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고 막막하여 문득이 세상 홀연히 접고 싶은 날엔해남 땅끝 물 건너 외로운 한 점 섬보길도에 가 보아라중리, 통리 바닷가 수많은 몽돌들모두가 하나같이 모를 버려, 각을 버려물 나들며 둥글둥글한가지로 감싸 안고 사느니삶이 또 덧없고, 허망하여 문득이 지상 홀연히 뜨고 싶은 날엔남해 푸른 파도 너머 햇빛 반짝이는 한 점 섬보길도에 가 보아라섬은 육지에서 모두 떨어져 제 몸의 기억 안쪽에 새겨진 장소로 남아있다. 섬은 바닷물결의 순수한 세례를 받으며 고고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있는 존재이다. 섬은 순수하게 자신을 보존하는 마지막 정신적 보루가 되기에 시인은 삶에 지치고 힘겨워 포기하고 싶을 때 해남 땅끝에서 바라다 보이는 아름다운 섬 보길도로 가보라고 권하고 있다. 거기서 마음을 다독이고 수양하며 진정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시인
2014-05-14
오늘도 서울역 지하도를 지나다 그곳 사람들을 만난다 연변에서 멀리는 하얼빈에서비행기 타고 배 타고 이 나라 수도 서울로 찾아와 나에게까지 한약재를 권하는 저많은 사람들, 눈물이 번져오는 젊은 시인의 마음을 그들이 어찌 알랴. 한국 가면 한몫건진다기에 빚 내서 왔다며 이젠 돌아갈 일이 꿈만 같다며, 결코 가짜가 아니라며나에게 우황청심환을 권하는옛 고구려 땅의 흰옷 입은 동포가 어느 날 서울역 지하도에서 가짜 우황청심환을 팔고 있는 현장을 보고 시인은 당혹감과 함께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조국에서의 형편없는 추락과 비정한 현실을 시인은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시인의 현실 대응을 읽어내리며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짐은 무슨 까닭일까.시인
2014-05-13
경주 남산 바윗틈에서 1300년간 묻혀 있던얼굴에서 출토된잔잔한 물,눈 감은 채세상 온갖 주름살을한없이한없이 펴놓은 얼굴주름살 하나 없는잔잔한 물이여경주 남산 바윗틈에서 1천300년간 무량한 잠에 빠져있던 불상을 노래하는 시이다. 이미 그것은 불상이면서 불상이 아닌 것이다. 불상의 외피마저 벗어버려 그저 잔잔한 물이라고 표현하는 시인의 눈이 깊고 그윽하다. 그 잔잔한 물은 그동안 세상의 온갖 주름살을 펴고 또 펴왔기에 그것은 반야의 빛으로 온 세상에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 시인의 인식이다.시인
2014-05-12
내 뜰의 눈향나무는 눈이 있어북쪽 막힌 벽 쪽으로는 새순을 내지 않고비 내리고 바람 불고 햇빛 비치는 남동쪽으로만할미꽃과 수국과 철쭉을 서슴없이 덮쳐가며몸을 불렸다우아하고 아름답게 품위를 지키면서푸르게 표 안 나게 소리 없이 진격하여영토를 늘리고 힘을 키우는 눈향나무는오늘도 작고 가냘픈 무수카리, 채송화, 은방울꽃을망설임 없이 깔아뭉갰다눈은 있으나마음의 눈이 없는눈향나무를 어쩌나에코파시즘을 연상케하는 시편이다. 19세기 자연과 인간이 통일체임을 강조하며 대지에 대한 사랑과 호전적인 인종주의가 치명적으로 연계됐던 일종의 경향이 에코파시즘이다. 눈향나무가 가냘픈 무수카리, 채송화, 은방울꽃을 깔아뭉개며 세력을 펼쳐나가는 자연 속의 폭력을 보여주는 특별한 작품이다. 우리네 인간세계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시인
2014-05-09
초승달, 몰래 내 목걸이에서 빠져나간 펜던트, 아니 내가 슬쩍 밀어 버린 당신, 손톱 하얗게 세우고 눈 흘기는,초승달, 하늘 손잡이를 힘껏 당긴다. 찢긴 하늘에서 후둑후둑별들이 쏟아진다. 첫울음도 울지 못한 별이랑, 영문도 모른 채끌려 나오는 별이랑, 창가로 달려와 이마를 찧고 가는 별이랑,이제 막 하늘에 뿌리내리며 별이 되고 있을 당신의 아버지까지------ 별의별 별들이 한꺼번에 바다로 뛰어내린다.바다 푸른 살이 움푹움푹 파인다. 바다가 더 부지런히 제 몸을뒤집는다불가사리 한 마리, 바닷가에 식다 만 별 하나가 버려져 있다거의 신의 경지에 올라서 있는 듯한 화자의 거침없는 행동에 눈길이 간다. 초승달을 하늘을 여는 문의 손잡이라고 여기며 힘껏 잡아당긴다는 시인 표현에서 더 이상 섬약하고 소극적인 여성에 머물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우주적 남성으로 변신한다고 말하면 과언일까. 우주적 여성인 바다와 우주적 남성인 화자가 교접을 하고 생산에 이르고자 하지만 원만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출산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수태를 환기시키고 있다. 우주적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다.시인
