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그 마음 끝 붉은 가시는왜 그리 아팠을까흘러온 어느 강 언덕매운바람 끝에서슬쩍 보이는 속옷처럼애달픈 가지마다꽃잎을 띄운다아스라이 건너편 시린 하늘빈 강 따라 바람이엷게 물살을 벗겨낸다욱신욱신또 봄은 오나 보다모든 첫사랑은 아픔을 수반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붉은 가시를 오랜 세월 끝없이 찔러오는 것이 첫사랑의 아픔이다. 그래서 더 곱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래서 더 아프고 잊지 못하는지 모른다. 욱신욱신 가슴을 찔러오는 아픔이 번져오면 또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매운바람 끝 강언덕 날리어 가는 바람 속으로 잊지 못할 첫사랑은 아슴아슴 날리어가고 있는 것이리라.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5-02
한때, 높은 하늘과하늘의 마음을 비추던그 나라에서사람들은 국회의사당 앞 광장으로 몰려나와부메랑을 날린다그 부메랑이 돌아와서그대들의 거울을 깨뜨릴 때어쩌다 그들은 깨어진 그들의 초상을 본다어제 저녁에도 그 광장에서는젊은이가 스승을 메다꽂았다시인이 설정한 거울의 나라는 참혹하기 이를데 없다. 고이 옹호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기본적인 가치 질서마저도 무참하게 짓밟혀버리는 현실에 대한 시인의 현실인식이 날카롭다. 이러한 가치의 붕괴는 갈수록 심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스승을 메다꽂는 젊은이와 관련된 그림은 우리 시대의 아픈 초상이 아닐 수 없다. 거울을 가리고 싶은 심정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29
그 집에는 나무가 있어서말없이 가난했네나무가 있는 집은 가난한 집나무는 서정,그 나무, 집과 숨쉬고 있네그 나무에는 집이 있어서나는 그 집을 관이라 부르지관 속에는 아무 말도떠다니지 않네말들은 나무 속에나무는 또 고요 속에아끼던 몇 권의 책반은 어둡고 반은 푸른 별떨어져 나무를 만지는 빛관이 왜 저렇게 푸른지나는 알지 못하고나무가 있는 집은 영원을 향해 열려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무가 있어서 풍요롭고 생명이 가득 깃든 곳이며 초월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집과 나무는 서로 포함되고 포함하고 있다는 재미난 등식을 유지하면서 시인은 이 두 존재가 서로를 숨 쉬게 하는 공존과 상호배려의 관계임을 부드러운 언어로 보여주고 있다.시인
2016-04-28
25번 국도 밀양강 가에는 벚꽃이 축포를 쏘아 올립니다. 갓 스물 처녀 총각들 까르르 웃으면 놀란 꽃잎이 화들짝 날리며 렌즈 속에서 반짝입니다. 어린 아이를 안고 나온 부부는 연신 셔트를 누릅니다. 차르르 착.이라크 중부 나자프 지역 9번 고속도로 검문소, 밴 한 대가 달려오고 있음. 미군 보병 3사단 25mm 기관포탄이 불을 뿜음. 벌집이 된 차 안에는 피난 보따리를 든 어린이와 여성 15명이 피범벅. 콰르르 펑.시인은 아름다운 봄밤 밀양강 가에 축포를 쏘아올리듯 활짝 피어오르는 벚꽃을 바라보며 마냥 흥겹고 즐겁지만은 않다. 시인은 잘못 인화된 봄을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가는 이라크 중부 나자프 지역에서 있었던 아픈 그림 한 장을 소개하고 있다. 적으로 오인되어 포탄에 희생된 어린이와 여성 15명이 무참히 죽어간 가슴 아픈 그림을 소개하면서 진정으로 옹호되고 보호받아야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27
눈물을 찍어 새를 그린화가 이징을 생각하다가한 곡 부를 때마다 모래 한 알 신발에 던져신이 모래로 가득 차야 노래를 그쳤다는명창 학산수를 생각하다가일생 동안 먹을 갈아 구멍낸 벼루가 열 개도 넘었다는명필 이삼만을 생각하다가노래를 잘 듣기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른악사 사광을 생각하는 봄밤중견 시인의 문학에 대한 의지와 열정과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시이다. 이 시에 설정된 화가나 명창이나 명필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시인의 분신이다. 처절하게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절대의 명작이 나오듯이 시인도 평생 시 쓰기에 임해온 태도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비장하면서도 숙연할 정도로 자신을 몰아세우며 자신을 닦달하며 격려하는 치열한 시정신을 느낄 수 있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26
