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나무 사이에 길이 있다바람이 건너다니는 길이다새가 날개를 접었다 펴면서 건너면길은 수많은 의문의 잎을 달고 생각에 잠긴다그 옆으로 줄지어 달려가는 전봇대가 보인다그 길은 묶여서 자유롭지 못하다흔들리지 않으려고 서로를 붙잡을수록지독한 가슴앓이를 한다서로를 묶는 일 나무들은 하지 않는다놓아둘수록 길은 수많은 갈래를 만든다어디든지 뿌리만 있으면 갈 수 있다늦은 봄까지 초록이 전염되는 것을 보면 안다가을이 깊을수록 의문을 떨구어길을 환하게 한다어렵게 어렵게 살려하지 않는다가고 오지 못한 길 사람만이 만든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이나, 현대문명의 사물과 사물 사이의 길에는 생명감이 없다. 간섭과 제약의 관계나 부자유와 구속의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는 길이어서 관계를 힘들게 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내포하고 있는 길이다. 그러나 시인이 말하고 있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길은 무한한 자유와 평화가 있고 생명이 넘치는 길이다. 시인은 이런 자연의 길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9-29
몸이 저렇게 바늘처럼 가늘어서그 자체로 이미 꽃 같은 삶이다잎이 몸과 다르지 않고 보면이미 그 자체로 생은 꽃이다(중략)작아야 허물이 줄어든다는 것을 안다그러고도 몸보다 훨씬 큰 꽃을 피운다자신을 위해서는 작게 가지려 하고남을 위해서는 크게 하려는 삶이다꽃잔디는 꽃을 피우지 않아도 꽃이다꽃잔디는 꽃을 피우지 않아도 꽃이다라는 싯구에서 시인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작게 가지려고 작은 꽃을 피우고 남을 위해서는 크게 하려는 꽃잔디의 속성을 소개하면서 우리 삶의 방식에 회초리를 대고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는 아낌없는 관심과 투자를 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인색한 손을 펴는 우리에게 시인은 준엄한 회초리를 대고 있는 것이다. 꽃잔디처럼 살아가라고 가만히 일러주고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6-09-28
중학교 때던가 야윈 얼굴에 마른버짐 하얗게 펴, 있지 나 그거 시작했어 바르르 떨던 속눈썹, 몸 구석구석 뿌리 뻗쳐 꽃을 피울 때마다 소녀는 새로이 살아 와, 벌건 대낮 신열이 뜨겁고새로운 생명의 배태를 위한 소녀들의 초경은 경이로운 것이고 존엄한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말일까. 초경을 경험한 소녀들에게는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일일지 모르나 한 생명으로 태어나 다른 생명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초경을 한 소녀에게 팥으로 밥을 지어주고 축하해주었다고 하는데 시인은 이런 아름다운 경험을 가만히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6-09-27
감기에 걸린 집은 외롭다한밤이면 가래를 뱉어 내며쉬고 있는긴 골목이 깨지 않도록찬 공기 속에 어둔 기색을 게워 내지만기침은 참을 수가 없다목젖 속으로 긴 꼬리를 단가래침이 아직 잠자고 있는집은 외롭다아직도진찰을 받아 보지 못한 채검진받을 날짜만 기다리며불안한 목젖이어둠 속에서 열쇳구멍을 찾는집은 지금앓고 있는 중이다우리의 몸을 집 한 채로 비유하며 감기로 한밤을 힘들게 건너는 자신의 경험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거주하는 집이 살아갈수록 낡고 헐어가듯이 우리네 영혼의 거처인 우리의 몸도 세월 지나가면서 그 기능이 원할치 못하고 이상이 생기고 병들어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집이 낡고 헐어도 쉬 무너지지 않듯이 우리네 몸도 그리 수월히 스러지지 않는 것이리라.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9-26
