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승 빈
105동 앞 이팝나무가 앞산에 내려앉은 하늘도 함께 툭하고 잎을 떨구는데, 애초부터 거기 있던 앳된 가을이 터져버린 봇물처럼 푸르게 푸르게 밀물져 오는데
이런 날은 다 쓸데없다 입 꼭꼭 다물어야지 콩이니 팥이니 무슨 말을 하는 것도 다 미친 짓이다 무엇이든 결국은 슬픔으로 차오르는 이런 날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쓸데없다 한 계단 한 계단 힘주어 딛고 올라야지
툭 하고 떨어져 가는 곳 모를 저 나뭇잎처럼, 지는 잎 때문에 끝간데 없이 깊어지는 저 하늘처럼, 한 발 한 발 더 깊게 꼭꼭 눌러 디뎌야지
그렇게 살아야지 막막한 어둠도 닦고 또 닦으면 환한 달이 오르듯 그렇게 저 슬픔도 이팝나무 가지 끝 다시 맺히는 이슬이게
아니면 차라리 저 이팝나무처럼 까짓 슬픔도 더 단단히 뿌리 내리도록
어느 봄날 우리 곁에서 하얀 이밥처럼 꽃을 피워올렸던 이팝나무. 시인은 아파트 안의 이팝나무에 들어서는 가을을 본다. 거기서 차오르는 슬픔을 느끼고 있다. 머지않아 툭 하고 떨어져 어딘가로 가버리는 나뭇잎 같은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에 닿아서는 오히려 그 슬픔이나 허망함, 절망감을 견디고 이겨내려는 단단한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슬픔도 더 단단히 뿌리 내리도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