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고인 곳은 낮은 자리다높은 곳은 마르고 낮은 곳은 젖는다고여 있는 뒤안길 걸어가면서나는 조각하늘과 나무눈과 지는 꽃잎 이야기를 듣는다고인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다듣는다는 것이다쉴 새 없이 쏟아지던 빗소리 담가 두면어느 사이 잔잔해진다그 때 들으면 비의 음절 하나하나가 보인다본다는 것도 듣는다는 것이다비가 묻혀온 세상 듣는 것이다하늘이 내는 소리도 거기 속한다나무나 꽃도 낮은 자리에서 들으면 들린다길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듣는다어쩌면 본다는 것은 진정한 모습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시인은 보는 것보다는 `소리`의 세계에 집중하고 있다. 듣는다는 것은 진정한 앎이며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빗소리를 들으며 세계를 관찰하고 그 속에서 이뤄지는 우주의 본질과 진실을 발견하고 있다. 우리도 어쩌면 인식의 방편으로 보는 것. 보이는 것에 국한돼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시인
2014-07-11
내 나머지 삶에 강이 흘러갔으면새벽이면 흐르는 강물에 세수하고그 강물 길어 그대 위해 아침을 준비하리삶이 강이라면나는 그 곁 키 큰 미루나무 되리미루나무 아니면 이파리 흔들고 가는 바람바람 아니면 떠 있는 뭉게구름 되리강물 같은 사람아우리 이대로 멈추어 서서 여기 살자강촌에 살자강물처럼 가버리는 우리네 한 생을 관조하는 시인의 눈이 깊다. 아옹다옹 싸우며 건너가는 우리의 삶이 마치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라면 그 얼마나 허망한 것이겠는가. 비록 인간사는 강물처럼 그 강물을 흐르게 하는 바람으로 가버리는 것일지라도 시인은 강가의 미루나무처럼 견고하게 견디며 서 있는 존재를 꿈꾸고 있다. 우리 이대로 멈춰 서서 여기 살자라고. 강촌에 살자라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시인
2014-07-10
나무그늘 아래서 목을 뒤로 활짝 젖히고시커멓게 열린 목구멍 안으로 캔을 기울이자남은 음료가 질금질금 쏟아진다울대뼈가 몇 번 꿈틀거린 후길게 내민 허연 혓바닥 위로캔 속의 마지막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빈궁한 삶의 모습을 시인은 생의 극한에 몰린 노숙자의 모습에서 본다. 노숙의 상황이 어찌 그들만의 몫이며 그들만이 짊어지고 가야할 짐은 아니다. 시대의 몫이고 책임이기도 한 노숙이라는 상황을 시인은 짧은 언어로 노숙인의 행위 하나를, 사소한 풍경 하나를 우리에게 풀어놓고 있다. 우리 주변엔 이러한 노숙자나 아니면 노숙의 상황과 같은 처지의 동시대인들이 아직도 많이,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4-07-09
가뭄에도 몸을 낮추어 견디고목이 타는 햇볕에도 꽃을 피우는 개망초를 보며이제 삶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외진 곳이나 바로 서기 불편한 곳에서도말없이 아름답게 피는 개망초를 보며인생을 더 긍정하기로 했다보아라, 비탈진 산하에서는고개 끄덕이며 사는 것들은 다 아름답지 않는가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리며낮은 곳에서도 꽃을 피우는 개망초를 보며편편한 들판이 아니라 해도가지런한 논둑이 아니라 해도다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다개망초는 이 땅 어디라도, 외진 곳이나 비록 서 있기에 불편한 어떤 곳이라도 꼿꼿이 서서 하얀 꽃을 피워 올린다. 어떤 어려운 여건이라도 다 견디고 긍정하며 제 삶을 살아간다. 주어진 삶과 인생을 그대로 긍정하는 이 땅의 민초들과 꼭 닮았다. 더 나은 환경이나 여건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꿈꾸지 않는다. 다만 그에게 주어진 환경을 숙명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해 생육하며 꽃 피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면서 활짝 생의 꽃을 피우는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망초꽃에서 본다.시인
2014-07-08
회한이 깊어졌다그놈 밟으면 뽀드득거리는구나, 눈 쌓인 날처럼빌어먹을, 뒤틀리고다져지는 소리가 터져나오는구나빌어먹을, 발가벗긴 몸 위에선명한 발자국도 찍히는구나평생을 몇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시인의 삶의 흔적이 짧은 암시의 언어들에 소복 들어있다. 어려운 시절의 학부모운동, 청소년을 향한 마음씀과 그들을 위한 여러 기획들, 우리 농산물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통일의 열망에 이르기까지 인권과 생명과 평화를 살려내는 일들에 투신한 시인의 삶이 단단히 맺혀있는 시이다.시인