2014-05-08
바퀴가 굴러간다고 할 수밖에어디로든 갈 것 같은 물렁물렁한 바퀴무릎은 있으나 물의 몸에는 뼈가 없네 뼈가 없으니물소리를 맛있게 먹을 때 이(齒)는 감추시게물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네미끌미끌한 물의 속살 속으로물을 열고 들어가 물을 닫고하나의 돌같이 내 몸이 젖네귀도 눈도 만지는 손도 혀도 사라지네물속까지 들어오는 여린 별처럼 살다 갔으면물비늘처럼 그대 눈빛에 잠시 어리다 갔으면형태와 골격을 갖지 않지만 미묘하게 모양을 이루는 물의 움직임, 그것이 물의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것은 제목처럼 내가 그리워하는 공간 혹은 내 그리움의 운동방식 자체다. 물의 안쪽에서 내가 사라지는 사건처럼 그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이 낮고 부드럽고 움직이는 물의 고요는 얼마나 신비하고 매혹적인가.시인
2014-05-07
유리구슬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논다천장에서 떨어진 빛이유리구슬에 닿은 흰 그림자흰 그림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이리저리 굴리며 논다유리구슬처럼제 알몸을 부끄럽지 않게 온전히 드러내어야지이룰 수 있는 흰, 의 경지검은 그림자 뒤에 저를 숨기는 불순함으로는 이를 수 없는제보다도 더 빛보다도 더 밝은빛그림자 그림자흰 그림자유리구슬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놀면서 천장에서 떨어진 빛이 유리구슬에 닿아 만들어낸 `흰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순수함을 지향하는 시인 정신을 읽을 수 있다. 다분히 미학적이고 윤리적 순수성에 가 닿아있는 시인의 서정은 투명하고 깨끗하다고 볼 수 있다.시인
2014-05-02
부서지고 부서져 마침내바다가 된 아버지무릎뼈는 아파 더 이상 세월 앞에 굽히지 못한다두통마저 시시때때 파도보다 치솟아햇살 눈 뜨기 전통통배로 멸치잡이 나서던 신새벽활어들의 몸짓만큼이나 펄펄하던 시간들어릴 적 노닐던 파도의 속살거림패기로 파도를 사랑한 근육과 의지의 단단함험난한 삶의 파편마저 넘나들던 유연함그 뜨거움까지 희미해서빛을 잃은 태양처럼 희미해져석양에 갈매기 끼룩끼룩하얗게 나비떼같이 흐르는 듯 나는 듯하얗게 빛바랜 모습으로 서 계신아버지강하지만 결코 강하지 않는 아버지. 그가 쓸어안고 건너는 시간, 그를 데리고 가는 시간, 그를 기록하고 추억하는 시간은 짧고 소멸에 가까울 정도로 오래 남겨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늘 동쪽, 아니 새벽에 서 있다. 항상 스스로를 부수면서 세월에 상하면서 그렇게 석양이 돼가는 존재다. 오랫동안 남아있지 못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그가 온몸을 다 써버리고, 가족들을 위해 산화해버리기 때문에 그의 흔적은 많지 않고 남아있지 않다. 장엄한 아버지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시인
2014-05-01
어느날내가 짠 날개가 겨드랑이에서 요동쳤네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끌고 위로, 위로 솟구쳤네나, 그저 날개를 따라왔네와서, 이녁이 되었네이녁의 울음이 되었네한 이레 울다 갈 날개가 되었네이 시에서 화자는 매미다. 어떤 인연으로 푸른 호랑이가 매미가 되어 이녁의 날개가 되었고, 이녁의 울음 곧 이 지상의 울음이 되었다라는 재미난 가정에서 이 시는 출발한다. 너와 나는 모든 것이며 또한 아무것도 아닌지 모른다. 너와 나의 이녁은 저녁에서 이녁으로 뻗어있는 푸른 호랑이가 한 번 일어서는 자리이며 그 계기일 뿐이다. 인연의 덧없음이 읽혀지는 씁쓸한 시이다.시인
2014-04-30
내 안에 소리 없이 켜켜이 쌓이는저 꿈 같은 것들그대는 문 밖에서 문풍지 바람으로 덜컹거리고나는 마음 안에 빗장을 걸었다쌓여서 어쩌자는 것인가갈 길 막고 올 길도 막고마음 안의 빗장마음 밖의 빗장봄 오면 길 뚫릴 것을그렇게 쌓여서 어쩌자는 것인가지난 가을 잎새들이 떨어져 나가고 을씨년스런 날씨들이 이어지면서 걸어 닫았던 마음의 빗장들이 봄이 오면 뚫릴 것이라고 믿고 있는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본다. 거친 눈바람에 걸어닫았던 빗장이기도 하지만 인간사, 몰아치는 시련과 힘겨움 때문에 꽁꽁 걸어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자. 희망찬 봄을 맞이하면서 묵은 앙금일랑 지워버리고 되살아오는 생기가 연두빛을 번져오는 이 봄에 활짝 열어젖혔으면 좋겠다.시인
