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어렵다가을걷이 끝난 자리 모두 다 퍼주고 향기롭지만 사람 빠져나간저 자리 오래 지독한 폐허다풀꽃 진 자리 다시 풀꽃은 피는데 사람이 진 자리어떤 사랑의 말 돋지 않는다시인이 말하는 `한 사람`은 누굴까? 죽음으로 이별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시인의 곁을 떠나간 어떤 사람일거라 생각된다. 견딜 수 없이 아프고 힘든 시간들을 혼자 감내하면서 폐허가 돼가는 자신의 삶을 가만히 토로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떠난 사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도 못하는 자신의 고통스러움이 나타난 작품이다.시인
2014-04-11
내 애인은 바위 속에 누워 있었지두 손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지누군가 정(釘)으로 바위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들렸지내 애인은 문을 밀고 바깥으로 걸어 나왔지바위 속은 환했지만 바깥은 어두웠지내 애인은 옛날부터나를 알아보지 못했지흔히 돌을 다루는 사람들은 정으로 그 돌을 다스리고 깨뜨리면 그 속에 그가 기다리고 소망하는 본 모습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가 쪼아내려고 하는 진정한 모습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속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정성껏 돌을 쪼아낸다고 해도 그가 바라는 완벽한 이상은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그 이상은 우리의 관념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그것에 대한 열망과 실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그것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보편적 진리다.시인
2014-04-10
한 여자가 돌연 팔목을 붙잡고 늘어져 올려다보는 눈길엔흥정할 수 없는 물결이 몰려 와 출렁였는가불 끄고 여관 방에 누웠을 때 뱃속으로 한꺼번에 동백 꽃잎이 밀려왔다배고픔이 밀려온다처음이듯 배고픔은 밀려오는데 어둠 속어깨 펴고 반듯이 누워보는 것은 공복에 대한 그리움이아주오랜만에 일어났다는 것,밤새 동백의 수사(修辭)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덜컹거리는 창가 파란 잎새와머무는 목덜미 긴 동백시인이 말하는 공복에 대한 그리움이야말로 인간 본질적 욕구임을 자각하면서 시인은 `동백의 수사`가 자신의 시 안에서 멈추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고 있다. 배고픔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생명에 대한 자각이 아닌가 말이다. 침묵으로 견디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긴 사색과 번민의 형상이 `동백`의 이미지 속에 깃들어 있어서 더욱 맛깔스럽게 읽혀지는 작품이다.시인
2014-04-09
자다말고 긁어댔는지열셋 어린 딸의 이마 벌겋게손톱자국 부풀어 올랐다가만 살펴보니 뾰루지처럼 돋아나는 여드름 서너 개피부 밑 왕성하게 물줄기 퍼덕일 때마다벅벅 긁는 맛은얼마나 시원한 서릿발인가두터운 외투가 좀 무거워 보이는 출근길지하철 대형 스크린엔 남도의 들판보리밭을 매는지 냉이를 캐는지호미질 한창이다날이 풀려가는 모양, 땅속에서푸른 물줄기 퍼덕이나보다가려우냐, 들판아내 늙은 아버지를 또,불러냈구나들판은 고된 노동의 현장이면서 생성과 탄생 혹은 성숙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들판에는 온갖 소리들이 혼재해 있다. 건강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들판은 스스로 소리의 난장과 그 소리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노동으로 깊어지는 공간이다. 그곳은 구체적 삶의 소리들이 재생되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진득한 아름다움과 삶의 진액이 녹아있는 사투리가 오고가는 진지한 곳이다.시인
2014-04-08
