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저녁 안개 속비가 내린다내 어머니낮은 어깨 위날 기다려골목 끝 처마 밑날 기다려하염없이 비 바라보시던내 어린 날 젊은 어머니어깨 위석류화 붉게 핀 공동변소골목 끝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날 부르시던소리석류화 환한 저녁유년시절 가난이 닥지닥지 붙은 골목길 끝에 나와 나를 기다리시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심정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석류꽃 환한 저녁이었을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생생하게 놓여있는 골목끝에서 나를 기다리던 젊은 어머니의 환영과 다정다감하게 나를 불러주시던 그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된 것이다. 석류꽃 환하게 핀 저녁에 시인은 절절하게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시인
2015-12-04
눈(雪)은기다림을 잊어버린 이에게기다림을 깨닫게 해주었다생애의 굳은 상처 위로눈물샘을 흔들며 내려앉는소복(素服)의 손님이승을 그리워하는하얀 그림자그 보얀 속살을 밟으니뽀드득아, 살아있다는소스침내린 눈의 신선함을 바라보는 시인의 설레임을 엿볼 수 있다. 사십이라는 나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의 중반을 향한 무게와 힘겨움이 내포되어 있으리라. 굳은 상처로 얼룩진 세월을 걸어왔듯이 이제는 저 순백의 눈길을 또 다른 희망과 결의로 건너가겠다는 다짐이 가만히 묻어나는 시다.시인
2015-12-03
모든 쓰러지는 생은최초의 불을 지필 때의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서로가 서로의 몸을 껴안을 때만그렇게 최대한 가까이 있을 때만소멸의 손 맞잡고불씨로 가거나연기로 가거나혹은 추운 생들을 덥히러 가거나 하겠다장작불이 타오르는 동안뜨겁게 잡았던 자신과의 악수를 놓고돌아서 가는 한 사내의 걸음 앞에 떨어지는초겨울, 오후의 햇살들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의 몸을놓지 않는장작불 앞에서쉽게 사라지는 것들이오랫동안 타오를 것들의아래를 받치고 있음을 본다장작불이 뜨겁게 타오른 것을 보고 시인은 최선을 다해 시 창작 작업에 몰두 할 것과 그의 생을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음을 본다. 불을 통해 이 세상과 뜨겁게 소통하며 열정적으로 시를 쓰겠다는 다짐과 열망이 타오르는 불꽃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이 가지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보며 자신의 생의 자세를 다잡고 강화하려는 시인정신을 본다. 시인
2015-12-02
오늘은 그 작은 동굴의 끝을 향해도리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야만 했을외할머니와 그 굽은 등에 대해 생각하는흐린 날입니다대숲이 빛나는 오후에외할머니의 디딜방아 밟는 소리동굴에 숨어 듣기가 좋았으나 정작매혹적이었던 것은 동굴이 내는바람소리였습니다그 소리를 따라 동굴로 들어가다 보면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멀어져문득 등 굽은 디딜방아 소리가그리워지지만내가 흘려 놓은 그녀들의 밀전병은어느 검은 새가 들고 갔을까요얼굴에 와 닿는 이 어두운 바람의 냄새생에 대한 예의는 동굴을 천천히 거닐며어딘가에 있을 바람의 출구를찾는 일 그러므로오늘은 동굴 속의 산책을 생각하기에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날입니다외할머니의 디딜방아 소리가 굽은 등의 모습과 함께 가만히 들려오는 동굴 속에서 시인의 귀는 동굴이 내는 바람소리라고 말한다.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있는 그 동굴의 바람 소리가 지금도 들려오고 있어 시인의 상상력 혹은 의식의 발걸음은 그 동굴 속을 거닐며 시를 쓰고 있으리라. 오래된 시간의 축적을 가만히 들춰보는 시인의 감각이 푸르게 살아있는 시가 아닐 수 없다. 시인