2014-04-29
깎여나간다, 시간의 찌꺼기들우우웅 아우성치며 칼질하는 면도기에잘게 부서져 흩어진다잘려나간다, 서러웠던 젊은 시절도잊혀진 옛 애인의 `샴푸' 내음도아침햇볕에 사그라져 힘없이 떨어져 내린다면도질이라는 단순한 일상 행위에서 새로운 느낌과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시인의 끼가 놀랍다.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은 시간의 찌꺼기, 젊은 시절, 엣 애인의 삼푸 냄새를 면도질과 연결시키는 데까지 이르러 우리의 잠자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 재밌는 작품이다.시인
2014-04-28
내 몸속 깊숙이서전부가 되어 버린당신의 모습을 본다당신 몸속 깊숙이서전부가 되어 버린나의 모습을 본다당신은 이제 진짜 나다나는 이제 진짜 당신이다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몸속에서 정신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고 그와 하나가 될 때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이러한 합일체를 이중불꽃이라고 표현하면서 나와 너의 두 화촉에 점화된 불꽃에 스민 진정한 사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글거리는 용광로는 불꽃을 댕기고 인생을 값지게 달구는 사랑을 제련하는 담금질을 한다. 이런 불꽃이 이중 불꽃이 아닐까.시인
2014-04-25
겨우 반타작아득하게 노을진 강낙동강은처음부터 보여줄 것 다 보여주지 않는다푸른 생애를 메다 꽂은강둑도 이제는다족류들처럼 편안하게 다리 뻗고 잔다아직도 먼 인생이다흐르는 강(江)도 늘 그렇지만 인생도 처음부터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고통과 슬픔, 분노와 좌절, 용서와 사랑이라는 긴 강을 건너야만 인생은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시인은 푸르른 낙동강 둑에서 아득히 노을진 강을 바라보며 이러한 인생의 이치를 본 것이다.시인
2014-04-24
어머니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아무리 멀어도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삶일까? 이 시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밥값`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우리 주위엔 이 밥값을 하고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아니 나 자신마저 밥값 제대로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해보고 싶어진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남을 위해 배려하며 기꺼이 자신을 내주는 진정한 밥값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밥값하고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시인
2014-04-22
오, 달빛 비린내가 난다이 달빛 언제나 청보리 냄새가 난다달 뜨자 방울음산 꼭대기 불쑥 솟아나방울음산 아래 가문 들녘 훤히 눕다청보릿골 겹으로 깔고 달빛 덮고달빛에 꿈틀꿈틀 청보릿대 비벼넣는그런 일이여 그런 일의 땀몸, 찝찔한 비애여오월 춘궁이 있었다몸 팔아 새끼들 먹인 그 여자가 있었다이 달빛어디서나 방울음산 세우고산 아래 척박한 땅그 풀빛 비릿한 눈물맛 풍긴다이 시는 달빛과 청보리의 교접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품는다는 특별한 발상이 중심 서사를 이루고 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대의 보릿고개에 얽힌 가슴 아픈 가난에 대해 언급하는 시인의 가슴으로 아련한 서러움의 물결이 덮쳐옴을 본다. 청보리가 익으려면 아직도 몇 고개가 더 넘어야하는 춘궁, 눈앞에 출렁이는 청보리를 두고도 겉보리 두어 되에 몸을 팔아야하는 이런 기막힌 일들에 대해 얘기하는 시인 곁에 가만히 서 보고 싶은 심정이다.시인
2014-04-21