새벽같이 밭머리에 나와 앉은저 망구 할매 좀 보라지벌써 한고랑 훑었는지담배 한 대 빼물고 숨 고르는갓 깬 애벌레같이 뽀얀 얼굴아마도 겨울 초입에 묻어둔마늘쪽들 때문일 것이야한 겨울 언 땅을 뚫고 솟아오른탱탱한 마늘 싹들이겨우내 굳어있던 뼈마디복사꽃으로 물오르게 했을 것이야흙바닥을 향해 굽은 등이세상 가득 봄빛을 끌어오는 동안부끄러워라짐짓 찔러보는 꽃샘추위에도금세 샐쭉 돌아앉고 마는저 꽃나무들의 엄살밀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시인의 눈에 포착된 이른 봄 새벽의 풍경이 정겹기 짝이 없다. 언 땅을 헤집고 오르는 마늘 순에서 되살아나는 우주의 시간을 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언땅에 호미를 대는 할머니는 천수를 다해가는 늙은이다. 제목처럼 노인네는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가버린 청춘의 시간들을 되돌려놓으려는 마음이 간절했는지 모른다. 그게 인생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25
채송화가 부서진 화분 밖으로 기어 나오고 오래된 골목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고층 아파트가 전기 끊긴 집에 달빛마저 끊는다고, 붉은 욕창처럼 문드러진 비닐장판에 누운 잠 다시는 깨지않기를 바라는 서러운 잠이라고, 재개발 때문에 떠나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조간신문 두 면에 가득하다.아니나 다를까, 창구멍 숨구멍도 없이 반지하방 쪼들리는 햇빛에 겨우 키가 크는 애들이 활개치고 놀던 골목에서 한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햇빛은 멀고 얼마나 걸어 나가야 이 골목을 빠져 나갈 수 있느냐고, 기어 나오다 기어 나오다 어느 날 멈춰 버린 키 작은 채송화처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따스한 배려와 공감, 어떤 동정심마저도 가 닿지 못하는 안타까운 풍경을 본다. 재개발을 앞둔 이 땅의 많은 도시 빈민촌의 골목마다 이러한 그림은 살아있는 것이다. 햇빛은커녕 달빛도 잘 들지 않는 골목 깊이 피어난 키 작은 채송화로 평생 살아왔거나 살아가야하는 인생들이 아직도 이땅에는 많다. 안타깝게 아픈 풍경들을 눈 속에, 가슴 속에 담는 시인의 답답한 시심을 느낄 수 있는 시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22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흰 열무꽃이 파다하다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열무의 현실적 효용은 꽃이 아니라 뿌리와 줄기다. 그런데 시인의 텃밭 열무농사는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나 뿌리와 줄기를 놓치고 그만 꽃을 얻은 것이다. 게을러서 그랬을까 아니면, 가까스로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채소를 기르는 솜씨가 없어서 그랬을까. 채소밭을 꽃밭으로 만들었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었지만 시인에게는 그리 중요치 않은 것 같다. 나비가, 나비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리라.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21