2015-12-01
하느님,나보다 먼저 가신 하느님오늘 해질녘다시 한번 눈 떴다 눈 감는하느님저만치 신발 두짝 가지런히 벗어놓고어쩌노 멱감은 까치처럼맨발로 울고 가신하느님, 그하느님.`꽃`이라는 시에서 보여주는 존재론 혹은 인식론 같은 이미지와 실존의 문제에 깊이 천착했던 시인 김춘수. 이 시에서는 생의 마지막을 예견하고 가만히 그가 돌아가야 할 신에게 묵상하며 말을 건네는 겸허한 시심을 읽을 수 있다. 이 땅에 목숨을 놓으신 분도 하느님이고 이제 천수를 다하고 그에게 돌아가야 하는 생의 마지막을 침잠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경건한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시인
2015-11-30
강물에 귀를 적신 자에게만들리는 그 물소리거기엔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국한칠백의사의 함성이 있다거기엔 갑오년 민중을 위해 항쟁하다 원통히 쓰러진동학 의병의 절규가 있다거기엔 나당 외세를 막아내려다 분연히 숨진계백 오천 용사들이 노호가 있다논산 강경 외진 들을 보아라금강은 또한 유독 들꽃을 많이 키우는 강이다강은 어머니다. 생명의 탯줄이면서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젖줄을 대는 생명의 본부가 아닐 수 없다. 풍습과 역사가 녹아 있고 과거와 현재가 푸르게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인은 강물에 귀를 적시며 백제의 소리와 개화기 동학의 함성을 듣는다. 그 도도한 흐름에서 민족의 강강한 자존과 준엄한 정신을 느끼고 있다. 외세와 싸우다 장렬히 피를 뿌린 용사들, 탐관오리들과 싸우다 칼날에 죽어간 의로운 의병들의 넋을 금강에서 선연히 보고 듣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5-11-27
늘그막의 두 내외가 손을 잡고 걷는다손이 맞닿은 자리, 실은어느 한쪽은 뿌리를 잘라낸다른 한쪽은 뿌리 윗부분을 잘라낸두 상처가 맞닿은 곳일지도 몰라혹은 예리한 칼날이 대고 간 자상에또 어느 칼날에 도리워진 살점이 옮겨와서로의 눈이 되었을지 몰라더듬더듬 그 불구의 생을 부축하다보니예까지 왔을 게다이제는 이녁의 가지 끝에 꽃이 피면제 뿌리까지 환해지는제 발가락이 아플 뿐인데이녁이 몸살을 앓는,어디까지가 고욤나무고어디까지가 수수감나무인지 구별할 수없는저 접목대신 살아주는 생이어서비로소 온전히 일생이 되는숱한 세월을 함께해 온 노부부의 이야기를 고욤나무와 수수감나무의 접목에 빗대어 들려주고 있는 작품이다. 처음은 너무 달랐을지 모를 두 나무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세월의 깊이가 깊다. 상대방에 대한 따스하고 은근한 배려와 사랑이 이렇듯 자연스럽고 성숙된 한 그루 고목으로 설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땅 곳곳에는 이렇듯 아름다운 접목들이 많다. 가만히 곱게 늙어가는,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익어가는 부부들이 많다.시인
2015-11-26
나날이 나는 나를 재우나니그대는내 잠의 바쁨을 비웃겠지나날이나는 나를 또 재우나니짧은 세 줄의 시에는 무량한 의미가 담겨 있다. 시인은 왜 나날이 나를 재운다고 고백하고 있을까. 엄청난 속도와 발 빠른 계산과 처신이 판을 치는 세태 속에서 잠에 빠져든 모습은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은 무량한 잠을 통해 세속적 현실의 탐욕과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갖가지 망상과 집착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찾아가는 무량한 잠에 깊이 빠져들고 싶은 아침이다. 시인
