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초여름

등록일 2014-06-19 02:01 게재일 2014-06-19 18면
스크랩버튼
최 명 란
탱자꽃이 폈다

벌떡 일어나 방의 배치를 달리하고 싶었다

농짝을 옮기니 양말 한 짝 나자빠져 있다

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하고

농짝의 육중한 무게를 긴 시간 견디고 있다

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깜깜한 농짝 귀퉁이에 축 늘어진 몸 걸치고

세월을 기다린 충직함에 목이 아리다

푸석푸석 붙어있는 먼지 툴툴 털고 이젠 가야 한다

너무 오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 일도 없는 듯 잊고 살았다

서슬 푸른 탱자나무가

안으로 안으로만 가시를 세우는 줄도 모르고

5월이면 하얗게 탱자꽃이 핀다. 그럴 때 시인은 가구의 위치를 바꾸면서 갑갑하고 단순히 반복되는 삶에 변화를 주기위해 농짝을 옮긴다. 거기서 오래된 양말 한 짝을 발견하고 이 시를 쓰게 된다. 어딘가에 버려져 아무 말도 못하고 누가 꺼내주기를 기다리다가 우연한 기회에 세상 밖으로 나와 자기 존재의 한 모습을 햇살 속에 드러내는 그 잠복과 인고의 시간을 시인은 들여다보고 있다. 비단 양말 한 짝에 얽힌 일 뿐이겠는가. 그늘지고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웅크린 삶이 아직도 이 세상에는 많지않은가.

<시인>

김만수의 열린 시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