어제는 가랑비가 내렸고투망도 없이오늘 곡강에 고기가 떠올랐다어느 시절이 강가 새들이악보도 없이 노래 부르더니떼서리로 몰려들던눈 먼 고기들몇몇은 만(灣) 저편 쇠굽는 불빛을 쫓다가산재 병원으로 가고더러는 오도를 지나 방어리를 거쳐북양산 명태가 되었다만으로 열려져 있는 하구 언덕해무 속 흑구선생의 묘소가 아물거리고낮술에 취한 술패랭이 흐드러져 있다흥해읍의 가장자리를 스쳐가는 곡강은 그 이름처럼 유려하게 휘어져 있는 작은 강이다. 신광면의 호리못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창창한 동해바다로 가져가는 아름다운 강이다. 그 강변에는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부락을 이루고 살면서 더러는 철강공단으로, 더러는 어부가 되어 북양으로 떠났지만 여전히 곡강은 가만히 흐르며 분답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건너보고 있는 것이다. 수필가 한흑구선생의 묘소가 저만치 보이는 하구 언덕에는 흔들리는 들꽃들이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20
딱따구리가 날아와딱딱딱 나를 쪼며 노래할 때아프기도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내 이파리들 기뻐 우우 노래로 화답 했네딱딱딱 딱따구리가내 마음에 둥지를 틀 때부드럽고 따뜻하여내 뿌리에서 우듬지까지노래로 흔들렸네딱따구리가 뚫어놓은 구멍으로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세계가 실려오고나도 딱딱딱 세계를 쪼아 집을 짓는딱따구리가 되었네딱딱딱 딱따구리는 나딱딱딱 나는 딱따구리우주는 나나는 우주무언가 때문에 흔들리고 불안한 나에게 딱따구리가 날아와 나를 쪼으며 내 마음에 둥지를 틀고 부드럽고 따스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고 고백하는 시인은 자신과 자연, 우주가 하나로 합일되는 느낌을 받는다. 바쁜 문명의 시간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삶의 과정 속에서 우리도 눈을 열고 귀를 열고 가슴을 열어 자연을 받아들이자. 우리가 우주가 되고 우주가 우리가 되지 않겠는가.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19
그로부터 산이구름 위에서 내려와내 발바닥에 밟힌다그로부터 강이안개 저 너머에서 흘러와내 몸을 적신다그로부터 사람이사람 아닌 것에서 돌아와내게 말을 건낸다그로부터 먹물이대갈통 속 미로에서 벗어나조선의 산하를 화폭에 거둔다한국화라고 불리는 많은 그림들 중에는 화가의 혼이 배어 있지 않은 그림이 많다. 그럴듯하지만 상상 속의 풍경이고 인위가 지배하는 그림이다. 그런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는 살아있는 겸재의 혼을 느낄 수 있고 아름다운 조선의 산수가 생생하게 먹을 물고 몇 백년 동안 그 멋진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겸재의 진경산수 속에 풍덩 빠져들고 싶은 마음 간절한 아침이다. 겸재 정선이 우리 지역의 청하 현감을 맡았을 때 내연산 계곡에서 그린 몇 몇 그림에서 우리는 이러한 겸재의 예술혼을 발견할 수 있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18
무덤의 나라에는 아니오가 없다아니오가 없는 무덤이허물고 쌓고 허물고 쌓는 것들은모두 무덤무덤들 위에 새로 피우고 돋우는꽃들도 무덤풀들도 무덤무덤이 된꽃들이 슬프다풀들이 슬프다아니오가 없으면아니오가 없는 나라도 무덤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무덤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슬프다아니오가 없는 나라가 슬프다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아프다우리는 어쩌면 긍정의 가치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없는 세태를 경계하고 심히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아니오가 사라진 지 오래된 듯하다. 쉽게 따라가버리고 동의해버리는데 익숙해져 있다. 시인은 이러한 맹목과 순응의 시대를 죽음이라고 지칭하면서 아닌 것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 양심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15
