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고요한 여인몸져누운 뒤로 일어설 줄 모르네길고 긴 옥색 치맛자락 깔고 누워뒤척이고만 있네퉁퉁 불은 젖가슴 열어 둔 채햇살에 눈부시던 이마, 열꽃은 식었지만흐르고 흘러도 닿지 못하는속살의 눈부신 꿈꾸는지눈빛 속 눈물강만 붉게 물드네그 뜨거운 숨결 흐르고 흐르면모질게 여민 치맛자락도 풀려한 올 한 올 남김없이 흘러또 한 번 깊어지겠네저물녘의 강을 우리네 삶에 견주어보면 인생의 후반부, 늙음을 의마하는 것이다. 그것도 죽음을 앞둔 경우라 할 수 있다.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나이다. 자연적인 나이가 높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한층 성숙하여 자신의 집착을 버릴 수 있고 남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여유와 무욕의 심정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강물처럼 고요히 흐르는 나이가 아닐까.시인
2012-09-14
한바탕 바람은 담벼락을 긁고 골목이 끝나는 곳에서 헛손질로 사라지곤 했다 다르륵다르륵, 청춘은 빈 우유 곽처럼 골목을 이리저리 부딪치며 그 이름만 아름다웠다 끝없이 필 줄 알았던 꽃은 지고 서리가 내리고 나는 이빨을 가볍게 떨며 두리번거린다 서른이 넘어 귀를 잃고 서른이 넘어 사랑을 잃고 서른이 넘어 표현을 잃고 서른이 넘어 두리번거린다 검은 봉지처럼 오래도록 허공을 내려오지 않는 저 가볍고, 캄캄한 내 청춘에 건배.이 세상 누군들 스러져가는 자신의 청춘에 대해 축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열정과 패기와 전진만 있었던 청춘의 시간들, 그래서 상처받고 아픔 당하고 절뚝거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참으로 아름다웠던 시간들이다. 그 청춘의 시간들이 뜨겁게 내 속에 흘렀기에 오늘의 이만한 평화와 기쁨이 있는 것이다. 아 아름다운 청춘!시인
2012-09-13
잡초 우거진 밭 한 구석에허물어져 가는 봉분 하나 앉아 있다풀뿌리들은 그물망을 치고 봉분을 지키고개망초 병정처럼 바람에 흔들리며풀벌레들을 불러 모은다구린내나무 곳곳에 은근한 냄새를 피우며제 영역 표시하고빈 그물처럼 딸려 나오는 풀뿌리들이죽은 자의 수의처럼 엉겨있다거두어 주는 이 없는 봉분 주위로 날아든 새들은그의 후손이 서울에 산다는 소문을 물고 와바람결에 풀어 놓았다여기저기 흩뿌려진 소문의 흔적은가시나무가 되어 발 디딜 틈이 없고죽은 사람은 말없이 풀숲에 누워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잡초 우거진 묵정밭 가생이에 잡풀을 뒤집어쓴 봉분 하나. 그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고 새들이 날아왔다가 날아가고 철따라 잡풀이나 망초같은 꽃들이 질서없이 피어나는 거기. 한 생을 힘겹게 살다 간 망자는 가만히 누운 채 말없이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아옹다옹 다툴 일 없고 더 가지려 힘겹고 고단한 일에 내몰리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찾은 무덤의 주인. 우리의 한 생을 돌아봄직한 시다.시인
2012-09-12
늦잠 자던 교문 기지개 켜고학교 마당 나무들도 까치발 들고 손을 흔든다철민이 키가 쑤욱명숙이 다리는 통통구릿빛 얼굴, 아하, 경수로구나온 여름 내내 텅 비었던 교실 가득온 여름 내내 영근 아이들의 꿈 보따리들이자그락자그락하나씩 보따리를 풀어헤칠 때마다교실은 온통 푸른 숲 되었다가강이 되고바다도 되고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어디에 또 있을까. 개학을 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저토록 생기있고 희망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은 온통 함박꽃이 된다. 세상은 온통 시끄럽고 분탕스럽다 하더라도 꿈을 가진 아이들이 있기에 우리에겐 희망 크다. 푸른 숲도, 길고 질긴 강도, 넓디넓은 바다도 될 아이들이 저리 힘차고 밝게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시인