그해 여름,꽃무늬 비닐장판 같은 게 인생에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밤 열두시 십분의 택시기사는 차를 마시자며이대로 헤어지면 다시 만날 확률이 7만 5천 분의 1, 이라고어디 근거인지 모르겠으나75만 분의 1인 사랑도 매일 그냥그쳐간답니다(….)모르겠으되,7천5백만 분의 1로 마주쳐도스치고 마는 눈빛도 있답니다(우리가 만난 건 어쩌면 0퍼센트의 확률 덕분!)어디에도 무엇에도 아직 아무 근거도모른다 합니다 늘 지독한 비닐꽃무늬의 여름들이라 합니다때론 사랑이든 시든 인생이든 그 근거가 못 견디게 궁금할 때가 있다. 아주 사소한 일상, 가령 이 시에서처럼 그날 밤 택시기사가 건낸 숫자, 7과 5라는 것에서 이상하게 어떤 강렬한 근거가 있는듯해 몹시 궁금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택시기사의 농담이 아니라 그 숫자의 알 수 없는 강렬함이 결국 어떤 근거가 되어 이 시를 쓰게 한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가끔 마주치게되는 희한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4-04-07
스타카토로 달려가는 봄비의 발걸음이 경쾌하다빗방울 은파편으로 흩으며들녘 열무꽃 향기의 터널 속으로첫 기차가 지나간다기적소리,점모시 나비 날개에 부딪혀뽀얗게 눈부시다새 봄을 맞는 시인의 마음이 저절로 경쾌해지고 흥겨워서 희망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지난 겨울의 그 차가운 시간들을 훌훌히 벗어던지고 힘차게 치고드는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봄비를 뚫고 흩날리는 열무꽃 향기며 거침없이 다가오는 첫 기차의 역동성과 함께 봄의 전령인 나비의 날개에 부서지는 봄빛이 은빛으로 뽀얀 아침이다.시인
2014-04-04
그러나 내 심장 불타는 그리움 있다핏줄 뜨겁게 가슴으로 치미는이름은 있다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남빙양, 북극해그들은 영혼을 훨훨 날린다원양어선 선장이기도 한 시인의 해양시는 절실한 현장의 소리를 담고 있어서 특별한 감동으로 우리를 이끈다. 시인은 바다의 부름에 이끌린다. 바다가 그를 호명하고 혼을 울리게 한다. 바다는 희망의 거처이면서 또 다른 고향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육지와 바다라는 두 개의 고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둘은 서로 상충하거나 갈등하지 않는다. 그에게 바다는 아버지의 바다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바다이기도 하다. 바다를 향한 그의 열정은 매우 강렬하고 뜨겁다.시인
2014-04-03
기쁨과 슬픔은 붙었다 녹슨 쇠붙이의 몸에는녹슬지 않은 하얀 얼룩 같은 것이 떨어질 듯, 붙었다대문을 삐끔 열고 나온 늙은이가 하아얀 치아의웃음을 문간 위에 걸어놓고 돌아간다 그 집에는 곧느닷없는 기쁨의 손님들이 들어찬다 굽은 삭정이,그 집의 감나무 가지 위에도 오늘은 하얀 웃음 달이 걸렸다시인은 동네의 어떤 노인의 집을 방문한다. 시인은 `녹슨 쇠붙이`, `늙은이`의 몸을 연계시켜서 소멸이라는 삶의 주제를 노래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소멸할 듯 스러질 듯한 늙은이의 하이얀 치아와 굽은 삭정이 같은 노인의 등이지만 시인은 거기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존재의 태를 발견하고 있다. 눈물겹게 절실한 모습이다. 사라져 버릴듯하면서도 살아있는 존재의 그 절실한 모습의 아름다움을 시인은 짧은 시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4-04-02
다정한 두 목소리가 벌초를 한다한번도 본 적 없어살 나누며 살지 못한 남자와한번도 본 적 없어살 나누어주지 못한 아들이서로의 목을 끌어안고 건너는묏도랑에 물 드는 소리벌초를 간 부자가 나란히 뒤돌아서서 오줌을 놓는 정겨운 풍경을 그리면서 시인은 그들이 함께 세파를 헤쳐가는 것을 떠올리고 있다. 그렇게 부자의 연을 이어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을 서로 도와가며 이겨 나아갈 것을 확신하는 시인의 신념이 이 시에 잔잔히 깔려있음을 본다. 시인
2014-04-01
꽃잎 속 꽃잎 겹쳐 바야흐로 피는 일 지는 일 똑같은 시오리 에움길 쉬임없이 걸었으되 길 위에는 하아, 그림자가 없다. 그러나 다시 이만치 되돌아서면 문득 머언 내 그림자 눈물져 오니 이젠 내가 나를 떠나 울어야 하리민중시의 시대, 그 한 가운데를 뜨겁게 걸었던 시인의 따스한 서정시 한 편을 읽는다. 인생의 희로애락과 행복과 슬픔마저도 돌아보면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쓴 이 시에서 시인은 구호와 깃발을 든 출정의 시간이 아니라 울며 떠나는 성찰의 시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시인
