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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넌방

등록일 2014-06-16 02:01 게재일 2014-06-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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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정 순

아지랑이 만취한 서초동 꽃길 따라

생사(生死)와 키재기하는 법원 길로 들어서면

빚처럼 술술 불어난 변호사 사무실 신축공사장

아버지의 푸른 나날 켜켜로 쌓아올린

저 높은 곳의 소망, 울음 쌓은 성채의 꿈이

아직은 한숨 속으로 무너질 때가 아닌데,

언제부턴가 빈사람 수만큼 민들레꽃 피어나고

포클레인 굉음에 무서워 잠 못 드는 밤

건넌방 아이들은 저 아래로 늘어난 고층 불빛

말없이 바라본다

시인이 스무 살 되던 해 그녀는 서초동 꽃마을에서 대학생들이 운영했던 공부방에 서서 이 시를 썼다. 그곳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겨우내 버텨내던 시린 삶들도 사라져간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다. 철거반원들이 무지막지한 강제와 무참하게 꺾이고 무너져 내리던 아이들의 꿈…. 이런 것들을 목도한 젊은 시인의 아픈 기억들이 참참하게 펼쳐져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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