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오 표
앉은뱅이 할매가 재 너머 가막골로 마
실 갔다
동네 영감들 거느리고 눈바람 맞으며
경인년 열 아홉 청상, 꽃상여 타고 갔다
고샅을 환히 밝히던 동갑내기 살구나
무는
봄이 다 갔는데 시름시름 꽃도 피울 줄
몰랐다
처마 밑에 재재거리던 제비들도 그만
심심했던지 이사를 갔다
토방 아래 누렁이 빈 밥그릇만 뎅그렁
한 한낮
늙은 우체부의 녹슨 자전거가 닫힌 사립을 기웃거리다 갔다
땡볕 속 가죽나무 생울타리를
능소화가 두 팔을 허우대며 기어 오르고 있다
열 아홉 고운 청상으로 시집온 앉은뱅이 할머니가 평생을 기대어 살다 저승으로 길 떠나시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빈집은 어쩌면 적막강산인지 모른다. 마당귀의 살구나무도 꽃 피울줄 모르고 해마다 찾아오던 제비도 날아오지 않는 곳이지만 시인의 눈에는 할머니의 온기가 남아 있어 능소화가 기어오르는 정겨운 얘기가 생생히 녹아있는 생명의 공간으로 인식된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