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매일 아침 신발장에 가지런히 숙이고 있는 뒤축을 쳐다보면 여간 흐뭇한 게 아니다뒤축 뭉개져 비로소 내 발에 딱 맞는 신발처럼, 나는 뭉개지면서 생활의 방편을 구할 줄 안다. 아예 밑창과 딱 붙어서 한 몸이 될 수만 있다면 내 생활에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신발의 뒤축을 꺾는 습관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는 습관, 더하여 보는 발견의 습관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재미난 시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뒤축을 닮은 자신의 처세술을 당당하게 자랑하는 시인의 반어적인 표현에 다가가 보면 비슷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여 미소짓게 한다.시인
2014-09-15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고아픔에 대하여 눈 감는 것이 아니라함께 하는 것이 아닌가같은 밥상에서같은 반찬을 먹으며 견디어 가는 것허나,실천하지 못하는 아픔과 눈물이 더욱더 크다하여,시로써 아부를 하지 않고시로써 유희에 빠지지 않고시로써 세상에 힘없는 자의가려움을 긁어 줄 수 있는게그게 바로 시가 아닐까사회의 모순에 비켜서지 않을 것과 시로써 사회에 아부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결의에 찬 시다. 화려한 수사와 언어유희 같은 쓸데없는 시적 치장에서 벗어나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는 일에, 민중들의 아픔과 함께하며 불구와 부조리의 사회에 대해 결연히 맞서겠다는 대결의지가 강하게 나타난 시다.시인
2014-09-12
몸 깊은 어딘가에 그 어떤 것으로도 소용이 닿지 않는 토악질을 할 때만이 반응한다는 근육 한 줌이 있다고 한다. 어쩌다 먹은 것 다 게워낸 뒤에 눈초리 가득 눈물방울이 맺혔던 것은 그것들이 퍼올린 안간힘의 물기였는지 모른다누군가의 이름 하나를 늦게까지 불러보다가, 결국은 낑낑 울어본 자의 노래여그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몸 어딘가 깊은 곳에 울음주머니랄까 울음공장이 있어서 그립고, 서러울 때 하염없이 울음이 샘 솟아 나오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맞다. 살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에 맞닥뜨릴 때, 혹은 서러움이 북받쳐오르고 한없이 외롭고 그리울 때 그 울음주머니는 끝도 없이 울음을 뿜어내는 것이다. 그런 울음주머니가 우리에게는 있다.시인
2014-09-11
맞절을 한다거울 속에서 그녀는개나리꽃무늬투피스를 입고꽃핀을 꽂고 영문도 모른 채맞절을 한다제사를 지낸다 거울앞에서 그녀는검은색 원피스를 입고숙연하게 절을 올린다맞절을 한다 거울 속에서 그녀는해바라기꽃무늬 스리피스를 입고화환을 쓰고 생글거리며맞절을 한다날마다 거울 앞에서 그녀는절을 올린다날마다 거울 속에서 그녀는맞절을 한다이 땅의 전통적인 가부장제 억압 속에서 여성 해방을 염원하는 시편이다. 처음 시집 왔을 때 거울에 비친 그녀는 개나리꽃 같이 화사했었다. 그러나 억압과 질고의 시간을 지내면서 그녀의 차림은 검은색 원피스로 숙연해지고 있음을 표현하고 하고 있다. 거울 통해 새로운 자아의 해방을 추구하는 시인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시인
2014-09-05
살던 초원을 사람들에게 빼앗긴인도의 엄마 코끼리와 아들 코끼리가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도시에 나타나달리는 차를 쫓아가 들이받고집을 부수기도 하더니달아나는 사람을 밟아 죽이거나 다치게 하다가생포되었다붙잡힌 코끼리 모자가긴 코를 하늘로 쳐들고소리치며 울고 있다비록 말 못하고 영혼이 없다고 하는 동물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사람처럼 인지능력 있고 온정, 사랑 , 연민, 배려, 존경, 존엄, 평화를 느끼고 실천하는 능력을 가지고 그것을 실행하는 존재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시인이 목도한 삶의 터전을 잃은, 성난 코끼리 모자의 풍경은 그런 것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시인
2014-09-04
