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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량역

등록일 2012-11-19 21:07 게재일 2012-11-1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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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인 수
모량역은 종일 네모반듯하다

면 소재지 변두리 들녘 낯선 풍경을

가을볕 아래 만판 부어놓는다

저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개 때문에

저기서부터 시작되는 너른 논들을

논들에 출렁대는 누런 벼농사를

더 널리 부어놓는다, 개는

비명도 없이 사라지고

논둑길을 천천히 걸어나오는 저 노인네는 또 누구신가

누구든 상관없이

시꺼먼 기차소리가 무지막지 한참 걸려 지나간다

요란한 기차소리보다

아가리가 훨씬 더 큰 적막을

다시 또 적막하게 부어놓는다 전부

똑같다, 하루에 한두 사람

누가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말거나

모량역은 단단하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한 되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고속철의 시대에 이제는 폐역이 되어버린 모량의 쓸쓸한 정경과 거기에 담긴 오랜 역사를 들여다보는 시인은 세월의 무상함도 생의 덧없음도 느끼고 있다. 평소에도 그리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았던 조그마한 시골 간이역은 그야말로 수난의 민중사가 기록되어 있는 곳이라 해야할 것이다. 연기처럼 사라진 수많은 이야기들이 저 바람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리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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