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 부두는 노래 속에서 내린다. 굳세어라 금순아 속에서, 눈보라의 아우성 속에서 엄마아, 꽝 터지는 폭탄 속에서 금순이는 치마를 펄럭이며 하늘 위를 걷는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휙휙 부두는 폭파되고 배는 이미 떠났는데 금순이 두 팔을 휘젓는다. 겨울 파도 위를 걸어서 걸어서 내려온다. 영도 다리 난간 위에서 고꾸라지듯 떨어지다가도 어림없지. 솟아 오른다. 바다 갈매기들은 운다. 꽥꽥거리며 운다. 날개 달렸다고 하늘을 날면서도 운다. 명태가 가르는 찬 바다 위를 금순이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걷다가 뛰어내린다. 허공을 가로질러 휙휙.6·25전쟁 때 흥남철수 후 부산에 정착해 고단한 삶을 살던 피난민들이 같이 내려오지 못한 금순이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내용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가 있다. 이 시는 그것를 제재로 씌여졌는데, 이 시의 연상은 시대를 초월해 현재의 삶의 애수까지 자극하고 있다. 이 시에서 눈발은 두고 온 금순이를 지칭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 이 시대의 금순이는 누굴일까. 시대의 비극적 피해자인 금순이는 꼭히 어는 누구를 지칭하는게 아니라 민족상잔의 아픔을 겪은 당대의 모든 어른들이 아닐까.시인
2013-03-15
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가난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는 시인의 언어는 진솔하고 현재 진행형을 견지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시장에 열무를 팔러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는 소년의 외로움과 공포심이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하고 그 눈물이 가슴으로 흘러옴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회상을 불러일으키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이다.시인
2013-03-14
울산바위 꼭대기에는별들의 집이 있다어느날집 떠나해 지고 어두우면그곳에 가 자고 싶다속초에서 활동 중인 이상국시인의 시에는 백두대간의 명산 설악을 제재로 한 시편들이 많다. 재밌는 설화를 가지고 있는 울산바위 꼭대기에 `별들의 집`이 있다는 표현은 참 재밌고 우리에게 환상을 불러 일으켜주는 인상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이란 종국에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천리(天理)요 진리다. 무변광대한 우주를 향해 그 곳에서 안식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을까.시인
2013-03-13
누운 엄마 배 위에 엎드려잠든 아기이층도 탑이 되는 이치가여기 있다엄마가 탑신이라면아기는 옥개석일지라물론 온 대지가 기단부이고하늘 저 위 해와 달이 상륜부이지지붕과집과 같은 양식이어서두 분이 서로를 부처로 우기며탑 한 채로 솟아있는누운 엄마의 배 위에 엎드려 잠든 아기의 모습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탑이라고 노래하는 시안이 깊다. 맞다 세상 어디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조화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엄마는 든든한 탑신이며, 곱고 원대한 꿈을 꾸며 날개를 키우는 아이야말로 하늘 저 위의 해와 달 같은 상륜부가 아닐까, 시인이 안내해 주는 집과 지붕 같은 완벽한 조화를, 그윽한 탑 한 채를 본다.시인
2013-03-12
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계란----(짧은 침묵)계란 한 판 ---(긴 침묵)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 계란---(침묵)---계란 한 판이게 전부인데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계란, 한 번 치고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계란, 하고 친다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귀를 잡아 당긴다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치다인이 박여 생긴 생계의 운율계란 한 판의 리듬쓰던 시를 내려놓고덜컥, 삼천원을 들고 나선다우리네 삶의 가장자리에 가끔 만나는 계란장수의 계란 사라는 확성기 소리를 시인은 생계의 운율이라 말하고 있다. 참 재밌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끝없이 반복되는 단순한 그 호객 소리가 우리의 귀를 스쳐 지나기도 하지만, 가만히 귀 기울여보고 마음에 담아보면 그 소리 속에는 단단하고 절실한 생계의 운율 같은 것이 스며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인
2013-03-11
