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안가를 걷다가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기억할 수 없는 그 어떤 이끌림으로빨려들 듯 들어섰던 것인데요 둘러보니폐가처럼 보이던 외관과는 달리뼈대란 뼈대와 살점이란 살점이 합심해무너뜨리고 주저앉히려는 세력에 맞서대항한 이력 곳곳에 역력합니다얼마 남지 않은 나의 생도 저렇듯담담하고 의연히 쇠락하길 바라며덜컥 입도(入島)를 결심하고 말았던 것인데요이런 속내를 알아챈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우르르우르르 덤으로 딸려왔습니다어떤 부호도 부럽지 않은세금 한 푼 물지 않은뭍에 살다가 제주도로 건너간 시인이 제주생활의 느낌을 담담히 풀어낸 시다. 비록 폐가처럼 보이던 몇 평 안되는 볼품없는 집을 구해 시작한 섬 생활이지만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을 얻은 횡재를 한 것이라 말하는 시인의 자족의 마음이 비쳐져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자연을 벗하며 낯선 곳에서 적응해가는 넉넉한 마음자리를 본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7-28
누구는시 한편 쓰는 것이삼라만상에 큰 업장 하나무겁게 얹어놓는 것이라 하는데또 누구는시 한편 갖는 것이신생의 아기 막 태어나는첫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는데난 언제쯤이면갓난아기의 마음 가슴에 모시면서옳은 시 한편가질 수 있으려나굵직하고 절절한 민중적 정서를 담아내는 중견의 시인이 겸허하게 자신의 시업을 돌아보고 더 정진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보는 시다. 몇 줄 안되는 시 한편이 거느리는 그늘이 깊고 넓다. 시인의 토로처럼 삼라만상의 큰 업장 하나를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고 새 생명을 얻는 것과 같이 숭엄하고 가치로운 일이지만, 감동적인 시 한 편을 생산하는데는 얼마나 내공을 쌓고 부단한 습작의 과정이 따르는지 모를 일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7-27
먼지바람 자욱한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문득 두려워졌다. 평지에 발을 딛는 순간 비탈 위의 기억들이 재가 되어버릴까봐 . 때묻은 작업복과 해진 운동화, 문 닫힌 공장과 늦은 밤 미싱 소리, 낮은 골목길의 담배연기, 긴 축대 끝의 달맞이꽃, 그의 눈빛만큼 고단했던 시절들이 먼지로 날아오를까봐고단하고 힘겨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삶의 무게가 무거워 내려놓고 싶을 때가 수많았지만 쓸어안고 꾸역꾸역 건너온 가파른 비탈길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 소중했던 시간들에 쏟아부었던 열정을 잊지않으려 다짐하고 있다. 이제 살만한 평지의 생활들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고단한 시절의 시간들에 대해 마음을 다잡고 있는 시인을 본다.시인
2016-07-26
한 번쯤은 되게 들어찼던가열증(熱症)과도 같았던 것피부 밖으로 뚫고 나오며열꽃처럼 부풀어올라질겁스럽게도아팠던 기억먼 훗날의 뒤안길에서야가라앉았던 부기의 흔적그때 그 자리 아래엔종창이었거나 핵(核)이었거나다시 한 세월이 흘러간 후에그걸 짜내어 살펴보면은별 알처럼 맺혀 있기도 했던희고 굳었던 알갱이의 결정빠져나왔던 자리, 문득휑하니 열려버린 구멍이라면못내 두고 온 굴헝이었거나내 마음의 깊고도 짠한 분화구라면몸 어딘가가 곪거나 종기가 생겨서 피고름을 짜낸 경험을 시인은 스쳐지나지 않는다. 한 세월 지난 후 그 흔적에서 은별 알처럼 맺힌 희고 굳은 알갱이 결정을 보면서, 아팠던 기억과 함께 자기를 빠져나간 그 무엇이 있어서 못내 아쉽고 그리운 마음이 스려있음을 본다. 몸 속에서 함께 살아오면서 빠져나간 자리에 구멍이 생긴 것을 내 마음의 깊고도 짠한 분화구라고 표현한 시심이 깊고 그윽하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7-25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은어느 틈에 저렇게 검어졌는지 모르나차차 시골동리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뜨거워질 햇살이 산 위를 걸어 내려온다가장 아름다운 이기적인 시간 우에서나는 나의 검게 타야 할 정신을 생각하며밭고랑 사이를 무겁게 걸어간다아내와 함께 전형적인 우리네 시골생활을 하면서 여름 햇살에 검게 타가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시인은 자기 자신의 삶의 자세를 들여다보고 있다. 시골 동리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가면서 농부로 변해가는 아내에 비해서 시인 자신의 정신도 검게 타야 한다고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에 대한 거부보다는 가장 자연스러운 전원생활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면서 물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노동과 분배가 이뤄지는 농촌의 삶에 대한 시인 정신이 묻어나는 시이다.시인