바다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햇살하얀 자유여하얀 파도여너를 보러 가는 길보리가 패는 초록의 들길로고혹의 눈이 따라 나서네봉길 바다에 가면왠지 서러울 것 같다애달플 것 같다아직 깨지 못한 초여름인데물기 도는 사랑을 광합성 하는 포플라 이파리가손바닥을 흔든다알아 들을 수 없는 말소리 같은 바람이 분다봉길 바다를 보러 가는 길살구꽃 같은 눈물이 다가 온다시인은 왜 봉길 바다에 가는 길에 서서 저리 설레이고 잔잔하게 마음이 떨려오고 눈물이 비쳐지는 걸까. 무한히 펼쳐져 있는 바다 앞에 서면 한없이 작은 존재로서의 자신을 본다. 뿐만 아니라 영원의 자연 앞에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한 생을 아옹다옹 살다가는 우리네 생이 들여다 보이는 것이리라. 지나온 청춘의 시간, 아름다웠던 사랑마저도 이제는 훌훌히 다 벗고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로 끝없이 가슴에 와 닿는 바람 앞에 설 뿐인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시인
2016-09-23
일찌감치 홰에 오른 닭들이잠이 안 온다고 뒤척이는 소리사랑방에선 들릴 듯 말 듯잠 없는 할아버지 글 읽는 소리아직은 좀더 익어야 한다고달빛에 호밀냄새 번지던 마을개척교회 예배 끝나고잔잔한 밤바다에 띄우던 것은 또뉘 집의 착한 작은 배였나그 다음부터다세월이 소스라치며 달아난 것은시인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바다마을의 평화스러운 풍경 하나를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 달빛에 호밀냄새가 번지는 마을, 잠 없으신 할아버지의 글 읽으시는 소리가 잔잔히 밤바다 위로 굴러가는 평화로운 풍경 속에는 선하고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의 바쁘거나 요란하지 않은 잠잠한 시간들이 가만히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9-22
장독 뚜껑 열 때마다항아리 속 묵은 시간에다 인사하지된장 고추장이 얼마나 제맛에 골똘한지손가락 찔러 맛보지 않고는 못 배기지술항아리 본 적 있을 거다서로 응원하느라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입술들장맛 술맛도 그렇게 있는 힘 다해 저를 만들어가는데글 쓰고 애들 가르치는 사람은 말해 뭣 하겄냐?그저 몸과 맘을 다 쏟아야 한다무른 속살 파먹는 복숭아벌레처럼턱만 주억거리지 말고장독 속의 장들이 제맛을 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효되듯이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고 일러주시는 노모의 말씀을 살짝 비춰주고 있다. 생명 가진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제 본분을 다하며 성숙해져가는데 교사로서 교육현장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라는 자문을 하고 있는 시인은 몸과 마음을 다해 제자들에게 사람다움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6-09-21
동해는 태평양으로 열린 길, 고래가 오가던 길이 바다, 언덕, 어디 고래의 땅 아닌 곳 없어서수평선은 저렇게 지구의 둥근 가장자리간절함은 고래만한 우체통의 몸으로동굴처럼 앉아 있기도 한다고바다는 이따금 산정의 풀밭처럼 순하게 엎드렸으니먼바다 파도 골짜기 사이로 춤추며 오는그의 미끈한 지느러미 날개 보이는 듯그도 우리 마음 모르지는 않을 것이어서바다에게 적어 부치는 내 막막한 몇 줄의 엽서여기서부터 고래의 시작일 것만 같아서우리나라 동해 중부 연안에서 부산 앞바다까지 고래가 다니는 길이 있고, 그 바닷가 언덕에는 빨간 소망우체통이 있다.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의 소망을 적은 편지나 엽서를 넣는다. 그 편지에는 그들 소망이 푸른 바다에 가 닿고 떠오르는 태양에 가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람이 소복 담겨져 있다. 어쩌면 시인은 창해의 자유로운 영혼인 고래들이 그 소망을 나르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지 모른다. 눈빛 고운 고래가 이 싱그러운 아침을 유영해 오는 느낌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9-20
