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자르지 말라네 칼이 먼저 상하리라나는 뿌리가 있어내 몸을 계속 키울 수 있나니시간이 우리의 승패를 결정하리라나를 밟지 말라네 구두가 먼저 닳아 없어지리라나는 뿌리가 있어같은 몸 계속 밀어올릴 수 있나니네 무릎이 먼저 꺾이리라나는 뿌리의 힘으로겨울 나고 꽃 피우고타는 가뭄에 견디며 대지를 붙들고있나니내 억센 뿌리의 손아귀에네 뼈가 먼저 부러지리라비록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나무일지라도 그에게는 당당한 뿌리가 있다. 존재를 가능케 하는 엄청난 저력을 가지고 있는 근본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외풍에도, 아무리 힘겨운 억압에도 쓰러지지 않고 견디며 끝내 꼿꼿이 다시 설 수 있게 하는 것은 깊은 뿌리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어떤 자존의 힘이 인간에게는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게 어떤 힘겨운 앞에서도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고 우리를 당당하게 설 수 있게 하는 근원의 힘인 것이다.시인
2015-09-08
감자꽃이 피었다어머니는 보랏빛나는 우울빛평생 찬송가라곤 불러본 적 없는 어머니(여러 번 안수기도는 받으셨지)하늘나라로 소풍 떠나기 전초등 일 학년 국어책 읽듯떠듬떠듬 따라 부르던 그 이름 예 수그렁그렁 숨 가쁜 생의 길모퉁이 어디쯤에서한두 번 마주쳤을 법도 한잎잎이 멍든 사랑의 빛깔 묘하게 닮은보라! 보라!감자꽃 피었다예가 천국인줄만 알아 발 뻗고 누우실까염려의 먹장구름 짙은 오후마른 헝겊 같은 마음 위로후드득 소나기 지나간다곱게 피어난 감자꽃을 바라보는 모녀의 따스한 눈빛이 정겹다. 숨 가쁘게 살아온 날들 그 길모퉁이에도 고운 보랏빛 감자꽃은 피었으리라. 잎잎이 멍든 사랑의 빛깔이 물들었던 지난 세월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편안히 생을 마감해 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아쉽고 그리움에 젖은 시인의 따순 눈 속으로 올해도 다부록이 피어난 감자꽃 보라 보랏빛이 스며들고 있음을 본다.시인
2015-09-07
새벽녘 월미도바다는 어머니 황색 저고리눈발 사이 언뜻언뜻 남빛 치마폭 휘날리고어느새 불빛 가득한 목포항구박하사탕 문 아이 오도마니 서 있네서해 끝에서 서해 끝으로떠도는 몸 철야 끝 달려온 월미도오래 전 어머니 긴긴 철야에 밥줄 매단육 남매 시퍼런 목숨처럼 파도 밀려오네끼룩대는 배고픈 갈매기 소리 사이밤새 윙윙대던 기계 소리 사라지지 않네노동현장에서 뜨겁게 시를 써온 노동자 시인 김해자의 시에는 치열한 투쟁의 목소리보다는 치유와 싸맴의 따스한 정신이 묻어난다. 철야 노동을 마치고 찾아간 월미도는 품어주고 상처받은 영육을 싸매주는 어머니의 품이다. 푸근히 안기고 싶은 사랑의 가슴인 것이다. 시인
2015-09-04
오와 열이 틀림없는푸르른 질서를 위하여부황난 무질서를 제거한다는강자 생존의 법칙그대들의 빈틈없는 논리우리의 역사는그대들의 논리를 따라 돌고 돌았다한(恨)의 발생, 축적그러나 비가 오면벌떡벌떡 일어서는끈질긴 목숨들이여우리들이여죽음과 부활의필연적인 순환 역사밟으면 밟혀서 무참하게 짓이겨지더라도 기어이 다시 일어서는 잡초를 바라보면서 시인은 우리 시대를 뜨겁게 살아가는 약자들의 질긴 삶에 다가서 있다. 푸르른 질서를 내세워 무참히 제거당했던 강자 생존의 법칙이 시대의 가치로 우뚝 세워졌던 어두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순과 억압을 뚫고 벌떡벌떡 일어서는 민초들의 끈질긴 투쟁이 있었기에 이만큼이라도 민주세상, 정의로운 세상이 된 것이다.시인
2015-09-03
달빛은 온통밤바다에 부서져갈래갈래 은빛 여우찰랑이는 저 환희시리게적셔드는 꿈오린 듯이 선연하다무엇이 별빛이며어디까지 불빛이런가바다는 별빛을 안고불빛은 하늘에 닿아마침내 한 결로 어리는꿈의 조각인 것을은은함이 흐르고청아함이 내려앉아흰 포말로 나직 나직읊조리는 달빛 연가바다는그렇게 뒤척거리며이 한밤을 지샌다달빛이 길을 내는 바다 위를 바라보는 시인의 가슴 속에도 달빛 연가가 흐르고 환하게 바다가 열어주는 길이 있음을 본다. 달빛이 환한 바다 언덕에 서 보라. 눈길 따라 은빛으로 길을 내 주는 바다와 나직나직 읊조리며 연가를 들려주는 달빛이 하나로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절대 평화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5-09-02