잘 보인다아무리 멀리 있어도더욱 또렷하다어둠이 깊을수록너만 보고 간다사위가 어두울수록 별은 또렷이 보이는 법이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그렇다. 겨울이 깊을수록 힘들게 도래하는 봄은 더욱 감동적이고 봄볕은 더욱 따순 법이다. 우리네 인생의 법칙도 그렇지 않을까. 시련과 고통, 그 아픔이 깊을수록 그 뒤에 반전되어 밀려오는 극복과 회생의 기쁨과 감격은 더욱 큰 것이리라. 시인이 너만 보고 간다고 말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앞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꿋꿋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시인
2013-03-08
구름떼처럼 모인 사람들만 보고 돌아온다광양 매화밭으로 매화를 보러 갔다가매화는 덜 피어 보지 못하고그래도 섬진강 거슬러 올라오는 밤차는 좋아산허리와 들판에 묻은 달빛에 취해 조는데차 안을 가득 메우는 짙은 매화향기 있어둘러보니 차 안에는 반쯤 잠든 사람들뿐살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과 악취가꿈과 달빛에 섞여 때로 만개한 매화보다도더 짙은 향내가 되기도 하는 건지내년 봄에도 다시 한번 매화 찾아 나섰다가매화는 그만두고 밤차나 타고 올라올까어느 봄날 매화를 보러간 노시인이 매화는 못보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다가 그냥 돌아서서 돌아오는 밤차에서의 감회를 적은 시이다. 매화는 못 봤지만 매화보다 더 향기롭고 아름다운 지리산 자락과 유유히 흐르는 밤 섬진강과 쏟아지는 달빛에 취해 깊은 생각에 빠져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살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과 악취가 꿈과 달빛에 섞여 때로는 만개한 매화보다도 더 짙은 향내를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생각하며 돌아오는 밤차 창가에서 지그시 눈 감은 노 시인의 감회를 따라가 봄직하지 않는가.시인
2013-03-07
시간의 고공 속을 그 여자의 속도는 한없이 느리다엄마를 폐업한 그녀 안에 울음으로 깎이며 결을 키운 육관(肉棺)악기한 생의 절정을 길어 올리듯 쏟아내는 소리마다눈물로 저를 깎아낸 몸의 진저리가 흘러나온다고음이 하이얀 피로 솟을 때까지그녀 안의 응어리는 악보를 담는 매질이 되어 준 것이다누구에게나 울음을 다잡는 방식 있어 오늘 나는몇 번째인가 시(詩)를 관에 넣고절필의 저항을 세게 받고 있다몇 번째인가 시를 관에 넣고절필의 저항으로 어제, 오늘을 사는 것이다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희로애락, 한 생의 통로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그의 몸은 소리를 담고 있는 육관 악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눈물로 저를 깎아낸 몸의 진저리가 흘러나오는 것이리라. 그게 인생이다. 평생을 시를 쓰면서 건너온 시인에게는 비록 절필의 시간들이 이어진다 해도 그의 마음이 가 닿는 곳에 시가 생기고, 그의 호흡이 곧 시요, 그의 눈빛이 시가 아닐까.시인
2013-03-06
마음 바르게 서면세상이 다 보인다빨아서 풀 먹인 모시 적삼같이사물은 싱그럽다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진실은 눈멀고해와 달이 없는 벌판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쫒는자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대하소설 `토지`같은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을 곡진하고 장차게 쓰신 박경리 선생의 유고 시집에 실린 시이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던가 인간사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려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우리 인간의 욕망과 욕심은 끝이 없다. 그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의 말처럼 무간지옥에 이를지 모른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 그리 녹녹지만은 않는 일이지만 지나친 우리의 욕망을 제어하고 조절한다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만물이 한결 싱그럽게 보이지 않겠는가.시인
2013-03-05
이 고요 속에 어디서 붕어 뛰는 소리붕어의 아가미가 캬 하고 먹빛을 토하는 소리넓고 넓은 호숫가에 먼동 트는 소리북한강 가에서 새벽을 맞은 적이 있다. 온 천지 안개가 자욱히 점령한 강에서 무언가 튀어오르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새벽 물고기들이 튀어오르는 소리라고들 했다. 시인은 넓은 호숫가 먼동이 터 오는 시간 속으로, 그 절대 고요의 시간 속으로, 정지해 있는 기막힌 풍경 속으로 붕어가 튀어 오르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이 특별한 경험 앞에서 시인은 자연의 경이로움에 젖어들어 그 평화경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시인
2013-03-04