아내가 숲길에서 품고 온단단하나 안으로 걸어 잠그고 둥글게 웅크린그래서 단단한 새알 같은 열매커다란 접시위에 놓았더니제법 향을 내어 거실 가구들이 킁킁댄다잊혀 질만큼 해가 드나들었던가 말았던가바람이 드나들었던가 말았던가아이의 손끝에서 그만 퍽 바스라졌다아니 그건 피어났다수천 개의 날개를 단 머리들이 접시에 수북 붕붕대었다그걸 아이는 폭탄이라고 했다그걸 아내는 꽃이라고 했다저렇게 수많은 걸 한 몸이라 생각하다니꽃잎들을 다시 숲으로 가져가서 흩어주어야겠다하나하나의 몸에서 수많은 폭발이 일어나겠지무수히 많은 길을 내는 생명의 꽃무리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따스하기 그지없다. 아내가 숲길에서 품고온 새알 같은 열매 하나에 머무는 생명에 대한 깊은 관심은 조현명 시인의 태생적 무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소외되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에 다가가서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고 뜨겁게 호명함으로써 숨결 고운 한 생명체로 일으켜 세우는 특별한 생명의식이랄까 시적감각을 조현명 시인의 다른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시인
2014-09-03
엄청 잘 나가는 밥집이 있었다 산수유 흐드러진 봄날 새초롬한 입맛 궁금해 물어물어 그 집을 찾았다 왁자한 손님 사이 비집고 들어간 벽에는 메뉴 하나 달랑 붙었는데 `그 나물에 그 밥` 죽 떠먹은 자리 없이 씹한 흔적 없이 싹싹 양푼나물밥 비벼 먹고 왔다 이듬해 선거바람 미친년 속곳 날리던 어느 날 다시 그 밥집 찾았다 여전히 성업 중이었는데 점심때라 비뚜름한 출입문 앞에 사람들 줄 지어 서 있었다 한참 만에 밥집 들어서자 바꿔단 메뉴판 눈에 보인다 거기엔 `그 밥에 그 나물` 이라고 쓰여 있었다비빔밥을 비벼먹는 모습도 걸죽하게 말하는 입담도 재밌게 읽혀지는 시다. 사회적 삶이 힘들고 억압적일수록 시인의 언어도 때로는 거침없고 관능적이기도 한데 그것을 탓할 일만은 아닌듯하다. 오히려 건강한 시정신에서 우려나온 것이 아닐까. 구조적인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구의 세상에 대한 야유와 함께 냉소하는 민중적 건강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시인
2014-09-02
공룡의 목덜미를 상그럽게 부비던 백악기의 어느 날쪽빛 강물이느닷없이 뒤집힐 때그들은 발바닥을 씻었을까땅을 딛고 서 있는 고단함가늠할 수 없는 그들이 울음이맨질맨질한 백악기의 바위에내리고쌓이고패이고밥그릇만한 그들의 발자국에내 발을 밀어 넣고 앉아공룡의 맥박을 끌어안는다백악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집적물은 살아있다. 시인은 울주의 천전리 공룡 발자국에서 그 오랜 시간의 흔적을, 아니 현재도 푸르게 살아 흐르는 시간을 본다. 시인의 상상력은 다분히 동화적이다. 오래된 공룡 발자국에 시인의 발을 밀어넣고 앉아 백악기의 시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4-09-01
폐가는 이제 낡은 외투처럼 사내를 품는지밤새도록 쌈 싸먹은 뒤꼍토란잎의 빗소리,삽짝 정낭 지붕 위조롱박이 시퍼렇게 똥자루처럼힘껏 빠져나오는 아침젖은 길이 비리다죽음에 가까이 가 있는 사내를 따스하고 고요하게 품어주는 폐가와 빗소리, 조롱박, 등이 어떤 역동성마저도 느끼게 해주는 풍경 하나를 본다. 죽음 혹은 소멸의 분위기 속에 경쾌하게 떨어지는 토란잎의 비, 아침 같은 밝은 이미지가 어울려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죽음은 다시 신생과 이어져 있고 소멸은 다시 생성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라는 시인정신이 잔잔히 깔려있는 시다.시인
2014-08-28
뿌리까지 투명한 태양을 찾아 나선 사냥꾼들의 대담한 모험은 진행중이다거대한 빙하도 바다를 향해 전진한다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이곳언젠가 나의 이동도 멈출 때가 오겠지만그 땅이 궁금하지 않아조금씩 걸어갈 뿐단조로운 현실을 넘어 새로움을 찾아가고자 하는 끊임없는 목마름이 이 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인생이란 대담한 모험의 진행형이 아닐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변한다. 시인은 끝없는 의문과 숙제를 가슴에 품고 걸어가고 또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도 이러한 의문과 숙제를 품고 시인처럼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시인
2014-08-27