2012-09-11
덧없이 피어난 꽃은 어디에도 없으리니길고 날카로운 가시 속에 애써 피운탱자나무 흰 꽃들을 우습게 보지 말아다오이파리마다 촘촘하게 가시를 매단엉겅퀴를 함부로 지나치지 말아다오목숨 같은 희망일수록 제 그늘 속에어느덧 역사처럼 서러운 가시를시퍼렇게 날 세울 수밖에 없었나니슬픔이 우물처럼 깊어질수록제 가슴마다 역사처럼 떳떳한 가시를초병처럼 세울 수밖에 없었나니마침내 그 꽃과 가시의 중심부엔그 어떤 사나운 짐승의 내장에도소화되지 않는 단단한 모순의 검은 씨앗들이여전히 미완인 혁명처럼 여물어가고 있나니가시를 가진 탱자나무나 엉겅퀴를 들어 인간의 얘기를 넌지시 건내고 있다.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 그들이 피워 올리는 꽃은 목숨 같은 소중한 희망을 품고 있으며 우물처럼 깊은 내밀한 슬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리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삶의 모양이 힘겹고 지난할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가시가 무성한 경우가 있다. 단단한 씨앗들이 혁명처럼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시인
2012-09-10
외팔이 된 삼촌이 월남에서 돌아왔다 그는 포로로 잡힌 베트콩처럼 사람을 두려워했다 우물가에 앉아 한손으로 맨드라미 까만 씨앗을 털어주던 그의 눈 속에는 메콩강 물살이 가파르게 일었다 책상 위에 벗어놓은 고무팔이 따가운 햇살을 뭉켜잡았다비둘기 부대의 용사였던 그는 한쪽 날개 짓으로 회귀한 셈이다 그는 밤마다 술에 취해 꾹꾹거렸다 돌담 위의 석류가 안전핀을 뽑았다 그는 안개가 포성같이 깔린 저수지로 돌진했다 그의 고무팔이 먼저 떠올라 악수를 청했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보내온 세상과의 화해였다 꽃밭의 붉은 혀들이 울음을 밀어냈다 맨드라미 꽃잎을 털면 따이한, 따이한, 알아들을 수 없는 새까만 말들이 훌쩍훌쩍 쏟아졌다전쟁은 인간의 몸만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내밀한 정신에 손상을 입힌다.전쟁에서 돌아온 삼촌은 팔을 잃은 것이 아니라 삶의 견고한 중심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그러나 그는 적극적으로 세상과 화해하고 있다. 생명있는 모든 것들과의 진정한 화해를 위한 몸짓은 눈물겨운 것이다.시인
2012-09-07
뭐라고? 투신자살과 칼부림이 넘쳐나는 곳이라고?개발과 투기로 가득 차 있는 난장판이라고?매연과 오염으로 뒤덮여 있는 쓰레기장이라고?상습교통정체로 푹푹 한숨이나 쉬는 곳이라고?악의 소굴, 빈곤의 공장…. 지저분한 뒷골목이제는 그런 나쁜 누명 다 벗겨냈다고?성장과 문명을 만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니까?언제나 혁신과 변혁을 이끄는 힘찬 엔진이니까?야심만만한 젊은이들 부푼 꿈 다 이루는 곳이니까?창조적 에너지로 넘치는 온갖 기업들문득, 별안간, 갑자기, 퍼뜩 세상 확 바꾸는 곳이니까?뒷골목은 늘 그늘이 져있다. 그것도 서울의 뒷골목은 그 그늘이 깊다. 문명의 극점에 이르른 서울 도심은 희망차고 창조적 에너지가 넘쳐나고 있으며 햇빛이 찬란히 빛나는,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의 꿈이 부푸는 곳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양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장과 발전의 그 이면에는 무서운 그늘이 드리워져있다. 시인은 그 그늘에 대해 야유하고 있다.시인
2012-09-06