2015-11-25
계곡에 입술을 대고 물을 마시는 날황홀한 마음 어디론가 가고 없을지라도바위여 너는 착한 이끼를 길러도 좋다이끼 그 태초의 식물을이제야 당신에게 경배할 수 있음을용서해 다오 세상의 처음이 흐르고 흘러마침내 바다로 갈지라도이 자리에서 지키는 초심이여시인이 지향하는 세계는 무엇일까. 물이 흘러 바다에 이른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어떤 형태로든 성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록 그렇게 된다할지라도 더 고귀한 가치는 그 욕망을 따라가지 않고 바위에 붙어서 초심을 지키는 이끼, 태초의 식물 이끼의 존재적 가치나 욕망을 억누르며 꿋꿋이 자기를 지키는 가치라고 시인은 역설하고 있다. 깊이 동의하고 싶은 시가 아닐 수 없다. 시인
2015-11-24
새벽길 리어카 위에벽돌 한 장검정 고무줄 억센 힘으로 끌어매놓은푸른 비닐로 감싼 지친 하루그래도 금세 떠내려가 버릴 것만 같은내일 위에무겁게 무겁게 눌러놓았을누군가의 손길 가만가만 간직하며동짓밤 고스란히 새우고 앉아 있는의젓하구나, 벽돌저 한 장의 힘!가만히 감동에 이르게 하는 그림 한 장을 본다. 하루 장사를 끝내고 집에 들면서 주인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검정 고무줄로 동여매고 푸른 비닐로 감싸고는 그 위에 벽돌 한 장을 눌러 놓았다. 밤새 묵묵히 리어카와 물건을 지켜준 벽돌 한 장. 비록 하찮은 벽돌 한 장이라 할지라도 제 있을 자리에서 당당하게 책임을 다하는 그 존재감에 시인은 조용한 찬사를 얹어놓고 있다. 이 세상에는 어둠 속에서든 어려운 여건 속에서든 이런 벽돌 한 장 같은 물건도 사람도 많이 있다. 시인
2015-11-23
답답한 사람살이 숨통 턱턱 막힐 때푸른 바다 몰고 온 낯선 사내 앞세우고우리는 생선 냄새 비릿한 자갈치에 가야 한다소금기 절은 바람 고단한 닻 내리고노을 속 포장마차 바야흐로 붉는 파장(罷場)목통 큰 남도 사투리 오히려 정겹거니팍팍한 세상살이 발걸음 더 무거운 날꼼장어 맵짠 안주에 경계허문 잔을 들고우리는 사람 냄새 질펀한 자갈치로 가야 한다자갈치 시장은 그야말로 생선냄새와 함께 사람 사는 냄새 훅 끼치는 삶의 현장이다. 살아가느라 힘겨운 시간들을 잠시 벗어나 남도의 투박한 사투리가 정겹게 파고드는 자갈치 시장에 가서 답답했던 가슴을 틔우자고 말하는 시인에게 깊이 동의한다. 최근 영화화 되면서 주목을 끈 국제시장이 바로 옆에 있어서 더욱 남도의 건강한 삶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자갈치 시장이니 세상살이 발걸음 무거운 날 찾아가서 맵짠 꼼장어 안주에 소주 한 잔 하면 또 다른 행복감에 젖어들지 않겠는가.시인
2015-11-20
누가 저 꽃밖에 피울 줄 모르는 대궁을누가 저 잎밖에 흔들 줄 모르는 가지를누가 저 날갯짓밖에 모르는 나비를누가 저 젖는 것밖에 모르는 우체통을누가 저 뒤집히는 것밖에 모르는 우산을누가 저 눈물밖에 쓸 줄 모르는 시인을젖은 잎에 달라붙은 마당을 떼어내며거짓말처럼 밝게 갠 하늘을 바라본다아픔이 이처럼 고요하고 상쾌한 것이었나거세게 몰아치던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의 생채기를 바라보며 시인은 인생의 보편적 진리 하나를 발견한다. 폭풍우에 꽃들도 나뭇가지들도 나비의 고운 날개죽지도 찢기고 부러지고 상처를 입었다. 우체통도 젖고 우산은 망가지고 시인은 망연히 폭풍우를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뒤의 맑게 갠 하늘에 햇빛 아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와 평화가 흐르고 있다. 우리네 한 생에도 엄청난 시련과 힘겨움이 닥쳐올 때가 있다. 버티고 기다리고 견디다보면 끝내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비록 상처의 아픔이 남았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평화와 안식이 있는 것이다.시인