2014-07-07
때로 우리가 바람이 된다면땀 흘리며 언덕을 오르는굽어진 등이라도 밀어 올리련만우리 새가 된다면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가그날의 그리움을 노래할 텐데때로 우리가 별이 된다면저 사막 어둠 속을 헤매는어린 양 떼를 비춰 줄 텐데우리가 꽃이 된다면이 세상 어디서나 흐드러지게 피어삶에 지쳐 메말라진 이들에게위안의 향기가 될 텐데때로 우리가 눈물이라도 된다면슬픔에 젖어 어쩔 줄 모르는 이들에게한 방울 순수로 그 마음 달래줄 텐데하지만 나는 네가 아닌 나모자라는 행복을 찾는 소박한 나날이 있어시적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현실적 한계를 극복해 가려는 부단한 노력과 애씀이 가슴에 와닿는 감동의 시편이다. 바람, 별, 꽃, 새, 눈물이 되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뛰어넘으려는 열망이 오히려 절제된 시적 감정으로 단아한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우리네 한 생을 관조하는 깊은 시인의 눈을 느낄 수 있다.시인
2014-07-04
어느 죽은 자의 머리카락이 너를 친친어느 죽은 자의 머리카락이 너를 하늘 너머로 실어갔다증오, 내게로몸부림마다 묻어둔 내밀한 문법이여여태 우릴 이력한 눈먼 믿음의 무릎이여곡은 무용곡 - 모든 음악은 무용곡이다왈츠는 남녀 파트너가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거나 유혹의 첫 단추를 푸는 데에 적절한 춤곡이다. 또한 이별과 상실의 슬픔과 아픔을 품고 있고, 그것을 위무하고 치유하는데도 유용하게 쓰이는 춤곡이다. 이렇듯 양면을 가진 춤곡을 제재로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이다.시인
2014-07-03
오늘 내가 만지는 세상오늘 내가 보는 세상또하나의지붕을 덮으면세상은 내일의 박물관이 된다지붕을 덮음으로써 세상을 내일의 박물관으로 축조하는 것은 시간이다. 이 지붕은 오늘과 내일의 경계를 가르는 시간의 지붕이고 무수한 경계이자 이음새들, 나이테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을 통해 서로 다른 천태만상들이 내일의 박물관인 미래로 흘러가서 거기에 전시된다는 재밌는 발상을 읽을 수 있는 시이다.시인
2014-07-02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별이 진다 깨진 어둠으로 그어 밤은 상처로 벌어지고 여태오지 않은 것들은 결국 오지 않는다는 걸알면서도언제나 그대로인 기다림으로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너는 환하게 벌어진 밤의 상처를 열고 멀리 떠났으니까나는 별들의 방울 소리를 따 주머니에 넣었으니까바람 불 때마다 방울 소리 그러나나는비겁하니까여태 오지 않은 것들은 결국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비관적이다. 그럼에도 기다린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고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것이리라. 우리네 한 생이 기다림의 연속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설사 그 기다림이 부질없는 일이고, 도저히 와 닿지 못할 것에 대한 기다림이라할지라도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끝없이 기다린다는 것. 그게 인생이 아닐까.시인
2014-07-01
설을 쇠러 온 모양이다물수제비 뜨듯 뛰어가는 파문, 검은 개흙의 오후를 흔들어 놓는다일렁이는 호수를 머리에 이고 앉아단풍잎 발바닥에 묻은 웃음의 탄력을 만진다늙은 아내 혼자 전을 부치고피아노처럼 시커멓게 웅크려 앉아 나는 발톱을 깎는다몰려다닐 웃음은 여기에 없고월부로 들여놓았던 영창피아노는 뚜껑 열리지 않은지이미 오래다레이스 덮개 위 얹힌 보조개가 희미하다다시 한바탕 소나기, 천장에 웃음이 파인다소소한 삶의 편린들에서 생의 정겨움과 따스한 서정을 건져내고 있는, 은근한 맛이 풍겨나는 작품이다. 타인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참다운 사람의 정을 발견하고 미소를 머금거나 웃음을 자아내는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러한 정겨움의 문양은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의 사이로 퍼져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본다.시인
2014-06-30