뭔가를 깨문다는 것은잠든 꽃봉오리를 순식간에 개화시키는 일저 장미 한 송이가며칠째 볼이 미어지게 물고 있던첩첩 붉은 울음 낭자하게 터트리는 까닭은어쩌다 잇몸이 근질근질해진 시간의 어금니에달착지근한 낮잠을 덥석 깨물린 탓이다그러니까 눈 질끈 감고뭔가를 저질러 버린 순간을아무도 모르는 어딘가에서한 송이 꽃이 꽃술까지 활짝 벙그러지고 있었을바로 그런 때였을 것이다장미 개화를 위한 마지막 절정의 시간에 시인의 눈과 마음은 뜨겁게 가 닿아 있다. 무난하게, 세월 가는대로 대충대충 세상살이에 임하지 않겠다는 강단진 마음이 시 전편에 깔려있다. 생의 열정이 뜨겁게 느껴지는 젊음의 작품이다. 시인
2015-09-01
안에서 바깥으로 화르르자신을 무너뜨리는 나무자신을 무너뜨린 뒤에야절벽을 하얗게 쓰다듬으며 떨어져내리는저 소리없는 폭포벚꽃나무 아래 들어귀가 얼얼하도록 매를 맞는다자신을 온전히 무너뜨림으로, 자신을 무너뜨린 뒤에야 폭포가 되는 물줄기를 바라보는 시인은 평범한 자연의 한 현상에서도 인생의 보편적 진리를 찾아내고 있다. 소리없는 폭포라고 표현하듯이 자신을 온전히 투신하면서 겸허한 자세를 견지하는 자연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며 무언가를 향해 질책하고 일깨우는 듯한 폭포의 모습이지만 그 모습 속에 오만하지 않은 겸허한 모습을 가진 폭포의 속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5-08-31
아름답던 기억이 멍빛으로 저물고 있다한 생이 딴전 피듯 또 하나의 생을 준비하고 있으니남겨진 꽃자리들 사이를 비집고향기가 향기를 불러 한평생의 저녁을 황갈빛으로 염색한다어린 꽃봉오리는 무채색의 이 세상에 연한 바람을 일으키려마살아 마음에서 멍 깊었던 사람아 나의 사랑아조금씩 모습을 바꾸는 꽃그늘에 발 담그고노을빛 서편 하늘에 더운 이마를 대어 보렴마음은 생전에 갖고 싶었던 색깔들로 물들리라날 다 저물면 이 처연한 꽃그늘을 데리고 먼 길 다시 떠나리라치자꽃 그늘 옆에서 먼저 보낸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아쉬워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아픔으로 멍 깊었던 가슴 아픈 사연들을 품고 떠난 사람을 부르며 고운 치자꽃물로 물들이고 싶은 아쉽고 그리운 시간들에 대한 회한이 깊은 작품이다. 날 다시 저물면 저 처연한 꽃그늘을 데리고 먼 길 떠나야하는 것이 우리네 한 생이다.시인
2015-08-27
공중(空中)이란 말참 좋지요중심이 비어서새들이꽉 찬저곳그대와그 안에서방을 들이고아이를 낳고냄새를 피웠으면공중이라는말뼛속이 비어서하늘 끝까지날아가는새떼공중은 비어 있으면서도 무엇인가가 꽉 차 있다는 인식에서 이 시는 시작된다.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찬 공간에서 알콩달콩 사람 사는 일들을 하고 싶다는 욕망은 무거운 무게를 부둥켜안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상반되게도 뼛속이 비어서 하늘 끝까지 날 수 있는 새를 부러워 하고 있다. 욕망을 버림으로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 시를 읽고 어느 것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일까.시인
2015-08-25
유리창 앞에서 물끄러미하나의 별이었던 우리들을 본다신안 앞바다 소금 밭에서 소금을 구워먹고동지(冬至)가 지나면 지리산으로 벌목하러 가선,벌목이 끝나면 또 긴 긴 겨울밤 눈보라를 헤치며소금의 쓰라림, 어린 마음의별의 쓰라림을 씹으며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생각할 수도 없이한없는 길을 헤매이다가소금에도 벌목에도 눈보라에도길들여져 버리고 쓰라림에도 길들여져물 같은 시간을 흘러서시구문이라든가 남양만에서 또일거리 없는 서해안의 싸구려 여인숙에서잠 아니 오는 밤을 보내이느니일하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그 가운데서 구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대체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 것인가일정한 거처가 없이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이 일 저 일을 하며 생을 연명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부랑자다. 시인은 자신을 부랑자와 같은 존재라고 여기며 그러한 유랑의 삶이 갖는 서정성과 낭만성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 나열되고 있는 유랑의 삶 같은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고 염원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에게도 어쩌면 이런 욕망의 원형질이 형성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시인
2015-08-24
