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시외버스 터미널 앞 밤부터 새벽까지 문 여는 냄비우동 가게 있다. 늙은 양은 냄비에서 우동이 끓는 동안 막차 타고 떠날 사람들이 자신의 냄비우동 기다리며 말없이 앉아있다. 길 위에서 만나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고 어디로 가는지 답하지 않는다. 시인 박희섭, 내게 그 냄비우동 한 그릇 사주며 막차시간 알려주지 않고 가는 곳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고 자신의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 앉아 냄비우동 끓기 기다리며 나도 나의 막차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사는 일이다. 기다리는 사이 냄비우동 가게 주인 부부의 검은머리에 서리 하얗게 내렸다.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막차를 기다리며 시인은 냄비우동 한 그릇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사는 일이 어쩌면 이렇듯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인지 모른다. 버스를 기다리듯 냄비우동 끓기를 기다리듯 우리네 한 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시인의 인식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8-29
누가 바람을 풀어놓는가누가 바람을 불러들이는가앵초꽃을 새로 피게 하고목련 가지 위에 날아온 어린 새떼들의흰 날개를 펴게 하고는누가 불렀는지순식간에 사라졌다사라진 바람의 행방을 뒤좇아꽃구름 초록강물문을 열고 들어서자집은 텅 비어 있다바람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끊임없이 불어와서 사물을 자연을 사람을 건드리고는 흔적없이 사라진다. 시인은 이러한 바람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예민하게 접근하면서 눈에 보이듯 바람의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꽃을 새로 피게 하고 어린 새떼들의 죽지를 펴게 하는 바람, 꽃구름이 떠오르게 하고 초록 강물을 흐르게 하는 존재지만 언제나 바람의 집은 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시인
2016-08-26
1948년 6월 11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 태생인 문일주 아기 1951년 2월 11일 719명 집단학살 때 어미와 총 맞아 죽다 2005년 6월 25일 감악산 넘어간 1948년 7월 10일생 김준태 지금도 세 살배기 문일주 아기묘에 무릎꿇어 술 따르더니 스물아홉 스물여덟 두 아들 아범이지만 옛 친구 만난 듯 무덤 빙빙 돌며 박산골 학살터에 흰밥뿌리며 노래부른다 “일주, 내 친구야! 내가 대신하여 아들 뒀으니 너의 자손도 퍼뜨려 너의 혼백 달래주리라 해와 달도 둥그런 통일조국에 너의 자손 뛰놀게 하리라”해방공간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제재로 한 이 시는 남도의 시인 김준태의 시 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겨우 서너 살된 문일주는 김준태 시인의 친구이다. 비명에 요절했지만 그의 못다한 한 생을 아들을 낳고 치열하게 함께 살아준다는 인식에서 가슴 한 쪽이 찡해져온다. 가파른 이념으로 분단 되었던 비극적인 지난 세월을 치유하고 해와 달도 둥그런 통일조국을 기원하는 시 정신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작품이다.시인
2016-08-25
부엌에서 밥 끓는 냄새가 툇마루로 기어올라 온다왜 빗소리는 와서 저녁을 이리도 길게 한상 차렸는가나는 빗소리가 섭섭하지 않게 마당쪽으로 오래 귀를 열어둔다그리고 낮에 본 무릎 꺾인 방아깨비의 안부를 궁금해한다부엌에서 밥 끓는 냄새에 코를 킁킁거려본 적이 있다. 시인은 가족 공동체를 먹여 살리는 그 밥 짓는 냄새를 다정다감한 시인의 느낌에 실어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 빗소리는 들려오고 밥 끓는 냄새는 퍼지고 정겹고 푸근한 사람 사는 모습들에서 낮에 본 무릎 꺾인 방아깨비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평화경을 안도현 시인 특유의 따스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던져주는 아침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8-24
지난 세기 늦게해발 4789피트 상공에서 비행 중나는 보았다푸른 평원브론토사우루스 하나가 달리다가 멈칫 서서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구 흘리는허연 타액을육중한 근육에지하철과 레스토랑을 적재하고가파른 봉우리를 넘어가던14만 5천 톤의 자본주의유조선 한 척시인은 육지에서 바라본 바다의 정경이 아닌 창공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푸른 평원처럼 펼쳐진 바다엔 공룡이 달리듯 유조선이 달려가고 푸른 생명이 일렁이는 역동적인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온갖 모순과 아픔을 안고 가는 육중한 자본주의 현대사회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시선으로 매서운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8-23
