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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고재국

유난히 뚝심 세었던 동갑내기 고종사촌 고재국은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상경해 쟉크 염색 기술을 배웠다, 지독한 연료 냄새에 콧구멍은 진즉 마비되고 늘 골머리가지 띵하더니 상경한 지 삼 년 만에 한 모금 피를 토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굼벵이로 술을 담가 먹었다. 초겨울 마람 엮어 지붕 갈 때 썩은새 속에 굼실거리는 살진 굼벵이로, 매미의 유충이 굼벵이라던가, 농사일 뒷전에서 거들며 지내기 일 년 만에 매미소리처럼 가슴이 시원해진 그는 다시 상경하였고 굼벵이 술을 계속 먹으며 십여 년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쟉크 염색 공장을 차렸다. 비록 동업이지만 바야흐로 찌든 얼굴 펴지고 내 선생 월급을 묻고는 미소 짓는 게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 그는 요즘 미칠 지경이란다. 아니 미쳐서 돌아다닌단다. 예비군 훈련 간 사이 공장 들어먹고 잠적한 동업자를 찾으러.고향의 동갑내기 사촌의 기막힌 서사를 통해 현실의 비정함을 느낄 수 있게하는 산문시이다. 흔히 이농현상이 한창이던 70년대 쯤 되는 시기이리라. 시골에서 올라와 봉제공장같은 영세 수공업에 종사하면서 피땀 흘려 돈 버느라 건강 잃고 귀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의 제목의 주인공도 병든 몸으로 낙향해서 겨우 되찾은 건강으로 다시 상경해 그런대로 성공에 이르렀고 고생은 끝인줄 알았는데 공장 들어먹고 잠적한 동업자를 찾아 환장하여 다닌다는 기막힌 사연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한 비정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