종갓집 맏며느리로 평생 시집살이 하신 내 어머니, 햇볕 좋은 날이면 볕도 아깝다며 이불 홑청 뜯어 빨래하셨다그 아이 두 아이의 어미가 되고 떠나보내는 일이 더 익숙해진나이 되어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어머니에게서 내팔로 옮겨진낯익은 완장어머니나 딸로 이어지는 모계의 서사가 중심을 이루는 감동적인 시이다.종갓집 며느리로 고단하고 힘겨운 한 생을 살다가신 어머니의 삶을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세히 시를 음미해보면 그 행간마다 어머니의 고민과 한숨이 숨겨져 묻어남을 느낄 수 있다. 이 땅 어딘들 이러한 어머니의 숭고한 삶이 없겠는가. 아직도 이 땅 어머니들의 거룩한 완장은 도처에 많다.시인
2014-06-26
슈퍼맨처럼 망토를 두르고 앉았다귀 자르는 것을 주의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망토 위로 귀가 떨어지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더 크게 비명을 질러야 할 것이다당신이 깨워줄 때까지 귀가 떨어져 쌓일 것이다거울 속에서 섬뜩하게 눈을 뜬다모든 싹을 감추어두었는데도내 인생은 나를 눈치챈 것만 같다어쩌면 망토를 두르고 집에 가야 할 것 같다미용실에 앉아 졸고 있는 그녀의 꿈속에서 그녀의 귀는 미용사의 가위에 잘려나가고, 번성하는 넝쿨처럼 잘려나간만큼 다시 자라서 꿈에서 깰 때까지 계속해서 잘려나가기를 반복한다는 재미난 상상이 이 시에 깔려있다. 귀가 잘리는 악몽에서 깨어난 그녀는 내밀한 범죄적 욕망에 대해 생각하면서 불안한 경계심에 빠져드는 재미난 작품이다.시인
2014-06-25
소나기 퍼붓는 날 그를 묻었다저수지 둑길을 따라 길게 걸어나왔다연잎, 연잎 디디며 자욱하게 쌓이는 물,검은 우산에 몰리는 빗소리가 많다.그리하여 건널 수 없는 심연,누군들 이 슬픔의 집대성 아니랴,남의 죽음 빌려 쓰고 다 젖었다연잎마다 내리는 빗물, 검은 우산에 몰리는 빗소리는 그 포개어진 울음 속에서 슬픔을 무한정 열기 시작하고 건널 수 없는 심연을 만들고 있다. 살다보면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모티브 앞에서 이렇듯 처연하게 젖고 또 젖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시인
2014-06-24
외줄을 탄다장대 끝에 이승과 저승의 추를 달고누이가 걷던 길을 간다시치름 떠는 눈동자 위에서녘으로 넘어가는 노을빛, 서녘빛휘어질 듯 그려지는낫낫한 손끝이 흐리다이 시는 시인의 섬세하고 절박한 공간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수직이 가져다주는 어떤 위기감이나 절박한 심정이 시 전반에 흐르고 있다. 세기말 혹은 그런 시대적 절박감이 풍겨내는 고통과 심리적 부담은 인간들에게 얼마나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는지 모른다. 외줄타기라는 선명한 장면이 자아내는 극적효과가 큰 작품이다.시인
2014-06-23
저녁 무렵 마당을 쓸다가문득 이승의 하루를 생각한다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다기다리는 사람이 있고떠나는 사람이 있다아직은 눈물과 슬픔을 지녔으니기다림만 남기고 모두 쓸었다해가 서산으로 어지간히 기울었다곧 밤하늘에 새별이 돋으면누군가 그 사람도기다리며나처럼 마당을 쓸까필자가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바로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이셨던 손병현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이제는 교직에서 은퇴하셨지만 평생을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써오신 시인은 이 시에서 생의 후반부에서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며 회한에 젖어있다. 끝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깊은 통찰력이 스며있다. 밤하늘에 새별이 돋으며 누군가 그 사람도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리며 마당을 쓸것이라는 이 시의 마지막에서 눈시울이 붉어짐은 무슨 까닭일까.시인
2014-06-20
