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소년은 단풍잎 떨어지는 가을날 자기가 남몰래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랑의 감정에 젖어들고 있다. 가을의 고운 하늘과 붉은 단풍잎은 이러한 소년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언젠가 바람이 불고 단풍잎이 떨어지고 가을이 가고나면 그가 사랑한 순이도 멀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몰래 묻어나는 참 깨끗한 시인의 마음을 넘겨다 볼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