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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

등록일 2016-09-12 02:01 게재일 2016-09-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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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복 여
버려진 장독은 아무도 열지 않아

스스로 제 몸에 금을 긋는다

칼날은 아주 오래된 햇살

천둥소리, 그리고 어떤 기척들

더 이상 빛도 소리도 아닌

캄캄함이 터지고

그 움직임에 한때 독을 드나들며

잘 놀았던 모두가 몰려와 주위를 맴돈다

독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일시에 깨어나는

왁자한 음표들

독은 잔뜩 부풀어

풀벌레 울음 가장 가까운 곳

그곳에 실금이 간다

마침내 맞금이 간다

독은 그렇게 스스로 몸을 열어

오래된 어둠을 소리로 바꿔본다

비록 버려진 장독이라도 스스로 제 몸에 금을 긋고, 그 빈 독에 빛과 소리들과 바람이 드나들며 활발한 작용들을 한다는 시인의 존재론적 인식에서 생명력과 함께 어떤 힘을 느낄 수 있다. 독신이라 할지라도 결코 홀로 고립돼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든 사람이든 절대적인 고립은 없는 것이다.

<시인>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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