우리 동네 첫 집, 살구나무집앉은뱅이 할매가 재 너머 가막골로 마실 갔다동네 영감들 거느리고 눈바람 맞으며경인년 열 아홉 청상, 꽃상여 타고 갔다고샅을 환히 밝히던 동갑내기 살구나무는봄이 다 갔는데 시름시름 꽃도 피울 줄몰랐다처마 밑에 재재거리던 제비들도 그만심심했던지 이사를 갔다토방 아래 누렁이 빈 밥그릇만 뎅그렁한 한낮늙은 우체부의 녹슨 자전거가 닫힌 사립을 기웃거리다 갔다땡볕 속 가죽나무 생울타리를능소화가 두 팔을 허우대며 기어 오르고 있다열 아홉 고운 청상으로 시집온 앉은뱅이 할머니가 평생을 기대어 살다 저승으로 길 떠나시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빈집은 어쩌면 적막강산인지 모른다. 마당귀의 살구나무도 꽃 피울줄 모르고 해마다 찾아오던 제비도 날아오지 않는 곳이지만 시인의 눈에는 할머니의 온기가 남아 있어 능소화가 기어오르는 정겨운 얘기가 생생히 녹아있는 생명의 공간으로 인식된 것이다.시인
2016-08-22
오뉴월 흰 나비 떼처럼 낭창낭창한 햇살이무등산 자락마다 온종일 머물고 있었다초록 벌판에 쉼표 없는 그날의 아우성들이그대 떠난 발자국 뒤에 숨쉬고 있었다내 목숨의 모래톱 위로 누가 손짓하는가아직 우리가 가야 할 초록 들길은 아득한데이맘때쯤 그 입술에 파인 미소가 반짝인다말하자면 너너 운주사 천불천탑 미소처럼내 청춘의 유곽에서 불멸하는 영혼이었다이 시에 설정된 그날은 언제인가. 1980년 오월을 일컫고 있다. 민주화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시다. 거침없이 목숨을 초개처럼 던져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죽어간 넋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러움이 진하게 배어나고 있다.시인
2016-08-18
벗어나고 싶어떠나면이내돌아가고싶은또다른내 눈물의내 사랑의감옥수인번호 : 540721 ? 2691815집은 우리 삶의 거처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집에 있으면 갑갑하여 벗어나고 싶지만 막상 집을 벗어나 떠돌다보면 이내 돌아가고 싶은 곳도 또한 집이다. 우리의 눈물과 사랑이 깃든 곳이고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수인번호를 쓴 시인의 인식은 집이 우리를 가두는 것 같지만 실은 나만의 자유의 공간이고 사랑과 희망을 충전하는 생산의 공간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6-08-17
사시장철 외진 골에일가 동기 삶터 잡아오손도손 정겹게 살던멧새 가족대처에 가 본 적 없어도따비밭 일구며서푼 밭뙈기 텃밭에도언제나 만족하며 살아수리 무서운 밤 견뎌내며가족 지키는 선산 산지기로억척스레 살아온 엄마아랫마을 머슴살이 간아들 내외 궁금한지작은 날개 파닥이며언제나 그리움 달래던엄마 텃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가족 사랑 우애롭던 그들이제 모두 다 떠나고헛바람에도 알아서 드러눕는빈 잡초들만 무성한가.우리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참새처럼 생긴 멧새는 이 땅의 수수한 민초(民草)들을 닮았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깃털과 별로 특별할 것 같지 않은 습생이 수수하게 한 생을 살아가는 이 땅의 어미들을 닮았다. 시인은 이러한 멧새들의 가족을 보면서 우애롭고 헌신적인 어머니를 떠올린다. 시인
2016-08-16
조치원이나 대전역사 지나친 어디쯤상하행 밤열차가 교행하는 순간네 눈동자에 침전돼 있던 고요의 밑면을 훑고 가는서느런 날개바람 같은 것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느 세계의 새벽과네가 놓쳐버린 풍경들이 마른 그림자로 찍혀 있는두 줄의 필름흐린 잔상들을 재빨리 빛의 얼굴로 바꿔 읽는네 눈 속 깊은 어둠실선의 선로 사이를 높이 흐르는가상의 선로가 따로 있어보이지 않는 무한의 표면을끝내 인화되지 못한 빛이 젖은 날개로 스쳐가고 있다순식간에 스쳐지나가 버리는 밤 열차를 보면서 스치는 빛의 잔상을 통해 존재와 시간의 본질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시 전반에 깔려있다. 기차가 교행하듯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생의 지난 시간들에 대해 어느 순간 새롭게 느껴지고 돌아봐지는 것은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존재적, 실존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순간적인 삶의 연속이었던 우리에게 가끔 일어나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6-08-12
