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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청동빛으로 굳는다

등록일 2014-08-26 02:01 게재일 2014-08-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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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연 준
거울

거울 속에서

너는 몸이 아니라 시간으로 나타난다

너는 악보의 끝세로줄처럼 서 있다

너는 한쪽 팔이 잘렸고 그것은 유래 깊은 사건 때문이었다

그곳에 바다는 없었지만 너는 바닷물에 화상을 입었고

내가 불탔고, 기억은 팔이 세 개가 되었다

거울 밖에서 돋아나 거울 속엔 지렁이 세 마리가 산다

움직이지 않는 채로 자란다

거울 속에 앉아 나를 뒤집어쓴 너는

끊어지는 허밍으로 존재하고

우리는 밤의 치마를 들춘 벌을 받는다

거울 속에 있는 너는 어떤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온전히 복원하기 힘든 세 개의 얘기가 이 시에는 존재하는 것 같다. 세 개의 팔에 얽힌 서사다. 이 세 개의 팔은 세 마리의 지렁이로 변주되는데 그 지렁이들이 계속 자라고 있다고 했으니 시인은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여태 놓여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행의 밤의 치마를 들춰보았다는 것은 모르는 게 낳았을 사랑의 진실 하나를 훔쳐봤다는 것으로 읽혀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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