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향나무에 눈이 내렸네눈을 감으니 터진 하늘의 문(門)이 보이네눈향나무에 온몸이 눈이네 문이네아아 어어 이 내 몸이 만신창으로 구겨져부서질 듯 저 어느 문을 열고훤히 트인 고향으로 들꼬?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눈향나무가 하늘을 향해 문을 열어놓고 내리는 눈을 다시 맞아들이며 하늘에 순응하는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부질없는 한 생을 살아가면서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영육을 들여다보며 자신은 어느 문을 열고 훤히 트인 고향, 하늘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잔잔한 회한에 들고 있다.시인
2013-04-15
밤바다밤 물 때 이는 소리밀려오고밀려오는이 밤 여기 서 있으면멀리가까이무엇인가 울고무엇인가 흐느끼는숨소리오렴오렴어서 오렴밤바다슬프고 아름다운밤 물 때이는 소리끝없이 밀려왔다가 잠시 머무르고는 밀려나가 버리는 조수의 밀물 썰물을 바라보는 시인은 그것을 무엇인가의 울음소리고 흐느끼는 소리로 듣고 바라보고 있다. 슬프고 서러워서 더 아름다운 서정을 만들어 내는 시인은 아주 절제된 언어, 단순성의 미학을 구사하고 있다. 시의 한 행 한 행이 마치 밀려오는 물결 같은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시인
2013-04-12
왜 이토록이나 떠돌고 헛돌았지남은 거라고는 바람과 먼지저물기 전에 또 어디로 가야 하지등 떠미는 저 먼지와 바람차마 못 버려서 지고 있는 이 짐과허공의 빈 메아리그래도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무명(無明) 속 먼 불빛 한 가닥내면적 자기 성찰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지역 언론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면서 주옥같은 시편들을 생산해온 시인의 인생을 관조하는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정말 부지런히 앞만 보고 달려온 시인이지만 `저물기 전에 어디로 가야하지` 라고 토로하면서 실존적 존재로서의 허무감과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을 풀어내고 있다. 이 진솔한 고백을 읽으면서 우리 자신도 우리를 돌아보고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자. 시인에게 보이는 무명 속 먼 불빛 한 가닥 보일는지.시인
2013-04-11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나무와 나무가 모여어깨와 어깨를 대고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나무와 나무 사이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생각하지 못했다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나무와 나무 사이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산불이 휩쓸고 지나간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나무와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이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간격이 필요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일정한 간격이 필요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이 대립의 관계설정이 아니고 울창한 숲을 이루듯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간격이 필요하다. 너무 친한 친구 사이에도, 연인 사이에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품어줄 줄 아는 착한 간격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시인
2013-04-10
뒷밭을 볼 때마다명아주 대가 더 늘었다목을 뽑아올리던 상추는그새 꽃을 피웠다아침이면 맷비둘기 내려오고찌르레기 짝지어 논다삽자루 그러쥐고 밭둑에서 졸던할아버지 자전거만통 소식이 없다뒷밭에서 갖가지 자잔한 생명의 순을 피워 올리던 할아버지의 부재, 그의 죽음, 존재의 여백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아름다운 생명의 순환에 대한 시적 성찰이 돋보이는 이 시에서 우리는 탄생과 죽음은 자연의 순환적 흐름을 이루는 것으로 받아들여야함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은 가만히 순응하고, 더 나아가 삶을 더욱 깊게 하는 생명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성찰의 시이다.시인
2013-04-09
가지에 피는 꽃이란 꽃들은나무가 하는 사랑의 연습떨어질 꽃들 떨어지고이제 푸르른 잎새마다 저렇듯이 퍼렇게 사랑이 물들었으나나무는 깊숙이 침묵하게 마련이오불다 마는 것이 바람이라시시로 부는 바람에 나무의 마음은 아하 안타까워차라리 나무는 벼락을 쳐 달라 하오체념 속에 자라는 나무는 자꾸 퍼렇게 자라나기만 하고참새 재작이는 고요한 아침이더니오늘은 가는 비 내리는 오후나무에 연애하는 사람의 감정을 이입한 시이다. 나무에 잎이나고 열매가 맺히고 떨어지고 하는 일들이 반복되듯이 우리네 사랑도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깊어지기도 하고 상처를 받아 침묵하기도 하고 쓰라린 아픔에 들기도 하는 것이리라. 사랑을 잃는 것은 엄청난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사랑의 상처에 깊이 빠진 화자가 체념을 넘어서 비 내리는 오후 고요한 치유의 시간에 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시인
2013-04-08
나는 흥얼거리며 골목길을 올라갔다언덕 위에 우리 집이 보이는데아직 식구들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아니면모두 잠들었는지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나는 얼른 들어가 불을 켜야겠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올라갈 수가 없었다얼어붙은 길이 너무 미끄러워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고 자꾸 뒤로 밀려나는 것이었다술 몇잔을 마셨다고 이렇게 힘이 없을까나는 오기를 가지고 올라갔지만몇 걸음 못 가 다시 미끄러지고 말았다날이 저물어 새들이 둥지로 돌아가는 것을 귀소(歸巢)라고 한다. 새들 뿐만 아니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평안과 안식이 있기 때문이다. 푸근하게 자신을 맡길 수 있고 재충전의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곳 또한 집이다. 그런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간절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시인