봉지 속에한 사내가 있다꽃 떨어지자마자 봉지 속에 유폐된 사내얼마의 내공을 쌓았기에독방에 갇혀서도부처님 몸빛보다 더 찬란할까봉지를 벗기자눈부신 가을 햇살이 황금빛에 튕겨 깨진다몸 안 가득 채운단물은사내의 땀방울이다 그리움이다세상에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고 고인눈물이다눈물이 매달린 배 나뭇가지 사이에서사내가잘 익은 자기 얼굴을 웃으며 따고 있다나뭇가지에 봉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배는 한 사내로 비유되고 있다. 갑갑한 봉지 속에서 성숙한 결실에 이르기 위해 배는 견디며 엄청난 내공을 쌓은 후 충실한 결실에 이른다는 표현을 통해 우리네 한 생도 그러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다. 배 농사를 짓는 농부의 애씀도 그러려니와 인생의 농사를 짓고 있는 우리들도 눈물과 고통과 쓰라림이 수반돼야 가치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9-19
방문을 열고 뜨락을 내다본다뜨락의 옥수수 키재기로 깔깔거리고웃는다팔월 한낮도 지난 황혼은 태양에서떨어져나온황금조각으로 빛의 화살을 쏜다화살은 집들과 후박나무 들어선 들판에 꽂혀자기 자신이 낸 상처에서 피를 흘린다하늘 높이 나는 새떼들 그 피를 물고오렌지 분홍빛 장미꽃을 도처에뿌리자골목길 아이들 와락 함성을 지른다자, 가자 진돌이 우리들이 자주 가는웅덩이에서더욱 높이 올라가는 새떼들 축제를바라보며황혼이 흘린 핏물을 실컷 마시자아니 그런가 나의 애견 진돌이저녁풍경은 평화경 자체라고 말하면 지나친 말일까. 팔월 한낮의 뜨거움이 서서히 식어가면서 노을 스미는 저물녘은 가만히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강아지들도 새떼들도 둥지를 찾아 돌아가고 사람들도 안식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평온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하루치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편안한 힐링의 시 공간 속으로의 귀소(歸巢)는 모든 만물들의 본능이다. 시인은 그런 저녁풍경 하나를 우리에게 가만히 건네고 있다.시인
2016-09-13
버려진 장독은 아무도 열지 않아스스로 제 몸에 금을 긋는다칼날은 아주 오래된 햇살천둥소리, 그리고 어떤 기척들더 이상 빛도 소리도 아닌캄캄함이 터지고그 움직임에 한때 독을 드나들며잘 놀았던 모두가 몰려와 주위를 맴돈다독을 두드리기 시작한다그러면 일시에 깨어나는왁자한 음표들독은 잔뜩 부풀어풀벌레 울음 가장 가까운 곳그곳에 실금이 간다마침내 맞금이 간다독은 그렇게 스스로 몸을 열어오래된 어둠을 소리로 바꿔본다비록 버려진 장독이라도 스스로 제 몸에 금을 긋고, 그 빈 독에 빛과 소리들과 바람이 드나들며 활발한 작용들을 한다는 시인의 존재론적 인식에서 생명력과 함께 어떤 힘을 느낄 수 있다. 독신이라 할지라도 결코 홀로 고립돼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든 사람이든 절대적인 고립은 없는 것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9-12
죽천 바닷가어머니의 새벽은 싱싱하다밤새 파도가 토해놓은 미역, 곤피여명에 건져올리는 손울컥대는 갯내음을 달게 마시며탱탱해지는 어머니의 가슴은새벽안개에 젖은 꿈으로 붉게 흔들리기 시작한다깡마른 몸이 지게차처럼 함지박을 옮긴다나날을 조이는 삶의 그물을날렵하게 빠져 나오는 새벽바다어머니의 발걸음은 생선 지느러미보다 활기차다한 꾸러미 옭아매던 근심들이 달아난다짠내와 비린내가 어머니의 속 깊은 물결에 밀려난다아직 기울지 않고 조각달 희미하게 떠 있는읍내로 가는 길목해산물 냄새 퍼트리며소리없이 밝은 아침이 되시는 어머니시댁이 지역의 죽천바닷가인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골싹하게 담겨진 시다. 여명의 새벽바다에서 삶을 건져올리고 억척같이 한 생을 건너시는 어머니의 견고한 삶의 자세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배어나고 있다. 이 땅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사랑의 모체이며 사랑 그 자체인 것이다.시인
2016-09-09
