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한번도 동백을 보지 못하셨다심장이 고춧가루처럼 타버려소닷가루 아홉 말을 잡수신 어머니목을 뚝뚝 부러뜨리며 지는 그런 삶을 몰랐다밑뿌리부터 환하게 핀 해당화꽃으로언제나 지고 나서도 빨간 멍자국을 간직했다어머니는 기다림을 내게 물려주셨다어머니 한 생의 가슴에 박힌 붉은 멍자국을 들춰보면서 시인은 어머니의 신산하고 고단한 삶을 기리고 있다. 어머니의 한 많은 한 생이 어찌 짙붉은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는 처연한 동백같은 삶이라 쓰지 않았을까마는 시인은 어머니의 곤고한 삶을 해당화에 비유하고 있다. 시인의 정직성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가 아닐 수 없다.시인
2016-03-07
고맙다 파란만장아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출렁였고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슬퍼했겠고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아파했겠고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헤매다가꽃을 보고 새를 만나고그 먼 강둑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보았을까파란만장하니 인생이다파란만장하니 노래한다파란만장하니 사랑한다파란만장하니 그립다파란만장아 고맙다, 파란만장하니 고맙다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나름대로의 파란만장은 있을 것이다. 시인은 그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련의 순간들이 생을 힘차게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깊이 동의하고 싶은 것이다. 눈이 많이 오고 차가운 겨울을 보낼수록 그 다음 해 봄은 더 생명력 넘치게 열리고 풍성한 생명의 계절을 맞이하는 자연에서처럼 우리네 인생에도 시련이 깊을수록 더 나은 삶의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6-03-04
사경을 헤맨 지 보름 만에중환자실에서 회복실로 옮기던 날효도한답시고 특실로 모셨다- 아따 좋다이 근디 겁나게 비쌀 턴디- 돈 생각 말고 푹 쉬어- 후딱 짐 싸라 일반실로 내려가게- 근천 그만 떨어 누가 엄마한테 돈 내래? 뜬눈으로 간병한 사람은 안중에도 없지? 늙으면 남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만 안다더니 틀린 말 아니네설득하고 대꾸하고 통사정하다가풀죽은 넋두리에 벼락 맞은 듯 기겁해황급히 입원 도구를 꾸렸다- 아가 독방은 고독해서 못써야 통로 끝집 해남댁이 베란다서 떨어진 것도 다 그 때문 아니것냐이 땅 어느 병원 병실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본다. 병든 어머니를 1인실에 모시고 싶은 딸의 심정을 어머니가 어찌 모르겠는가. 어머니는 딸이 짐져야하는 비싼 병원비 걱정에 일반실로 옮기자고 고집한다. 독방에 갇혀서 느끼는 적막감이 두려운 어머니 심정을 뒤늦게 깨달은 시인은 화들짝 놀라 짐을 꾸리는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시인
2016-03-03
낭창낭창 살랑이는 바람 같던 스물셋, 선 봐서 만난 슈퍼총각 좋아 슈퍼 안으로 들어갔어 그녀는 이제 슈퍼아줌마 그녀를 데려가던 날도 슈퍼 문 열었던 아저씨 당최 문 닫는 일 없어비 오고 눈 와도 명절에도 아이 둘 낳을 때도 그런 일은 없어 아줌마는 아파트와 슈퍼 사이만 왔다갔다 시부모 수발들고 참새처럼 드나드는 시누 가족 밥해주고 아들 딸 키우느라 슈퍼 통로만 오락가락 미치게 바람 불어도 네모진 카운터 앞에 전화기만 붙들고 앉아있어행복슈퍼에는 정말 행복이 있을까. 행복슈퍼에는 행복을 파는 걸까. 행복슈퍼 안주인의 얘기를 건네면서 시인은 행복이 어디에 있으며 무얼까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는 꿈을 안고 슈퍼 총각에게 시집와서 아이 둘 낳고 시부모 수발들며 평범한 슈퍼 아줌마로 살아가는 그녀에게는 그녀가 꿈꾸던 건사한 행복은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자족하면서 건너는 행복한 인생의 길 아닐까. 시인