에이허브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멸치, 전쟁이, 고등어, 꽁치, 가시나비고기가 오기도 많이 왔지만 대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 무장한 경비정이 소문을 듣고 빵 빵 빵 총소리를 냅니다. AIS로 주민등록원부 열어보니 마른하늘에 날벼락 쳤다고 합니다. 조밀한 냉기의 오아시오에 들자 많은 도둑이 도착했다 전해집니다. 10도, 11도, 12도 겹겹으로 쳐진 철조망 가로지르는 그들에게 신호등 언제나 빨간불입니다. 비표 없이 갈 수 없는 그곳을 씩씩하게 갑니다. 자동차를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한 잔 소주를 위하여 박명이 되면 곤죽이 된 채, EEZ LINE 넘어 공해로 돌아옵니다. 만선하거나 빈부랄 소리 요령처럼 흔들며 혹은 거시기 빠지게원양어선 선장이기도 한 이윤길 시인의 시에는 역설이 많이 쓰이고 있다. 배타적 경제수역인으로 가로막혀 물고기를 뒤쫓는 일이 도적질이 되지만 바다엔 공공의 바다인 공해가 있다. 물고기의 밥으로 자신의 다리를 내어줬다는 에이허브의 끊임없는 투쟁에서 시인은 우리네 한 생의 모양을 그려내고 비춰보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6-04-14
어래산 북사면을 오른다숨은 턱턱산은 물고기처럼 가파른 등지느러미를 흔들어제 등에 업힌 나를 내팽개치려고 안달인데노루귀너는 내 엄지발톱이 자지러지거나 말거나저만치 앞에서 하얀 귀를 쫑긋거려널 만나기 위해죽자하고 발작을 내딛는활공(滑空)하늘 가득 붐비는부레, 혹은지느러미삼월, 아직은 산모룽지에는 잔설이 쌓여있고 얼음새꽃이 피어나고 버들강아지 솜털 같은 새순들이 피어오른 생명 태동의 시간들이 이어진다. 어떤 예감들로 자연은 부풀어오르고 꼼지락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래산 북사면 가파른 능선을 오르며 시인은 이런 생명의 시간들에 예민한 눈길과 고운 마음길을 얹어놓는다. 하늘 가득 붐비는 부레 혹은 지느러미. 희망 크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13
관광버스와 수학여행단은원자력 전시관 앞에서 기웃거리지 않아도대환영과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그들의 품에 안겨주는원자력 발전소 홍보용 책자와 방문 기념품들은그들이 두려워하던 핵폭탄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의문과 질문을 가로막기에 충분하다원자력 발전소만 잘 돌려주면깨끗한 에너지 원자력과 함께평생을 안심하고 살 수 있으리라는땃땃한 기대와 희망을 가득 싣고씽 씽 돌아들 간다여기선 침묵이 최선의 방호다에어록은 슬그머니 열리고잡업 조원들을 맞이하는방사능에 오염되어 방사 분해된쉰 공기들한 때 울진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면서 우리 지역의 시인들과 교류한 적이 있는 채상근 시인의 시다. 우리는 원자력 시대에 살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시 불안하다. 원전이 기본적으로 안고 있는 방사능 오염의 위험에 대해 아무리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안심시켜도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볼 수 있었던 치명적인 위험을 떨쳐낼 수 없는 현실이다. 시인은 여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6-04-12
거니는 숲 속작은 섬 하나와 닿지 않고열어 보지 못한 섬푸른 숲을단단히 물고 있다외롭지 않느냐고마을로 가고 싶지 않느냐고행복을 꿈꾸고 싶지 않느냐고대답이 없다단단한 가슴이 빛나는숲 언저리에소리 없이 서 있는섬 하나숲 속에 외로이 서 있는 작은 섬 하나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시인이 지향하는 정결하고 높고 거룩한 어떤 가치가 아닐까. 어떤 풍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섬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견디고 당당히 맞서며, 맑고 깨끗한 한 생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강단진 시인정신의 거처를 본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4-11