어떤 벌레가 어머니의 회로를 갉아먹는지깜박깜박 기억이 헛발 디딜 때가 잦다어머니는 지금 망각이라는 골목에 접어든 것이니번지수를 이어놓아도엉뚱한 곳에서 살다 오신 듯한 생이 뒤죽박죽이다밤낮이 예 있어도 분간할 수 없으니문득 얕은 꿈에서 깨어난 내 잠더는 깊어지지 않겠다이리저리 뒤척거릴수록 의식만 또렷해져나밖에 없는 방 안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고누군가 건넌방 문을 여닫는다, 환청인가?그러고 보면 나도 어느새 후생과 사귈 나이필자는 이 시에 나오는 시인의 노모를 뵌적이 있다. 오래 전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울진군 평해읍 직산의 시골 기도원에 기거하시던 노모를 시인과 함께 뵌 적이 있었다. 참 곱고 단아하게 늙으신 모습이었다. 그런데 연로하신 어머니의 기억의 회로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어느듯 시인도 후생과 사귈 나이라고 할 만큼 회갑을 훌쩍 넘긴 나이다. 어머니의 뒤죽박죽된 서사에 대응하는 시인의 마음이 깊고 그윽하지 않을 수 없다.시인
2016-09-08
목조계단 밟고 가파른 시간 더듬어 내려가면캉캉캉캉 울리는거미줄에 걸리어 파닥이던 먼지의 기억들생쥐처럼 들랑날랑하며잎담배 말아서 물고 사다리구름 피워 올리던빛도 소리도 숨죽인 날들아직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구나한때는 내 우울한 방이요 환한 통로이었던거기담배를 재배하는 시골마을에 가면 흙벽을 높이 세우고 지붕을 얹은 우뚝 솟은 담배창고가 있다. 갓 따낸 잎담배를 선별하여 건조시키는 곳이다. 목조계단이 있고 거미줄이 걸쳐져 있고 틈새로 스미는 빛에는 먼지가 떠있는 공간이지만 시인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정겨운 공간이다. 잎담배를 말아 어른들 몰래 피우며 우울한 시간들을 보냈던 곳이며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였던 그곳이 그리운 아침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9-07
언제나 흑백사진이다세월 가도 늙지 않는다일제 시대 국민복 사진 속 근엄하신아버지오늘밤 경주시 배반동사과꽃 울타리 위로 찾아오신다아버지…오냐…우주의 먼 별밭 지나 흑백으로 오시는보일 듯 말 듯 오시는아버지가끔 달에서 잔기침소리 들린다언제나 흑백사진이다경주시 배반동 사과꽃 울타리 위로둥실 찾아오는저 수염 텁수룩한달시인은 달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아버지와 찍은 흑백사진을 떠올린다. 그 사진 속에는 힘겨운 일제 식민지 시대를 뜨겁게 살다 가신 아버지가 있고 오늘밤 아버지는 사과꽃 울타리 위로 시인에게 찾아오시는 환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수염 텁수룩한 아버지가 그리운 달밤, 그 환한 달에서 아버지의 잔기침소리를 듣는 시인의 가슴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촉촉이 젖어있을 것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9-06
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마당의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살랑살랑살랑고개를 처박고텁텁텁,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승의 소리가 마른 뿌리쪽에서 들렸다빈 그릇을 핥는 소리도 들려왔다이 마른 들판 한가운데 서서얼마나 허기졌다는 것인가, 나는저 한가득 피어 있는 흰 꼬리들은뚝뚝, 침을 흘리며무에 반가워아무 든 것 없는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가앞가슴을 떠밀며, 펄쩍달려드는가시인은 아득한 기억 속에 파묻혀 있는 어린 시절의 그림 하나를 꺼내본다. 정겹기 짝이 없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 마당의 개들이 밥을 기다리던 허기진 모습을 떠올리며 뜨겁게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에 이르고 있다. 강아지들처럼 앞가슴을 떠밀며 펄쩍 달려들며 생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자기를 들어다보고 있는 것이다.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작품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9-05