2016-03-02
사후에도그 존재가 확실한 용도의돼지나 소 막창 같은, 저 붉은붉은 신호등 앞에서멈추고 멈추어 온 나는 지금도 멈춘다저 붉은 신호등의 붉은 색은 다만나를 잠깐 멈추게 하는 가식인가내가 진짜 멈추는 이유는신호등의 저 붉은 색이질서를 아름답게 만든다는 환상 때문인가현대사회가 우리에게 획일화된 제도와 규율을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붉은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멈춰서는 것이 관습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이런 현상을 복잡한 세상사에 대입시키고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따라하고 순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에 이르게 하는 작품이다.시인
2016-02-29
눈이 날린다날리는 눈들은수많은 인간 군상처럼군무로 뒤섞여허공을 떠돈다서로가 서로를 만나고헤어지고 갈등한다더러는 남의 등에짐이 되기도 한다난데없는 곳에 내려다소 의아해 한다그렇게 하얗게 새하얗게세상을 떠돌다마침내 땅에 내려앉는다녹아 죽는다제 몸만큼만 맑고 투명한눈물 조금 남기고허공에 군무를 추며 날리는 눈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는 세상을 뜨겁게 살다 가는 인생의 이야기가 보인다. 어떤 인생은 만나고 헤어지고 갈등하는 일에 매여 살다 가고, 어떤 사람들은 남의 짐이 되어 살다 가기도 하고. 뜻하지 않는 일들에 휘둘려 의아한 한 생을 살다 가는 뜬금없는 인생도 있다는 것을 시인은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6-02-26
물결 위에 떨어진 꽃잎 몇 장이머물던 자리를 올려다보고 있다기다리던 것이 열매만은 아니라서저 태연한 관망물가의 시간은 그래서 아름답다(중략)지상의 어떤 통화도 끊은 채새우의 휘어진 등 고립의 바늘을 꿴다(중략)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싶은 4월의 밤은물살 위 떠 있는 노란 꽃잎에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눈빛 하나희망인 양 슬며시 얹어준다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자연에서의 사소한 일들에도 시인의 눈은 거기에 머문다. 물결 위에 떨어진 꽃잎이 제가 머물던 자리를 올려다본다고 표현한 시인의 마음이 따스하기 그지없다. 소멸에 대한 순응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내는 자연 앞에서 시인의 심미안은 거기에 머물며 함께하고 있음을 본다. 곱고 아름다운 심성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6-02-25
돌멩이는 죽어 있다. 그렇다. 죽어서도 돌멩이는 구른다. 닳으며 동그래지며 아직 죽어 있다. 그런가,머리 위 어중간에 나비가 걸려 있다. 그렇다. 굽은 갈고리에 찔렸거나 은빛 거미줄에 감겼다 그런가.새가 반짝이며 구름 사이로 점멸했다. 그렇다. 높이 나는 새는 불꽃이다. 하늘에다 그을린 자국을 남겼다. 그런가.나뭇잎이 떨어져서 어깨에 얹혔다. 그렇다. 나뭇잎에 눌린 만큼 어깨가 내려앉았다. 그런가벌써 익은 찔레 열매가 아직 달려 있다. 그런가. 바짝 마른 뒤에야 떨어진다. 그런가. 잘 익은 씨앗 몇 개 감추고 있다. 그런가시인의 표현에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과연 그런 인식과 표현이 맞는가에 대한 이중적인 현상 인식이 나타나 있다. 물론 시인은 각 행마다 연마다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서술에서 더 나아가 시인만의 감성에서 나오는 시적표현들이 있어 맛깔스럽다. 그러나 그런 표현들이 가지고 있는 작위성이랄까 독단성 같은 것을 염려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많은 경우에 당연히 그렇다 혹은 그럴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우리의 인식 세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던져주는 시가 아닐까.시인
