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옥 혜
북쪽 막힌 벽 쪽으로는 새순을 내지 않고
비 내리고 바람 불고 햇빛 비치는 남동쪽으로만
할미꽃과 수국과 철쭉을 서슴없이 덮쳐가며
몸을 불렸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품위를 지키면서
푸르게 표 안 나게 소리 없이 진격하여
영토를 늘리고 힘을 키우는 눈향나무는
오늘도 작고 가냘픈 무수카리, 채송화, 은방울꽃을
망설임 없이 깔아뭉갰다
눈은 있으나
마음의 눈이 없는
눈향나무를 어쩌나
에코파시즘을 연상케하는 시편이다. 19세기 자연과 인간이 통일체임을 강조하며 대지에 대한 사랑과 호전적인 인종주의가 치명적으로 연계됐던 일종의 경향이 에코파시즘이다. 눈향나무가 가냘픈 무수카리, 채송화, 은방울꽃을 깔아뭉개며 세력을 펼쳐나가는 자연 속의 폭력을 보여주는 특별한 작품이다. 우리네 인간세계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