 시다. 시인
2014-07-15
적도를 행군하여 온 뜨거운 지열이무겁게 불어난 군화끈을 고쳐 맨다꽉 다문 짐승의 잇자국, 하루는 침묵이다하투에 돌입한 노동자들의 붉은 머리완전무장으로 막아선 진압대의 퍼런 대오밀지도 밀리지도 않은, 중천은 팽팽하다주머니 속 핸드폰은 며칠째 울리지 않는다기다림과 기다리지 않음이 질기게 대치 중인오늘은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단순히 하지의 그 뜨거운 열기와 에너지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끓어오르는 에너지의 열기와 신록의 당당함이랄까 일종의 팽창력까지도 느낄 수 있는 생명력을 볼 수 있다.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면서 여기 세 단락의 시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맛과 멋은 긴장감과 함께 거기에 얽혀있는 역동적인 힘이다. 미지근하고 희멀겋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맛과 멋이 아닐까.시인
201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