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선 영
허물어져 가는 봉분 하나 앉아 있다
풀뿌리들은 그물망을 치고 봉분을 지키고
개망초 병정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풀벌레들을 불러 모은다
구린내나무 곳곳에 은근한 냄새를 피우며
제 영역 표시하고
빈 그물처럼 딸려 나오는 풀뿌리들이
죽은 자의 수의처럼 엉겨있다
거두어 주는 이 없는 봉분 주위로 날아든 새들은
그의 후손이 서울에 산다는 소문을 물고 와
바람결에 풀어 놓았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소문의 흔적은
가시나무가 되어 발 디딜 틈이 없고
죽은 사람은 말없이 풀숲에 누워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잡초 우거진 묵정밭 가생이에 잡풀을 뒤집어쓴 봉분 하나. 그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고 새들이 날아왔다가 날아가고 철따라 잡풀이나 망초같은 꽃들이 질서없이 피어나는 거기. 한 생을 힘겹게 살다 간 망자는 가만히 누운 채 말없이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아옹다옹 다툴 일 없고 더 가지려 힘겹고 고단한 일에 내몰리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찾은 무덤의 주인. 우리의 한 생을 돌아봄직한 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