2014-03-31
아 글쎄, 그 순간 방안 가득 뻗쳐있던그 수만 가지 알력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꼭 목련꽃 피는 소리로 들려사람들 뱃속에 찰랑 찰랑 꽃 피고, 마당 가득 꽃 피고물결, 꽃물결 골목 밖으로 찰랑찰랑 넘쳐서는세상도 덩달아 봄이 됩디다피어남도 좋지만 순절도 참 괜찮다 싶데요목련꽃 한 송이가 스스로 버려 차(茶)로 다시 태어나는 걸 보면서 시인은 지고한 몸 보시, 자기희생의 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이러한 것들이 많아서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인지 모른다. 지고지순의 상징인 목련꽃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를 다 줘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가치를 만들어냄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있다.시인
2014-03-27
느릅나무 연둣빛 새순분홍 바다에 손을 적시는 아침구름옷 벗으며 뛰어내리는빛살들 쟁알쟁알 굴러 오는 구미리서서 견딘 겨울 나뭇가지 끝마다초록 물살 이는 비탈그 산자락들 다 내려오면가만가만 물길 열어아득히 흘러가는 복숭아꽃들의분홍 바다온통 분홍빛으로 화르르 피어나 아름다운 봄꽃 세상을 이루는 것을 보고 시인은 바다를 떠올리고 있다, 아득히 오십천 물굽이를 타고 흘러가는 복숭아꽃 천지는 진정한 무릉도원이 아닐까. 느릅나무 새순과 뛰어내리는 봄 햇살과 어울린 분홍바다는 넘치는 생명감으로 일렁거리고 있다. 어둡고 우울한 우리네 인간 세상 깊숙이 그 깨끗하고 고운 분홍바다물결이 가득가득 흘러들었으면 좋겠다.시인
2014-03-26
길고 높다란 기린의 머리 위에 그 옛날 산정호수의 흔적이 있다 그때 누가 그 목마른 바가지를 거기다 올려놓았을까 그때 그 설교 시대에 조개들은 어떻게 그 호수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별을 헤는 밤, 한때 우리는 저 기린의 긴 목을 별을 따는 장대로 사용하였다 기린의 머리에 긁힌 별들이 아아아아…노래하며 유성처럼 흘러가던 시절이 있었다백석이 기린에 빗대어, 정지용이 말에 견주어 자기를 표현한 것처럼 일종의 동물 자화상의 작품이다. 고귀한 성자모습의 기린을 재미있게 시로 만들어 가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동물원에서 기린을 보고 환호하며 신기해 하는 아이들처럼 시인의 순수한 마음과 정신이 깃들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고와 그런 것에 대한 옹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시인
2014-03-25
나도 너를 기다리다 세월이 갔다너와 내가 걷는 오늘 이 길이비록 서로 다른 길일지라도나를 원망하지 마라나도 너처럼너 보이지 않는 낮은 곳에서너를 기다리다 세월이 갔다그렇구나너와 내가 걷는 오늘 이 길은서로 엇갈린 길이 아니라어쩌면 같은 길을 너와 내가 함께어깨동무하며 걸어온 길이다어쩌면 같은 길을 걸어가며함께 바라보며 가는 길이다오늘도 나는 너를 기다린다그동안 불화하며 흘러보낸 세월과 길이 서로 엇갈린 것이 아니라 원래는 같은 길이라는 시인의 말에 귀 기울여봄직한 아침이다. 서로 길은 다르나 함께 걸어간다는 시인의 말에는 인생을 관조하는, 삶에 대한 겸허한 통찰력이랄까 성찰이 나타난 작품이다.시인
2014-03-24
참 희한한 일도 다 있제흥해읍 초곡리 유황 온천숱한 가면을 덧칠하던 때들이떼로 몰려 내 껍데기 돌려주라며 시위하던글쎄 그곳에 말이제어떤 삼대(三代)가 수도를 하고 있었제고승인 듯한 애비는 면벽하고애비의 새끼는 그 애비를 염불하듯때들이 힘겹게 짊어진 옷을 벗기고와불한 작은 부처는애비의 궁뎅이를 달인양 보고 있었지희한도 않제글쎄 그 셋이 너무 닮았어나, 마른침 꼴깍 삼켰네.흥해읍 초곡리에 위치한 유황 온천 목욕탕에서 시인은 희한한 삼존불을 보았다고 말하는 이 시는 거룩한 한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어찌 목욕탕 안에 삼존불이 있겠냐마는 시인의 눈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자의 벗은 모습이 너무도 닮아 있음이 스친 것이다. 그 모습들이 너무도 정겨워 불상처럼 우러러 보고, 참배하고 싶은 정도의 육친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재미난 풍경이 눈에 삼삼하게 떠오르는 아침이다.시인
2014-03-21