2016-02-24
언제나 버스는 정해진 시간에 오지 않았다내가 기다리는 버스의 종착지는 스페인이거나필리핀의 어느 마을이나 한국의 내 고향이거나저승의 문턱일거다. 그곳까지 멀리에둘러 돌아가야 했다 지금은호흡을 가다듬고 꿈속을 헤매듯망고나무의 잎이 떨어져 싹이 오를 때까지내 몸의 푸른 피 마를 때까지버스를 기다려야만 했다열대 식물인 망고나무 아래서 버스를 기다리며 시인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고향의 겨울은 맵차다, 그 차가운 시간들과 폭설의 시간들을 견딘 자연에서 새 생명이 잉태하고 풍성한 결실에 이르는 것이 시인이 살아온 자연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지금 열대의 고장에 있다. 거기서 시인은 잎을 떨어뜨리고 새싹이 오를 때까지 견디는 열대지방의 새로운 생명 운행의 법칙을 본다. 어디서건 자연은 그렇게 생존을 위한 힘겨운 시간들을 가진다. 시인이 기다리는 버스는 그러한 시련을 견디고 성숙한 단계에 이르려는 의지의 표상인지 모른다. 혼신의 힘을 다해 기다리겠다는 성찰과 결의가 숨어있는 시다. 시인
2016-02-23
비 오는 날 그곳에 가면빗방울은 모두연잎이 되고비오는 날그곳에 가면빗물은 나보다더 크게 울고묻혀 있는 설움이 많을수록꽃은 더 아름다웠다경주 남산 자락의 서출지는 고운 연꽃 연못으로 알려진 곳으로 그윽한 서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시인은 그 서출지 연꽃을 바라보며 살면서 가슴 속 사무친 설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깊은 수렁에 뿌리를 내리고 그 캄캄하고 답답하고 수렁의 절망 혹은 어둠을 딛고 피워올리는 고운 연꽃을 얘기하면서 생의 중요한 진리 하나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설움과 절망이 깊을수록 인생의 꽃도 더 처연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6-02-22
태풍의 변두리에서 무릎까지 젖는 날이었습니다 마음의 옹이 하나 빼내어 보리라 작정하고 길따라 굽혔다 펴지는 사이 그만 안심사였습니다적멸보궁 추녀 아래 비를 피하면 숲으로 젖고 숲을 비끼면 낙숫물에 파묻히다가 어둑어둑 찾아가는 해우소접시에 결가부좌를 한 촛불 두 개, 면벽이었습니다 저 둘이 눈 감고 풀어내는 게 불빛인지 어둠인지 우두망찰하는 그 새 촛불 저편 쪽문으로 스르르 여승이 흘러갔습니다 어둠 한 자락이 해우한 듯, 펄럭, 따라 갔습니다 나는 뒤꿈치로 온몸 받쳐 들고 쪽문 밖으로 나섰습니다문 밖엔 젖은 숲, 어둠이 또렷해지고 있었습니다세상사의 번잡함을 피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시인은 절집을 찾았다. 비우고 또 비우는 법을 터득하는 곳이 절집일텐데, 거기서도 해우소는 그야말로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다. 시인은 살면서 받은 가슴 속 상처를 치유하고 끝없이 비우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하며 바깥 세상의 어둡고 젖은 숲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6-02-19
푸른 저 호숫가 어디쯤에 한 몇 평 갈고 다듬어서내 남자와 오두막집 하나 지어볼까쪽빛, 물빛 흐르는 풀꽃 향기 짙은 그곳, 따스한 그 품에서 한 시절 오가는 줄 몰라라고 열여덟 폭 몰라라고 열여덟 폭 치맛자락 굽이굽이 펼쳐두고 초비(剿匪)로 놀 비칠 때까지 네가 불러 주는 푸른 노래 들으며 끝 모를 붉은 시 읊어볼까누군들 시인이 설정하는 이런 아름다운 꿈을 꾸지 않겠는가. 분탕스럽고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무욕의 삶을 살면서 자연이 들려주는 푸르런 소리들을 모아 시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서 무한한 자유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겠는가. 눈을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 눈 시리게 푸르런 하늘을.시인
2016-02-18