박물관은 너무 무거워라과거를 사는 사람은 박물관에 잠기고미래를 사는 아기는 유모차를 타고박물관에서 잠든다언제일까우리가 박물관을오늘이라고 부를 날은햇살 가벼운 겨울시간이 박물관 안에서 먼저 기다린다박물관의 시간들은 마냥 박제돼 있거나 멈춰있거나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이 박물관이다. 엄격히 말하면 현재라는 시간 개념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닌가 생각한다. 끊임없이 현재의 시간들이 과거의 시간으로 축적돼 가는 것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런 축적된 시간의 흔적들이 가시적인 형태로 전시돼 있다. 수 백년부터 수 천년 혹은 수 만년 동안의 시간의 축적물들이 놓여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박물관을 너무 무겁다고 말했는지 모른다.시인
2013-02-28
칠십 평생 처음으로, 지난겨울 되게 앓으신 엄니가얼굴 그득히 피우신 검버섯황망한 마음으로, 아이들 앞세워 둑길에 나서니넘어질 듯, 아이들 뜀박질로들을 가로질러, 앞산 파랗게 키우고,개울 물소리 들쑤시며금강까지 내처 몰려가는 풋풋한 물비린내희미한 빗소리 귀동냥하며둑길 끝 징검다리 비로소 뚜렷하다봄비는 겨우내 움츠리고 마른 생명의 여건들에 습기와 따스한 온기를 공급하여 회생시키고 스스히 가동을 준비하게 만드는 생명의 시간들이다. 봄비를 맞으며 개울 물소리와 푸른 산자락의 봄내음을 맡으며 편찮으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시인과 그의 아이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봄비 내리는 금강 둑방 길을 걸으며 새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봄의 만물들처럼 칠십 평생 자식들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의 쾌유를 비는 시인의 착한 마음을 넘볼 수 있는 작품이다.시인
2013-02-27
세월은 또 한 고비 넘고잠이 오지 않는다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몸부림치다 와 닿는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 비는 재주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달아오른 불덩어리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망망 천지에 없단 말이냐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 본다밖에는 바람 소리가 사정없고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잠이 오지 않는다고단하고 힘겨운, 궁핍한 젊은 시절 며칠 뒷면 달셋방을 비워줘야는데 갈 데는 없는, 곤하게 잠든 가족들을 바라보는 가장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불덩어리로 달아오른 아이를 포근히 안아줄 따스한 한 칸의 방도 가지지 못하고,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가만히 얼굴을 대보는 젊은 시인의 힘겨운 시간들이 의지할 데 없는 망망천지에 휙휙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인들 별로 변한 것 없는 현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시인
2013-02-26
3월 초하루석남사 웃길 더듬어하늘사다리 아래조아려, 엎드려새끼손가락 끝 마디 만큼이나쿠욱 찔러, 속살 할퀴고너의 봄을 훔친다햇살로 두룩 내리는너의 망울망울너의 눈물 한 그릇`늙은 대추나무를 위하여·2009`고로쇠 수액을 눈물 한 그릇으로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이 젖어있다. 시인은 봄을 떠나지도 떠나보내지도 못하고 있다. 봄을 사랑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내면화 시켜 스스로 망울진 고로쇠 눈물로 승화시키고 있다. 엄동을 견뎌낸 자연물 앞에서 애절하고 순수한 인간의 마음이 가만히 풀어져 그리움이나 사랑으로 깊어지고 있다.시인
2013-02-25
나무의 생각이 그늘을 만든다그늘을 넓히고 좁히는 것은 나무의 생각이다사람들이 아무리 잡아당겨도 나무는나무가 벋고 싶은 곳으로 가서 그늘을 만든다그늘은 일하다가 쉬는 나무의 자리다길을 아는가 물으면 대답하지 않고가고 싶은 곳으로만 가서 제 지닌 만큼의 자유를 심으면서나무는 가지와 잎의 생각을 따라 그늘을 만든다수피 속으로 난 길은 숨은 길이어서 나무는나무 혼자만 걸어 다니는 길을 안다가지가 펴놓은 수평 아래 아이들이 와서 놀면나무는 잎을 내려 보내 아이들과 함께 논다가로와 세로로 짜 늘인 넓은 그늘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다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라는 독특한 발상에서 이 시는 시작된다. 생명감으로 충일한 아이들을 위해서 잎새를 내려 시원하고 맑은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삶의 무게에 찌들린 사람들을 위해 시원하고 신선한 쉼터로서의 그늘을 내 준다. 묵묵부답 말이 없는 나무는 세상의 이치를 궁구해서 이렇듯 적절히 그늘을 마련해서 내민다. 비록 자연물이지만 이 얼마나 그윽한 생의 깊이인가.시인
2013-02-22