요즘도 가끔 자전거를 탄다뒤에서 잡아줄 듯한 하늘과멀찌감치 서 있던 나무가같이 페달을 밟을 듯 가지를 흔드는 공원길로자전거를 몰고 간다바보야,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으라니까넘어져 보라니까귓바퀴가 잘 생긴 바람의 훈수를 들으며나는 멀리까지 나아간다이젠 넘어지지 않는 실력이라자꾸 너무 멀리 나아가서한편으로 슬프기도 하다자전거 타기가 서툴고 어렵지만, 멈추지 않고 그 힘든 과정을 꿋꿋이 이겨나가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끊임없이 전진하려는 시인의 욕구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육체보다는 정신이나 마음, 혹은 혼이 앞 서 있는 것이리라. 뭐든지 마음먹고 하고자 하면 육체적 여러 어려움이야 끝내 극복해 낼 수 있는 법이다.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우리의 투철한 의지와 강단진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시인
2014-04-18
봄비는 용한 족집게를 가지고 봄을 뽑아 올린다살구나무 등걸에서 살구 꽃망울제비꽃 불탄 자리에는 제비꽃어두컴컴한 물 속 갈대 우듬지에서도 갈대여린 싹을 쏙쏙, 용하다 참말로박수보다 용해서 겨울도 암팡진 칼날누굴누굴 누그러뜨리고벌이랑 풍뎅이, 제비, 송사리 떼한눈팔아도 걱정 없다아직은 차가운 봄비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봄을 끌어당기는 힘을 발견하고 있다. 살구나무 등걸에 환한 살구 꽃등이 켜지고, 제비꽃 불탄 자리에는 보랏빛 고운 꽃잎이 피어오른다. 어길 수 없는 자연의 순리다. 봄비의 줄기마다 주렁주렁 새 생명의 고운 꼭지들을 매달고 있음을 시인의 눈은 놓치지 않고 있다. 봄비에서 시작된 생명의 물결이 우리네 삶 속으로 물결쳐 오는 아침이었으면 좋겠다.시인
2014-04-17
할아버지가 숨을 놓자혼자 살던 집에 사람 북적인다저렇게식구가 많았던가가까이 다가서니언제부터 펄럭였나빛바랜 달력 한 장빈방 잇슴보이라 절절 끄름목련나무의 빈방 안에서곡(哭)소리 새어 나온다건을 벗어문상(問喪)하는 목련꽃 이파리들목련나무와 할아버지의 따스한 관계를 보여주는 시다. 할아버지의 고독은 그의 사후에 갑작스럽게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해 더욱 부각된다. 고독과 소멸의 운명을 통해 교감하는 인간과 자연의 끈끈한 유대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목련꽃과 할아버지의 죽음. 애잔한 물기가 눈가에 머무는 아침이다.시인
2014-04-16
물은 천리를 흘렀는데그대 한 자리에 앉아천 날의 물결을 깎았는가가파른 주의주장도 누그러지고날선 입도 잠잠해졌구나가끔 자갈거리며해소기침 끓는 소리수 만 바람과 부대끼었나엎어지고 깨진파도의 집채 가라앉아서수많은 물결과 파도에 씻기고 떠밀리며 자기의 각진 부분들을 다듬고 깎아내어 지금의 동글동글한 몽돌로 서 있는가. 시련과 고난의 시간들을 견디고 이겨낸 몽돌의 존재론적 겸허함을 표현한 시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지 아니한가. 아름다운 성취,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수많은 힘든 시간들과 싸우고 견디고 이겨냈는지 모른다. 더 둥글어지고 더 자신을 지우기 위해 끊임없이 파도에 밀리며 잠들지 않는 몽돌을 생각해 볼일이다.시인
2014-04-15
활엽 침엽 얼싸안고 어화둥둥 얼싸안고높낮은 산봉우리 훨훨 넘는 저 신명신록은 물 한창 올라 넘실대는 해일이다녹슨 가시철망 맨살로 껴안다가군데군데 단풍나무 자지러진 비명소리제풀에 놀란 까투리 푸드덕 날아간다휴전선 넘는 것이 어디 새들뿐이랴적의로 맞선 지뢰지대 단숨에 내달아서백두산 저 너머까지 푸른 힘으로 하나 된다시인은 분단 현실의 아픔을 깊이 인식하고 인간에 의해 상처입은 비극적 자연을 언급하고 있다. 푸른 힘은 신록이 품고 거느리는 엄청난 힘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힘은 이념의 첨예한 대립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어 훼손돼 있다. 이러한 민족 현실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시인은 신록의 푸른 힘을 내걸고 민족 화해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그려내고 있다.시인
201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