좁저마다 자기들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좁고종일 붙잡혀 있는 작은 공간이 좁고그게 그것인 일들이 좁고내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은넘치는 나를 주워 담는 일그것을 구석구석 쑤셔 박는 일그 쑤셔 박은 것들이 학! 끌어당겨나를 휴지통에 쑤셔 박을 때아! 바다가 보고 싶다일상이 이뤄지는 시 공간은 극히 단조롭고 여러 한계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들도 매일 대하는 사물들도 사람들도 권태롭기 짝이 없다는 인식 아래 시인은 그런 답답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끝간데 없이 펼쳐진 자유의 공간인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단순 반복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욕망이 시 전편을 지배하고 있다.시인
2016-02-17
파도가 높습니다 바다는 제 살점을 아프게 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바위를 넘어서고 수평선을 넘어서고 제 그림자를 넘어서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위해 오직 부서지기 위해 수백 수천 마일을 맨발로 치달려 오고 있습니다(….) 몸뚱아리를 가졌다는 장애를 넘어서서 무우수 혹은 무심의 나무가 되기도 하겠지요 나로서는 살점을 아프게 떼내야 한다는 사실만이 심각한 장애로 근심거리로 다가옵니다만`무우수`라는 나무는 근심이 없는 나무라는 뜻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무욕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 이 나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제 살점을 아프게 갈라가면서 오직 부서지기 위해 수백 수천 마일을 치달려오는 파도를 대하면서 시인은 소유와 헛된 욕망으로 좁은 생의 테두리를 빙빙 돌고 있는 자신의 삶의 자세를 질책하고 있음을 본다. 욕심을 버리고 단순하고 작은 것이지만 거기서 생의 의미를 찾아가겠다는 결기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
2016-02-16
남산 뜬바위(浮石) 아래붉은 꽃이 만발하고꽃이 피는 봄날에는운애가 자욱하다바위에 바위가 얹혀 소통하는 명주올 하나하늘에는 구름 꽃온 산엔 진달래 천지바위마다 새겨진 부처마애불이 졸고 있다그 시대 그리움 남아 역사 속에 함께산다이 시린 겨울이 가고 나면 봄바람따라 온 산천에 진달래꽃이 피어날 것이다. 경주 남산을 오르다보면 바위에 새겨진 수많은 마애불들과 마주하게 된다. 봄이 오면 남산도 진달래 천지가 된다. 경주의 원로 시인인 정민호 시인의 눈에는, 아니 그의 가슴에는 신라 천년의 시간들이 살아있고 지천으로 피어오른 참꽃더미에서 시간을 초월한 역사의 고운 빛깔과 향기를 느끼고 있음을 본다.시인
2016-02-15
출입하는 산의 계곡에 폭우로 작은 폭포가 생겼다 한 계절의 수량을 며칠 만에 낭비하는 순간이다 무의 색깔도 소리도 자신이 폭포인 줄 모르고 있다 화장기 없는 물방울과 물방울이 뒤섞이는 무언극이 있다면 물방울을 돕는 산파의 물방울 또한 튀면서, 폭포는 자유롭다 자유로운 줄도 모르고, 폭포의 마음이 아직 생기기 전이기에, 무의 상형문자가 처음으로 드러났기에 폭포의 낮은 키는 아직 측정되지 않았다이 시에서 폭포는 자유로움의 상징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소신껏 마음 먹은 대로 하는 존재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감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제 길을 갈 뿐이다. 온갖 굴레에 매여 있고 욕심과 욕망에 갇혀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폭포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면서 우리에게 던지는 시인의 메시지가 또렷하다.시인
2016-02-12