탱자꽃이 폈다벌떡 일어나 방의 배치를 달리하고 싶었다농짝을 옮기니 양말 한 짝 나자빠져 있다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하고농짝의 육중한 무게를 긴 시간 견디고 있다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깜깜한 농짝 귀퉁이에 축 늘어진 몸 걸치고세월을 기다린 충직함에 목이 아리다푸석푸석 붙어있는 먼지 툴툴 털고 이젠 가야 한다너무 오래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아무 일도 없는 듯 잊고 살았다서슬 푸른 탱자나무가안으로 안으로만 가시를 세우는 줄도 모르고5월이면 하얗게 탱자꽃이 핀다. 그럴 때 시인은 가구의 위치를 바꾸면서 갑갑하고 단순히 반복되는 삶에 변화를 주기위해 농짝을 옮긴다. 거기서 오래된 양말 한 짝을 발견하고 이 시를 쓰게 된다. 어딘가에 버려져 아무 말도 못하고 누가 꺼내주기를 기다리다가 우연한 기회에 세상 밖으로 나와 자기 존재의 한 모습을 햇살 속에 드러내는 그 잠복과 인고의 시간을 시인은 들여다보고 있다. 비단 양말 한 짝에 얽힌 일 뿐이겠는가. 그늘지고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웅크린 삶이 아직도 이 세상에는 많지않은가.시인
2014-06-19
때론 보이지 않을 때 열려 오는 귀가 있다달 없는 밤 냇가에 앉아 듣는 물소리는세상의 옹이며 모서리를 둥근 율(律)로 풀어낸다물과 돌이 빚어내는 저 무구함의 세계는제 길 막는 돌에게 제 살 깎는 물에게서로가 길 열어주려 몸 낮추는 소리다누군가를 향해 세운 익명의 날(刀)이 있다면냇가에 앉아 물소리에 귀를 맡길 일이다무채색 순한 경전이 가슴에 돌아들 것이니우리는 감각 중에서 흔히 시각에 의존하고 본 것에 대한 확신의 생각을 고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우리의 습관에 일침을 가하고 있댜. 무한히 열리는 감각의 세계가 우리에게는 있다. 귀가 열리고 더더욱 마음의 귀가 열리면 인간의, 아니, 무한한 우주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화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귀를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보자.시인
2014-06-18
편지 속에푸른 침(針) 박혀바람불면 흔들려 피가 흐른다빌라도의 군인 같은 파도는뭍에 이르러 죄인을 일러주고시퍼렇게 얼은 제 다리를 들여다보고 섰다장엄한 석고대죄 앞에죄인은 발을 씻고 발목을 씻는다자멸(自滅)의 바다 위에노란 해는 걸려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죽었다 죽었다 되뇌인다죽었다 죽었다 편지를 쓴다검은 열매들은 밤에 떨어져바다에 쌓여간다죄인, 자멸의 바다, 늙은 의자, 검은 열매 같은 시어들이 가지는 죽음의 이미지는 물이 가진 재생력, 정화력에 의해 순수한 생명감을 부여받는다. 이 시에서 바다는 죽음의 물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물로 화함으로써 소멸과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강한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시인
2014-06-17
아지랑이 만취한 서초동 꽃길 따라생사(生死)와 키재기하는 법원 길로 들어서면빚처럼 술술 불어난 변호사 사무실 신축공사장아버지의 푸른 나날 켜켜로 쌓아올린저 높은 곳의 소망, 울음 쌓은 성채의 꿈이아직은 한숨 속으로 무너질 때가 아닌데,언제부턴가 빈사람 수만큼 민들레꽃 피어나고포클레인 굉음에 무서워 잠 못 드는 밤건넌방 아이들은 저 아래로 늘어난 고층 불빛말없이 바라본다시인이 스무 살 되던 해 그녀는 서초동 꽃마을에서 대학생들이 운영했던 공부방에 서서 이 시를 썼다. 그곳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겨우내 버텨내던 시린 삶들도 사라져간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다. 철거반원들이 무지막지한 강제와 무참하게 꺾이고 무너져 내리던 아이들의 꿈…. 이런 것들을 목도한 젊은 시인의 아픈 기억들이 참참하게 펼쳐져 있다.시인
2014-06-16
누가 열린 문을두들기고 찢고 열어 젖히는가그 안에 것은또 다른 안에 것을 품고 있는 것이어서아름다운 한 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고운 이름 꼭간직되어야 하는 것을열지 마라잠그지 않은 것이니 열지 마라문 안의 붉고 하얀 꽃잎을 찢어시궁창에 버리는 너희들아문 밖 목련꽃등 우련히 밝은데잠그지 않은 문이니 열지 마라열지 마라 너희들아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무자비한 폭력에 끌려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어린 생명들이 많다. 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환하게 밝혀줄 고운 생명들이다. 비정하고 잔인한 세상을 향해 그래도 문 밖에는 목련꽃등이 우련히 밝은데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이 땅의 가엾은 어린 생명들이 있다. 부끄럽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시인
201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