2016-07-22
미장원 앞 사과상자엔 또 부추가 새파랗게 자랐다전에 베어낸 자리가 아직 덜 아물었다자욱하게 소름끼친 것 같다그 칼자국이 밀어올린 키 위에다 소금 뿌린 듯희고 자잘한 꽃이 피어 햇살 아래 지금 한껏 이쁘다가명의 저 어린 창녀들여럿이 새파랗게 몰려한꺼번에 자지러지게 웃는다골목 안 정겨운 풍경을 그리며 시인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텃밭도 아닌 미장원 사과상자에 심은 부추가 새파랗게 돋아오르고 희고 자잘한 꽃이 피어난 골목 안으로 햇살이 가득 스며들고 있다. 어린 창녀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에서도 힘겨운 현실을 이겨나가려는 생의 몸부림 혹은 기대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생의 희망과 긍정의 예감이 감도는 시가 아닐 수 없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7-21
눈부신 은빛나비떼 빠르게 산넘고 있다나비들 이내 귓가에 날아와 낮은 목소리로 무어라 속삭인다그 순간에도 새로운 나비들 또 자라나하늘 가득 바쁘게 날아다닌다모두 잠든 이밤중에도 나비들 수없이 태어나고부지런히 날개달고 있다은빛나비떼 하늘 가득 날아다니고밤하늘 번쩍번쩍 빛난다나비들 태어나는 수만큼 말씀 점점 더 가벼워지고길에는 나비들의 주검, 탈색된 낱말들만 첩첩 쌓인다눈부신 은빛나비떼 바다건너고 있다사람들 여전 외롭다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 보이지 않는 어떤 선이 있다. 이 시에서 나비로 표현되는 휴대폰의 전파가 그 중 하나가 아닐까. 모두 잠든 밤중에도 수많은 선이 우리를 통과하고 날아다닌다. 편리한 세상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문명의 이기를 예찬하는게 아니다. 탈색된 낱말, 여전히 사람은 외롭다는 표현에서 인간성이 훼손되거나 상실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무서운 속도로 전송되는 편리한 문명의 세상이지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 안타까움이 더한 현실이다.시인
2016-07-20
거대한 우주선 군단이하늘을 낮게 지나가듯구름떼가 일제히 이동하다대책 없는 사물들 죄다비명 지르고 빛을 잃다네 말처럼이 세상은 죄가 없다천둥벌거숭이 하나두 팔 벌리고사방 뛰어다닌다구름떼가 덮쳐오는 어떤 날 시인은 존재의 절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뇌성벽력이 치고 곧 폭우가 쏟아질 듯한 하늘 아래서 이 세상은 죄가 없다라는 말을 하지만 오염되고 불구의 세상에 대한 차가운 시선의 현실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들 하늘 아래 죄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겸허히 손바닥을 들여다 보고 싶은 아침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7-19
홍매 지고일년 내내 기다리던 자리다시 첫사랑 어리다맑은 실핏줄 펴옛 하늘 손짓하는느티나무 잔가지 가지다시 첫사랑 고이다푸른 이내 아득한 날먼 산길 걸어 가금방 소실점이 되는여인의 하얀 고무신 닮은낮달 넘어그 홍매 사라지자깊이 울던 새는다시 돌아오지 않고황사 부는 어느 날 문득살아서 휘는 마디 마디첫 화선지 피다첫사랑은 청신하고 곱다. 첫 화선지에 홍매가 피듯이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첫사랑은 짧고 시린 아픔을 수반한다. 맑은 실핏줄 펴 연두빛으로 피어나는 느티나무 잔가지 새순 같은 것이다. 그래서 더 애처롭고 애틋한 것이다. 살다가 휙 뒤돌아보면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들로 가슴에 잔잔한 떨림과 그리움의 잔물결이 이는 것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7-18