날려보내지 않으면 될 줄 알았어놓치지 않으면 너는내 부푼 가슴이 될 줄 알았지비단실에 꽁꽁 묶어돌맹이 달아꼭 꼭 붙들고 잤었지꿈을 깬 아침바람이 빠져나가고쭈글쭈글한 피부가 되어권태롭게 방바닥을 뒹구는 너반짝이던 눈과두근거리는 가슴이 빠져나간내 사랑날아갈 듯 빵빵한 공기를 품고 부풀어있는 풍선, 오랫동안 함께 있으려고 비단실로 꽁꽁 묶어놓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 빠지고 쭈글해진 모양 없는 풍선을 보면서 시인은 인생을,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 늘 싱싱하고 열정적인 청춘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있을 것 같지만 세월 지나면서 그것은 허상에 불과함을 느낄 수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물거품 같은 풍선 같은 것 아닐까 시인의 말처럼.시인
2012-09-05
좋은 것 다 붙들어 놓을 수는 없지소나무 산사나무 칡덩굴 코끝으로 달려드는 냄새모래와 이파리와 물웅덩이의 오솔길 발바닥에 닿는 느낌초롱꽃 달맞이꽃 참나리 숲길을 틔우는 빛깔너 하나뿐이라는 뜨거운 목소리날아오른 절정의 하늘어느 틈에 흘러가지굽이치며 솟구치며지리멸렬 지리멸렬 하루가 가라앉을 때살짝 살짝 고개 내미는 그것들처음이자 끝인살아있는내 몸살아있음은 여러 징후들을 발산하기 마련이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살아있음은 모든 것에게로 활짝 열린다. 몸의 여러 감관들과 마음의 관심들과 생각들이 끝없이 열려 살아있는 사람과 자연과 교감하게 되고 충만한 생명감으로 채워진다. 그럴 때 우리 내면에서는 진정한 사랑과 평화가 생성되고 타인들에게로 흘러갈 것이다. 살아있음의, 그 절정의 징후인 것이다.시인
2012-09-04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용서하는 것이란다수시로 까마득히 지난 일이불쑥 부아를 지르며 올라오면핏줄이 곤두서고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세월 따라 잊혀짐도 하다마는가슴을 후비며 일어설 때는제어되지 않는다그래도 용서해야 한다며`용서 못하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는보속을 받고도용서는 기도 속에 없다용서에 인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팔을 들어 집게손가락 하나를 펴고 누구를 가리키는 동작하면서 손가락 다섯 개를 보면 세 개는 바로 자신에게로 향함을 알 수 있다. 상대를 탓하고 지적하고 정죄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자신을 한번 들여다보라는 뜻이 내포된듯한 느낌이다. 용서와 화해가 절실한 시대다. 용서는 사람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관계의 복원 방식이 아닐까.시인
2012-09-03
별아저씨*는 일찍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다삼십년 세월이 흐른지금사람들 사이에 있던 섬은 사라지고사람들 각자가의미 다른 섬이 되어떠 있다각양각색의 성채를 품고저 홀로 빛나는익명의 섬들이바다를까맣게 뒤덮고 있다별아저씨가 말한 `사람들 사이의 별`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람들이 가고싶어하는 절대 평화와 자유, 안식이 있는 그런 이상적인 공간은 아닐까 생각된다. 현존하지도 할 수도 없는 이데아의 세계이리라. 사람들은 살다보니 자기 자신이 섬이 되어있음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각양각색의 캐릭터를 가지고 홀로 빛나는 익명의 섬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그 섬에 들이지도 않고 들어갈 수도 없는 성 같은 개별화된, 파편화된 섬으로 말이다. 그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 별아저씨: 정현종 시인시인
2012-08-31
해마다 보름 즈음이면새벽녘에 슬며시 제 뼈를묻고 가던 동산 기슭에흰나비 꽃이 층층이 피었다가슴에 기대어 환하게 웃던사람이 있었다간 밤 내 꿈 속에그 사람이 내 옷깃 잡아끌었나 보다펄럭일 때마다 달빛 부서지는하염없이내가 날개짓 따라꿈 밖으로 꺼내어 졌나 보다사랑했던 사람, 그러나 지금은 곁에 없는 그 사람을 만났다 시인은. 달맞이꽃으로 화신한 사랑했던 사람이 내게로 와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너무도 사랑했던 사람과의 만남은 시공을 초월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본다.시인