경부선 마지막 고속철이 떠난다역전에서 어슬렁거리던 사내들이여기저기서 침을 꿀꺽 삼키거나 퉤 뱉었다주차장 가드레일에 나란히 앉은 한 무리는옆 사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저마다 제 말만 많이 하려고 목청을 높였다대합실 불빛은 멀리 비치지 않았다어둑한 구석바닥에 둘러앉은 다른 무리는 지쳤는지어떤 사내는 소주병을 잡은 채로 졸고또 어떤 사내는 소주 한 잔 하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서로 무얼 했느냐고 전직을 묻지 않는다서로 어디서 살았냐고 고향을 묻지 않는다차도에서는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빌딩 옥상 전광판에는 광고 자막이 번쩍거렸다그 아래 침침한 지하도에서는얼굴이 불콰해진 체구 큰 중년의 남자가왜소하고 좀 늙은 남자를 두들겨 패고 있었지만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라는 시에는 타향을 떠돌다 귀향하는 인생의 그리움과 회한과 눈물이 있지만 이 시에는 그런 낭만적 분위기는 없다. 철저하게 자본이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번민이 짙게 깔려 있다. 누가 무얼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그저 무관심할 뿐이다. 파편화되고 깨져버린 관계들에 대한 따가운 시인의 인식이 진하게 녹아 있다. 시리고 아프다.시인
2016-08-11
접대원 동무들이 나와 노래와 춤 솜씨를 뽐내고 있었다. 이웃집 할머니 같은 지배인 동지가 멀리서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나의 눈은 금세 고동치고, 나부끼고, 글썽였다. 요리사 동무나 주방장 동지의 딸이었을 터이다. 열 살 남짓 된 단발머리 계집애가 구석에 앉아 턱을 괸 손가락을 저도 모르게 잘근잘근 깨물면서, 제 손바닥의 지문이 갑자기 달라지기라도 한 것인 양 한참을 바라보기고 하면서 무대 위 언니들을 슬금슬금 훔쳐보는 것이었다. 내일의 저와 맞닿을 작은 다리 하나 조심스레 놓고 있는 것이었다민족화합을 위한 문인들의 방북 때 민족식당이라는 초대소에서 시인이 목격한 한 풍경 속 가슴 아픈 민족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북한의 접대원들이 펼치는 노래와 춤 공연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열 살 남짓 된 여자아이는 자신도 조금만 나이 먹으면 저렇게 무대 위의 언니들처럼 춤추며 노래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신명이 나서 하는 춤과 노래가 아닐진대 뭔가 가슴 아픈 민족분단의 현실을 느끼게 하는 시인의 인식이 깔려 있다.시인
2016-08-10
히말라야 오르는 길외딴 산마을 밖비어 있는 마을 어귀 비어 있는 길 가운데새끼나귀 한 마리 혼자 서 있었다고삐 매이지 않은 채로 마냥 서 있었다올라갈 때도 서 있더니내려올 때 보아도 그냥 서 있었다마알간 눈빛으로 무작정 서 있었다한참 더 내려와 돌아다보니도포자락 휘날리는 흰 구름이 타고 있었다신(神)을 기다린 줄은 상상도 못했다히말라야 오르는 길에서 시인의 눈에 비친 새끼나귀 한 마리는 바로 시인 자신의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시를 많이 발표한 시인은 이 시에서도 죽음을 앞두고 유대인들에게 멸시 당하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청년 예수를 떠올렸을 것이다. 고삐에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의 예수의 맑은 눈빛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것은 시인이 평생 추구하며 가 닿고자 하는 고결한 경지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시인
2016-08-09
끈이 있으니 연이다묶여 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으며줄도 손길도 없으면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리눈물이 있으니 사랑이다사랑하니까 아픈 것이며내가 있으니 네가 있는 것이다 날아라 훨훨외로운 들길, 나는 이 길로 너는 저 길로멀리 날아 그리움에 지쳐다시 한번쓰러질 때까지묶여있음은 부자연스럽고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시인의 인식은 좀 다르다. 연줄에 묶여있는 연이므로 비로소 연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끈에 묶여 공중을 훨훨 날고 있는 연처럼 그렇게 해방을 갈구하는 존재다. 일정하게 어떤 틀에 묶여 있어 윤리성과 도덕성이 갖춰져야만 진정한 해방이고 사랑이라는 시인의 인식은 비록 자유에 대한 지향이라 할지라도 조리와 질서라는 틀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
2016-08-08
내 몸을 눕힐 집이너무 낡아 드나들 때마다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무너질까 두렵다내 영혼이 들아가 쉴 몸이너무 오래 끌고 다녀서반란을 일으키는지 움직일 때마다곳곳이 쑤시고 덜거덕거린다곳곳에 금이 가고 물이 새서고치기에는 너무 낡아리모델링이 되지 않는 집과끌고 다니기에는 보이지 않는상처 너무 많아 고칠 수 없는 몸모든 것 허물지 않고는벗어날 수 없다시인이 말하는 낡은 집은 물론 거처를 위한 집일수도 있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늙고 쇠락해져가는 자신의 몸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긴 세월 세상의 풍파를 뚫고 오느라 몸의 여러 부분들이 낡고 병들고 고장이 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얼마나 위대한 거처인지 모른다. 비록 낡고 못쓰게 되어가는 몸이지만 나의 영혼의 거처이며 내 생을 담고 온 거룩한 그릇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시인