1947년 봄심야황해도 해주의 바다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 가고 있었다울음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일제의 폭압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분단이라는 뼈아픈 민족적 현실이 작품 전체에 무겁게 깔려있다. 남북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시기에 몰래 남하하다가 들키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이 몰살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엄청난 두려움과 떨림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비극, 더 나아가 민족의 아픔을 절제된 시어와 간결한 시행을 사용해 표현한 울림이 큰 시이다.시인
2013-02-21
날고 창궁(蒼穹)을 누벼도목메임을 풀 길 없고장송(長松)에 내려서서외로 듣는 바람 소리저녁놀 긴 목에 이고또 하루를 여위네학은 세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는 고고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존재이다. 이런 학의 모습을 통하여 현실에 처한 자신의 고립된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세상의 혼탁함에 휩쓸리지 않고 꼿꼿이 자기를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이다.시인
2013-02-20
조금 더 일찍조금 더 바삐열심히 살아온 어느 날 아침라디오는 성호를 긋고 있다어느 초등학교 학생을 교사가 폭행그 교사를 학생의 아버지가 폭행- 남들 앞에서 너도 함 맞아봐라유리창 너머로 균열되는 햇살각진 것들이 낳은 어둠들이묵송 중이다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시여통곡들로 휘청거리는 세상창문을 닫아도십자가는 온통 창문틀 속에즐비하다십자가를 구원의 상징이라고들 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즐비한 것이 십자가다. 십자가를 향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열망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십자가가 즐비하다. 유리창 너머로 균열되는 햇살이라고 표현하는 시인의 답답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초등생을 체벌한 교사를 그 학생의 아버지가 폭행하는 얘기가 중심 서사이지만 각진 것들이 낳는 어둠이 자꾸 깊어져가서 어디로도 구원이 없는 세상으로 추락해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시안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시인
2013-02-19
바람이여풀섶을 가던, 그리고 때로는 저기 북녘의 검은 산맥을 넘나들던그 무형(無形)한 것이여너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와 흔들며 애무했거니나의 그 풋풋한 것이여불어다오저 이름 없는 풀꽃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아직은 이렇게 가시지 않았을 때다시 한 번 불어 다오, 바람이여,아 사랑이여시의 제목은 `교외` 이지만 이 시의 중심에는 `바람`이 놓여있다. 바람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풀섶도 지나고 북녘의 검은 산맥도 넘나드는 바람은 무형의 존재이며 텅빈 존재이고, 절대 자유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름없는 풀꽃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지속할 수 없으리라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자의식도 내재되어 있는 이 시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끝없이 갈망하는 인간의 정념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다.시인
2013-02-18
장미란은 그만 바벨을 놓치고 말았다잠시 망연하게 서 있었으나 곧꿇어앉아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오른 손을 입술에 대그 키스를 청춘의 반려, `무쇠 씨`에게 주었다. 그러자 마침내오랜 무게가 한 잎 미소로 피어났다. 손 흔들며 그렇게그녀는 런던 올림픽 역도 경기장을 떠났다.장미란 모두 활짝 마지막 시기를 들어 올리는 것,마지막 시기가 참 가장 붉고 아름답다우리나라 역도계에 한 획을 그은 북경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미란. 지난 런던올림픽에서 그녀는 최선을 다했지만 금메달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과 노력은 너무도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바벨을 놓치고 꿇어앉아 기도하고 무쇠바벨에 키스를 했다. 보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잊지 못할 한 장면을 선물한 것이다. 우리네 한 생을 마칠 즈음에 우리도 우리자신의 무엇에다 우리의 입술을 댈 수 있을까.시인
201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