산 꿩 소리 유난히 서럽다 했더니울기는 산 꿩이 울었는데눈물은 왜 네가 흘리느냐아무도 너의 출가를 허락한 이 없으니머리카락이 자라는 대로너는 속히 돌아오너라기현아!산 꿩은 절대 운 것이 아니란다지역의 중학교에서 일어난 얘기다. 등굣길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학우들과 담임선생님의 극진한 기원으로 소생하게 된 기현이에 대해 쓴 담임선생님인 이주형 시인의 감동적인 작품이다. 제자의 쾌유를 비는 선생님의 곡진한 사랑과 정성이 시행마다 묻어나는 작품의 일부를 옮겼다. 참으로 따스하고 눈물겨운 시가 아닐 수 없다.시인
2014-03-20
아, 지겨워라 봄꽃들끝나지 않는 봄의 자락에 매달려몸서리치고 있다 활화산 같은 목련도산중턱 붉게 타오르는 진달래도아직 저토록 난분분한데봄은,욕심도 많다머릿속 헤집고 다니면서 독기 뿌려 놓는다아, 터질 것 같은 머리통!차라리,흐드러진 꽃무더기 위에 얹어두고슬그머니 도망치고 싶다그 꽃나무,온 산천에 썩은 피비린내 뿌리도록!봄이 지겹다라고 어쩌면 도발적인 발언으로 시작하는 이 시에서 봄에 느끼는 혼란스러움에서 탈출하고 싶은 심정을 읽을 수 있다. 목련과 진달래로 봄은 활활 타오르고, 이 봄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인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머리를 차라리 떼어놓고 싶어 한다. 현기증나는 봄의 자락에 매달려 몸서리치고 있는 것은 꽃이 아니라 시인 자신이다.시인
2014-03-19
그리기 싫은 그림 안 그리려고제 눈을 찔러 장님 됐던 화가 최북하기 싫은 연주를 하느니 거문고를 아예부숴버린 김성기, 평생 외길 걷기의 그들처럼가지 않아야 할 길은 버리기로 했다. 그런나만의 새 쳇바퀴를 돌리고 또 돌리면서느리게, 때로는 속도를 붙이기로 했다산을 넘고 강을 건너, 어두울수록 영롱한별빛 더듬어 떠나기로 했다. 쓸쓸하더라도나의 오솔길, 마음 가는 길로만 가기로 했다평생 언론에 몸 담으면서 시를 써온 시인의 독백이 인상 깊은 작품이다. 오직 자기 자신이 걸어야만 하는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화가 최북처럼 거문고 연주자 김성기 같이 시인도 오직 시를 쓰면서 한 생을 마감하겠는 비장한 결의가 나타나있다. 그것이 운명의 길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를 궁구하고 오직 그 길로 걸어간 어른들의 길이 선명하게 보이는 아침이다.시인
2014-03-18
나무는 기실제 손끝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한 슬픔의 끝을 보고 있는 것이다몸이 남아 있으므로 살아야 하는모든 것들의 감금과 슬픈 노동을나무는 필사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보고 있는 동안옹이진 손끝에서움찔움찔마침내 날개를 접은 새 움이 돋는 것이다나무는 파랑새가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그것이 뭉툭한 가지에서 돋아난 건지필사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살짝 날아 앉은 건지 묻지 않는다시인은 영원의 시간 속에서 매년 재생되는 존재의 양식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서 차오르는 생명감에 대한 고요한 탄성을 내 지르고 있는 듯하다. 해마다 봄이 오면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가을이면 잎새도 열매도 떨어져 앙상한 몸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에서 우리는 생의 한 이치를 터득하게 된다. 슬픔이나 아픔은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기쁨이나 행복도 늘 그렇지만은 않다. 덤덤하게 기다리고 버릴 때 버리고 비울 때 비울 줄 아는 우리네 한 생의 방식을 일러주는 작품이다. 시인
2014-03-17
묵 먹는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졌다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한 폭의 묵화를 보는 느낌의 이 짧은 시에는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도와 밭을 갈고 짐을 져온 소의 운명적인 동행이 편안하고 적막한 한 장의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할머니와 동고동락해온 소를 할머니는 자신의 몸처럼 아껴주고 목덜미를 쓰다듬어주고 있다. 힘겨움과 외로움을 함께해온 동반자에 대한 애정이 비록 짐승이지만 깊이 스며있는 작품이다.시인
2014-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