2016-08-05
새롭게 태어날 추억과 사랑을 위해허파의 한가운데쯤제단을 쌓았다막 솟아오르는 해내 제단에 입히고어깨에서 잠자던새들 새들 새들일제히 깨어나비상을 한다둥둥둥둥바다는 북을 친다대왕암에서 일출 광경을 보면서 시인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 어둠에 덮인 땅은 숱한 굴곡과 아픔의 시간들을 품고 있다. 동해바다 떠오르는 해는 쓰라린 추억과 사랑의 시간들 위로, 숱한 질곡과 힘겨운 역사가 점철된 이 땅으로 희망의 빛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바다는 그 서기 어린 새로움의 태동에 둥둥둥둥 북을 치며 환호해주고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6-08-04
진저리를 치며 쏟아진다포만(飽滿)과 배설은 얼마나 짜릿한 생리더냐허리춤 까 내리는 일방뇨면 어떻고방사면 어떠냐저 뜨겁고 비릿한 황홀경이한 시대를 범람으로 몰아넣는구나참았던 욕정이 분노가 되는구나솔 향기 가득한 능선을 흠뻑 적시는저 도도한 화냥기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불구의 한 시대를 향한 시인의 현실 인식이 매서운 시다. 자본주의가 비대화 되면서 불러일으키는 불균형과 부조화의 현실을 비웃으며 사람 살만한 세상의 도래를 염원하는 시정신이 날카롭다. 뜨겁고 비릿한 황홀경에 대한 참았던 시대정신이 분노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모티브로 해서 표현된 건강한 시편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6-08-03
어둠을 부리고 기차는 떠나갑니다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흔들리는 술잔을 기울입니다기적소리가 훑고 지나 간목구멍에 가까스로 불이 붙습니다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움츠러드는목줄기마다 간절히 불 밝히는 일인지요어둠을 사르며 타오르는저기 저 수많은 목구멍, 별빛이여몸 속에 연기가 차오르고비루하게 눈물이 넘쳐 오릅니다어둠이 깔리는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힘겨운 삶 속으로 멀리 기차가 떠나는 소리가 젖어들고 있다. 일상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훌쩍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욕망들이 있지 않을까. 어둠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며 뭔가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기차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힘겨움이 짙어질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시인
2016-08-02
흐르다 멈춘 뭉게구름올려다보는 어느 강가의 갈대밭작은 배 한 척 매어 있고 명상하는 백로그림같이 오로지 고요하다어디서일까 그것은 어디서일까홀연히 불어오는 바람낱낱이 몸짓하기 시작한다차디찬 바람 보이지 않는 바람정수리에서 발끝까지뚫고 지나가는 찬바람은존재함을 일깨워 주고존재의 고적함을 통고한다아아어느 시원(始原)에서 불어오는바람일까소설가 박경리가 노년에 쓴 시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에 젖어 살았던 한 생을 돌아보며 존재의 고독을 고백하며 고요한 평화경에 들어있음을 본다. 뜨겁게 불어오던 욕망의 바람도 있었고 차갑고 시린 시련의 바람도 있었다. 혹은 질기고 질긴 운명의 바람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시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불려 이승을 떠나야하는 것까지 염두에 둔 노 작가의 겸허하고 편안한 목소리를 듣는 아침이다.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8-01
돌 담쟁이 핏물 질 무렵몽롱한 머릿속에 아물대는 사랑처럼손때 묻은 수첩에 무심히 박혀있는기억 흐린 전화번호처럼아스라이 잊혀져간이 소중한 나날들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간직할까감감히 묻었던 유년의 뒤란에두레박 조심조심 드리우고우물 속에 빠진 별을 건진다가뭇없이 가버리는 것들이 있다. 사람도 사랑도 아스라이 떠나버리고 오랫동안 텅 빈 가슴을 쓸어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찌 잊을 것인가. 내 삶의 중심에 혹은 가장자리에서 빛났던 소중한 나날들이 아닐 수 없다. 아련한 유년의 뒤란도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들도 쓸쓸히 지나가버린 것이다. 시인은 아득한 기억의 저편 혹은 깊은 추억의 우물에서 고왔던 시간들을 길어올리고 있다. 가만히 눈 감아 본다. 시인※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