2015-11-19
유홍준 씨 말에 의하면, 제3한강교가 놓이기 훨씬 전박넝쿨이 우거진 신사동 유영표 씨네 통시에서아침에 일을 보고 일어나면 강 건너 한남동 외무장관 공관이 훤히 건너다보였다고 한다.그리고 어렸을 적부터코가 뭉툭하고 얼굴이 두리넓적하여큰 씨름꾼 같은 유소년은 아침마다 삯배를 타고그 강을 건너 거기서부터또 서울 중학교까지를 바지런히 걸어다녔다고 하니….그리움이다. 한 때는 사람 사는 냄새가 구수하고 진하게 스며들던 곳이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제일의 환락가로 변한 신사동에 대한 아련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시 전체에 흐르고 있다. 박넝쿨이 번져 가던 강변 언덕이었지만 지금은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돈과 유흥이 넘쳐나는 곳으로 변한데 대한 아쉬움이, 강을 건너다녔던 삯배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섞여든 시로 잔잔한 감동에 이르게 한다. 시인
2015-11-18
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너에게로 가는 길이 나에게 있었다나에게로 가는 길이 너에게 있었다지금 가장 멀고 험한 길 걸어너는 너에게로 돌아가고 있다나는 나에게로 돌아가고 있다이승에서의 갈림길은 여기부터 시작이다이제 이쯤에서 작별하자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것이 길이니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것이 길이니함께했던 시간과 추억을 지우며 결별하는 것은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다. 시인은 상대에 대한 기억들로부터 자신을 조금씩 멀리하며 새로운 삶, 새로운 길을 선택하면서 조금식 차오르는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인연이 아니거나 운명적으로 이쯤에서 헤어져야하는 경우가 우리네 한 생에서도 닥칠 때가 있다. 이렇듯 아픔 가슴을 쓸어안고 수월하게 떠나보내고 떠나올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든 일이나 담담히 제 길 나서는 시인의 모습을 본다. 시인
2015-11-17
아내가 숲길에서 품고 온단단하나 안으로 걸어 잠그고 둥글게 웅크린그래서 단단한 새알 같은 열매커다란 접시 위에 놓았더니제법 향을 내어 거실 가구들이 킁킁댄다잊혀 질만큼 해가 드나들었던가 말았던가바람이 드나들었던가 말았던가아이의 손끝에서 그만 퍽 바스라졌다아니 그건 피어났다수천 개의 날개를 단 머리들이 접시에 수북 붕붕대었다그걸 아이는 폭탄이라고 했다그걸 아내는 꽃이라고 했다저렇게 수많은 걸 한 몸이라 생각하다니꽃잎들을 다시 숲으로 가져가서 흩어주어야겠다하나하나의 몸에서 수많은 폭발이일어나겠지무수히 많은 길을 내는 생명의 꽃무리조현명 시인은 태생적으로 착하고 순박하다. 작고 보잘 것 없는 풀꽃 하나에 작고 찌그러진 열매 한 톨에 시인의 시선은 집중된다. 소외되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에 다가가서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고 뜨겁게 호명함으로써 숨결 고운 생명체로 일으켜 세우는 시인의 마음이 따스하기 그지없다. 그 연민 어린 마음길을 따라가고 싶은 아침이다. 시인
2015-11-16
