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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

등록일 2012-09-07 20:55 게재일 2012-09-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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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옥
외팔이 된 삼촌이 월남에서 돌아왔다 그는 포로로 잡힌 베트콩처럼 사람을 두려워했다 우물가에 앉아 한손으로 맨드라미 까만 씨앗을 털어주던 그의 눈 속에는 메콩강 물살이 가파르게 일었다 책상 위에 벗어놓은 고무팔이 따가운 햇살을 뭉켜잡았다

비둘기 부대의 용사였던 그는 한쪽 날개 짓으로 회귀한 셈이다 그는 밤마다 술에 취해 꾹꾹거렸다 돌담 위의 석류가 안전핀을 뽑았다 그는 안개가 포성같이 깔린 저수지로 돌진했다 그의 고무팔이 먼저 떠올라 악수를 청했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보내온 세상과의 화해였다 꽃밭의 붉은 혀들이 울음을 밀어냈다 맨드라미 꽃잎을 털면 따이한, 따이한, 알아들을 수 없는 새까만 말들이 훌쩍훌쩍 쏟아졌다

전쟁은 인간의 몸만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내밀한 정신에 손상을 입힌다.

전쟁에서 돌아온 삼촌은 팔을 잃은 것이 아니라 삶의 견고한 중심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적극적으로 세상과 화해하고 있다. 생명있는 모든 것들과의 진정한 화해를 위한 몸짓은 눈물겨운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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