생명이 순수할수록 자주 멍이 들 듯이사람도 순수할수록 꽃처럼 멍이 든다몸속에 쌓아둔 꽃은 무엇으로 못 지운다잘 살아 아프지 않고 꽃 지고 철이 가도못 잊는 세월에는 다친 디엔에이가 있다상처도 깊은 사랑은 찾아가는 힘이 세다연하고 순수한 생명체들은 쉽게 상처를 입게 된다. 지고지순한 사랑도 멍이 들고 아픔을 겪게된다는 시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꽃 지고 철이 가도 못 잊는 세월에는 그 상흔이 남아있다. 상처가 깊을수록 그 사랑의 깊이 또한 깊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6-09-02
초원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는다고 한다제사도 없다고 한다장수들의 무덤도 돌을 빙 둘러 박은 평토장이다말을 타고 언덕을 내려오는데흰 털 짐승 한 마리가흑에 녹아내려 초원과 거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이곳에서는 죽음도자연이 박아넣는 은입사구름 문양 공예품이다사람이든 짐승이든 죽음은 흙으로 돌아가서 평면이 되는 것이다. 시인이 초원에 목격한 죽음의 무늬가 그런 평평한 평면의 문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물질적 존재방식을 갖추고 살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스러지고 지워져 버리는 것이 우주의 존재들이다. 죽음은 소멸의 비극성 보다는 본디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다. 그래서 별다른 추모의 의식이나 흔적을 갖추지 않는 것이 초원에서의 죽음의 문양이다.시인
2016-09-01
아버지가 나를 오래 쳐다본 적이 있지돌아가시기 몇 달 전나는 이상하게도 눈을 마주칠 수 없어왜 당신의 막내아들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쳐다보실까 생각한 적이 있지눈이 그의 영혼이므로사람은 죽을 때 두 눈을 감지사랑을 할 때도 두 눈을 감지독수리는 죽은 자의 두 눈을가장 먼저 빼먹지오래 쳐다본다는 것은 처음으로 보는 것나는 발밑에 내려와 있는햇볕을 내려다보고 있었고그 사이 당신은 나의 무엇을 처음으로 보았나눈이 그의 영혼이므로한 사람의 눈빛은 쉽게 변하지 않지그리고 오래 쳐다본 것들은 모두 고스란히두 눈에 담아서 간다네눈이 그의 영혼이므로임종 몇 달 전 병상에서 막내아들의 눈을 가만히 응시한 것을 시인은 아버지의 영혼과 자신의 영혼이 비로소 마주치는 순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깊이 동의하고 싶은 시안이다. 필자도 몇 해 전 꼭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시인의 말처럼 눈은 그의 영혼이다. 말없이 눈을 바라보는 것은 죽음을 앞둔 경우이거나 사랑하는 순간이거나 깊은 영혼의 교감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은 그 순간을, 훌훌히 말없이 곁을 떠나가신 아버지를 못내 그리워하며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6-08-31
여름이면 그 골짜기 더 깊었다긴 해도 계곡 큰 바윗돌 곁으로 더 늘어졌다아카시아 나무들은 더 낮게 물가로 내려와서내 손 붙들고 널뛰자 했다깜장 고무신 신은 호박 벌떼가속옷도 잊은 내 등에서 물레질을 놀았고배고픔은 숯불 위에 타는 삘기풀 냄새로 먼저 채웠다여치방아로 시간을 빻고 메뚜기 구이로 한낮을 이끌던 그 터에지금은 거대한 덩치로 서 있는 저 전문 대학교거기에 이젠 내 제자들이 가득 차 있어그럭저럭 복개된 시멘트가 잠시 정다워진다그리운 세상들은 그렇게 간다골짜기는 부킹 나이트 술판으로깜장 고무신 신은 벌레들은 모텔 불빛으로삘기풀 연기도 화장품 냄새로세리골 추억이 그렇게 간다순수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세리골에는 아직도 유년의 흔적들과 함께 정겨움의 시간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그 곳에는 배움터 전문대학이 들어서고 모텔이라는 괴물이 들어서 있다. 그리운 세상들은 그렇게 간다고 말하는 시인의 가슴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고통이 들어서고,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빼곡함을 본다. 그것은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와 있는 것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