변두리 마을에서나어둠의 모퉁이에서나불 끄고 조용조용 잠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이름 없고 집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일반 독자든 전문 문인이든읽어서 좀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의 특별한 것모난 돌이 정에 맞듯그래서 눈길이 가고 손길이 닿는그런 시를 써야 한다쉽고 편안한 시 쓰기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 있지만 실상은 시인의 현실 인식에 대한 성찰이 강하게 비쳐져 있는 시다. 새로움을 찾거나 독자들을 매혹적으로 감동시킬 수 있는 창작보다는 쉽고 안일한 제재를 골라 글을 써온 글쓰기에서 벗어나 긴장이 들어있고 탄력이 있는 시를 쓰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현실 인식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결의가 나타나 있다. 시인
2015-08-21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외로움으로 슬퍼하지 말라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말하며 인간 실존이 가엾고 한없이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역설하는 시인의 가슴도 이 시를 읽는 우리네 가슴도 짜안하고 젖어듦을 느낀다.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실존들이 다 그렇다고 확산시키며 숙명적인 외로움을 언급하면서 우리들 자신에 대한 치유의 언어들을 던져주고 있는 시다.시인
2015-08-20
이제 우리는 노쇠한 시골 역사를 한 채지나쳐 온 것이다그러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그 역사보다 더 늙어 있었다이제 우리는 한줄기의햇빛이 그리워 창 밖을 본다나를 보아달라고 손짓하는가로수 어린 손아귀들을귀찮아 바라본다저 어때요 한껏 뽐내는 꽃들을 보기에도우린 이제 민망하다그땐 참 좋았지 어느덧 우리에겐흘러간 추억이 아름답다우리가 어느새 추억이 된 것이다쏜살 같이 세월은 지나가버린다. 그렇게 시대는 우리를 남겨두고 떠나가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청춘의 시간들 속에서 바라보던 햇빛과 가로수 어린 손아귀, 한껏 자신을 뽐내는 꽃들도 이제 나이들어서 다시 바라보지만 이미 그것은 흘러간 추억 속의 것들이 되어 귀찮게 바라보거나 민망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 자신이 아마 추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게 인생이다.시인
2015-08-19
어금니 앙다물고 있는 것들아조용히 눈감고 고개 흔들고 있는 것들아여린 가슴 잔뜩 안으로 감싸고 있는 것들아그렇게 웅크려 떨고 있는 것들아저희들끼리 모여 저희들 이름 부르고 있는 것들아단단함으로 단단함 불러 제 단단함 다지고 있는 것들아우기적거리며 아랫배에 힘 모으고 있는 것들아그래도 속으로는 온통 세상 뒤흔들고 있는 것들아오직 뼈다귀 하나로 울고 있는 것들아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것들아아흐, 이 바윗덩어리들아이 시에서 바위는 바위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바위가 아니면서도 언젠가 바위가 되고 싶어하는 존재들이다. 그 바위가 되기 위해 제 살을 깎고 어금니 악물고, 끝없이 기다리고, 제 속으로 단단함을 다지기도 하고, 오직 뼈다귀 하나로 울고 있는 존재, 그 실체들인 것이다. 쉽게 바위가 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처한 암담한 현실과 조건들에 분노하며 탄식하기도 하며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5-08-18
이제 떠나는가 밤배가 되어저 바다에 붉은 까치놀이 떠들어와뱃머리 탕탕 쳐서 시간을 재촉할 때막소금같이 얼어붙은 눈물허공에 흩뿌리고그 흔한 사랑의 노래 한 가락도손 흔들어 불러 보내는 사람이 없고젖은 불빛마저 끊어져 사라져버린배고프고 목마른 부두쓸쓸한 한 세상의 겨울바람 끝에서그대 떠나는가 눈앞을 가리우는 어둠 속으로쓸쓸한 한 세상의 겨울바람 끝에서 기어이 밤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에 대한 추모의 정이 베인 작품이다. 뜨겁게 일렁이며 살아온 시간들도 있었지만 막소금 같이 얼어붙은 눈물을 허공에 흩뿌리고 가버리는 사람, 그 흔한 사랑 노래 한 가락도 얹어보낼 이가 없는 쓸쓸한 세상을 등지고 짙은 어둠 속으로 가버리는 망자에 대한 통한과 그리움이 시 전체에 깔려있다.시인
2015-08-17
