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복 여
스스로 제 몸에 금을 긋는다
칼날은 아주 오래된 햇살
천둥소리, 그리고 어떤 기척들
더 이상 빛도 소리도 아닌
캄캄함이 터지고
그 움직임에 한때 독을 드나들며
잘 놀았던 모두가 몰려와 주위를 맴돈다
독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일시에 깨어나는
왁자한 음표들
독은 잔뜩 부풀어
풀벌레 울음 가장 가까운 곳
그곳에 실금이 간다
마침내 맞금이 간다
독은 그렇게 스스로 몸을 열어
오래된 어둠을 소리로 바꿔본다
비록 버려진 장독이라도 스스로 제 몸에 금을 긋고, 그 빈 독에 빛과 소리들과 바람이 드나들며 활발한 작용들을 한다는 시인의 존재론적 인식에서 생명력과 함께 어떤 힘을 느낄 수 있다. 독신이라 할지라도 결코 홀로 고립돼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든 사람이든 절대적인 고립은 없는 것이다.
<시인>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