겨울이 깊어가는 산 중턱에는어린 참나무들이 애써누런 이파리들을 붙들고 있다다른 나무들 낙엽지고앙상히 맨살로 서 떨고만 있는데겨울이 다 가도록서걱이며 비벼대며 앙버티고 있다어차피 칼바람에 눈보라 몰아치면하나하나 떨어지고 말 테지만얼음장 밑에서 물이 흐르고새잎 돋아나는 눈이 틀 때까지겨울바람 앞에서 함께 소리소리 치고 있다겨울산에 당당히 선 어린 참나무를 본다. 지난 가을날 대부분 이파리들이 바람에 날려 갔지만 몇 잎 이파리들을 붙들고 서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 시련의 순간들이 닥쳐오면 상처입고 아픔에 들겠지만 그래도 이겨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배어있다.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고 새잎 돋아나는 새봄이 돌아오듯이 시인은 어둡고 차가운 현실의 시련에 굴하지 않고 시대의 봄날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시인
2015-11-13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에 서 있다지나는 바람이 온몸을 할퀴고 가도굳센 뿌리에 전율이 전해와도긴 휘파람을 불곤 했다아이들이 연을 날리다 나의 양팔에 감기도 하고나의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발로 툭툭 차기도 하지만바람이 전해준 가슴 따듯한 이야기를아이들에게 들려줄 때마다두 손에 실려온 체온만큼온몸을 덮히며 전율을 했다저 산 넘어 소식에 발꿈치를 돋우었지만잿빛 하늘만큼일렁이는 바람의 뿌리가 나의 허리를 타고누워있으라 속삭인다거칠고 맵찬 겨울바람에 선 나목(木)은 거세게 닥쳐오는 겨울바람 같은 현실적 난관에 맞서서 당당히 극복해 나가겠다는 대결의지를 다지는 시인의 모습이다. 어떤 유혹이나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로 꿋꿋이 살아가겠다는 시인정신이 드센 겨울 바람에 빛나는 매서운 칼날 같다.시인
2015-11-12
순대집 좌판의 소주병들도제 스스로 술에 취해 쓰러지는 밤구겨진 종이돈 세는 일만 바쁜 하루였다 쓴다난전의 보기 흉한 쓰레기조차주섬주섬 잠자리를 펴들 때돌아가야 난전의 좌판 같은 집찬밥이 있고 찬밥처럼 누워 있는 식구들의 방자정 늦게 구겨진 돈을 펴글줄깨나 익힌 아들이잔술에 취해 문득 시라고 부르기도 하는밤이라 쓴다가난하여 힘겨웠던 지난 세월, 자식들 공부시키고 가족들 먹여살리려 종일 좌판에서 일하다 귀가해 종일 벌어온 구겨진 종이돈을 펴는 부모님 곁에서 술에 취해 돈도 안되는 시를 쓴다고 낑낑거렸던 시인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고 있다. 어려웠던 지난 시간들이 아주 감동적인 한 그림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라고들 하지만 이 땅 어딘들, 지금인들 이런 가슴 아픈 서사가 없겠는가. 시인
2015-11-11
늦가을 바람에마른 수숫대만 서걱이는 빈들입니다희망이 없는 빈들입니다사람이 없는 빈들입니다내일이 없는 빈들입니다아니 그런데당신은 누구입니까아무도 들려하지 않는 빈들빈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당신은희망이 없고 사람도 없고 내일이 없는 빈들은 도대체 어디일까. 소외된 농촌일 수도 있고 메카니즘이 지배해 버린 문명의 현대사회일 수도 있다. 목사이기도 한 시인의 눈에는 극에 달한 타락한 종교적 현실일 수도 있다. 이 시는 그런 절망적 상황의 제시로 끝나지 않고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희망의 빛을 비춰주고 있다. 치유와 위로, 극복과 희망, 종교적 구원에 대한 확신이 시 후반부에 제시돼 있다. 시인
2015-11-10
밤하늘 유성이자신을 태우는 건사랑하는 별에게 갈 수 없어분신(焚身)하는 것이라는데단 한번만이라도유성처럼 사랑하고 싶다길게 곡선을 그으며 저 쪽 하늘 끝으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시인은 필생의 사랑을 생각하고 있다. 누구의 가슴으로 지는 별이기에 저리도 아름다운 빛을 길게 끌며 소리없이 지는 것일까. 자신을 태워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투신하는 유성처럼 사랑하고 싶어하는 시인의 절절한 심정이 이미 하나의 별똥별인지 모른다.시인
201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