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 영
높은 곳은 마르고 낮은 곳은 젖는다
고여 있는 뒤안길 걸어가면서
나는 조각하늘과 나무눈과 지는 꽃잎 이야기를 듣는다
고인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다
듣는다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던 빗소리 담가 두면
어느 사이 잔잔해진다
그 때 들으면 비의 음절 하나하나가 보인다
본다는 것도 듣는다는 것이다
비가 묻혀온 세상 듣는 것이다
하늘이 내는 소리도 거기 속한다
나무나 꽃도 낮은 자리에서 들으면 들린다
길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듣는다
어쩌면 본다는 것은 진정한 모습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시인은 보는 것보다는 `소리`의 세계에 집중하고 있다. 듣는다는 것은 진정한 앎이며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빗소리를 들으며 세계를 관찰하고 그 속에서 이뤄지는 우주의 본질과 진실을 발견하고 있다. 우리도 어쩌면 인식의 방편으로 보는 것. 보이는 것에 국한돼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