2013-04-05
구름 위에 뜬 섬인가섬 위에 뜬 구름인가새벽녘노을 한 자락을 휘감고 선 선녀 하나바다 한쪽 끝에서 동쪽을 보고 있다직녀(織女)가 봉황(鳳凰)불러 모이 뿌리듯손뼉 쳐 잠 든 해를 깨우고 있다새벽녘 일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경이로운 심경을 표현한 시이다. 일출봉은 전설 속의 여인 직녀처럼 봉황같이 솟아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있다. 시인의 시 여러 편에서 발견되는 이런 신화적이고 감각적인 풍경묘사는 대자연이 만들어 내는 경이로운 풍경에 대한 일종의 외경심 같은 것이 표출된 것이리라.시인
2013-04-04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참깨를 털어 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 본 나로선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 댄다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도시에 살면서 혈기 왕성하고 생각이 짧은 손주가 할머니댁의 참깨를 털면서 느끼는 생의 방식이랄까 의미를 말하고 있다. 뭔가에 쫒기듯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도시의 젊은이가 참참이, 느리지만 꼼꼼이 농사일을 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어서 목적이 사라지고 자신의 행위만이 앞세우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시인
2013-04-03
오래된 벽화는바탕이나 채색이 아니라깊이다깊이로 외친다꺼내줘아니 잠시만 바라봐줘담쟁이넝쿨에 가려져지나고, 또 지나쳐도 좋을구멍도 그림이야바람이 불 땐끄륵 끄끄륵,지금 한창 구멍 찬 벽 속의 계절이라고네가 운다오래된 벽화는 바탕이나 채색이 아니라 깊이라고 말하는 시안이 깊다. 깊이는 시간의 깊이고 길이고 밀도다. 벽에 스치고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 구멍이 생기고 긁히고 일부가 쪼개져 없어져 버린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중요한 벽화의 일부분이다. 담쟁이 넝쿨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벽화에 스민 시간의 깊이는 푸르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인생. 비록 병들고 모양 없이 늙어가는 어르신네가 푸르른 청춘들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벽화가 아닐까.시인
2013-04-02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다섯 살배기 딸 민지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내 말은 때가 묻어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순진무구한 아이에게서 깨달음 얻는 어른의 얘기가 재밌게 전개되는 시이다. 사물이나 어떤 현상에 대한 명확한 판단과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아는 어른들은 쓸데없이 꽃과 잡초를 나누고,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나누는 등 중요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어리석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면서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서 그 순수한 마음을 본받아야함을 깨우쳐주는 잔잔함 감동을 거느린 작품이다.시인
2013-04-01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언제였던가. 노래로 불리어지던 많이 들어본 노랫말인 시이다. 외로운 사람에게는 나무도 그냥 나무가 아닌 것처럼 잠 못 이루는 새벽하늘의 별 또한 예사롭지 않는 법이다. 별과 화자와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만남은 찰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이고 다시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한 것이다. 인간과 인간과의 만남도 인간과 자연과의 만남도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느끼게하는 작품이다.시인
2013-03-28
밤새 두런두런어느 길을 걸어그 불빛 켜들고들 오셨나푸르스름 밝아오는 새벽 길가에올망졸망이슬에 함뿍 젖은 흰 초롱 걸어놓고말없이 돌아서는 등이 보인다이른 봄부터 풀꽃들이나 나무들에는 꽃등이 켜진다. 이른 봄 눈섞이 흐른 개울가나 양지바른 곳에는 솜양지꽃같은 납작하고 노란 꽃들이 등을 내 건다. 어디 그뿐인가.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같은 봄꽃들이 다투어 꽃을 피워올린다. 오월이면 산과 들 혹은 숲정이에 희거나 연한 홍자색의 초롱꽃등이 불을 밝힌다. 점점 어두워져가는 인간세상의 한 모서리에 누가 저리 고운 꽃등불을 밝히는가. 아름다운 생명의 환한 불을 밝혀놓고 가는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시인
2013-03-27
구름은 허공이 바다라는 걸 말하기 위하여 갖은 재롱을 부린다 먹구름은 바다가 간만의 차가 심한 사리 때의 파도이다 새털구름은 잔잔한 조금 때의 파도이다 그 바다에는 밀림보다도 빽빽한 생명의 주소록이 있다 선운사는 그것을 지상으로 옮겨놓은 허공의 약도이다 동백숲은 저 높이서도 밀물과 썰물의 눈에 쉽사리 띄도록 떼지어 청등 홍등을 번갈아 켜는 허공의 부표이다 허공은 하루에도 몇 차례 선운사에 내려와서는 지상의 기색을 살핀다 그 흔한 춘란 한 포기도 허공의 걸작이다.구름과 파도, 선운사 동백숲이라는 각각의 공간과 사물이 밀접하고 유기적으로 연관되며, 우주의 생명원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의 시공간 속에도 이러한 구조는 많다. 그러나 거기에는 갈등과 아픔과 상처가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 시는 우주, 자연의 생명원리나 조화로운 어울림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
2013-03-26
