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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지난 뒤

등록일 2015-11-19 02:01 게재일 2015-11-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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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칠 환
누가 저 꽃밖에 피울 줄 모르는 대궁을

누가 저 잎밖에 흔들 줄 모르는 가지를

누가 저 날갯짓밖에 모르는 나비를

누가 저 젖는 것밖에 모르는 우체통을

누가 저 뒤집히는 것밖에 모르는 우산을

누가 저 눈물밖에 쓸 줄 모르는 시인을

젖은 잎에 달라붙은 마당을 떼어내며

거짓말처럼 밝게 갠 하늘을 바라본다

아픔이 이처럼 고요하고 상쾌한 것이었나

거세게 몰아치던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의 생채기를 바라보며 시인은 인생의 보편적 진리 하나를 발견한다. 폭풍우에 꽃들도 나뭇가지들도 나비의 고운 날개죽지도 찢기고 부러지고 상처를 입었다. 우체통도 젖고 우산은 망가지고 시인은 망연히 폭풍우를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뒤의 맑게 갠 하늘에 햇빛 아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와 평화가 흐르고 있다. 우리네 한 생에도 엄청난 시련과 힘겨움이 닥쳐올 때가 있다. 버티고 기다리고 견디다보면 끝내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비록 상처의 아픔이 남았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평화와 안식이 있는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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