거울거울 속에서너는 몸이 아니라 시간으로 나타난다너는 악보의 끝세로줄처럼 서 있다너는 한쪽 팔이 잘렸고 그것은 유래 깊은 사건 때문이었다그곳에 바다는 없었지만 너는 바닷물에 화상을 입었고내가 불탔고, 기억은 팔이 세 개가 되었다거울 밖에서 돋아나 거울 속엔 지렁이 세 마리가 산다움직이지 않는 채로 자란다거울 속에 앉아 나를 뒤집어쓴 너는끊어지는 허밍으로 존재하고우리는 밤의 치마를 들춘 벌을 받는다거울 속에 있는 너는 어떤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온전히 복원하기 힘든 세 개의 얘기가 이 시에는 존재하는 것 같다. 세 개의 팔에 얽힌 서사다. 이 세 개의 팔은 세 마리의 지렁이로 변주되는데 그 지렁이들이 계속 자라고 있다고 했으니 시인은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여태 놓여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행의 밤의 치마를 들춰보았다는 것은 모르는 게 낳았을 사랑의 진실 하나를 훔쳐봤다는 것으로 읽혀진다.시인
2014-08-26
내가 버려진 상자가 되는 것은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아무도 날 데리러 오지 않아도장례식은 어디서든 시작되고 끝날 것입니다나의 삶이란 한 줄로도 충분해서누구든 나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나는 맨드라미 정원에 살고 있습니다맨드라미 정원은 어디일까? 누구든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주목받지 못하는 하찮은 삶들이 모여 사는 곳이리라. 그곳은 결핍과 상처 투성이다. 그 곳에시인은 순식간에 버려진 상자로 거기 남겨진다. 자신을 한 줄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며 그가 얼마나 상처 입을지 얼마나 깊은 모멸감을 받을지 짐작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의 본모습을 찾기 위한 애씀이 아닐까. 자존감을 찾아나서는 시인의 대담함을 엿볼 수 있다.시인
2014-08-25
화사한 봄날찬란한 벚꽃이노을빛 받으며꽃눈 되어 날린다어머님 보시던 꽃눈이젠 내가 바라본다바람에 날리는꽃눈 사이로손녀가 미소 짓는다이희복 시인의 시에는 늘 어머니와 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회한이 묻어난다. 생명의 원천이며 살아가면서 그 생명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것이 고향집 우물 같은 어머니인 것이다. 그 어머니의 희생과 정성과 사랑에 값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시인은 끝없이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 그리워하고 미안해하고 후회하는 마음을 진솔한 언어로 형상화해 내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4-08-22
밤의 연못에 비친 아파트 창 너머로한 소년이 방바닥에 앉아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나는 그 소년하고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나도 라면을 들고 천천히 밤의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개구리 두꺼비 소금쟁이 부레옥잠들이 내 뒤를 따른다꽃잎을 꼭 다물고 잠자던 수련도 뒤따라와꽃을 피운다아파트에서 한 소년이 방바닥에 앉아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 모습이 그 아래 연못의 수면에 비치고 시인은 물에 비친 그 소년과 소통하기 위해 마음과 눈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러한 변두리 삶에 대한 따스한 시인의 인식과 시각에 개구리도 두꺼비도 소금쟁이도 부레옥잠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잠자던 수련도 가만히 일어나 꽃을 피우며 동참하는 이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걸어들고 싶어지는 아침이다.시인
2014-08-21
이 몸 목숨 다 하거든종이 한 장 소각하듯이그냥 태워버리시기 바랍니다태워도 다 타지 않고 남는 것이 있다면가루로 만들어덕이 많아 보이는 능선을 가진 그런 산 속 풀숲에뿌려주시기 바랍니다이 몸나무의 뿌리나 풀의 뿌리가 되어푸른 잎새로 다시 태어나바람과 이야기하고또 다른 풀잎과 이야기하고저 합니다신이 부여한 자기 몫의 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부탁하는 시인의 마음이 한없이 비어있다. 자연에서 왔으니 미련없이, 자연스럽게 한 장 종이를 태우듯이 태운 재가 되어 능선의 나무 아래나 산 속 풀숲의 뿌리에 스며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의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크고 화려하게 봉분을 쌓고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 줄기 바람으로, 한 줌 가루로 제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생의 겸허한 성찰에 고개 숙여진다.시인