유난히 뚝심 세었던 동갑내기 고종사촌 고재국은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상경해 쟉크 염색 기술을 배웠다, 지독한 연료 냄새에 콧구멍은 진즉 마비되고 늘 골머리가지 띵하더니 상경한 지 삼 년 만에 한 모금 피를 토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굼벵이로 술을 담가 먹었다. 초겨울 마람 엮어 지붕 갈 때 썩은새 속에 굼실거리는 살진 굼벵이로, 매미의 유충이 굼벵이라던가, 농사일 뒷전에서 거들며 지내기 일 년 만에 매미소리처럼 가슴이 시원해진 그는 다시 상경하였고 굼벵이 술을 계속 먹으며 십여 년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쟉크 염색 공장을 차렸다. 비록 동업이지만 바야흐로 찌든 얼굴 펴지고 내 선생 월급을 묻고는 미소 짓는 게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 그는 요즘 미칠 지경이란다. 아니 미쳐서 돌아다닌단다. 예비군 훈련 간 사이 공장 들어먹고 잠적한 동업자를 찾으러.고향의 동갑내기 사촌의 기막힌 서사를 통해 현실의 비정함을 느낄 수 있게하는 산문시이다. 흔히 이농현상이 한창이던 70년대 쯤 되는 시기이리라. 시골에서 올라와 봉제공장같은 영세 수공업에 종사하면서 피땀 흘려 돈 버느라 건강 잃고 귀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의 제목의 주인공도 병든 몸으로 낙향해서 겨우 되찾은 건강으로 다시 상경해 그런대로 성공에 이르렀고 고생은 끝인줄 알았는데 공장 들어먹고 잠적한 동업자를 찾아 환장하여 다닌다는 기막힌 사연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한 비정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3-03-25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희로(喜)에 움직이지 않고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억 년 비정(非情)의 함묵에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흐르는 구름머언 원뢰(遠雷)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두 쪽으로 깨뜨려져도소리 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바위의 굳은 속성을 인용해 인생의 희로애락에 움직이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삶의 자세를 지키며 가고자 하는 방향을 올곧게 나아가라는 시인의 묵직한 음성에 귀 기울여봄 직하다. 애련에 젖지 않고 멀리서 울리는 우레의 협박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결의를 엿볼 수 있는 시이다.시인
2013-03-22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얼마나 숭고한 일이냐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얼마나 기쁜 일이냐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현실이 비록 구차하고 형편없다 할지라도 희망과 꿈을 가지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강하게 던져주는 시이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현실에 부대끼며 여유가 없는 삶에 얽매여 있다하더라도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고 말하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다.시인
2013-03-21
꿈결처럼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한 그루찔레로 서 있고 싶다사랑하던 그 사람조금만 더 다가서면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오늘은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먼 여행에서 돌아와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그대 사랑하는 동안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송이송이 흰 찔레꽃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정표처럼 피어나 번지고 또 번져가는 것이리라.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같은 찔레꽃을 피워놓고 초록 가득 서 있고 싶다는 시인의 가슴 속에는 못다 이룬 사랑의 아픈 무늬가 번져있다. 아련하고 아쉬운, 기다리고 또 기다린 가슴 아픈 사랑이 서려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사랑이다.시인
2013-03-20
나는 이제 좁쌀보다도 작은 백도라지씨를 더는 미운 마음으로 가려내지 말자고 다짐했다그래도, 사방이 온통 보랏빛인 청도라지꿈을 꾸다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나는 길을 잘못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반달을 툭 분질러 깨문 것 같이, 길을 잘못 걸어왔는지도 모른다산길을 걷다가, 희기도 하고 보랏빛이기도 한 얼룩이 옷에 묻기도 했다.그런 날이면 산첩첩 노루산장에서 하룻밤 자고 오기도 했다청도라지꽃을 좋아하는 시인에게 백도라지가 피어있는 길이란 가고싶지 않은 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인식은 이 부분에서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비록 백도라지꽃이 피어있는 길이라 할지라도, 길을 잘못 걸어왔다 할지라도 긍정하며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는 시인의 인식이 참으로 편안하고 평온함에 이르름을 느낄 수 있다. 한 생을 살다보면 희기도 하고 보랏빛이기도 한 얼룩이 옷에 묻어나는 것이리라.시인
2013-03-19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있다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봄 길이 되어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보라사랑이 끝난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사랑이 되어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모든 길은 끝난 것 같지만 끝난 게 아니다. 길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영원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리라.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그 시작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 한 길은 영원히 이어지고 시작은 끝없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한없이 희망을 가지고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시인
201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