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허공이 바다라는 걸 말하기 위하여 갖은 재롱을 부린다 먹구름은 바다가 간만의 차가 심한 사리 때의 파도이다 새털구름은 잔잔한 조금 때의 파도이다 그 바다에는 밀림보다도 빽빽한 생명의 주소록이 있다 선운사는 그것을 지상으로 옮겨놓은 허공의 약도이다 동백숲은 저 높이서도 밀물과 썰물의 눈에 쉽사리 띄도록 떼지어 청등 홍등을 번갈아 켜는 허공의 부표이다 허공은 하루에도 몇 차례 선운사에 내려와서는 지상의 기색을 살핀다 그 흔한 춘란 한 포기도 허공의 걸작이다.
구름과 파도, 선운사 동백숲이라는 각각의 공간과 사물이 밀접하고 유기적으로 연관되며, 우주의 생명원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의 시공간 속에도 이러한 구조는 많다. 그러나 거기에는 갈등과 아픔과 상처가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 시는 우주, 자연의 생명원리나 조화로운 어울림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