2014-08-20
나 기꺼이 돌아가리바람 한줄기 따라내게 남은 짧은 시간둥글게 깨어지며 껴안으리사방으로 세상은 둥글게 열려있고며칠 사이이토록 너를 가까이 느낀 적은 없다구름밭과 가시장미 넝쿨로 뒤엉킨 길저무는 풀잎 끝에흰뼈의 네 몸 만져진다나 기꺼이 돌아가리바람 한줄기 따라내게 남은 짧은 시간저무는 이승 -----아,둥글고 눈부시다!늙고 병들어 끝내는 이승을 떠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이 당연한 진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거부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시에서 시인은 소멸에 대한 예감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삶의 겸허한 모습이 아름답게 읽혀지는 시이다. 미련 없이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겠다는 중견시인의 자연스런 결의가 편안하게 감동을 주는 아침이다.시인
2014-08-19
태풍이 몰아쳐도 오봉은 달린다포구의 꽃 김양은 거센 파도 밀려오는 선창에 스쿠터를 댄다먼 바다와 맞장 뜰 일에 눈 벌겋던 사내의 어깨가다방커피에 녹아들며 은근슬쩍 김양의 허벅지로 쏠린다서로서로 깍지 긴 채 스크럼을 짜는 폭풍전야아가 어르듯 말 같은 사내를 받아내고 있는 저 무릎 안장에 엎드려나도 그만 인간적으로, 수컷이 되고 싶은 그런 날이다태풍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포구 감포항에 서로 깍지 낀 채 스크럼을 짜는 배들이며 커피 배달을 온 다방 아가씨의 모습이 정겹게 그려지는 한 풍경을 시인은 그려내고 있다. 이 땅 어느 조그만 소읍의 포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이다. 태풍전야의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푸근함과 인간적인 정담이 흐르는 포구에서 시인은 쉬 떠나지 못하고 있다.시인
2014-08-18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들렸다아이들은 어둠 속에 없었다오른쪽 왼쪽 모두 비어 있었다조명탑에 불이 들어왔다열매와 시체와 부리밀던 것들은 막혀 있었다거위의 간이 검게 변해갔다발목도 안 자르고 아이들이 함성 속을 빠져나갔다얼룩을 따라 벽이 번지고 있었다사타구니가 오른쪽 왼쪽으로 비틀렸다뜨거운 눈물이 단단한 눈알에서 쏟아졌다올해의 첫눈이 내렸다이 시에서의 아이들이란 우리가 속한 일상적 시간의 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 그것을 무너뜨림으로써 그 현상과 존재 너머를 갈구하는 주체들이다. 갑갑하고 딱딱한 우리 삶의 틀, 지루한 반복의 감동이 없는 삶의 굴레를 과감하게 뚫고 나가려는 시인의 새로운 극복의지가 빛나는 작품이다.시인
2014-08-14
무시하고 바삐 걸어가는 행인들처럼무심한 표정으로 가볍게 튕겨냈어야 할 그 말을나는 그만 듣고야 말았다그 말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그 말을 발음한 얼굴의 눈을 쳐다보고야 말았다그 순간 아무런 힘도 의미도 없던 말은그 눈빛의 의미를 받아 갑자기 생기가 나기 시작했다허공에서 떠돌던 모든 귀들이재빨리 그의 눈과 내 눈 사이로 모여들었다세상의 말들이 갖는 내밀한 의미가 구원이거나 결손과 파괴의 의미를 가지거나 시인이란 순하고도 명민한 귀를 가지고 있음을 이 시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시인이 들은 말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말 한 마디가 우리를 주저앉히고 일으켜 세운다는 점에서 쉽게 내뱉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낀다.시인
2014-08-13
늙은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빈 소주병처럼 널브러져 있고오래 비어져 있던 누이의 방너무 일찍 세상의 비린내를 맡았던 것일까허물처럼 벗어놓은 너의 희디흰 교복만그리움처럼 개어져 있는데너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느냐윗 시는 `귀향`이라는 시의 한 부분인데 가슴이 싸아해지는 서사가 있다. 아버지는 공사현장의 철근 노동자다. 누이는 행방이 묘연한데 아버지가 내미는 구겨진 만원 지폐 뭉티기의 새 학기 등록금을 도저히 받을 수 없다는 아픈 이야기에 걸쳐져 있는 이 시는 우리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아픈 역사의 전형이다. 그런 아픔을 겪고 일어서고 달려가는 시인의 형형한 눈빛과 강단진 어깨너머로 우리 시대의 희망을 본다.시인
2014-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