2012-08-30
맥없이 가던 시간도 슬며시 주저앉아고이는 자리한 움쿰의 슬픔도 고여있다선명하던 기억들 뿌옇게 바래푸석푸석 무게도 없이 스러지고아무 것도 아닌 마음만 푸스스….푸스스….가수 최백호가 부른 노래 중에 `쉰이 되면`이라는 노래가 있다. 인생의 반환점을 한참이나 돈 나이 오십. 뜨거운 열정과 결행으로 살아온 지난 들, 그 빛나고 아팠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선명하던 기억들을 돌아보면 참 아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고 안타깝고, 혹은 기쁨과 환희가 섞여들던 행복한 시간들도 있었으리라. 뒤 돌아보며 회한에 젖는 시인의 마음이 무겁고도 가벼운 것은 비단 이 시를 쓴 시인만 느끼는 것일까.시인
2012-08-29
대형 트레일러가 이층 가득 승용차를 싣고 간다대형 트럭이 돼지를 가득 싣고 간다차바퀴에 깔릴 비명의 임자는지금 상추쌈에 삼겹살을 먹는 중이며속도가 거세된 짐승은 눈부시게 우아하다트럭에 실려 흔들흔들 도축장으로 가는 돼지들지글거리는 삼겹살 앞에 돼지는 없다고속버스를 타고 지는 해를 보며오늘 하루만큼 짧아진 인생을 싣고흔들흔들 우리도 간다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실려 가는 육축들을 가끔 보게 된다. 그 눈빛이 두려움이나 공포에 떨고 있는 같지 않다. 시인의 말처럼 눈부시게 우아하고 평화롭게 보일 때가 있다. 그가 가는 길이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 또한 별반 다르지 않지 않는가. 어쩌면 육축을 싣고 가는 트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리는 어딘가로 끝없이 달려가고 끌려가고 있다. 그곳이 막연한 죽음의 자리로만 여겨져서는 안될 것이다. 생각과 느낌, 철학과 종교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시인
2012-08-28
대체 몇 굽이를 돌아 흐르는 물길입니까출렁거리며 흘러가는 푸른 문장입니까내 인생의 허전한 기슭을 적시며어느 낯선 곳으로 접어드는 유정한 강물입니까자호천 기슭 여뀌꽃 자욱이 핀 곁에 앉아내 꽃 피운 것 무엇이었나 헤아립니다강물은 비와 바람과 구름의 길이며무너지고 일어서고 무너지고 일어서면서땅 위에 새기는 어떤 기록이 아니겠는지요뒷물이 앞물을 밀어 끝이 없는이 강 기슭에 서서 부르는 당신의 이름당신, 지금 어느 생의 물 가에서내가 보내는 그리움의 물결그 물 위에 적은 내 마음을 읽고 계시는지요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시인은 사람 속으로 관통하는 세월의 흐름을 느끼고 있다. 청춘의 시간들 보내며 꽃 피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삶의 본질적 문제를 자문하면서 지금은 아득히 흘러가버린 사랑했던 사람과의 아름다운 시간들, 그 아쉽고 그리운 마음으로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비단 시인의 가슴 속으로 흐르는 강물 뿐이겠는가.시인
2012-08-27
그는 가로등 불빛에 손을 펴 들고샛별처럼 손톱을 깎고 있던 것이었다가난한 동네의 어두워서 착각했던풍경 하나가 딱딱딱 소리를 내며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손톱 깎는 소리마지막 집들을 지키는나무와 같은 가로등 밑에서 울려 퍼지는도시에서 보는 반딧불 같은어느 따스한 길이었다나도 어서 집으로 돌아가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손톱을 깎고 싶은 밤이었다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다 이상한 풍경 하나를 본다. 순찰차를 세워놓고 순경이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달빛에 손톱을 깎고 있지 않는가. 시인은 이 재미난 풍경을 제시하면서, 삭막한 도시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까맣게 잊어버렸던 반딧불처럼 아름다운 따스한 한 순간을 일깨워주고 있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2-08-23