입이 궁금한 날에는마을돌이 트럭 어물전 시간 맞추어냉동 오징어나 전어 한 오천 원어치 산다물에 풀어 얼음 씻어내고칼질 듬성듬성 대장균, 비브리오균 죽인다괜찮을까, 의심하는 이 있으면소주하고 먹으면 탈 없다고 웃는다탈이 나더라도 혼자 죽기야 하겠는가촌놈 되자면 이 정도 목숨 걸 일 더러 있다이 시에서 촌놈이란 그야말로 시골 사람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저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며,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민초들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마을을 도는 어물 파는 트럭에서 냉동오징어나 전어를 조금 사서 맛나게 한 끼 때우면 그만이고, 무슨 대장균이나 비브리오균 같은 두려움에 젖어들 필요도 없이 소탈하게 소주 한 고뿌로 넘겨버리는 소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인생사를 시인은 담담하게 풀어나가고 있다.시인
2016-02-11
유홍준 교수가 북한에 갔을 때라고 한다. 단군릉 앞에 선 그의 뒷모습이 TV 카메라에 비치자 강남구 학동 목욕탕 내 얼금뱅이 이발소 주인이 손님들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아 저거 내가 깎은 머리인데” 사람들이 일단 동작을 멈추고 서서 그의 벌린 입을 한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한다그냥 지나쳐버리면 영원히 남겨지지 않을 삶 속의 사소한 일화를 제재로 쓴 재미난 시다. 분단체제 아래서 아무나 쉽게 단군릉이 있는 북한에 가지 못한다. 그런데 서울의 한 목욕탕 안 이발소의 얼금뱅이 이발사의 눈에 어느 날 자기에게 이발을 한 유홍준 교수가 단군릉 앞에 선 모습이 TV에 보인 것이다. 경이롭고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별로 대수롭지 않는 일이지만 시대 상황과 어울린 재미난 일화가 이렇듯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시인
2016-02-05
세상의 텅 빈 모퉁이에서꽃을 피워 올리는 손들이 있다삶은 늘 소용돌이라서자주 허리가 휘고 손마디가 꺾이곤 하지만곡괭이로 쇠스랑으로 긁어댄 자리마다뽀지직뽀지직 땅이 열리고독백처럼 낮은 소리로 흔들리며아픈 열탕 같은 세상 속으로 오는 발길이 있다어둑한 걸음으로어두운 기슭으로 오는 것들의궁금한 발길들구부러진 길에는 푸른 꽃들이 피고파닥거리는 작은 잎들이 환한 잠을 깨우고 있다네가 보낼 어두운 밤들은 잊는 게 좋겠다상처를 붙들고 우는 시간을 지우는 게 좋겠다먹먹해진 귀에 침침하게 내리는 비침침하던 시간이 천천히 열리는여기흙을 미행하는 발들이네게로 여행을 온 것이다겨우내 움츠리고 닫아두었던 대지에 봄이 스미고 있다. 생명의 불꽃으로 피어오르기도 하고 뾰롱뾰롱 미세한 소리로 찾아오기도 한다. 기대와 희망에 찬 걸음으로 봄을 맞으러 가는 시인의 가슴 속에는 그 어떤 어둠이나 차가움도, 아니 거센 바람과 눈발이 아무리 거칠게 몰아치더라도 당당히 이겨 나가겠다는 강단진 의지가 시 전편에 깔려 있다. 우리네 한 생도 여기에 견줘보면 더 깊은 감동에 가 닿을 수 있을 것이다.시인
2016-02-04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고래는 제 아기들을 먼 데서 낳아 돌아오고멀리 있는 당신에게편지를 쓰게 한다지구는 추운 별이어서가끔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멈춘 걸음을 끌고 가는스스로의 발등을 내려다보게 한다지구는 추운 별이어서돌아보면 그 자리에 아직도네가 서 있는 걸 믿고 싶어지는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지구는 초록색의 아주 아름다운 행성, 고운 별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지구는 차가운 별이다. 가난과 질병과 테러와 전쟁, 불평등과 사고가 넘쳐나는 차갑고 아픈 행성이다. 그러나 마지막 행에서처럼 시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그래도 돌아보면 그 자리에 사랑하는 네가 서 있는 걸 믿고 싶어지는 회복과 구원의 강한 믿음과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