나무는 나무에서 걸어나오고돌은 돌에서 태어난다뱀은 다시 허물을 껴입고그늘은 그늘로 돌아온다깊고 푸른 심연 속에서흰 그늘을 뿜어올리는검은등불낮에 펼쳐둔 두꺼운 책갈피로밤이 쌓인다달의 계단들이 아코디언처럼접혔다가 다시 펼쳐지는밤의 정원에서멀리 걸어나와 다시는돌아가지 않을 것처럼저 혼자 앉아 있는밤이 시에서 그늘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나무도 돌도 실존의 존재지만 그들도 그들의 그늘에서 태어나고 걸어나온 것이라는 시인의 인식 방법이 특별하다. 실존과 그늘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공존하고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달이 비치는 밤의 정원에는 이러한 공존이 가만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세대를 이어가는 내림이라는 것을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시인
2016-07-15
갈기 세운 파도동네 골목 휩쓸다 스러지면낮달 서둘러 내쫓은 샛바람밤 깊어 목 더 칼칼하다중늙은이 니미 시팔초고추장에 과메기 찍으며나이 오십 줄에 빤했던 인생다시 빤히 보이는 앞날 두렵다고해일 이는 밤바다처럼 위태롭다고오도 이가리 잇는 긴장된 전홧줄로서로 안부 전한다멀미난 바다 손님 끊긴횟집 창문에 부딪혀 떨고등대 불빛 견디다 못해어둡고 지친 하늘에 정처 없을 때청진 동네 사람들 조각난 꿈 안고해일 속에 잠든다별로 신명나는 일 없이 힘겹고 궁핍한 시대를 건너는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이 오십줄에 빤한 인생이라는 부분에서 시인이 어떻게 세상을 읽어내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현실의 생활을 영위하는 일도 이렇게 힘드는데 다가올 앞날은 오죽하겠는가. 해일 이는 밤바다처럼 위태롭고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탄식이 묻어나는 시를 읽다보면 금이 가고 깨져가는, 아니 깨져버린 우리네 꿈을 생각해보는 아침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7-14
애벌 아닌 두벌이라야 귀가 익어 부드럽다곱삶이 에워가던 고집보다 억센 때가한 마리 배추나비로 히뜩 번져 스친다옛맛을 더듬는 일 풋고추 앞을 서고햇마늘 매운 맛이 녹아들던 막고추장새곰한 열무김치가 서늘히도 어려 온다고갯마루 넘느라 허기져 숨이 차도고봉으로 오른 사발 달 떠오는 밥상머리뚝배기 토장 곁으로 겹쳐지는 호박잎지금은 건강식으로 특별히 챙겨먹어야 되는 보리밥이지만 궁핍하고 힘겨웠던 지난 시절 우리에게는 일상의 한 끼 밥이었다. 거칠고 질리는 밥이지만 풋고추와 햇마늘과 막고추장, 열무김치와 함께 먹는 보리밥은 많은 추억을 담고 있다. 보릿고개 넘어가는 가난한 이 땅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눈물겨운 역할을 해온 것이다. 고봉으로 담은 보리밥을 호박잎에 뚝배기 토장 얹어 한 입 가득 먹고 싶은 아침이다.시인
2016-07-13
고등어 있나요스웨덴에서 온 게 있어요꽁꽁 언 몸을 녹인다배를 가르니 동해바다 냄새가 난다멸치 냄새 미역 냄새가 난다파도소리 갈매기 울음소리가사방에 번진다만 리 타국 인디언의 나라노란 옥수수 알들이햇살에 알알이 붉은 노래 부르는나라고등어를 굽는다비린내가 파도를 타고 사방에서철썩댄다코리언 바다가 물결쳐 와서인디언 붉은 땅에 입술을 댄다낯선 이국땅에서 스웨덴산 고등어를 구우며 고향바다와 고향바다의 고등어를 생각하는 시인은 향수에 젖고 있다. 생김새도 맛도 비슷한 고등어지만 고향 동해바다의 고등어는 뭔지 모르게 우리 입에 맞다. 멸치 냄새며 미역 냄새가 나는 동해바다 고등어를 잊지못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동해바다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고등어를 구우며 아련한 지난 시절과 먼 곳의 정겨운 고향바다를 그리고 있다.시인
2016-07-12
거짓말이야하고 말해보지만내 입은 이미 초록의 경전을 달달 외우고 있다나는 초록의 밀사(密使)가 되어 숲을 빠져나온다여태 내 눈은, 붉음을 초록으로만 보는지독한 색맹이었음을 알겠다핏줄을 타고 한 몸 가득 번져오는이 새빨간 초록초록의 세계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시인은 새빨간 초록이라 말할 정도로 초록의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초록에 흠뻑 심취된 시인은 초록의 밀사가 됐다고 고백하면서 모든 붉음마저도 초록으로 느낄 만큼 강한 초록의 힘에 묶여있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아름다운 초록 천지다.시인
2016-07-11