빰빠라밤 빰빠라밤1950년대 아침마을 확성기를 통해 기상나팔이 울려 퍼진다아이들도 일제히 주먹나팔에 가사를 지어 따라 불렀다밥 먹어라 밥 먹어라밥은 밥은 꽁보리밥, 국은 국은 된장국이제는 꽁보리밥과 된장국마저 별미 된 시대마음 쓸쓸한 날내 가는 귀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기상나팔소리눈을 뜬다, 아니 눈을 꼬옥 감는다꾸욱꾹 눌려담은 꽁보리밥 한 그릇이제보니 당신의 봉분이 겨우 꽁보리밥 한 그릇!밥 한 그릇이 삶의 중요한 몫을 차지했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다. 불행했던 시절을 뒤돌아보는 시인의 눈이 참 따스하다. 맞다. 이제는 꽁보리밥과 된장국이 별미가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밥 먹으라고 불어대던 기상나팔소리가 귀에 쟁쟁한 지금도 후끈하고 구수한 꽁보리밥 냄새가 코끝에 훅 끼친다. 가난했지만 사람 사는 냄새와 정겨움이 살았던 시절이었다.시인
2012-08-22
가슴 위로이맘쯤 배 한 척 지나가는 일은숨겨두었던푸른 눈물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거품처럼 요란한 그 길에서기억은 포말처럼 날뛰고 뒤집어지고그 위를물그림자가 가고 있다눈물 속에서 뿜는 용암 덩어리가 스러지면모든 길은 떠나거나 흐르거나칼날 지나간 자국마다그것을 견딘 힘을 본다어느새 지워지는 흉터의 길들처럼아무 일 없던 것처럼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그 길의한 순간이 잘 아물어 있다낯선 세계에 잠시 다녀온 듯낮잠에서 깨어난 듯누구나 푸른 눈물을 흘려보았던 청춘의 시간들이 있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생의 길은 각기 다 다르고 무척 다양하다. 그러나 거품처럼 요란한 길이라고 말한 시인의 말처럼, 눈물 속에서 뿜는 용암덩어리를 가진 청춘의 시간들이 있었다. 청춘의 시간,그 푸른 상처를 견딘 눈물의 힘이 자랑스럽다. 그 쓰라린 상처를 이겨낸 극복의 시간들이 아름답다.시인
2012-08-21
육십갑자 채 한 바퀴 돌지도 못하고나리꽃 몇 송이 키우며 말년을견딘 어머니한 철 우두커니 피어서늘 푸른 사철나무 내려다보는나리꽃 참나리꽃붉게 열 오르는 어머니주황색 선명한 꽃잎에흑자색 점으로 찍힌 병력상여 따라 저승으로 가는 꽃나리꽃 참나리꽃검버섯이 피어오른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깊고 눈물겹다. 육십갑자 한 바퀴도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어머니를 추모하는 시인의 눈에 보이는 나리꽃 참나리꽃은 어머니의 화신이다. 점점이 박힌 나리꽃의 반점들을 평생을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다 가시는 어머니 얼굴에 핀 저승꽃에 비유하면서 시인은 가만히 어머니를 송별하고 있다. 어머니, 그 눈물겨운 나리꽃을 바라보자 오늘 아침.
2012-08-20
번호표 한 장내게 던져놓고위로 선배 한 분 퇴직하셨다자꾸만알아서 할 터이니뒤에서 쉬시라 하지만그래도뒷방 늙은이가 뭘,하는 것 같아 아쉽다아직 저녁놀 곱다최근 사회적으로 정년 연장의 문제가 이슈화 되고 있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도 심각하게 제고해 봐야할 문제다. 한창 일 할 만한 나이에 원로가 되어 일에서 밀려나고 만다.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아직은 저녁놀이 곱다. 아직은 그분들의 역할이나 활동에 노련미와 원숙함이 묻어나는 경우가 많다. 청년실업문제와는 별개의 일이다. 사회적 논의가 신중하게 이뤄져야할 문제가 아닐까.시인
2012-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