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광 규
제사도 없다고 한다
장수들의 무덤도 돌을 빙 둘러 박은 평토장이다
말을 타고 언덕을 내려오는데
흰 털 짐승 한 마리가
흑에 녹아내려 초원과 거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죽음도
자연이 박아넣는 은입사구름 문양 공예품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죽음은 흙으로 돌아가서 평면이 되는 것이다. 시인이 초원에 목격한 죽음의 무늬가 그런 평평한 평면의 문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물질적 존재방식을 갖추고 살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스러지고 지워져 버리는 것이 우주의 존재들이다. 죽음은 소멸의 비극성 보다는 본디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다. 그래서 별다른 추모의 의식이나 흔적을 갖추지 않는 것이 초원에서의 죽음의 문양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