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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정밭

등록일 2012-09-12 20:18 게재일 2012-09-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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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 영
잡초 우거진 밭 한 구석에

허물어져 가는 봉분 하나 앉아 있다

풀뿌리들은 그물망을 치고 봉분을 지키고

개망초 병정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풀벌레들을 불러 모은다

구린내나무 곳곳에 은근한 냄새를 피우며

제 영역 표시하고

빈 그물처럼 딸려 나오는 풀뿌리들이

죽은 자의 수의처럼 엉겨있다

거두어 주는 이 없는 봉분 주위로 날아든 새들은

그의 후손이 서울에 산다는 소문을 물고 와

바람결에 풀어 놓았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소문의 흔적은

가시나무가 되어 발 디딜 틈이 없고

죽은 사람은 말없이 풀숲에 누워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잡초 우거진 묵정밭 가생이에 잡풀을 뒤집어쓴 봉분 하나. 그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고 새들이 날아왔다가 날아가고 철따라 잡풀이나 망초같은 꽃들이 질서없이 피어나는 거기. 한 생을 힘겹게 살다 간 망자는 가만히 누운 채 말없이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아옹다옹 다툴 일 없고 더 가지려 힘겹고 고단한 일에 내몰리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찾은 무덤의 주인. 우리의 한 생을 돌아봄직한 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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