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종 태
종이 한 장 소각하듯이
그냥 태워버리시기 바랍니다
태워도 다 타지 않고 남는 것이 있다면
가루로 만들어
덕이 많아 보이는 능선을 가진 그런 산 속 풀숲에
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몸
나무의 뿌리나 풀의 뿌리가 되어
푸른 잎새로 다시 태어나
바람과 이야기하고
또 다른 풀잎과 이야기하고저 합니다
신이 부여한 자기 몫의 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부탁하는 시인의 마음이 한없이 비어있다. 자연에서 왔으니 미련없이, 자연스럽게 한 장 종이를 태우듯이 태운 재가 되어 능선의 나무 아래나 산 속 풀숲의 뿌리에 스며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의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크고 화려하게 봉분을 쌓고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 줄기 바람으로, 한 줌 가루로 제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생의 겸허한 성찰에 고개 숙여진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