벗은 허물뒤돌아보지 않고없는 발과없는 날개로사라진 푸른 뱀아내 화사한경전아봄날갈라진숲길에 서서허물뿐인탈피할 수 없는 내가너를 읽는다뱀은 허물을 벗고 그것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린다. 시인은 그 뱀의 생태에서 삶의 자세 하나를 깨닫는다. 봄날 탈피하고 떠나버리는 뱀처럼 우리네 인간은 지난 것들에 대한 미련과 집착으로 뒤돌아보고 아쉬워하고 가슴을 친다. 지난 것들에 대한 미련보다는 나아갈 앞을 바라보고 가고자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제목을 경(經)이라 한 것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7-08
웅이가 젖 뗄 무렵, 웅이 엄마는비린내 나는 동해바닷가 삶이 싫다며집을 나가서 여태 소식이 없다어판장에 나가 막노동 일하는아버지를 걱정하며, 라면 끓이는 아이가끔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칭얼대며손톱을 물어뜯던 웅이서툴게 익은 홍시를 검은 비닐봉지에 들고청소년문화의집으로 달려와 품에 안기던동해바다를 닮은 아이동해시 청소년문화의 집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시인에게 달려와 품에 안기는 웅이는 동해바다를 닮은 아이다. 불우했던 시간들 속에서 꺾이지 않고 참하고 착하게 자라주는 아이. 바다에 나간 아버지를 걱정하며 라면을 끓이는 웅이는 늘 푸르른 물결을 변함없이 가져다주는 동해바다처럼 정직하고 강하게 그에게 주어진 힘겨운 삶을 꿋꿋이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가득찬 가슴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바다같이 건강한 아이다.시인
2016-07-07
영신병원 502호강인숙 환자는아흔다섯 살언니, 언니만 부르는할머니의 기억은유년시절에 머물러 있다이젠 무채색으로 남은할머니의 시간이한 송이 장미꽃으로 피어있다한 때는 화려한 색채 속 청춘의 시간들이 있었던 할머니지만 지금은 한 생의 마감을 기다리는 아흔다섯의 무채색 시간 속의 할머니다. 할머니의 눈에 혹은 가슴에 보이는 것은 무채색이 아니다. 강한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는 짙붉은 한 송이 장미꽃일 것이다. 할머니의 시간은 그녀의 젊은 청춘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이리라. 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7-06
일흔 노부모가시골집에서8개월 어린 딸을 키우고 있다5월이 되어도 농사는 이미 손에놓은지 오래늙은 아버지 등에 어린 딸애가나비처럼 붙어 있다삶과 죽음의 그 묘한 대비아카시아 독한 향기밤안개에 묻혀 마을 뒤덮고소쩍새 소리나직이 낡은 창호지 문 창을 울릴 때잠 못 이룬 새벽이어느덧 내 베갯머리에 와 있다보리가 무룩이 익어갈때면 어김없이 먼 산에서 소쩍새가 운다. 아카시아 꽃 향기가 마을에 퍼지고 밤안개가 자욱이 뒤덮는 밤이 되면 마을을 향해 소쩍새가 슬피 운다. 이 고즈넉한 농촌마을의 한 풍경을 시인은 슬픔이랄까 서러움이랄까 규정하기 힘든 정서로 그려내고 있다. 어린 손녀와 일흔의 노부부의 실루엣이 삶과 죽음의 묘한 대비를 이루며 잠 못이루는 시인의 새벽에 스며들고 있다.시인
2016-07-05
날 두고 살지 말라고속삭이던 그년은공장 나가 삼 년 되어 시집을 갔습니다너 없이 못 산다고달밤에 목 맨 덕수는산 새 지천인 뒷산 까투리가 되었습니다어제는까치가 울고 덕수 어미가 울고오늘은 몽달귀신 우는 마을별 빛은 서러워산 꿩은 낮부터 뒷산에서 웁니다이 시에 설정된 아픈 서사는 산업화 시대를 건너면서 이 땅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시에는 가족의 해체와 방황, 상실감 등이 우울하게 깔려 있다. 수월히 치유되거나 극복되어지지 않는 상처와 한스러움의 정서를 시인은 시종 우울한 언어들로 그려내면서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시인
2016-07-04
버스 운전사가 하품을 한다하품 속으로 긴 터널이 또 들어왔다 나간다버스가 지나갈 때까지아슬아슬하게 붉은 신호를 참고 있다가지나자마자 얼른 푸른 신호로 바꾸는 신호등저절로 피해가는 앞차와 뒤차를가끔 잠을 깨워주는 경적들지그재그 달리는 버스에 맞추어구불거리는 차선들 비틀거리는 가로수들눈 가려도 정확히 과녁에 꽂히는 주몽의 화살처럼거침없이 달리는 우리의 즐거운 버스`즐거운 버스`라는 제목이 재밌다. 시인은 우리에게 시원하게 달리는 버스가 있는 그림 한 장과 유쾌한 감흥을 건네고 있다. 버스운전사는 하품을 하면서 가끔 잠을 깨워주는 경적을 울리며 가로수길을 유쾌하게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다. 주몽의 화살처럼 정확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즐거운 버스 얘기를 하면서 일상에 갇혀 답답하고 별 재미가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나는 감흥을 불러일으켜주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