버석이던 갈대 잎은 바람에 쏠렸는데요 산벚꽃 웃음에 춘백(春栢)의 눈매는 헛헛히 무너졌는데요 그렇게 웃자란 꽃핌은 온통 상처라 당신 곁 무릎쯤만 내어주고 싶었는데요 몸끝 어쩌지 못하고 물오르는 풀인지 향기인지모란 잎새 그늘 불현 듯 꿈틀대던 꽃대도 그 꽃대 끝에서 떨던 소란한 저녁 물비늘도 몸안을 일렁이던 햇살도 죄다 한통속들이었는데요 그렇게 한백년 비껴 서 있던 당신 겨드랑이와 내 겨드랑이가 이제야 키 낮은 망대를 만들다니바라보는 일만도 망설임이었거늘 가슴에 서로를 묻는 일이야 만장처럼 당신 쪽으로 누운 풀자국에 내내 가난할 것입니다. 모란 냄새 선명한 하마 흔하디흔한 한 봄밤으로 나 내내 따뜻할 겁니다정갈하고 맛깔스런 필치로 남도의 봄을 그려내고 있다. 산벚꽃과 춘백, 모란 잎새까지 고운 강진의 봄을 그리면서 살가운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그 대상이 평생의 상처 투성이로 살아온 어머니의 일생에 대한 경외의 고마움의 마음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어 우리를 감동케하는 작품이다.시인
2016-04-08
산행길 비탈에환하게 피어있는 산철쭉 한 무더기이리 와서 이 철쭉 굵은 꽃술 좀 봐팽팽한 철사줄 공기를 당겨 올리는 낚시바늘 같아그러면, 이 붉은 꽃바늘로 나비날개를 당겨 연애나 해볼까등성 너머 구욱 국 울어대는 산비둘기 울음을산복도로 아래 처박힌 자동차 바퀴를비탈밭 들쑤시고 다니는 멧돼지 꼬리나 당겨봐?낚시바늘 입에 꽉, 물고 살아가는산비탈 언청이 꽃마을다부룩 산철쭉 동네산행길에서 마주친 산철쭉 한 무더기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우주를 본다. 고운 꽃술을 보란 듯이 뽐내는 산철쭉을 팽팽한 철사줄 공기를 당겨 올리는 낚시바늘로 표현한 것은 봄이 와서 곱고 싱싱한 생명천지로 변한 자연에 대해 느끼는 활짝 열린 시인의 마음의 한 자락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리라.시인
2016-04-07
함바 구들장은 쩔쩔 끓고순천 석수 정씨는 종일 잠만 잔다신월동 바닷가 겨울 저녁광주로 공부 나간 둘째는끼니나 제대로 찾아먹는가몸만 상하고돈은 마음같이 모이질 않고간조가 아직도 닷새나 남았는데땡겨먹은 외상값은 쌓여만 간다바다는 촐랑촐랑 무언가를 졸라대고개들은 바람을 좇아 컹컹컹 짖고잠이 깬 정씨가 바다 쪽으로 부스스괴타리를 푼다힘없이 오줌이 옆으로 날린다노동자의 곤고한 삶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하는 민중시다. 굳이 여수라는 특정된 공간의 노동자가 아니어도 좋다. 여수의 노동자인 석수 정씨의 일상을 소개하면서 이 땅 도처에 아직도 수많은 정씨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노동자들의 힘겨운 생활을 소개하면서 시인은 핍진한 민중시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시인
2016-04-06
섬에서 피는 꽃들은바다를 향해 핀다한결같이 바다 쪽을 향해여리고 긴 목을 빼놓고누군가를 기다린다하늘을 가리는 장맛비도잠시 발길을 멈추고가만히 눈을 감고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본다삶이 어떤 모습일 지라도마음을 잡고 있는 뿌리가 있다면바다 끝을 향해서도 두렵지 않음을섬 꽃이 알려 준다섬에서 피는 꽃은 먼 데를 바라보며 핀다는 말로 바꾸어 시작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시 전반에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가 소복 담겨져 있다. 어디 섬에서 피는 꽃 뿐이겠는가. 먼 곳을 바라보며 뭔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것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런 목마름에 젖어있는 것이다. 자연물도 그렇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끝없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을 가슴에 품고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시인
201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