너의 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는데얼마나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나아직도 식지 않은 질화로에불씨 한 점 살아 있어등짝 시린 지금에도단잠 설칠 줄이야날 세운 바람 할퀴고 간 자리누웠던 풀잎들 추억 안고 일어서고구걸한 목숨 있어건너지도 못한 강을 향해달려가고 있는 나의 맨발을 본다건너지도 못한 강은 무엇일까? 시인이 지향하며 전력으로 달려온 지향점이리라. 그것이 이상적인 생의 목표일 수도 있는 것인데, 치열하게 달려왔지만 가 닿지 못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시인은 좌절하고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았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그 강을 건너기 위해 앞에 놓인 여러 어려움과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 싸우며 달려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시인
2015-08-13
이제 나를 꾸짖는 이라고는 없다심심하게 여기 와서풀잎에 내리는 햇빛소나무에 감도는 바람을이승의 제일 값진 그림으로서잘 보아 두고또 골이 진 목청으로 새가 울고가다간 벌레들이 실개천을 긋는 소리를이승의 더할 나위 없는 가락으로서잘 들어 두는 것밖에나는 다른 볼 일은 없게 되었거든요어린 시절 꾸지람을 듣고 마음을 달래러 나갔던 개울가를 이제는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꾸짖을 사람이 없지만 지난날 풀잎에 내리던 햇빛과 소나무에 감도는 바람, 벌레들 새소리들을 다시 들으며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고 있다. 나이 들어도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짧은 시 한 편에 오롯이 나타나 있음을 본다. 박재삼 시인의 시에서 많이 발견되는 곱고 순수한 시심이다.시인
2015-08-12
개미는 허리를 졸라맨다개미는 몸통도 졸라맨다개미는 심지어 모가지도 졸라맨다나는 네가 네 몸뚱이보다 세 배나 큰 먹이를끌고 나르는 것을 여름언덕에서 본 적이 있다그러나 나는 네가 네 식구들과 한가롭게 둘러앉아저녁식탁에서 저녁을 먹는 것을 본 적 없다너의 어두컴컴한 굴속에는 누가 사나?햇볕도 안 쫴 허옇게 살이 찐 여왕개미가 사나?개미의 허리는 시인의 말처럼 졸라맨 듯 날씬하다. 시인은 개미의 졸라맨 허리를 말하면서 우리 시대를 말하고 있다. 허리를 졸라매고 일하는 민중들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과 그 성실함과 성취에 시안이 가 닿아있음을 본다. 허옇게 살이 찐 여왕개미로 표현된 부도덕한 자본가에 대한 분노도 읽어낼 수 있는, 시인이 발표한 많은 시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빈익빈 부익부의 자본주의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시인
2015-08-11
묵호는 검은 고래다새벽마다 허옇게바다를 벗겨내는 어부들이선창가에 비릿한 욕지거리를 잔뜩 풀어놓으며고래입 같은 아가리에서는온통 욕지거리로 헐떡이는 생선들….어달리는 묵호의 해변마을이다.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한 어달리 새벽 선창가의 건강한 생명감이 넘쳐나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새벽 선창의 모습이 이렇지 않겠냐마는 여기 묵호의 선창가는 형용하기 힘든 어떤 역동력과 무서우리 만큼 생명력이 넘치는 새벽 삶의 현장이 펼쳐지는 곳이다. 우리 지역의 새벽 죽도 어판장에서도 이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 시인
2015-08-10
한 삶이 무거운지 때로는이렇게 잠 못 이룬다먼 길 온 것 같지도 않고먼 길 남은 것 같지도 않은데이 한밤 적막 속에 들리는뒷산 계곡 달빛 흐르는 소리무한 자연 한가운데 던져진 시인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없는 세월의 두께와 적막함을 느끼고 있다. 맞다, 한 삶이 그리 무거운 것이리라. 그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고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과 함께 살아가야 할 먼 길에 대한 생각들 때문에 불면에 드는 것이리라. 한 생을 허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노시인의 깊은 생에 대한 통찰을 느낄 수 있다. 시인
201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