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유서(遺書)

등록일 2014-06-17 02:01 게재일 2014-06-17 18면
스크랩버튼
우 대 식
편지 속에

푸른 침(針) 박혀

바람불면 흔들려 피가 흐른다

빌라도의 군인 같은 파도는

뭍에 이르러 죄인을 일러주고

시퍼렇게 얼은 제 다리를 들여다보고 섰다

장엄한 석고대죄 앞에

죄인은 발을 씻고 발목을 씻는다

자멸(自滅)의 바다 위에

노란 해는 걸려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죽었다 죽었다 되뇌인다

죽었다 죽었다 편지를 쓴다

검은 열매들은 밤에 떨어져

바다에 쌓여간다

죄인, 자멸의 바다, 늙은 의자, 검은 열매 같은 시어들이 가지는 죽음의 이미지는 물이 가진 재생력, 정화력에 의해 순수한 생명감을 부여받는다. 이 시에서 바다는 죽음의 물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물로 화함으로써 소멸과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강한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시인>

김만수의 열린 시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