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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이팝나무

105동 앞 이팝나무가 앞산에 내려앉은 하늘도 함께 툭하고 잎을 떨구는데, 애초부터 거기 있던 앳된 가을이 터져버린 봇물처럼 푸르게 푸르게 밀물져 오는데이런 날은 다 쓸데없다 입 꼭꼭 다물어야지 콩이니 팥이니 무슨 말을 하는 것도 다 미친 짓이다 무엇이든 결국은 슬픔으로 차오르는 이런 날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쓸데없다 한 계단 한 계단 힘주어 딛고 올라야지툭 하고 떨어져 가는 곳 모를 저 나뭇잎처럼, 지는 잎 때문에 끝간데 없이 깊어지는 저 하늘처럼, 한 발 한 발 더 깊게 꼭꼭 눌러 디뎌야지그렇게 살아야지 막막한 어둠도 닦고 또 닦으면 환한 달이 오르듯 그렇게 저 슬픔도 이팝나무 가지 끝 다시 맺히는 이슬이게아니면 차라리 저 이팝나무처럼 까짓 슬픔도 더 단단히 뿌리 내리도록어느 봄날 우리 곁에서 하얀 이밥처럼 꽃을 피워올렸던 이팝나무. 시인은 아파트 안의 이팝나무에 들어서는 가을을 본다. 거기서 차오르는 슬픔을 느끼고 있다. 머지않아 툭 하고 떨어져 어딘가로 가버리는 나뭇잎 같은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에 닿아서는 오히려 그 슬픔이나 허망함, 절망감을 견디고 이겨내려는 단단한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슬픔도 더 단단히 뿌리 내리도록….시인

2012-12-03

은행나무가 쓴 노란색의 자서전을가을이 다 갈 때까지 읽어내지 못했다

나는 은행나무가 쓴 자서전의 108쪽을 읽던 중이었는데, 그 가운데 부분에 이르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강아지나 버스나 할 것 없이 잠깐 잠깐씩 던져준 그대들의 눈길이 내 몸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대들과 내 눈길 사이에 어떤 길이 나 있기에 나의 눈길도 그대들의 몸속으로 스며듭니까” 또 몇 줄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눈빛이 스미면 몸이 가벼워집니다. 나는 지금 너무 몸이 가벼워 콩새 한 마리 품을 수가 없습니다. 그 기억만을 품을 뿐입니다” 라는 구절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은행나무가 `품을 수 없다`라고 하는 말에 걸려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지금 나는 `품을 수 없다`라는 은행나무의 말 내부로 들어가 그 말이 마련해준 노란 벤치에 앉아 며칠씩 굶어가며 그 의미를 캐고 있다.가을이 깊다. 이 시에서 마련해주는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에 깃든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늦가을 은행나무 아래서 그 은행나무가 마련해준 노란 벤치에 앉아서 며칠씩 굶어가면서 깊은 사색에 빠져들고 싶어하는 시인의 고백에, 그 낭만의 시간에 깊이 동의하고, 시 속에서 시인이 캐고자하는 의미는 제쳐두고라도 비처럼 날리는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 우리들 자신의 존재와 인생에 대한 사색에 빠져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시인

2012-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